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정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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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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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일제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일본 민간기업의 배상책임을 확정하면서 시작된 한일갈등은 7월 4일 일본정부가 우리의 주력수출품인 휴대폰 등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핵심부품 수출을 사실상 금지조치 하더니, 예상대로 8월 2일 한국을 ‘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을 개정했다. 이 개정령은 이달 28일부터 발효된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수출 품목은 3년간 포괄 허가로 심사를 면제받아왔으나 앞으로 1100여개로 추정되는 일본산 전략물자는 수입할 때마다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한국을 사실상 우방이 아니라 ‘적성국’으로 간주한다는 의미이다.

    사실 일본정부가 ‘전략물자’라고 규정하는 물품의 범위도 애매하지만, 그 제품의 수입허가신청은 일본정부가 요구하는 신청서에 수입하려는 품목과 이것으로 만드는 제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 구매자와 위탁자, 사용자 정보는 물론 최종 사용지(국가)까지 밝히는 이외에 수입자의 사업 내용과 등기부 등 회사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며 해당 제품을 사용하는 공장의 제조공정 관련 자료까지 제출하도록 하여 사실상 신청서를 통하여 해당기업의 모든 정보를 통제받게 된다는 점은 국가의 불신은 물론 여간 자존심 상하고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신청서를 제출해도 수출허가 심사에는 최대 90일이 걸릴 뿐만 아니라, 일본정부가 수출 허가 여부를 임의로 결정할 수 있다는 독소가 있다. 앞으로 국내 주력산업 업종 대부분이 그 대상이 되어 불어 닥칠 후폭풍을 가늠하기 힘든데,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화학·기계·자동차 부품·비금속 등 48개 주요 수입품목의 경우 지난해 기준 전체 수입물량 중 일본에서 수입하는 비중이 90%가 넘는다고 한다. 설령 화이트리스트에서 빠진 품목이라 해도 또 어떤 규제가 이뤄질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지난달 4일 일본의 수출통제가 시작된 이후 화이트리스트 제외조치가 충분히 예상되는 지난한달 동안 정부 차원의 대책을 살펴보면 참으로 한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외교현안을 어떻게 풀 것이며, 과연 어떤 품목이 규제될 것이고 그럴 경우에 그 대응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정부부처간은 물론 관련기업들과 머리를 맞대고 얼마나 진지한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다.

    우선, 정부는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도 없이 적반하장식으로 세계 자유무역주의에 반하는 야만적인 일본의 정책이 싫다면, 주일대사 소환조치를 취하고 나아가 국교단절을 하는 등 단계적인 강력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또, 일제를 배격하고 대체품 개발이나 제3국에서 수입한다고 하더라도 철저하고 체계적인 대책이 발표되어야 국민도 알고, 상대국인 일본도 반응할 수 있지만, 그런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외견상 드러난 것은 대통령이 일본을 향해 엄중 경고하는 발표문 하나뿐이고, 외교현안을 책임지는 국무총리는 네팔 등 중앙아시아를 방문하고, 외무부장관은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등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보여주었다. 물론, 이 상황에서는 일본의 보호무역 내지 편파적인 무역정책을 규탄하거나 우리의 입장을 지지해주는 우방의 지지와 중재노력도 가사화되는 것이 순리이지만, 그동안 밤낮없이 동서남북으로 외국방문을 해온 대통령의 성과는 어디로 갔는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대통령의 외교가 얼마나 빈약하고 허황된 것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우방인 미국조치 두 나라가 직접 협상하라며 손을 내저었다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또, 일본의 악랄한 조치에 대해서 우리가 꺼내들 강력한 히든 카드도 없다는 것이 아쉽다.

    이런 무뇌(無腦) 같은 정부의 태도에 분노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일본여행 자제 운동을 벌이지만, 체계적이지 않은 운동은 얼마나 지속될 것이며 얼마나 성과가 있을는지 알 수 없다. 이미 우리생활 곳곳에 깊이 스며든 일제를 없앤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것이 항구적인 대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뉴스만 본다면 일본의 수출규제품목은 반도체의 핵심부품 3가지가 전부인 것으로 알고, 그 원료를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수입타진과 국내 기업의 생산가능성에 주력한 것 같지만, 일본의 경제보복이 현실화된 시점에서 가장 피해가 큰 분야는 영세한 중소기업 업종이다. 기술개발이나 생산성이 낮은 중소기업에서는 대부분 기자재를 일본에서 수입해서 조달하는데, 로봇이나 공작기계 소프트웨어 등 일본제품의 가격경쟁력과 품질이 뛰어나 대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대응하여 부품소재 국산화를 권장하고 있지만, 당장 완제품 생산이 중단되면 망하는 기업이 한두 곳이 아닌데 언제 부품을 국산화하고 연구개발(R&D)을 하느냐고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가령, 현대차의 부품은 현대차 순정부품을 써야 자동차가 망가지지 않는 것처럼 제품을 생산하는 기계제품인 일본산 부품을 사용해야 하는데도 수입이 막히면 공장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중소제조업 269개사 중 59%가 일본의 수출규제가 계속되면 6개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궁여지책으로 중국이나 대만으로 ‘수입 우회로’를 찾는다 하더라도 추가적인 비용부담으로 생산이 중단될 것이라고 했다.

    다른 한편, 일본정부의 한국에 대한 기본인식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하여 ‘정권이 바뀌면 정부 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불만하고 있는데, 일본은 1965년 한일 수교협상에서 모든 문제가 타결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도 우리 스스로 어리석은 조약을 맺은 당시 책임들을 비판하지 않고, 반세기가 지나도록 강제징용피해자며 위안부피해자등에 대한 배상을 일본정부에 떠밀고 몽니를 부리고 있다고 인식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기본적인 인식아래 2015년 위안부 합의를 논의할 때에도 한국정부와 의원들이 손을 내밀었지만, 정권이 바뀌자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일본의 인식은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확실시 되던 지난달 31일 일본을 방문한 국회의원 일행에게 자민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이 여당인 자민당 보다 더 냉정하게 대했다는데서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과 같은 애매모호한 태도로 국가 간 갈등이 초래될 것은 예측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여당 정책연구소의 내부문서처럼 한일갈등이 내년 총선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어리석고 야비한 의도에서 방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또, 대일 외교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경제문제를 처리해야 할 주일대사관의 경제공사가 ‘반드시’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4개월 이상 공석중인 상황도 정부의 대일본 인식수준을 짐작할 만하다. 어리석은 선장을 뽑은 우리 자신을 원망해야 하지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1990년대 전대미문의 대기근으로 고난의 행군을 해온 북한처럼 우리가 이제 고난의 행군을 시작해야 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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