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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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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초상

    악마도 젊었을 때는 아름다웠다.

    1. 내가 감히 인간의 냉혹한 운명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운명다운 운명과 조우하여 그것에 맞서 격렬하게 싸워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 삶의 운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진행되었을까 하고 한 번쯤 생각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지금쯤, 내 삶의 한 끄트머리를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순전히 우연 혹은 행운 덕분에 이리저리 우회로를 거쳤지만 크게 옆길로 벗어나지 않은 운명 말이다.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인생행로란 인위와 우연, 사건과 사물, 운명에 의해 어떤 경우에도 반듯하게 직선 행로일 수는 없다. 삶이란 대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본의 아니게 이리저리 떠밀리다가 여기저기 부딪치고, 짓밟히고, 방황하다가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삶이란 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런 것이다. 삶이란 우발적 사건의 연속, 반전과 반전의 반전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개인의 역사란 우리가 구태의연하게 운명이라고 명명하는 무작위적 우연의 연대기일 것이다.

    이건 고백이나 짧은 회고록 따위는 아니다. 뭐랄까?

    그것은 결코 자기 자신을 진실하게 내보이는 것이 아니다.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쟁이이며 모든 고백에는 위선적인 동기, 과장, 미화, 자화자찬, 변명 또는 교묘한 선전이 숨어있다. 진정한 사람은 자신에 대해 말할 게 별로 없는 법이다.

    우리는 아무도 그 자신에 대해 진실을 그대로 말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떻게 얼굴을 붉히지 않고 불특정 다수인에게 부끄러운 과거를 내놓을 수 있겠는가. 이건 순전히 내 관점이지만 도대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이걸 말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근 40년 동안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과거의 그 기억들을 저 깊은 망각의 심연 속에 묻어둔 채 살아가기로 작정하지 않았던가. 그건 좋은 기억도 아니고 나쁜 기억도 아닌 그런 모든 걸 초월한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과거를 돌아본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을까. 짓궂게 묻는 말에 대답하기 곤란해서.

    무적의 백마부대 용사였군요. 보병이었군요. 월남에서 사람을 죽인 적이 있었나요? 몇 명이나 죽였습니까?

    AK 소총을 어깨에 둘러멘 채 한가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어린 소년을 향해 정조준해서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그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나는 왜곡하고 부인하고 변조하고 싶은, 과거를 재구성하고 싶은 그런 평범한 충동에 저항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필 이 시점에서일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또는 일어날 것인가? 세월의 무게 때문일까? 이미 체념했기 때문인가? 여기에서 체념은 희망을 버리고 단념했기 때문이 아니라 불교의 사성제가 의미하는 것처럼 내가 비로소 인간 삶의 도리를 깨달았기 때문일까? 추억은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그 달콤한 회상 속에 빠져들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을까? 지금쯤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일까? 유대인의 속담처럼 지나간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 때문일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매우 늙었기 때문이다. 일부 기억을 재생하고 상상력을 보태서 완결판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조바심 때문이라고 해두자.

    아무리 비극적인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일단 책에 쓰고 나면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를 떠나지 않던 그 과거의 조각은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지고 만다. 우리는 더 이상 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의식이 정화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소설은 과거의 일부를 살리는 데 쓰이면서 그것을 파괴하는 데도 기여한다. 소설은 기억을 잡아먹는다. (이건 어떤 프랑스 작가가 한 말이다. 나는 지금 그 작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나의 과거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더욱 많이 행간에 암시한 모든 것을 당신은 온전히 이해할 수가 있을까? 나는 젠체하지 않으면서 은근히 자신을 과장 미화하지 않고 정직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나에게는 굳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이야기하는 대상인 그들의 감정과 생각을 제멋대로 기억하고 해석한 것은 아닐까? 그들은 이미 죽었거나 그 후의 소식을 전혀 모르는데 말이다.

    당신은 지금 오직 한쪽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이다. 당신은 지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가? 그러려면 당신은 나의 침묵도 함께 들어야 한다. 야상곡의 선율처럼 몽환적인 어떤 것이 숨어있을 수도 있다. 마침표를 믿지 마라. 그 마침표는 단지 말줄임표일 뿐이다. 끝났다고, 다 끝났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또다시 무언가를 덧붙이고 싶은 욕망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마지막 순간에 무언가를 덧붙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 이야기가 당신의 고단한 삶과 연쇄적인 상호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을까? 당신은 허위의식에 찬 이걸 읽고 냉담하고,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혹은 의혹을 품을 것인가? 차라리, 오랜 버릇대로, 만취해서 그때마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나의 분신, 제2자아에게 웅얼거리는 게 낫지 않을까? 내 얼굴과 육체에, 나의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에 내 삶의 궤적이 그대로 각인되어 있는데 새삼스럽지 않은가?

    40년이 넘게 지났는데 내가 지금 울고 있을 리는 없다. 그러면 웃고 있을까? 자신을 비웃고 있을까? 희미한 미소를, 밝은 아니면 어두운…….

    2.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

    나는 1969년 그때 육군 일등병이었는데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순전히 국가의 명령에 의해 전쟁터에 끌려갔고 얼마 후 작전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열대병에 걸려서 나트랑에 있는 102 야전병원에 40여 일간 입원하여 생사의 기로를 헤맨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밀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저격수가 날려 보낸 총알이 몸에 박혀 부상을 입어서가 아니라 뜻밖에 정체불명의 열대병에 걸렸던 것이다. 그것도 수천 명의 백마부대 30연대 부대원 중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만 걸렸던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너무나 건강했는데 말이다. 글쎄, 왜 하필 나였을까. 그러니 나는 지금까지도 그 영문을 모르겠다. 모질고 억센 운명 (누가 운명을 관장하는지는 몰라도) 이외에는 그걸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날 밤 치명적인 전투에서도 온전하게 살아남았는데 말이다.

    연대 의무대 군의관은 증상이 너무 심했으므로 자신이 손쓸 방법이 없음을 알고 신속하게 야전병원으로 후송한 것이었다.

    나트랑. 십자성부대. 102 야전병원.

    그 병의 증상은 이렇다. 처음에는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었다가 열이 조금 식으면 다시 열병인 것처럼 발작적으로 오한이 엄습하여 전신경련을 일으켰다. 그때 까무러치며 무의식중에 마구 헛소릴 내뱉는 것이고 무언가를 한참 동안 웅얼거렸다. 악령에 들린 자가 전혀 알지 못하는 방언을 지껄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헛소리는, 그 애절한 웅얼거림은 나의 무의식 속에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영혼의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이, 혹은 중얼거림이 아니었을까.

    내 몸은 계속해서 번갈아 찾아오는 불덩어리와 발작적 오한 때문에 근 보름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오직 수액에 의지하고 있었으므로 몹시 피폐해졌다. 그러나 의식은 가끔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혼미한 의식 속에서 환청, 환각, 착란, 망상에 시달렸다.

    그 당시,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했던 20대 초반 그 시절에 남몰래 흘린 눈물, 고통, 혼란, 체념 등에 대한 희미한 기억들이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나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주 일찍부터 단념할 줄 알았다. 그리고 바보처럼 단순한 운명론자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때 담당 의사와 간호 장교의 암묵적인 대화와 중환자실의 환자에 대한 죽음의 은유를 의미하는 행동에서 짐작하건대, 내가 지금 죽어가고 있음을 놀랄 만큼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나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고, 그것도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죽을 것이고, 죽은 뒤에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자아의 부재에 대해 단념한 것이다.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육체는 거의 죽어 있었는데 의식은 희미하게나마 살아있어서 그들의 대화를 다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의사가 말했다. 호프리스야. 뇌가 완전히 망가진 거지. 약이 들어먹어야 말이지. 이미 죽은 거야. 끝장이 난 거지. 간호 장교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모르지만 계속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어쩌면 지금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아니면 일시적으로 착란을 일으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깨어나고 싶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비명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병상에서 잠시 의식이 깨어날 때는 하염없이 누워서, 길고, 의식적이고, 자의적인 꿈과 환상 속을 헤매었다. 그러면, 죽음의 공포가 사라졌었다. 하지만 그때는 독실한 무신론자여서 톨스토이의 소설 속 인물인 이반 일리치처럼 죽어가는 그 순간 위대한 신과의 대화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순간 내가 죽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는 살아있을 것이라는 생각, 내가 죽어도 영혼만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어느 순간 갑자기 명징한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건 야전병원에 입원한 지 한참 후의 일이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안간힘을 다해 유서와 다름없는 편지를 써서 고국의 아버지께 보냈었다. 이번 편지가 늦게 된 건 순전히 군사작전이 길어졌기 때문에 편지 쓸 틈이 없었다고, 그 작전은 연대본부의 명령에 따라 부대 주둔지에서 200킬로미터나 떨어진 국경 근처의 밀림으로 출동한 장기 작전인데 조만간 원대복귀할 것이라고 둘러대고, 말이 작전이지 안전한 마을에서 아주 한가하게 지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지금 너무너무 건강하고 잘 복무하고 있다고, 우리 가족은 잘 살아야 된다고, 아버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등등.

    나는 순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편지 내용은 짧았고 말을 삼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과묵했으며 가급적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거짓말을 무척 싫어했으므로 선의의 거짓말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강박적으로 아버지를 비롯해서 가족을 절대적으로 안심시켜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3. 열대지방의 늦은 오후.

    화장터 건물은 야전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숲으로 우거진 작은 언덕 위에 숨겨져 있었다. 오후 늦게 또는 석양이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우뚝 솟은 화장터의 벽돌 굴뚝에서 죽은 병사의 시체를 태우면서 나오는 하얀 연기가, 가냘픈 연기가, 슬픈 연기가, 영혼을 상징하는 연기가 곧게 피어올라 하늘로 올라갔다.

    가끔 바람에 실려 시체 타는 냄새가 병동까지 날아들었다.

    영현병이었던 김재수 하사는 화장터에서 혼자 소각로를 담당했다. 그는 누구나 싫어하는 시체 태우는 일을 했다. 항상 술에 얼큰히 취해서 불콰한 얼굴로 시체들을 잘 태우기 위해 기다란 쇠꼬챙이로 타다 남은 살점과 뼈들을 뒤적여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더 깊은 소각로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들 시체는 주로 작전이 끝난 뒤 전선에서 왔다.

    그러나 암암리에 김 하사에 대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열대지방의 우기에 접어들면 몇 달 동안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는 날이 계속되고, 그 우울한 날에는 그는 어김없이 노릿노릿하게 구워진 주로 종아리 살점을 안주 삼아 술을 통음한다는 것이었고, 술에 만취하고 나면 무어라고 계속 웅얼대면서 장대비 속을 몽유병자의 몸짓으로 몇 시간씩이나 흐느적거리며 동생을 찾으러 다닌다는 것이다.

    진짜 알코올 중독자라는 소문도 돌았고, 알코올 중독자는 대부분 폐울혈로 죽기 때문에 그도 끝내 폐울혈로 죽게 될 것이라고 쑥덕거렸다. 병원의 위생병과 일부 입원 환자들 사이에서 그렇게 입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얼굴에 마맛자국이 조금 남아 있고 다친 머리에는 붕대가 단정하게 돌려있는 외과병동의 박 상병으로부터 들었던 것이다. 그는 백마 30연대 52포병대대 소속이었다. 그는 다 나았는데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퇴원을 미루고 싶어했지만 외과병동은 항상 빈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조만간 원대복귀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가끔 만나서 이러저러한 무의미한 잡담을 나누었다.

    그가 말했다.

    잠깐만 내 얘기를 들어보라구. 정신이 아주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더구만. 반쯤 미쳐버린거지. 맨날 시체만 상대하니까 그럴 수도 있어.

    누가 그걸 본 사람이 있어?

    소문이 그렇다니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

    그러니까 숲속에는 얼씬거리지 말라구. 참새처럼 큰 나비 떼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니까 으시시하다고 하더군. 그런데 밤이 되면 그것들이 귀신으로 변한다는 거지. 그렇지 않다면 귀신이 낮에는 나비로 변신해있는 거지.

    내가 상당히 회복되고 난 후, 드디어 내가 혼자 걸어서 화장실과 세면장까지 갈 수 있을 만큼은 회복되었을 때, 맑은 공기를 쐬기 위해 병원 주변 숲속을 어슬렁거리다가 갑자기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사람인 그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때 너무 외로웠으니까 몸을 추스르고 답답한 병동 밖으로 나가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문득 그를 만나고 싶다는 호기심이 일었다. 나는 시원한 바람도 쐴 겸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너무 혼란스러웠으므로 진지한 말동무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박 상병의 말을 전혀 개의치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를 만나면 직접 물어보고 싶었던 몇 가지 질문은 그를 만나고 나서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중간 키에 의외로 균형잡힌 탄탄한 몸매를 하고 있었다. 덥수룩한 머리칼이 넓은 이마를 덮고 있다. 처음 만난 순간 맑은 눈빛으로 찬찬히 뜯어보듯 바라보았다. 그는 전혀 어둡고 답답하다는 인상을 풍기지 않았다. 나는 어느 정도 괴물처럼 생긴 인간으로 미리 단정하고 있었는데 내심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아도 식인종처럼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눈은 하나밖에 없고 치즈나 우유를 주로 먹고 살다가 가끔씩 사람 고기로 포식하는 외눈박이 거인 퀴클롭스는 절대 아니었다.

    그는 처음 갑자기 조우했을 때의 당혹감을 어느 정도 떨쳐 낸 듯 보였다. 하얀 환자복을 입은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초라한 내 모습을 보고 경계감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가 말했다.

    쫄병…… 어디 소속이야?

    백마 30연대입니다.

    네 이름을 물어보지는 않겠어. 지금 당장은 알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병명이 뭐야? 작전에서 당한 것 같지는 않은데…….

    의사도 모른대요.

    의사가 병명도 모른다고? 네가 꾀병 부리는 거 아냐. 조기 귀국하려고…….

    그건 아니에요. 죽다 겨우 살아났거든요. 그러다가 결국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네 꼴을 보니까 그런 것 같군.

    제 모습이 그렇게나 불쌍해 보이나요?

    그러면…… 내가 사람 잡아먹는 괴물처럼 무섭게 보이나? 그런가? 괴상한 소문을 들었을 거 아냐? 두렵지 않았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생각을 했어.

    전 상관 안 해요. 그런데 소문하고는 다른데요. 왜 그런 헛된 소문이……

    온갖 추측과 억측을 하였겠지. 소문이란 게 그런 거야. 터무니없거든. 우리…… 자주 만나자고. 화덕을 보여줄 수 있어. 거기는 나 혼자밖에 없으니까. 무서워서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거야. 귀신은 나오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구. 귀신은 내가 밤에 혼자 있을 때만 나타나는 거야.

    그래도……무서워요.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데도 말입니다. 여기서는 죽음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맨날 굴뚝에서 흰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까요. 그렇지만 혼란스러워요. 어젯밤에는 정말 한숨도 못 잔 거 같아요.

    너나 나나 대가리에 피도 안 말랐는데 죽음을 운운하기엔 좀 그렇지? 세상을 채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그런데 왜, 누가, 죽음을 무서워하는 거지. 쓸데없이……

    우리 모두 언젠가는 불 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게 세상의 이치야. 제때 죽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야. 사람들은 너무 일찍 죽거나…… 너무 늦게 죽게 되거든…….

    그런데 나비 말이예요. 나비 떼는 어디에 있어요? 그게……

    누구한테서 나비 얘기를 들은 모양이지. 이곳 산호랑나비들은 덩치가 크고 날개가 형형색색이어서 너무 아름답지. 그렇지만 걔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는 계절이 따로 있어. 지금은 아냐.

    하지만 그는 늘 바닥으로 시선을 깔고 반쯤 쉰 목소리로 자신과 대화하듯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의외로 순박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인생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 겉늙어버린 것처럼 보였으니까 자기모순적이었다.

    야전병원을 둘러싼 열대의 숲은 무겁고 음산했다. 그날 오후, 하늘은 낮고 거대한 먹구름이 뒤엉킨 채 몰려왔다. 번갯불이 번쩍이고 천둥이 치며 무섭게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스콜이 그치고 잠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바나나 나무의 넓은 잎들이 하늘거린다. 황혼녘이 되어 어둠이 내린다. 숲에는 적막감이 흘렀다.

    그날도 여전히 술에 취한 채 (오후 작업이 시작되면서부터 마신 술이거나, 아니면 비가 내렸기 때문에 마셨을 수도 있다. 그는 어처구니없이 죽은 자들이 불쌍해서, 죽은 자들의 망령을 위로하기 위해서, 시도 때도 없이 그들이 생각나니까 그때마다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무덤덤하게 그가 말했다.

    네가 사랑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그게…… 대상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하나님이든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말이야.

    저는 사랑은 여자하고만 하는 줄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여자와 자본 적은 있나?

    그건 모르겠는데요.

    모른다고?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그런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네놈이 날 놀리고 있는 거야! 내가 이미 파악하고 있었지. 너는 완전한 숙맥이야. 숙맥이란 게 바보라는 말인데, 알고 있어?

    끝까지 지킬 자신이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무슨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저는 지금 마음속에서부터 변하고 있어요. 그게 느껴져요.

    그럴 수 있겠지. 죽다가 살아났으니까. 내가 지금부터 무슨 이야길 해줄 수 있지. 너무 놀라지는 말라구. 어쩔 수 없었다니까. 어쩔 수가…….

    비 오는 날은 싫어. 지긋지긋하지. 슬프고 우울하단 말이야. 불의 유혹을 견딜 수 없어 꼭 죽고 싶다니까. 불꽃이 동생 얼굴로 변하지. 동생이 환하게 웃고 있는 거야. 그럴 땐 소각로 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싶어. 불꽃이 활활 너울거리며 춤을 추고 위로 솟구칠 때는 그 유혹을 참기 힘들지.

    그 아인 비밀에 가득 찬 수수께끼였지. 난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지. 유령처럼 신비로운 존재였지. 항상 반쯤 꿈꾸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일방적으로 짝사랑했던 건 아냐. 그도 태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은근히 좋아했었지.

    그러니까 그가 떠났을 때 불같은 질투와 격렬한 감정, 알 수 없는 욕망 때문에 굉장한 고통을 느꼈던 거야. 그 고통이 납덩어리처럼 가슴을 억눌렀지.

    난생 처음으로 그런 감정을 느꼈거든.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감쪽같이 사라졌던 거야.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중대한 정신병이라고 하면서……. 나는 그를 의심하지. 그럴 수밖에 없었지.

    나는 그가 언젠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지.

    그 유혹을 뿌리치려면 술을 진창 퍼마시고 지워버려야만 하지. 술에는 고기 안주가 필요해. 그렇지 않나? 약간 짭짤하긴 한데…… 허벅지 살은 닭고기 가슴살처럼 퍽퍽하고 종아리 살이 질기면서도 쫄깃쫄깃하다고. 종아리 살에는 하얀 지방질은 전혀 없는 거야. 그 살코기는 씹는 질감이 최고지. 맛있어서 눈물이 나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남자의 다리, 종아리에 매력을 느꼈던 거야. 여자의 음부같이 무릎 안쪽 우묵한 부분에서부터 완만하게 튀어나와 젊은 여자의 엉덩이 혹은 젖가슴처럼 부드럽고 매끈매끈하고 정맥의 푸르스름한 핏줄이 보일 듯 말 듯 감춰져 있는 살덩이.

    온몸을 쥐어뜯고 태워버릴 듯한 짜릿함……, 죽음처럼 불안한 짜릿함을 느끼게 되지. 으흐흐흐……

    나는 울면서……, 울면서 꼭꼭 씹는 거야.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고. 그리고 목구멍 속으로 꿀꺽 삼키는 거지. 중대한 정신병을 치료해야 하니까.

    그렇지만 내가 제대하고 나면 불고기나 바비큐를 먹을 수는 없을걸. 이것저것 생각이 날 거니까.

    그걸 제가 전부 믿으라구요?

    믿건 말건 내가 알 바 아니야. 그렇지만…… 쫄병…… 이건 비밀이야…… 어디 가서 나불거리면 안 되는 거야…… 그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지금 너한테 술을 멕이고 싶지만 참는다. 몸이 그 모양이니. 어디 견뎌내겠어…….

    귀신을 본 적이 있나? 아니면 귀신을 믿기는 해?

    귀신이 있다고요?

    그렇다니까.

    아마 안개일지도 모르죠. 귀신은 있다고 믿으면 있고, 없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귀신들은 밤에만 나타나지. 밤은 낮과는 다른 거야. 밤이 되면 이상한 기운이 찾아오니까 술꾼은 술을 마시고 싶고 도둑들은 도둑질하고 싶은 은밀한 욕망이 생기는 거야. 귀신들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밤은 귀신의 시간이 되는 거지.

    그런데 귀신들은 나를 무서워한다니까. 내가 귀신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그래서 사람들도 나를 무서워하지. 알겠어? 내 몸에는 부적이 있어. 그건 닳아서 반질거리는 사람 뼛조각이야. 그게 날 보호해 준다고.

    워낙 은밀한 소문이었다.

    그가 영창에 가지도 않고 또한 조기 귀국을 당하지 않는 것을 보면 영현부대의 장교들은 틀림없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알고 있으면서 시치미를 떼고 모른 체했을 수도 있었다.

    그들은 멀리 떨어진 사무실에 앉아서 화장보고서를 쓸 뿐 소각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더욱이 어떤 병사도 밤마다 귀신이 출몰한다는 화장터의 소각로를 담당하는 직책을 결사적으로 기피하였으므로 그 이외에는 당장 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김 하사에게 귀신이 붙어 있다고 수군거리며 그와 대면하는 것 자체를 꺼렸다. 그는 귀국 만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관계자의 끈덕진 종용에 따라 귀국을 연기하면서까지 그 일을 하고 있었다.

    4. 퀀셋 병동.

    길쭉한 반원형의 간이 건물은 지붕이 주위 환경과, 특히 푸른 하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검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실내는 천장에 천천히 돌아가는 대형 선풍기가 매달려있긴 했지만 항상 무더웠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작은 창을 통해서 간신히 푸른 하늘 귀퉁이를 볼 수 있었다.

    하늘에는 옅은 구름만 높이 떠 있다. 우기의 장마는 진즉 지나갔다. 더위는 지금 숨이 막힐 지경이다. 달빛 탓에 주위가 온통 짙은 잿빛으로 덮이는 밤이 되어야만 거의 느낄 수도 없는 부드러운 미풍이 불어왔다.

    나는 잠깐씩 의식이 회복되기도 하고 몸을 움직일 수도 가끔 밖으로 걸어 나갈 수도 있었지만 여전히 그 증세가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숲속의 미지근한 바람은 잠깐이기는 하지만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하지만 증세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워지며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이 오고, 그때는 헛소리를 마구 지르고 고함을 외치며 내장 속에 들어있는 걸 몽땅 토해내야 했다.

    김 대위는 언제나 냉담했고 단 한 번도 웃음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는 친절한 의사가 아니었다. 맨날 뚱해서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랬으니 병명이 무엇인지, 매일 수십 알씩 삼켜야 하는 알약의 효능이나 부작용, 치료 경과에 대해서 말해 준 적도 없고, 의사로서 ‘이제 위험한 고비는 지나갔어. 안심해도 될 것 같애.’라든가, ‘깊은 잠에서 마침내 깨어났다고……. 몸이 스스로 회복하고 있는 거야.’라든가, 빈말이거나 거짓말이거나 할 것 없이 위로의 말 한마디 말해준 적이 없었다.

    그때쯤에는 가망이 없었으므로 나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여겼고 이왕 죽을 거라면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돌발적인 기습 사격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까 이번에야말로 내가 죽을 차례였다.

    그러므로 죽음의 일시적 지연이 지금 이 순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건 치욕이고 회한이며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형벌일 뿐이었다. 어차피 죽음은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매일 같이 삶과 죽음의 순환이라는 인류 공통의 운명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고통과 번민으로부터 해방이었기에 가장 순전한 상태의 죽음의 세계는 나를 매혹하였고 나는 그때 자기 파괴적인 충동과 함께 죽음을 간절히 소망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명료한 의식 속에서 나는 이런 식으로 죽어서는 안 된다는 강렬한 의지가 되살아났다. 나는 격렬한 분노에 휩싸였다. 누가 무엇 때문에 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수 있단 말인가. 누가 사형을 집행할 것인가. 그러나 내 의지는 계속 비틀거리며 허우적거렸다. 끊임없이 삶의 희망과 죽음의 운명에 대한 생각들이 반복되었다. 그때 한창 철없는 나이였는데 벌써 심각하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곱씹고 있었으니.

    그건 돌이켜 보면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고 긴박하게 닥쳐오는 운명을 늦추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그날 늦은 오후에 나는 잠깐 의식이 회복되었을 때 병상에 누워 곧게 하늘로 올라가는 그 흰 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조만간, 며칠 내로 흰 연기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생각하자 눈물이 두 뺨으로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김 하사가 쇠꼬챙이로 불이 활활 타오르는 소각로 깊숙이 나를 밀어 넣을 것이다. 그러면 신체의 어느 부위인지 알아볼 수조차 없게 흩어져 있는 뼛조각 몇 점과 회색 재 한 줌만 소각로 바닥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옭아매고 있던 뿌리 깊은 냉혹한 공포감과 고통스러운 자아로부터 해방감을 맛보았다. 그리고 안도감을 느꼈다. 그 눈물이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흘린 것이었다. 그 후로 눈물 같은 것은 흘린 일이 없었다.

    나는 그때서야, 눈물을 쏟은 후에서야 우리에게 지옥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황불이 활활 불타고 있는 지옥은 땅속 수백 미터, 수천 미터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을 터인데 영혼의 하얀 연기는 하늘나라로, 천국으로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그런 거야. 우리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슨 흉측한 죄악을 지을 틈도 없었는데, 아직도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변성기이거나 막 지났는데, 동정이고 새벽이면 몽정을 하고, 젊은 여자애만 보아도 미칠 듯이 가슴이 울렁거렸는데, 어떻게 무슨 이유로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겠는가.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어떻든 천국으로 올라가는 거였다. 나는 희열을 느꼈다.

    석양이 되어 선명한 저녁 햇살이 열대의 푸른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숲은 무언가 중얼거리고 휘파람을 불고 노래를 부르고 손짓을 하였다.

    5. 내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나서 회복기에 있을 그때는 가벼운 죽으로 연명하였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두통 증세로 신경이 예민해져 심한 불면증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의식이 상당히 회복된 후에도 한동안 여전히 흐느적거리고, 중얼중얼거리고. 잠을 자지 못해서 눈알이 빠질 것 같았으니 내 시선은 초점을 잃고 나른해 보였다.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좀비, 아니면 약간 미쳐버렸을까.

    밤에는 여전히 후덥지근한 병실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은 지독히도 지루했다. 나는 그때 간호 장교에게 하소연하였다. 김 중위님, 제발 독한 수면제 좀 줄 수 없어요? 잠을 못 자서 눈알이 빠질 것 같습니다. 절 좀 죽음처럼 깊은 잠 속으로 재워주세요. 하지만 그녀는 애매하게 살짝 웃었다. 그녀는 수면제를 주는 대신 특유의 숙련된 손놀림으로 또다시 엉덩이에 무슨 주사를 놓아 주었다. 내 엉덩이는 너무 많은 주삿바늘 자국 때문에 온통 푸른 멍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자주 체온과 맥박을 쟀고 청진기로 심장과 폐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었으며 차트에다 뭔가를 재빠르게 휘갈겨 썼고, 열이 오르면 이마를 손으로 짚어서 식혀 주었다. 남자는 몸이 아프면 여자의 간호를 받는 게 최고다. 그러면 저절로 나을 것 같다.

    그녀가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 지경이 되게……. 그건 분명히 정신착란과 비슷했어.

    내가 말했다. 저는 기억이 없어요.

    기억이 안 나겠지. 이런저런 온갖 검사를 다 해 보았지만 뚜렷한 게 없는 거야.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야. 더 이상 악화는 안 되었으니까. 중환자실에서는 하도 몸부림을 치니까 못 움직이게 몸을 단단히 고정시켜 놓았었지.

    소등한 병동은 희미한 미등만 켜진 채 밤의 침묵 속에 갇혔고 간간히 코고는 소리 중간에 이빨 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침까지 잠을 잘 자라고! 절대로 깨지 마라! 꿈도 꾸지 말고! 오! 하나님!’

    하지만 약효가 나타나는 데는 무려 몇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깊은 잠에 빠져 들었고 잠이 든 뒤에는 또다시 악몽 같은 심란한 꿈에 시달렸다. 그래도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아주 잘 잤다는 가뿐한 느낌이 들었다.

    이른 아침이 되면 벌써 잠자던 환자들이 하나 둘 깨어나서 부산하게 일어났다 누웠다,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했다.

    나는 죽음과 같은 혼수상태에서 보름여를 보냈는데 이제는 겨우 깨어나서는 반대로 고도의 불면증 때문에 계속적으로 깨어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잠은 생리적으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데 잠을 못 자서 죽게 된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죽음일 것인가. 나는 그 때문에 또다시 죽음의 고통 속에서 그 공포를 잊기 위해 끊임없이 비현실적이고 모호한 성격의 상상과 망상, 꿈과 환영 속을 헤맸다.

    하지만 하얀 무명 시트가 깔린 병상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아주 편안했고 그때는 즐거운 감각들이 들뜨면서 나를 둘러싼 현실 세계를 아름답게 채색하였다. 감정과잉 상태를 벗어나서 아름답고 기이한 환상 속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때 환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희미한 형상들을 보았고 그 형상들에서 신비한 기운을 느꼈다.

    (물론 그때 죽어가면서 명료한 의식 또는 오락가락하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꿈꿨던 꿈의 내용을 지금은 거의 기억해낼 수 없다. 온통 꿈속이었다. 꿈속에서 또 하나의 꿈을 꾸고, 또 그 꿈이 또 다른 꿈을 꾸었다. 꿈의 연속. 그리고 너무 오랜,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다. 내가 애써 기억해낸 기억의 파편과 부풀려 지어낸 것, 제멋대로 상상한 것들은 한 덩어리로 얽혀있어 분리하기가 불가능했고 함께 망각 속에 묻혀 있었다.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40년의 시간. 과거. 침묵. 망각. 그것은 시커먼 구멍이다. 그 속으로 사라진다.)

    그렇긴 하지만 희미하고 파편적이긴 해도 모든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렀다고 해도 어찌 사람들을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사람들의 기억. 장면들의 기억. 그것들은 세월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어서 마치 어제 일처럼 너무 생생하다. 그러나 과거의 삶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그러므로 순수한, 단순한 문자 그대로 기억은 있을 수 없다. 기억은 질서정연하지 않다. 기억의 단속. 그런 의미에서 모든 기억은 이미 해석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기억의 변형이고 변주일 뿐이다.

    내가 야전병원으로 이송된 지 벌써 20여 일이 지났다. 절체절명의 위급한 상황은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병세는 더 이상 호전되지 못하고 답답한 상태에 빠져 있다. 여전히 수십 알의 형형색색 알약과 엉덩이 주사, 수액에 의지하는 지루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온몸이 땀에 끈적거리면서 수액이 일정한 간격으로 방울방울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나는 기다렸다. 지루함과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서 기다렸다. 그때는 전쟁에 대한 기억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오후 늦게 만났다. 김 하사는 작업 물량이 없다면서 나트랑에 이틀 동안이나 무단외출을 나갔다가 슬그머니 귀대했다.

    내가 말했다.

    나트랑에는 …… 이틀 동안이나?

    할 일이 좀 있었지. 미군 보급창 사람들도 만나고. 양담배와 고급 양주를 선물로 받았지. 너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물건들이지만. 그런데 밤에는 잠을 거의 못 잤지. 잘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정말 행복했어. 그게 그렇다니까.

    건물 뒤편 골방은 어두컴컴하지만 항상 몽환적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비현실적 혹은 초현실적이라고 할까. 남자와 여자는 몽롱한 채로 나비가 되어 양귀비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꽃밭을 훨훨 날아다녔다. 그때는 인간의 하찮은 욕망 따위는 초월하였다.

    김 하사가 우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면서 얘기를 하게 되면 좋은 담배 맛을 음미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담배가 다 타고 나서 그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네 얼굴을 보니 여전히 그렇구나.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어. 더 나빠진 것도 같고.

    잘 모르겠어요. 그저 그래요. 그래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절망적인 발작만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그 발작이 왜 생기느냐 하면 네 머릿속에서 악마들이 마구 뛰어노니까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의사 말을 무조건 믿는 게 아니야. 거의 모든 사람들이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는데 의사라고 안 하겠어. 자기 몸은 스스로 판단하는 거야.

    여긴 군대야, 군대라니까. 아무도 생명에는 신경 안 써. 모두 귀국 박스에만 정신이 팔려 있지. 쫄병 하나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니까. 내가 널 소각로에 밀어넣고 싶지는 않구먼. 그러면 눈물을 많이 흘리게 될 걸.

    제가 지금 뭘 알겠어요?

    김 대위는 서울의대를 수석 졸업했다고 했어. 그래서인지 고집이 대단하지. 직속 상관인 내과 과장 말도 안 들어. 그런데 말이야. 그 과장은 당해도 싸지. 아랫사람들에게 아주 무례하게 굴기로 소문이 났거든.

    본론으로 돌아가자고. 주치의가 병명조차 모른단 말이지. 병명도 모르면서 무슨 약을 주고 있는 거야? 아무런 근거가 없는 가설만 믿고 있는 거지. 너는 지금 오직 진정제에 의지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거라고.

    이상한 게…… 네가 지금쯤 피해망상 증세를 보여야 하는데…… 다시 말하면 미쳐야 된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운명으로 받아들이 면서 안정을 찾은 거야? 아니면 뭐야?

    네 병은 신비한 거야. 전문의가 병명조차 알 수 없는 병이라면 인간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병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임상의학의 한계를 벗어난 거지. 그렇다면 네가 죽을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는 거 아니겠어. 의사가 지금 자신의 예감을 숨기고 있다고 할 수 있어.

    그러면 아주 특별한 처방이 필요하겠지. 안 그런가?

    무슨 말씀을……?

    내가 보기에는 무슨 좋은 약이……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특효약 같은 게 있을 것 같다는 거지. 농담하는 게 아니야. 네가 너무 걱정스러워. 몰골이 그렇다니까. 네 부모님이 보았다면 대성통곡을 할 거라고.

    시내에 나가면 중국 노인이 하는 아편 집이 있어. 자신이 지독한 중독자인데 아주 멀쩡하지. 질이 좋은 아프가니스탄제 검은 알약을 솜씨 있게 말 줄 알지. 전통적인 대나무 파이프를 사용하는 거야. 그게 최고거든.

    그 검은 연기를 몇 번 마시면 좋아지지 않을까.

    그게 인간들이 알 수 없는 신비한 망각 작용을 한다니까. 궁극적인 진통제이고 진정제라고 할 수 있겠지.

    또 한 가지가 있어. 그 집에는 딸이라는 소문도 있고 첩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약간 귀가 먹은 점쟁이인지…… 주술사인지…… 가 있단 말이야. 내가 보기에는 그 여자는 얼굴에 신기가 흐른다고. 그러니까 틀림없이 특효약을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뒷방에서 가끔 영험하다고 소문난 무슨 약을 조제하고 있거든.

    내가 영현부대 차로 데려다줄 수가 있지. 헌병들도 우리 차는 귀신 나온다고 해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니까.

    그건 아니에요. 내가 이 몸으로 어떻게 병동을 빠져나갈 수 있겠어요. 가령 빠져나간다고 해도 아마 탈영병으로 처리할 거예요.

    열심히 치료해 주시는 분들께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뭐.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라고. 진심으로 생각해서 그런 거니까.

    네가 좋다면 차라리 아편 단지를 이리로 가져올 수도 있는데. 중독이란 게 쉽게 되는 게 아니야. 우리 아버지도 그걸 오랫동안 했지만 지금까지 아주 건강하시단 말이야. 그러니까 중독이 되지 않도록 조금씩 조절하면서 치료가 끝날 때까지 먹는 거지.

    6. 나의 주치의였던 김현수 대위는 그 당시에는 작은 키에 여윈 체구로, 그러나 깨끗하고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 그의 소식을 까맣게 모른다. 아마 1970년대 의사들이 미국 쪽으로 많이 떠났으니까 그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대학병원에서 교수, 대형 종합병원에서 내과 과장을 하고 정년퇴직을 하였거나, 또는 군 제대 후 내과 병원을 바로 개업해서 돈을 많이 벌고 빌딩을 올렸을 수도 있다.

    하여간에 지금쯤은 몸은 살이 쪄서 배가 툭 튀어나왔을 것이고, 주말마다 골프를 많이 쳐서 흰 얼굴은 알맞게 그을렸을 것이고, 머리는 틀림없이 대머리 혹은 반쯤 대머리일 것이다. 나도 늙었지만 그는 훨씬 많이 늙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상상한다. 정말 예뻤다. 장담할 수 있는데 내가 지금껏 살면서 본 여자 중에서 제일 예뻤다. 나는 그녀의 얼굴이나 몸매를, 하얀 피부를,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보여주는 그 눈길을 더 이상 어떻게 묘사할 길이 없다. 불가사의한 매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끌고 사로잡았다. 내가 그때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건 인간의 육체를 지닌 진짜 사람이 아니라 여신, 에로스의 얼굴과 몸을 가진 여신이었다.

    하지만 나는 매번 그녀의 시선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자존감을 잃고 더욱 쪼그라든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그녀와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했다.

    내가 감히 여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때 우리들 중환자실 환자들은 그녀가 출현할 때마다 숨을 죽인 채 넋을 놓았다. 그리고 몰래 그녀의 얼굴을 훔쳐봤을 뿐이다. 우리들은 감히 노골적으로 쳐다볼 수 없었다. 우리는 쫄병이었고 그녀는 엄연히 장교. 그러나 그녀는 극히 사무적이었으니 아주 상냥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깐 폴로렌스 나이팅게일 같은 백의의 천사 타입은 아니었다.

    김혜진 중위.

    나는 거의 회복되어서 원대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그날 저녁 김 중위가 있는 당직실로 갔다. 거기에 간 것은 처음이었다. 그곳의 풍경은 역시 군대식이어서 단순했기 때문에 친숙했고 긴장된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좁은 실내에서 숨소리가 들릴 만큼 붙어앉았다.

    하지만 그때는 연대작전이 끝나고 부상병들이 호송되면서 연이은 야간 근무로 그녀의 눈빛에는 긴장과 피로가 배어있었다.

    나는 그녀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대복귀한다고? …… 네가 원한다면 복귀를 늦춰줄 수도 있는데. 내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은혜를…… 그러나 빨리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내과 과장은 죽은 목숨이라고 처음부터 너무 쉽게 포기해 버렸다고. 항상 주머니에 작은 성경책을 넣고 다니는 독실한 신자이면서 말이야. 다시 생각하면 이해할 수는 있지. 도무지 손쓸 방법이 없었으니까. 여기는 인간의 목숨을 우습게 아는 전쟁터이거든. 내가 태연한 척 가장하며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그럴 만했겠지요. 저 역시 미련을 버렸으니까요. 그녀는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게 분명했다.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어린 네가 세상을 채 살아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억울하게 죽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 너에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느껴지거든. 때로는 간호사의 역할이 중요할 때가 있지. 김 대위가 효과를 인정했으니까 계속 그 약을 처방한 거야.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무심결에 말했다.

    언제 귀국할 거예요?

    그날 늦은 밤 눈썹처럼 가는 조각달이 하늘에 떴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 쓸쓸하고 절망스러워 보였다. 그녀는 지쳐 있었다. 긴장과 피로 때문이라기보다는 야전병원의 고달픈 삶 자체에 지친 듯이 보였다. 아니면 사람을 한없이 늘어지게 만드는 더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잠깐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녀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왜? 연장 근무도 고려해 봤지만…… 과장의 응큼한 눈길도 꼴보기 싫고…… 간호과장의 등쌀도 지겨워서,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는 게 문제인 거지. 곧 귀국할 거야. 이 젊은 청춘에게 군대는 숨이 막히지. 제대 신청을 해야겠어. 우리 서울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술을 살 거니까. 날 기억해 주었으면? 문은 닫혀 있지 않고 언제나 열려 있다고.

    그 말은 나를 몹시 당황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긴장된 상태를 완화시켜 줄 것 같은 뭔가 할 말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간신히 말했다.

    전 바보가 아니에요.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천천히 일어섰고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나도 덩달아 일어섰고 그녀가 강렬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의 뺨에 홍조가 더욱 짙어졌다. 모든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있었다. 그녀가 밤의 불빛 속에서 갑자기 아름답고 생생하게 보였다. 그 순간 내 속에 납작 엎드려 있던 짐승의 욕망이 꿈틀거렸다. 나는 그녀의 매력적인 나체를 상상하며 성욕을 느꼈고 스스로 무안해서 움찔했다.

    그리고 재빨리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곱게 늙어가거나 또는 완전히 쭈그렁 할머니가 되어 살아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머리는 서리를 인 것처럼 하얗게 변했고 뱃살은 축 늘어져서 몸무게는 20킬로 정도 늘었을 것이 아닌가. 비슷한 나이의 다른 여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그녀는 오래 전부터 외모에 대해서는 완전히 신경을 끊었을 것이다. 아니면 미인박명이라고 일찍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한동안 간호사를 계속한 걸로 가정한다면 그때 만난 노총각 의사와 결혼해서 2남 1녀쯤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본다. (하지만 그녀가 김 대위와 결혼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그 당시 내가 보기에는 그들은 서로 간에 극히 사무적인 관계였지 사랑이나 애증이 얽힌 관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 알겠는가?)

    7. 얼룩은 하얗고 몸통은 새까만 너무나 얌전한 개.

    나는 그때 김 하사보다는 그 개가 더 보고 싶고 그리웠다. 가끔 꿈속에도 나타났다. 개 주인은 그를 ‘덕구’라고 불렀다. 김 하사는 가끔 그 개를 데리고 다녔다. 그는 주인 없이 부대 주위를 헤매고 다니던, 그 당시 야윌 대로 야위어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고 더군다나 한쪽 뒷다리를 약간 절룩거렸던 그 잡종 개를 거둬 정성껏 키우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살이 올랐고 뒷다리는 정상을 되찾았다.

    내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처럼 키워서 잡아먹으려고……. 그걸 설명하기가 난감해요. 아버지는 개를 무척 사랑했어요. 그렇지만 잡아서 보신탕을 해먹었어요.

    그가 정색을 하며 대꾸했다.

    나도 보신탕을 좋아했지. 술안주로는 보신탕이 최고 중에 최고야.넌 애송이니까 그 맛을 모를 거야.

    그래서 덕구도 술안주 감으로 키우는 거 아니예요?

    덕구는 그런 게 아니야. 내 동생이야. 동생이고 자식 이상이지.

    건강한 개는 새 주인을 만나면 따라가지 않으려고 앞발로 버티고 낑낑거리며 뻗대는 거야. 그러나 덕구는 그렇지 않았지. 애원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던 거야. 다시는 도망가지 않게 잘 키울 거야.

    그렇고말고. 어떤 놈이 손을 대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장교라고 해도 말이지.

    지금까지 기쁘거나 슬플 때 나의 절친한 친구는 쟤였거든. 내 감정의 밑바닥은 한 번도 털어놓을 수 없었는데…… 쟤한테만……

    우리가 그 이야기를 할 때 덕구는 졸고 있는 듯 눈을 감고 한껏 느긋한 자세로 누워있다. 나는 그것이 낑낑대거나 짖어대는 개 짖는 소리를 여태 들어본 적이 없었다.

    덤불에 숨겨져 있는 사람 몸이 겨우 비비고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입구를 발견하였다.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 속은 한기와 함께 습기, 지독한 악취가 풍겨왔고 황토색 흙바닥에는 잡동사니들이 너절하게 흩어져 있다. 동굴 속은 들어갈수록 아득하고 더욱더 어두컴컴했다. 박쥐 떼들의 날개 퍼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순간 무언가 섬뜩하며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꼈다. 더 이상 전진을 포기하고 뒷걸음질로 빠져나왔다.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 동굴 속으로 던지려는 순간 손이 넝쿨에 걸려 몸이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서 수류탄을 놓쳐버렸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출혈이 심했고 더욱 심한 갈증을 느꼈지만 물을 마셔서는 안 되었다. 물을 먹은 그만큼 피를 흘리기 때문이다. 겨우 입술만 적셔주었는데 그건 거의 고문에 가까웠다. 그는 중환자실에서 열흘을 보낸 후 가까스로 살아나서 내 옆 병상으로 옮겨왔다.

    수색중대 소총수였던 김 일병이 말했다.

    하필이면 내가 뽑히기를 원치 않았어. 소총수가 제일 위험했으니까. 계속 기도했지. 양구에 있는 부대를 떠나면서 부대원들과 작별의 인사를 할 때까지도 정말 가기 싫은 발길을 한 발 한 발 옮긴 거지. 반드시 죽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이제 끝났어. 파편은 모두 빼낼 수 있다고 했어. 나는 성성한 몸으로 살아서 귀국하게 되었어. 나는 불구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내가 말했다. 기적이 따로 없네. 행운의 여신이 돌봐준 거야. 파랑새가 하늘 높이 날아오른 거지.

    어머니가 매일 새벽 정화수 떠놓고 손을 싹싹 비빈 덕분일 거야. 그리고 나는 사람을 죽인 적이 없거든. 하늘을 향해 쏘았어. 다행스럽게도 백병전을 경험한 일이 없다니까. 그때는 내가 죽거나 그를 죽이거나 둘 중 하나 아니겠어. 서로를 찔러 죽여야 하니까.

    무사히 귀국을 앞둔 선임병이, 자신은 날 보지 못하고 곧 귀국할 것 같다고, 부디 몸 건강하라고, 삼수 끝에 입대했다고 했던가, 늦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된다고, 긴 인생에서 늦은 경우는 결코 없다고, 원대복귀하면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편지를 보냈다.

    나는 저승사자가 지키고 있는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었지만 죽음과 대면하여 이겨냈다. 그때는 운 좋게 살아남았기 때문에 한껏 들떠서 하늘을 둥둥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하찮은 개인의 운명에서 행운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깨달았다.

    8. 야전병원의 검문소 입구에서 나트랑 시가지로 쭉 뻗어있는 직선 도로의 오른쪽으로 ‘성병유 요치료’라는 스탬프가 찍힌 빨간 딱지를 소지한 병사들을 수용하는 ‘성병환자 수용소’가 보였고, 왼쪽으로 헌병 중대와 보안대, MIG 막사, 보급창 그리고 멀리 미군 헬리콥터 대대가 주둔하는 비행장이 보였다. 나는 새삼스럽게 나트랑 시내를 내려다봤다. 바다에서 잔뜩 습기를 품은 해풍이 불어왔다. 햇빛이 눈부시다.

    나는 원대복귀하기 바로 전날, 김 대위의 허락을 받고 나트랑 시내로 나갔다. 그는 그때쯤 날 동생으로 여겼는지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심하게 잔소리를 하였다.

    그가 말했다. 바깥 공기가 쐬고 싶겠지. 그럴 거야. 병동이 감옥처럼 얼마나 답답했겠어. 나트랑 비치에 가서 바닷바람을 실컷 들이마시라고. 그리고 시내에 가면 한국 식당이 있어. 오랜만에 진짜 한국 음식 맛을 보면 기분이 괜찮을 거야.

    술 생각이 간절할 수도 있어. 오랫동안 갇혀 있었으니까 해방감을 맛보면 술 생각이 나겠지. 참으라고. 술을 마시면 도로아미타불이야. 네 몸이 술을 견딜 수 없다니까. 그러면 네가 다시 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어…….

    나트랑에서 처음 나온 외출이었다.

    나는 월남 인력거를 타고 야자수가 하늘거리는 바닷가 긴 백사장을 지나서 한가하게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가끔 람부레타와 햇빛을 가리는 둥근 모자를 쓰고 아오자이 자락을 펄럭이는 꽁까이가 운전하는 오토바이가 앞질러 갔다. 그리고 노란 가사적삼을 입은 몇몇 승려들이 앞장서고 검은 만장을 든 행렬을 앞세운 상여와 마주쳤다. 그러고 나서 무작정 시내 중심가를 걸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은 유럽식 3층 건물인 작은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백화점 안은 초라했고 진열대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카메라와 가전제품이 진열되어 있기는 했다. 여자 점원은 그저 무심한 얼굴로 말없이 쳐다볼 뿐이다.

    그리고 맥주홀에 갔다. 홀 안은 10개 남짓 둥근 테이블이 놓여 있고 대부분 월남 군인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나는 혼자 앉아서 생선 소스에 데친 나팔꽃채를 찍어 먹으며 캔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얼큰하게 취했다. 딱 한 잔만 마실 작정이었지만 다섯 캔까지 마셨다. 나는 군의관의 엄중한 지시사항을 어기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김재수 하사가 가르쳐준 대로 2층집을 찾아서 한참 헤맸다. 건물은 무척 낡고 지저분했다. 1층 홀에서 늙은 포주에게 말했다. 붕붕, 오케이. 그녀가 말없이 두툼한 손을 내밀었다. 나는 미리 준비한 5불을 건넸다. 미군은 8불, 한국군은 5불, 월남 군인은 3불로 무슨 규칙처럼 정해져 있었다.

    포주의 안내로 2층 방으로 올라갔다. 꽁까이는 푸른 꽃을 수놓은 흰색 아오자이를 벗었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육체가 드러났다. 나는 그때 김혜진을 잠깐 떠올렸다.

    나는 여자에게 이별 인사로 ‘꽁까이 감온옹(아가씨 고맙습니다)’이라고 말했다. 다시 잡화점 상점에 들러 그림엽서들과 부처님을 본뜬 나무 인형을 산 다음 오후 늦게 귀대했다.

    9. 열대의 짙푸른 숲과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도시는 전쟁도 까마득 잊은 채 뜨거운 태양 아래 오후의 낮잠을 자고 있다.

    나와 몇몇 병사들을 태운 앰뷸런스가 부대를 향해 출발했다.

    나는 원대복귀하였다. 그러나 그때 병원에서 퇴원하긴 하였지만 여전히 몸 상태가 완전한 것은 아니어서 내가 희망하면 바로 조기 귀국을 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앰뷸런스가 부대 정문을 통과할 때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먼 여행에서 그리웠던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벌써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밤이면 포병대가 시간에 맞춰 밀림의 어느 지역을 향해 어김없이 위협 사격을 하는 은은한 포격소리가 그립다. 그건 나에게 자장가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나는 102 야전병원에서 퇴원하여 원대복귀하자마자 최전방 부대에서 대대본부 행정반으로 전출하였다. 이런 행운은 선임병이 연줄이 닿았던 인사과 대위에게 추천을 해준 덕분이었다. 이제 작전에 동원되어 전투에 직접 참가할 일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담당 장교가 평범한 좋은 성격의 사람이길 바란다. 전우들과는 반갑게 해후할 것이다. 새로 온 신입 교대병력과도 만나게 된다. 나도 이제 월남 고참이다.

    한가한 저녁이면 병영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캔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마음껏 웃고 떠들 것이다. 다시 병사들의 단순 반복적인 일상으로 복귀한다. 나는 마음만 혼란케 하는 책들을 더 이상 읽지 않겠다. 그들에게 다가가서 내 마음을 열고 가감없이 털어놓을 것이다. 이제부터 나를 짓눌렀던 무기력과 죽음의 공포와 불안 증세를 깨끗이 떨쳐내야 한다.

    나는 전적으로 운명에게 나 자신을 맡겨야 한다. 운명이 무엇을 결정할지는 운명이 결정한다. 나는 운명의 손 안에서 그가 조종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운명이라는 흔해빠진 말은 전혀 어쩔 수 없는 경우에 쓰는 편리한 단어 아니겠는가.

    스스로에게 만족하라!

    운명의 은총이 있길!

    그러면 내 수척한 몸과 창백한 얼굴은 금방 회복될 것이고 열대의 열기에 다시 갈색으로 변모할 것이다.

    새벽이 될 즈음에는 어김없이 생생한 꿈을 많이 꾸게 될 터이다. 더 이상 나쁜 꿈이거나 악몽, 슬픈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꿈이면 얼마나 좋을까.

    밤마다 초소에서 지독한 모기떼에 시달리면서 2시간 동안 보초 근무를 서게 된다. 부대 외곽에는 겹겹이 철조망이 쳐 있었고 철조망과 나뭇가지에는 조명지뢰가 열매 달리듯 달려 있다. 그리고 철조망 앞에는 수없는 지뢰와 부비트랩이 촘촘하게 매설되어 있다. 그걸 모두 뚫고 베트콩이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안심했다. 그러므로 맨날 M16 소총을 껴안고 졸았다.

    그때 졸음에 겨워 가수면 상태에서 성욕이 살아나면 매우 감각적이 되어 수음을 하게 될 것이다. 매일 밤마다.

    그러다가 52포병대대 C포대에서 105밀리 곡사포가 갑자기 밀림을 향해 사격을 개시하면 그때 천둥같은 포성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잠은 멀리 달아나 버렸다.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그렇게 사경을 헤매었어도 그 전쟁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그게 무슨 전쟁인지, 누굴 위한 것인지, 누구 잘못인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일개 사병인 주제에 전쟁의 승패 여부, 이해득실을 따질 필요는 없었다. 그건 국방부에서나 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원대복귀한 후 몇 달이 지나서 연장 근무를 신청하였고 1년여를 더 복무하였다. 그리고 그 무렵 김 병장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는 월남에 도착하여 함께 파월 전입병 교육을 받고 헤어진 후 처음으로 만났던 것이다. 각기 다른 보병 중대로 배속되었었다.

    김 병장은 작전 중 실종 전사한 것으로 상부에 보고되었지만 그 후 아무도 그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절박한 심정으로 인간 성체가 되기 위해 호되게 부화의 과정을 거쳤다.

    나는 병장으로 진급했다. 2년 차 고참병의 특권. 무시로 외출과 외박. 수진에서 몽유병자 같은 끝없는 배회. 만취. 마리화나. 프랑스 병사와 베트남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의 단골 꽁까이.

    1970년 가을경에 나는 상처와 고통이 치유되기는커녕 여전히 심연 깊은 곳에 앙금처럼 쌓인 채로 귀국하게 되었다.

    나는 카렌다에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귀국 특명을 손꼽아 기다린 것도 아닌데 귀국 날짜가 잡힌 것이다.

    그러나 귀국을 얼마 앞두고 있었을 때 장기복무 하사였던 영현병 김 하사가 마침내 귀국 명령을 받자마자 키우던 개를 화장하고 나서 리볼버 권총으로 자신의 심장을 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이 자살하기로 예정한 바로 그 날 화장실의 소각로 앞에서.

    나는 퇴원하기 하루 전 그와 마지막 만날 때부터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상한 이야기이지만 그의 죽음은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는 그날 불면증에 시달리는 우울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날 그냥 좀 내버려두었으면 좋겠어. 만약 귀국 명령을 받게 되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차피 내려오지 않겠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흔해 빠진 말로도 위로나 격려 따위의 말을 입 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의 육신 역시 훨훨 타는 소각로에 들어가 한 줌 재로 변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는 절도의 습벽이 있는 자가 자신의 도벽과 싸워야 하듯이 자살의 유혹과 끊임없이 싸웠다. 그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몹시 예민하고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른 나이에 벌써 인생의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 삶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깨달았고, 그때마다 소각로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집요하게 그의 영혼에 호소하면서 그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불은 정화제였다.

    하지만 그는 한 동안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비상 탈출구를 만들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체념 또는 단념에 익숙해지자 오히려 힘이 솟아났으니 어떠한 고통과 불행이 닥치더라도 상관없다고, 내 삶은 대부분 불행했지만 때론 너무 행복하기도 했었지, 하지만 삶은 한낱 꿈에 불과한 거야, 나에게 종교는 없으니까 다른 세계 같은 것을 믿지는 않는다, 죽으면 그걸로 끝장이다, 인간은 어차피 죽는다, 그러니 조금 빨리 죽는다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쁜 마음으로 어떠한 고난과도 맞설 수 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인내의 한계점에 이르면 간단하게 총을 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만 귀국 특명은 그를 벼랑 끝으로 몰리게 하였다. 그건 그가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었던 마지막 한계였던 것이다.

    그는 늘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는 왜,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렸을까? 그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 그게 실은 혼잣말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변명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내밀한 것들을 하필 나에게 이야기했을까? 그는 누구에겐가 털어놓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 그의 주변에는 말 상대가 되어줄 사람이 나밖에 없었지 않은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중간에 끼어 있는 자신의 위치를 마침내 자각했던 것인가. 까마득한 옛날이었으니까 너무 수치스러웠을까?

    그런데 나는 그가 인육을 먹는 괴기스러운 모습을 직접 본 것은 아니었다. 아마 순진한 날 놀려먹기 위해서거나 또는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잔뜩 겁을 주려고 그렇게 말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호기심에서 한 점을 씹어 먹은 일이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 너무 과장해서 말했거나.

    그는 장교처럼 머리를 길렀었다. 그것도 아무도 간섭을 하지 않으니까 도저히 군인의 머리라고는 할 수 없는 약간 히피처럼 어지럽게 헝클어진 장발이었다. 그때 양쪽 뺨 위로 홍조가 슬며시 번지면서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었던가? 내 힘없는 멍한 시선마저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건 그랬다.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는 술에 취하면 취할수록 나를 붙잡고 말이 하고 싶어서 계속 웅얼거렸다. 약간 비논리적일 때도 있었고, 가끔 목이 메이기도 했고, 깊은 울림의 목소리로 말할 때도 있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의 말에 대해 추임새를 넣으며 맞장구를 치지도 않았고 방해하지도 않으면서 다 들었다.)

    나는 술을 한 모금 가득 목구멍으로 넘기면 안정이 되면서 무슨 일에도 당황하지 않지. 그리고 연거푸 빠르게 두 세 모금 마시면 그때부터 혀가 조금 풀리면서 상대방을 향해 겨우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야. 나는 어려서부터 외톨이였으니까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거든. 그런데 속수무책일 만큼 완전히 취하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마셔도 그럴 경우는 없었다고.

    하지만 이전에는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어떤 경우에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자폐적이었으니까 누구에게도 나만의 비밀을 털어놓지 못했고, 아무하고나 얘기하지도 않았다.

    나는 가끔 혼자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할 때가 있다. 나처럼 혼자인 사람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건 내가 너무 감상적이기 때문이라고…… 내가 남자로써 너무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지면서 스스로 창피해지는 거야. 내가 이렇게나 겁쟁이……아니면 너무 비겁한……

    글쎄. 우리는 전쟁터에 내몰린 군인이다. 허무하기 때문에. 이판사판이었으니까. 우린 피차 너무 외로웠고 말들을 쏟아낼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에. 대화할 상대가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야. 아니면 혼자서 씨부렁거려야 되니까.

    나는 여자도 좋았지만 나중에 남자를 알고 나서부터는 남자가 더 좋았거든. 처음부터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없었어. 그런데 정신병자 취급을 하니까 쉬쉬할 수밖에 없는 거야.

    난 덕구를 벗어날 수 없었다. 단순히 바람피우는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도대체 그를 이해할 수가 없지. 한 길 물속도 모른다는데 사람 속을 어떻게 알 수 있겠나! 그렇다니까.

    내가 칼날에 비소를 묻혀서 그의 가슴을 찌르기 전에는. 그가 떠났을 때 며칠 동안이나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지. 진실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 고통은 시작된 거야. 그때 잠깐 동안이지만 심한 편두통을 앓았다니까.

    아무튼 귀국해봤자 별 수가 없지. 날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영현병은 맨날 시체 치우는 일을 한다. 이제 시체는 푸줏간의 고깃덩어리로 보이지.

    나는 지금도 인적이 완전히 끊긴 그 음산한 작은 숲속 기묘한 분위기를 뚜렷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때 그는 분명히 귀신 이야기를 하였는데 나는 그걸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었다.

    밤이 이슥해지면 그때부터 소각로 주변 숲속에는 가벼운 바람이 살랑거리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지. 그때는 오싹하면서 긴장이 되지. 창백한 귀신들이 하나둘 어둑어둑한 형체로 나타났다가 새벽이 돌아오기 전 소리없이 사라지는 거야. 그들은 결코 추악한 모습이 아니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침묵으로 말을 하는 거야. 나를 빤히 응시하거나 노려보지도 않지. 그냥 슬픈 표정이었어. 처음에는 호기심과 두려운 감정이 뒤섞여서 혼란스러웠던 거야. 하지만 그들에게 죄의식을 느낄 것까지는 없으니까 내가 신경과민이 될 필요는 없는 거지.

    그들은 정말 억울했던 거야. 귀신은 소각로에서 재가 된 사람들의 혼령인 거야. 그래서 귀신과 대화할 수 있지. 나라도 한 맺힌 억울함을 끝까지 들어 주어야 한다니까.

    하지만 그 일은 나에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게 될 테지. 그들이 자꾸만 뭐라고 손짓을 했으니까.

    나는 지옥의 유황불을 상상한다. 쇠막대기로 불꽃을 헤집는 작업은 나를 전율케 하였다.

    하느님이 계신지 모르겠어?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다면 교회에 나갈 수 있을걸. 교회는 연약한 여자들이나 다닌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미신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거야. 그렇니까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구걸하고 있는 거지. 기복신앙처럼. 그래서 그들의 믿음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일시적인 거야.

    그런데 군목을 만난 일이 있었어. 그자의 번지르르한 말을 들으니까 정나미가 떨어졌다고. 나에게 하느님을 들먹이며 무슨 훈계를 하길래 박차고 나와버렸지. 그 자는 성경 구절을 앵무새처럼 읊을 뿐이고, 실제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있더군.

    그가 말한 하느님은 진짜가 아니라는 강한 의심이 들었단 말이지. 그러니까 신은 존재하지 않고 대리인을 자처하는 인간들만 있는거라고.

    나는 더 이상 비밀을 지키고 싶지는 않지. 너에게는 말이야. 우리 부모님은 소록도에 살고 계셔. 여름이면 집 뒤편으로 담쟁이들이 마구 늘어지고 휘감기며 타고 올라가지. 좀 작은 초가집에 살고 있지만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 국가에서 다 지원해주니까.

    아버지는 오래전에 왼쪽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았지. 다리가 썩기 시작했으니까 수술은 불가피했어. 목발을 짚고 다니시지. 그래도 그 불편한 몸으로 오히려 날 걱정한다고.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 온 마리안 수녀님과 마가레트 수녀님도 잊을 수가 없어. 정말 헌신적이었거든.

    4월이면 소록도에는 온통 벚꽃이 피는 거야. 나는 꿈에도 나타나는 남쪽 바다를 잊을 수가 없겠지. 소록도에 가려면 녹동항에서 나룻배를 타야만 해. 너는 모를 거야. 소록도와는 헤엄쳐서 건너갈 수 있을 만큼 지척이야. 아주 작은 어항이라니까.

    나에게는 많은 추억이 남아있어. 일찍부터 거기서 술을 마셨거든. 처음으로 여자도 만나고.

    나는 그때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거렸지만 간신히 입술을 깨물며 목구멍을 빠져나오려는 소리를 참아야 했다. 나는 자신의 과묵함에 대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운 남쪽 바다가 계속 눈앞에 어른거렸다.

    아편은 특효약이야. 머릿속이 몽롱하면서 모든 걸 잊게 해주거든. 상쾌해, 아주 상쾌하다고. 그 귀머거리 여인은 내 애인이었어. 미군들과 거래를 했다고. 주로 항생제를 빼내서 여자에게 갖다주면 그걸 베트콩에게 넘겼어. 그건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치료약이니까 아주 인도적인 행위였다고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은가. 돈과는 상관없는 일이었어.

    그렇게 해서 그 여자를 자주 만났다고. 그런데 신비한 약방문으로 무슨 흰가루를 섞어서 진짜 영험한 약을 만드는 거야. 내가 장담할 수 있지. 그걸 먹어야 된다고……

    나도 의학적인 지식이 있다고. 의사들은 엉터리야, 엉터리라구. 현대의학이 만능은 아니라니까. 엄연히 한계가 있는 거야.

    그래도 기적이 일어났네. 네가 회복되었으니. 다시 생각해 보면 죽을 운명은 아니었던 거야. 저승사자가 너를 데려가기에는 너무 미안했던 거지.

    나트랑을 떠나고 싶지 않아! 동서남북 골목길을 손바닥 보듯이 샅샅이 알고 있으니까 마치 고향 같다니까. 그러니까 저기 머나먼 곳은 아득한 거야. 3년이 지났어도 고향병이나 향수병은 없어.

    우리는 이게 마지막이야. 넌 내일 부대로 복귀할거 아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분일걸. 곧 귀국할거니까. 나는 내 운명을 정확하게 예감하고 있거든. 나 역시 슬픈 유령이 되어 그 숲속을 밤마다 배회하겠지.

    사랑은 부질없는 것! 삶이란 얼마나 가벼운지! 죽음도 역시나!

    그날 초저녁 무렵 그가 한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그때 막 솟아오르는 눈물을 떨구면서 땅바닥만 바라보았었다. 나는 혀가 돌덩이처럼 완전히 굳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102병원에 입원한지 40일이 되었다. 마지막 밤이었다. 그날 밤 나는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수면 상태에서 여러 차례 잠에서 깨어났다. 무수히 많은 꿈들을 꾼 것 같지만 그날 밤 내가 무슨 꿈을 꾸었고 모호한 꿈속에서 또 다른 꿈을 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평생 고독했고 만나는 사람 모두가 타인에 불과했으리라. 나 역시 낯선 사람이라고 여겼고 그래서 여전히 혼자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이야기는 자신에게 들려주는 독백이었다.

    10. 나는 항구에 정박해있는 귀국선 난간에서 멀리 열대의 풍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제서야 평화스럽게만 보이는 이국의 낯선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일들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열대의 베트남이나 기나긴 지루한 전쟁을 숙명처럼 체념한 채 살아가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쁜 기억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안녕! 안녕! 곧 하늘이 어둑해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성난 폭우로 변해서 무섭게 쏟아져 내렸다.

    귀국하는 파월장병들을 싣고 캄란 항을 출발한 미 해군 수송선 바렛호가 열흘 동안의 고된 항해를 마치고 부산항 제3부대에 정박하였다. 곧 간단한 귀국 환영식이 거행되었다.

    1969년 2월 말경은 여전히 추운 겨울 날씨였다. 우리가 한 달 동안 파병 훈련을 받았던 파월장병 교육 부대가 주둔하는 오음리에는 며칠 동안 내린 눈으로 눈밭 천지였다. 우리들을 태운 군용열차는 그날 밤 춘천역을 출발하여 다음 날 오전 부산항 제3부두에 우리들을 내려놓았다.

    남쪽 항구는 벌써 봄기운이 돌았고 부두의 콘크리트 벽 작은 틈새에는 생명력이 질긴 잡초들이 지상으로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출정식이 있었다. 그 의례적인 출정식은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형식적이 되면서 맥이 빠졌지만 말이다.

    그때 떠날 때 들었던 동원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그 무성의하고 맥 빠진 함성소리가 내 가슴 속에서 되살아났다. 백마부대 용사들아…… 백마부대 용사들아…… 그 함성소리에 분명히 김규현의 우울한 목소리도 들릴 듯 말듯 섞여 있었으리라. (그는 그 무렵이면 부산에서 공업고등학교에 다닐 때였으니까.)

    군악대가 군가를 연주했고 여기에 맞춰 여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대가 ‘달려라 백마’를 불렀다.

    아느냐 그 이름 무적의 사나이

    세운 공도 찬란한 백마고지 용사들

    우리를 태운 미군 수송선이 예인선에 이끌려 부두를 떠날 때 나는 난간에 서서 회색 도시를 바라보며 감상적이 되었고 슬픔과 불안을 느꼈다. 먼 바다로부터 바람이 불어왔고 항구를 떠나는 증기선들이 울려 대는 저음의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갈매기 한 마리가 하늘에서 떨어지듯 날아오더니 바다를 스치면서 다시 솟구쳤다.

    우리는 월남이, 어떤 가수가 부른 ‘월남의 달밤’에 나오는 대로 남쪽의 섬나라인 줄만 알았다. 우리에게 월남은 너무나 멀고 낯선 땅이었다. 나는 월남에서 죽을지도 모르고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 당시 군대 분위기는 빽 없고 힘없는 사람만 강제 차출되고 배경이 좋은 사람은 빠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육군에서 가장 하층민인 우리 소총수들은 파월을 죽으러 가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철없는 어린 나이였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두려워했겠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절대적으로 죽음을 확신까지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죽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다.

    나는 퇴원하던 날 후련한 마음으로 환자복을 벗고 상병 계급장이 달린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정글화를 신고 철모를 썼다. 그리고 김현수 대위에게 거수경례를 하였다. 충성!

    김 대위가 말했다.

    유 상병은 오랫동안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어, 그래서 깨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죽는 줄만 알았지. 도대체 병의 정체를 알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려고 하였는데. 조직검사 결과 뇌종양이거나 무슨 암 덩어리가 머릿속에 들어 있었던 건 아니었던 거야.

    그러니까 의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병이야, 그냥 열대지방의 지랄병이라고 할까, 또는 염병이라고 할까. 완쾌될 확률은 일 퍼센트도 안 되었지.

    그래서 말이야, 필사적으로 약을 이것저것 처방하였는데 역시 섬망증에는 새로 나온 강력한 진정제 주사가 효과가 있었던 거지. 그때마다 정신이 아주 몽롱했을 거야. 그 약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경로를 알 수는 없었지만 약효가 확실했지. 네가 차츰 반응을 보였으니까.

    나는 그 약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소마’라는 알약, 그러니까 진정제 역할을 하면서 행복감을 높여주고, 환각 상태에 빠뜨리는 그런 종류의 신비한 약이길 바랐던 거야.

    유 상병이 살아난 게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거지. 기적 같은 것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믿을 수 없을 만큼 회복이 되었거든. 어쨌거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도왔을 거야. 군목 장교가 두 번씩이나 병자성사를 했었거든.

    네가 살아나서 내가 기쁘다구.

    지난달에는 중환자실에서 많이 죽어 나갔거든. 얼마나 우울하던지…….

    그때는 의사로서 한계를 절감하고 자포자기했으니까. 네가 한없이 불쌍했으니까……. 지금이니까 말할 수 있는 거야. 김 중위의 아이디어였던 거야. 정신과에서 간호사를 했으니까. 알고 있을 거야. 야전병원에는 정신과가 없기 때문에 내과에서 대충 보는 거지.

    그녀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엉뚱하게, 화장실 변기 위에 있을 때,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는 동안에, 혼자서 몰래 술을 홀짝거리다가 떠올랐을 수도 있어. 술을 좋아했으니까. 아이디어는 그렇게 떠오르거든.

    솔직히 말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으니까. 네가 죽었어도 문제 될 것은 하나도 없었지. 여긴 군대니까. 그리고 전쟁터이지. 병사들은 파리 목숨이거든. 아무도 신경 안 써.

    내가 말했다.

    그랬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전 죽어도 상관없는데…… 자신의 존재 자체가 여분이라고…… 잉여라고…… 느끼고 있었거든요. 전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데 살아남은 거죠. 전 그 유일무이한 신을 믿지 않으니까요. 지금 생각으로는 제가 죽을 때까지도 인정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순전히 우연 때문이겠지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하여튼 다시 살아나서 원대복귀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네가 잉여적 인간이라고 고백하는 거야. 벌써…… 사르트르를 읽은 거군. 로캉탱을 흉내 내는 거겠지. 어리석은…… 정말 어리석은. 모든 인간은 언제나 잉여인 거지.

    그런데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너무 일찍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을 거야. 인간은 나이가 먹을수록 정체성이 변하니까.

    하지만 후유증이, 정신적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겠지. 어두운 불안감 때문에 평생을 시달릴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의사의 처방이나 약물의 작용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스스로…… 의지의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거야.

    내가 말했다.

    목사님은 그때 병자성사를 한 게 아니고 예수가 한 소년의 몸에서 마귀를 쫓아낸 것처럼, 제 몸에 깃든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 퇴마 의식을 치렀던 게 아닐까요?

    이제 보니 제 병은 정신적인 거였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더위를 너무 먹어서 그만 미쳐버렸다고 하면 설명이 가능하겠군요. 그래서 김 중위님이 정신과 약을 생각해 냈을 겁니다.

    제가 귀신이 들려서 또다시 미쳐버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영험한 아프리카의 퇴마사를 만나야겠지요. 그러려면 사막으로 떠나야 할 겁니다.

    그 진단은 모호할 수밖에 없었어. 전투의 트라우마 때문에 나타난 심신의 반응일 수도 있었겠지. 때때로 의사보다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더 잘 알 수 있으니까.

    그 나이면 문학청년이라고 가정하자고. ……그럴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사춘기를 지나면서 겪는 통과의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했어.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으니까.

    아니면…… 청소년들이 성장기에 어김없이 겪게 되는 기성세대와 낡은 제도, 고루한 관습과의 싸움에서…… 전쟁은 어른들이 하는 관습적인 행위니까…… 영혼의 투쟁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네. 그런데 승리했단 말이지. 축하해야 할까.

    내가 말했다.

    이겨냈다고요……? 논리가 너무 비약한 게 아닐까요?

    사랑을 해 본 적이 있었던가? 사랑은 변덕스럽지만 위대한 거야. 사랑은 당신을 치유할 수 있어. 간호사가 당신을 사랑했을까? 그러니까 그렇게 안타까워했겠지. 그리고 그 치료약을 찾아낸 거지.

    나는 그날 밤을, 그녀가 눈물을 흘렸던 깊고 푸른 밤을 돌이켜서 생각해 본다. 우리가 함께 있었을 때 그녀가 감정이 고조되어 뺨이 붉게 타올랐던 그 순간을,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짙은 향수 냄새가 코를 간질이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 내가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 시도했다면 그녀도 열렬히 응했을까.

    그런데 나는 어땠는가. 아주 무책임하게도 귀국한 후에는 세 살인가 네 살인가 연상녀였던 그녀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물론 그녀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피장파장이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순간 우연히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이에 불과했던 것일까.

    오직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만 남아 있다. 그 사진 속에 나는 없다. 그 병동의 출입문 기둥에 기댄 채 중위 계급장 군복을 입은 그녀가 팔짱을 낀 채 희미하게 웃고 있다. 나는 그 사진의 입수 경위를 자세히 기억할 수 없다. 아마 그녀가 나에게 선물했던, 아니면 그냥 주었던, 여태 읽지도 않은 채 가지고 있는 그 책의 책갈피 속에 끼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귀국의 순간은 기쁘지도 않았고, 홀가분하지도 않았다. 낡고 무거운 따블 백을 어깨에 메고 패잔병의 모습으로 송정리 고향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집이란 아무리 초라한 초가집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가족을 품에 안고 있다. 집은 온전한 평화를 상징하고 한 개인의 삶을 둘러싼 총체적 추억이 담겨져 있는 곳이 아니겠는가.

    어둡고 긴 여행으로부터 씁쓸한 귀환.

    나는 편안히 쉴 수 있는 도피처가 필요했던가. 난 지금부터 어떻게 될 것인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그 전쟁은 허무맹랑했다. 물거품 같은 거였다. 어쨌거나 국가의 준엄한 명령에 의해 코미디 같은 전쟁에 단지 어릿광대의 단역으로 출연한 거였다. 그 전쟁은 나와는 무관한 것이어서, 전혀 중요하지도 않았고, 무의미했고, 그래서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 전쟁을 ‘항미 구국 전쟁’ 또는 ‘조국 해방 투쟁’이라고 했고, 우리더러 ‘미군의 지휘를 받는 남조선 군대’라거나 ‘박정희 용병’ 또는 ‘아! 몸서리쳐지는 한국군’이라고 했지만, 한국군 사령부는 ‘반공 성전’이고 ‘자유의 십자군’이라고 계속 강조했다.

    나는 무사히 귀국했으니까 새삼스럽게 그 전쟁의 의미를 다시 되새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빨리 잊혀질 건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혐오감을 느꼈고 냉소적이었다.

    그 전쟁은 낭만적인 불꽃놀이 같은 거였을까? 연대 본부가 주둔해 있는 수진에서는 전쟁의 긴장감은 도대체 느껴지지 않았다. 주인 없는 똥개들이 꼬리를 말아올린 채 한가롭게 사창가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현실은 지루하고 권태롭고 무기력했다. 태양이 지글지글 타오르는 월남에서 전방도 후방도 없는, 전쟁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특수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그 전쟁에 무슨 동기가 있었던가? 선과 악의 대결이었다고 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저주받은 어리석은 전쟁이었을까. 최소한 아주 조금이라도 어떤 의미가 있어야 될 것 아닌가. 전쟁의 최종 목표는 무엇이었던가? (그때는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패배한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그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처럼 보였다.)

    참전자들은 자유의 십자군이고 평화의 사도였을까? 월남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단 말인가. 우리가 월남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열렬히 환영하는 사람은 월남 사람들이 아니고 미군 병사들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미군에 대해서는 심한 열등감을 느꼈고 월남인에 대해서는 우월의식을 느꼈다.

    어쨌거나 군인은 오로지 국가의 명령만 따르면 되니까, 그 전쟁이 옳았는지 어땠는지 전혀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는지 모른다. 그러면 우리들은 모두 육체적 정신적 상처 없이 멀쩡하게 살아서 귀환했을까?

    내가 참전의 혼란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나의 삶 자체를 총체적으로 당혹스러워했던가?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잖은가. 삶이 맹목적이듯 전쟁이 맹목적이면 어떤가. 하지만 전쟁터에서 제대로 치러진 작전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명예롭게 적의 총탄을 맞은 것도 아니고 그저 열대병에 걸려서 죽음 직전에까지 이른 것은 참전용사로서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랬다. 멋쩍은 일이었던 것이다.

    내 마음속에 그 충격적인 순간들의 이미지가 혼란스럽게 뒤엉키면서 아른거렸다. 자살을 한 김 하사나 탈영을 감행한 김 병장과 비교한다면, 나는 자기중심적이고 가식적인 어쩌면 비굴한 위선자일지도 모른다고 깨닫자 내 입가에 악의적인 비웃음이 떠올랐다. 스스로에게 실망한 것이다.

    김 병장은 죽었는가 살았는가. 하지만 그의 고향집을 찾아가는 일은 너무 두려웠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를 끝내 막지 못한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미안함과 함께 죄의식을 느꼈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 어차피 지나가는데…… 그걸 젊은 날의 통과의례로 가볍게 치부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을까?

    내가 귀국할 무렵에는 베트남 전쟁이 갈수록 격렬해지면서 반전 시위도 격렬해져서 제국주의 미국은 둘로 분열되어 갔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그 전쟁에 의해 삶이 철저히 파괴되고 파멸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은폐된 채) 일사불란했고 국론 분열은 없었다. 우리는 언제든지 용감한 파월 용사였다. 그때는, 제3공화국 박정희 대통령의 원대한 꿈이 마침내 영글어서 그 밑그림이 거의 완성될 무렵이었다. 그 얼마 후 우리 시대의 저주이자 악몽, 망령인 유신체제가 엄숙하게 선포되었다.

    11. 그러나 무사히 귀국하였다는 안도감은 들지 않았다. 대신 전쟁에 대한 기억들이, 악몽들이 무섭도록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이건 나만의 기억이 아니다. 그 전쟁에 참전했던 우리들 참전 군인 모두의 집단기억이기도 하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아련한 추억인 것처럼 아직도 잊지 못하는 옛날 일을 상기했다. 그리고 이야기하면서 허탈하게 웃거나 그날 밤을 기억하며 가끔 눈물을 훔쳤다.

    우리들은 부질없이 원망 아닌 원망을 하기도 했다.

    그때 진지 위치가 영 아니었어. 너무 아래쪽이었다니까.

    왜? 소대장한테 말하지 않았었지? 그걸 지적했어야지.

    소대장 성질을 몰라서 그래. 틀림없이 불같이 화를 내면서 발길질을 했을 거라고. 맨날 하는 소리가 명령 불복종 아니었어!

    소대장은 나이가 나보다 어렸어.

    소대장은 그때 갈가리 찢겨서 죽었어. 지금 국립묘지에 누워있겠지. 그러니까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자고. 불쌍하지, 뭐.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누구도 예상을 못 했으니까, 그저 늘 있는 매복 작전으로 생각했으니까, 그 엄청난 사건이 끝나고 난 다음 한참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런 일이 어떻게 우리에게 일어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내내 숨어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우리가 새벽녘이 되어 방심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다. 우리는 순식간에 대혼란에 빠졌고 지리멸렬했다. 그들은 재빠르게 치고 빠졌으니까 돌격과 백병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칠흑 같은 밤. 청음초에서 보초 근무. 마름모꼴 남십자성. 모기떼와 거머리들, 군복 속을 스멀스멀 기어 다니며 지랄같이 엉겨 붙는 불개미들이 득실거리는 늪지. 전갈은 소리없이 정글화에 숨어들어 생명을 위협했다. 갈대밭. 가시덤불. 강의 지류. 메콩 강. 비 오듯 쏟아지는 땀. 사타구니의 습진. 상처투성이. 베트콩. 월맹 정규군. 그들의 출현을 기다리는 고통스럽고 지루한 매복의 시간. 참을 수 없는 갈증. 불안. 공포. 팬텀기 편대. 105밀리 곡사포의 포탄. 조명탄. 시누크 헬기의 굉음. 드륵드륵 연속 발사되는 M16 소총. AK-47 소총. LMG의 속사음. 클레이 모어, 부비트랩이 터지며 나는 귀를 찢는 듯한 폭발음. 로켓포 소리. 수류탄 터지는 소리. 화염병사기의 무차별 난사.

    부산! 부산! 여기는 대구!

    작전 종료! 철수하라. 반복한다.

    수고했다. 중대 진지로 철수한다.

    엎드려라! 움직이지 마라!

    엄호 사격!

    수류탄이다!

    시체라도 찾아야 한다.

    소대장님! 미안합니다.

    한 달밖에 안 남았심더.

    살아서 귀국해야지.

    진짜로 고맙심더.

    우리 자주 편지 쓰자.

    호찌민 루트. 혼바산과 죽음의 계곡.

    화약 냄새. 시체 타는 냄새. 화장터. 야전병원. 연기. 공동묘지. 실루엣. 피 묻은 파편. 피로와 배고픔. 수면 부족. 두려움. 죄책감과 공포. 혐오감. 증오. 눈물. 고함. 욕설. 비명. 신음. 절규. 아우성. 광기. 잔혹한 학살. 피. 시체. 죽음의 냄새. 허무. 망상. 환영. 고통을 잊기 위한 또는 황홀경을 위한 마리화나. 혼동. 역겨움. 파괴. 완전한 무의미. 수진 마을. 꽁까이. 성병 (곤지름, 임질, 매독). 갈등. 자살. 범죄적 불법행위. 귀국, 귀국 박스.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늘 안개가 자욱했던 안케 언덕과 안케패스 전투.

    잘 싸운 전우들은 모두 전사하고 말이 없다. 구경꾼들이 오히려 수많은 이론과 원칙을 내세워 비판하고 작전을 폄하하고 있다.

    숲과 평야에 가랑비처럼 뿌려지던 에이전트 오렌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처인 심장을 향해 느리게 날아오는 총알과 같은 고엽제 후유증.

    빈딘 성의 민간인 대학살과 빈호하 마을의 학살.

    이곳에서 1966년 12월 6일 남조선 군인들이 무고한 민간인 131명을 학살하였다.

    밀라이 대학살.

    그때 이후, 모호한 시간에

    죽음의 고통은 되돌아온다.

    그리고 나의 섬뜩한 이야기가 말해질 때까지

    내 가슴은 불타리라.

    12. 다라트 지역의 깊은 정글.

    숲에서 회색 안개가 소리없이 피어 올라왔다. 태양의 열기는 수그러들었다.

    우리 소대는 멀리 우회해서 하늘에서 내려온 고엽제 때문에 누렇게 말라버린 황폐한 개활지를 지나왔다. 개활지에서는 모든 게 다 보였다. 침묵뿐인 풍경들이. 건너편 수면이 청록색 얼룩들로 덮인 호수가 보이고,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강의 지류가 보이고, 우리가 건너야 할 늪지대, 울창한 숲이 우거진 산등성이, 아주 먼 곳에 있는 다라트 지역의 산봉우리들까지.

    그러고 나서 방향을 서북쪽으로 바꿔서 개활지와 숲 사이에서 경계선 역할을 하는 정강이까지 빠지는 음침한 늪지대 수렁을 헤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겨우겨우 전진했다.

    물은 따뜻했다. 나는 약간 깊은 구덩이에 빠질 뻔했지만 곧 균형을 잡았다. 그 순간 깊은 수렁에 발을 디뎌 꼼짝할 수 없이 빠져버린다면, 그래서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올 수 없고 물이 입과 코를 막아버린다면, 그걸로 끝장이 날 거라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우리는 오후 늦게 작은 마을이 연이어 늘어선 지역을 이미 통과했다. 기관총과 M134 미니건으로 무장한 미군 헬리콥터들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마을 위로 날아서 사라졌다.

    며칠 전에 작전지역에 미군 폭격기의 융단 폭격이 있었지만 고성능 폭탄을 아무리 엄청나게 쏟아부어도 그건 말짱 헛일이다. 그놈들은 그때 깊은 갱도에 편안하게 쉬고 있었을 테니까. 덥고 습한 울창한 숲의 터줏대감인 반달가슴곰과 노란뺨 긴팔원숭이들만 혼비백산하여 울부짖다 멸종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항상 지나가기 편한 지름길인 오솔길을 우회하였다. 베트콩은 틀림없이 부패한 월남군으로부터 입수한 진짜 미제 지뢰 또는 불발탄 곡사포탄으로 직접 조립한 지뢰를 설치한다.

    우리는 총격전에서는 언제든지 반격할 기회가 있었다. 더욱이 우리의 화기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니까. 그러므로 매복 공격을 받았을 때 첫 번째 집중사격에 당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반격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러나 지뢰에 걸리면 쾅 터지는 폭발과 함께 끝난다.

    파월 장병은 원칙적으로 복무기간이 1년이었다. 그러나 전사자는 대부분 월남에 온 지 석 달 만에 전투 중 사망한다. 풋내기 시절에. 나는 이 기간을 무사히 넘겨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전면적인 충돌이 일어나서 몇백 명씩 죽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그때그때 한 번에 한 명씩 죽어나갔다. 우리는 죽으면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베트콩의 예상 침투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목표 지점에 모래와 진흙으로 급조한 임시 참호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M16 소총의 조종간을 연발에 맞춰놓았다. 등줄기에서는 벌써 식은땀이 빗줄기처럼 줄줄 흐른다.

    우리는 잔뜩 긴장한 채로 하염없이 기다린다. 밤새 긴 기다림의 시간. 우리는 지금 매복한 사냥꾼이다. 제물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는 순간을 기다린다.

    병장이 수통에 챙겨온 술을 돌려가며 나눠 마셨다. 한 모금의 독한 술이 찌르르하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병장이 속삭이는 어조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높게 쏘지 말란 말이야. 초짜들은 하늘을 향해 쏜다니까. 마구 쏘지 말고. 소총 가늠자를 많이 내려야 된다고. 몸도 낮추고.

    소대장은 어린애야. 원래 촌놈이었어. 그가 시키는 대로 하면 안 돼. 쉿! 오늘 밤은 어쩐지 불길해. 진지 위치가 영 아니거든. 위쪽에서 공격하기 좋게 너무 낮은 곳에 있다고. 그냥 무사히 지나갈 수도 있겠지.

    교회 다녀? 하느님께 미리 기도하라고.”

    그때 소위는 저 멀리서 권총 혁대 위에 양손을 걸친 채 무전병과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어젯밤 나는 소대장의 지시로 미제 M1911A1 권총을 분해해서 기름칠한 헝겊으로 정성스레 닦은 다음 다시 조립했고 탄창에 8발의 탄환을 장전했었다.

    잠시 몬순의 지독한 비가 한동안 쏟아지며 숲속에서 소란이 일어났지만 비가 그치자 곧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새들과 벌들, 나비들은 날갯짓을 멈췄고, 붉은 개미, 곤충들도 몸짓을 멈췄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소리만 들린다. 하늘에서 별들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그러나 황량한 그날 밤은 섬뜩하리만치 적막했다.

    숨막히는 정적이 흐른다. 나는 갑자기 허벅지가 뜨겁고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오줌을 지렸다.

    나는 그때 짧은 턱수염을 기르고 눈이 충혈된 그가 검은 파자마를 입고 이마에는 검은 띠를 동여맨 채 나를 정조준하며 달려드는 환상에 시달렸다. 제발 오지 마. 왜, 나를 향해 달려드는 거야? 나를 죽이려고?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나를. 나는 무사히 돌아가야만 해.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거든. 그러니 오늘 밤은 그냥 넘어가자고. 나는 무사히 귀국할 거야.

    별들이 이울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시름 놓았다. 모두들 긴장이 풀어지면서 몸을 비틀고 하품을 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새벽 네 시였고 공기는 시원해졌다.

    어느 순간 팽팽한 긴장감이 공기 중에 감돌고 우리의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등골이 서늘해지며 몸속의 모든 신경이 곤두선다. 손과 발은 땅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무슨 불가사의한 전조가 있었던 것일까. 곧바로 머리 위로 베트콩의 박격포탄이 터지고 AK47 소총의 근접 사격이 쏟아졌고, 방망이 수류탄이 터졌다. 우리는 함정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기습을 당했다.

    뒤늦게 예광탄이 줄지어 날아오고 포탄의 폭음 소리가 귀청을 찢었다. 젊은 소위가 외쳤다. 사격하라! 사격! 집중 사격!

    나는 심장이 마구 뛰었고 엉겁결에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주저하지 않고 쏘고, 쏘고, 또 쏘고. 탄창에 있던 총알이 다 소모되도록 쏘았다. 잠시 사격을 멈췄을 때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준 사격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숲을 향해 총을 갈긴 것이다.

    뜨거운 피가 튀었다. 비명. 아우성. 씨발, 씹새끼들. 시체들.

    죽음의 냄새가 가득히 퍼졌다.

    그때, 무전기가 울렸다. 부산! 부산! 빨리 나와라! 여기는 대구! 작전 종료! 종료! 철수하라. 반복한다. 철수……! 반복……!

    베트콩은 재빨리 검은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숲은 다시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망연자실하였다. 정지된 화면 같고 시간이 얼어붙어 버린 것 같기도 하였다.

    아침이 오고 날이 밝았다.

    소대원 중에서 많은 병사들이 부상당하고 죽었다.

    신참 박 일병은 오른쪽 으깨진 정강이가 무릎에 덜렁거리며 간신히 붙어 있었고 검붉은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철모 하나가 버려진 조개껍질처럼 바닥에 떨어져 있다. 그 곁에 귀국을 보름 남겨둔 소위가 한 손으로 피와 내장이 쏟아져 내리는 자기 배를 틀어쥐고 있었다. 위생병이 지혈을 시키기 위해 압박붕대를 감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지금 손쓸 틈도 없이 죽어가고 있다. 누구인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수통을 열어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물을 소대장의 입술에 부어준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울었다. 울고, 울었다.

    병장은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넋이 나간 채 우두커니 서 있다.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제발, 죽지만 마라…… 죽지 말라고.

    우리는 그날 부대로 귀환한 후 혼수상태에 빠진 것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 세상에는 직접 몸으로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전쟁이 바로 그렇다. 전쟁이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도, 예측도 할 수 없는 처절한 몸부림이고 죽음의 고통인 것이다.

    낯선 장면 혹은 낯선 풍경.

    이건 전쟁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러서 새삼 돌이켜본다고 하더라도 그걸 어떻게 경험이니 체험이니 하는 상투어로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전우의 죽음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죽은 자들은 누워 있고 나는 그들 가운데 서 있었다. 나는 살아남았다. 솔직히 말한다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 때문에 심한 죄의식을 느꼈다.

    나는 그 전쟁의 참여자였나 아니면 목격자에 불과했을까. 증언자로서 자격이 있을까. 그들의 육성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사람이란 날이 갈수록 더욱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늙고 죽는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듯 잊어버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의 무덤을 찾아보아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그는 꽃들이 심어져 있고 묘석이 서 있는 잔디가 푸릇푸릇한 풀밭 아래 한 줌 재가 되어 누워 있다. 그게 별로 어렵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대장이 묻혀 있는 동작동 국립묘지를 단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잊어버리기 위해서, 그날 밤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이 두려워서, 눈물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를 여전히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으니 그 후 오랫동안 정서적 과잉 긴장감, 불안과 두려움, 무력감, 과도한 민감성, 공포, 편집 성향 같은 증세 때문에 격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너무 과민해서 쉽게 잠들 수 없었고 심한 불면증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

    (전쟁의 참상을 겪고 나서 그 후유증으로 정신적으로 망가지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그런 증상은 귀국한 후 상당한 시일이 지나서 나타났다. 하지만 내가 심각한 정신질환의 일종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전형적인 증상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주 오래된 후의 일이다.)

    13. 김정현 병장.

    실종자 (혹은 탈영병).

    월남어 교육대 출신. 그는 파병 초기 보병 중대에서 몇 개월간 전투에 참가한 후 뒤늦게 대학에서 불문과를 다녔다는 학력 때문에 선발되었다. 그는 교육을 마친 후 연대 민사과에 배속되어 대민 지원 활동에 동원되었다.

    나와는 월남 파병 동기였고 나이는 겨우 한 살 위였다.

    우리는 보충 교대병력으로 도착해서 보병 부대에서 필요한 교육훈련을 함께 받았다. 먼저 M16 소총의 분해, 결합과 사격법을 실제 사격을 하면서 교육받았고, M79 유탄발사기, 신형 RKT 사격법, (푸른 스모그라 불렸던) 신호탄, 수류탄, 크레모아 등 각종 화기들의 사용법을, 베트콩의 전술과 특징, 베트콩의 요란 사격에 속지 않는 법, 지뢰와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는 장소의 탐지와 조치, 매복 정찰 요령 등등을 배웠다.

    교관인 귀국 말년 중사가 말했다.

    이 전쟁은 이유가 없어. 이유가 있다고 해도 이유가 옳든 그르든 상관할 것 없어. 우리는 1년만 견디면 되니까.

    다른 놈이 나를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죽여야 되는 거야.

    미군은 황색 인종을 멸시하니까 베트남을 인디언 땅이라고 하지. 그러니까 우리는 황색 인종끼리 싸우는 거야.

    미국이 왜 우리를 끌어들였겠어. 월남전이 백인과 황인종의 전쟁으로 인식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황인종인 한국군이 필요했던 거지. 그걸 알고 있으라고.

    여기는 고정된 전선이 없어.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할 수 없다고. 군복도 입지 않고 검정색 파자마 차림으로 돌아다닌다.

    언제나 다니던 길을 다시 가면 안 된다. 통행이 잦은 곳에는 반드시 부비트랩을 설치하지. 길가에 문이 열린 폐가가 있으면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마라. 거기에도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지. 다시 강조한다. 열린 문을 조심하라.

    그놈들은 별거 아냐. 적은 그들이 아니야. 여긴 소련제 탱크도 없고 미그기도 없어. 지뢰와 부비트랩만이 사방에 널려 있다. 부비트랩이라는 말만 들어도 피 냄새가 난다. 몸서리쳐지지.

    매복할 때건 정찰할 때건 밤중에 담배 피우지 말고 모기약 바르면 안 된다. 저격병이 쥐도 새도 모르게 지켜보고 있다.

    마지막이다.

    거머리를 조심해야 한다. 거머리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매복을 나갈 때는 거머리가 들러붙지 못하게 바지 끝을 단단히 붙잡아 매고 그 위에 정글화를 다시 단단히 조여야 한다.

    절대로 죽지 마라. 그건 개죽음이다. 무사히 귀국해야 한다.

    우리는 저녁이 되면 자주 연대 PX에서 만났다. 내가 대대본부에서 근무하면서부터 같은 영내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어김없이 형님, 그것도 큰형님 행세를 하였고 나는 어느새 이를 받아들이고 완전히 긍정하였다. 나는 흉내조차 낼 수 없게 멋있게,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것처럼 휘파람을 불 수 있고, 이중 인격적이면서 성숙한 인간이었으니까. 그러므로 그의 내면에는 양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감정들이 뒤섞어서 공존하고 있다.

    그새 몰라보게 어른이 되어 있었다.

    어쨌거나 우린 친했고 서로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가 맨날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심문 (또는 고문)하는 고정 메뉴가 있었다. 그는 대단한 고참인 것처럼 한껏 거들먹거리며 과장해서 위악적으로 말했다.

    넌 순진하긴 한데 쪼다라고 할 수 있어. 아직도 완전한 쪼다. 순진한 게 좋은 게 아니야. 그건 병신 머저리라는 말의 완곡어법에 불과한 거지. 넌 담배도 못 피우지…… 술도 못 마시지…… 내가 말하는 술은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시는 말술을 말하는거야. 붕붕도 못하지. 노름도 못하지.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냐 말이야? 그것들이야말로 인간 성체의 징표인데 말이지.

    저승의 문앞까지 갔다 왔으면서…… 인생은 아무것도 아냐.

    케 세라 세라!

    너 혹시 독실한 예수쟁이 아니야?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목사 아니면 전도사 집안인 거지? 황금 십자가와 묵주는 어디에 숨겨놓은 거야? 네놈이 월남까지 왔으면 기념으로 붕붕쯤은 해야 될 거 아냐. 딱지를 떼란 말이야.

    너 같은 놈만 있다면 말이야, 수진 마을에서 젊고 예쁜 여자 2,000명이 날이면 날마다 목을 빼고 남잘 기다리고 있는데…… 그러면 걔들은 도대체 뭘 먹고 살겠어. 물만 마시고 사느냐 말이야. 너는 도대체 말이야, 인간의 본성인 연민의식이 없는 거야. 난 전투 수당을 몽땅 수진에 갖다 바쳤어.

    날 너무 무시하지 말라고. 나라고…… 어쩌겠어. 나는 더 이상 순수하지 않다니까.

    뭐라고?

    귀대하기 전날 나트랑 시내에 갔었다니까. 허탈감만 느꼈지.

    그까짓 거 가지고. 네가 애송이인 것은 틀림없어. 또 뭐가 있는데? 말해 보라고.

    나도 전투에 여러 번 참가했다니까. 정찰과 매복 작전에도 나갔고. 죽을 고비도 몇 번 있었지.

    베트콩이 총을 내게 겨눈 채 오랫동안 바라보더니 발사하지 않고 숲속으로 그대로 사라지더라고. 나는 그때 머리가 하얘지면서 정신을 놓아버렸지. 내가 그렇게 불쌍하게 보였던 거지.

    여자와 사랑 문제는 전투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야. 전혀…… 진짜 사랑 말이야. 그러니까 너는 아직…….

    내가 좋아하는 아폴리네르의 시를 다시 들려주어야만 하겠지. 이게 마지막일 거야. 시인은 화가 마리 로랑생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사랑했거든.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우리 사랑을 나는 다시 되새겨야만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슬픔 뒤에 왔었지

    …… 사랑은 가버린다 흐르는 이 물처럼

    사랑은 가버린다

    이처럼 삶은 느린 것이며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왜?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하는 거야?

    나도 모르겠어. 그런 생각이 든다고.

    그러니까…… 내 말은…… 섹스를 하려면 제대로 하란 말이야. 장난치지 말고. 로마인들은 ‘동물은 교미 후에 슬프다’고 했어.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고.

    내가 공짜로 시켜줄게. 제발 좀 따라만 와주라. 진짜배기 아라비아산 낙타 눈깔도 줄게. 그게 말이야, 신비한 요물이거든. 여자가 환장을 하는 거지. 남자도 덩달아 환장을 하고 말이지. 그쯤 해야 섹스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게 되겠지.

    이 형님의 당면한 소원이 뭐겠어. 네놈 물건이 퉁퉁 부어 가지고 농이 질질 흐르는 꼴을 보는 게 나의 소원이지. 가끔 대가가 따른단 말이야. 인생의 단맛 쓴맛을 비로소 맛보게 되는 거지.

    알겠어? 입에서 아직도 젖비린내 나는 놈아, 그걸 고상하게 말하면 구상유취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말이지, 그래야만, 네가 비로소 인간이, 사내가 되는 거야. 너에겐 지금 하나의 과정이 필요한 거야. 인간 성체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 넌 알에서 하루빨리 부화해야 하는 거야.

    나는 늘 똑같이 반응했다.

    또…… 쓸데없는 소릴……. 나는 이미 부화했다니까.

    그게 뭐 어렵다고. 5불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꽁까이, 붕붕, 오케이 하면 될 거 아냐.

    그래, 그렇게 하라니까. 넌 보나마나 조루일 거야. 그걸 완화시키는 약은 아직 없으니까…….

    그날 저녁, 어스름 빛 속에서 나무들을 말끔하게 베어낸 개활지와 늪지대를 지나 조림된 고무나무 밭과 검고 칙칙한 열대의 숲이 멀리 보였다. 그러나 강에서부터 기어오른 짙은 회색 물안개가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입에서 여전히 술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다. 김 병장이 마리화나를 피워 물며 말했다.

    이건 정신적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진통제이거든. 온몸이 노곤해지고 황홀해지지. 이 맛을 모를 거야. 알 턱이 없지. 작전에 나가기 전에 한 대 맛있게 피우면 고통을 이길 수 있으니까.

    며칠 전 수진에 갔다 왔지. 근 한 달 동안이나 못 만났거든.

    뻔할 뻔자지, 보고 싶었던 거지. 그게 아니고 하고 싶었던 거지. 그래, 그렇게 좋아? 그 여자 이제 지겹지도 않아?

    그 앤 그런 여자가 아닌 거야. 단순한 배설구는 아니었지. 내 여자이지. 영혼만은 순결하지. 난 랑린의 순수하고 달콤한 냄새를 맡고 들이마시지. 그 앨 보면 오히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작은 물고기가 내 혈관 여기저기를, 심장에서 모세혈관까지 헤엄치고 다니는 기분이 들지.

    하지만 그 앤 가끔 눈물을 보일 때가 있는 거야. 메콩 강을 그리워하는 거지. 자신은 그 강의 일부라고……. 그 앤 내가 사준 은팔찌를 항상 차고 다녔던 거야. 그 앤 내 아이를 갖고 싶어 해.

    얼씨구, 열녀 춘향이가 따로 없네. 아예 결혼해서 한국으로 모시고 가지 그래.

    야, 임마, 난 이래 봬도 뼈대 있는 종갓집의 장손이야. 그 낡고 고루한 집안에서 용납하겠어. 야단법석, 난리가 나겠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가 다급하게 랑린을 찾자 마담년이 뚱했어. 여기에 없다는 거야. 내가 신경질 부리고 눈을 부라려도 그 여자는 비웃었지. 자기는 모른다고 딱 잡아떼는 거야. 그러면서 그 앤 결코 돌아오지 않을 거라구, 죽은 셈 치라는 거야.

    다른 애들이, 새로 온 여자애들이 있으니 마음대로 고르라는 거였어. 마담 밑에는 모두 열 명의 아가씨가 있다는 거지. 그 여자는 철저히 장삿속인 거야. 다른 집에 단골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지. 포주들은 어디서나 돈밖에 모른다니까.

    내가 1년 동안이나 다른 애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일편단심 그 애만 만난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야. 그래서 눈이 뒤집혀 가지고 단도를 빼들어서 마담의 목을 겨누었지. 그때는 정말 목을 따 버릴 작정이었어.

    그제서야 마담이 털어놨어. 랑린이 고향으로 이미 떠났다는 거야. 몬순 계절이 되면 메콩 강 델타는 엄청나게 범람한다는 거지. 그 전에 서둘러서 메콩 강 하류에 있는 빈롱으로 출발하였다는 거야. 고향에는 늙은 홀어머니가 계시지. 아버지도, 두 오빠도 전쟁 중에 죽었거든…….

    그가 낯설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단도를 빼들고 목을 겨누었다는 말은 빼라고. 믿지 않을 테니까. 왜 나한테까지 뻥을 치는 거야? 형은 그럴 수 있는 잔인한 인간이 아니야. 파리 한 마리도 못 잡으면서.

    넌…… 날 오해하고 있는 거야. 날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야. 절대로 아니지.

    나는 어떤 아득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어쩔 셈인데?

    나에겐 랑린밖에 없는 거야. 나도 떠날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멀리 떠난다는 거지. 그 앨 찾아서. 이게 사랑인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람브레터를 타는 거지. 아니면 지붕에 승객을 태우는 장거리 버스를 교대로 타고서 무작정 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거야. 월남 지도를 구했거든. 빈롱까지 가는 거지.

    월남 사람처럼 옷을 입고 그들처럼 행세를 할 거야. 내 월남어가 어느 정도는 통하겠지.

    메콩 강이 꿈결처럼 흘러 흘러들어서 마침내 태평양 바다와 만나는 곳이지. 여기서부터 천릿길이 될 거야. 나는 원래 방랑자적 기질이 있으니까……. 이런 여행쯤이야. 돈이 좀 필요하지. 네가 가지고 있는 걸 전부 내놔야 할 거야.

    지금, 제정신이냐! 제정신이냐구? 대관절 사랑이 뭔데! 그렇게도 사랑 때문에 단맛, 쓴맛을 봤으면서……. 지금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거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상황을 정리해 보려고 애를 썼다.

    그의 얼굴에 숨겨진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여윈 얼굴에 피로한 눈빛과 냉소적인 미소가 어려 있다. 그가 다시 마리화나를 피워 물었다.

    내가 먼저 말했다.

    귀국해서 학교를 마치고 나면 시인이 되고 학교 교사가 된다는 꿈은 어떻게 되는 거야. 곧 귀국이고…… 귀국하면 바로 제대하는데 말이야……. 얼마나 순탄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데…….

    콤플렉스 때문에 여태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나는 4수 중에 입대 통지를 받았다고. 제대하면 말이야, 대학을 포기하든가 아니면 다시 4수를 해야 한다고요.

    그랬던가?

    다시 말하지만 형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비이성적인 감정에 휘둘리고 있는 거라니까. 이건 운명이 걸린 중대한 문제야. 실수하고 있다고.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될 거야.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정신 차리라니까. 정신을…….

    이건 생사가 걸린 문제……. 빈롱은 고사하고……. 천릿길이라며. 가는 도중 붙잡혀서 총살을 당할 거라고. 포로가 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거나. 자살 행위라니까. 월남 사람들 베트콩과 한통속인 거 알고 있잖아. 그들을 끝까지 속여넘길 수는 없어. 한국군을 보기만 해도 몸서리치니까 즉시 신고할걸.

    나는 평소에 쓰지 않았던 거칠고 상스러운 욕설들이 마구 튀어나오려는 순간 심호흡을 하였다. 나도 모르게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솟고 아무리 짜증 나는 순간이라고 해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형한테 욕설까지 퍼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던 것이다.

    그만 해둬.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상관없어. 이 단계에서 내 결심은 절대로 바뀔 수가 없어. 부대는 잠시 난리가 날 거야.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그건 잠깐뿐일 거야. 작전 중 행방불명이나 사고사로 처리하겠지. 전쟁터에서 병사가 탈영하면 부대장의 경력에 엄청 흠이 되는 거지. 진급에도 악영향을 끼칠 거고.

    그러니까 헌병대나 보안대에 신고는 못 할 거야. 쉬쉬할 거라구. 수배령도 내리지 않을 거구. 그렇게 하면 탄로 나니까. 월남에서 허위 보고는 식은 죽 떠먹기지.

    형, 알고 있기나 해. 내가 연장 근무를 신청했어. 인사계는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했어. 조용히 기다리라고 하더구먼. 공정가격이 있는 모양이야. 난 상관없어.

    형도 그렇게…… 연장이나 해보라구. 내가 연대 인사계를 소개해줄 테니까. 그러고 나서 다시 생각해봐…….

    그렇겠지. 여기는 썩을 대로 썩었으니까…….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겠니. 너나 나나 빨리 귀국하고 싶지 않은 거야.

    네 마음은 내가 잘 알지. 그렇게 하라구. 이건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순전히……. 내가 이대로 귀국할 수는 없다는 걸 넌 이해해야 한다. 어쩔 수가 없다니까.

    나는 갑자기 당황하였다. 뭔가 일이 꼬여서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상황이 분명해지고 있었으므로 그 심각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헤아릴 수 없는 짧은 침묵이 그 순간을 짓눌렀다. 갑자기 뱃속이 울렁거린다. 연민과 분노와 당혹감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터질 듯했다. 나는 냉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만 나도 모르는 새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절망적으로 말했다.

    형은 그럴 수 없어! 형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야!

    그의 얼굴 표정에 비장한 것이 서려 있다. 어떤 헤아릴 길 없는 깊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를 뚫어져라 쏘아보았다. 나는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잘 들어라. 어느 날 내가 감쪽같이 사라지면 그렇게 알라구. 넌, 날 말릴 수 없어. 너마저 그러면 M16으로 내 머리통을 갈겨 버릴 거니까. 악랄한 내 주인에게 총을 쏴버리는 거지.

    나는 전투만 시작되면 얼어붙어 버려서 총을 한 방도 쏠 수 없었지. 방아쇠를 당기는 팔에 마비 증세가 오는 거야. 그때마다 내 얼굴은 땀과 흙으로 뒤범벅이 되었고, 오줌을 지렸고, 몽땅 토해버렸어. 그러나 날 겨냥하고 쏠 수는 있어. 그건 가능한 일이지.

    우린 오늘 밤이 마지막이야. 우리 서로 쿨하자고. 울지 마라. 넌 아직도 눈물이 남아 있니. 넌 알고 있을 거야. 내가 고국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정말 싫지. 쓰라린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곳이지. 입대하기 전 일은 지겹고, 역겹지. 그건 악몽이었어.

    전쟁터에서 그 분노를 폭발해버리면 치유가 되는 줄로 알았지만……. 그때 일들은 기억상실증에 걸렸어야 하는데…….

    이제는 잊어버릴 때가 된 것 아니야. 휘파람 소리에 날려서……. 그게 아무리 과장되게 말해도 결국 풋사랑인 거지. 형은 날 쪼다 취급하고 자신을 도사처럼 굴면서 왜 그래?

    남의 일이라고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겠지.

    형이 가버리면 그 멋진 휘파람 소리라든가…… 이제는 너무 들어서 질리기는 하지만 그 시들 말이야, 어떻게 되는 거야? 어디서 들을 수 있겠어. 형은 모르겠지만 그게 나에게는 커다란 위안이었거든.

    그가 창백하게 굳었던 얼굴이 풀어지면서 느닷없이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천천히 음미하듯이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도망가는 게 아닌 거야. 내 길을 찾아가는 거지. 자기 자리를……. 여기에 처박혀 넉맘 냄새를 실컷 맡으며 살고 싶은 거야. 이 난리 통에 가능할지 모르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이별의 시를 들려주어야 하겠구나. 그동안 네가 유일한 청중이었어. 나는 단 한 사람만 필요했거든.

    그 시인은 평생 동안 콤플렉스를 안고서 불우한 삶을 살았는데 젊은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했지.

    내 언젠가 히스나무 이 가녀린 가지를 꺾어 두었지

    가을도 가버렸으나 잊지는 말아라

    우리는 이 땅에서 다시 보지 못할 거야

    시간의 이 향기 히스나무의 이 가녀린 가지

    그래 내 너를 기다리니 잊지는 말아라

    그가 천천히 속삭인다. 그 억양이 가볍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그녀를 감싸 안아서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대학 불문과를 3년간 다녔고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들은 거의 전부 완벽하게 암송할 수 있는 남자. 젊은 날의 통과의례에 불과한 첫사랑의 상처 때문에 죽고 싶도록 고통을 느꼈고 그래서 일찍 군에 입대했고 또다시 월남전에 자원했던 남자. 가난한 시인이 되고 시골 벽지에서 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던 남자. 문학적 재능이 있는지는 몰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너무나 융통성이 없었던 남자. 아무리 자신이 타락한 인간처럼 위악적으로 과장되게 이야기해도 그걸 믿을 필요는 없는 남자. 그러나 인간을 향해 총을 쏠 수는 없었으나 자신의 머리에는 감히 총을 쏠 수 있다고 자신했던 휴머니스트.

    메콩 강의 강폭이 한없이 넓어지고 강물이 유장하게 흐르는 메콩 강 삼각주의 빈롱에서 천리길을 거슬러 올라가, 거대한 미군 군수기지가 있던 캄란 만 입구의 집창촌인 수진 마을까지 흘러들어온 영혼이 맑은 여자.

    그는 여자의 갈색 피부를 쓰다듬고 그녀의 불타는 듯한 눈과 얼굴 위로 자신의 얼굴을 덮는다. 그는 그녀의 눈 깊은 곳에서 빛을, 구원의 빛을, 어떤 계시를 발견한다. 그녀를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가능하다고, 그는 그렇게 다짐한다. 그는 이제 지껄이지 않는다. 희망과 욕망, 탐닉이 묘하게 섞여 있는 격정적인 몸부림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그는 그 순간 아무것도 생각해서는 안 되리라. 여기 밀림에서는 의식은 가물가물해지며 몽롱할 뿐이다. 꿈도 꿀 수 없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고통도 벌써 희미해져 버렸다. 그때는 죽음을 갈망했었는데. 모든 추억이 사라져버렸다. (민들레가 피어있는 논둑길. 따뜻한 봄날의 햇빛. 흰 구름. 냇가. 소녀. 사랑. 입술. 이별. 불면하는 밤들. 침묵. 망망대해. 무인도. 미완성인 한 묶음의 원고들.)

    오직 군화와 철모, M16 소총, 수류탄.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생각한다. 나는 소진되어 버렸는가? 도피자인가? 이미 사라져 버렸는가?

    밤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 곡사포의 포탄 터지는 소리가 밤의 유령이 토해내는 괴성처럼 아득히 들려왔다.

    그때의 생생한 장면, 대화 내용, 내 가슴 속에 각인된 김 병장의 비장한 얼굴을, 그의 의지를, 욕망을, 내가 느껴야 했던 그 무력감을 어찌 오랫동안 잊을 수 있었겠는가. 날카로운 가시 면류관을 쓴 채 피를 뚝뚝 흘리는 김 병장의 모습이 그 후 한 세대 동안이나 자주 꿈속에 나타났다. 그런 게 아니라 나타났다고 생각하였다. 김 병장을, 그를 끝내 붙잡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나의 강박관념이었으니까. 나는 한때 그 강박관념을 몰아내기 위해, 망각을 위해, 알코올 의존자가 되어 살아야 했다. 매일 알코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김 병장은 내가 술을 제대로 못 마신다고 엄중하게 단죄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술이 얼큰하게 취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술고래인 김재수 하사가 먼저 생각났다. 나는 김 하사의 알코올 의존증 같은 술 마시는 습관에 혐오감을 느꼈지만 어느 새 따라하기 시작했다.

    만취해서 인사불성이 되고 머릿속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면. 필름이 완전히 끊겨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길에서 왝왝 토하는 일 외에는 항상 말짱했다. 도대체 취해지지가 않았다. 술은 나를 유치한 감상에 젖게 만들어서 결국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술이라면 진저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계속 마셨지만 말이다.

    빈롱. 수목이 빽빽하게 우거진 밀림의 가장자리 얕은 언덕에 있는 랑린의 집 (마을에서도 조금 떨어져서 그 오두막은 홀로 서 있다.)에서 멀리 메콩 강 삼각주와 유장하게 흐르는 누런 강물이 내려다보였다. 밤이 깊어 가면서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내가 말했다. 김 병장은 어디에 갔지? 밖에? 들판에? 난 김 병장을 만나러 왔지. 아주 멀리서 말이야. 죽고 싶도록 보고 싶었거든. 그녀가 말했다. (그 목소리가 감정이 배어 있지 않은 기계음처럼 들렸다.) 그는 죽었어요. 틀림없이 죽었단 말이에요. 모르겠어요? 여기에 오지 않았어요. 아마, 민병대 또는 베트콩한테……. 아니에요, 아니. 그는 안 죽었어요. 내 가슴 속에서 살아 있지요. 내가 말했다. 그럴 리가. 그녀가 깔깔거리며 말했다. 그만 잊으세요. 잊어……. 나는 지금 외롭고 힘들어요. 죽을 맛이에요.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 주세요. 제발.

    그 순간 깨달았다. 그녀와 나, 살아있는 사람들은 이제 그에 대해 아무런 미련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엄연히 살아있고 그녀와 나는 각자의 삶이 있다. 그리고 문득 이미 오래전부터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그를 잊기 위해서, 그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심전심으로 암암리에 공모자가 되었다. 그녀는 이제 울지 않는다. 침묵이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그녀의 까만 머리, 까만 눈, 잘록한 허리가 은근히 유혹적이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 얼굴을 만지게 해주세요. 나를 꼭 껴안아 주세요. 그리고 그 짧은 순간 나는 갑자기 그녀를 억세게 끌어안고 나의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나의 혀를, 빨간 혀를 그녀의 입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고 키스를 하였다. 나는 짚으로 된 푹신푹신한 침대에 그녀를 눕혔다.

    그녀가 노래를 했다.

    메콩 강은 알고 있다네 강물은 깊어라 슬픔도 깊어라 강은 시시로 변하네 아침에 푸르던 그것이 저녁이면 핏빛으로 물드네

    강 쪽에서 거대한 잿빛 구름이 몰려오고 잠깐 동안 천둥 번개를 동반한 지독한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나는 새벽의 희붐한 여명이 창문으로 밀려들 때쯤 밤늦게까지 뒤척이다 겨우 눈을 붙인 잠에서 깨어났다. 계속 뒤숭숭한 꿈만 꿨다. 너무 오랫동안 김 병장을 잊고 지냈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고 랑린은 살아있고 잘 있는지 그녀가 궁금했다.

    14. 어린 시절,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초여름에 마을 냇가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왼쪽 무릎을 심하게 다쳤는데, 그 당시 두메산골 — 고향 동네 송정리는 면사무소에서도 10리를 더 들어간 산골짝에 있다. — 에서 속수무책으로 방치하였다가 관절염이 심하게 악화된 것이다. 내 무릎은 주위가 빨갛게 되어 통통 부어오르고, 물이 차고 고름이 차고 나중에는 굽혔다 펼 수조차 없게 되면서 그 때문에 견딜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사람을 탈진하게 하는 신열과 오한, 피로감, 구역질 등에 시달려야 했다.

    온갖 민간요법과 떠돌이 한의사의 마구잡이식 침놓기, 이십 리쯤 떨어진 동네 도사 할머니의 신통한 주문과 비방도 소용이 없었다. 고흥 읍내의 한지의사는 여기서는 치료할 수 없으니 순천이나 광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문전옥답 논을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광주의 큰 병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의사는 희미하고 검고 회색의 엑스레이 사진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완치하기 위해서는 무릎 위부터 잘라야 하거나 아니면 무릎 수술을 해도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심하게 절 수밖에 없다고 냉정하게 선언하였다. (그때부터, 유년의 저 깊은 심연 속에 뿌리내린 냉혹한 공포감이 평생 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두말할 것도 없이 사색이 된 아버지는 몇 군데 병원을 전전하다가 어쨌거나 정형외과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오랜 물리 치료와 끝없이 길고 긴, 지루한 재활 훈련 끝에 기적처럼 완치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절 그 길고 긴 물리 치료와 재활 훈련이라는 게 무엇이었던가?

    마을 뒷산은 천등산에서부터 해안 쪽으로 밋밋하게 뻗어 내려오면서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었다. 그 산허리에서부터 멀리 은빛으로 빛나거나 혹은 회색 바다로 돌변하여 거칠게 포효하는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나는 온종일 거친 풀과 가시덤불, 바위투성이인 뒷산의 경사면을 힘겹게 오르내리며 염소 떼를 몰고 다녔고, 녀석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을 때면 풀벌레와 나비, 벌집, 거미집, 뱀들을 찾아서 풀섶을 헤치며 보냈던 것이다.

    유년시절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무릎 바로 위에 둥글게 패인 희미한 수술 자국은 그때의 고통과 상처를 지금도 상기시켜 주지만 말이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면 그 시절만이 남아있다. 내가 일일이 이름을 만들어 주었던 녀석들과의 끊임없는 대화.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뿌리 깊게 박혀버린 회색 바다. 그 바다는 너무 심오해서 설명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릎을 절단하는 수술, 혹은 무릎 수술로 내가 심하게 다리를 절게 되었다면 내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우선 군대도 안 가고 월남전 전쟁터에도 안 끌려가고. 그러므로 내 인생은 지금과는 송두리째 달라졌을 것이다.

    나의 정체성마저 바뀌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누구였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심하게 좌절한 나머지 우울증과 폐쇄공포증에 시달리고, 매일같이 독한 술을 마시며 알코올에 의존해야 되었을 것이고, 그래서는 변변한 직업도 없이 평생을 고통받고 자포자기한 삶을 살았을 터였다. 그랬으니 결혼도 못했을 것이고 미구에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젊은 시절 삶의 고뇌에 허우적거리며 헤어나지 못할 때 존재론적 회의에 빠져서 몇 번씩이나 자살의 충동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돌이켜 보면, 순수한 농부였고 무척이나 인색했던 아버지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보다 귀중하게 여겼던 문전옥답을 눈물을 삼키며 팔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의사에게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은 절대 안 된다고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면, 나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온전한 신체를 갖게 된 것은 틀림없이 행운이었다.

    두 번의 경우 모두 내게는 커다란 행운이 뒤따랐다. 그렇지만 그들 행운은 내 자유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된 것이다. 그것은 어떻든 오래 전부터, 아마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운명처럼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니 내가 어떤 은총을 입은 게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내게 또다시 파랑새가 하늘 높이 비상하는 행운이 계속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건 공평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운명이 닥칠지라도 그것에 저항하지 말고 순종해야 하리라. 그렇지만 운명의 여신인 포르투나처럼 행운 역시 눈이 멀었다고 하였으니까, 누가 어떤 혜택을 입게 될지는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눈먼 행운.

    내가 물놀이에서 무릎을 다치고 회복된 일이나 열대지방의 정글에서 정체불명의 병에 걸리고 기적적으로 회복된 것은 아주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건 운명이었고 우연이란 막다른 운명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종착지에 이르기까지 구불구불한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을 결정짓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오로지 운명일 뿐이다.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결국에 가서 이기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이 세상인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니체가 말한 철학적 용어인 운명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하면 운명은 팔자이니 운명에 맡기라는 것이다. 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추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그 때는 체념이나 단념이야말로 인간의 미덕이 된다. 그러니까 나의 인생행로가 뒤틀렸거나 순조로웠거나 상관없이 운명은 결국 내 삶의 순리인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적 운명론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웅대한 예정론에서는, 칼뱅의 예정설에서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렸으니, 그렇다면 운명이야말로 신적인 것이다. 그들이 말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알고 있으니 모든 걸 그분에게 맡겨라. 그분이 결정할 터이다.

    오래 전 일이 아니다.

    강남역 부근에 있는 유명한 교회의 집사인 선배 ― 중대 고참 선임병이었다. 신병식 병장은 내가 102 야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귀국하면서 격려의 편지를 보냈었다.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소대는 달랐지만 무슨 인연이 있었는지 친하게 지냈다. 그가 날 막내 동생처럼 챙겨주었던 것이다.

    그가 말했다.

    네가 지금 살아남은 것이 우연일 수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운명 따위는 없어. 오직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을 뿐이야. 신은 인간 삶의 모든 국면을 조종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말했다.

    저는 그쪽 신을 믿지 않거든요. 신앙심이 없는 제가 신의 은총을 입을 수가 있다고요……? 그렇다고 할 수 있나요……?

    네가 무슨 쓸모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의 구원이 일찍부터 예정되어 있었다니까.

    왜? 제가 말입니까?

    신의 의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자네가 이 정도만 된 것도 천만다행인 거지. 신이 결국 자네를 지켜준 거야.

    선배님 말씀은 그게 행운 때문이 아니라 신의 의지라는 거죠.

    그렇다니까. 학교 선생님은 철저한 무신론자이던지 아니면 불가지론자이겠지. 그렇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고. 설마 그걸 학생들에게 가르치지는 않겠지?

    그러니까 신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고 있는데 신의 의지를 들먹이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리겠지.

    전, …… 솔직히 말씀드려서 잘 모르겠어요. 특히 인격신에 대해서는 말이죠.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아요. 그저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한 거죠.

    나 역시 전에는 신에 대해 반신반의 했지만 …… 월남전 이후 확실하게 알게 되었네. 인간들이 서로 죽이려고 총을 겨누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 하나님께서 분노하실 일이었어.

    그래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극단적인 냉소주의에 빠져버렸지.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언제든지 부정하는 정신의 소유자’가 되었다네.

    결국 신에 귀의할 수밖에 없었어. 신으로부터 구원을 받으면서 자신과도 화해할 수 있었지.

    그때부터 신을 굳게 믿으며 신이 있다는 가정 하에 살고 있지. 그래서 말인데 …… 신의 의지에 반해서 살고 싶지는 않다네.

    다시 말하자면 너무 젊은 나이였을 때부터 벌써 인간에게 회의를 느꼈고, 슬픔과 분노를 느꼈던 거지.

    선배님이 부럽습니다. 그렇게 확고하시니 말입니다. 저에게는 몇 번의 행운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게 운명인지, 우연으로 생각된단 말입니다.

    그만두자고. 내가 지금 귀머거리와 이야기하는 기분이 든다네. 자넬 하느님께 인도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야.

    젊은 시절 한때 자네는 끔찍이도 술을 마시면서 무척 방황했었지. 술을 마신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러니까 가장 하느님이 필요한 때였지.

    그땐 정말 엉망진창이었지요. 제가 더이상 미치지 않은게 천만다행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알코올을 통해 제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지금은 아주 많이 줄였어요. 완전히 끊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우린 가끔 만나서 적당히 마시지.

    선배님은 하느님을 열렬히 믿으면서 …… 하느님이 싫어할 것 같은데요.

    술은 하느님과는 관계가 없다네. 하느님이 그런 것까지 상관할 만큼 한가하진 않다네.

    선배님은 제가 102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알게 된 영현병이었던 김재수 하사님을 모르실 거에요. 그 영향 때문인 것 같아요. 저에게 너무 큰 충격을 주었거든요. 그래서 이 세상이 너무 허무했어요. 신이 필요없다고 생각한 거죠.

    모르긴! 전에도 가끔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네.

    그렇겠지요. 전 잊을 수가 없으니까요. 늘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죠. 그래도 휴머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가끔 눈앞에서 어른거려요.

    지금 생각해보면 형님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고향 선배이고 인생 선배였으니까요. 일찍부터 인생을 달관했습니다.

    자네 말을 들으면 그럴 수 밖에…… 그런 특수한 환경에 처해있었으니 나라도 그랬을 거야. 나도 가슴이 먹먹하다네. 그러니까 가증스러운 위선이라고 할 수는 없을 걸세.

    또 한가지…… 말씀드릴 게 있어요. 훌륭한 조각가였거든요. 그 재능이 영원히 사라진 게 안타깝습니다.

    무슨 조각을 했다는 건가. 조각이야기는 처음이야.

    시간이 날 때마다 숲속에서 숫돌에 갈아서 날을 세운 날카로운 칼을 이용해서 매끈하게 다듬어진 나무의 앞면에는 꽃과 나비, 벌 들을 조각하고 뒷면에는 수수께끼 같은 기하학적 문양을 솜씨 좋게 조각했습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만큼 심각한 얼굴로 작업에 열중할 때는 너무 열중한 나머지 무슨 말이라도 걸면 무척 화를 내면서 짜증을 냈습니다. 그가 짜증을 내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인데 말입니다.

    김 하사 일은 안타까운 일이야. 그러나 까마득한 옛날 일 아닌가. 지금…… 여기……우리 이야기를 하자고.

    내 말을 들으라고. 지금이라도 늦은 게 아니야. 하느님을 믿는데 늦은 법은 없으니까.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지 않은가.

    신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너무 따지지는 말게. 의심하면 안 되는 거라네. 그냥 믿으라고. 그러면 신이 자네한테 거짓말처럼 나타나실 거니까. 내가 자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네. 그렇지만 돌밭에 떨어진 씨앗만큼이나 결실이 없었어.

    너무 죄송해요. 신에 관한 문제는 자신이 없지요. 더 철이 들어야 될 거 같아요.

    또다시 다음으로 미루어야 한단 말이지. 언제쯤…… ? 선배님 대신 가볍게 형님이라고 해도 될 거 같은데…… 함께 늙어가고 있지 않은가. 세월이 참 빠르지. 그렇지 않은가.

    그래도 선뜻…… 그게 목구멍에 걸려요. 저한테 선배님은 너무 어렵지요. 저는 월남에서 선배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야전병원으로 보내주신 격려의 편지는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찌 선배님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날 밤 우리는 모처럼 만나서 몇 차례나 자리를 옮겨가며 거나하게 술을 마셨지만 더 이상 월남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들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건강 문제 (선배는 매일 밤 서너번씩 화장실에 가는 거 빼고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다), 마누라의 잔소리가 점점 더 늘어가지만 그건 자장가쯤으로 알고 넘어간다는 이야기, 자식들의 결혼 문제로 넘어갔다. 선배는 큰 딸이 삼십대 중반을 넘었는데도 결혼은커녕 남자와 사귀지도 않는 기미여서 혹시 레즈비언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큰 딸이 그 지경인데 아들마저 도대체 결혼은 생각하지도 않아서 큰 일이라고 했다. 그러니 손주 보기는 애시당초 글렀다고 한탄을 했다.

    선배가 말했다.

    성경에 의하면 ‘가진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하게 되겠지만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고 했다네.

    그런 사소한 문제로 하느님께 기도할 수는 없지. 무슨 염치로…… 그런 것까지……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정년 후의 인생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서 있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15. 정글과 열대. 살과 피가 튀는 야만적인 전쟁.

    지금은 기억의 초상.

    그것은 나의 삶을 분명하게 두 부분으로 쪼개버렸다. 비록 과거의 그 어떤 상처가 치유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전쟁 전과 전쟁 후의 나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랬으니 전쟁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전환점이었다.

    과거는 망각일 뿐이다. 과거가 나를 만든 것이 아니다. 나는 과거의 산물이 아니다. 그러니 나의 과거는 사라지지 않았고, 놀랍게도 나의 과거는 추억이 되었고, 현명한 지혜로 바뀌었다고, 자신을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20대는 귀국 후부터 미로 속을 헤매는 것처럼 최악의 시절이었다. 시간은 왜 그렇게 더디 지나가는가.

    가수 김광석이 노래했던 ‘또 하루 멀어져 간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그런 청춘이 나에게는 없었다.

    장밋빛 인생은 없었다. 나는 초라했다. 정말 초라했다. 누가 나를 위로해 준 적이 있었던가. 한순간인들 삶의 고결한 순간은 없었다. 삶의 좌절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지 않았던가. 언제나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했다. 나는 벌써 마지막 항해를 끝내고 항구로 귀향한 늙은 선원이 된다.

    얼빠진 사람, 살과 뼈가 없는 무기력한 인간, 여전히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가 야기한 공포에 몸을 떠는 인간, 바다의 폭풍우 속에서 악마의 얼굴을 보았던 인간, 끊임없이 근원적 불안감에 시달리는 인간.

    나는 사회생활을 영위하면서 긴밀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라는 공동체,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단절과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저주인) 소외, 외로움을 느꼈다. 나는 원래 비사교적이었지만 그래도 매우 순종적이었다. 모범생 타입이어서 어떤 경우에도 제멋대로 굴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는 나의 내부에 항상 해소할 길이 없는 욕구불만과 분노가 들끓고 있었으니 오랫동안 그들과 융화하지 못했다.

    그 집요한 강박관념 때문에, 국외자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내 어둠 속 내면으로 다시 돌아가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경멸하고 그 반사작용으로 그들을 경멸하였다. 서로 간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관계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20대, 젊은 날에 그들 운명적 사건의 경험을 토대로 내가 인간 본성 (특히 그것의 상대성)에 대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랬더라면 인생의 우여곡절과 좌절을 맛보지 않고 좀 더 충실한 삶을 살았을 터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지만 젊은 시절의 통과의례인 사랑과 이별은 얼마나 (감상적인 말이거나 수사적 표현이 아닌)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는가. 그때 나는 벌써 일종의 허무주의에 빠져 있었으니, 자신을 벗어나서 타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었으니, 평생동안 따라다닌 불안감을 여전히 떨쳐내지 못했으니, 내 인생의 명확한 길과 목표가 세워질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그때는 그렇게 혼란스러웠으니, 열정과 욕정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청춘의 희망에 부풀고 때로는 좌절하고 여자와 사랑을 시도하고 섹스에 대해 여전히 미칠 듯이 환장해야 하는데 그건 도대체 불가능했다.

    그때는 오히려 일탈을 꿈꿨다.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면서, 중대한 죄를 지으면서, 마음껏 타락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범죄라는 측면에서 간음을 하고 싶고, 도둑질을 하고 싶고, 누군가를 칼로 찌르고 싶었다.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게 나았다.

    나는 생각했다. 선은 항상 악을 동반한다. 한쪽은 순수한 빛만 있고 다른 쪽은 짙은 어둠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악을 행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여전히 그렇게 겁쟁이였는데 실제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당신은, 내가 내 삶의 순서 중에서 2막에서 얼마나 큰 고통을 일찍 맛보았는지 알게 되었으므로, 그 시절 내가 자학적이거나 자기방어적일 수밖에 없었고, 극단적인 회의주의자였고 냉소주의자였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인정할 것이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강 건너 불 보듯 무관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인간 사회는 연민까지는 필요없지만 타자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바탕 위에서만 건전하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나는 30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삶이 얼마나 느릿느릿 지나가는지를, 삶을 보다 가볍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차츰 깨닫기 시작했다. 주위를 돌아보면 누구에게나 쉬운 인생은 없다. 각자 나름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니 내가 뭘 더 바랄 수 있었겠는가. 그 전쟁은 내가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온 이상 그저 젊은 날의 하찮은 추억거리에 불과했다. 나는 시간의 흐름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단조로운 일상에 자신을 맡기기로 어설픈 타협을 하였다.

    16. 나는 오랜만에, 근 10여 년 만에,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아마, 그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이었으니까 할머니 제사 때문에) 송정리 고향집에 내려갔다. 내가 막 지나온 10년간의 세월을 새삼 돌이켜보면 내 삶은 지리멸렬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느리지만 의미있는 변화가 있었으니 그 긴 터널을 겨우 빠져나왔고 결혼도 했으며 직장도 잡았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이제는 한 시름 놓았다.

    내가 고향에 내려오면 언제나 꿈과 몽상에 젖어 그리워했지만 그러나 이미 가슴 속에서 희미하게 지워져가는 남쪽 바다를 다시 만나게 된다.

    한반도 남단 고흥반도의 끝.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소록도 부근 바닷가가 고향이다.

    바다는 위안이고 심연의 상처이다.

    멀리서 어떤 목소리가…… 바다 쪽에서…… 울부짖었다.

    돌아오라고! 돌아……! 고향으로……!

    네 고향은 바로 바다인 거야.

    초겨울 바다에 돌풍과 같은 강한 바람이 불었고 파도는 하얀 이를 드러낸 채 으르렁거렸다. 작은 어선이 통통거리며 거친 파도를 헤치고 풍남항 부두로 귀환하고 있었다.

    나는 해안선을 따라 만의 동쪽 끝 동백나무 숲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오랜 세월 바닷물에 씻겨 반들반들해진 바닷가 자갈들을 밟으며 걸었다. 하늘은 푸르고 아름다웠다. 오후의 따스한 햇빛이 구름을 뚫고 황금색 사선처럼 수평선 위로 쏟아졌다. 한나절 동안 나는 들뜬 채로 바닷가를 서성이면서 진정한 정신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깊고 푸른 바다의 염분 냄새를 흠뻑 들여마셨다.

    …… 달에게 그 가슴을 드러내 놓은 바다여!

    …… 밀려와라, 그대 깊고 검푸른 바다여!

    나는 아주 슬프지도 않았지만 아주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그때 바다가 내게 무슨 말을 했었던가, 바다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무슨 말인가를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은퇴하고 이곳에 내려와서 바다만 바라보며 살 수 있을까. 언제나 늘 파도 소리를 가까이서 듣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았던가. 파도는 수평선에서부터 아주 멀리서 밀려와 가까이서 철썩거렸다. 파도 소리가 너무 다정했고 그 소리는 깊이 파묻혀있던 어린 시절 과거로부터 되살아나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이지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신 날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적이었다.

    나는 공연히 인적없는 해변에서 파도에 쓸려가는 젖은 금빛 모래를 한 움큼 쥐고 허공으로 뿌렸다.

    나는 건너편 이름도 없는 무인도인 작은 섬을 바라다보았다. 그 외로운 섬. 내가 어렸을 적에는 두 가구가 염소를 키우며 살았었다. 까마득한 옛날 일이다. 그러나 그 섬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혹독한 것이었으리라. 나는 그들의 고립되고 힘든 삶을 상상했다. 내가 그때 어리석게도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바다와 함께 오순도순 사는 단순한 삶 속에서 행복했을 수도 있다.

    나는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불가해하고 희미한 장면들을 이것저것 떠올렸다. 그렇지만 내가 유치한 감상에 젖어있었던 건 아니다. 그때 무슨 심각한 또는 애잔한 생각을 했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내가 부질없이 눈물을, 자기 연민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할 것이다. 내 눈에서 그것은 아주 옛날에 말라버렸지 않았던가.

    나는 생각했다.

    전쟁의 상처가 무어 대단하다고. 그게 언제적 일인데. 이제는 삶에 대한 강한 의혹으로 그 지긋지긋한 어둠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무엇이 그토록 불안하고 두려운 것인가. 도대체 뭐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가. 이제는 철이 들만큼 들 나이가 되었는데 이 세상을 향한 냉소주의도 버릴 때가 되었다.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면 끊임없이 변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희망의 출구가 보이고 있다. 지금 당장 자신감과 함께 당당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쩌면 자기 자신한테도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만큼 뻔뻔함까지.

    다시 돌이켜보면 나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희생자가 아니었고 가해자가 된 적도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또는 나 자신에게 도덕적 이중성을 해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이중인격자라는 비난을 받아도 감수하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순진하게 자기 방어적이어서는 안된다. 나를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위선적이거나 위험한 변신까지도 할 수 있다. 왜 불가능하겠는가.

    나는 아주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오면 언제나 그랬다. 나는 고향에 내려오기 전 며칠 동안 무기력해지면서 발열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 끈질긴 강박관념이 유령처럼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다시 자신과 싸워야 했다. 그렇지만 이건 의식이 더욱더 성숙해지는 과정일 뿐이고 내가 구제불능으로 타락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존경하는 선배님의 끈질긴 권유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육십 대 중반쯤 가벼운 뇌졸중을 앓은 이후로는 아주 느리게 말했다. 그래도 좋아하는 술을 끊지는 않았지만. 그는 몇 번이고, 아마 수십 번씩이나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 신께 믿음으로 의지하면 신이 믿음에 응답하리라고 말하면서 교회에 나오라고 하였다.

    나는 이제 보통 사람의 일상적인 삶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안주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할 것이다.

    단순성. 반복. 익숙함.

    나를 오랫동안 짓누르고 있던 바윗덩어리 같은 무엇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에는 여수에서 수산 전문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와 미역과 김을 양식하면서 미역 공장을 하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오랜만에 만나 집에서 담근 독한 과실주를 마시며 통음했다. 그는 옛날부터 워낙에 술이 센 탓에 그날 밤에도 술을 마신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의 뜨거운 햇빛과 거친 바닷바람에 검게 탄 얼굴은 세월의 그늘에 덮여 있었지만 여전히 안온했다. 그는 항상 부끄러워하고 겸손했다. 그는 미역 공장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고 성공했다. 그렇게 멀리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그리운 추억담에 빠졌다. 몹시 가난했던 그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새삼스럽게 회상하면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우리를 감쌌다.

    우리는 지쳐서 서로 엉킨 채 잠이 들었다.

    그날 밤은 깊고 깊은 밤이었다. 마법을 부린 듯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는 창백한 초승달이 바다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은 화창하고 상쾌한 날씨였다. 나는 고흥읍 내로 나가 버스를 타고 녹동항까지 갔고 나룻배를 타고 소록도로 건너갔다. 소록도 중앙공원의 잘 가꾸어진 소나무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내가 소록도에 갔을 당시 김재수 하사의 부모님들은 진작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다. 소록도에서 나환자들이 죽으면 화장장에서 화장을 했고 그 재는 말령당 납골당에 안치되거나 때로는 소록도 바다에 뿌렸다.

    김 하사가 말한 담쟁이들이 마구 늘어지고 휘감기며 타고 올라갔던 작은 초가집은 이미 허물어져 폐허만 남았다. 그 집터에는 누가 세웠는지 모르겠지만 먹으로 쓴 글자들이 도저히 판독할 수 없을 만큼 비바람에 모두 지워진 나무 비석만 외로이 서 있었다.

    그날 밤 우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고향에는 아주 오랜만에 내려온 거지.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하나도 안 변했을 거야. 바다가 어떻게 변할 수 있겠어. 너는 많이 변한 것 같지만…….

    그렇지 뭐. 애들은 많이 컸겠구나.

    큰놈은 벌써 휴학하고 군대에 갔어. 넌? 왜? 알리지도 않고 결혼했지? 나중에 알고 좀 섭섭했지.

    노총각이 어쩌다가 뒤늦게 결혼했으니까……. 누구에게 알리기가 그랬어. 그때서야…… 자리를 잡으니까 조용히 결혼하게 된 거지. 한때는 결코 결혼을 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까 생활이 안정되더라고.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고 하던데?

    그렇지. 시간강사는 그게 보따리 장사야. 신분이 보장되지 않고…… 수입도 형편없지. 그래서 사립 고등학교로 간 거야. 거기서 국어 선생을 하고 있지.

    학생 가르치는 일이 보람 있을 것 같은데…… 바다와 힘겹게 싸우는 일보다는 말이야.

    그게 그렇지 뭐…… 난 네가 부럽지. 매일 바다와 함께 사니까 말이야.

    풍남항은 변치않고 여전하다고. 고흥 반도 끝자락에 있지만 거금도가 둘러싸고 있으니까 둘도 없는 천연 항구이지.

    바다는 변덕이 심하다고. 한창 일할 나이인데도 …… 바다와 너무 부대끼니까 지쳤다는 느낌이 들지. 바다는 여자의 품처럼 부드럽긴 한다네. 하지만 폭풍우가 치거나 파도가 거칠어지면 괴물로 돌변하는 거야.

    남이 들고 있는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했는데…… 그런 건가?

    난 어차피 여기에서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지.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왔으니까. 미역 공장도 그럭저럭 돌아가니까.

    술이 있지. 나는 매일 마신다네. 술이 주는 알딸딸한 느낌이 너무 좋지 않은가. 그렇지만 자식들은 대도시로 진죽 떠났으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걔들은 시골을 질색하거든. 아마 지옥처럼 생각할 거라고. 이제 고향에는 노인들만 남아 있지. 너 나 할 것 없이 잔병치레를 하고 있지.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만…… 아버지는 지금은 동네 과부 아주머니가 잘 돌봐주시니까 건강하시지만 언젠가 돌아가신 후에는…… 너라도 남아 있으니까 고향인거지.

    네 부친은 오랫동안 혼자 사셨지. 뵌 지가 오래되었네.

    자네도 알다시피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셨으니 …… 절대 재혼을 하지 않겠다고 …… 하셨지 않은가.

    새삼스럽게 귀소본능이란 말을 들먹일 것까지는 없겠지, 진부하니까. 그래도 언제가는 내려와서 바닷가에서 살고 싶지. 세월은 빠르니까…… 은퇴하고 말이야. 어쩐 일인지 도시에 살다보면 생활에 너무 지쳐서 바다를 잊을 수가 없다네.

    너무 낭만적이라고 해야겠지. 네가 여기서 사막의 은둔자처럼 살 수 있겠어? 네 마음이 자꾸 변할 거라고. 사람의 마음은 믿을 수가 없는 거야. 여긴 살다보면 너무 답답하다고. 밤이 되면 사람이라곤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너무 적막하지. 너무 쓸쓸하니까 귀신도 나타나지 않는 거야.

    여기는 너의 마지막 안식처가 될 수 없을걸. 지금 지역 공동체는 완전히 해체되고 있어. 그러니까 고향도, 향토애도 사라지고 있는거야. 결국 이러다간 가족관계도 희박해지겠지.

    나는 오히려 여기를 떠나고 싶어진다네. 결국 못 내려오겠지. 네 마누라가 이런 시골에 내려올까?

    그건 그렇다네. 공동체나 가족이 해체되면 그런 걸 대체할게 뭐가 있을까? 잘 모르겠어.

    그런데 마누라는 도시여자니까 여길 이해하지 못하겠지. 이리로 내려오자고 하면 질겁을 할거니까 말도 못 꺼낼걸.

    그러면 정년 퇴직하고 마누라가 죽은 후에나 내려올 수 있겠군.

    무슨 소리야. 여자가 더 오래살지 않은가.

    그리고 오랫동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 끝에 이병주의 소식을 들었다.

    네가 월남 갔다 왔다는 걸…… 언젠가 누구한테서 들었던 거 같은데?

    그랬었지. 내가 그곳에 갔다는 게…… 그렇지 뭐. 난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었지.

    그래? 너도 알고 있겠지?

    누구?

    이병주 말이야. 걔는 어렵게 3사관학교 나와서 육군 장교가 됐었거든. 마지막 끝물에 월남에 갔다가 지뢰가 터져서 한쪽 다리…… 오른쪽 다리일 거야…… 무릎 위쪽까지 잘라냈지. 그렇게 됐다고 그러더라고.

    제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거야. 어디라도 갈 데가 없었겠지.

    그래도 무슨 무공훈장을 받았다고 하면서 그 훈장을 자랑하려고 가슴에 달고 다니기도 했지. 그게 아주 높은 훈장이라고 하더구먼. 그리고 연금을 받으니까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지.

    처음에는 오른쪽 다리에는 의족을 끼고 목발을 짚으며 잘 걸어 다녔어. 몸을 앞으로 내밀고 목발을 짚어서 몸을 이동하는데 다시 그렇게 반복하는 거지. 그래서 휠체어를 타지는 않았어.

    그때 소리소문없이 결혼도 했는데 얼마 후 여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어. 그때부터 성불구라는 소문이 떠돈 거야. 부부간의 속사정을 누가 알 수 있겠어. 여자 쪽에서 먼저 ‘나는 성불구자는 살 수 없다’고 선언하고 도시로 떠나버렸기 때문에 그 소문이 퍼진거라고 하더군.

    그러더니 온전했던 왼쪽 다리 부상이 다시 도졌다면서 휠체어를 타기 시작했지. 그 과정이 좀 이상하긴 했어. 매일 술로 지새니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어. 나도 가끔 함께 술을 마셨지. 여기로 찾아왔었거든.

    그는 늘 입버릇처럼 ‘사람 죽이는 일은 쉬운 게 아냐,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라고 말했었지. 한동안 술도 끊고 괜찮았는데…… 휠체어가 뒤로 밀리면서 바다로 빠져 죽었어. 그게 사고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었지.

    이병주는 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했었지만) 시절 술도가집 큰아들로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자였고 유복했다. 얼굴에 언청이 수술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었지만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다. 그랬으니 단연 골목대장으로 위세가 대단했었다. 나는 어린시절 내심 그를 무척 부러워했고 시샘했었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그의 소식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오래전에 읽었던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줄거리를 떠올리면서 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성불구자가 된 주인공 제이크의 모진 운명을 생각했다. 그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몸부림쳤다. 하지만 브렛은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드러내고 제이크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 욕망을 희생하거나 억압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하염없이 방황했으나 그들에게 재생이나 구원은 없었다.

    나는 이병주의 육체적 상처뿐만 아니라 영혼의 상처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다. 월남전 참전용사인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누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많이 울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차라리 월남에서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거라고 곱씹었을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강한 성적 욕망을 느꼈겠지만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 거지 뭐. 월남전 이야기는 이제 지겹다.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인 것이다.

    17. 그 옛날은 정신질환의 일종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혹은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같은 사치스러운 병명을 모르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때 죽음의 공포 혹은 상실감 등 정신적 증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증상은 전쟁터에서는 정신상태가 항상 바이올린의 G선처럼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기 때문인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귀국하고 나서 무사히 돌아왔다고 안심하면서부터 또는 제대하여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군대를 벗어나고서부터 억눌려있던 정신상태가 한껏 이완되면서 과거의 쓰라린 기억들과 숱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분출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증상을 이겨내기 위해 과음하면서 술에 의존하기는 했어도 극단적으로 자살을 생각하거나 위험한 약물에 의존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약이니까, 시간이 흐르면 조만간 치유될 거라는 작은 희망을 품고 있었고 혹은 어떤 형태이든 구원이나 은총이 내려오지 않을까 막연하게나마 기대했었다.

    내가, 더는 젊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중년의 영역에 들어서지도 않은 삼십 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혹은 불혹지년의 나이를 지나면서부터 흐르는 세월이야말로 가장 좋은 정신적 치료제이어서 도저히 아물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심각한 상처는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어느덧 회복되었다. 그때부터 생활은 점점 안정되었다. 나는 벌써 직업적 타성에 젖었고 일상생활에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명료하게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자아 형성이 되어있지 않았고 정신적으로 미성숙했다. (그 시절이면 누구나 어떤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의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 견고한 장벽이 존재했고 그것을 스스로 허물 수 없었으므로 그곳으로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언제쯤 성숙한 어른이 되어 진짜 철이 들 것인가.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이행과 자아의 정체성 확립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내가 그걸 희미하게나마 깨닫기 시작한 것은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겪고 난 훨씬 후의 일이다.

    그때쯤이면 실제로 나는 나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부터 내 삶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새롭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도 명확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무엇이든지 다 정한 때가 있다.

    하늘 아래 모든 일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에 시기가 있나니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으며

    씨를 뿌릴 때가 있고 수확할 때가 있으며

    죽을 때가 있고 치유할 때가 있다.

    나는 어느새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굴레가 덧씌워진 낡은 인생. 이때쯤에 점차 소멸되어 가는 추억의 희미한 발자국을 반추하면서 나의 굴곡진 삶의 총체적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일이 비로소 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성공과 좌절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밝혀서 결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원인과 결과의 영역 밖에 있는 성찰 (이 얼마나 철학적이고 이해하기 어렵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말인가)에 대한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솔직하게 말해야 하리라. 누굴 속일 수 있겠는가. 더욱이 자신을 더 이상 속여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언제 진지하게 자기 성찰을 한 일이 있었던가. 그것은 무용한 짓이 아니었던가. 그렇다. 그렇고말고. 그렇게 되었다. 나 자신을 알려고 더 이상 애쓸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나로 다시 환원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아무도 위선과 허영심 때문에 자신에 대한 모든 진실을, 더욱이 남이 알까 두려운 추악한 진실은 말하지 않는다.)

    나는 매일 아침 일찍 동네의 낮은 산을 오른다. 그건 산이 아니라 언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언덕 너머에 뭐가 있어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언덕에는 계절이 되면 땅에서 초록색 싹이 솟아오르며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나무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며 녹음이 우거지고 새들이 지저귀고 줄무늬다람쥐가 참나무 우듬지까지 기어오르니 온통 생명이 넘쳐나는 것이다.

    나는 개체들의 아름다운 생명력과 영혼을 대할 때마다 기도를 드리고 싶을 만큼 경건한 감정을 느낀다. 그게 내가 바로 경배하는 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언덕에는 수많은 신들이 살고 있다. 저마다 개체 깊은 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들어있지 않다면 어떻게 고귀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이 복잡한 세상에 왜 무서운 턱수염을 기른 위대한 하느님만이 신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니체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죽음을 선언한 신은 바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 아니었던가.

    나는 인간과 세상이 한없이 두렵게 느껴지면서 이 세상에 미만해 있는 무수히 많은 생명체 속에 들어있는 신들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내가 야전병원의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매일 복용하는 엄청난 양의 진통제의 작용 때문인지 몽롱한 채로 마치 하얀 새털구름 위에 떠 있는 환상에 사로잡혔었다. 이제 돌이켜보면 하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갈 때 어떤 환영, 신의 환영을 어렴풋이 보았던 것이다. 믿을 수 없는 게 기억이긴 하지만 그렇게 기억한다. 나는 그때부터 신을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의 부정을 부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그렇게 확신한 것은, 오랜 시간이 흘러간 뒤였다.

    내가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왜소하다는 사실을, 이 세상에는 인간 이외에 타자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신을 몰아내고 신이 사라진 언덕에 인간이 대신 올라설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래서 신의 존재를 믿기까지는 가혹하고도 평생에 걸친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 대위의 말이 옳았다.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너무 일찍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변덕을 부리며 끊임없이 변하니까 말이다.

    나는 지금 변두리 버스 종점 근처에 있지만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주인인 언제나 기분 좋은 단골 카페에 앉아 있다. 한쪽 벽에는 오래 전부터 반 고흐의 ‘카페, 라 겡게트의 테라스’의 복제품이 걸려 있다.

    초겨울의 찬바람은 가로수 잎들을 세차게 날려 버렸고, 간간이 뿌리는 빗줄기가 바람에 날려 창문을 후려쳤다. 덕구를 생각나게 하는 집 없는 개가 빗속에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나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앞에 놓고 쓰디쓴 맛을 음미하고 있다. 그녀의 그 시절 얼굴을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를 통해서 떠올려 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다시 보니까 마치 두 사람이 서로에게 녹아들어가 한 여자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겨울비가 스산하게 내리니까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 내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와서 잊혀져 가는 그 옛날 기억들을 회상할 필요가 있을까. 감상적으로 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 내 감정이 무엇이었든 간에, 어디로 흘러가든 간에 자기 연민 때문에 과장되거나 왜곡되는 것은 피하고 싶다. 하지만 지나간 세월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도저히 불가능한 상상을 한다.

    나를 마음껏 분출할 수 있었다면. 분노의 순간에 격정을 폭발할 수 있었다면. 나를 산산이 파괴할 수 있었다면. 섹스에 탐닉할 수 있었다면.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면. 식어버리고 사라져버린 사랑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사랑의 기쁨은 잠시이고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끝내 좌절하고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유아기적 껍데기를 깨고 인간 성체로 성숙할 수 있었다면. 자기 자신을 찾을 수가 있었다면.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게 우리들의 진정한 사랑이었고 애처로운 이별이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김혜진을 그렇게 쉽게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니. 더욱이 40년 전 일이니 까마득해서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닌 것처럼, 그래서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그녀를 처음 야전병원에서 보았을 때 나는 여자를 만나 사랑해 본 적이 없는, 남녀관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완전한 숙맥이었으므로 순진했다기보다는 바보처럼 고지식했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았기 때문에 세상사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이미 사랑과 실패를 맛보았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그때 언제부터 당황하지 않고 편안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볼 수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절은 유교적 윤리의식이 여전히 지배적이었으므로 지금처럼 남녀관계에서 죄의식 없이 무분별하게 욕정에 사로잡히는 가벼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러면 우리의 관계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우리의 관점에 의한다면, 여자와 사랑은 대성공 (그러니까 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지고 그 후 남자는 출세가도를 달리고 여자는 현모양처가 되는), 쓰라린 이별로 끝나는 혼란스러운 실패, 애타게 마음속에만 있었고 결코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경우, 그냥 흐지부지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의 경우는 마지막에 해당할 것이다.

    나는, 지금 70대인 그녀가 멀쩡하게 살아서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혼자가 되어서 외로운 나머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술 취한 늙은 여인이 아니기를 바란다. 틀니를 해서 말을 할 때마다 딱딱거리고 입안에서 구취가 나지 않기를 바란다. 퇴행성 무릎, 고관절, 허리 관절염 때문에 엉기적거리며 겨우겨우 걷지 않기를 바란다. 중증 치매에 걸려서 요양원에서 외롭게 말년을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암인지 모르지만 암에 걸려서 빨리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건 정말 진심이다.

    나는 김 하사를 생각할 때면 늘 그렇듯 가슴이 뜨겁게 북받쳐 올랐다. 옛날 어느 날에는 혼자서 술을 마시고 나서 그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한 번 터진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무를 흔드는 바람 소리만 들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어두운 숲에서 처음 대면했을 때 나는 잔뜩 긴장해서 경계심을 가지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뭔가 불길하고 위험천만한 일이 생길 것 같은 그런 인상은 아니었다. 얼굴은 뜨거운 햇빛에 노출되어 약간 검게 탓지만 입술 안쪽 가지런한 치아는 놀랍도록 하얗게 빛났다. 나는 안도했다.

    그리고 만날수록 그의 따뜻한 목소리만으로도 나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나는 그때 은연중 보호받고 있었으니 그게 큰 힘이 되었다. 가슴속에 맺혀있던 응어리들이 풀려나면서 숨쉬기도 편해졌고 때때로 느꼈던 울고 싶은 기분도 사라졌다.

    40년이 지난 지금 한 걸음 물러나서 생각해보면 나는 동성애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지금이야 퀴어들이 서울 한복판에 모여서 공개적으로 축제를 여는 시대이지만 40년 전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좀 더 알고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는 순수했고 성도착증은 아니었다.

    그런데 남자 동성애의 경우 두 남자 모두 능동적 지위를 차지할 수는 없다. 능동과 수동. 지배와 복종. 한쪽은 남자 역할을 하고 다른 쪽은 여자라는 수동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 나는 김재수 하사라면 아마 그 여린 성격 때문에 여자 역할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편에 대해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다. 정말 신비한 약일 수 있었으니까.

    마약을 독성과 의존도를 고려해서 분류하면 소프트 드럭 (약한 마약)과 하드 드럭 (강한 마약)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아편은 그 자체로는 알코올이나 니코틴보다 효과가 약해서 약한 마약에 속한다. 같은 계열의 헤로인보다는 1/10 수준에 불과하다. 진통제와 마취제로 널리 쓰이면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모르핀은 바로 아편에 염화암모늄을 섞어서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김 하사의 말대로 조금씩 조절해서 먹었다면 중독되지 않으면서 그때의 내 증상을 고려하면 특효약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문제에 대해 그때 며칠 밤이나 머리가 깨질 정도로 고민해 보았지만 중독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결코 아편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못 이기는 척하고 그걸 몇 번쯤 먹었어도 괜찮았을 것이고 그랬으면 김 하사도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때 진심이었다. 그걸 부인할 수는 없다. 나는 그의 따뜻한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니 그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을 수도 있었다.

    그는 언제나 식도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내가 그걸 지적하면 그가 말했다.

    내가 많이 마시기는 하지. 어쩔 수 없다니까. 그래도 적당한 것보다는 몇 모금 더 마시는 것에 불과한 거야. 그것 뿐이야. 내일 먹고 사는 일이 막막해도 그럴수록 술을 더 퍼마셨으니까.

    술을 많이 마실수록 바닷가가 생생하게 기억나거든.

    나는 고향이 소록도 앞 바닷가 마을이라는 말을, 사촌 누님이 소록도 병원에 간호원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여러 차례 소록도에 갔다는 말을 끝내 하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이 소록도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이 먹먹하여 입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그는 아주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함께 소록도에 들어갔고 그때부터 부모와 격리된 채 미감아 수용시설인 수탄장 보육소에서 자랐으며 녹산 초등학교와 녹산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그 후 섬 밖으로 나갔다.

    내가 오래전에 소록도에 갔을 때 도양읍 출장소에서 확인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보육소는 물론 학교도 폐지된 체 낡은 건물만 텅 빈 채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나는 김정현 병장의 얼굴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적당한 체구와 함께 햇볕에 얼굴이 까맣게 그을려 너무나 월남 사람과 비슷했다. 월남인으로 변장하고 월남어도 잘 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빈롱에 무사히 도착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간청을 했는데도 내 말을 듣지 않았지만.

    김 병장은 그때, 마지막 헤어질 무렵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라면서 아주 두툼한 노트 3권을 내게 주었다. 그 노트에는 그 시인의 시들을 아주 촘촘하게 직역한 번역시들이 깨알처럼 적혀 있었다. 그가 말했었다. “이 시들은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오지 않았어. 언제쯤 나올지 까마득하지 않겠어. 번역이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어. 시는 리듬인데 시를 번역한다는 일은 너무 어려워. 불가능하다고 해야겠지. 그래서 이 번역시들은 원문을 심각하게 훼손했을 거야. 위대한 천재 시인이시여 저를 용서하소서!”

    나는 옛날 그가 시를 읊을 때마다 심한 열등의식을 느꼈지만 김 병장의 영혼이 담겨 있고 손때가 묻은 노트에서 번역시를 읽으면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 구두점이 모두 삭제된 채 걷잡을 수 없이 흩어져 있는 시들의 주제와 배열은 당혹스러웠고 그 의미도 잘 몰랐지만 무작정 그들 시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내가 아주 우연히 기욤 아폴리네르의 첫 시집 『알코올』의 번역판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발견한 때는 2010년 여름 경이었다. 내가 학교를 정년 퇴임한 후 일이었다.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이면서 아폴리네르 전문가인 황현산 박사가 번역한 것이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노트에 적힌 번역시들과 황 교수의 번역판을 비교해 보았는데, 김 병장 쪽이 초벌 번역이니까 윤문을 시도하지 않은 직역 그 자체였고, 이제 보니 40년 전에 번역했으니 그 당시 어휘의 선택이나 진부한 표현이 눈에 띄었지만 (그러나 나에게는 머릿속에 너무 깊이 각인되어 있어서 그쪽에 훨씬 익숙했다) 놀랄 만큼 대부분 일치한 것을 보고 새삼스럽게 김 병장의 프랑스어 실력과 시적 감수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필로그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식을 키우며 먹고 살려고 분투하는 사이 세월은 미처 깨달을 새도 없이 빨리 지나가 버렸다. 아버지의 처지가 바로 그런 것이다. 처자식이 딸리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치사한 것도, 부당한 것도 꾹 참아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자신의 신념을 고수할 때와 굽히거나 버릴 때를 아는 것인데) 필요하다면 이념도 신념도 헌신짝처럼 버려 버리거나 재빨리 바꿔야 한다.

    그러므로 시간이란 참으로 좋은 약이다.

    나는 2000년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구닥다리 구시대의 인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촐랑거리는 신시대 인간도 아니다. 완전히 구세대에 속하기에는 너무 늦게 태어난 것이고, 신세대에 속하기에는 너무 일찍 태어난 것이다. 나는 원래 진보적 낙관론자였으나 당연히 오랫동안 흔들렸다. 그래서 한때는 더할 나위 없이 철저한 비관론자가 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나 1980년대를 지나오면서 그 엄혹한 시절에 아무런 반감도 저항도 없이 순응했으니 시대의 흐름이나 상황은 나와는 무관했다.

    나의 오로지 관심사는 가정과 일, 일상생활 그 자체였다.

    나는 삶이란 그 무게가 얼마나 가벼운 것인가를 마침내 깨닫기 시작한 때로부터 시간이 제멋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고, 가급적 모든 일에 무관심했고, 너무 진지한 것을 싫어했고, 애써 그 무엇도 기다리지 않고, 그저 머뭇거렸다.

    지금은 퇴행성 관절염이 조만간 생길 가능성이 있는 나이 탓에, 이마에는 자잘한 주름들이, 양쪽 볼에는 쭈글쭈글하다 못해 깊은 골이 패이고, 올챙이배처럼 배가 튀어나오고, 온몸은 군데군데 점점 커져가는 검버섯이 독버섯처럼 나 있고, 다리와 팔은 점점 가늘어져 가고, 머리 가죽에 들러붙은 머리털이 온통 하얘진 탓에 보수적 낙관론자가 되었다. 나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젊은 청년이 나를 바라본다면 ‘세월이 흐른다면 나도 저렇게 늙을텐데 저게 바로 내 모습일 거야.’ 라고 생각할 것이고, 나는 젊은이를 응시하며 ‘나도 한때는 너처럼 젊었었지.’ 라고 생각할 것이다.

    다시 돌이켜보면 그 전쟁이 끝난 지가 언제인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나는 진즉 그 옛날 그 시절의 나와는 연결 고리가 끊어져 있다. 기억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한꺼번에 남김없이 잊히는 건 아니지만, 벌써부터 기억에 크고 작은 구멍이 뚫리면서 그저 조금씩, 하나씩 부스러져서 사라진 것이다.

    우리는 잊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잊게 된다. 절대 잊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도 너무 빨리 잊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언제 죽음을 갈망했던가. 중요한 건 인생이다. 아! 아름다운 인생이여. 삶에의 의지. 그러니 이제는 그 과거의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까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 부부가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에 따라 연금을 받으니까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가정생활은 원만하여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으니 매일 명랑하고 유쾌하다. 내 인생의 과정은 행복과 불행이 뒤섞이면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은 것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수도승처럼 살 일이 있는가. 행복이란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시쳇말로 하는 그런 행복이라면 정말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그건 구제불능의 행복이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무장해제된 것처럼 정신적 고뇌는 나날이 희미해지고 지워지기 시작했다. 내 삶이 육상선수처럼 빨리 달려가고, 먹이를 낚아채려고 빠르게 내려오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는데, 지금 가혹한 시험을 하여 자신을 괴롭힐 하등의 이유가 없다.

    미국의 문명사학자 윌 듀런트는, 결혼하면 남녀를 불문하고 그다음 날부터 이미 다섯 살쯤 더 나이를 먹고 청춘은 끝난다고 했다. 그러므로 중년은 결혼과 함께 시작된다는 것이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내가 30대 중반쯤에 결혼했는데 그때 내 굴곡진 청춘은 막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단테 알리기에리 역시 나이 35세쯤에 ‘우리 삶의 노정 중간’에 이르른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산술적으로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삶의 노정에서 중간보다 훨씬 멀리 와 있다.

    인생은 너무 빨리 지나가고 남은 시간은 언제나 너무 적다.

    (그런데 나이 든 사람은 지혜가 있거나 총명한 것이 아니라 단지 노회하고 능구렁이가 다 되었을 뿐이므로) 나는 요즈음 필요할 경우 다소간 권모술수와 감언이설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오히려 부동산 투기와 주식투자를 해서 재산을 많이 모으는데 관심이 많다. (물론 관심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돈이란 이 정도면 충분하지, 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고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매 단계마다 겪게 되는 정체성의 위기와 정체성의 변태기는 지금 나에게는 이미 지난 날의 일이다.

    지금 내가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전직 고등학교 국어교사, (매월 얼마간의 연금을 받는) 월남전 참전 유공자, 늙은이, (손자, 손녀를 하나씩 둔) 할아버지, (신에 대한 참된 통찰이 불가능한) 무신론자 또는 불가지론자, 아니면 범신론자 또는 유신론자, 가난한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예술은 모방일 뿐이라고 굳게 믿는 어설픈 문학이론가.

    나는 지금 오래 살기 위해서 건강식과 값비싼 보약을 열심히 먹고 있다. 그렇지, 오래, 오래 살아야만 한다. 아직 충분히 오랫동안 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편리한 현대의 발명품들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 등),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바뀌는 덧없는 유행들, 분주하고 변화무쌍한 삶은 생의 의욕을 북돋아 준다.

    이 좋은 세상에. 장수의 비결이 뭘까. 그래야만 손자들이 크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들의 결혼식에도 참석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술은 더 이상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는다. 술을 마셔도 즐겁지 않고 건강만 해치는데 그걸 왜 마시겠는가. 그래도 가끔은 울적할 때가 있고 그러면 몇 번이고 토할 만큼 혼자서 술을 많이 마신다. 그때는 며칠간 숙취로 고생하리란 걸 알고 있지만 여러 차례 차수를 변경해가며 작정하고 마신다. 그러고 싶은 것이다.

    밤이 깊어 갔다. 창백한 초승달이 잿빛 어둠에 싸인 도시 거리와 뒷골목을 어루어만지고 있다. 희미하게 잊혀져가던 옛이야기의 작은 조각들이 마음속에 되살아났고 어쩔 수 없이 주마등이라고 하는 기억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그때는 통증과 함께 깊은 허무감을 느꼈다.

    나는 오래전부터 한 달 간격으로 염색을 하고, 매일 종합비타민 알약과 고지혈증약, 혈압약을 복용한다.

    나는 틀림없이 꼰대 중의 꼰대이다. 심술 첨지처럼 고집만 늘어나서 확증 편증에 사로 잡혀있다. 그리스도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했지만 나는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내용이거나 나에게 유리하다고 여겨지는 진리만을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지금도 거리에서나 카페에서 젊은 여자를 만나면 몰래 훔쳐보면서 감탄을 하고 주책없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는 발끝부터 시작해서 머리끝까지 몸매의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전체를 쭉 훑는다. ‘다리는 날씬하고 …… 괜찮은데 …… 예쁘다고 할 수 있겠어. 다리야말로 여자의 신체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흥미로운 부분이거든. 내 관점은 그렇다니까.’ 그 아름다움에 넋이 빠져버린다.

    나는 때때로 예쁜 여자들이 눈에 띄기를 바라면서 한껏 점잔을 빼며 강남역 대로를 천천히 걷는다. 그런 여자들이 나의 우울한 기분을 한껏 북돋아 주니까 말이다. 하지만 마주치는 여자들마다 촐랑거리는 어린애처럼 재잘대며 빠르게 지나쳐 갔다. 나는 너무 실망하여 낮은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뒷골목 카페로 숨어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내 가슴에 옛날 노래가 돌아왔다. 나는 어김없이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다시 헤어진 몇몇 애인들을 추억한다. 우리는 만나는 동안 싸운 적도 전혀 없고 말다툼한 적도 전혀 없는데 말이다. 그녀들은 그때 더욱더 공들여 자신들을 치장했다. 흘러넘치는 욕망 때문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잠언에서 말하길 ‘도둑질한 물이 달고 훔쳐먹은 빵이 맛있다’고 했는데 그건 여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섹스의 쾌락에 빠져 관능으로 지새운 황홀한 밤들을 기억하며 잠시 온몸이 뜨거워진다.

    인간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병들고 고통을 받고, 그러다가 죽는다는 걸 내가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노망만은 들어서는 안 되지만) 더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너무 많다. ‘이미 충분히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의 기대 수명이 얼마나 늘어났는데.

    나의 인생 여정이 실존적 관점에서 의미있고 보람이 있었거나 공허하고 무의미했건 간에, 혹은 내 인생의 수준이 어떻든 상관 없이 한 인간으로서 나는 내 자신의 인생 이야기에서 분명한 주인공이고 유일한 저자이다.

    나는 지금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깨닫지 못했지만 노년기에만 맛볼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슬픔과 고통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자기혐오와 자기부정에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내 삶과 인생이 점차 해어지며 스러져가고 있다. 지금 죽음이 끈질기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확실한 것은 바로 죽음이다. 우리는 유한한 생명에 만족해야 한다. 영원히 불멸의 존재로 살아야 한다면 그것처럼 비극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시간은 짧다. 나는 소멸의 과정 중에 있다. 그렇지만 나를 점점 잃어간다고 해도 나는 삶과 죽음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내 마음의 깊이와 인간 감정의 고귀함을 알고 있으니 여전히 나 자신으로 남아 있으리라.

    마지막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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