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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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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

    변호사에게는 법률에 관한 학문 외에, 전연 개인적인 뛰어난 소질이 필요하다.
    말이 유창하고 완전히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
    그리고 두뇌는 명석하고, 재치가 있어야 하며, 상상력이 발달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올바른 양심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때로는 쓰디쓴 환멸을 맛볼 수도 있다.
    인정이 없고 싸우기 좋아하는 의뢰자가 불가능한 것까지 변호사에게 요구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재판이 상대방의 승리로
    돌아가는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을 당했다 해서 주저할 것은 없다.

    ― T. 더하메르

    1. 저는 위풍덕 전 판사입니다. 현재는 마땅한 직업이 없으니까요. 법조 출입 기자들은 만나본 일이 있습니다만. 그들은 사회적으로 주목을 끄는 중요 사건을 선고할 때면 취재하기 위해서 판사실로 가끔 찾아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법전문기자는 처음이군요. 뭐 이름을 갖다 붙이면 그만이겠지요. 이메일은 잘 받았습니다. 제가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인터뷰를 거절했기 때문에 이메일 인터뷰까지 거절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로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저는 답변하는데 이골이 난 사람입니다. 재판이란 게 당사자들의 이러저러한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을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질문이 진정으로 중요하고 어떤 질문은 신경 쓸 필요가 없을 만큼 사소하다고 할 수는 없군요. 모두가 하나같이 중요해 보입니다. 그중에는 평범하게 스쳐 들을 수도 있는데 저의 개인적 관점에서 유독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터뷰어가 말로 꺼내지 않은, 목소리에만 실려있는, 글의 행간에 배어있는 숨은 의도까지 두루 헤아려 대답하려고 그렇게까지 노력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순전히 단순한 조심성 때문에 대답이 초점을 잃고 빗나갔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답변을 하려고 합니다. 제가 경계심을 갖고 자기방어적인 태도를 취하진 않을 것입니다.
    먼저 고위 법관으로서 정년 퇴임한 소감을 물으셨습니다. 좀 더 잘할 것을…… 이라는 아쉬운 마음은 퇴임한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간절합니다.
    제가 부덕한 소치로 재판 과정에서 저의 언행 때문에 상처받은 분들에게 더없이 죄스럽고 미안합니다. 지금이라도 본의가 아니었음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판사도 보통 사람입니다. 재판이 지지부진하면서 쓸데없는 말들이 난무하면 왜 짜증이 안 나겠습니까. 애써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경우 자의식이 강한 작가처럼 인간 혐오주의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싫어지기 시작합니다.
    제가 법관 생활을 뒤돌아보면 수많은 당사자와 피고인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그리고 또한 눈물겹고 고달픈 사람들의 표정과 호소도 떠오릅니다.
    법관이란 게 그걸 결코 쉽게 내다 버릴 일이 아닙니다. 나한테 맞다 아니다, 유리하다 불리하다가 아니라 성직을 수행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정년까지 일하는 것이 옳습니다. 만약 중간에 법원을 나온다면 십중팔구 변호사를 해야 하는데, 판사와 변호사의 길은 상충 되는 면이 있습니다. 판사는 불편부당, 공정함이 필요한데 변호사는 오로지 자기가 맡은 당사자를 위해서만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러므로 상대방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변호사는 자기 당사자를 위한 일이라면 쉽게 확증편향 (confirmation bias)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런데 변호사 업무는 일종의 사업이기 때문에 상당한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물론 변호사도 중요하지만, 법관을 하다 변호사를 하면 법관 경력이 변호사를 위한 훈련이었다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서 법대로 진학했냐구요? 저는 충청남도 천안 출신입니다. 집안이 농사를 지었는데 엄청 가난했고 더욱이 저는 장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상고로 겨우 진학했고 졸업하면 은행이나 대기업에 취직해서 하루빨리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제가 맏아들이고 밑으로 다섯 명의 동생들이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부담이 컸습니다. 그런데 학교 다니는 내내 전체 수석을 하니까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어떻게 해서든지 법대로 가서 판사가 되라고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법대로 진학했고 법대를 다닐 때에는 입주 가정교사를 하면서 어렵게 졸업했습니다.
    평생 법관을 한 게 후회되지는 않느냐고요? 혹은 자부심을 느끼는지, 자랑스러운지 물었습니다.
    법관을 한 것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저는 무신론자이지만 신께 감사드리고 싶고…… 아쉬운 점이 많이 있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정년까지 마쳤으니 내게 주어진 직분은 모두 다했다 생각하고 이 정도면 천직을 보람있게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법관과 다른 직업의 차이점이랄까, 법관이라는 직업의 특징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법관은 뭔가 판단할 때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검찰의 검사 동일체의 원칙을 생각해보세요. 엄격한 관료 시스템인 행정부의 조직과는 달리 법관은 스스로 독립적인 판단이 보장되며 다른 사람의 지시나 간섭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누가 간섭하지 않는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 조직적으로 무언가 성과를 이루는 것보다는 묵묵하게 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자체가 좋았습니다. 스스로가 가진 어떠한 색깔이나 이념, 종교적 신념, 특별한 경험, 지식 없이 매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불편, 부당한 점에 대해 공정하고 성의 있게 판단하면 되기 때문에 재판 자체를 사랑했습니다.
    법관의 지위는 더없이 명예로운 자리이긴 하지만, 한없이 고독하고 힘든 자리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법관의 직무가 너무나 두렵고 떨리는 일임을 잘 알기 때문에 늘 신중에 신중을 기하자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물론 판사는 담당하고 있는 막중한 일에 비해서 그릇이 크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릇이 너무 작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판사라는 직업이 우리 삶의 이상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세계는 판사실과 법정이라는 밀폐된 공간에 한정되어 있어서 좁고 답답합니다. 판사들은 관습적이고 전통적입니다. 현실세계와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고 도피합니다. 당연히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고방식이 매우 경직되어있어서 유머감각이 많이 부족합니다. 상상력이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창조적이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내 자식들에게는 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법부가 처한 현실이 그렇습니다. 재판을 어떻게 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한데 이걸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판사가 됩니다. 배석판사를 하면서 재판장이 하는 재판을 어깨너머로 배우는 게 전부입니다. 어깨너머로 배운 습관과 관행으로 재판을 해왔기 때문에 재판에 대한 철학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훌륭하신 선배님들에게 배운 덕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법과 인간 앞에 겸허하라. 둘째, 매사에 균형감각을 가져라. 셋째, 사물의 본질과 핵심을 중시하라.
    재판을 잘 하는 특별한 비법이 있을까요. 비법은 없습니다. 그저 당사자 의견에 귀 기울이기, 여론에 휩쓸리지 않기, 자신만의 편견과 선입견으로부터 해방되기가 아닐까요. 판사는 언론과 여론의 각광을 받는 유혹을 늘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요즈음은 과거와 달리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가장 큰 요소가 여론이고, 그로부터 독립되어야만 진정 법관의 독립을 지키는 길입니다. 또 판사의 권위는 국민들이 사법부를 신뢰하고 존중해주는 것으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재판은 자전거 타는 것과 비슷합니다. 자전거는 좌나 우로 치우쳐선 제대로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편견과 선입견을 경계해야 합니다. 판사도 사람이니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는데…… 판사니까 다 아는 것처럼…… 법정에서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겸허한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생각하고 계속 마음속으로 자문자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내 입장에서만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민의 일방적, 상식적인 평균 수준으로 눈높이를 맞춰 편안한 상태로 사건을 보고 그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받아들일 때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사건에 알맞은 법리와 판례 등 전문적인 지식을 찾아 적용해야 올바른 판단이 가능합니다. 법관이 당사자보다 부족하거나 우수한 점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지닌 지식과 논리, 경험치만 가지고 일방적으로 판단하면 당사자 간에 벌어진 일에 대한 왜곡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본인도 만족할 만큼, 본인 스스로 완벽주의를 추구할 정도로 매사에 철저했냐구요? 법률적 쟁점과 하등 관련이 없는 당사자가 제출한 수백 쪽짜리 탄원서를 그래도 모두 읽고 사소한 것까지도 꼼꼼하게 검토했냐구요? 한 사건 한 사건에 혼을 불어넣고 법리 뿐만 아니라 구체적 타당성까지 모두 고려했냐구요?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들이 하는 일에 완벽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저는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대충 읽고 한쪽으로 치워버리는 경우도 왜 없었겠습니까? 너무 지겨우니까 설렁설렁 읽고 말지요. 판사란 직업은 정말 지겹습니다. 매일 그 두꺼운 무미건조한 소송기록을 읽어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판사들이 겸손하지 않다는, 오만하게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유구무언입니다. 높은 법대에서 내려다보면서 재판을 하니까 자연적으로 거만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다시 말씀드리자면 판사는 그냥 보통 사람입니다. 다들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잘 했을 겁니다. 관존민비 관념이 뿌리 깊은 우리 사회에서 적성이 뭐고 가릴 것 없이 판사가 된 것이지요. 그런데 판사는 그냥 샐러리맨입니다. 아침이면 일하러 직장에 출근하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럼에도 그들 스스로는 그걸 믿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은 자의식에 빠져서 자신을 그 이상의 존재로 과대평가합니다.
    왜 전관예우를 받을 텐데 바로 개업하지 않았느냐구요?
    그게 고질적인 법조비리 아니겠습니까. 저는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고 일단 쉬고 싶습니다. 정년을 맞아 법원을 떠나니까 아무것도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쓸데없는 욕심을 버려야만 하지요. 저는 인생을 냉소적으로 관조하는 허무주의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설령 욕망을 가졌고 그것이 실현되었다고 한들 누가 그렇게 만족하겠습니까. 욕망이란 게 헛되고 헛된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 세상에 행복이란 게 있기는 한 건가요. 그게 그렇게 찰나적인 것이라면 누가 행복을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현재로선 아무런 계획이 없습니다. 이러다간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려도 아쉬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지요.
    하지만 사회적으로 또는 법조계 일각에서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 개업 포기 요구에는 공감할 수 없습니다. 지나친 요구가 아니겠습니까. 전직 대법관으로서 질책받는 그런 변호사를 안 하면 되는 거죠. 변호사는 공익적인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윤리에 맡겨야 할 일을 각서 쓰라고 강요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변호사를 잘하라고 격려해야겠죠.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물었습니다만 ‘재판 잘하십시오’라는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다른 말이 더 없느냐구요? 재판 잘하라는 것 말고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본인이 만족하는 재판을 해야합니다.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고민을 얼마나 했는지 본인이 누구보다 더 잘 압니다. 상급심 올라가서 배척되거나 비난받더라도 본인이 만족할 수 있는 재판을 해야 합니다.
    외부에서는 판사의 덕목이 용기라고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실력입니다. 열정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합의 과정에서도 실력으로 다른 분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법 이론과 철저한 논리로 설득은 못 해놓고 반대만 하거나 독특한 의견을 내서는 안 됩니다. 실력이 뒷받침되어야만 용기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력보다는 소신 위주로 판결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그저 자기 소신을 내세우기만 하는 것은 재판이 아니라 독선입니다. 오히려 판사는 쓸데없는 소신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완고한 개인적 소신은 선입견이나 편견과 엮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판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독선과 결합되면 해악이 될 수 있으니까요. 자기 소신을 관철하더라도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진지함을 가지고 뒷받침되는 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기존의 이론을 뒤집으려면 그 정도의 공부는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실력을 키우시길 당부하는 것입니다.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를 뒤집는 판결이 하급심에서 때때로 나옵니다. 이른바 ‘튀는 판결’이라고도 하는데, 그런 판결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논문 수준의 판결문을 써야 합니다. 그 판결로써 대법관들을 설득해야죠. 그래서 전원합의체로 가서 기존의 결론을 뒤집을 만큼의 설득력 있는 내용을 판결문 안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 정도가 아닌 상태에서 오로지 ‘이게 나의 소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튀는 판결을 하면, 그 피해가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가죠.
    그런데 벙커란 말 아세요. 배석들을 힘들게 만드는 일 중독증 있는 부장판사를 가리키는 판사들의 은어이지요. 전 그 시절 벙커였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후회가 됩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거든요. 어떤 부장판사는 ‘사막의 오아시스’니 ‘천사표’니 하고 불리는데 말입니다. 내가 철이 덜 들었어요. 내가 뭔가를 이루려고 하면 쫓기게 되고 그러다보면 배석들을 다그치게 됩니다. 뭔가를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후배들을 돕는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제 판결을 진보적 성향으로 평가하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의 경우 진보든 보수든 어떻게 분류해도 상관없지만 그 기준이 과연 옳은지 의문이 듭니다. 뭐가 진보이고 보수란 말입니까? 우리의 과거 불행한 역사를 돌이켜 보면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단순한 질문에 대해서 거기에 맞는 단순한 답을 내놓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이 지독하게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라는 낱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복잡할 뿐만 아니라 상대적이고 편의적이기도 하거든요. 촛불과 태극기를 비교해보세요. 종북좌빨이니 강남좌파와 극우꼴통이니 하는 극단적인 언사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 세상에는 항상 좌우극단을 배제하는 중간지대 또는 회색지대가 있습니다. 시대의 양심과 지성은 거기에 속해 있습니다.
    형사재판의 문제점은 상당히 많이 있지요. 무엇보다도 검사의 공소사실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 사이에서 보이는 여러 불일치, 모순, 의문에는 애써 눈감으면서, 오히려 피고인의 주장과 증거는 불신하면서 현미경의 잣대를 들이대서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형사법원이 취할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성범죄 사건에서도 무죄라는 판단이 서면 언론의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과감히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사건에서는 모두가 약자 편에 서야한다는 선입견 때문인지 피고인의 권리와 피해자의 권리 중 피해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존중해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사건에서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서 무죄 판결을 하면 많은 비난을 받기 때문에 부담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피해자의 권리도 보호해야 하지만 너무 과중해서는 안 되겠지요.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형사법정의 법대에서 죄수를 내려다보면은 어떤 기분이 드는지, 판사는 그때 자신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심리적 과정을 거쳐서 양형을 결정하는지, 사형과 무기로 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왜 누구는 집행유예를 붙이고 누구는 붙이지 않는가요? 양형이 그렇게 들쭉날쭉한 이유가 있을까요? 죄란 무엇이고 형벌은 무엇이며 그것들 간 균형의 문제 등에 대해서 아주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였습니다.
    제가 이들 문제에 대해서 자신 있게 대답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 사회질서, 범죄와 형벌 등에 관해서 본질적이면서 철학적인 문제를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신과 관련되기 때문에 종교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는 형법학자나 사회학자, 법철학자, 종교학자, 법제사가, 사제, 근본주의자들 간에 여러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만이 인간을 재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독실한 무신론자입니다. 인간의 생존을 유지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죄인을 처벌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누구도 이에 대해서 이의제기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죄형법정주의는 여러 가지 함의가 있긴 합니다만 입법자들이 무엇을 근거로 해서 죄와 형벌을 규정했는지는 저도 의문입니다. 거기에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를 기초로 한 우주적 차원의 혹은 철학적인 근거가 있을까요? 정말 그럴까요? 형의 목적이 교화인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를 위한 징벌인지 여부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그러므로 입법자 개인 차원의 신념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랜 역사적 전통과 형법학자들, 법률가들의 공통된 일반적 견해가 밑받침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학자적 관심을 가지고 깊이 연구하지는 않았으므로 단지 소박한 개인적 견해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무심한 얼굴로 사무적으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피고인을 바라볼 때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살인죄 같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죄수를 대할 때는 어떤 공포심마저 느낍니다. 그러나 그게 인간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 적개심 때문인지는 지금도 돌이켜보면 그 정체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재판을 오래 하다 보면 젊은 시절 처음 판사를 시작할 때 느꼈던 증오심이나 적개심은 점점 옅어지게 됩니다. 시간이 자의식의 과잉을 누그러뜨리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동정, 공감은 늘어나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는 양형을 결정할 때 주로 관습에 의존합니다. 그것에 의지하면 남들이 하는 대로 하기 때문에 마음의 부담을 덜 느끼게 되지요. 어쨌거나 형을 선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어떤 피고인의 형을 제대로 결정했는지 속죄의식을 느낍니다. 무신경하거나 모방하면서 반사적이거나 자의적인 경우가 없지 않거든요. 그런데 판사들 간에 양형의 차이가 있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그 사건과 피고인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어떤 신념, 세계관, 살아온 환경, 병적인 콤플렉스, 날씨의 변화, 유독 신경이 예민한 그 날의 기분, 무신경함, 매너리즘, 피할 수 없는 감상주의, 망설임, 독선, 압박, 변호사의 간절한 호소, 내적 갈등, 판사의 사명감, 무의식의 세계, 범죄 그리고 죄인에 대한 그 판사 특유의 적개심이나 분노 또는 연민과 동정심 등이 불가피하게 알게 모르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판사는 인간이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법률은 명징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무미건조하고 재미가 없고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법은 스스로 판사에게 재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형벌에 대해 진폭을 넓게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늘 논란이 되고 있는 법조비리는 저도 당사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변명할 말이 궁색합니다. 법조비리하면 우선 전관예우와 법조브로커가 먼저 떠오르긴 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진 못했습니다만 심각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법신뢰가 땅에 떨어진 게 더 큰 문제이지요. 그래서 ‘사법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표현이 신문에 연일 등장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부디 언론에 계신 분들은 사법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강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잘한 건 잘했다고 격려도 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두 개의 잘못을 가지고 전체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식의 처방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필요하다면 조금씩 개선해나가면 되는 것이지요. 해방 이후 70여 년이 지나면서 사법부도 시스템과 전통, 관습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거든요.
    30년을 훨씬 넘게 판사를 했습니다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냐구요? 실력과 양심의 범위 안에서 할 만큼 했냐구요? 실력이 모자라거나 부족할 순 있었겠지만 양심에 어긋난 것은 없었냐구요? 글쎄요, 한마디로 대답하기는 어렵군요. 양심을 지키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분명히 몇 번쯤 혹은 여러 번 있었지 않겠습니까.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를 판결에서 충분히 담아내려고 성찰하고 노력했는지 물었습니다만 법률의 규정을 형식적으로만 해석하는 법관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실제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부합하고, 권리를 충분히 옹호할 수 있는 그런 판결을 내리는 법관이 되고 싶었어요. 따라서 사법부의 역할도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국가권력이나 사회적 강자로부터 약자의 권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요. 이러한 실질적인 법치주의가 정착되려면 사법부와 법조인들이 유능한 법 기술자에 머물지 않고 국민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사고와 실천이 필요합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우리 법조인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법관의 적성이란 어떤 것일까요?
    판사에게는 틀림없이 특별한 지성이 필요합니다. 모든 상식적인 사람들이 합리적인 관점에서 맞다고 여기는 것은 믿어야 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상식적인 사람이어야 하고, 자기 확신을 조금 자제하여야 하고, 염세주의에 빠져서 자기 자신이나 세상을 혐오해서는 안되며, 인간에 대한 신뢰와 존중심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삶 자체의 목표가 진지해야 합니다.
    판사는 사회적 분쟁을 공정한 제3자의 위치에서 해결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편견 없이 평균적 시각으로 사물을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거기에 인간에 대한 애정과 공정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면 훌륭한 판사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법관은 판결을 함에 있어서 끝까지 진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자 합니다. 판사라는 직업은 결코 명석한 두뇌를 요구하는 직업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얘기를 진지하게 경청할 줄 알고, 평균적인 시각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 편견 없는 사람이 판사로서 적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균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으면서도 상대방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을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성실한 사람이 좋은 판사가 될 자질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판사들의 최대 약점은 사회경험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 본성과 사회생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사회는 너무 빨리 변화하고 진화하는데 법원은 정체되어 있습니다. 판사들은 시대의 변화에 뒤처져 있습니다.
    그런데 법관도 인간이고 더욱이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 온갖 사건을 자신있게 처리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판사가 만능일까요. 법원에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이 몰립니다. 판사들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고, 어찌 보면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법정에서 당사자들이 ‘판사님은 너무 실상을 몰라서 그런다’는 하소연을 많이 합니다. 그렇죠. 모를 수밖에 없죠.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모름지기 판사라면 적어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여 자세히 듣고 보통 사람의 평균적인 시각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교양과 겸허함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법정에서 당사자들에게 ‘당신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설명해서 나를 설득시켜주십시오. 나는 그 세계를 잘은 모르지만 당신이 조리 있게 잘 설명하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교양과 상식은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판사들이 재판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에 대해서 질문하셨습니다.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렇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어떤 사건이란 게 판사에게는 엄청나게 많이 밀려있는 사건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당사자인 그 사람에게는 일생이 걸린 일이죠. 판사는 그렇게 한 사람의 일생이 걸린 사건을 재판하고 있다는 엄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판사 직무의 엄중한 사명감을 아는 사람은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법률 교과서에는 재판의 목적과 관련해서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그 둘은 일치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법관은 많은 고민을 해야합니다.
    그렇지만 저의 경우라면 구체적 타당성을 먼저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정의이자 잘된 재판은 오직 이길 사람이 이기고, 져야 할 사람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체적인 타당성에 기반을 둔 재판이어야 합니다. 교과서에는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법적 안정성을 선택하라고 하는데, 그것은 그야말로 저자가 세상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써놓은 교과서에 있는 말의 성찬일 뿐이지요. 법학자들은 상아탑이라는 좁은 상자 안에 갇혀서 평생을 살기 때문에 현실감각이 너무 떨어집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모름지기 판사는 이겨야 할 사람이 이기고 져야 할 사람이 지는 판결, 그런 구체적 타당성 있는 판결을 하여야 합니다. 그게 재판이고 정의의 실현입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판사들이 구체적 타당성 있는 판결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지식과 사회적 경험과 성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모든 경우에 증거와 이론이 완벽하게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 두 가지가 다 갖춰지면 물론 좋겠지요. 하지만 때로는 법적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으면 구체적 타당성을 기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판사가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하지 않고 법적 안정성을 먼저 생각해서 안이하게 쉽게 넘겨버릴 수가 있는데 그러면 그건 법률 기능공이지 판사는 아닙니다. 그런건 법과 대학생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릇 판사라면 그럴 때 깊이 고민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판사는 구체적 타당성을 구현하기 위하여 미흡한 증거와 법적 이론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고 고심해야 합니다. 당사자 못지않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사건을 들여다보고 그 후에는 법이 판사에게 쥐여준 무기를 활용해야 합니다. 신의성실 원칙과 권리남용 금지는 민법의 대원칙입니다. 아니 모든 법률의 대원칙입니다. 언제든지 이들 원칙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판사는 당사자 개개인의 구체적인 사정이나 간절한 하소연을 쉽게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증인 신문을 할 때도 주신문이건 반대신문이건 간에 어느 순간 증인이 어떤 트라우마 때문에 기억이 뒤죽박죽 되면서 모순된 진술을 할 때는 그걸 그냥 배척하거나 무시할 것이 아니라 증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그 심리적 과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법률가의 관점에서는 증거가 좀 부족하더라도…… 또한 법리적인 측면에서는 혹시 미흡한 점이 있을지라도…… 그래도 이겨야 할 사람의 손을 들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법관은 스스로 생각하는 구체적 타당성 있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증거의 발견과 적절한 이론의 선택을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사실인정 부분에서 틀려버리면 당사자들은 절대 승복하지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무엇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은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기록을 열심히 뒤지면 객관적 진실로 갈 가능성이 높죠.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성실하게 봐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판사들은 재판하고 판결문 쓰는데 지쳐서 그렇게 성의를 투자할 만큼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없다면서 골프는 열심히들 칩니다. 제가 아는 판검사들 중에서 그걸 못하는 사람은 저를 빼놓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법률 말고도 도덕과 윤리규범이 있는데 이들이 정면으로 충돌하면 어떻게 될까요. 참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판사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많은 고뇌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합니다만 법률이 우선인지 윤리규범이 우선인지 정답은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요.
    판사들에게 재판과 여론의 관계를 물어보면 애매하게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댓글이 여론은 아닙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진정한 여론은 사회적 감수성이고 공감입니다. 판사는 여론에 종속되는 사람도 아니지만 여론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라는 정도의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론은 재판에 영향을 끼치려고 노력하면 안 되고 판사들은 여론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소위 말하는 법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관심이 많은 하드 케이스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물으셨습니다. 자기 재판부에 사건이 수백 건 있어도 시간을 들일 사건은 따로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게 하드 케이스인데 어렵고 복잡한 사건이지요. 당연히 여론이 주목하는 사건입니다. 신경이 쓰이는게 사실이지요. 그러나 그런다고 재판이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건일수록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속담이 해당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판결문을 읽어보면 자신도 수긍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즘 부장판사들은 배석판사 눈치를 보느라 직접 말은 못하지만 후배 판사에게 불만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했다는 말씀 외에는 더할 말이 없습니다.
    과거 군사정권의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그 거친 역사의 격랑 속에서 사법부는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그 시절 판사를 했던 사람으로서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사법부가 과거의 잘못을 벗어던지고 새롭게 거듭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 정치판사라고 하면 군사정권과 유착하면서 승진과 보직 혜택을 누렸던 판사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특히 시국사건이나 공안사건 등 형사재판을 전담하면서 정치권력의 요구에 맞춰서 그들의 입맛대로 재판했던 서울형사지법이 주된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판사들은 판결로써 말해야 했을 때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판결로써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판결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진실에 등을 돌린 것입니다. 그 당시 사법부는 고립되어 서로를 불신하기도 하였고, 서로를 경원하기도 하였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심하게 통제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침내 사법부의 권위는 법정에서조차 유지되지 못하는 참담한 사태를 맞이하기에 이르렀지요.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차라리 냉소에 가까운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서울형사지법에서 단독판사로 일할 때에 그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정말 괴로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판사로서 자부심과 절망감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자아의 정체성이 심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이게 추악한 변명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판사로서 양심에 걸려 괴로웠습니다. 사표를 내려고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법원을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구속영장 발부에 인색해서 검찰의 원망을 많이 들었고 집행유예 판결을 많이 한 것에 대해서는 저도 할 말이 있지요.
    유죄 판결을 받아서 교도소에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수사단계에서 가장이 구속되면 서민들 가정은 마비돼버립니다. 구속영장을 마구 발부해 한 집안이 망해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구속은 형벌이 아닙니다. 수사나 재판을 위해 최소한에 그쳐야 하는 예외적 절차일 뿐입니다. 구속재판이 원칙이 되다보니 구속 후 석방시키려는 과정에서 법조비리나 브로커 같은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사건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피의자나 피고인 자신인데, 구치소에 들어가 있으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됩니다. 원칙적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최대한 보장해줘야 하지요.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을 통해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고 유죄가 인정되면 그때 판결로 엄정한 형을 선고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의 재판 경험상 변호사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승소에 목을 매달고 있거든요. 그래야만 승소사례금을 챙길 것 아닙니까. 변호사들이 만든 서류라는 것이 사람 속여먹으려고 말로 장난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실제 해야 할 이야기는 다 감추고 상대방의 눈치를 슬금 슬금 살피면서 요령껏 그냥 무색무취한 이야기만 써놓기도 합니다. 그런 걸 가지고 재판을 하면 잘못될 수밖에 없겠지요.
    과거 법원은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정권유지의 도구로 전락하는 바람에 1970년대는 법정에서 신발을 벗어던지고 노래를 부르는 사태가 계속됐습니다. 그때 법정에서 노래 부르고 한 386세대 사람들이 지금 국정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우리 법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 세대가 경제발전은 몰라도 민주화를 달성하는 데는 기여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날 완전히 기득권 세력이 되어 정치 사회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온갖 기득권을 틀어쥔 채 386꼰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평등과 불공정의 최고 정점에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암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팔팔하던 386세대는 지금은 어느덧 노쇠한 586세대가 되었습니다. 그들도 세월은 어쩔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정에서부터 올바른 재판을 통해서 차근차근 국민을 설득해나가야 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정년퇴임한 법관의 소회와 재판과정에 대한 것이지요. 이런 부류의 인터뷰에서 사랑…… 여자…… 로맨스 이야기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건 예술가, 작가, 배우들에게 딱 알맞는 거겠지요.
    다만 저도 어느 시절에는 뜨거운 심장과 감각적인 손을 가진 어엿한 남자였죠. 저의 경우 여자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여자를 이해하는 것은 법률을 이해하는 것보다 몇 배나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여자를 볼 때마다 두려움을 느끼거든요. 그녀가 말했었죠. 당신에게 완전히 반했고 정말로 사랑했는데…… 하지만 결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예요. 그건 속박일 뿐이죠. 자유가 좋아요. 지금 교직은 저에게 맞지 않지만 당분간은 어쩔 수 없어요. 잠시일 뿐입니다. 그림이건 사진이건 그런 쪽에서 프리랜서가 될 거에요.
    첫사랑의 상처는 깊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프라이버시기는 하지만 공개 못 할 바도 아니지요. 사람들은 참 이상합니다. 그런 걸 굉장히 궁금해하거든요. 저는 이미 공인이기 때문에 제 신상은 다 털렸습니다. 서초동에 20년 넘게 산 35평 아파트가 있습니다. 자식들은 모두 결혼했으니까 두 사람이 사는 데는 부족함이 없지요. 아내 말에 의하면 대략 10억 원은 나갈 겁니다. 그리고 퇴직금이 2억 원 정도 있고 상당한 연금도 나오지요. 그러니 변호사를 안 해도 먹고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겁니다.

    2. 온몸이 근질근질할 때까지 빈둥거렸다. 평생 처음 모처럼 찾아온 빈둥빈둥의 시간에는 자연스럽게 몸이 신경증에 걸린 사람처럼 갑자기 근질근질해진다. 대충 살면 삶이 그만큼 망가질 줄 알았다. 열심히 안 하면 어디까지 망가질까. 그래서 자신을 지켜보고 싶기도 했다. 30년이 넘게 소송기록만 들여다보았으니 내 인생은 참으로 균형감을 잃었다. 샐러리맨은 시간의 노예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한다. 주말에도 가끔 출근하거나 집에서 그 지겨운 기록을 들여다본다. 시계바늘에 맞춰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살다 보니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죄의식을 느낀다. 왜 내가 남의 송사에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관심을 쏟았단 말인가. 그게 내 직업이었으니 어쩔 도리가 없긴 했다.
    이렇게 빈둥거리면 한쪽으로 치우쳤던 내 삶의 균형이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대충 살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점은 스스로도 흥미로웠다. 물론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결 여유로워졌다. 여행을 하고 싶으면 맨손으로 그냥 훌쩍 떠나면 된다. 그리고 한가로워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까 이제야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철학적인 물음과 진지하게 대면하게 된다.
    좁은 집에 천장까지 쌓여있는 법서들을 모조리 태워 없애면 속이 얼마나 후련할까. 아마 아내는 공간이 넓어져서 숨통이 트일테니 대환영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손때 묻은 책을 버리는 일이 망설여진다. 분서갱유가 생각나고 나치가 불온한 책들을 불태운 불쾌한 일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삽상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떠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할 수 없다. 여전히 북서풍이 불고 꽃샘추위이지만 생명의 온기는 남쪽에서부터 불어온다. 봄 마중의 자세는 등 뒤에 찬바람을 진 채 활짝 가슴을 열고 슬슬 북상하는 꽃바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른 봄의 지리산 산행은 북서쪽에서 동남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걸어가다 지치면 잠시 쉬면서 달콤 쌉싸름한 헛개나무 열매와 산수유를 블렌딩한 지리산 산수유차를 마시면 그렇게 상쾌하면서 피로가 싹 가신다.
    즐거운 봄이 찾아와 / 온갖 꽃들이 피어날 때에 /
    그때 내 가슴 속에는 / 사랑의 싹이 움트기 시작하였네
    잠자듯 게으른 봄이 깨어나는 시기. 남쪽 산과 들에는 샛노란 봄 색깔이 더욱 선명해졌다. 지리산 자락 그 어디에도 매화와 산수유 꽃은 피어난다. 산등성이마다 개울가마다 자리 잡은 산수유가 노란 꽃을 활짝 틔웠다. 산수유는 3월 중순 꽃망울을 여는데 3월 하순이 되면 꽃망울 안에 숨어 있던 작은 꽃봉오리가 다시 한번 개화한다. 봄이 깊어질수록 색이 짙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 꽃그늘 아래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노란색 꽃이 이른 봄날 활짝 피는 복수초, 아침 추위가 남아 있는 이른 봄에 꽃이 피는 변산바람꽃, 꿩의바람꽃, 국화바람꽃, 솜나물, 머위, 선갈퀴, 미치광이풀, 광대수염, 약난초, 처녀치마, 봄까치꽃, 광대나물꽃 등이 더 예쁘게 지천으로 피어있다.
    이른 봄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면 무수히 많은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꾸물꾸물하던 하늘에서 부슬비가 내렸다. 질척질척한 땅을 밟고 지나다녀야 했지만 약하게 내리는 봄비가 그렇게 야속하진 않았다. 날이 개면 물방울을 머금은 야생화가 활짝 꽃잎을 열어젖힐 것이기 때문이다. 꽃은 새벽녘 동이 트면 피어나면서 차츰 날이 밝아지면 더욱 매력을 발산한다.
    봄은 꽃 피는 산골에서 제대로 체감할 수 있다. 봄이 되면 겨울 동안 시들시들하던 풀이 싹을 틔우고 산과 들, 마을과 강둑 할 것 없이 수많은 꽃들이 핀다. 야생화는 무심코 지나쳐버릴 만큼 작은 꽃이다. 손톱만한 꽃을 마주하려면 고개를 아래로 푹 수그려야 했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무릎을 꿇어야 한다. 봄 야생화는 색도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5월쯤 신록이 우거지기 전 푸르름이 막 짙어가는 산천에 한 송이 두 송이 꽃망울이 툭툭 터진다. 추운 겨울 동안 그 순간만을 기다려온 것처럼. 그때쯤이면 온몸으로 따스한 햇볕을 받을 수 있다. 야생화를 보려면 완연한 봄보다 한 발짝 일찍 떠나야 한다. 그래야만 짧은 생애지만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질긴 생명을 마주하면서 경외감을 느낄 수 있다.
    봄꽃은 나무에 잎이 나기 전 번식을 마친다. 벌이나 벌레를 꾀기 위해 화려한 색을 띤다. 수정을 위해서는 수분 매개 동물이 찾아오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풍성한 먹이를 제공하고 그들이 짝짓기할 수 있도록 만남의 장소가 되어준다. 그런데 꿀벌은 넥타와 꽃가루를 얻기 위해 꽃을 찾아 먼 길을 날아온다. 꿀벌은 꽃가루를 먹고 마술을 부려 넥타를 달콤한 황금색 꿀로 바꿔 놓는다.

    진달래는 원래 철쭉과에 속하는 음지식물이라 산비탈의 그늘진 곳이나 다른 나무 아래에 피는 경우가 많다.
    창밖에서 우는 새야 / 어느 산에서 자고 왔는가. / 응당 산중 일을 알 터이니 / 진달래가 피었던가 안 피었던가.
    산등성이를 올라가면서 연분홍빛 진달래 꽃잎으로 만들어진 꽃밭이 하나둘씩 나올 때마다 어린 시절 진달래 따러 다닐 때를 떠올렸다. 그때 어린 시절 친구들은 지금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나는 도통 그들의 소식을 모른다. 오래전에 고향을 떠나온 후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꽃의 맛과 향이 그대로 담긴 술은 없을까?
    우리 선조들은 매화, 국화, 진달래, 야생화 등 꽃을 이용해 다양한 술을 빚었다. 그중 진달래꽃으로 빚은 술이 바로 두견주다. 두견주라고 하는 이유는 진달래꽃을 두견화라고도 불렀기 때문이다. 진달래는 원래 식용이 가능하다. 서울의 문배주, 경주의 교동법주와 함께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술이다.
    면천 두견주는 4월 초순에 진달래꽃을 채취해 꽃술을 떼고 말려 두었다가 술을 빚을 때 함께 섞어서 빚는다. 진달래꽃 빛깔이 그대로 술에 녹아들어 연한 분홍색을 띤다. 신맛과 누룩 냄새가 거의 없고 진달래꽃의 그윽한 향을 느낄 수 있다. 면천 두견주는 유독 은은한 단맛이 있고 부드러워 마시기에 편하다.
    나는 중국식당에 가면 필요 이상의 안주는 싫어했다. 그건 쓸데없는 과잉이었다. 술 역시 적게 마시면서 얼른 취할 수 있는 전통 고량주를 좋아했다. 이 경우 술과 음식의 궁합이 가장 잘 맞는 오향장육을 시켰다. 버무린 야채와 함께 나오는 독특한 맛을 낸 간장에 졸인 부드러운 돼지고기는 입안에서 씹는 맛이 그만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쌀로 정성 들여 빚어내서 맑고 깊은 맛이 나는 25도 증류 소주인 ‘화요’를 즐겨 마셨다.
    홍어를 자르는 날카로운 칼은 빠르고 거침없었다. 홍어는 크게 코, 날개, 몸통, 꼬리, 내장으로 해체된다. 가장 먼저 꼬리를 잘라낸다. 홍어의 간은 달고 고소하기가 씹을 틈도 없이 혀에서 녹아내린다. 봄이면 보리싹과 함께 넣고 끓이는 홍어애탕이 특히 별미이다. 홍어의 몸은 주로 삭혀서 회로 먹는다. 삭힌 홍어는 강렬한 암모니아 향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냄새나는 음식’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다. 옛날 목포에서는 항아리에 담긴 두엄더미 위에서 지푸라기를 깔고 삭혔다.
    요즘은 냉장고에서 장기간 저온 숙성한다. 온도 변화 없이 천천히 오래 삭혀야 쫀쫀한 식감이 나온다. 홍어는 연중 내내 나오지만 이른 봄 이맘때 나오는 걸 최고로 친다. 5월이 다가오면 산란기 암컷은 새끼 낳느라 비쩍 마르고 맛이 떨어진다. 홍어는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다. 홍어는 8kg 이상을 최고로 친다. 암컷 홍어만이 이만한 크기로 나온다. 수컷은 5kg 이상이 드물다. 12kg이면 그야말로 순위를 매길 수 없는 특상품이다.
    옛날 전라도에서는 잔칫상에서 홍어가 빠지지 않았다. 어떤 홍어가 나왔느냐를 두고 손님들이 이 집은 손님 대접을 잘 하네, 못 하네 하고 수군거렸다고 한다.
    그 집은 옛날 같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날도 나는 옛일을 추억하면서 소주를 한잔 들이키고 나서 먼저 애부터 맛을 봤다. 약간 쓰면서도 고소하고 부드럽고 촉촉했다. 볼살은 빛깔이 흰 데다 몸통 쪽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씹히는 식감이 독특하기로는 코가 최고였다. 전혀 삭히지 않았지만 특유의 암모니아 향이 조금씩 올라왔다. 생 홍어회에서는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생선 비린내 또는 잡내 따위가 전혀 없었다. 씹는 맛이 부드러우면서도 찰지다.
    그 집은 근 50여 년간 칼국수와 통닭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가게를 들어가면 정면으로 주방이 보인다. 자리에 앉으면 바로 내주는 우엉차를 한 잔 마시고, ‘통닭백숙’ 한 마리에 ‘계란 넣은 칼국수’와 소주 한 병을 주문한다. 그렇게 조금 기다리다 보면 양은냄비에 닭곰탕 국물과 겉절이 그리고 통닭백숙에 찍어 먹을 빨간색 초고추장 소스와 잘게 썰은 대파가 나온다. 초고추장 소스에 대파를 미리 담가 놓고, 닭곰탕 국물을 몇 숟가락 떠먹다 보면 먹음직스럽게 잘 삶은 닭 한 마리가 놓인 쟁반이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다. 먹기 좋게 닭을 네 등분 한 뒤, 가장 좋아하는 부위의 쫄깃한 닭살을 먼저 맛본다. 처음에는 소금에 찍어 닭고기 자체의 맛을 즐기다가, 그 다음에는 대파가 듬뿍 담긴 초고추장 소스에 찍어 먹고, 겉절이까지 감싸서 먹는다. 이때 소주 한 잔을 마셔 입안을 헹군다. 어느 정도 먹고 닭고기가 약간 남았을 때, 살을 잘게 발라서 처음에 함께 나온 닭 국물에 넣고 끓인다. 여기에 공기밥을 말아 넣으면 닭곰탕이 만들어진다.
    산과 바다, 들판 그리고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철 맞은 해산물이 넘쳐난다. 봄엔 오징어, 주꾸미, 홍어, 민어, 여름엔 갈치, 가을엔 전어, 꽃게, 새우, 겨울엔 꼬막처럼 저마다 제맛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가 따로 있다.
    갑오징어는 쫄깃쫄깃한 식감에 담백한 단맛이 입맛을 돋운다. 그래서 갑오징어가 오징어의 황제라고 불린다. 봄이 제철로 알려진 참돔과 주꾸미는 사실 봄이면 산란 철이라 맛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 반면 갑오징어는 그제서야 한참 물이 오른다. 4월 말까지가 가장 맛있다. 봄철 갑오징어는 살짝 데쳐 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달짝지근한 맛과 쫄깃한 식감이 기가 막힌다. 지방 함량이 낮으면서 단백질 함량은 높다. 다만 손질하는 법이 까다롭다. 등에 넓고 납작한 뼈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제거한 뒤 다리와 몸통을 분리한다. 갑오징어 속 내장과 눈도 모두 없앤다. 마지막으로 몸통 속 얇고 하얀 막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만 갑오징어가 갖고 있는 특유의 달짝지근한 맛과 탱글탱글한 식감을 제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멸치도 생선인지는 의문이 든다. 생선은 식용으로 잡은 신선한 물고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멸치는 어떨까. 생멸치에 채소 넣고 초고추장으로 무쳐 먹든지, 맛간장에 고추냉이나 참기름을 친 다음 생멸치를 비벼서 먹으면 당연히 멸치도 생선의 요건을 갖추게 된다. 대변항의 봄은 멸치처럼 반짝거리며 다가온다.
    부산 외곽 기장 대변항은 봄이 되면 멸치가 제철의 절정을 맞는다. 봄멸치다. 특히 생멸치는 죽방렴에서 잡아와 모양이 뭉개지지 않았고 비린내가 전혀 없다. 멸치는 봄과 가을로 나눠 잡는다. 봄에는 대략 3월부터 6월까지, 가을에는 10월부터 다음 해 설까지 잡는다. 봄멸치는 남쪽 아래에서 위로 이동하는 걸 잡는다. 회로 먹어도 좋고, 젓갈 담그기도 알맞다. 가을 멸치는 북쪽에서 대마도 쪽으로 내려오는 녀석들인데 거센 동해 물살을 헤치며 다녀서 그런지 크고 굵고 살도 억세다. 찌개나 구이 요리 하기 적당하다.
    갓 잡은 봄멸치를 바로 무쳐 나온 멸치회는 어쩐지 달랐다. 다른 철에 먹었을 때보다 신선하고 고소하고 향기롭고 부드러웠다. 멸치 하면 흔히 떠올리는 비린내가 전혀 없다.
    9월 초순에 접어들면서 더위가 한풀 꺾이나 싶더니 횟집의 수조에 성질 급하기로 유명한 전어가 헤엄쳐 다니기 시작했다. 그만큼 전어는 가을을 대표하는 제철 생선이다. 올해는 그렇게 무더웠으니 그 어느 해보다 전어가 더욱 반가웠다.
    변산반도를 품고 있는 전북 부안의 가을은 전어의 통통한 뱃살을 타고 온다. 여느 때처럼 혼자 용산역에서 여수행 KTX를 타고 익산역에서 내린 다음 시외버스를 타고 김제와 부안, 새만금 방조제, 변산반도 국립공원을 차창으로 지나치면서 채석강이 있는 격포항까지 내려갔다. 격포항에는 전어 굽는 고소한 냄새가 좁은 거리마다 코를 자극한다.
    횟집이나 일식집에서 생선회를 인기 순위로만 따지자면 도미와 광어가 단연 수위를 차지하지만, 누구나 가을 생선하면 전어를 쉽게 떠올린다. 전어가 가을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오랜 무명 시절을 견뎌냈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서해, 남해 연안에서 많이 잡혔던 전어는 워낙 흔하고 싼 생선이어서 예전엔 그냥 버리거나 덤으로 거저 주었다. 상품 가치가 없으니 도시의 횟집으로 팔려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전어가 가을에 맛있는 것은 찬바람이 불어 월동을 준비하는 계절이 되어야 살이 통통하게 붙으면서 지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지방이 높으면 살의 고소한 맛이 더해지고 풍미도 올라간다. 숙성회보다는 활어회를 즐기는 우리 식습관으로는 전어는 뼈째 썰어 된장, 고추장을 섞어 만든 막장을 듬뿍 찍어 먹는 것을 즐긴다. 회로 먹지 않고 잘게 썰어서 깻잎, 양파 등 야채와 초고추장을 넣고 무침으로 먹어도 감칠맛이 난다. 물론 전어 맛 중 으뜸은 천일염 소금을 솔솔 뿌려서 불에 구워 머리부터 통째로 씹어 먹는 것이다.
    겨울과 봄의 경계인 2월 말쯤이면 탱글탱글한 주꾸미를 먹고 싶은 계절이다. 요즘 식당에서는 숯불에 초벌구이를 한 주꾸미를 내온다. 양념구이 음식은 원래 양념 때문에 잘 타서 숯덩이가 되기 쉽기 때문에 굽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미리 주방에서 초벌구이를 해서 내주니 정말 편하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데 실제로 먹어보면 맛은 기가 막힌다. 깻잎 한 장 또는 상추 한 장 깔고 적당히 익은 주꾸미 하나 올리고 쌈을 싸서 먹으니 입안에 가득히 그 풍미가 넘쳐나는 것이다. 정신없이 한참 먹다 보면 양념의 매운맛이 슬슬 혀를 자극해서 얼얼해진다. 그러면 계란찜을 주문한다. 한껏 부풀어 오른 계란찜을 한 숟가락 떠먹으면 입안이 살짝 부드럽게 달래진다. 매운 주꾸미 한 쌈에 부드러운 계란찜 한 숟가락이 정말 잘 어울린다.
    경남 창원시 진동면 고현리는 아예 미더덕 마을이라고 부른다. 전국 생산량의 대부분이 이 작은 마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바다로부터 바람이 사납게 불어 살갗에 달라붙는다. 바람에 파도의 거품이 흩날린다. 밀물과 썰물의 느린 왕복. 바람 속에 스며있는 쓸쓸함. 남쪽 바다의 냄새.
    선착장에 늘어선 산뜻하게 페인트칠을 한 건물들, 계류장에서 휴식 중인 어선들, 바다 위를 얕게 날아다니는 제비갈매기들, 마중 나온 사람들이 나를 반긴다.
    미더덕은 옛 마산인 이 진동만에서 잘 자란다. 경남 인근에 생산지가 여럿 있지만 유독 이 지역에서 잘 붙는다.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수온과 먹이가 적당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미더덕은 양식이지만 반 자연산이다. 그물에 붙이고 따로 먹이를 주는 일이 없다. 가끔 수온에 맞춰 그물을 올리고 내릴 뿐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수확을 한다. 해거리 비슷한 현상도 있다. 풍어와 흉어가 반복된다.
    미더덕은 물에서 사는 더덕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부른다. 과연 더덕처럼 길쭉하고 겉이 울퉁불퉁하다. 뿌리 같은 기다란 꼬리가 있다. 거친 껍질을 까고 꼬리를 잘라내야 비로소 상품성 있는 미더덕이 된다. 배를 살짝 찔러 물을 빼내고 그대로 씹어먹는다. 오독거리는 맛이 있다. 속살이 풍부해서 깊은 향을 낸다. 은근하고 섬세하다. 미더덕을 가장 맛있게 먹는 법은 역시 회로 먹어야 한다.
    부산 시내 전역에는 돼지국밥이 흔하다. 돼지 뼈를 우려 국물을 내고 밥을 만 것이니 언제 정확히 탄생했는지 시기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돼지국밥은 유난히 값이 싸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재빨리 국밥 한 그릇 후다닥 먹고 일어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부산에 내려오면 가는 단골집. 부산에 널리고 널린 돼지국밥집 중 맛있는 집을 찾아 굳이 먼 길을 가야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맑은 국물이 나온다. 국물에 잡내가 전혀 없고 깔끔하다. 기름 많은 항정살을 부드럽게 삶았으니 많은 이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육의 모양새가 다르다. 돼지고기를 큼지막하게 썰어 내놓는다.

    3. 그가 어느 날, 우연히 어느 일간지의 특집 기사 ‘전관예우, 반칙이고 범죄이다.’를 읽게 되었는데 그 신문 기사 내용 중 그가 유심히 살펴본 부분을 요약해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전관 변호사라고 다 똑같은 대우를 받는 건 아니다. 법원이나 검찰 등에서 공직을 지낼 때 어떤 직급까지 올라갔느냐에 따라 몸값에 차이가 난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수임료는 보통 다른 변호사 수임료의 최대 수십 배에 달한다. 특히 사건 수임 상위 7명은 대부분 현재 대형 로펌에서 최상급 의전을 받고, 연봉을 10억 원 이상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이른바 제왕적 전관으로 불리며 전관예우 근절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래서 제왕적 전관들이 대법관 경력으로 수임계와 상고 이유서에 찍는 도장값만 받아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 변론에는 별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호사 사무실이 많은 서울 서초동 일대에서는 제왕적 전관들의 도장값이 보통 3000만~ 5000만 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수임료가 비싼 이유는 상고 이유서에 이들의 이름이 들어가면 상고심 결과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의뢰인의 기대심리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뢰인들은 특히 상고심 실적이 많은 제왕적 전관들이 현직 대법관들과 가까워서 재판 결과가 좋게 나올 것으로 기대하며 더 많은 수임료를 낸다.
    변호사와 로펌은 수임료 등 수입을 국세청에만 신고한다. 국세청은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 법률시장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전관 변호사는 60, 70대 대법관이나 검찰총장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전관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있는 변호사들이다. 법조계에선 이들이 적어도 월평균 1억 원 이상을 번다고 한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월평균 3억2000만 원을 번 사실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개돼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 아래에는 법원장이나 고등법원 부장판사, 검사장 출신 변호사들이 있다. 이들의 월수입은 5000만∼1억 원 수준이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월평균 1억1000만 원을 번 사실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지방법원 부장판사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월평균 3500만 원 내외를 받는다. 40대이거나 50대 초반인 이들은 직접 발로 뛰고 변론에 참여하므로 대형 로펌들이 선호한다. 한 전관 변호사는 “심판을 해본 선수가 당연히 잘 뛸 수 있다. 고급 서비스를 받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어느 서비스업계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일반 변호사들은 “실상 능력에 큰 차이가 없는데도 전관이라는 이유만으로 뻥튀기된 수임료나 연봉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직 대법관은 월 817만2800원을 받는다. 일반 법관은 근무 기간에 따라 월 311만100원 (1호봉)부터 월 816만800원(17호봉)까지 받는다. 법복을 벗고 변호사 배지를 달면 대법관은 12배, 일반 법관은 10배 이상을 버는 셈이다. 전관 피라미드 맨 아래엔 로스쿨 출신 변호사, 일명 ‘로변’들이 있다.

    신문을 꼼꼼히 읽고 나자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개가 치는 것처럼 퍼뜩 떠올랐다. 나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왜 쓸데없이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거지. 빈둥거리며 노는 데도 지쳤지. 여기저기 여행 다니고 맛집에 가서 음식 맛보는 거 그거 한 번은 가능하지만 두 번 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법원을 떠난 후 방종한 생활을 한 것도 아니고 무슨 비밀스러운 삶을 살았던 것도 아니다. 보통 사람처럼 아주 평범하게 살았다. 내가 무엇을 원했던가? 바라는 게 거의 없었지 않은가. 흔히들 분수에 맞게 살라고 하지 않았던가. 분수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나는 분수에 맞게 살았다. 떠나는 뒷모습이 그 사람의 품격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판사시절에는 무엇을 원했던가. 부나 권력이 아니었다. 판사가 부를 얻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고 사법권력은 판사에게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것에 불과했다. 솔직히 말한다면 내가 그 시절 간절히 목마르게 원했던 것은 사람들의 존경이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무의미한 것이었다. 누가 자신의 이해타산을 떠나서 일개 판사에게 순수하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단 말인가.
    하지만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은 조금 과장하면 정글에 비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자신과 가족을 스스로 지켜야 하니까. 물질적 풍요야말로 굴절 없이 인간의 품격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의 필수적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반평생 살았던 고향은 어디인가. 법조계 아닌가. 그래 그리로 돌아가야 하는 거야. 그럴만한 사정도 생겼지. 장남 녀석은 지금 온통 머릿속이 복잡한 채 고통을 겪고 있지 않은가. 벌써 나이가 40이 다 됐는데 그 좋은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것 아닌가. 그 녀석 말은 그랬다. 자신의 미래가 너무나 뻔하다는 것이다. 지금 부장인데 아주 잘 해야 상무로 올라갈 것이고 그다음은 예측이 도저히 불가능하니 언젠가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뭔가 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아무리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필요한 자금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을런지 궁금한 일이었다.
    그는 대학과 연수원 동기이고 판사생활을 함께 시작해서 비교적 친했던 홍상수 변호사와 만나 상의하기로 했다. 그들은 모처럼 거의 일 년 만에 교대역 사거리 뒷골목에 있는 한적한 커피숍에서 만났던 것이다.
    홍 변호사가 말했다.
    “법원 떠난 후로는 이 근처는 얼씬도 안했을거 아냐? 영원히 떠나기로 했으니까…….”
    위풍덕이 말했다.
    “그래도 집이 서초동에 있으니까 법원 건물을 바라보긴 했다네. 그럴 때마다 법원에서 쌓은 세월의 무게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지.
    내가 거기서 법원장을 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더라고. 법원은 나를 잊어버렸고 그리워하지도 않았다네. 나 없이도 여전히 완벽했어. 그러니까 서글프더라고…….”
    “그래……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 대체품이 넘쳐나니까. 그리고 세월은 어쩔 수가…… 모두가 변하는 거야.”
    “별수 없지 않은가. 결국 변호사 개업을 해야만 될 것 같다. 지금 한 달 가까이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엄청난 갈등을 겪고 있으니까 혼란스럽다네.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스스로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맹자는 양혜왕 편에서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라고 했거든.”
    “그럴 줄 알았다. 나는 네가 얼마나 견디나 지켜보기로 했었지. 의지가 말할 수 없이 강해서 감정과 이성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사람이니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이군. 오해하지는 말게. 비난하는 게 아닐세…… 안타까웠거든.
    그런 건 갈등이라고 할 수도 없어. 당연한 일을 가지고…… 신경과민일 뿐이야. 자네의 탁월한 능력을 썩히는 것은 아까운 일이야.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린 것은 잘한 일이지. 지금 빠르다고 할 수도 없지만 늦지도 않았어. 은퇴하고 나서 잠깐은 쉴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고 보네. 100세 시대에 남은 인생을 어떻게 허비하고 살 수 있단 말인가.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눈곱 티끌만큼도 신경 쓸 거 없네.”
    “그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고맙네. 내가 자넬 만나기까지 며칠 동안 밤잠을 못 자고 고민을 했다는거 아닌가. 그게 말일세……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못 읽었던 많은 책들을 눈이 짓무르도록 밤새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또는 음악회에 가고,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하고, 자주 술을 마시지만 한계가 있었지. 여행 다니고 맛집을 순례하고 해도 딱 한 번뿐이었어.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직업이란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더라고. 처음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꼈지만 나중에는 처치 곤란할 정도로 시간이 남아도니까 점점 초조해지는 거야.”
    “그렇지. 이제야 제대로 깨달았군. 내가 법원을 그만두고 나니까 아무 데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그렇게도 허전하더라고.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그럴수록 직업이 필요하지.
    이렇게 저렇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일만 하다가 결국 죽을 수는 없는 거라네. 무슨 일이든 일을 해야만 하지. 취미만 가지고는 살 수 없는 거라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법률을 다루는 것밖에 더 있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그게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들지.”
    “그렇지…… 내가 너를 잘 알지. 취미랄 것도 없는 사람이지 않은가. 유유자적하면서 삶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놀 줄 아는 사람이 노는 거야. 일이 가장 좋으니까 일에 푹 빠져 있었던 거야.”
    “그래서 말이야…… 변호사를 개업해야겠는데 좀 지도 편달을 해주게나. 변호사를 개업한 지 벌써 십 년이 훨씬 넘었지 않은가.”
    “그렇지 그렇다네. 모든 법조인은 종국에는 변호사가 되는 거지. 우리 모두는 여기로 돌아오지. 세월이 참 빠르지, 벌써…….
    세월을 누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요즘 변호사가 예전만은 못하다는 걸 알아야 해. 나는 좋은 시절에 할 만큼 했으니까 지금은 반쯤 은퇴해도 상관없다네. 빈익빈 부익부야.
    대형 로펌은 그럭저럭 굴러가고 개인 사무실은 말도 못 하게 어렵지. 대형 로펌에서 저인망식으로 사건을 싹 쓸어가고 있으니……”
    “나는 좋은 로펌에서 오라고 하면 당장 달려가고 싶네만.”
    “그런데 말이야. 로펌으로 가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네. 거기 역시 조직체야. 조직에 들어가면 조직의 논리가 지배하지 않는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조직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고위 법관 출신이니…… 원래 실력 있는 법조인으로 소문이 나 있으니 조금도 걱정할 건 없다고 보지.
    전관예우는 지금도 영향력이 막강하거든. 그 뿌리 깊은 악습이 어디 가겠나.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개업하게.”
    그가 조금 긴장해서 물었다. “그렇단 말인가? 구체적으로 좀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겠는가.”
    그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건 한가한 석가의 설법이 아니야. 우리는 절대로 해탈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다네. 그야말로 코앞에 펼쳐진 엄연한 현실이라고.
    이왕이면 교대역 근처에다가 사무실을 얻게. 여기가 핵심상권이야. 개인 사무실이라면 여기 이상은 없지. 우선 민사 사무장하고 형사 사무장을 잘 구하고 법원에 출입할 똑똑한 남자 직원 하나하고 사무실에서 자네 비서 노릇 겸 이러저러한 잡일을 할 여자 직원 한두 명을 두면 될 거야.
    그러고 나서 사무실이 번성하면 혼자서 하기에는 버거울 테니 젊은 변호사를 데리고 있게.”
    “젊은 변호사를 쉽게 구할 수가 있을까?”
    “염려하지 말게. 대책 없이 로스쿨인가 뭔가를 도입해서 실업자만 양산한 꼴이라네.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지 않는 거야. 걔들 똑똑하지만 갈 곳이 없으니 솔직히 말해서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고말고. 그러면 세금을 줄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실제 쓰는 일은 걔한테 맡기고 자네는 이렇게 저렇게 지시만 하면 될 거야. 우리 나이에 소장이건 준비서면이건 직접 쓰는 건 피곤한 일이니까 정말 귀찮지.
    그러니까 먼저 사무장을 구하고 나머지 일은 그 사람한테 맡기면 되는 거야. 사무장이라면 내가 마땅한 사람을 추천해줄 수도 있지.”
    “정말 고맙네.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군.”
    “명심하게 일단 개업을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돈이야. 눈 질끈 감고 돈을 벌게. 그러려면 그 알량한 체면이니 자존심 같은 거 쓸데없으니까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는 거지. 내던져 버려야 한단 말이지.
    그러고 나서 돈을 쓰면서 풍족하게 사는 거야. 그런 게 아름다운 인생이지 않겠나. 이 말을 안 할 수는 없지……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너무 놀라지는 말게. 오해하지도 말고. 현실이 그러니까 그대로 받아들이게.”
    “나는 솔직한 말을 듣고 싶네. 누가 그런 말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원래 현실에 매우 둔감한 숙맥이었지 않나.”
    “무슨 말이냐 하면 사실 사무장이란 게 바로 브로커야. 걔들 없으면 개인 사무실은 돌아갈 수 없지. 이제는 필요악이 돼버렸어. 걔들이 변호사를 선전하면서 사건을 물고 와야만 하지.
    그런데 걔들도 전관을 선호한다네. 그럴 거 아닌가. 그래야만 자신들도 당사자들에게 권위가 서니까. 뭐…… 우리 영감님은…… 법원 고위직 출신이어서 전관예우를 받는다고 열심히 떠들고 다니는 거야. 그러면 30프로를 떼주는 게 거의 공식이지. 그렇지 않으면 바로 떠나버리거든.”
    “여러가지로 고맙군. 자네 말을 명심하겠네. 그런데…… 내가 변호사 개업을 하는 문제에 몰두하다 보니까 자네 안부에 대해서 묻지도 못했군. 미안하네.”
    “나야 뭐 그렇고 그렇지…… 새삼스럽게.”
    “갑자기 상처한지가 5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쯤 정신적 고통은 많이 완화되었을 거 아닌가?”
    “그렇다네. 세월이 약이더라고. 모든 게 희미해져 버렸지. 인생이란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뿐이더라고.”
    “암이란 게 참으로 알 수 없는 거야?”
    “그렇긴 하지. 그렇게 건강했었는데…….”
    “재혼이랄까…… 아니면 사귀는 여자가 있어야 할 거 아닌가? 자식들은 다 결혼해서 출가했으니까.”
    “재혼을 생각해본 건 사실이야…… 이것저것 따져보니 그게 보통 일이 아니더군. 자식들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어. 아주 곤란한 일이야. 그래서 포기했었지.
    그렇다고 여자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여자란 도망가면 쫓아오는 법이라네. 그렇다고 깊이는 안 사귀지. 나중에 귀찮아지는 건 싫으니까…….”
    “네 수법을 잘 알고 있지. 언제나 여자 쪽에서 먼저 자기를 버리도록 일을 꾸미는 거야. 그러면 자기가 여자를 버렸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겠지.”
    “숙맥인 줄만 알았더니…….”
    홍 변호사는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 불편하게 숨죽이듯 작게 웃었다. 그는 다시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그는 개업광고도 개업식도 하지 않고 조용히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입소문을 타면서 사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실력 있는 변호사라는 입소문과 전관예우와 유능한 사무장의 활약까지 겹쳐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몰려들었다. 처음에는 너무 신기해서 어리둥절했다. 그렇지만 곧 익숙해지고 돈이 정신없이 많이 들어오자 안도할 수 있었다. 당초 개업할 때는 과연 고객이 있을지 그래서 사무실을 유지할 수나 있을런지 잠을 못 자고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는 정신적으로 안정감과 평온을 되찾았고 그의 얼굴에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은근한 미소가 넘쳐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전관예우의 실상을 체감하였다.
    고객들은 말했다. “변호사님께서는 얼마 전까지 법원에 계셨으니…… 법원에서 고위 법관까지 지냈으니 믿을 수 있는 분은 변호사님밖에 없습니다. 상대방은 유명한 로펌을 선임한다고 합니다. 꼭 좀 승소해주십시오. 저는 너무 억울하지요.”
    그러면 승소하고 싶은 의욕이 넘쳐나면서 투지에 불탔다. 그는 변호사 개업을 하자 일 중독에 걸린 사람 특유의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되살아났다. 일이 계속 몰려드니까 심장이 유쾌하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오로지 승소하기 위해서 사건에 집착했다. 상대방의 허점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당사자를 불러서 이것저것 오랫동안 대화를 했다. 서류에서 사소해 보이는 부분까지 끝까지 파고들면서 검토했다. 그런 부분에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승소율은 탁월했다. 그게 소문나면서 사건이 몰린 것이다. 업무가 과중했기 때문에 두 명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고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미덥지 못해서 옛날 배석들을 연상시켰고 미심쩍었다. 그래서 일일이 법적 논점을 지적해서 주지시키고 법정에만 출석시켰다. 그리고 법률 문서는 자신이 밤늦게까지 남아 직접 썼다. 그럴 때는 기분 좋은 피로감이 온몸을 감쌌다.
    그 무렵 홍 변호사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는 그의 말들을 무슨 계명처럼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사건을 맡으면서 이것저것 따지지 말게. 특히 승소할 수 있는지 여부는 따지지 말란 말이야. 신이 아닌 인간이 어떻게 그걸 함부로 알 수 있겠나.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전혀 뜻밖의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지. 그러니까 섣불리 승소니 패소니 판단하지 말고 무조건 맡으란 말이야. 그리고 돈을 남들이 받는 만큼 제대로 받으라고. 당사자 입장을 고려해서 적게 받는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거지. 그래 봤자 당사자는 고마운 줄도 모른다니까.
    판사 시절의 고리타분한 관념은 완전히 버리게. 판사의 입장과 변호사의 입장은 현저히 다르지.
    내가 부장판사를 그만두고 개업하고 나니까 그걸 피부로 느끼게 되더라고. 그때 나도 법원을 떠나는 걸 무척 고민을 했었지. 정년퇴직하는 법관은 드문 일이야. 정년까지 가는 거 그거 쉬운 일이 아니거든. 대개 조바심을 내고 중간에 그만두고 개업을 하지 않은가. 검찰이건 법원이건 부장이 퇴임의 기준이 되는 거지.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판사는 변호사가 제출한 것을 비교해가면서 판단만 잘 하면 되지만 변호사는 스스로 사실과 진실을 찾아내 법률이론을 적용해서 제출해야 되거든.
    그리고 당사자들한테는 가타부타 미리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네. 요즈음 일부 클라이언트는 이것저것 따지며 말할 수 없이 까다롭게 굴거든. 그래서 무조건 ‘그저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되는 거야. 이게 변호사업계의 규칙이야.”
    그는 삼년째가 되자 시쳇말로 돈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가 번 돈은 전부 아내의 통장으로 들어갔고 그가 누린 사치라고는 평소에 그렇게 가지고 싶어 했던 몽블랑 만년필 한 세트를 산 것이다. 몽블랑은 펜에 영혼을 담았다. 진귀한 예술 작품과 같으며 사용자의 취향과 개성을 보여준다. 몽블랑 아틀리에 디자이너와 숙련된 장인들은 대담한 창의성과 뛰어난 기술을 발휘해 독창적인 제품을 선보인다. 그리고 날렵한 고급 시계를 샀다. 몽블랑 타임워커 컬렉션 중 하나인 ‘랠리 타이머 카운터’이다. 디자인부터 기능까지 모터 레이싱 세계에 뿌리를 두고 탄생한 시계다. 디자인 측면으로는 모터 스포츠를 연상시키는 디테일들을 사용했고, 기능적으로는 읽기 편하게 디자인한 크로노그래프를 담아 쉽게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했다.

    4. 그는 지난 20년 동안 살았던 서초동의 35평 아파트가 너무나 좁고 답답하였다. 우선 아내가 심하게 졸라댔다. 이제 그만 이사갑시다. 돈도 많이 있는데 언제까지 이런 좁고 낡은 아파트에 살아야 되나요. 걔들이 자기 애들 데리고 왜 놀러 오지 않겠어요. 아파트가 너무 비좁으니까 편히 쉴 수가 없는 거에요. 이제는 정말 지겨워요. 남들 보라구요…… 얼마나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는지 아세요? 당신은 정원이 있고 진돗개를 키울 수 있는 단독주택이 평생 소원이었잖아요. 그래야만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어요. 아파트에서는 층간소음 때문에 윗집, 아랫집 눈치 보여서 제대로 볼륨을 맞춰서 들을 수도 없어요. 그리고 저 많은 책들은 어쩌구요. 아마 조만간 아파트가 무너져 내릴 거에요. 무려 4,000권이 된다구요. 이 모두를 해결하려면 단독주택으로 이사가는 수밖에 없어요. 아파트는 안된다구요.
    그래서 오랫동안 꿈꿔왔던 넓은 단독주택을 사서 평창동 언덕배기로 이사했다.
    그 집은 주택가 너머로 북한산 산자락이 손에 잡힐 듯이 내다보였다. 대지가 무려 180평이나 되었다. 완전히 리모델링을 하고 정원도 새로 단장하였다. 넓은 정원에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과 정원수를 가꾸고 담장에는 넝쿨 장미가 어우러져 5월이면 화려한 붉은 장미꽃이 만발하였다. 정원 여기저기에는 역신이나 잡귀를 막고 복을 가져다주는 벅수, 돌솟대, 동자석, 금강역사상 등이 서 있다. 돌이란 꾸밈이 없고, 사심이 없으며, 솔직하고 뽐내지 않아서 좋다. 진도에 직접 주문해서 데리고 온 암놈 진돗개 두 마리가 정원을 발발거리며 돌아다녔다.
    연한 주황색 벽돌집의 창문은 크고 고풍스러웠다. 검은빛이 도는 짙은 청색의 강철로 테두리를 둘렀기 때문에 독창적으로 보였다.
    지하가 55평, 일 층이 55평, 이 층이 35평이었다. 집안의 가구는 이태리에서 직접 수입한 것이었다. 지하에는 그의 서재 겸 음악 감상실을 꾸몄다. 그래서 지하에는 3,000여 장에 달하는 LP판과 4,000여 권의 책이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다. 그리고 옛날 아파트에 있던 너무 낡아빠진 진공관 앰프를 자디스 (Jadis Orchestra SE)로 바꿨고, 스피커는 영국제 탄노이 Westminster Royal GR로 교체하였다. 그 넓은 방에는 그가 판사 초임 시절 찍은 법복을 입고 안경을 벗은 사진이 검은 테 액자에 담겨 걸려있었다.
    일 층은 넓은 거실과 현대식 부엌, 안방 등이 있는데 아내의 영역이었고 이 층에는 그의 침실 두 개와 한쪽 벽에 펠릭스 발로통의 그림 ‘흰 여자와 검은 여자’의 복제화가 걸려있는 홈 바 겸 휴게실이 있었다.
    홈 바에는 오리 머리 모양으로 디자인한 아스프리의 병따개, 홈 바에 필수적인 와인 오프너, 화려한 별 모양 커팅이 돋보이는 크리스털 셰이커, 스테인리스 스틸과 황동의 조화가 멋스러운 쟁반, 블로잉 기법으로 제작한 톰 딕슨의 디켄더, 바닥에서 림으로 이어진 완만한 곡선과 앙증맞은 손잡이가 매력적인 아이스 버킷, 은제 주전자, 컵 받침대, 술이 반쯤 든 또는 아직 병마개를 따지 않은 여러 종류의 술병들, 모든 종류의 글라스들, 동양식 술잔들, 진즉 시들어버린 꽃이 들어있는 꽃병, 아프리카 대륙의 작은 조각상, 짙은 초콜릿색을 띠는 목재와 황토색 가죽 시트가 조화를 이룬 암체어 등 소품이 가득했다. 그는 주로 셰이커에 내용물을 넣고 강하게 섞어 만드는 셰이킹 칵테일을 즐겼다.

    그는 그 무렵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곱씹어 봤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나인스 게이트’는 유서 깊은 레스토랑이다. 현존하는 국내 최고 양식당이다. 1924년 문 연 팜코트 시절까지 합쳐 올해로 아흔세 살 된 레스토랑이다. 에그 베네딕트, 시저 샐러드, 타르타르 스테이크, 프라임립 등 수많은 서양 요리를 국내 처음 소개하고, 달팽이요리를 유행시키며 정, 재계와 문화계 인사들에게 사랑받아왔다. 팜코트는 1970년 나인스 게이트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이곳을 단골 식당으로 하여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몇몇 친구들을 이곳으로 불러 함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셨다.
    그는 그 무렵 고급 와인과 양주를 주로 마셨다.
    화이트 와인의 대표적인 품종인 소비뇽 블랑은 특유의 톡 쏘는 맛을 지녔다. 싱그러운 느낌과 풀 향기가 강하다. 상큼한 느낌과 맛 때문에 주로 봄과 여름에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밸런스가 좋고 복합적인 시트러스 향과 민트의 짜릿한 향이 느껴지기 때문에 봄의 와인이라고 평가했다. 오이스터 베이를 비롯해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의 품질은 지금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색깔과 투명도를 살피고, 잔에 코를 넣어 향을 맡고, 잔을 흔들어준다. 산소가 들어가야 맛과 향이 배가된다. 와인을 입안에 머금고 당도와 산도 그리고 질감을 음미하며 삼킬 때 목구멍과 식도에 전달되는 뒷맛을 가늠해 보면 뒤로 갈수록 진하고 강하고 깊어졌다.
    그는 샴페인과 어울리는 요리로 양고기 구이와 함께 살짝 익힌 붉은 고추를 좋아한다. 입안의 매운맛은 술맛을 잠식하게 되는데 고추에 열을 가하면 매운맛이 줄어들면서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피노 누아 (Pinot Noir)는 몬터레이에서 생산된 카멜로드 몬터레이 피노 누아가 유명하다. 피노는 껍질이 얇아서 습도와 열에 아주 민감하다. 이곳 피노가 유명한 것은 태평양에서 부는 밤바람이 포도알을 식혀주기 때문이다. 포도 수확은 9~11월에 하는데 열매는 작지만 밀도가 높아 단단하고 묵직하다.
    포도는 지하 10m 아래까지 뿌리를 뻗어 수분과 영양분을 먹고 자란다. 그만큼 토질이 중요하다. 서늘한 기후대를 좋아하는 피노 누아는 섬세하고 예민해 재배가 어려운 품종이다. 놀랍고도 복잡한 풍미를 낸다. 뒷맛은 깔끔하다. 피노는 드라이하고 부드러운 질감에 꽃향이 난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위스키 중 가장 높은 피트 수치를 자랑하는 알코올 농도가 64%에 육박하는 ‘옥토모어 6.3 아일라 발리’. ‘발렌타인 파이니스트’는 200ml의 작은 용량이라 부담 없이 휴대할 수 있다. 그래서 캠핑이나 피크닉 등 야외 활동을 하며 마시기에 적합하다. 스코틀랜드 아일레이 섬의 보리만을 사용해 증류한 ‘브룩라디 스코티시 발리’는 프리미엄 아메리칸 오크통에서 숙성해 더욱 풍부한 오크 향을 느낄 수 있다. ‘왕을 위한 위스키’라 불릴 정도로 위스키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퍼지 초콜릿과 오렌지 맛이 어우러진 ‘더 글렌리벳 18년’. 조니워커 라인업 중 가장 스모키한 맛을 자랑하는 ‘조니워커 더블블랙’. 그것은 커다란 얼음을 넣고 온더록스로 마실 때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영국 왕의 왕관에 장식하는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 3가지 색의 보틀로 출시되는 ‘로얄 살루트 21년’.
    그는 고급시계를 사들였다.
    피아제 (Piaget) 알티 플라노. 그의 아내를 위해서는 여성 시계의 상징적 모델인 예거 르쿨트르 (Jaeger-Lecoultre). 바쉐론 콘스탄틴 (Vacheron Constantin). 오데마 피게 (Audemars Piguet). 로저드뷔 (Roger Dubuis).
    자동차는 낡은 구식 소나타를 버리고 최신형 외제차를 새로 구입했다. 패밀리 SUV의 대표 주자인 레인지로버 올 뉴 디스커버리. 그것은 빼어난 주행 능력, 극대화된 실용성, 더욱 세련된 내, 외관 디자인 등 갖가지 매력을 덧댄 5세대 모델이다. 그리고 BMW, New M760Li x Drive는 V형 12기통 엔진을 장착한 최상위 모델로 7시리즈의 40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갖췄다. 안락한 승차감뿐 아니라 드라이브의 즐거움도 놓치지 않는다. 6.6리터 V12엔진을 장착해 최고 출력 609마력, 최대 토크 81.6kg.m의 힘을 발휘한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고급 향수들을 사용했다.
    신선한 유자와 차조기잎으로 시작하는 싱그러운 향기가 은방울꽃과 우드 향을 만나 고급스러운 잔향을 남기는, 발렌시아가의 파리 레디션 메르 오 드 퍼퓸. 라임과 쿨 민트, 블랙 커런트가 청량함을 선사하고, 미모사 블로섬이 풍성한 부드러움을 안겨주며, 머스크가 휴식을 상상하게 하면서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선사하는 평온함을 향기로 느껴볼 수 있는,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아쿠아 셀레스티아. 한낮의 태양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맞닿은 향기를 만들고자 부드러운 샌들우드와 상쾌한 재스민 노트를 섞어놓은, 캘빈 클라인의 이터너티 썸머 포 맨.
    그의 아내는 제일 먼저 핸드백부터 챙겼다. GG 마몽 핸드백 라인은 고전적인 느낌을 물씬 자아내는 골드 브라스 소재 GG 잠금장치 장식과 브랜드 고유의 셰브론 가죽 패턴, 하트 모양 퀄팅(솜을 넣고 박음질해서 무늬와 입체감을 두드러지게 하는 기법)이 특징이다. 우아하면서도 여성미가 넘치는 이 백은 탈착 가능한 브라스 체인 숄더 스트랩과 블루, 레드, 화이트 스트라이프 숄더 스트랩이 함께 제공되어 다양한 스타일로 연출한다. 또한 가방 사이즈가 넉넉해서 내부 수납공간이 여유로워서 실용성이 높다. 그리고 까르띠에의 희소성 높은 프레셔스 스톤과 다양한 빛깔의 파인 스톤을 조합한 독창적인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수집했다.
    그는 여름과 겨울 휴가철이면 주로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
    좋은 사케의 조건은 세 가지이다. 좋은 쌀과 미네랄이 적은 연수, 솜씨 좋은 양조장인이다. 사케는 찐쌀에 물을 넣고 누룩과 효모를 첨가해 당화와 발효 두 과정을 동시에 진행시켜 얻는다. 그런 뒤 고운 천에 담아 짜내는데 요즘은 압착기를 사용한다. 하지만 옛날엔 커다란 나무통에 쌓은 뒤 무거운 돌로 눌러 짜냈다. 개항장 고베의 나다 지역에는 ‘고고’라고 불리는 다섯 마을이 10킬로미터가량 늘어서 있는데 유명 양조장의 집합소이다.
    나다는 겟케이칸이란 술로 대표되는 교토의 후시마와 쌍벽을 이루는 간사이 사케의 명소이다. 나다의 양조용 물 미야미즈는 후시미의 물과 다르다. 미네랄이 많이 함유된 경수다. 그래서 술맛이 강하다. 그걸 나다는 극복했다. 쌀의 발아는 가볍게 하고 알코올 발효 역시 짧고 격렬하게 유도해 드라이하면서 거칠고 강하며 단단한 남성다운 맛을 찾아냈다.
    겨울 홋카이도를 찾는 진짜 이유는 온천과 숙박이 결합된 전통 여관 ‘료칸’에서 푹 쉬다 오기 위해서다. 유황 온천이 유명한 노보리베쓰에는 대형 료칸 호텔이 즐비하다.
    그는 태평양이 끝없이 펼쳐진 해안가 절벽 위 료칸 리조트에 여장을 풀었다. 일본인 특유의 극진한 친절과 함께 다과와 말차를 대접받는다. 노천탕에서 태평양과 마주 보며 목욕했다. 뜨거운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아늑함에 나른해진다. 온천욕을 끝내면 일본 전통 코스 요리인 ‘가이세키’를 맛볼 시간이다. 광어, 대구, 연어, 방어 등 각종 생선 요리부터 소고기와 계란을 이용한 샤부샤부, 갓 도정한 흰쌀밥 등이 차례로 상에 올랐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히노키탕의 편백나무 향을 음미하면서 온천에 몸을 담근 후 맛보는 홋카이도의 산해진미라고 할 수 있다.

    위풍덕 변호사는 순풍에 돛단 듯이 가정이건 사무실 운영이건 간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으니 그의 인생은 아름답고 풍요로웠다. 더욱이 그는 매우 건강하고 안녕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인간의 모든 환상이 충족된 낙원이었을까. 하지만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모든 조건을 살펴보았을 때 그 당시 그는 무척 행복해야 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성취한 물질적 성공이나 일상적 행복이 순전히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허탈감 때문인지, 인생은 결국 일장춘몽이라는 오래전부터 품어온 생각 때문인지, 점점 늙어가는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공허했고, 불안했고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공자님은 노년에는 물욕을 경계해야만 한다고 했는데, 인생은 왕복 차표를 발행하지 않고 한 번 떠나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데, 내가 그렇게 경계했던 세속에 깊이 물들면서 참으로 교활한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지 않은가, 내 인생은 점점 추락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했다.
    겨울의 하루는 매우 짧아서 벌써 어둠이 내렸다. 밤이 깊어지자 북한산 산자락의 정경은 어둠에 묻혀서 아련하다. 그는 생각에 잠겨 짙은 어둠이 쏟아져 내리는 창밖을 줄곧 응시했다.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좀처럼 멎지를 않는다.
    그 무렵에는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 그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13이라는 숫자는 매우 불길하다는 미신을 철저히 믿고 있어서 12음 음악을 창안했던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무조 (無調)시절 후기음악을 듣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달의 피에로 Pierrot lunaire’를 들으면 옛날 순천지원에서 근무할 당시 가깝게 알고 지내던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현대 여성이었던 그녀의 안부가 불현듯 궁금해진다.
    동천 하구 갈대밭에 하염없이 앉아서 그녀가 손을 쓰다듬거나 그가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기억은 언제나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그는 그때 젊은 날의 청춘이었고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강렬한 본능적 욕망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는 만취하도록 그 독한 옥토모어 술을 스트레이트로 몇 잔이나 연거푸 입안에 재빨리 털어 넣었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잠이 들었지만 가수면 상태에서 온갖 뒤숭숭한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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