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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총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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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우한발 코로나바이러스의 초기방역 실패로 여론의 질타와 세계 각국으로부터 빗장을 걸어 잠가 국제미아가 되었던 한국이 기사회생했다. 그러나 팬더믹(Pandemic) 상태로 세계는 경제공황보다 더 큰 위협을 맞으면서 이런 비난이 희석되어 버렸지만, 이것이 결코 우리의 초기방역 실패를 정당화시켜주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상태에서 치른 4월 총선 결과 집권당의 압승은 현 정부 정책의 승리라고 자만하겠지만, 이것은 매스컴이 온통 코로나바이러스에 집중하여 선거가 외면받고, 또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단체 집합을 막은 탓에 정부와 여당의 실정을 공격하고 비판할 기회를 얻지 못한 반사이익일 뿐이다.

    즉, 여당은 패스트트랙 법으로 야당의 분열을 초래한 정략이 성공했고, 야당은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 논란의 주역을 보좌했던 1인 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인물이 주군을 잘 보필하지 못한 법적, 도의적 책임은 외면한 채 독야청정한 모습으로 야당 대표가 되어 선거에 나선 어리석은 결과임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최악의 개정 선거법은 조속히 폐지되어야 하고, 야당도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재집권은커녕 당장 개원할 21대 국회 내내 정쟁만 일삼게 될 것이다. 만일 거대 여당이 국회에서 정부의 실정을 추궁하지 않고, 제일 야당도 끌려다닌다면 시민과 언론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제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생활방역으로 바뀌고, 각급 학교도 서서히 개학 준비에 나섰지만, 언제든지 확진 환자가 격증할 위험성을 안고 있어서 일상으로의 복귀는 요원하다.

    돌아보면 2017년 북핵 위기에 대응하여 미군이 사드(THAAD)를 도입할 때, 중국이 자국에 위협이 된다며 반대하자, 현 정부는 2017년 9월 외무부장관의 국회 답변 형식으로 사드의 추가배치 불가, 미국의 MD에 불참, 한. 미. 일 동맹 불가라는 이른바 ’3불 합의’ 정책을 발표했다. 그 당시 정부는 이것은 중국 정부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고 변명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상주에 배치하려던 사드는 정지 상태이고, 미국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신실크로드로 패권주의 실행에 반대하여 태평양·인도를 잇는 선언에는 불참했고, 전통적인 한. 미. 일 삼각 동맹체제는 와해 되었거나 와해 직전에 있다. 한마디로 현 정부 출범 이후 중국을 향해 약속한 삼불 정책은 착실하게 실천되고 있는 셈이다.

    고래로 아시아는 거대 중국을 중심으로 사대주의(事大主義)라는 외교 관계가 형성되어 왔다. 사대의 어원은 공 자가 직접 저술했다고도 하고 또 공자의 제자 증삼이 저술했다고도 하는 효경(孝經)의 개종명의장편(開宗明義章篇)에 “무릇 효는 부모를 섬기는 것이 첫째이고, 임금을 섬기는 것이 다음이고, 자기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 마지막이다(夫孝 始於事親 中於事君 終於立身).”라고 한다. 또, 공자가 펴낸 춘추가 너무 간략하여 그 주석서로 유명한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씨전의 소공(昭公) 30년 기사에도 “예라는 것은 작은 것이 큰 것을 섬기고, 큰 것은 작은 것을 사랑하고 양육해야 하는 것이다(禮者小事大大字小之謂).”라 하였다. 맹자의 양혜왕편(梁惠王篇)에도 “어질다는 것은 큰 것이 작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고, …… 지혜롭다는 것은 작은 것이 큰 것을 섬기는 것이다. …… 큰 것이 작은 것을 사랑하는 것은 하늘을 즐겁게 하는 것이고, 작은 것이 큰 것을 사랑하는 것은 하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惟仁者 爲能以大事小 …… 惟智者 爲能以小事大 …… 以大事小者 樂天者也 以小事大者 畏天者也).”라고 하는 등 사대는 중국에서 유학 사상으로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사친(事親), 신하가 임금을 사군(事君)과 맥을 같이 하여 중국과 주변국들도 평화공존의 한 형태로 오랫동안 자리 잡은 것이다.

    19세기 서양 제국주의가 밀려오면서 중국과 통상을 시도할 때까지도 중화사상에 빠진 중국은 서양 열강을 외이(外夷)로 보고, 사대를 요구함으로써 갈등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것이 아편전쟁 직전 영국 특사 매카트니(George Macartney)가 청 건륭제를 접견할 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땅에 머리를 찧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요구하면서 파행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결국,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읽지 못한 청은 아편전쟁, 애로호사건으로 서양 제국주의에 굴복하여 서서히 몰락하고, 조선도 척양(斥洋)· 척왜(斥倭)에 파묻혀 근대화 대열에 낙오되었다. 이렇게 중국 주변국의 공통적 현상이던 사대를 일제가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사대를 한반도라는 지정학적인 조선인의 숙명이라고 왜곡하더니, 해방 후 70여 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일제가 짠 사대주의 프레임에 빠진 사람이 많다.

    세계 12위 경제 대국인 우리가 ’3불 합의’ 정책을 발표한 것은 주권국가의 치욕이다. 물론 이것을 선린 우방을 위한 포용력의 한 표현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전통적인 한·미 동맹은 근간이 흔들렸고,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평화의 환상에 빠져서 휴전선 철책선을 걷어내고 북한군을 감시 정찰까지 포기한 상황에 이미 주적(主敵)개념은 실종되어 버렸다. 그러나 자주국방은 주권국가의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또, 국제사회에서 동맹이라는 든든한 보험으로 우방을 두어서 중국의 패권에 위협을 받게 된다면, 자주국방으로 대항하고 나아가 우방과 힘을 합쳐 대항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중국의 위세에 눌려 굴종하는 것은 곧 일제가 짜놓은 사대주의 프레임이 갇히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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