글쓴이 : 정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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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의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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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월 14일 서울고등법원은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장이던 남재준(2013.3.~ 2014.5), 이병기(2014.7.~ 2015.3), 이병호(2015.3.~2016.6) 등이 총 36억5,000만 원 상당의 국정원 특활비를 청와대에 전달한 혐의로 남 전 원장에게 징역 1년 6월, 이병기에 징역 3년, 이병호 원장에게 징역 3년 6월의 실형을 각각 선고했다. 국정원 특별활동비 횡령 사건은 박근혜 정부의 몰락후 기소되어 대법원까지 상고되었다가 파기환송 된 것인데,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남 전 원장 등이 소극적으로 응한 것이고, 개인적 유용이라는 부정한 목적이 없었으며, 국정원장이 청와대나 대통령에 전달한 관행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라며 개인 비위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 자금은 안봉근·이재만·정호성 등 당시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전달되어 박 전 대통령의 사저 관리, 여론조사, 대통령 의상실 비용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져서 박 전 대통령이 국고손실 등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것과 같은 내용이다.

    국정원은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하여 국제범죄 등 국외 정보와 북한과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국내 범죄 등에 관한 정보수집과 대응을 목적으로 하여 조직된 대통령 직속기관(국정원법 제4조)이지만, 그 모체는 5·16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군사정권이 그해 6월 미 중앙정보부(CIA)를 모방하여 창설되었다. 초대 정보부장 김종필이 취임한 이후 10·26·사태로 박 대통령 시해 후 신군부 정권이 출범하면서 중앙정보부의 반독재 투쟁인사에 대한 불법사찰과 구금 등에 대한 원죄의 비판을 받으면서 1981년 1월 국가안전기획부로 간판을 바꿔 달았으나, 그 속성은 여전해서 DJ정부 출범 직후인 1999년 1월 국가정보원으로 문패를 바꾼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중앙정보부에서 안기부를 거쳐 국정원에 이르기까지 조직이 환골탈태한다고 했지만, 그 정보기관은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다가 정권이 바뀔 때면 거의 예외 없이 그 수장들이 교도소로 직행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 정보기관으로부터 혹독한 고문과 피해를 보았던 야당 정치인들조차 정권을 잡은 후에는 모두 그 정보기관의 막강한 마술에 빠져버렸다는 사실이다. 문민정부를 표방하던 YS를 비롯하여 DJ, 노무현, MB, 박근헤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즉, YS는 1994년 6월 안기부에 미림이라는 도청 팀을 만들고 1997년 11월까지 646명(정치인 273명)을 도청한 녹음테이프 1,000개를 완성했고, 1997년 당시 안기부장 권 모씨는 총풍사건으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DJ 때에도 국정원 직원 32명이 주야 3교대로 주요 정치인, 고위공직자, 시민단체, 노조 간부 등 약 1,000명의 통화내용을 감청한 혐의로 2005년 국정원장이었던 임 모, 신 모씨가 각각 징역 4년 형을 받았고, 노무현 정권 때에도 2006년 8월부터 11월까지 당시 유력 대선주자였던 이명박 후보와 그 주변 인물 132명의 재산 흐름과 범죄기록을 조회한 이유로 국정원 전 직원 고모 씨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어찌 일개 국정원 직원의 불법행위였으랴. 2008년 MB도 정권 출범 당시 행안부장관으로 입각했던 원 모씨를 이듬해 국정원장에 발탁하여 그는 4년 1개월간 국정원장을 지냈는데, 그는 퇴임 후 3개월여 만에 대선 개입 협의로 구속되어 대법원을 오르내리다가 지난해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렇게 역대 중앙정보기관의 장들은 본연의 임무인 국가안보 대신 정권 안보에 주력했음을 말해주고, 또 구속되어 형사소추를 받지 않은 인물을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오랫동안 국왕의 통치 객체에 불과하던 백성이 권리를 누리게 된 것은 국왕이 사치와 낭비에 따른 지출비를 귀족과 상공업자로부터 동의를 얻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타협의 산물’이었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발상이라는 영국에서 수백 년 동안 피를 흘린 끝에 비로소 백성이 권리의 주체인 국민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이를 헌법에 명시하게 되었다. 국민은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으로 나눠서 상호 견제와 균형을 갖도록 했는데, 경제학에서의 분업은 ‘능률의 수단’이었지만, 정치학에서 권력분립은 권력에 대한 혐오와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우리는 자유와 권리에 대한 투쟁의 산물이 아니라 거저 넘겨받은 서구 민주제도를 시행한 결과 3.15. 부정선거. 4.19. 5.16. 10.26. 5.18. 6.29. 등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특히 국가권력으로부터 인권유린과 불법 수사 등을 막기 위하여 적법절차(due Process)를 헌법상 명문화했지만, 현실은 권력자의 자의적인 권한 남용이 계속되어 대통령이 권한 남용이 넘쳐났다. 역대 대통령은 검찰권, 경찰권, 국세청, 국정원을 자신의 권력 유지에 활용했는데, 정치적 야심을 가진 인사들은 ‘헌법과 법률’이 아닌 대통령의 의중을 적극적으로 추종하여 국민으로부터 ‘대통령의 시녀’라고 폄하되기도 했다. 현 정권 출범이후 시종일관 부르짖던 검찰개혁도 사실 검찰 자신의 잘못보다 대통령의 악용에서 비롯된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경찰의 수사권 독립과 공수처 출범으로 해소될는지 의문이다. 이제 한 고비를 넘긴 지금은 또 하나의 4대 권력기관인 국가정보원의 개혁을 지켜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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