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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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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작가

    움베르토 에코
    나는 소설을 쓸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

    J.P. 사르트르
    자신의 시대가 작가의 유일한 기회이다. 시대는 작가를 위하여 만들어지고 작가는 시대를 위하여 만들어진다. 1848년의 사변, 2월 혁명에 대한 발자크의 무관심, 파리 코뮌에 직면한 플로베르의 전전긍긍한 몰이해는 유감스러운 일이며 그것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도 애석한 일이다.
    거기에는 무엇인지 그들이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 있다. 우리들은 우리 시대에 있는 아무것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더욱 좋은 시대는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눈앞에 있는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시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들은 어쩌면 이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을 열어나갈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엘리아스 카네티 (Elias Canetti)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작가는, 자기 시대에 예속된 맨 밑바닥에 있는 종이다. 그는 끊을 수 없는 짧은 쇠사슬로 자기 시대에 단단히 묶여 있다. 그의 예속성과 부자유는 너무나 커서 그는 도저히 다른 곳으로 옮겨질 수도 없다.
    좀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간단히 말한다면 진정한 작가는 자기 시대의 개 (dog)인 것이다. 그는 자기 시대의 땅 위를 마구 치달으면서 이곳저곳에 머문다.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지칠 줄 모르며, 위로부터 휘파람 소리에 민감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쉽게 사주 당하지만 일단 사주 당하여 흥분하면 좀처럼 되돌려 세우기가 힘든다. 그리고 그는 알 수 없는 악덕에 쫓기는 것이 된다. 모든 것에 그는 자기의 축축한 주둥이를 처박으며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그는 또한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와서는 새로 시작하기도 한다. 그는 결코 지칠 줄을 모른다.
    (198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영국 작가. 에스파냐계 유대인으로 오스트리아에 살면서 빈 대학을 졸업하였고 1938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런던에 정착했지만 독일어로 작품을 썼다. 주요 작품으로는「현혹 (Die Blendung)」「허공의 코메디 (Komödie der Eitelkeit)」「군중과 권력 (Masse und Macht)」등이 있다.)

    윌리엄 개디스 (William Gaddis)
    작품이 까다롭지 않으면 나는 지루해서 죽을 것이다. 작가의 개입과 짧은 논평이 자주 등장했던「인식 (The Recognitions)」을 쓴 뒤 나는 너무 쉽게 썼다는 걸 깨달았는데 또다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것을 쓰고 싶었다. 쓰기 어려운 내용을 쓰고 다른 문제들을 만들어내면서 억지로라도 자신을 단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에르모 카브레타 인판테 (Guillermo Cabrera Infante)

    나는 글을 쓸 때 결코 난해한 것을 피하라고 하지 않는다. 독자가 내 글을 이해하면 좋은 일이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으니까.
    나는 영원히 고친다. 수정 작업은 책이 출판되는 시점까지도 끝나지 않는다. 어떤 작가들은 작업이 끝나면, 즉 책이 탈고되거나 출판되고 나면 그 책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린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에게 작품은 항상 고쳐야 하는 대상이고 더 좋게 써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완벽함은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목표이다. 그러므로 나는 임기응변을 믿지 않고 점진적 개선을 믿는다.

    윌리엄 포크너

    내 생각에는 만약 내가 나의 모든 작품을 다시 쓸 수 있다면 분명 더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 확신이야말로 예술가에게는 가장 유익한 조건이다.

    로버트 그레이브스 (Robert Graves)
    나는 1975년에「모든 것과의 이별 (Goodbye to All That)」을 문장 하나도 놓치지 않고 완전히 새로 썼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누군가는 “어쨌든 이건 참 좋은 책이야. 이렇게 쭉 살아남았잖아.”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 책은 쭉 살아남은 게 아니다. 완전히 새로 고쳐 쓴 책이다.

    할런 코벤 (Harlan Coben)
    내가 쓴 책은 매번 더 좋아졌어요. …… 글의 수준도 그렇고 대화문도 그렇고. 게다가 책의 분량도 매번 조금씩 줄었죠. 제가 편집을 더 잘하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글쓰기는 다작이 결국 질의 향상으로 이어지는 몇 안 되는 작업 중 하나입니다. 더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됩니다. 확실합니다.

    힐러리 맨틀 (Hilary Mantel)
    저는 자료 조사는 힘닿는 대로 꼼꼼히, 정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추측은 아무런 사실 자료가 존재하지 않을 때만 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그런 추측도 합당해야만 하고요. 자료에 틈이 있어서 그것을 메울 때도 사실에 비추어 봤을 경우 가능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들 인물에게 저는 그 정도의 학문적 연구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가 정확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요.

    이언 랜킨 (Ian Rankin)
    작가가 되려면 스스로를 믿고 자신의 글을 믿어야 합니다.

    루스 렌델 (Ruth Rendell)
    렌델은 ‘웩스퍼드’ 시리즈 소설을 24권이나 썼다.
    “저는 웩스퍼드가 지겨워지지가 않아요. 웩스퍼드가 바로 나니까요. 물론 저랑 외모는 다르죠. 하지만 그의 사고방식, 신념, 사상, 취향은 저랑 똑같아요. 웩스퍼드가 좋아하는 책은 제가 좋아하는 책이에요.”
    “이야기의 계획을 세우려고 멈추면 이야기가 사라져 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가 떠오르는 대로 그냥 적어요. 대신 다시 살펴볼 때 꼼꼼히 보죠. …… 많은 사람들이 제가 쉽게 글을 쓰는 줄 알아요. 제 안에서 그냥 흘러나온다고요.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저는 글을 쓰는 일이 어려워요. 왜냐하면 공을 많이 들이니까요. 저는 몇 번이고 다시 써요. 뭔가 엉성하거나 큰 소리로 읽기 곤란하다면…… 그 글은 쓸 수 없어요. 누구나 자기가 쓴 글을 혼자 큰 소리로 읽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조르주 심농 (Georges Simenon)
    “저는 모든 인물의 가족에 대해 알아야 해요. 비록 실제로 소설에서 쓰지는 않더라도 조부모까지는 알아야 하죠. 저는 과거 전체를 알아야 합니다. 어린 시절, 출신 학교, 열여덟 살에 입었던 옷까지도요. 각 인물이 사는 집의 도면, 전화번호, 주소, 하루 일과, 형제자매, 기타 시댁이나 처가 식구들이 있는지, 서로 자주 연락하는 사이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Robert Louis Stevenson)
    이 일을 익히기 위해 나만큼 노력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는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묵묵히 버텨 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세상의 다른 어느 작가보다도 부족한 재능으로 더 많은 것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 나는 특히 마음에 드는 책이나 단락을 읽으면 … 무언가 두드러진 힘이나 만족할 만큼 독특한 문체가 있으면 그 자리에 앉아 그런 특징을 흉내 내려고 시도한다. 성공하지는 못해도 … 리듬, 조화, 구성, 부분의 조정에 대한 연습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해즐릿, 램, 워즈워스, 토머스 브라운 경, 디포, 호손, 몽테뉴, 보들레르, 오베르망을 온 정성을 다해 원숭이처럼 흉내 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문학은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허구는 허구이다. 이야기를 실화라고 부르는 것은 예술과 진실 모두에 대한 모독이다. 모든 위대한 작가는 위대한 사기꾼이다. 하긴 최고의 거짓말쟁이인 자연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은 언제나 속인다.
    이야기꾼은 우리에게 재미를 준다. 우리는 그에게서 가장 단순한 형태의 정신적인 흥분, 생생한 감정,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을 여행하는 즐거움을 얻는다. 어쨌든 조금 다른 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교사로서의 작가를 바라본다. 선전가, 도덕가, 예언자, 이것이 요즘 떠오르는 순서이다. 우리가 교사를 찾는 것은 도덕적인 교훈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지식, 즉 단순한 사실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대한 작가는 언제나 위대한 마법사라는 것이다. 우리가 작가들 각자의 천재성이 빚어낸 마법을 이해하고, 그의 작품에 나타난 문체와 이미지와 패턴을 연구하려 할 때 가장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레이엄 그린 (Graham Greene)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와 일종의 연대감을 맺고 있어야만 한다. 아이가 자궁에서 탄생하듯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의 몸에서 탄생한다. 그런 다음 탯줄을 끊고 나간 인물은 점점 자라서 독립체가 된다. 작가가 자신이 창조한 인물에 대해 더 잘 알수록 작가는 이 피조물과 거리를 두기가 더 쉬워지고 그 인물이 성장할 여지를 남길 수 있게 된다.

    존 그리샴 (John Grisham)
    나는 내 소설이 순수 문학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내게 소설의 핵심 요소는 플롯이다. 내 목표는 독자가 페이지를 얼른 넘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의 관심을 흩트리는 여유를 부릴 수 없다. 계속 독자의 시선을 붙들어야 하고 그 유일한 방법은 서스펜스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주인공에서 시작해야 한다. 독자가 신경을 쓸 만한 인물이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다. 주인공을 곤경에 처하게 한 다음 빠져나오게 하여야 한다. 독자들이 곤경에 처한 주인공을 염려하도록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독자를 잃게 된다. 그것이 기본적인 서스펜스이다. 그걸 내가 발명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아침에 진지한 문학 작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과랑 오렌지를 비교해서는 안 된다. 윌리엄 포크너가 위대한 문학 천재이지, 나는 아니다.

    스티븐 킹

    작가가 되고 싶다면 다음 두 가지를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 내가 아는 한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지름길은 없다. 매일 4시간 내지 6시간은 읽고 쓰는 데 할애하라. 그럴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좋은 작가가 되기를 바라선 안 된다.
    작가는 네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형편없는 작가, 기본은 하는 작가, 좋은 작가, 훌륭한 작가. 형편없는 작가가 기본은 하는 작가나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성실하게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시기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기본은 하는 작가가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가능하다.

    기욤 뮈소 (Guillaume Musso)
    작가에게 독자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작가는 독자들과 대화하기 위해 글을 쓴다. 그러나 작품에는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알맹이는 소설에 수분을 공급해주는 수액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영혼을 휘어잡고 목숨이 글에 달려 있기라도 하듯 일관되게 밀어붙이게 해주는 힘을 말한다. 그리고 글은 너무 건조하면 안 된다. 감정이 느껴져야 한다.
    소설은 감정과 감동의 산물이다. 지적인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글이 아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잠시 등장하는 행인이든 그들의 감정을 오롯이 피부로 느낄 수 있어야만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건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할 일이 못 된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 적합한 일이다. 대단히 파괴적인 정신분열 상태를 요구하니까. 글을 쓰기 위해 작가는 이 세상에 속해 있는 동시에 밖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강은 ‘작가는 가엾은 동물이다. 자기 자신과 더불어 우리 안에 갇혀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작가는 파트타임 직업이 아니다. 하루 24시간 내내 일에 얽매여야 한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기회도 없이 늘 경계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갑자기 머릿속에 소설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표현, 등장 인물들에게 입체감을 부여해줄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경우 지체없이 메모해두어야 하니까.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에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작가는 여러 사람의 운명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창조주가 되는 것이다.

    존 가드너 (John Gardner)
    진정한 소설가 되기는, 그 일에 모든 것을 건 사람이 아니라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모든 것을 건 사람이라면, 아무리 어렵더라도 다른 일보다 이게 쉽다.
    어떤 일에 ‘미친다’는 것은 구원일 수도 있고 죽음일 수도 있다. 진정한 소설가라면 소설에 사로잡힌 동시에 무심해져야만 한다.
    반 고흐는 살아생전에 그림을 단 한 점도 팔지 못했다. 에드거 앨런 포는 거의 팔리지 않는 시와 소설에 끝내 매달렸다.
    소설 쓰기에 사로잡히되, 자살이 아니라 굉장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로 떠밀릴 만큼만, 판매나 대중의 이해 여부 따위에는 무심해질 만큼만 사로잡혀야 한다. 사로잡힘은 소설가 자신에게도 그의 친구들에게도 곤혹스러운 상황이지만, 이를 겪지 않고 성공하는 소설가는 있을 수 없다.
    작가는 언제나 자기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대해 쓸 때 가장 잘 쓴다. 다른 그 무엇보다 (글쓰기 빼고) 철학에 관심이 가는 작가라면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좋은 영화를 찾아보고,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열심히 경청하면 정교하고 독창적인 이야기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소박한 작가, 다시 말해 대중 작가 (folk writer)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삶에 대한 진실성만이 아니라 영민함과 작품성으로 독자를 압도하는 대작가가 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좋은 교육을 통해 내면 깊숙이 셰익스피어 희곡의 수려함을, 제임스 조이스나 안드레이 밸리나 토마스 만의 특이한 천재성을 이해하는 작가와, 오로지 ‘세상’을 아는, 여기에 보탤 수 있는 지식이란 동네 잡화점이나 북클럽이나 월든북스 (서점 체인) 지점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대중 서적 정도인 작가는 똑같이 총명하다 해도 설명하기 어려운 격차를 지닌다. 교육을 받지 못한 작가는 우선 자신만의 시공간에 갇혀 있다.
    그러니 마치 망치, 칼, 드릴, 집게 같은 투박한 연장 몇 개 밖에 가진 게 없는 목수와도 같다. 다른 시공간에서 사용하는 정교한 도구들에 대해 전혀 모르는 탓에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 최선의 방식이 무엇이 되어야 할까 혼자 궁리해도 그저 두어 가지 방법을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매우 훌륭한 소설가들을 포함해 대다수 소설가는 절대 예술로 생계를 해결하지 못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내가 알기로는 헤밍웨이의 장편소설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1926년), 「무기여 잘 있거라 Farewell to Arms」(1929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1940년) 등 세 편에 불과하다.
    그런데 「무기여 잘 있거라」는 주인공의 아들이 사산아로 태어나고 연인 캐서린은 죽는다. 그 마지막 장면은 ‘그들을 쫓아내고 문을 닫고 전등을 꺼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조각상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나는 밖으로 나와 병원을 떠나 빗속을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 (김성곤 옮김, 시공사) 이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장면을 쓰는 데 헤밍웨이는 39번이나 고쳐 쓰고 나서야 만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꼭 맞는 단어와 문장을 찾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그 부분을 쓰기 위해서 무려 47개의 다른 결말을 만들어냈다. 2012년 스크리브너사가 출간한 「무기여 잘 있거라」 신판에 실려있다. 다음은 그중에서 5개를 고른 것이다. (토니 로시터 지음,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글쓰기 비법」, 204~210면 참조)
    (1) 그는 이 이야기에 속하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이야기의 결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공정하지는 않지만 으레 그런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죽음 외에는 끝이 없고 탄생은 시작일 뿐이다. (이 결말에서는 주인공 헨리의 아들이 살아서 태어나는데 여기서 ‘그’는 헨리의 아들을 가리킨다.)
    (2) 마침내 나는 잠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깨어난 것을 보면 잠들었던 것이 틀림없다. 내가 깼을 때 열린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왔고 나는 비가 내린 뒤의 봄 아침 내음을 맡았다. 마당의 나무에 드리워진 햇빛이 눈에 들어왔고 한동안 늘 그랬던 듯했다.
    (3) 문제는 그것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신을 믿고 신을 사랑한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이다.
    (4) 결국 아무것도 기억조차 못 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걸 알고 있다.
    (5)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다. 캐서린은 죽었고 당신도 죽을 것이고 나도 죽을 것이다. 그것만이 내가 약속할 수 있는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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