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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광수 교수의 문학관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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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광수 교수의 문학관 소고

    자살과 죽음.
    자기에게 자살의 명령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그 수단을 발견해 낸 인간은 참으로 위대하다고 해야할 것이다. (세네카)
    참으로 위대한 철학의 문제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을 괴로워하며 살 값어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을 하는 것, 이것이 철학이 기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카뮈)

    나는 광마를 살아생전에 만난 적이 없었는데 (광마는 馬光洙 교수가 직접 만든 아호인데 본관은 목천이다), 그의 방대한 저작물 중에서 에세이건 소설이건 시집이건 단 한 권도 읽은 적이 없었다. 2017년 9월 5일 그의 자살 소식을 듣고서야 뒤늦게 그의 존재를 깨달았고 비로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반 마광수적인 불신, 편견도 없고 그를 적극적으로 옹호해야 할 어떠한 부채의식도 없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 때문에 같은 작가로서 동류 의식에 사로잡혀서 매우 감상적이 되고 그래서 그를 과장하거나 미화해서도 안 될 것이다.
    나는 2018년 한해 동안 시중에 나와있는 그의 책들 거의 전부를 찾아서 읽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1992년 ‘즐거운 사라’ 재판 사건을 알게 되었으며 관련 자료를 수집해서 논픽션 소설 ‘2019 즐거운 사라’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사건의 표면이 아니라 무언가 깊숙이 숨어 있는 어두운 이면을 찾아내려고 하였는데, 그것이야 말로 작가의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소설의 처음 제목은 물론 가제인데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다’였고, 그 다음은 그의 시 제목에서 따온 ‘나르시시즘 만세’였고, 현재는 ‘2019 즐거운 사라’로 바뀌었다. 나의 변덕을 고려하면 이 제목 역시 조만간 바뀔지 모르겠다.
    그런데 마 교수는 2013년에 ‘2013 즐거운 사라’라는 짧은 장편소설을 발표하였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1992년 10월 29일에 내가 쓴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음란물이라는 이유로 전격 구속 수감되면서, 소설 ‘즐거운 사라’ 역시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검찰과 사법부와 문화부의 공모로 이루어진 무고한 여인의 사형 집행이었다. 그래서 나는 2013년 현재 21년 동안이나 판금 상태로 있는 그 소설의 판매금지 해제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헌법에 보장된 (문학적) 표현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 이 소설을 썼다.
    1992년 ‘즐거운 사라’는 대법원에서 음란 문서로 확정되었고 마 교수는 형법상 ‘음란문서 제조’와 ‘음란문서 판매’로 처벌받았기 때문에 그 소설은 서점이건 도서관이건 공식적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공소장과 판결문에서 지적한 16개의 성관계를 노골적이고도 구체적으로 묘사한 부분을 전부 인용하였다.
    판례가 제시한 음란물의 개념, 문학에서 성표현의 한계, 예술과 외설의 변별에 관하여 학술적 가치가 있는 논문을 쓰려고 한다면 반드시 이 부분을 참조하여 분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벌써 사반세기가 넘었는데 그 사건에 대해서 시시콜콜 써야하는지, 그런 역사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젊은 세대에게 굳이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당신은 왜 과거를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흘려보내면 안되는가, 라고 묻고 싶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묻히면 안된다. 그러면 우리에게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는 지워지지도 않는다.
    장폴 사르트르에 의하면, 어떤 역사적 사건을 소설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최적의 시점’이 언제인지를 계산해 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작가의 전성기인 사십대나 오십대를 기준으로 했을 때) 사건이 발생한 지 50년 후는 너무 긴 것 같다. 그때까지 작가가 살아남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10년 후는 너무 짧다. 충분한 거리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쯤 그 소설을 쓸 수 있는 적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마 교수의 구속 기소와 재판 과정을 소재로 하여 객관적 관점에서 역사소설 또는 논픽션 소설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나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덧칠하거나 거짓으로 꾸미지 않고 지극히 객관적으로 썼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모든 문학은 본질적 특성상 일정 부분 은유와 상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어떤 경우에도 초월적, 맹목적, 무의식적이거나 가치 중립적일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을 위한 예술
    광마 (狂馬) 는 말했다.
    ❴그의 지독히도 명쾌한 주장은,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과 문학적 재기가 전편에 넘쳐 흐르는 방대한 저작물 여기저기서 시도 때도 없이 수없이 되풀이 된다. 대학 교수 답게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는데 거침이 없다.
    소설에서도 서문이나 이야기 중간중간에서 작가 스스로 또는 화자나 작중 인물의 입을 통해서 시시콜콜 주제와 배경, 인물들을 해설한다. (이는 독자를 무시하는 것이고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김을 빼버리는 일이지만) 물론 어김없이 노골적인 성 담론에 관한 것이다. 그의 심리 저변에는 성에 관해 되풀이 해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심적 부담감을 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구차하지만 적극적으로 해명할 겸 변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사고방식이나 언행에 있어서 너무 가볍다. 절제를 모른다. 낭만적이지도 않다. 어떻게 해서든지 까발리고 휘갈겨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삐딱하게 어깃장을 놓는 사람이다. 그의 말장난은 때로는 너무 유치해서 어린애들 소꿉장난처럼 보인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황금률은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의 타고난 성격이라면, 그렇게 하는데 천부적 자질이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는 나르시시스트로 오직 자기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방식에 아주 익숙하다. 그래서 바깥세상과는 단절되고 소외되었다.❵
    그는, 문학 작품에서 예술이 부여하는 기쁨, 다시 말하면 오락을 위한 예술이라는 의미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을 부르짖는다. 문학은 단순히 ‘나’만의 것으로 그쳐버릴 수 있는 예술이 아니고 반드시 ‘너’를 필요로 하는, 너를 미학적으로 즐겁게 하기 위해서 너와 나의 ‘관계’를 필수조건으로 하는 예술이라고 하였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월터 페이터 또는 오스카 와일드의 슬로건. 「롤리타」를 쓴 나보코프는 사회 참여를 거부하고 나아가 예술의 사회성까지도 부인했다. 예술 작품은 도덕적 설교나 교훈이나 사회 개혁 등 기타 어떠한 메시지도 전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는 교훈적인 픽션을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다. 내게 픽션은 거칠게 말해 미학적 지복을 주는 존재일 뿐이다.” 라고 말했다.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쾌락은 오랫동안 억압되어온 철학의 주제다. 처음에는 기독교에 의해서, 다음엔 합리주의에 의해서, 그 다음엔 마르크스주의에 의해서. 현대 지식인들의 언어는 일체의 즐거움을 배제하는 교훈적 요구에 너무 쉽게 복종하고 있다.” 라고 말했다.
    우리 문학사에서는, ‘메밀꽃 필 무렵’을 쓴 이효석 작가야말로 근본적으로 현실 도피주의자였고 심미주의자였기 때문에 자연을 절대적인 미의 세계로 바라보았다. 그가 쓴 장편 소설 「화분」과 「벽공무한」은 그의 심미주의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화분」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을 위해 살고 그것을 찾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 당시 (1940년대) 시대 상황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비정상적인 성행위까지도 탐미의 이름으로 형상화했다.
    그들은 나름대로 예술에는 자기목적성이 있다고 하면서 예술의 모든 공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목적을 배격하고 예술 지상주의를 부르짖는다. 그건 예술가를 위한 예술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술과 관련해 떠올리는 ‘천재’의 개념은 ‘예술을 위한 예술’,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예술가를 위한 예술’의 시대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예술 지상주의는 초기 낭만주의, 상징주의, 초현실주의까지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그 이상으로 그리스 고전시대까지도.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문학성’이라고 강조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것이다. 그래서 트로츠키는「문학과 혁명」에서 형식에 대한 몰두는 그 자체가 탐미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문학사상 유명한 ‘러시아 형식주의’는 가혹한 스탈린 체제에서 소비에트의 유일한 예술의 지도 이념이었던 계급성·민중성·당파성을 지향하지 않는 예술을 비난하고 탄압하는데 동원되었던 ‘형식주의’와는 구별해야 한다.)
    그렇지만 예술을 위한 예술은 소위 말하는 순수문학과는 다른 것이고 오히려 예술을 위한다는 핑계로 문학적 기법에 있어서 쓸데 없는 난해성, 언어 사용의 부정확성, 엄혹한 현실에서 도망치거나 숨어버리는 나약함이야말로 예술이라는 어설픈 확신, 흔해빠진 염세주의 혹은 회의주의는 작가의 정신 또는 철학의 부재라는 공허한 예술과 동일한 것이 아닐까. 그들의 유치한 미학은 세련미는 커녕 경박할 뿐이다. 그들은 진실이 아니라 헛된 환상을 쫓는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 예술의 실패를 호도하는 구호일지도 모른다.(그래서 톨스토이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경박한 미학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종교적인 예술가, 철학자, 신학자, 도덕가, 예언자, 좌절한 연금술사, 기독교적 금욕주의자이기 때문에 그의 소설에서는 신, 기독교, 윤리 도덕, 전쟁, 생명, 신의 구원, 철학에 대한 고찰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소설에서 끊임없이 도덕적 설교를 늘어 놓는다. 그는 진지한 작가가 오직 오락만을 위하여 대의명분없이 소설을 쓴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순수 예술가란 오직 작품의 미학적 완성만을 허용받은 자로서 참다운 예술이란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데, 오랫동안 예술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있던 그가 목적론적이고 도덕적인 졸작에 가까운 소설들을 씀으로써 그가 가지고 있던 본래의 예술적 감각은 감동적인 힘을 상실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광수는 소설이란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정설을 경멸한 프루스트나 제임스 조이스가 시도한 새로운 형식, 즉 실험소설은 안중에도 없었다. 프루스트는 소설이란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전통적인 관념을 부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2백 페이지도 안되는 스토리에 에세이와 주석을 잔뜩 쏟아 부어 열 배쯤 부풀려서 2천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완성했다.
    그는 독일식 교양소설(혹은 성장소설, 교육소설) 역시 철저히 부인하였다. 교양소설이란 주인공의 발전 과정을 그리는 것이다. 독일 작가 모르겐슈테른은 교양소설이란 ‘그 어떤 종류의 소설보다 더 독자의 성장을 겨냥하는 동시에 주인공의 성장을 연출하는 형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므로 주인공이 세상의 풍파를 겪으면서 체득하게 된 반응이나 관념, 사상을 통하여 발전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소설적인 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소설은 이야기 속에서 작중 인물이 점점 성장하면서 인생을 실험하기 때문에, 따라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실제적 의문에 대한 철학적 해답을 구하는 것이다.
    그는 목소리를 높여 주장한다. 소설의 목적은 ‘가르치는데’ 있지 않고 ‘즐거움을 주는데’ 있다고 했다. 예술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어떤 이데올로기를 반영하지도 않으며, 특히 교훈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수사과정에서 그의 답변을 보라. 소설의 목적이 가르치는데 있다면 소설은 이미 예술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게오르그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소설이란 이른바 교양소설이라 불리는 소설의 거의 모든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소설은 자아를 인식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나아가고,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모험을 추구하며, 시련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는 한 영혼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 교수는 살아생전에 루카치의 심오한 이론에 대해 연구하고 깊이 생각해보았어야 했다.)
    프랑스의 예술 지상주의 비평가들은 빈정거렸다.
    “가장 나쁜 예술가는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예술가요. 소련의 화가들을 보시오.
    ……도대체 무슨 말이오? 참여문학이라구? 그렇다면 구식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겠군. 혹은 민중주의를 재탕해서 좀 더 당돌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지만……”

    참여문학
    참여문학하면 1940년대 프랑스에서 그 논쟁이 뜨거웠다. 우선 장폴 사르트르와 카뮈가 생각난다.(하지만 거기에서 앙가주망은 한때의 치열한 논쟁과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버렸다.)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는 스스로 바라건 바라지 않건 간에 끌려들고 있다. 나는 끌려들고 있다는 말이 참여하고 있다는 말보다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술가의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자의적인 참여가 아니라, 차라리 강제된 병역 의무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장폴 사르트르는 말했다.
    ‘산문이라는 예술은 산문이 의미를 지닐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제도, 즉 민주주의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한쪽이 위협을 겪으면 다른 한쪽도 역시 위협을 겪는 것이다.
    글쓰기는 자유를 희구하는 한 방식이다. 따라서 일단 글쓰기를 시작한 이상에야, 당신은 좋건 싫건 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작가라면 그가 하고 싶은 모든 담론을 형상화해서 작품 속에 아낌없이 쏟아 부어야 한다. 작가에게 작품을 쓰고 발표한다는 행위야말로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참여란 본질적인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사회주의 리얼리즘 (리얼리즘은 모더니즘 만큼이나 그 개념이 애매한데 그걸 다시 비판적 리얼리즘과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나로서는 도무지 그 차이점을 이해할 수 없다. 어쨌거나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간단히 말해서, 사회주의 + 리얼리즘 +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할 수 있다.) 혹은 참여문학의 일종인 민중문학 또는 저항문학이 한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런 문학은 그 연원이 1920~1930년대 카프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1980년대 엄혹한 시대적 상황에서 다시 시작된 논쟁은, 그러나 제대로 꽃을 피우기도 전에, 빠른 시일 내에 종말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그들이 과연 사회변혁을 위해서 또는 민중을 위해 그 어떤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내놓았고 또한 어떠한 활동을 하였는지는 의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미학적 관점에서 보면 작품의 내재적 혹은 형식적 측면은 도외시 하였고 오직 계급 투쟁을 위한 문학의 유용성과 혁명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이윤기 작가는 1992년 개역판 「장미의 이름」에 부치는 말에서, ‘실험이다, 참여다 하느라고, 소설도 자꾸만 무미 건조해지는 요즈음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소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자꾸만 증발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라고 지적했었다. 그렇다고 민중의 언어로 민중의 소설을 쓰면서 문학적으로 서민이나 노동자계급 등 밑바닥 계급을 사회 계급으로 끌어올려 귀족 계급이나 부르주아지 같은 상류 계급과 대등한 문학적 위상을 누리게 한 그들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에밀 졸라를 주목하고 연구하면서 사표를 삼은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일상적 정태적 삶보다는 노동자들이 전개한 동태적 투쟁에 초점을 맞췄고,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에서 좌파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사회 변혁을 추구했던 인텔리겐치아를 의식했을 수도 있다.)
    그 당시 기념비적 장편 소설을 중심으로 좋은 작품들, 탁월한 비평서, 에세이들이 쏟아져 나와서 이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흐름을 형성하지 못 하였으니 약간의 흔적만 남아 있다. 시대착오적이었고 빈 수레만 요란했을 뿐이다. 물론 그들 탓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시대는 너무 빠르게 급속히 변해갔고, 우리 사회에서 문학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진작부터 허울에 불과해서 끝이 없는 밑바닥으로 밀려났으니 말이다.
    물론 민중문학, 또는 저항문학의 논쟁과 담론, 그 종언이라는 것은 현대 문학사, 특히 현대 한국 소설사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라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할 만한 문제인 것은 틀림없다.
    군사독재정권 시대 내내(특히 1970년대 유신독재정권과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시절), 그리고 그 잔재가 여전했던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도 한국 문단과 소설계에 참여문학이나 민중문학, 저항문학 등으로 불리는 사회성이 강한 작품들이 출현하였는데, 그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는 이러한 경향에 반하는 작품들, 특히 유미주의적이거나 쾌락주의적이고 오락성이 강한 작품에 대해서는 ‘비겁하다’거나 ‘현실도피적이다’는 비판이 가해질 수 있었다.
    그들은 열렬히 주장했다. ‘예술과 민중은 통일되어야 한다’, ‘예술은 소수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테제소설은 도식적이어서 일종의 정치적 팜플렛으로 전락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는 예술 지상주의와 참여문학을 비교하면서 어느 한쪽이 타당하다는 논거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문학은 예술의 기원을 생각해볼 때 그게 참여문학이라 하더라도 도대체 예술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그것은 이미 예술 또는 문학이 될 수 없다. 당연히 예술성은 문학에 있어서 본질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걸 전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편 아무리 예술 지상주의라고 해도 거기에는 알게 모르게 작가의 의도 또는 주제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작가는 독자를 즐겁게 하면서도 이야기 속에 그들을 사유하게 할 생각, 개념을 여기저기 뿌려 놓는다 (또는 숨겨 놓는다). 그러므로 글 속에서 작가가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는 생각이나 개념이 (마 교수의 경우 성 담론이) 바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문학 작품에도 작가의 정신 혹은 영혼에서 배어나오는 모티브, 주제, 사상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행간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양자를 엄격히 구분하는 작업은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1세기 초반 무렵부터 이러한 참여문학 전통이 순식간에 와해되고 순전히 대중 오락물인 문학이 급성장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무렵 마광수의 작품 활동을 선구적이라고 볼 여지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의 20대를 관통했던 1970년대 민청학련 사건이나, 30대일 때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6월 항쟁, 더욱이 1987년에 그는 연세대 국문과 교수였고 그해 7월 5일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비극적으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하면 그들 사건은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혁명적인 대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내비친 적이 없다. 나는 그가 나른한 나르시시스트로서 그런 사건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의식적으로 철저히 외면하였다고 본다.
    그는 정치적 사회적 격변에 대해서는 도대체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섹스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한 때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하고 진보적인 학자 또는 작가인 것처럼 자처했지만 과연 자유민주주의나 역사의 진보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스탈린 체제 만큼이나 엄혹했던 그 당시 군사독재체제에 대해 내면적으로나마 비판을 한 반체제 인물도 아니고 또한 그 체제에 협력한 기회주의자도 아니란 점이다.)

    * * *

    마광수 교수의 문학적 담론을 일부분만 그대로 옮겨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그러므로 그의 문학관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스스로 연구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의 천재성은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관에 의해 작품들을 해석한 에세이나 논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글은 짧은 에세이일 뿐 학술 논문이 아니므로 마 교수의 방대한 저작물을 전부 읽어보고 분석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이에 대해서 구구하게 부연 설명하거나 쓸데없는 오해를 초래할 지도 모르는 견해나 해석을 덧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짧은 문학적 배경과 문학 이론을 고려하면 어느 누구라도 비전문가인 내 견해를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고 편견과 오해 때문에 어느 한 부분에 집중하면 다른 부분이 소홀해지면서 균형을 잃게 되어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게 될 것이다.)

    문학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상상력의 모험’이며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이다. 문학을 도덕적 설교가 아니고 당대의 가치관에 순응하는 계몽서도 아니다. 문학은 언제나 기성 도덕에 대한 도전이어야 하고,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한 ‘창조적 불복종’이요, ‘창조적 반항’이어야 한다.
    설사 아무리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관념이나 또는 이데올로기로 무언가를 선전 · 설교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문학의 자유로운 감성과 본능을 억압하는 위압적 독재수단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설교 목적이라면 소설 말고도 에세이나 논문 등 여러 장르가 있다. 그런데 소설에까지 철학적 · 정치적 · 윤리적 관념이 침투한다는 것은 소설의 본질적 역할을 훼손시키는 것밖에 안된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관습적이고 일상적인 관행으로 강요되는 소위 ‘정상적이고 건강한 성행위’에 도저히 만족할 수 없다. 예술가는 상상력이 특별하게 발달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상적인 섹스보다는 ‘상상적인 섹스’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예술가적 기질(또는 문학가 기질)을 타고난 사람에게 있어, 예술창작의 근원적 동기는 ‘성욕의 대리배설’에 있다는 전제이다.
    이러한 해석의 이론적 근거는 모든 예술작품들이 예술가들의 성적 욕구를 작품을 통하여 대리배설(또는 승화)시킨 결과라고 보는 프로이트적 심리주의 비평의 이론이다.
    흔히 예술가들은 모두가 조금씩 ‘괴짜’이고 ‘변태’라고 보는 통념이 있는데, 내 생각으로도 이러한 통념은 확실히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술가들이 다만 성격적 장애(예컨대 조울증이나 강박관념)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겉에 나타나는 성격장애의 밑바탕에는 비정상적인 성적 욕구가 자리잡고 있다.
    성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모든 이데올로기를 없애버리고 문명 발전의 지표를 오직 ‘인간의 쾌락(또는 행복)’에 둘 때, 미래의 유토피아는 원시상태로의 복귀가 아닌 진정한 문명상태로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다.

    작가는 원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갖가지 콤플렉스들을 작품을 통하여 승화시키려고 하는 사람이다. 내적 콤플렉스 없이 작품을 쓸 때, 그 작품은 현학적인 설교에 그쳐 버리고 만다. 물론 콤플렉스가 전혀 없는 사람이란 없으므로, 콤플렉스 없는 작가 또한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나라 문학 경향을 살펴보면, 마치 작가 스스로가 전혀 콤플렉스가 없다는 것을 애써 강변하려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지적 콤플렉스도 콤플렉스의 일종임에는 틀림없다.
    더욱 근원적이고 잠재적인 콤플렉스여야 한다. 질투심, 시기심, 건강에 대한 열등감, 외모에 대한 열등감, 사도마조히즘, 황제망상 등 더 일차적이고 원시적인 콤플렉스가 작품의 바탕을 이룰 때, 그 작품은 독자에게 리얼한 감동과 박진감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신체적이건 정신적인 콤플렉스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소설들 시들 특히 에세이에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지 않을까)

    예술가들이 대부분 이런 부류에 속한다. 이 사람들의 내면엔 대개 두 개의 영혼과 두 개의 존재가 숨어 있다. 이리와 인간이 그렇듯이 이들의 내면에도 신적인 면과 악마적인 면, 모성적인 피와 부성적인 피, 행복의 능력과 고통의 능력이 서로 맞서 있거나 뒤섞여 있다.

    최근에 나는 철학적 장편 에세이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를 출간한 바 있다. 그 책을 읽고 공감한 사람들 중엔 나를 다시 보게 됐다며 “왜 소설도 이 책처럼 점잖은 문체로 심각하게 써보지 그러느냐”고 권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내가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에서 얘기하고자 한 것이나 ‘광마일기’ 등의 소설에서 얘기하고자 한 것이나 골자는 같다. 말하자면 다 ‘야한 철학’이다. 그러나 나는 소설과 에세이는 구성이나 문체상 현격한 거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껏 두 장르를 명백히 구별지으려고 애쓰며 집필 행위를 해왔다.
    그런데도 이를테면 성문제의 경우, 이 소설을 포함하여 내 문학세계 전반을 두고 ‘성의 자유가 아니라 성의 퇴행이다’, ‘시체를 봐야 성욕을 느끼는 겁쟁이의 페티시즘이요 불건강한 변태성욕이다’ 등의 비난을 퍼붓는 지식인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성은 아름답고 건강하게 그려져야 한다”는 말만큼 허위적이고 이중적 위선으로 가득 찬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초기작에서는 치열한 고뇌와 갈등이 엿보이는데 요즘 작품은 너무 퇴폐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해 주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오히려 나로서는 그 ‘치열한 고뇌의 정신’이 부끄럽고 창피하게만 느껴진다. 말하자면 나는 솔직하게 발가벗지 못하고 그저 엉거주춤 발가벗는 척 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지식인의 위선을 떨쳐버리기로 결심하였다. 아무런 단서나 변명 없이도, 여인의 긴 손톱은 아름답고 야한 여자의 고혹적인 관능미는 나의 상상력을 활기차게 한다.
    최근의 우리 문학은 시나 소설이나 극도로 왜소화되고 기교적 유미주의로 떨어지고 말았다는 게 필자의 인상이다. 그런 까닭에 그런 작품에 대한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사실 두렵기조차한 현상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왜 요즘의 문학인들은 그들의 한계를 스스로 좁히려고만 들고 있다. 젊은 층의 엘리트 작가군들의 문학은 온통 호흡이 짧은 것들뿐이고 얕은 안목으로 잔재주를 피워댄 것들뿐이지, 긴 안목으로 누구나 감명받을 수 있는 작품을 생산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상품화되지 않는 게 어디 있는가. 겉으로는 문학의 상품화를 경멸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자신이 쓴 글이 상품화되기를 바라는(다시 말해서 책이 많이 팔리고 읽히기를 기대하는) 심리야말로 진짜 위선이다.

    마광수 문학의 모든 것은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에서 발원하고 있다. 그로테스크하게 화장을 한 여인의 강렬한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있는 파격적인 표지의 이 시집에는 작가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핵심 정보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어보면 마광수의 에세이와 시와 소설의 주제 및 모티프들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창작된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상상력의 모태를 발견하게 된다.
    마광수 문학의 고유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관능적 상상력’, ‘페티시즘’, ‘유미적 쾌락주의’의 문학관 또한 『가자, 장미여관으로』에 그 원천을 두고 있어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한 작가가 한 권의 시집으로부터 시종일관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과 모티프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은 우리 현대 문학의 흐름에서 볼 때에 무척 흥미로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문학평론가 김성수의 말)

    나는 『즐거운 사라』를 읽으면서 처음엔 언어의 천박함에 놀랐다. 그러나 당시 마광수의 구속과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내가 마광수에 대해 의외로 무지했다는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왜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고 난해하기까지 한 문학평론을 잘 쓰는 마광수가 『즐거운 사라』에 좀 어려운 말 몇 마디 집어넣거나 말을 이리저리 비비 꼬고 돌리는 따위의 수사법을 사용해 좀더 철저하게 문학을 위장하지 않았던지 나는 뒤늦게 이해를 하게 된 것이다. 그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천박하게 생각될 것이 틀림없는 상스러운 직설법만을 사용했던 이유는 한국의 일부 문인들이 두껍게 뒤집어쓰고 있는 ‘문학신성주의’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마광수 교수는 머지않아 시대를 앞서간 지식인으로 평가받을 게 분명하다. 그에 대한 마녀사냥이 한창 진행되던 때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그가 했던 주장은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의 말)

    * * *

    그는 그가 속한 교수사회에서 또한 우리나라 문단에서 철저히 소외 되었다. 아웃사이더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을 문자 그대로 국외자 또는 열외자, 추방자, 반항인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집단이나 사회, 어느 패거리를 막론하고 그들 사이에서 원만하게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욕망의 충족에 좌절한 신경증 환자이기 때문에 ‘아웃사이더’인 것일까, 아니면 그를 좌절과 고독으로 몰아넣은 보다 깊은 본능적 충동 때문에 신경증이 나타난 것일까?

    그는 늘 불안했고 편집광적이었다.

    그의 작품에 대한 학계의 평판은 냉소적이고 적대적이었다. 그는 오히려 아주 젊은 시절 국문학자로서 윤동주 시인에 대한 연구 등 좋은 논문들을 발표하였지만그 이후에는 관심 분야가 시와 소설, 에세이 쪽으로 쏠리면서 이렇다 할 학술 논문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가 2000년 연세대학에서 재임용되는 과정 중 겪은 온갖 수모는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럼에도 그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국문과 교수들의 그에 대한 분노의 원인은 오로지 막연한 질투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서로를 증오했다. 그에게는 그때 그들을 향한 도저히 풀리지 않는 적개심과 그만 용서해주고 싶은 화해의 심정이 교차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불운했다. 그의 삐딱한 반항 정신은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였다.
    그때부터 (1992년 ‘즐거운 사라’ 재판을 말한다) 일생에 걸친 박해가 시작된다. 마침내 그를 경멸하는 보수적인 완고한 학자들의 집단적인 저항에 직면했고, 그럴수록 오기스럽게 독단적인 자기주장에 빠져 들어갔다.
    그의 작품들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주제와 비슷한 내용,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그는 말한다.
    이 소설(‘2013 즐거운 사라’를 말한다.)은 내가 그동안 발표했던 소설들 중의 인물, 이미지, 페티시, 상황 묘사 등을 재현·변주하여 또 다른 작품으로 재구성해본 것이다. 문학 창작과 미술 창작을 병행하고 있는 나로서는, 미술에서는 이미지 등의 반복과 변주가 당연시 되는데 어째서 무학에서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하는 데 대해 의문을 품어 왔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사라’라는 인물과 그녀의 심리, 그녀의 페티시, 그녀가 겪는 사건 등을 변주시켜 보았다.
    그러므로 어느 작품도 예외 없이 섹스의 클라이맥스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그는 에로티시스트도 아니고 에로토마니아도 아니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격렬한 섹스에 따르기 마련인 대마초나 코카인, 알코올의 찰나적인 도취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한 이상하리만치 폭력적인 장면도 거의 없다. 그것은 그가 폭력을 극도로 혐오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정밀하고 객관적인 격조 높은 이야기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작가는 본능적으로 최대의 극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하지만, 이들 소재를 너덜너덜할만큼 너무 많이 사용해서 더 이상 소용없게 되거나 이미 그 이상 발전시킬 수 없는 한도까지 이용되어버리면 작가는 새로운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성담론으로 나아갔다.
    성이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므로 지극히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하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인간 삶의 전부는 아니고 일부분일 뿐임에도 그렇게 한 것이다.

    그의 인생관은 태생적으로 세계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부정이며 생명에 대한 부정인 것이다. 그는 무신론자로서 신에 대한 외경심도 없고 신의 구원이라는 개념은 도대체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행복보다는 쾌락을 선택하고, 심원함보다는 천박함을 선택했다. 그래서 쾌락과 천박함만이 가치있다고 믿었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그는 우리 같은 범인과는 달리 아주 독특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인생 경험은 너무 짧다. 물론 그는 한때 비단길을 걸었다. 28세인 1979년 홍익대 전임강사가 되었고 그 5년 후인 1984년 연세대 조교수로 취임하고 1988년 부교수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했다. 그가 1992년 ‘즐거운 사라’사건으로 구속기소되면서 그의 인생은 금이 가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는 교류하는 사람들도 극히 제한적이고 그의 작품의 거의 유일한 공간적 배경 역시 연세대와 홍익대, 이대 등이 몰려있는 신촌 일대일 뿐이다.(그 유명한 장미여관은 연세대 앞에 있었다.)
    나처럼 36개월 동안 군대에 갔다오지도 않았고 그 당시 금수저들만 갈 수 있는 방위 출신이다.(한국 남자들은 정글 속 같은 군대를 제대하고 나면 성숙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해외여행을 한 흔적도 보이지 않고 외국어(영어, 프랑스어, 일어 등등)에 능통해서 원서로 해외의 소설이나 논문을 직접 읽은 것 같지도 않다. 결혼했지만 3년 만에 이혼했고 자식은 없다. 그는 절대적으로 자식을 낳지 않으려 했다. 그가 말하기를 그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결혼과 결혼식이라고 했다.
    그의 버킷 리스트는 ‘진짜 사랑’ 그러니까 ‘겉과 속이 다 야한 여자’들과 사랑을 깊이 나눠보고 싶은 것이다.
    우리들이 보기에, 다시 말하면 장삼이사 범인들이 보기에는 그의 인생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오늘 이 시대 개인적 인생에 있어서 더 갈급하게 멘토를 필요로 하는 청춘들을 위해서’ 오지랖 넓게도 멘토를 자처했다. 그게 바로 에세이집 ‘멘토를 읽다’이다.

    그는 자신의 성 이론을 담보하기 위해서, 끈적거리고 음습한 소설들인 마조흐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Venus in Far)’, 사드의 ‘소돔 120일(Les120 Journess de Sodome)’, ‘안방 철학(Le Philosophic dan le Boudoir)’, 포오린 레아주의 ‘O의 이야기(Histore d’O)’, 에마누엘 아르상의 ‘에마누엘 부인(Emmanuelle)’, 나보코브의 ‘로리타(Lolita)’, D.H.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 조셉 케셀의 ‘대낮의 미녀(Bell de Jour)’ 등을 주로 인용 또는 원용한다.
    그는 에로티카의 수집가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성에 대한 그의 분석은 성본능에 대한 심층적인 성과학이 아니라 표피적이고 감각적일 뿐이다. 그러니까 깊거나 예리하지도 않다. 성은 파괴적인 힘을 갖고 있고(이는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인간이 그 힘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약하고 미약한 존재임을 깨닫지도 못 했다.

    그에게는 삶에 있어서 회의와 불안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적으로 근원적인 탄력성 또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욕구가 없었다. 그가 만일 좀 더 강한 인격의 소유자였더라면 자기의 길로 매진하며 위대한 예술가나 사상가로 발전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우리가 말하는) 대작가로 만들려고 노력하기를 거부하였다. 천재적 재능을 낭비한 것이다.
    그는 작가로서 또는 문학비평가로서 좀 더 문학에 있어서 심층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했다. 문학 창작 이전의 근본적인 문제들, 예컨대 작가는 왜 작품을 쓰는가, 누구를 위하여 작품을 쓰는가, 또는 작품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무엇인가 하는 기본적인 문제점들에 대한 회의와 사색을 했어야 했다. 비록 무신론자인 경우에도 신의 존재를 탐구하며 어떤 초월적이고 근원적인 우주의 진리를 전달해야 하고, 또 미래를 향한 투철한 예언자적 사명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자각했어야 한다.

    마교수는 작가인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의 소설과 에세이 등에서 처음으로 색정광의 변태성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설명하기를, 가장 중요한 변태성욕이라고 하면서, 동성애(同性愛 : homo-sexuality), 관음증(觀淫症 : voyeurism), 색정광(erotomania) 심리의 일종인 가학성 성욕(加虐性 性慾 : sadism) 또는 피학성 성욕(被虐性 性慾 : masochism), 절편음란증(節片淫亂症 : fetishism), 분변 페티시즘(여성의 소변이나 대변을 만지작거리거나 먹어보면서 성적 쾌감을 얻는), 피 · 가학성 성욕(sado-masochism), 노출증(露出症 : exhibitionism)을 비롯하여 자기애(自己愛 : narcissism), 복장도착(服裝倒錯 : transvestism), 항문섹스(anal sex), 구강섹스(oral sex), 시애(necrophilia), 소아성욕(pedophilia) 등을 들고 있다.
    페티시즘의 대상은 일반적으로 성애적(erotic) 매력이 있다고 느껴지는 여자의 속옷, 장갑, 손수건, 피부색, 젖가슴, 팔목, 대소변, 손 및 매니큐어를 칠한 긴 손톱, 발, 머리카락, 털코트, 꽉 끼는 가죽 바지, 긴 가죽 장화, 그물 스타킹, 하이힐, 귀고리, 목걸이, 발찌, 팔찌류의 장신구 등인데, 왜냐하면 페티시즘은 거의 남자에게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페티시즘에 관심이 많다. 그걸 우리말로 번역하면 절편음란증(節片淫亂症), 물품음란증, 고착성욕(固着性慾) 또는 고착적 탐미애(固着的耽美愛)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자신이 휘어질 정도로 긴 여성의 손톱과 긴 생머리, 하이힐 등에 깜박 죽는 절편음란증이라고 고백하고 있다.❴그래서 그가 여성을 섹스의 등가물로 대상화한 것을 보면 나는 그를 (가면을 쓴 그러나 남성우월주의자도 아닌) 여성혐오주의자로 간주할 수 있다. 남자가 섹스를 강조한다는 것은 그 반대편(상대방) 여자를 도구화하기 때문인 것이다.❵

    마 교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를 비롯하여 그의 다른 소설들(심지어 유작인 ‘추억마저 지우랴’까지), ‘가자 장미여관으로’ 등 시집들, 에세이들이 진정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음란물이라는 비난에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마 교수의 문학세계는 방대하므로 총체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가 추구하는 성의 자유는 우리가 보기에는 왜곡되고 병적인 어떤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관된 체계성과 철학적 기반을 갖고 있다. 그의 현란한 성애론은 그의 확고한 신념이지 결코 인기추구나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다. 그러므로 요새 젊은이들이 흔히 하는 야비한 말로 關心種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의 문학세계는 비록 성담론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완고한 금기 사항에 도전했다는 측면에서 또한 일관된 체계성과 철학적 기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대작가임에 틀림없다.
    19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월터 새비지 렌더(Waltaer Savage Lander)는 역사상 인물 사이의 ‘상상적 대화’를 시리즈로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그와 비슷하게 쓴다면 ‘마광수 교수와 나’ 또는 ‘마광수 교수와 그에게 적대적인 인물들’ 간 상상적 대화를 집필하고 싶다.
    그런데 편견이 없는 정당한 전기 또는 평전이 간행될 때까지는 그의 인생과 문학에 대해서는 그의 경력에 관한 메스컴에 나온 단편적인 몇 가지 사실과 그 자신의 저작물에서 얻을 수 있는 사실 이외에는 믿을 수 있는 풍부한 자료가 거의 없다.
    그에 대해 편견 없는 냉정한 재평가가 빠른 시일 내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건 윤원일 작가의 답글에서 옮긴 것이다.
    보를레르는 ‘파리의 우울’ 어디선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내 동포여, 내 형제여, 사기꾼이여.’ 마교수는 이렇게 썼을 것 같네요. ‘내 동포여, 내 형제여, 비겁한 자들이여!’ 아니, ‘내 동포여, 내 형제여, 무정한 자들이여!’ 아니면? ‘내 동포여, 내 형제여, 위선자들이여!’ 반성하는 마음도 들고해서 새삼 숙연한 마음을 품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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