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 그 자리에서 꼭 서명해야 한다고 하니 우선 서명 페이지만 로펌 종이에 출력해서 가져와 주세요.”
베트남에서 식품 가공을 하고자 하는 한국 의뢰인과 베트남 파트너 간의 합작계약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수임한 다음 날, 이틀 뒤에 계약 체결식을 해야 한다며 의뢰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베트남 파트너가 이틀 뒤 오전 8시 56분에 본인 회의실에서 계약체결을 해야 사업이 잘된다고 날을 받았다고 한다. 당사자들이 아직 계약 조건에 대해 합의도 하지 않았고, 계약서조차 작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계약 체결식을 한다고 하니 좀 황당했다. 택일을 믿어서가 아니라 좋은 게 좋다는 의뢰인의 요청에, 우선 계약 체결식부터 하고 나중에 계약서 작성을 하기로 하였다.
미리 목적지를 구글 지도에서 확인해보니 필자의 사무실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린다고 나왔다. 서명 페이지만 출력해서 당일에는 1시간 일찍 출발했지만, 출근 시간 정체에, 기사도 처음 가보는 길이라 목적지 근처에서 계속 같은 장소를 맴돌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8시 45분이었다. 식은땀이 났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간신히 계약 체결식 장소에 도착하니 8시 52분이었다. 거기에서도 특정 자리에서 서명해야 한다며 자리를 미리 배치해 둔 상태였다. 정확히 8시 56분에 당사자들이 계약서도 없는 서명 페이지에 서명하고 사진을 찍고 나니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사업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당사자들이 계약 조건에 합의하지 못해 결국 합작 사업은 결렬되었다.
베트남 투자ㆍ창업자가 꼭 알아야 할 베트남 법
* 서명인이 계약서에 서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자인지 (예: 법적 대표자), 그렇지 않다면 서명권자에게 적법하게 서명 권한을 위임받은 자인지 확인해야 한다.
* 일반적으로 베트남 법상, 계약서에는 법인 인감 날인뿐만 아니라 인감 부분과 ⅓정도 겹치도록 서명도 해야 한다.
* 계약서의 효력 발생일이 반드시 계약 체결일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합의에 따라 당사자들이 계약서에 실제 서명한 날짜의 전 또는 후가 될 수도 있고,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만 계약의 효력이 발생하게 할 수도 있다.
* 계약의 유효기간을 명확히 하고, 계약이 자동갱신되는지 아닌지, 계약의 갱신 또는 갱신거절에 대한 통보 일자도 본인이 기억하고 관리가 쉬운 방향으로 정하는 것이 좋다.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 최종적으로 계약서를 검토하며 특정 조항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없는지, 법적으로 불가능한 내용은 없는지, 불리한 점은 없는지, 원하는 내용이 빠진 것은 없는지 확인하자. 이때 불필요한 조항이라고 단순히 삭제해버린다면 조항 간에 모순이 생기거나 계약 이행이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상기 내용은 베이커 맥킨지 로펌의 공식적인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라이프 플라자(호찌민 섹션) 2019년 4월 둘째호에 게재된 법률 에세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