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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즐거운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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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즐거운 사라
    故 馬光洙 교수의 ‘즐거운 사라’ 재판 이야기

    나는 매일 매일 거울을 들여다봤지
    그랬더니 늙고 못 생긴 내 얼굴도
    아주 근사하게 보이는 거야
    젊은 꽃미남으로, 잘생긴 플레이보이로

    나는 더 뚫어져라 거울을 들여다봤지
    정성을 들이고 애정을담아……
    ― 마광수

    1. 1992년 10월 29일
    1992년 10월 29일 아침 일찍 누군가 마광수 교수의 아파트 문을 세게 두드렸다. 그가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며 나가 보니 건장하게 생긴 세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들은 다짜고짜 집안으로 몰려들어왔다.
    마 교수가 말했다.
    “누구시죠?”
    일행 중 누군가 말했다.
    “검찰에서 나온 수사관들이요.”
    “무슨 일로……”
    “가보면 알겠지.”
    “죄명이 뭔가요?”
    “가보면 알아…… 뭘 꼬치꼬치 물어……”
    “그래도 알아야 될 거 아닌가요?
    영장은 가져오셨습니까?”
    “영장은 무슨…… 영장 좋아하시네.”
    “어떻게……?”
    “잔말 말고 가시죠. 시간이 없으니까.
    그렇게 뻗대봤자 좋을게 하나도 없으니까.”
    “그렇지만……”
    “긴급체포야.”
    “무슨 이유로 긴급체포를 한단 말입니까?”
    “가보면 안다니까. 검찰청에 가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당신이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야.”
    그들은 긴급체포를 한다면서 막무가내로 마 교수를 양쪽에서 붙잡고 검은 차에 태워 검찰청으로 끌고 갔다. 그는 갑자기 당한 일이라 어안이 벙벙하고 몹시 곤혹스러웠다. 그 소설 ‘즐거운 사라’ 출간 이후 일부 극렬한 보수층의 비난이 쏟아져서 어렴풋이 불안한 예감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그 시절이 노태우 정권 말기로 곧 문민정부가 들어설 시기였으므로 한창 민주화와 개방화가 외쳐지고 있는 때라서, 애써 낙관적인 기대감을 가지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리고나서 수사관들에 이끌려 12층에 있는 김진태 검사의 검사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 소설을 출판한 ‘청하출판사’의 장석주 사장이 연행되어 끌려 들어왔다. 김 검사는 마 교수와 장 사장을 검사실 안쪽에 있는 방으로 데리고 가서 음료수를 대접했다. 그 검사는 애써 여유 있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그가 몹시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 교수와 장 사장은 각각 다른 방으로 끌려가 신문을 받게 되었다. 조사를 받기 전에 한 수사관이 그들이 지니고 있던 소지품 일체와 넥타이 허리띠 등을 풀게 해서 조사가 끝날 때까지 따로 보관하겠다고 했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피의자 신문은 오후 늦게 대충 마무리되었고 그런 후 법원의 구속영장이 떨어졌다. 전격적인 긴급체포, 바로 당일 피의자신문조서 작성, 즉각적인 구속영장 발부 등 사건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늦가을 저녁 어둠이 내려앉자 주위는 캄캄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저녁 8시 경 마 교수와 장 사장은 아침에 입고 갔던 옷 그대로 입고 검찰청사 현관에서 검찰에서 미리 각본을 짜놓은 대로 각 방송사, 신문사, 잡지사에서 몰려와 기다리고 있던 약 30명쯤 되는 기자들의 사진 촬영에 협조를 하였다. 그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사진을 찍거나 TV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는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태연한 표정을 연기해 내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기자들이 하이에나처럼 몰려들어 그를 둘러싸고 마이크를 들이대며 자꾸 한마디 얘기해 보라고 채근했다.
    “교수님! 한 말씀 해주세요.”
    “그 소설의 여파를 생각해 보셨나요.”
    “구속되었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그는 할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물쭈물하고 있다가 간신히 입을 떼고 말했다.
    “문학작품을 가지고 작가를 사법처리한다는 건 우리나라가 아직 문화적 후진국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러고나서 각기 두 명의 수사관과 함께 두 대의 승용차에 나눠 타고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하지만 그때 함께 구속되었던 장석주 시인은 ‘ 재판, 그 탈억압의 끝없는 싸움’이라는 글에서 저녁 8시경으로 기억했고, 마 교수는 에세이 ‘나와 즐거운 사라’에서 그날 아침 검찰청 현관에 도착하니 검찰에서 미리 연락을 해 놓았는지 기자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고 TV카메라를 들이댔다고, 기억하고 있다. 아침과 오후로 서로 어긋나는 것이다.)

    2. “뭐, 연세대 교수라는 사람이 그런 야한 소설을 써!?”
    그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성에 대해 극히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서, 프리섹스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여대생 사라가 갑자기 등장해서 온갖 섹스를 즐기며 쾌락을 추구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실제 소설을 읽어보면 그 음란함은 당시 PC통신에서 돌아다니던 평범한 야설 수준과 거의 비슷하다.
    그 당시 항간의 인식인즉, “뭐, 명문 사립대인 연세대 교수가 그런 야한 소설을 썼다고!? 세상이 말세야!? 세상이 망했구나!! 저런 작자가 다있어!!” 수준이었다.
    그 당시 유력 보수일간지 등의 지면을 통하여 마광수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식인들이 꽤 있었다.
    대표적으로 서울대학교 손봉호 교수는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유행한다, 마광수는 교수가 아니라 마광수 씨로 불러야 한다” 등 극히 위험한 발언을 쏟아냈고, 서강대 이태동 교수는 “‘즐거운 사라’에 나오는 여대생과 그를 가르치는 교수 사이에서 문란하고 변태적인 성관계가 성실한 노력의 상징인 학점의 흥정 대상이 된다는 것은 커다란 사회적인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하면서 마광수 교수와 여제자 사이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소설가 이문열은 중앙일보에 그의 작품을 ‘구역질을 동반한다, 보잘 것 없다’며 노골적으로 비난했고, 마광수가 구속되자 10여개의 종교단체와 합세하여 구속시킨 검찰의 조치를 적극적으로 환영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즐거운 사라’는 그다지 야한 소설도 아니며, 당시 출판계를 봐도 그보다 훨씬 야한 일본 에로소설도 아무 문제없이 버젓이 출판되던 시기였다.
    마광수 교수 자신은, ‘즐거운 사라’만 그렇게 혹독한 처분을 받은 것은 일단 교수가 쓴 것이기 때문이고 주인공 ‘사라’가 방탕한 생활 끝에 불행해지거나 정신차리는 교훈적이거나 도덕적 결말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단행본으로 나오기 전 ‘여성자신’이라는 잡지에 연재될 때는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사실 그 당시에도 이미 이보다 훨씬 야한 소설들은 즐비했지만 작품 그 자체의 외설성보다는 연세대 교수가 이런 야한 소설을 발표한 것을 용납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 이 소설의 음란성은 당대의 기준으로 보아도 그렇게 야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지 1년 후, 문화일보 (1993년 11월 25일자)는 이 사건의 미심쩍은 배경과 과도한 법 집행에 대해서 검찰 관계자들의 말을 빌리는 식으로 하여 현승종 국무총리의 지시에 의해 갑자기 진행된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현승종은 6공화국 말 대통령 선거기간 중 구성된 이른바 중립내각을 맡은 사람인데 고려대학교 법대 교수 출신으로 전형적인 유교 윤리 신봉자였다.
    (만약 그 보도가 사실이라면, 대통령 선거기간 중 여야 간 극심한 대립으로 말미암아 중립내각 총리가 해야할 일이 산적해 있을 터인데 일개 소설의 음란성 여부를 가지고 그렇게 한가하게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것도 교수가 단지 괘씸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 소설은 발간되자마자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제재를 받게 되는데, 검찰은 김진태 검사를 내세워 ‘시종일관 성도착적이고 퇴폐적인 성행위 장면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주인공 여대생의 괴팍스런 애정 행각을 바람직한 것으로 묘사해 보편적인 성 관념을 철저히 거부했다’는 혐의로 급기야 작가와 출판사 대표를 구속 기소했다.

    이로 말미암아 마광수 교수는 당시 연세대학교 교수직에서 해임되었다가 1998년 사면 복권되면서 교수직에 복직하였으나 그 기간동안 마광수 본인은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고 복직 후에도 다른 교수들 사이에서 철저하게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았다.
    이 사건은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이현세 화백의 ‘천국의 신화’와 함께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과연 어디까지인가 하는 정답없는 논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즐거운 사라’ 사건이 일어나자 검찰과 사법부의 구속 집행을 지지 또는 동조하는 글을 발표한 지식인은 손봉호 · 구중서 · 이태동 등 대여섯 명에 불과했고 (물론 그중에는 우리나라의 보수 문학을 대표한다는 소설가 이문열이 끼어 있었다. 공판 진행 중에 검사는 그가 마 교수를 비난한 글의 한 대목을 일종의 증거로 낭독하기도 했다), 고은 · 문덕수 · 김주영 · 하재봉 · 조세희 · 김수경 등 217명의 문인이 항의서에 서명을 했고, 그리고 최일남 · 임헌영 · 박범신 · 김병익 · 문형렬 · 신승철 등 40여 명의 작가, 비평가들이 이 사건을 현대판 마녀사냥으로 규정하며 작가를 구속하고 문학작품을 법으로 재판하는 행위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그중에서 한국외국어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조종혁 교수가 쓴 ‘마광수 교수의 도전과 수난’이라는 글은 이 사건의 문화사적 배경과 원인을 잘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한 부분을 여기 인용한다.
    마광수 교수의 커뮤니케이션 행위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지녀온 교육의 신화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이었다. 신화의 거부 ― 이것이 그에게 주어진 모든 지탄과 비난과 억압의 이유였다. 그러나 신화의 거부, 신화의 파괴는 언제나 새로운 의미의 장을 연다. 그것은 새로운 현실 구축의 가능성을, 새로운 출발점을 시사한다.

    또한 작가 장정일은 ‘즐거운 사라’의 내용을 언급하며 검찰의 기소를 비난했는데 그가 쓴 ‘마광수 교수 구속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는 글의 한 부분을 여기 인용한다.
    ‘즐거운 사라’의 여주인공은 한국의 사회통념상 금지된 사제 간의 애정행각을 통해 권위주의를 공격하고, 남성 중심의 성문화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레즈비언을 시험하기도 한다. 또한 그룹섹스를 통해 순결과 성해방 이데올로기에 동시에 눌린 성적 이중구조를 풍자한다. 그 즐거운 혼란은 답답한 일상을 초월한 어느 높이에서 한 없이 낙관적이고 생의 긍정적인 유토피아를 열어 보인다. 이 점, 경건과 금욕으로 강제된 한국문학사에서 회귀하고 소중한 예에 속한다.

    다음은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가 쓴 ‘성 혁명과 마광수 교수 구속’의 한 부분이다.
    마 교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가 문학이 아니라 음란물이라는 검찰의 견해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마 교수의 문학세계는 총체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가 모 월간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해 온 정치칼럼들은 마 교수가 사이비가 아닌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자라는 걸 잘 보여주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성의 자유민주주의는 논란의 여지가 크지만 적어도 체계성과 철학적 기반을 갖고 있다. 그의 성애론은 그의 확고한 신념이지 결코 인기추구나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 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실장으로 있던 박종렬이 쓴 ‘마광수 신드롬을 척결하자’라는 글의 한 부분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마광수 신드롬은 우리들 스스로의 위기관리 능력에 의해서 척결해야 한다. 5,000년 간 우리 선인들이 쌓아온 미풍양속과 문화를 수호하는 것은 우리 세대의 의무이며 차세대를 책임질 우리의 청소년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3. 서울지방검찰청 특수2부 조사실
    마 교수가 조사실에 들어가니까 창문이 보이지 않았다. 온통 회색벽으로 둘러싸인 완전히 밀폐된 방이었다. 방 안 한 쪽에는 욕조가 있는 화장실이 있었고 아무 장식이 없는 큰 침대가 하나 있었으며, 검사와 수사관이 사용하는 책상과 의자가 있었고 그 앞에 피의자용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섬뜩한 공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곧이어 김 검사가 들어왔다. 그 검사는 마 교수와 같은 또래의 남자였다. (실제 마 교수는 1951년 출생이고, 김 검사는 1952년 출생이다.)
    그런데도 마 교수가 보기에 검사의 얼굴에서는 ‘ 70년대식 허무 ’가 풍겨 나오지 않고 있었다. 검사스럽게 너무나 의기양양하고 자족적인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검사가 질문을 하고 그가 대답을 하면 수사관이 타이프로 받아서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였다. 신문이 시작되자마자 검사의 얼굴 표정이 점점 경직되면서 바뀌었다. 어딘지 모르게 살기가 감돌고 몹시 위압적이었다.
    그 사건은, 범죄행위라는 게 소설을 쓴 것이고, 죄목이라는 게 소설이 음란하다는 것인 만큼 아주 기이한 신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증거조사도 있을 수 없고 뚜렷한 가해자나 피해자도 없었다. 롤랑 바르트가 말했듯이 그야말로 ‘내가 보면 예술, 남이 보면 외설’인 게 에로티시즘 예술에 대한 판단기준일 수 밖에 없는데, 검사가 자꾸 마 교수를 파렴치한 현행범처럼 몰아가니 정말 답답하고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 자연 문학적 논쟁을 벌일 수 밖에 없었는데, 검사의 문학관은 구태의연한 권선징악적 교훈주의에 머물러 있어 처음에는 도대체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치 벽에다 대고 말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외설이나 음란이라는 게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인데도, 검사가 음란하다고 보면 곧바로 죄가 되는 것이었다. 중세기의 그 혹독한 마녀재판이 연상되었다. 그는 그래도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서 한껏 긴장한 체 설명을 해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같은 말을 두세 번 말하는 것조차 너무나 피곤했지만 말이다.

    마 교수는 해야할 말은 해야겠다 싶어 신문 도중 검사에게 불쑥 물었다.
    교수 : “현행범도 아닌데 이렇게 불시에 연행을 해도 되는 겁니까?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저는 지금 대학에서 다섯 강좌나 강의를 하고 있는 교수입니다.”

    검사 : “사안이 그만큼 중대하기 때문이오. 당신의 소설이 미풍양속을 해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구속 수사를 하기로 방침을 정한 거요.”

    교수 : “아니 가능성이 어떻게 죄가 됩니까? 제가 뭘 알겠습니까만은…… 범죄라는게 실제 현실화되서 피해가 발생해야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 사건에서 누가 피해자인가요? 그 피해자는 어떤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검사는 그의 당연한 물음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굳어진 얼굴로 신문을 계속해나갔다.
    검사 : “왜? 이 소설의 주인공 같은 방탕한 여자를 그렸소? 그게 도대체 말이 되는 겁니까. 낮 뜨거워서 그걸 어떻게 소설이라고 읽을 수 있겠소.”

    그는 하는 수 없이 그 나름대로 답변을 해나갈 수 밖에 없었다.
    교수 : “저는 방탕한 여성을 그린 게 아니라 성에 자유로운 여성을 그린 것입니다. 설사 이 소설의 주인공이 방탕한 여성이라고 해도, 그런 여성은 이 시대의 한 개인으로 적지 않게 실존하고 있는 인물들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통해 한 젊은 여성이 봉건적 성윤리에 반항하면서, 성에 대한 학습 욕구를 실천해 보려고 애쓰는 과정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검사 : “지금 학습 욕구라고 했습니까? 그게 학습 자료가 된다는 건가요?”

    교수 : “그렇지요. 여성해방운동의 여파로 요즘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성에 대한 학습 욕구가 더 커져가고 있고, 또 혼전순결 등 조선시대의 유교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면을 많이 보여주고 있지요.
    이 소설의 여주인공처럼 행동으로까지 옮기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내면적으로는 프리섹스에 공감하고 있는 여성들이 상당히 많은 게 사실 아닙니까?”

    검사 : “도대체 유구무언이라고 해야겠소. 누가 프리섹스에 공감한 단 말입니까? 문학이란게 독자에게 도덕적 감화를 줘야 하는 것 아니오? 이런 소설을 딸에게 읽힐 수 있겠소?”

    교수 : “딸이라면 대체 몇 살 난 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서른 살 먹은 딸도 있을 수도 있고 다섯 살 먹은 딸도 있을 수 있어요.
    저는 법 집행이 합리적 이성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비합리적인 질문을 하시니 몹시 실망하게 되는군요.
    설사 미성년의 딸을 가리켜 말씀하신 거라고 해도 딸에게 어떤 책을 읽어라 말아라 강요할 수는 없어요. 읽으래도 안 읽을 수가 있고 읽지 말래도 읽을 수가 있으니까요. 또 비슷한 나이의 딸들이라 하더라도 독서 수준이나 독서 취향이 각각 다를 수 밖에 없지요.
    청소년을 핑계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럼 성인 문학은 존재할 수 없게 되니까요.
    그런 논리대로라면 청소년이 보면 안 되니까 어른들이 섹스를 해서도 안 되지 않겠습니까?
    …… 그리고 왜 딸 걱정만 하고 아들 걱정은 안 하시는 겁니까? 이 책의 주인공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면 시비가 한결 줄어들었을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더니 검사가 갑자기 벌컥 화를 냈다.
    검사 : “그럼 당신이 쓴 책이 음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말이오? 그게 교수라는 사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란 말이오?”

    교수 :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요. 독자들 중엔 ‘너무 야하다’는 사람도 있었고 ‘너무 싱겁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법이란 명백한 기준과 형평성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소설을 음란하다고 보시는 건 자유입니다만, 검사님도 역시 다양한 독자 중의 한 분일 뿐입니다.
    그리고 소설이란 원래 허구적 상상의 산물인데 어떻게 상상을 단죄할 수 있습니까?
    이 소설의 여주인공이 설사 현실 속의 인물이라고 해도 잡혀갈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음란하든 안 하든 합의적으로 섹스를 하고 있으니까요.
    소설 속에서 완전 범죄의 살인 묘사를 해도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는데, 자유로운 성행위를 했다고 해서 작가를 처벌한다는 건 저로선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죄라는 게 살인이나 절도같이 명백한 가해 행위가 있어야 하고 또 피해자도 있어야 하는데, 단지 일부 독자에게 외설적인 느낌을 준다고 해서 작가를 처벌한다는 것은 더더욱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검사는 가끔 말문이 막히면 더욱더 감정적으로 나왔다.
    검사 : “난 당신 책을 보고 음란한 느낌 정도가 아니라 혐오감이 느껴집디다. 문제는 말이에요…… 교수 신분이 문제인거요. 그것도 명문 사립대 교수란 말입니다. 점잖은 교수께서 그런 야한 소설을 쓰다니…… 학생들 보기가 부끄럽지 않소?”

    교수 : “교수 신분과 소설가는 그 위치가 다르지요. 저는 소설가 입장에서 소설을 쓴것에 불과합니다.”

    검사 : “교수라면 말이지요. …… 스승으로써 학생들을 선도해야지 않겠습니까?”

    교수 : “스승과 소설은 별개이지요. 그리고 대학생들은 엄연한 성인이니까 어린애가 아니란 말입니다.”

    검사 : “교수가 연구와 교육에 전념해야지 그런 야한 소설이나 계속 쓰니까…… 한 두 번도 아니고 말이죠. 그래서 비난하는 거 아닙니까?”

    교수 : “전 연구에도 소홀히 한 적이 없습니다.”

    검사 : “제가 조사해보니까 연구실적이 별로라는 거죠. 그냥 소설이나 시집이니, 에세이집이니, 잡다한 것만 끄적거렸단 말입니다.”

    교수 : “저는 문학 전공 교수가 실제 시나 소설을 쓰는 것은 훌륭한 연구실적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저처럼 많이 쓴 교수가 있을 까요.”

    검사 : “전혀 별개의 문제에요. 그런 야하디 야한 천박한 것들을 쓰면 안돼죠. 어느 교수님이 지적했던데 여학생들과 성을 매개로 학점 등을 흥정한 일은 없었습니까?”

    교수 : “그건 제 인격을 심하게 모독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근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까요? 명예훼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검찰은 그런 인간은 처벌하지 않습니까?”

    검사 : “그러니까 의심받을 일을 하면 안되는 거죠. 너무 심해요. 너무…… 욕지기가 나올 만큼 혐오스럽단 말입니다.”

    교수 : “혐오감을 준다고 처벌할 수 있습니까? 혐오스러운 것을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문학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입니다.
    현대소설은 리얼리즘이라고 해서 특히 인간과 사회의 추악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향이 많지요. 인간의 동물적 본성이나 사회의 밑바닥을 해부하다 보니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거죠.
    아름다운 것만 골라서 그린다면 사회나 인간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어요. 인간에게는 미와 추, 악과 선이 공존하고 있기때문이죠.
    그러므로 혐오스러운 것을 보여줬다고 해서 그것이 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이 위선이지요. 소설의 목적은 금지된 것을 파헤치는 것이고,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요,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꿈꾸기입니다.”

    검사 : “수업시간에도 음담패설, 욕설, 본인의 성적 경험담이 날아 다녀서,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은 듣기가 민망했다고 하던데.
    그런데 소설에까지 표현은 왜 그렇게 천박하게 했소? 문학이란 품위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오? 그 소설이 그렇게 천박한 언어로 섹스를 정면에서 노골적으로 취급하면 대중적으로 히트를 친다고 생각한 거요. 베스트셀러를 노리고. 또는 주류 문학계에서 논쟁의 중심에 서려고…… 의도한 거 아닌가?”

    교수 : “천박하다고 해서 죄가 된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는 발상입니다. 제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천박하게 표현했어요. 이유 없이 그렇게 썼겠어요? 문학의 품위주의, 양반주의, 훈민주의, 이런 것들에 대한 반발이지요.
    한국의 지식인들은 가벼움을 경박함이나 천박함으로 그릇 인식하는 경우가 많고, 설사 경박하다고 해도 그것이 의도된 경박성이라는 것을 아는 이가 드뭅니다.
    소설 문장에 사용되는 단어가 일상어 또는 비속어일 경우에 흔히들 그런 인상을 받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한문을 숭상하고 우리말을 폄하해서 보는 습관이 지식층에 형성돼 있기 때문에, 이를테면 ‘핥았다’ ‘빨았다’ 등 순 우리말을 구사한 표현은 쉽사리 조악하고 천박한 표현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지요.
    그래서 특히 성희 묘사의 경우 대체로 빙 둘러 변죽만 울리고 한자어를 많이 쓰는 문장이 더 품위 있는 문장으로 간주되고, 직설적인 구어체 문장은 상스럽고 천박한 문장으로 간주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아무리 야한 내용의 소설을 쓴다고 해도 어법이나 전체적 틀은 경건주의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결말 부분에 가서 권선징악을 하며 양다리를 걸치는 게 정석으로 되어있지요.
    저는 그런 것에 대한 반발로 이 소설의 여주인공을 부각시키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소설 어디에 이 소설의 여주인공 같은 여자가 있나요. 성에 조금 자유롭다 싶으면 다 자살하거나 반성하거나 그러지요.
    그리고 대중적 성공을 바란 적은 없습니다. 이 고루한 사회와 비타협적으로 대결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오히려 실험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검사 : “잘도 둘러대는데, 그럼 대관절 당신의 문학관은 뭐요? 그렇게까지 위악적일 필요가 있었는지 설명해 보세요. 그 소설을 끝내고 나서 무기력과 자기기만 상태에서 혼란스러웠던 거 아닌가. 정말? 그리고 출판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지 않았나요?”

    교수 : “저는 문학이 상상적 대리 배설인 동시에 관습적 통념과 억압적 윤리에 대한 도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창조적 반항이 문학의 본질이라고 보는 거지요.
    현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가 정말 옳은 것인지 질문하는 것이 바로 작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길들여져 있는 가치관과 윤리관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면서,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 정말 진리인지 아닌지, 또 왜 그것을 믿어야 하는지를 집요하게 캐들어가는 것이 바로 작가의 사회적 책임이지요.
    기성 윤리와 가치관을 추종하면서 스스로 점잖은 도덕 선생을 가장하는 것은 작가로서 가장 자질이 나쁜 자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문학은 무식한 백성들을 가르쳐 길들이는 도덕 교과서가 돼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런 문학만이 판치는 사회에서는 독창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율성이 질식되고 말아요. 문학의 참된 목적은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탈출이요, 창조적 일탈인 것입니다.”

    검사 : “지금,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탈출이라고 했소? 그럼 당신은 우리나라의 윤리관념과 정치체제를 부정하는 거요?”

    교수 : “저는 주로 수구적 봉건윤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책의 여주인공은 오히려 운동권 학생들의 경직된 사고를 비판하고 있지 않습니까?”

    검사 : “참, 그것도 그렇소. 학생들의 운동 덕분에 대통령 직선제가 관철되고 이만큼 민주화됐는데, 왜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운동권 학생들을 비판하고 있는 거요? 시대 정신에 역행한단 말입니다.”

    그는 대답을 하면서도 속으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예전엔 운동권 학생들을 때려잡던 검찰이, 이제 와서는 소설 속 여주인공이 운동권 학생들의 윤리적 경직성을 비판하는 말 몇 마디 한 걸 가지고 트집을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교수 : “운동권 학생들이나 진보적 지식인들 중 상당수가 봉건윤리적 사고방식의 측면에서는 다른 기득권 수구주의자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기 때문에 비판하고 있는 거지요.”

    검사 : “보수와 진보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나요? 보수와 진보는 서로 조금씩 섞여 있는게 아닐까요. 그쪽 시각에서 보면 검사는 수구꼴통으로 보이겠지요.”

    교수 : “제가 지금 대명천지에 이렇게 수사를 받고 있는걸 보면…… 기가 막히지요. 한가하게 보수와 진보를 논할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건 확실하게 인권 유린입니다. 지금까지 음란물 제조죄로 인신이 구속된 예가 있었습니까?”

    검사 : “죄가 된다 안 된다 여부, 구속 여부는 검사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검사는 법률 전문가 아닙니까.”

    교수 : “검사가 오직 자신의 잣대로 법을 농단해서는 안 될겁니다. 조자룡이 헌 칼 쓰듯 법을 휘둘러서는 안돼죠. 그렇지 않습니까. 검사들은 부디 자중해야 합니다.”

    검사 : “검사가 피의자로부터 법률 강의를 들을 필요는 없어요.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죠.
    어쨌든 이 소설에는 오럴섹스, 카섹스, 여자가 땅콩을 가지고 하는 자위행위, 마조히스틱한 섹스나 레즈비언 섹스 등 변태적인 장면이 나오고 있소. 이건 분명 성적 수치심을 극도로 자극하는 행위묘사에 해당되는데, 그래도 할 말이 있소?”

    교수 : “오럴섹스나 자위행위, 그리고 카섹스까지도 변태라고 하는 건 납득하기 곤란합니다만, 어쨌든 성희 묘사가 변태스럽다고 해서 그것이 죄가 된다는 건 납득이 안 갑니다.
    변태성욕 역시 인간 심리의 다양한 양상 중 하나인데, 그걸 리얼하게 묘사했다는 것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습니까?
    범죄소설에서 갖가지 변태 심리를 다루는 것이 당연하듯이, 성애소설에서 변태 심리를 다루는 것 역시 하나도 이상할 게 없어요. 정상적인 성이나 생식적인 성만 소재가 될 수 있다면 인간의 내면 세계를 보다 깊게 파헤칠 수 없으니까요.
    사디즘이나 마조히즘 등의 변태 심리는 이제 단지 성애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학이나 사회학에서까지도 폭넓게 응용되고 있습니다.
    사드나 마조흐의 소설은 이미 문학사의 고전이 되었고,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같은 책도 마조히즘 심리를 정치사회학적 측면에서 다룬 명저로 취급받고 있지요.
    일부 독자의 성관념에 어긋나는 성행위를 그렸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 음란 퇴폐물로 규정해 단죄한다는 것은, 남성 상위 체위 이외의 방법으로 성교하는 사람들은 단죄했던 중세기의 논리와 다를 바 없어요.
    변태 성욕은 이제 영화나 문학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고 있고, 일반 독자들 역시 그런 종류의 묘사에 세련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대다수의 독자들은 오히려 평범하지 않은 사건이나 성애를 바라고 있지요. 상상적 일탈을 통해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맛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카타르시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검사 : “다시 말하면 당신은 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오직 감각적일 뿐이지. 좀 더 진지하게 숭고한 성의 본질에 다가갈 순 없었나. 생물학적 성이 아닌…… 성을 통해서 인간이 무엇인지 규명할 수 있었는데. 성은 원초적인 것이니까.”

    교수 : “소설에서 철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면 그건 이미 소설이 아닌 것으로 되버려요. 그러려면 차라리 도덕 교과서를 쓰는 게 나아요. 저는 그런 걸 타파하고 싶은 겁니다.”

    검사 : “왜? 그녀가 한바탕 섹스에 몰입하다가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았는지…… 그게 인간의 속성을 고려하면 당연하지 않은가요? 그 후 한 인간으로 성장해서 혹은 도덕적으로 성숙해서 나타나지 않았는지 궁금하단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회가 빠졌단 말이지. 또는 속물적인 모습을 지우고 영적인 모습으로 재생시키던가.
    그렇게 되었더라면 구속 기소는 불가능할 건데.”

    교수 : “무라카미 류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에서 실컷 섹스를 즐기다가 ‘그러고 보니까 허무하더라’로 결말을 맺으면서 양다리를 걸치고 교훈주의로 도망갔습니다.
    그런 소설을 성장소설이니 교육소설이니 하는데 정말 웃기는 거에요. 저는 그따위 식으로는 쓸 수 없어요. 그런 건 성경처럼 설교집이지 진정한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독일에서도 일본에서도 한때 소설에서 설교는 하나의 큰 흐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과거의 일이죠. 지금은 포스트 모던이란 말입니다.”

    검사 : “사라에게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신의 삶과 꿈, 어떠한 희망도 없어. 그러니까 강력하건 아니건 간에 스토리텔링이 없어요. 오직 무모한 섹스만 소설 전편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넘처나고 있지.
    이건 건전한 소설이 아니라 더러운 포르노그래픽인거지. 극도로 비도덕적인…… 그것도 아주 역겨운 ……”

    교수 : “검사님은 그 소설을 제대로 읽은게 아니에요. 무언가 오해하고 있단 말입니다. 독자가 오해하는 건 독자의 자유이지만 이 경우는 다르지요. 범죄가 성립되는지 여부가 쟁점이니까요.
    자유분방한 성관념을 가진 여성을 그리는 소설을 쓸 때마다 제가 느끼게 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소수를 무시한다는 사실입니다.
    따지고 보면 제가 주장하는 성 철학도 소수 의견에 속하는 것이고, 소설 속에 그리는 인물들도 다 소수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소수라고 해서 그들을 무조건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검사 : “제가 향이 좋은 맛있는 커피를 대접하지요. 그리고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조서에 올리지 않겠소. 우리끼리 하는 솔직한 사적이야기니까 말이요.
    나는 수사에 착수하면서 지금까지 나온 책들을 거의 전부 꼼꼼하게 읽었어요. 그러니까 진정한 독자라고 할 수 있지. 지금부터 독자가 작가와 작품을 매개로 대화하는 거죠.”

    교수 : “무슨 말씀인가요? 매우 궁금하군요.”

    검사 : “왜, 상상 속 인물의 성행위에 대해서만 그렇게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작가 자신의 내면 무의식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 자신을 들여다 보면 그게 훌륭한 소설이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이죠.”

    교수 : “그게 프로이트식 정신분석 아니겠습니까. 그건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 영역이죠. 그러면 독자가 이해하기 곤란해서 난해하게 됩니다. 왜 그렇게 소설이 난해해야 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런 건 사소설이라고 해서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작가의 일기장 같은 것이 될 수도 있죠.”

    검사 : “당신의 소설은 고정된 스타일이라고 할까, 패턴이라고 할까, 그런 게 있는데 한결같이 섹스에 관한 것만…… 그래서 너무 피상적이고 깊이가 없어요. 나는 행간에 숨은 의미를 찾기 위해서 눈을 부릅뜨고 읽어보았지만 실망했지. 진정한 의미는 없었으니까.”

    교수 : “내 소설에 진정한 의미는 숨어있지 않지요. 헛수고 한 거에요. 인생 그 자체가 무의미한 겁니다. 정말 아무 의미가 없어요.”

    검사 : “마 교수께서는 스스로 성 도착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가요. 직접 집필한 시집이나 소설 등을 잘 살펴보면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요.”

    교수 : “그럴지도 모르죠. 아닐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 도착자가 범죄자는 아니지요. 극히 보수적인 시각에서 보면 조금 이상하게 보일 뿐이지요.
    봉건 윤리로 생각이 똘똘 뭉쳐 있는 자들, 성을 불결하게 보는 자들, 그리고 변태성욕을 불결하게 보는 자들, 그리고 변태성욕을 범죄시 하는 자들, 그들이야말로 밤이 되면 진짜 섹스광이란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상상적 섹스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엄격하고, 실제적 섹스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너그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상 속의 섹스, 특히 이른바 변태성욕 같은 것을 묘사한 문학 작품이 법으로 처벌되는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중 한국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음성적인 매춘의 천국입니다. 검사들도 매춘을 자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걸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이 기이한 이중성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든 것이 촌스러운 문화수준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입니다.”

    검사 : “왜 그렇게 병적일 만큼 에로티시즘에 몰두하는지 의문이 들지요. 스스로 섹스에 대해서 열등의식이 있는 건 아닌지? 혹은 성적으로 약점이 있었던 건 아닌지? 그걸 보상받으려고 그런 소설을……. 죄송하지만 혹시 성 불구자는 아닌가요? 그런 의심까지 든다니까. 그 소설 속 교수는 작가의 분신이 아닌가요?”

    교수 : “인생의 행복은 오로지 성적 만족에 의해 결정된다고 봅니다. 명예, 돈, 권력 등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성의 자유로운 포식을 위한 준비단계에 지나치지 않습니다.
    정신적 행복감이란 허위의식에 가득 찬 은폐일 뿐입니다. 구체적인 행복감은 육체적 쾌락에서만 옵니다.
    저는 결혼할 때까지 많은 여자들과 길게 짧게 연애를 하였습니다. 10여 명쯤 되지요. 그런데 모든 여인들과 육체관계를 가지면서도 임신시켜 본 적이 없습니다. 무조건 오럴섹스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어질 때 아무런 부담감 없이 헤어질 수 있었습니다. 또 결혼하고서도 3년 동안 악착같이 피임을 했습니다.
    그래서 3년 살고, 1년 별거하고, 그리고 나서 이혼할 때 홀가분하게 이별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더라도 3년 동안은 피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있을 때 이혼하면 아이한테 평생 죄를 짓는 게 됩니다.
    이혼은 결혼 후 3년 이내에 가장 많이 발생합니다.”

    검사 : “사랑의 열정이 지나간 다음에는 죽음과 같은 불안만 남는거 아니겠어요. 왜? 소설이 그렇게 천덕꾸러기가 되어야만 하는 건지 의심이 든단 말입니다.
    당신은 주제의식도 탁월하고 문체도 훌륭하니까 자신만의 목소리로 새로운 주제를 끄집어내 변주하면서 얼마든지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는데…… 재능을 다른 데 쓰는 걸 보니까 안타깝단 말입니다.
    그랬으면 최고의 작가로 등극하였을 터인데 말입니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지만 말이요.”

    교수 : “커피는 정말 맛있습니다. 아주 오래간만이거든요.
    여기에다 담배를 한 대 피웠으면 금상첨화일텐데.
    그런데…… 검사님의 문학관은 저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더 이상 제 문학관을 여기에서 피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검사 : “자살이 낭만적인 행위라고 생각지는 않소.
    어떠한 고난이나 운명이 닥쳐도 굳굳하게 살아가기 바라겠소.
    이까짓 사건에 구속도, 기소도 가당키나 한 거요.
    일개 검사의 파워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어요. 나도 내심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소. 검찰은 상명하복 관계이니까.”

    교수 : “검사가 느끼는 고뇌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검사는 권력의 하수인에 불과하지요.
    법은 언제나 권력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법을 진심으로 신뢰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게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검사 : “판사도 마찬가지일거요. 결코 무죄를 선고치는 못한단 말입니다. 그럴만한 용기가 없으니까. 그들은 지독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어요.”

    이밖에도 범죄 모의 장소 (즉 출판계약을 한 곳), 간행물윤리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한 이유에 대한 추궁 등, 기타 질문이 있었다.
    신문이 끝나고 나서 수사관이 타이핑한 것을 보여주며 확인한다는 뜻으로 손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그것은 사실상 강요에 가까웠다. 국문과 교수인 그가 자세히 살펴보니 대충 요약해서 기록했기 때문에 문맥이 안 맞는 데다가 문법에 틀리는 문장이 수두룩했다. 이미 자포자기한 상태이고 일일이 다시 써주거나 고쳐 주는 것이 불가능 할 것 같아 그냥 손도장을 찍어 주고 말았다.
    마 교수가 아무리 답변을 잘한다고 해도 검사든 판사든 ‘나는 음란하게 봤다’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사실 검찰의 신문이나 법원의 재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살인범이라 할지라도 증거가 충분치 못하면 무죄가 되는데, 이런 식의 문학 관련 재판은 정말 황당한 원님 재판식 법 집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장석주를 조사한 사람은 김진태 검사 밑에 있는 수사계장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장석주에게 반말을 했다. 장석주가 다리 한 쪽을 다른 쪽의 다리 위에 얹은 채 얌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는 인상을 쓰며 매우 거친 말투로 소리쳤다. “똑바로 앉아!”
    그러고나서 그는 장석주에게 백지를 내밀며 인적사항들은 간단하게 적어내라고 명령했다. 생년월일, 본적지, 현주소, 가족관계, 학력, 경력 따위를 의례적으로 묻고 그것들을 앞에 놓인 타자기로 피의자신문조서에 찍어나갔다.
    그는 주로 장석주에게 신문해야할 사항을 간단하게 메모한 쪽지에 의거하여 물었다. 그러나 그 신문 사항들은 매우 간단했다. 그 물음과 물음 사이에 그는 수사와는 상관없는 그 의도가 분명치 않은 모호한 횡설수설에 가까운 말을 했고, 또 잡담에나 해당될 이야기를 아주 길고 지루하게 늘어놓았다.
    이를테면 자신이 읽은 ‘즐거운 사라’에 관한 독후감에 대하여 (그러나 그는 ‘즐거운 사라’의 내용 전체를 읽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그는 그 소설을 끝까지 읽었다고 주장하였지만 그의 말 도중에 소설의 세부사항들에 대한 무지를 너무 빈번하게 드러내곤 했다. 아마도 그는 검사가 기소를 위해 ‘즐거운 사라’에서 음란하다고 인정되는 부분들을 발췌한 내용들만 읽었음에 틀림없다.
    수사계장이 말했다.
    “나도 술집에 가끔 가거든. 술집에 가면 그보다 훨씬 더한 짓거리도 한다고. 우리도 남자니까.
    ‘즐거운 사라’를 마누라에게 읽게 했지. 충격을 받았더라고. 그랬으니 마누라가 아주 추잡한 책이라고 규정을 하더군. 내가 뭘 알겠어. 그래서 마누라 말을 믿기로 한거야. 그건 추잡한 책이야.”
    그런데 장석주가 조사를 받고 있던 조사실로 김진태 검사가 불쑥 들어왔다. 그는 수사계장에게 조서를 받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물었다.
    그리고 장석주에게 말을 걸어왔다.
    “당신한테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즐거운 사라’가 문학이고 소설이요?”
    그의 얼굴에는 약간 야비한 느낌을 주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는 장석주가 출판했던 그 소설이 백해무익한 것이며 그 소설의 성적 표현들이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그 위반과 일탈에 대한 사법적인 제재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장석주가 그의 물음에 단순하고 명료하게 대답했다.
    “네, 소설이고 문학이지요”
    그 검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랑삼아 말했다.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은 문학이 뭔지나 알고 있소. 내가 독서를 엄청나게 많이 한 사람이라고. 문학에 대해서도 전문가 못지 않게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니까.”
    장석주는 안경을 끼고 강한 경상도 억양의 말투를 가진 그 검사에게 아주 분명한 어조로 문학의 본질에 대해 말을 했다.
    “‘즐거운 사라’가 왜 문학일 수밖에 없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작가의 사회적 책임은 당대의 지배적 도덕체계를 강화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에나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받아들이던 당대의 지배적이고 유용한 가치체계에 종속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것을 의심하고 그것의 본질을 직시하고 성찰하도록 이끌지요.
    문학적 상상력은 본질적으로 당대적 현실에 대해 일탈적이며 가치 전복적으로 움직이며…… 끊임없이 금지된 영역에 대한 탐색과 도전을 멈추지 않습니다. 문학적 상상력은 항상 경계와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끊임없는 의지를 반영합니다.”
    장석주가 분명한 어조로 말을 해나가는 동안, ‘즐거운 사라’의 정가가 5,800원 이라는 사실을 거듭 들먹이며, 그를 ‘음란한 소설’이나 발행해서 책을 팔아먹으려는 파렴치한 출판업자로 몰아가면서 큰소리로 한바탕 훈계나 해주려고 말을 꺼냈던 그 검사의 얼굴색은 붉어졌고 일그러져버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일개 파렴치한 출판업자의 입에서 나온 정곡을 찌르는 말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그 검사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를 버럭 내뱉었다. 그리고나서 문을 쾅하고 소리나게 닫고는 나가버렸다.
    “나는 당신같은 친구하고 문학에 대해 토론이나 하자고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냐”
    그 순간 장석주는 그가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 검사는 장석주가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정식으로 등단해서 활동한지 열세 해째나 되는 잘 나가는 문학평론가이며, 세 권의 문학평론집을 출간한 현역 비평가라는 사실을 몰랐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문학전문가 앞에서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그가 무모하게 문학의 본질에 대해 토론해보자는 식의 만용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검사의 신문이 끝난 후에도 마 교수는 오랫동안 조사실에 갇혀 있었다. 수사관 하나가 남아서 그를 감시했다. 답답한 환경에서 담배를 못 피우니 미칠 지경이었다. 낌새로 봐서는 구속영장이 발부될 게 분명한데 앞으로도 계속 담배를 못 피울 생각을 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저녁때가 되자 수사관이 다 식은 국밥 한 그릇을 갖다 주었다.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반도 못 먹고 숟가락을 놓자 수사관들이 들어와 그를 양쪽에서 붙잡고 검사실로 데리고 갔다. 청하출판사의 장석주 사장도 끌려 들어와 있었다.
    검사가 마 교수를 보고 말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됐소. 할 말 있소?”
    그는 몹시 지쳐 있었지만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이번 사건처럼 이른바 외설을 이유로 작가를 구속한 일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현실에 절망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빠른 시간 내에 웃음거리로 회자될 날이 올 것입니다.”
    검사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 선생을 연행한 것이나 구속하는 것이나 나 혼자 결정해서 한 일은 아니오. 이 사건은 국가적 사안이오.”
    일개 소설의 음란성 여부가 국가적 사안이라는 말이 어쩐지 우스꽝스럽게 들리면서, 한편으로는 그를 몹시 당황하게 만들었다.

    4. 서울구치소
    가을색이 완연했다. 풀잎은 가을을 만나면 빛을 바꾸고 나무가 가을을 만나면 이파리를 벗는다.
    서울구치소는 경기도 의왕시 산자락에 있었다. 어두컴컴한 하늘 밑에 황량한 모습을 하고 있는 회색 시멘트 건물이 보였다. 마 교수는 구치소 대기실로 끌려들어갔다. 장석주 사장이 다른 차로 조금 먼저 실려와서 꿇어앉혀져 있었다.
    마 교수도 꿇어앉혀져 있다가 다른 구속자들이 다 들어온 후 다른 방으로 끌려갔다. 그들은 모두 함께 발가벗기운 채 신체검사를 받았다. 건강을 위한 신체검사가 아니라 담배나 현금 또는 흉기 등을 몸에 숨기고 들어오지나 않았는지 조사해 보는 신체검사였다. 항문과 입 안 등을 교도관들이 샅샅이 검색했다.
    그런 후 푸른색 죄수복과 검정 고무신을 받은 후 입소 절차를 마치고 미결 사동의 방을 배정받았는데 그때는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늦가을 밤이어서 몹시 추웠다. 얇은 옷이라 추위가 가셔지지 않았다. 꿈만 같은 하루였다. 그러나 그 꿈은 두 번 다시 꾸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정치적 거물도 아니고 중대한 범죄의 죄인도 아닌데 독방에 수감되고 장 사장은 다른 혼거방에 수감되었다.
    감방에 들어서니 두 평이 채 될까 말까 했다. 희미한 형광등이 독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수감자를 감시하기 위해 밤새도록 불을 켜놓는 모양이었다.
    시멘트 벽에 마룻바닥이라서 몹시 춥고 을씨년스러웠다. 난방 시설 같은 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몸을 얇은 매트리스 위에 뉘이고 하늘색 담요 한 장을 덮으니 온갖 생각이 뒤죽박죽이 되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눈을 감고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몸 하나를 간신히 포용할 정도의 작은 방이 꼭 자궁 속처럼 보였다. 어쩌면 이곳이 진짜 그가 있었던 자궁이요 고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궁치고는 너무나 춥고 을씨년스런 자궁이었다.
    매트리스 위에 누웠는데도 밑에서 차가운 냉기가 올라와 몸이 덜덜 떨려왔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목침을 베고 담요를 잡아당겨 머리 위로 푹 뒤집어 써보았다. 담요가 얇고 가벼워 전혀 포근한 느낌이 밀려오지 않았다.
    그는 30대 초반까지 와풍이 많은 한옥집에 살았는데, 그때는 늘 아주 두꺼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자야 했다. 그때 붙은 버릇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 그는 항상 두꺼운 이불을 좋아했다. 두껍고 무거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으면 꼭 자궁 속 같은 포근한 느낌이 왔고, 시야를 차단하는 어둠 속에서 자궁 속의 태아와도 같은 안온한 안식감속에 잠기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감방의 얇은 담요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냉기를 없애 주지도 못했고 완전한 어둠을 만들어 주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속은 자궁 속 같지가 않았다.
    이런 상태로는 오늘 밤만이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잠을 이루기 어려울 것 같았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고 며칠 되지 않아 호송차를 타고 다른 피의자들과 함께 검찰청사로 조사를 받으러 갔다. 검찰에 조사를 받으러 가거나 재판을 받으러 가는 것을 ‘출정’나간다고 한다. 각 사동에서 출정자로 불려온 피의자들은 수갑을 차고 온 몸을 포승으로 결박지우고, 거기에다 여러 사람을 한 줄로 엮는 ‘연승’이라는 것을 하고 호송차에 올라탄다.
    교도관들이 반말을 하는 것은 예사이고 그들의 비위를 거스를 때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여러 번 목격되었다. 검찰에 불려온 피의자들은 금방 조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검사가 불러줄 때까지 검찰청사의 조그만 대기감방에서 몇 시간이고 마냥 기다려야만 한다. 수갑을 채우고 포승을 했기 때문에 손놀림이 자유롭지 않은 피의자들은 오줌을 한 번 누고 옷을 제대로 추스르는 일조차 여간 버겁지 않다.
    겨울에 난방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그 비좁은 검찰청사 대기감방에 몇 시간이고 떨면서 기다리는 일 그 자체가 고통이었다. 그들은 세 번 그렇게 출정을 나갔는데 고작 몇 마디 묻고는 되돌려보내기 일쑤였다. 그렇게 온 몸을 포박당한 채 몇 시간을 대기감방에서 떨다가 불려 올라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몇 마디를 묻고는 돌려보냈다.
    1992년 12월 28일, 1심 판결에서 집행유예를 받고도 그들은 그대로 석방되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법정에 나올 때 타고 왔던 호송차에 실려 서울구치소로 되돌아갔고,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을 위해 대기하는 피고인들을 따로 모아놓는 독방에 다시 몇 시간 동안 갇혀 있어야 했다.
    그 독방들은 오래 관리하지 않은 공중변소처럼 지저분했고 난방도 전혀 되지 않았다. 그곳에서 한겨울의 추위로 덜덜 떨며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퇴소절차를 받고 구치소에 입소할 때 영치시켰던 옷과 사물들을 찾아 구치소 밖으로 나왔을때는 캄캄해진 밤 8시가 넘어서였다.

    5. 서울형사지방법원 형사법정
    1992년 11월 17일 그들은 정식으로 기소되었다.(사건번호 92고단 10092) 서울구치소에 수감된지 만 20일 만이었다. 공소장에 기재된 죄명은 ‘음란문서 제조’와 ‘음란문서 판매’였고 적용법조는 형법 제244조, 제243조, 제30조, 제37조, 제38조 그리고 형법 제 58조 제1항이었다.
    공소장 요약
    피고인 마광수는 1984. 경부터 현재까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문이나 잡지 또는 단행본 등을 통하여 시, 소설, 수필 등을 발표하여온 자로서, 소설 ‘광마 일기’에 대하여 음란성을 이유로 1990. 7. 26.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경고 결정을, 1991. 서울문화사에서 출판한 소설 ‘즐거운 사라’에 대하여 같은 이유로 1991. 9. 3. 위원회로부터 ‘관계당국에 제재결정’을, 여성잡지 ‘여원’에 연재한 소설 ‘절망보다 더 두터운 희망’에 대하여 같은 이유로 1991. 11. 19. 및 1991. 12. 10. 등 2회에 걸쳐 위 위원회로부터 ‘경고’결정을, 1991. 5. 4. 불교방송 F.M.의 ‘밤의 창가에서’ 프로에서의 외설스러운 발언을 이유로 ‘방송 출연금지’ 결정을, 1992. 8. 20. 경 청하에서 출판한 소설 ‘즐거운 사라’에 대하여 ‘음란성’을 이유로 1992. 9. 1.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관계당국에 제재결정’을 각각 받은 사실이 있는 자이고, 피고인 장석주는 문학평론가로서 1988. 8. 1. 경부터 현재까지 도서출판 청하의 대표로 재직중인 자 등인바, 공모하여
    판매할 목적으로 1992. 5. 말경 서울 서대문구 신촌등 소재 연세대학교 구내 피고인 마광수의 연구실에서 마광수가 ……중략…… 등 ‘별지’ 기재와 같이 성행위 등 성관계를 노골적이고도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성욕을 자극하여 흥분시키고 일반의 정상적인 성적 정서와 선량한 사회풍속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내용으로 된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을 저작한 다음 1992. 5. 말경 일자불상경 위 연구실에서 상 피고인 장석주와 위 소설을 장석주가 발행하되 저작료는 권당 정가의 10%씩 주기로 하는 내용으로 된 위 소설 출판 계약을 체결하여 위 장석주가 1992. 8. 20. 경 서울 강남구 청담동 79의 5 도서출판 청하에서 초판 5,000권을 인쇄하여 음란한 문서를 제조하고,
    1992. 8. 20.경 서울 종로구 종로 1가 소재 교보문고 등에서 위 장석주가 위 소설을 권당 5,800원씩 위 서점 등을 통하여 전국에 판매함으로써 음란한 문서를 판매한 것이다.
    별지 기재
    아버지가 미국 지사장으로 발령이 나서 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터전을 옮겨가는데도 혼자 한국에 남은 미술 대학생 ‘나사라’는 같은 미대 남학생과 처녀막 파열의식을 치른 뒤 비밀요정에 나가 다양한 성 경험을 한다. 그리고나서 고교 동창생의 애인, 대학 교수, 언더그라운드 가수, 복학생, 같은 과 친구의 약혼자 등을 상대로 쾌락의 유희에 빠져든다.
    그녀는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다’는 생각으로 남녀 간 1:1 성행위, 여성 간 동성애, 남1 대 여2의 혼음 및 수음을 행하며 그 형식도 오랄섹스, 에이널섹스, 카섹스 등 다양하여 뭇 남성에게 새로운 미끼가 되고 동시에 그녀 자신은 끊임없이 새로운 먹이를 찾아 나선다.
    약속 없는 시대, 전망 부재의 시대를 살아가는 신세대들이 덧없는 섹스의 화려함과 순간에만 몰두해 나가는 과정을 1990년대 신촌이라는 공간의 대학 언어로 담아냈다.
    ‘즐거운 사라’의 작가는 작품 속에 작가의 당위론적 세계관의 무분별한 개입을 배제하고 성의 사실적 묘사를 통한 리얼리즘의 추구가 소설의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그 동안 한국소설에서 나타난 성은 현실적 고민의 도피 수단에 불과했으며 눈치보기에 급급한 나머지 은폐된 채로 썩어가고 있으므로 성을 사상과 토론의 자유시장에 부치기 위해 성 문제에 치중하여 새 시대의 조류에 맞는 새로운 성 의식이나 성 철학을 강조하고 있다고, 책의 말미에서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의 성적 표현들은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그 위반과 일탈에 대한 사법적인 제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을 음란물로 단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을 공소장의 별지 기재는 다음과 같이 예시하고 있다.

    (1) 안주로 가져온 것은 껍질을 깐 땅콩이었다. 그냥 집어먹으려는데, 문득 어떤 에로틱한 그림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라 왔다. 그래서 나는 땅콩 서너 알을 질 속에 집어넣고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보았다. 나는 불두덩이 근처가 차츰 달아오는 것을 느꼈다. 다시금 한 주먹의 땅콩을 질 속에다 쑤셔 넣어본다. 꽉 찬 만복감, 아니 만질감 같은 느낌이 항문서부터 머리끝에서 올라오는 것이 참 기분이 상당히 괜찮다. 근사하다. 나는 다시 질 속에 꼭꼭 숨어있는 땅콩 알맹이들을 먹어본다. 깊숙이 박혀 있는 땅콩 알갱이를 빼내려고 손가락을 집어넣고 휘저어 대보니 정말로 저릿저릿하면서도 그윽한 쾌감이 뼛속 깊숙이 밀려왔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손가락 동작을 천천히 하여 질 속의 땅콩을 우아한 방법으로 수색해 내기 시작했다. 얼큰한 취기와 함께, 남자의 페니스에 의해 이루어지는 싱거운 오르가슴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지속적인 오르가슴이 찾아왔다.(30쪽)

    (2) 나는 그가 내 두다리를 그의 양 어깨 위에 걸쳐놓고 내 삼각주 부분에서 흘러나오는 애액을 맛있게 빨아먹고 있는 소리를 들어보려고 애쓴다. 아아아아 흐흐흐흥……,나는 나직한 톤으로 기쁨의 신음소리를 내 뱉는다.(31쪽)

    (3) 그 녀석은 아주 작고 말랑말랑해져 있을 때 더 귀엽고 예쁘다. 그걸 때 남자의 심볼은 갖고 놀기에 아주 좋은 장난감이 된다. 나는 기철의 페니스를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그 아래 매달린 고환 속의 방울 두 개를 내 손바닥 안에 넣고 살살살 비벼본다. 그러고 말랑말랑한 고추를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톡톡 건드려도 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놈이 성을 내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이쪽에서 당할 차례다. 그 녀석은 몸 안의 살덩어리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좁은 터널 속을 이리저리 종횡무진으로 휩쓸고 다닌다…….(33쪽)

    (4) 기철은 치마를 벗기지 않은 채로 나의 두 다리를 벌리게 하여 자기의 무릎 위에 앉힌다. 그의 성난 남근이 내 팬티를 뚫는다. 아니 뚫는게 아니라 나의 팬티가 마치 콘돔처럼 기철의 남근을 감사고 나의 성기 안으로 들어온다. …… 나는 손으로 기철이 불두덩을 밀어내고 팬티를 아래로 내려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다리를 벌린 상태이기 때문에 팬티가 밑으로 잘 내려가지 않는다. 그러자 기철이가 나를 번쩍 들어안아 침대 위에 메다꽂듯이 눕힌다. …… 나는 그의 살집 없는 엉덩이의 근육과 고불고불하게 나 있는 무릎 밑의 털을 발바닥으로 살금살금 간질이듯 만져준다. 기철은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눕는다. 나는 기철의 배 위에 올라가 두 몸이 한 몸이 되도록 조립한다. 그리고 나의 하반신을 이리저리 멧돌 굴리듯 빙글빙글 음산하게 움직인다.(46~47쪽)

    (5) 내 젖꼭지가 그의 입 속에서 잘근잘근 씹혀지고 내 클리토리스가 그의 손가락에 의해 사정없이 짓이겨졌다. 너무 서둔다, 너무 서둘러…… 이왕에 먹을 건데 좀 천천히 씹어먹을 일이지……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자는 사랑에 무척이나 허기져 있었던 것같았다.……
    그는 허연 액체를 헐레벌떡 내 몸 안에 쏟아붓고 나서, 심각한 표정이되어 내 몸둥이 위에 엎어져 있었다. 확실히 코가 높은 남자들은 섹스를 할 때도 심각하고 사색적인 방식으로 하는구나(87쪽)

    (6) 자기가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나는 계속 그의 페니스를 빨아줘야 할 때도 있어. 그리고 내가 식사를 할 때 음식마다 정액을 뿌려놓을 때도 있구. 가끔 가죽혁대로 내 엉덩이를 때리는 적도 많아. 술을 마실 땐 내가 언제나 술이나 안주를 내 입 속에다 머금었다가 다시 그이의 입에다 넣어줘야 해. 삽입성교를 할 때도 가끔은 편안한 침대를 놔두고 화장실 안에서 하기를 좋아하지. 하루종일 내 그 부분에다가 계속 모조페니스를 끼워놓고 있게 한 적도 있어. 또 내가 꽁꽁 묶인 채로 그의 페니스와 항문을 핥아줘야 할 때도 있구……(125쪽)

    (7) 처음엔 가끔씩 자기 오줌을 받아 먹으라고 시키더니, 요즘은 아예 오줌이 마려울 때마다 몽땅 다 받아 마시라는 거야. 그리고 또 내 성기 안에다가 밤알 만한 크기의 금방울 두 개를 계속 집어넣고 있으라지 뭐니. 항문 섹스를 할 때 잠깐 동안만 넣었다 빼내면 안되냐고 했더니 절대로 안 된다는 거야. 언제나 집어넣고 있어야만 내가 진자 음탕한 여자가 될 수 있다나. 그래서 시험삼아 한번 넣어봤더니 나무 아프고 불쾌하더군. 그래서 이것만은 제발 봐달라고 했더니, 차마 강제로 시킬 순 없고 하니까 자주자주 짜증을 내는 거야(126쪽)

    (8) 나는 정아와 키스를 나누면서 마음 속으로, 이애는 절대로 불감증이 아니로군, 하고 중얼거렸다. …… 우리는 계속해서 흘끔흘끔 비디오 테이프를 참조해가며 철부덕 철부덕 끈끈한 애무를 나누었다. 옷을 벗었지만 그래도 더워서, 우리 두 사람이 몸뚱이를 슬근슬근 비벼댈 때마다 마치 때가 밀려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난생 처음 맛보게 된 멋진 신세계요, 유쾌한 경험이었다(133쪽)

    (9) 두 사람은 발가벗은 채 한창 힘겨운 레슬링 경기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정말 정아 말대로 김승태는 정아 뒤에 쭈그린 자세로 서서 에이널 섹스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책에 씌어 있기로는, 에이널 섹스는 고추의 길이가 우리나라 남자보다 훨씬 더 길고 또 정력도 센 서양 남자들의 특기라고 하던데, 김승태가 그걸 즐기는 걸 보니 꽤나 장대한 페니스를 갖고 있는 것같았다(138쪽)

    (10) 그래서 나는 옷을 벗어붙이고 다짜고짜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서 돌진하여 들어갔다. 분위기를 돋우겠다는 건지 김승태가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골라서 틀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이 나오는 포르노 필름이었다. …… 김승태가 매일같이 한숨 쉬며 보채댔던 1대 2의 섹스를, 이젠 드디어 해보게 됐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드는 듯한 표정을 했다. 나는 텔레비전의 화면을 슬쩍슬쩍 봐가면서 될 수 있는 한 미친년처럼 흥분해보려고 애썼다. …… 우리들은 한 시간 남짓 서로 얽히고 설켜 꽤 유난스런 페팅을 즐겼다. 정아와 내가 김승태의 페니스를 혓바닥으로 애무해줄 때마다, 김승태는 아주 기분좋은 표정이 되어 흡사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 (3)이라는 숫자는 언제나 (완벽한 조화)를 뜻한다고 들었다. …… 남자와 여자를 섞어 세 사람이 한데 모여 발가벗고 놀 때, (관능적 긴장감)이 가장 완벽하게 유지되는 것같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든 여자 둘에 남자 하나든 아무래도 좋다. 그렇게 되면 동성의 두사람끼리 야릇한 질투심이 오가게 마련이어서 권태감을 방지해주는 역할을 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더 돈독하게 하고(139~140쪽)

    (11) 방에서 식사할 때가 제일 재미있는 시간이었는데, 김승태는 나와 정아로 하여금 교대로 자기의 심볼을 빨게 했다. 서울의 정아네 아파트에서 김승태 혼자서 밥을 먹을 때 정아가 그의 페니스를 핥고 빨아주었다면 그건 꽤나 을씨년스런 풍경이었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끼어들어, 정아가 식탁 밑에 개처럼 웅크리고 앉아 그의 심볼을 혀로 애무해줄 때 나는 김승태 곁에 붙어 앉아 있었다(155쪽)

    (12) 한참 동안 빨아주었는데도 김승태는 도무지 사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도 팬티를 벗어 던지고 치마를 위로 젖힌 다음 그에게 핥아달라고 했다. 그의 흐물흐물한 혀끝이 내 사타구니 사이를 미끌미끌 스티고 지나갔다. 김승태는 오로지 의무감에 넘쳐 내 클리토리스를 혀끝으로 힘겹게 찾아 헤매는 게 안쓰러워 보이고 또 감질만 나서, 나는 손으로 그의 입술을 밀어버리고 다시금 페니스를 향해 입을 벌리고서 엎어졌다. 혓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한참 핥아주고 나니까. 그제서야 드디어 쨀쨀쨀 정액이 흘러나온다. 생각보다는 수압이 별로였다. 나는 그것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받아 마셨다. 별로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171~172쪽)

    (13) 나는 다시금 김승태의 페니스를 향해 덤벼들엇다. 그리고 그것을 세차게 게걸스럽게 빨았다. 금세 동물적인 표정으로 바뀌어 흠흠흠 낮고 음흠한 신음소리를 낸다. 나는 왠지 신경질이 나서 김승태의 윗도리까지 홀라당 다 벗겨버렸다. 그리고는 혓바닥에 잔쯕 힘을 주어 그의 배꼽에서부터 젖꼭지까지,그리고 젖꼭지에서 모가지 언저리까지 날름날름 핥아나갔다. 결국 그는 나늘 발딱 젖혀놓더니, 뻣뻣하게 선 페니스를 앞장세우고 씨큰씨큰 돌진해왔다. 나는 돌진해 들어오는 김승태의 페니스를 손으로 붙잡아 스톱시키고 나서 그것을 내 입안으로 끌어 들였다.(176~177쪽)

    (14) 핥는 솜씨가 대단했다. 정말 온 몸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뒤져가며 정성껏 핥아준다. 아주 부드럽다. 아주 달콤하다. 이런 남자라면 같이 살아도 괜찮을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잘 해주진 않을 테지. 남자들은 다 욕심쟁이니까 …… 나는 그가 어쩌나 보려고 계속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다. 정말 혓바닥 힘이 대단했다. 그리고 침도 많다. 혀가 깔깔해졌을 텐데 계속 부드럽게 잘도 핥아댄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항복하고 말았다. 나는 도저히 못 참을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바지춤에서 페니스를 끄집어내었다. 어떻게 생겼나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그건 별로 크지 않았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 것일까. 발기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심볼을 입 속에다 넣고 우물거려보았다.(221쪽)

    (15) 그는 페팅의 면에 있어서만은 나를 정신없이 헷갈리게 했다.……
    그는 거미와도 같았다. 그가 가늘고 긴 손가락을 촉수처럼 뾰족하니 세우고 나를 간지럼 태우거나 내 음문을 후빌 때, 나는 자지러질 수밖에 없었다.
    …… 그의 차가운 손끝이 내 젖꼭지와 젖꼭지 주변, 그리고 속눈썹과 입술, 목, 가슴, 배, 팔과 넓적다리의 안쪽, 겨드랑이의 우묵한 부분, 발바닥과 혓바닥, 사타구니와 항문 주위를 간지럽힐 때, 나는 깊고 깊은 수렁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어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 그러다가 그는 그의 머리털과 입술 그리고 무성한 음모 등을 이용하여 내 몸을 부드럽게 비벼준다. 그러다가 최종 단계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축축한 그의 혓바닥이 등장하여 뱀처럼 나를 휘어감는 것이다. 그는 정말 개처럼 잘도 핥았다. …… 그는 미칠 듯이 핥아대다가 내 몸에 침을 뱉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 몸 전체에 술을 붓고 핥아먹기도 했다. 그러다가 페팅의 종반부에 이르면 처음과는 달리 거의 신경질적으로 내 질구를 거칠게 쑤셔대었다. 그때 그가 사용하는 손가락은 검지와 장지 두 개일 때가 보통이었고, 어떤 때는 약지까지 가세하여 세 개가 될 때도 있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에 묻은 점액을 자기가 빨아먹기도 하고 또 내게 빨아먹도록 시키기도 했다. …… ‘네 멘스를 받아서 거기에 밥을 말아 먹고 싶다’ 거나 ‘손톱을 한 10센티미터쯤 되게 더 뾰족하게 길러 그리고 거기에 빳빳하게 풀을 먹여. 그런 다음에 그걸로 빗 대신 내 머리를 빗겨주고 포크 대신 음식을 먹여줘. 그리고 가끔씩 내 온 몸을 할퀴고 찔러줘. 피가 흘러나오면 아주 천천히 핥아먹어’ 같은 것도 있었고, …… 또 네가 이빨이 하나도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네가 내 페니스를 빨아줄 때 너나 나나 한결 더 맛이 좋을 텐데.(292~294쪽)

    (16) 그가 손가락과 혓바닥으로 나를 주물러 터뜨려 놓고, 거기다가 다시 에로틱한 ‘희망사항’과 거친 욕설로 나를 완전히 달구어 놓은 다음에는 내가 그에게 일방적으로 봉사만 해줄 차례가 된다. 처음에는 주로 한도 끝도 없이 오래 가는 오랄 섹스다. 오랄 섹스 도중에는 그는 내 흥분을 돋우어 주려고 내 눈을 두터운 머플러로 묶어 가리거나. 당근이나 오이를 거기다 박아 넣기도 했다. 거기다가 당근이나 오이를 처음 박아 넣었을 때, 나는 김승태가 정아에게 사용했던 고무로 만든 모조 남근을 생각했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모조 남근보다는 당근이나 오이가 더 자연스럽고 야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어떤 때는 또 내 두 손을 묶거나 두 발을 묶어, 내가 아주 불편한 상태에서 펠라치오를 하도록 시키기도 했고, 페니스에 잼이나 버터를 발라놓고 아주 천천히 핥아먹게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좀체로 사정을 하지 않고 나를 짐승부리듯 부려먹기만 하는 것이었다.(296~297쪽)

    (17) 그가 진심으로 나를 야단쳐줬기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나는 관능적으로 흥분이 되었다. 형언할 수 없으리만치 짜릿짜릿한, 그리고 미치도록 감미로운 기분이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그의 사타구니 사이로 엎어져 그의 심볼을 정신없이 빨아대고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한지섭과 나는 앞으로도 계속 선생과 학생 사이로 약간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나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래…… (당신)은 역시 어색해. 이제부터는 죽어도 그를 (선생님)이라고만 부르기로 하자. 그리고 꼭 존댓말을 써야지. 그편이 관능적 쾌감을 상승시키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되겠다…… 오랫동안 입씨름만 했기 때문인지, 그의 페니스에서 풍겨나오는 퀴퀴한 냄새가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한지섭도 흥분한 듯했다. 그는 내 몸 여기저기에다 입술을 대고 짓뭉개기라도 할 듯 정신없이 비벼댔다(315쪽)

    재판의 경과
    구속 당시 마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1,000여 명의 대학생들을 상대로 다섯 강좌의 강의를 하고 있었다. 대학 교수가 강의 도중 구속된 예는 거의 없었다. 파렴치한 죄의 현행범이거나 반국가사범 몇 명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런데 형법 제244조 ‘음란물 제조죄’라는 것이 ‘징역 1년 이하 또는 벌금 40만원 이하’의 지극히 경미한 죄인데다가 거의 사문화된 죄였고, ‘현행범이면서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고, 구형량이 3년 이상되는 죄’가 아니면 구속하지 않는 것이 검찰의 원칙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돌연한 구속은 마 교수뿐만 아니라 대학 사회 전체를 깜짝 놀라게 했다.
    구속된 후 마 교수는 유명한 인권 변호사인 한승헌, 박용일 변호사 등을 변호인으로 선임해서 구속적부심을 신청하여 2시간 넘게 재판을 받았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담당 판사에게 보석을 신청 했지만 이 역시 기각되었다. 보석신청을 기각하면서 그 판사는 ‘국가적 사안이므로 보석신청을 기각한다’라고 말했다고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말이 사실이라면, 일개 교수 겸 작가를 전격 구속하여 사회의 부도덕한 성윤리에 경종을 울린다는 것이 ‘국가적 사안’으로까지 격상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고 나서 마 교수는 두 번의 공판 후 1992년 12월 28일 1심 재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일단 감옥에서 풀려났다.(그러나 소설 ‘즐거운 사라’의 인쇄원판 23매와 소설책자 1,890권은 몰수되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였다.
    그는 61일 동안 1.9평 크기의 독방에 수감되어 있었다.
    겨울 밤은 몸서리가 처지도록 길고 길었다.
    전선줄에 목을 매단 밤바람의 비명소리만 들릴뿐…….
    그들은 곧바로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는 1994년 7월 13일 항소기각 판결을 선고하였다.

    1심 재판을 맡은 석호철 판사는 마 교수와 출판사 대표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그 작품 전체적인 내용과 관련하여 공소사실이 유죄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음란성의 판단기준’을 다음과 같이 재시하였다.
    (1) 성문화관은 시대에 따라 변천하고 사회에 따라 다르므로 현재 이 사회에서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따른 지배적인 성문화관에 의거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2) 문서 자체로서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제조나 판매자의 주관적인 의도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3) 성적 수치감정이 지나치게 민감 또는 둔감한 자나 미성년자가 아닌 그 시대의 통상적인 성인을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
    (4) 문학작품이라고 해서 무한정한 표현의 자유를 누려 어떠한 정도의 성적 표현도 가능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어서 문학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음란성이 부정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5) 다만 문학작품의 음란성 여부는 그 작품 중 어느 일부분만을 따로 떼어 논할 수는 없다.
    이러한 판단 기준에 근거하여, 석 판사는 판결문에서, ‘음란이란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비추어서 그것이 공연히 성욕을 흥분 또는 자극시키고 또한 보통인의 성적 수치심을 해하는 것이어서 건전한 성풍속이나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음란성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이 소설은 문학작품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의 최대한 보장이라는 명제와 오늘날 개방된 성문화 및 작가가 주장하는 ‘성논의의 해방’이라는 전체적인 주제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즐거운 사라’의 성행위에 대한 묘사가 노골, 상세, 구체적인 데다가 그 묘사 부분이 양적, 질적으로 소설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구성이나 전개에서도 문예성, 예술성, 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 완화의 정도가 별로 크지 아니하여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구는 형법 제243조, 제 244조에서 말하는 음란문서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양형의 이유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설시하였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지난날에 비해 성도덕 및 성문화가 많이 개방화되었지만 사회의 건강한 유지, 발전을 위해서 건전한 성적 풍속 내지 성도덕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여전하다 할 것이고, 특히 근자에 이르러 성의 문란으로 인한 성도덕과 성풍속의 타락은 퇴폐, 향락 풍조를 조장하고 건전한 문화 발전을 저해하며 각종 성범죄 유발의 동기를 제공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로부터 사회공동체를 보호하여야 할 필요성은 더욱 크다 할 것인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마광수는 대학교수의 신분에, 피고인 장석주는 출판사 대표의 신분에 있어 위와 같은 필요성을 충분히 알 만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음란성의 정도가 결코 적지 아니한 위와 같은 소설을 저작, 출판하여 판매한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피고인 마광수는 아무런 전과 없고 피고인 장석주는 벌금형 1회 이외의 전과가 없는 자이고, 피고인 마광수는 문학가 및 대학교수로, 피고인 장석주는 문학평론가 및 출판사 대표로 각 10여 년간 성실히 강의, 저작, 평론, 출판 등의 업무를 수행해왔으며, 나아가 피고인들은 그 동안의 적지 않은 구금기간을 통하여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위와 같은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피고인 마광수는 노모, 피고인 장석주는 처,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딱한 가정사정에 놓여 있는 점 등의 제반 정상을 참작해보면 피고인들에 대해 이번에 한하여 집행을 유예함이 상당하다고 판단된다.
    이상의 이유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6.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심 법정
    항소심을 맡은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1부 (사건번호 93노 446호, 재판장 박인호)는 이 소설의 음란성 여부에 대하여 서울법대에서 ‘법과 문학’ 강좌를 담당하고 있는 안경환 교수에게 감정을 의뢰하게 된다.
    법원은 당초 민용태(고려대 교수), 하일지(작가) 두 사람에게 감정을 의뢰하였는데 음란성이 없다는 취지의 공동의견이 나왔다. 검찰이 신청한 감정인 조차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감정의견을 냈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오리라는 전망이 유력해졌다. 그러자 재판부는 검사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서울법대 안경환 교수를 새로운 감정인으로 선정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다가 자진 사퇴한 그 당시 안경환 교수는, 마광수 교수의 항소심에서 ‘즐거운 사라’ 2차 감정 때 재판부측 감정인으로서 감정을 했는데 그 감정서는 문학작품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단순한 음란물이라는 감정의견을 내놓았기 때문에 재판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서 마광수 교수의 항소심이 기각되는 원인이 되었다.

    감정서의 질문과 대답

    문 : 이 작품 중 성에 관한 묘사와 서술이 그 정도의 수법에 있어서 노골적이고 상세한가?

    답 : 작가가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택한 성에 관한 묘사는 성을 주제로 하는 통상적인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묘사보다 그 정도와 수법에 있어서 불필요하게 상세하고 노골적이라고 판단한다.

    문 : 그러한 묘사와 서술이 이 사건 작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떠한가?

    답 : 첫째, 이 작품에서 성행위의 묘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계량적 측면에서 300면 중 최소한 절반 이상을 성행위 묘사에 배정하고 있으며 전반에 걸쳐 시종일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둘째, 성행위 묘사를 제외한 나머지 이야기의 전개는 단지 성행위와 성행위 사이를 연결하는 접속어에 불과하다.

    문 : 그러한 묘사와 서술이 이사건 작품 전체 내용의 흐름에 비추어볼 때 이 사건 작품에 표현된 사상 내지는 주제와 소설의 구성상 필연적인 관련성이 있는가?

    답 :만일 이 작품을 예술적 가치를 보유한 문학작품으로 인정한다면 그 주제는 성의 해방과 인간의 자아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성을 주제로 한 리얼리즘 작품은 필연적으로 성행위의 노골적이고도 상세한 묘사가 포함되어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듯 하지만 이는 정당하지 않다.
    어떤 정확한 필력으로도 현실의 정확한 묘사는 불가능하므로 리얼리즘의 논의는 현실의 전체 내지는 핵심의 뜻으로 전개되어온 우리의 현실에서 작가의 주장처럼 성을 주제로 하였다고 해서 적나라한 묘사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만일 성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 하더라도 그것이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묘사의 기법이 통속성을 극복해야 한다.
    성의 존재나 이에 관한 실험 자체는 인류사에 끊임없이 전개되어 온 것으로 다른 주제처럼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통속성 극복여부에 따라 음란물 여부도 판가름나는 것이다. 이 작품은 통속성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본다.

    문 : 그러한 묘사와 서술에서 만약 성적 자극이 유발된다면 이 작품에서 의도된 작가의 사상성과 작품의 예술성에 의해 어느 정도 완화된다고 평가하는가?

    답 : 음란성과 예술성은 법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상호 배척되는 개념이다. 이 작품은 심각한 예술적 가치가 없는 음란물이라고 판정되기에 답변을 생략한다.

    문 : 이 작품 전체를 놓고 볼 때, 즉 작품 전체의 내용의 흐름에 비추어볼 때 의도된 작가의 사상성 내지는 주제는 무엇인가? 또한 그것이 객관적으로 독자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는 사상성 내지는 주제와 다르다면 그것도 또한 무엇인가?

    답 : 성과 인간의 해방이 작가가 의도한 사성성 내지는 주제라고 본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은 독자는 작가가 의도했다고 표방하는 성과 인간의 해방이라는 사회적 내지는 철학적 주제나 가치관보다는 대상과 태양을 바꾸어가며 행하는 각양각색의 성행위 그 자체에 사실적 묘사에 주목할 것이다.

    문 : 이 작품은 독자에게 성적 충동적 모방심을 자극시키고 성범죄를 유발하는 등 사회적 현실로서 위험을 가져올 우려가 있는가?

    답 : 그러한 위험은 없다고 본다.
    이 작품에 묘사된 성행위로서 현행법상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는 배우자가 있는 김승태와의 혼외정사뿐인데 이것은 모든 문학작품에서 지극히 일반적으로 다루는 이야기일 뿐 통상적인 의미의 성범죄의 분류에 속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성행위는 당사자간 자유의사에 기한 것이고 학습의 실천이라는 모토 아래 여성의 성적 해방은 여성이 자유로운 인격의 주체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을 읽고 충동적인 모방심리에 의해 현실적인 행동으로 옮긴다 하더라도 비윤리적 · 비도덕적인 인물이 될지는 모르나 범죄자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본다.

    문 : 결론적으로 현재의 우리 사회를 기준으로 하여 그 작품 자체로서 통상적인 성인독자로 하여금 성욕을 자극하여 흥분케 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건전한 성 풍속이나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한다고 보는가?

    답 : 사회통념의 기준이 되는 ‘통상적인 성인’이란 실제로 특정할 수 없는 하나의 이념형이다.

    문 : 이 사건에 대해서 결론을 내려주시겠습니까?

    답 : 음란성에 관한 외국의 판결을 살펴보면, 불법행위에 있어서의 주의의무의 기준이 되는 ‘합리적인 인간’ 등 추상적 개념을 제시했을 뿐이다.
    어쨌든 감정인 개인의 제한된 경험을 기초로 판단했을 때, 통상적인 성인 독자로 하여금 저급의 성욕을 자극하며 성적 수치심 내지는 불쾌감을 조성한다고 판단한다.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성은 도시생활에서의 수도에 비유할 수 있다. 도시의 생활에 식용수와 세척용 상수도가 필수적인 만큼 상수도에서 효용을 다한 폐기수와 배설물을 처리할 하수도 또한 필요악이다.
    인간의 생활에도 후손의 창출과 사랑의 표현이라는 숭고한 기능의 성이 있듯이, 인간의 저급한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성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양자는 무대가 다르고 영역이 달라야 한다. 도시계획의 요체는 상수도와 하수도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서로 혼화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듯이 성을 묘사하는 출판물도 각기 지정된 활동영역 내에서 행해져야 한다.
    성에 관한 출판물도 그 형태와 내용에 따라 문학작품과 문학작품이 아닌 단순한 음란물들은 무대가 엄격히 구분되어 서로 섞이지 않도록 해야한다.
    위의 비유에 입각하면 ‘즐거운 사라’는 하수도의 무대에 머물러 있어야 함이 마땅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상수도의 무대에서 막이 잘못 오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서, 항소심 재판부가 국제팬클럽 한국본부에 의뢰한 감정의뢰서에 대하여 고려대학교 서반어학과 교수 민용태는 소설가 하일지와 공동으로 작성한 감정서에서, 춘향전이 18세기에 쓰여진 것을 감안한다면 사라의 성 묘사는 노골적이지도 상세하지도 않다. 성을 다루는 작품인 만큼 묘사의 분량은 전혀 문제될 수 없다. 오히려 이 작품에서는 교육, 종교 심지어 동양사상이 언급되는 등 일관성을 잃을 만큼 표현이 미약하다고, 하였다.

    항소심 법정에서 김진태 검사와 민용태 교수 간 공방전

    공판정에서는 검찰이 신청한 감정인 민용태 교수와 담당 검사가 언성을 높이며 설전을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검사 : 춘향전의 주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이도령과 춘향의 첫날밤 정사장면만을 떼어내 사라와 비교한 이유는 무엇인가?

    교수 : 검찰이 먼저 즐거운 사라의 화끈한 장면만을 발췌해 문제삼지 않았는가?

    검사 : 성의 해방은 쾌락의 추구를 통해서만이 달성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교수 :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성은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있고 따라서 가장 본질적인 문제이다.

    검사 : 번성일로에 있었던 로마가 쾌락을 추구하다 자멸한 사실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아닌가.

    교수 : 그러한 해석은 로마사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일 뿐이다. 쾌락을 추구하는 과정이 인간 파멸의 원인이라고 일방적으로 단정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검사 : 그렇더라도 건전한 성문화와 그렇지 못한 성문화에 대한 차별화는 사회윤리 차원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교수 : 검사의 그런 윤리관으로 소설을 쓸 수 있겠습니까?

    검사 : 1950년대 일본 최고법원에서 영국작가 로렌스의 ‘차타레이 부인의 사랑’을 번역 출판한 것을 유죄로 인정했듯 문학에 있어서의 음란성을 무한정 용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수 : 한 사회의 윤리는 시대에 따라 변천하고 법률도 마찬가지이며 게다가 문학은 법률로 재판할 수 없는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시대가 흐르자 ‘차타레이 부인의 사랑’은 세계적 명저로 인정받고 있고 또한 여러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이걸 보면 어떤 소설의 음란성 여부를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옳지않다.

    검사 : 언론은 물론이고 일부 작가들로 ‘즐거운 사라’가 표현한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에는 불쾌감을 표시하는데도 말인가.

    교수 : 우리 언론과 평론가들의 수준차라고 본다. 그것도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그들은 언젠가 커다란 수치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성 문제를 터치하고 있는 작품인 만큼 성 묘사에 많은 부분이 할애됐고 성의 해방과 성의 쾌락을 솔직히 그리고자 한 작가의 의도에 비추어봐서 작품 속에 나타난 담론과 서술은 주제와 필연의 관계가 있다.
    문학을 법이 재단하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을 제약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꿈과 상상의 세계를 제약할 수 있는 법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에로티시즘 문학인 ‘즐거운 사라’가 성적 환타지를 유발시킬 수는 있어도 육체적 흥분을 일으킬 만큼 묘사가 구체적이거나 감각적이지 못하다.

    재판부는 소설가 이호철, 이문열에게도 별도로 의견을 물었으나 두 사람은 이것은 소설도 아니고 외설일 뿐이라는 취지의 의견을 보내왔다. 이문열은 ‘문학을 뭘로 아는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이 나라에서 글 쓰는 사람들 중에 가장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바로 그 ‘즐거운 사라’를 쓴 마 아무개 교수다. 여기서 굳이 마 교수를 소설가로 부르지 않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그가 어떤 공인된 절차를 거쳐 우리 소설 문단에 데뷔했는지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마 교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그 첫째는 그의 보잘 것 없는 상품이 쓰고 있는 낯 두꺼운 지성과 문화의 탈이다. 근년 그가 쓴 일련의 글들은 이미 알 만한 사람에게는 그 바닥이 드러났을 만큼 함량 미달에 정성까지 부족한 불량상품이었으나 그는 어거지와 궤변으로 과대포장해왔다.
    둘째, 그가 못마땅한 이유는 이미 자신의 생산에서 교육적인 효과는 포기한 듯 함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수라는 신분을 애써 유지하는 점이다. 나는 그가 지닌 교수라는 직함이 과대포장된 불량상품을 보증하는 상표로 쓰이고 있는 것 같아 실로 걱정스러웠다.

    (나는 장석주 시인이 쓴 ‘ 재판, 그 탈억압의 끝없는 싸움’을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실록 제6권 필화사건에서 처음 발견하였다. 그 글은 처음부터 이책에 싣기 위해서 집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잡지 등에 이미 실린 것을 재수록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집필 시기는 2000년대 초반쯤이거나 그 이전으로 짐작됨으로 지금 돌이켜 보면 아주 오래된 일일 것이다.
    그 글을 쓴 필자가 기억하기는 할는지, 혹은 이문열 작가가 그 글을 이미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사건의 자초지종을 살펴보면 장석주 시인이 (다소간 감정적이긴 하지만)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정당한 비난을 퍼부었다고 본다.
    여러 편의 베스트셀러를 내며 1980년대 내내 대중적 장악력을 보여온 작가 이모씨가 작가의 구속에 항의하는 서열에 동참하고도 작은 꼬투리를 잡아 작가를 극렬한 언어를 동원해서 비난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토록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도 그런 시각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그가 부정을 하든 인정을 하든 그는 이 사회에서 남들이 쉽게 이룰 수 없는 부와 명성을 손에 거머쥔 크게 성공한 기득권층이고, 그 자신이 기득권을 가능하게 했고 또 그것의 계속적인 유지를 위해 현실의 급진적인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주의의 심리가 그렇게 돌출적 행위로 드러났던 것은 아닐까.
    그가 신문에 기고했던 그글의 논지는 구속을 정당화하려는 검찰이나 재판부를 크게 고무시켰고, 재판에서 ‘유죄의 정당성’을 보강해주는 근거로 자주 거론되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그러나 그의 보수주의는 결코 돌연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그의 문학의 본질이고 핵심인지도 모른다.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갈등이 소용돌이치던 1980년대 내내 그의 보수주의는 현실 변혁적 전망의 이념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비판하는 논리로 드러난다.
    그의 그러한 논리들은 항상 현상유지를 원하는 기득권층과 체제유지에 급급했던 권력들에게 반사이득을 안겨주곤 했다. 그의 소설들에 일관되게 깔려 있는 의고적 태도, 관념과잉은 작가가 자신의 체제유지의 보수이데올로기를 감추는 엄폐물이 되곤 한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의 소설 전부를 읽을 필요는 없다. 한 외제 볼펜, 즉 내면이 없는 무뇌아적인 사물을 화자로 내세워 세태를 풍자했다는 그의 ‘오디세이아 서울’의 지리멸렬한 실패는 전망 없는 한 작가의 예견된 실패이기도 하지만, 더 직접적으로 그 소설의 실패는 풍자와 우의의 날카로움은 지워져 있고 적당한 양비론과 흉하게 군데군데 돌출하는 보수주의에 대한 그의 반성 없는 완강한 신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변호인의 변론 요지
    결국 인간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을 다루는 문학 또는 예술의 본질과 공동체 구성원의 합리적 타협으로 확립된 상식 또는 법의 가치의 격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건에 대한 감정과 논쟁은 문학작품을 전문적으로 평가하는 문학인의 몫으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다는 단순한 상식을, 우리는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확인하였다.
    형법에 규정된 ‘음란’의 개념은 그 시대의 보편적 정서와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시대의 흐름과 변천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문학작품에 대한 ‘음란’의 판단에 있어서는 문학, 예술 등이 허구의 세계를 다루는 것을 그 본질적 속성으로 하고 있는 점 및 우리 헌법이 예술의 자유와 언론, 출판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의 하나로서 보장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음란’의 개념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하여 창작활동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 서서 오늘날의 개방된 성 윤리나 성 문화 및 이 사건 소설의 전체적인 주제 등을 검토해볼 경우 이 사건은 음란성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우리 대법원 판례가 의존하고 있는 일본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 번역출판사건의 판결은 1950년대 일본의 사회통념에 입각한 판단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음란의 개념을 그렇게 보았다 할지라도 반 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성에 대한 의식과 풍속이 엄청나게 달라졌기 때문에 오늘에 와서는 그와 같은 음란의 개념풀이는 이미 타당성 내지 규범력을 상실하였다고 본다. 지금은 ‘채털리 부인의 연인’의 무삭제 완역판이 일본에서 아무런 처벌도 당하지 않고 판매되고 있음이 그런 변화를 증명하고 있다.
    만일 스토리나 묘사의 음란 · 부도덕 · 변태를 그 대목만을 가지고 문제 삼는다면, 심지어 기독교의 최고 경전인 ‘성경’조차도 음란도서라는 판정을 면치 못할 것이다. 성경에는 두 딸이 아버지와 한자리에서 교대로 혼음하는 부녀상간, 여성상위, 동성연애, 질외사정, 윤락행위, 자위행위 등이 아주 직설적으로 서술된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전을 ‘성서(性書)’ 아닌 성서(聖書)로 받드는 까닭은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않고 달을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광수 피고인의 이 소설은 정작 성행위의 묘사장면이 불과 몇 줄씩의 문장으로 간략하게 그리고 개괄적으로 처리되어 있기 때문에 성적인 흥분 · 자극을 줄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 소설을 책으로 발행한 장석주 피고인 역시 음란도서나 발간할 그런 출판인이 아니다. 그는 시인이자 평론가로서 괄목할 만한 자취를 남겼으며 그의 출판행위 역시 독자에게 유익하고 값진 저술 또는 창작물을 널리 펴내는 문화활동의 일환이었으며 그가 ‘청하’라는 출판사를 설립한 이후 오늘날까지 간행한 근 500종의 출판물의 내용이 그점을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결심 공판에서 말했다.
    “무릇 음란물이 되자면 우선 사람의 성욕을 자극 흥분시키는 것이 첫째 요건인데, 단상의 재판관 중에 이 소설을 읽고 성적으로 흥분하실 분은 한 분도 안 계시리라고 확신합니다. 고로 무죄 판결을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지만 기대와는 달리 유죄가 선고되자 주변에서 누군가 말했다. “요즘 판사들이 너무 젊어서 그 정도에도 불구하고 흥분을 한 모양이다.”
    그 당시 한승헌 변호사는 상고할 생각이 없었다. 이런 사건은 하급심에서 무죄가 났더라도 대법원에 가면 그 보수성 때문에 유죄로 뒤집힐 위험이 있는데, 하물며 1심, 2심 모두 유죄가 난 마당에 대법원에서 무죄가 될 가망은 없다고 보았다.
    그때 누군가가 대법원은 기대해볼 만하니 상고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래도 대법관들은 나이가 좀 많으니, 그리 쉽게 흥분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7. 상고 기각
    이 사건은 항소심과 대법원 상고심 (박준서, 박만호, 김형선 대법관)에서도 기각되어 유죄가 선고된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대법원 판결 선고일은 1995년 6월 16일이다.)
    아무리 뭐라 해도 여름엔 더러운 파리떼가 윙윙거리기 마련이다.
    그는 애매한 죄로 뜬금없이 구속되어 검사한테 모진 신문을 받고 판사한테는 말도 안되는 재판을 받았으니, 그때 이후로 법을 다루는 사람들을 하나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과 부정은 도대체 누가 심판해주나 하는 의문이 생겼고, 동시에 ‘법을 빙자한 사디즘’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연세대학교는 1993년 이미 그를 직위 해제했으나 그 다음날인 6월 17일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교수직에서 해직하였다. 그는 1998년 3월 13일 김대중 정부에 의해 사면 · 복권되었고 같은 해 5월 1일 교수직에 복직하였다.
    하지만 ‘즐거운 사라’는 대법원에 의해 형법이 규정한 음란물로 확정되었다. 2007년 4월에 마 교수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그 소설 전부를 올리면서 그는 다시 불구속 기소가 되어 또다시 벌금 200만원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전과 2범이 되었다.
    그리고 그를 디립다 까기 위해서 ‘사라는 결코 즐겁지 않았다’라는 책이 나왔고 그는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 ‘그래도 사라는 즐겁다’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논문을 기고했다.
    그의 말대로 세월이 지나고 나서 보면 꼭 한편의 코메디 같이 느껴진다.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에서는 정문 담벼락에 ‘마광수 교수는 결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플래카드를 내걸면서 작가를 영국의 셰익스피어와 비교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지만 주한 인도 대사관의 항의를 받았다. 플래카드를 건 사진이 신문 1면에 나왔는데, 이를 본 인도 대사관이 ‘아직도 우리가 식민지냐’고 항의했고 이에 연세대 학생회가 사과했다.
    그 당시 많은 작가들은 이 소설의 음란성을 인정하면서도 작품활동의 결과에 당국이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처사에 대해선 비판과 항의를 멈추지 않았다.

    그때 이후 그가 겪은 우울증은 평생 동안 그를 괴롭혔다.
    어떤 항우울제는 약을 먹고 나서 오히려 증상이 더 심해졌고, 의사가 처방해준 또 다른 약은 아무런 효과도 나타나지 않으면서 부작용만 일어났고, 마지막으로 처방해준 약은 오랫동안 복용하면서 내성이 생겨 약효가 떨어졌다.
    그는 그때 심한 불안, 강박관념 때문에 내장과 가슴까지 그리고 사타구니까지 욱신거렸다. 그의 몸에 치명적인 병은 없었지만 전반적으로 신체 기능은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소화를 위해서, 밤에 잠을 자기 위해서, 용변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매일 한 움큼의 알약을 복용해야 했다.
    그는 심리치료는 한사코 반대했다.
    그는 가끔 남몰래 울었다. 처음에는 나직이 울었다. 나중에는 뱃속에 들어있는 찌꺼기까지 모두 토해내는 기분으로 온몸을 뒤틀며 서럽게 울었다. 그런 끔찍한 일이 왜 자신에게 일어났는지 이해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건 불가능했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순전히 세상의 무분별한 몰이해 때문에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억울한 일이었다.
    그는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그 날밤 늦게 석방되었지만, 그때는 벌써 초점을 잃은 눈, 구부정한 어깨, 빼빼 말라서 왜소한 몸집, 동작은 느릿느릿하다 못해 흐느적거렸고,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헷갈리게 하는 어눌한 말씨 등 한눈에 봐도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그 시절에는 진즉 생산이 중단되었지만 어디서 구했는지 ‘장미’ 담배를 끊임없이 입에 물고 있었다.

    8. 마광수 교수의 항변
    마 교수는, ‘문학담론이란 언제나 한 사회가 허용하는 관습적, 도덕적 한계 안에서 사유와 상상력만을 담아내는 것이 아님’을 전제하고 ‘작가의 사회적 책임은 당대의 도덕체계를 강화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받아들이던 당대의 지배적인 유용한 가치체계를 의심하고 그것의 본질을 직시하고 성찰하도록 이끄는데 있다’면서 ‘문학적 상상력은 본질적으로 당대적 현실에 대해 일탈적이며 가치 전복적으로 움직이며, 끊임없이 금지된 영역에 대한 탐색과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문학적 상상력은 항상 경계와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끊임없는 의지를 반영한다. 그것이 성과 관련된 것이라 할지라도 예외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했다.
    ‘즐거운 사라’는 덧없는 것의 화려함과 ‘순간에 충실하기’에 빠져들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고 외치며 행동하는 신세대들의 가벼운 삶과 의식을 추적한 작품이다.
    물론 그것을 표현하는데 성은 아주 중요한 매개가 되고,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성적 표현이 많이 나타나고 솔직했던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현대문학이 이광수 이래로 고수해온 도덕적 전통이 한국 소설을 정체시키고 답보시켜온 한 가지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위선적으로 고착된 도덕주의와 경건주의 그리고 문학작품을 통해 작가의 인격이나 가치관을 저울질해보려는 태도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사회적 입지를 위축시켜 그들을 이중 인격자로 만들어 버리기 쉽다.
    문학이 근엄하고 결벽한 교사나 사제의 역할 또는 혁명가의 역할까지 짊어져야 한다면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율성은 잠식되고 만다. 작가들은 저마다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가진 생각과 세계관이 다르다. 그것의 다양하고도 창의적인 문학적 표현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발상은 우리 사회를 획일적 윤리기준에 묶어두려는 독선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발상에 다름없다.
    한국에서 소설의 외설성 때문에 작가가 기소된 것은 내 사건 이전에 딱 한 번 있었다. 1969년 염재만씨가 ‘반노’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가 겪은 재판은 나와는 전혀 상황이 달랐다. 그는 불구속 기소되었으므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1심에서는 벌금형, 그리고 2심과 3심에서는 무죄선고를 받았다.
    적어도 내 사건에 있어서만은 대한민국 사법부는 20여 년 전보다 훨씬 ‘비민주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볼 수 있다. 판결 결과를 차치하더라도, 우선 ‘전격 구속’이라는 위압적인 카드를 쓴 것이 그렇다. 그렇다면 염재만씨와 나는 기소 과정이나 판결 결과에 있어 왜 그토록 큰 차이가 나는 법 적용을 받은 것일까.
    이 문제를 따져보면 ‘즐거운 사라’ 사건의 본질과 한국의 정치적 · 문화적 실상의 시대적 추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미안한 얘기지만 염재만씨는 당시에 무명 신인 작가였고 나는 꽤 ‘유명한’ 교수요 작가였다.
    ‘즐거운 사라’ 이전에 나는 문학이론서 5권, 시집 3권, 장편소설 2권, 에세이집 4권의 저서를 갖고 있었고, 개방적 성의식과 자유주의적 윤리를 주장하여 주로 신세대층에서 열띤 호응을 받았고, 주로 기득권 보수층에서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내가 대중적 지명도를 얻게 된 것은 1989년 초에 발간한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때문인데, 이 책은 상당히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찬사와 험담, 그리고 매도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자유로운 성적 쾌락의 추구와 수구적 봉건 윤리의 척결을 주장한 일종의 문화비평집인 이 책은, 당시까지만 해도 도덕적 설교 위주의 성담론밖에 없었던 한국 사회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출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낸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와 장편소설 ‘권태’ 및 ‘광마일기’ 역시 화제를 불러일으켜, 드디어 심의기관인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는 참다못해 ‘광마일기’에 ‘경고’처분을 했고, ‘방송위원회’에서는 방송에서 야한 발언을 이유로 ‘방송 출연정지’조치를 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인데다 나는 또 이른바 ‘인기 교수’(말하기 쑥스럽지만)였으니, ‘매스컴 플레이’에 의한 ‘여론재판’의 희생양 또는 이용물로 썩 좋은 대상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염재만씨 사건 당시, 또는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의 관심사는 오직 ‘이데올로기’ 문제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때는 유교적 충효사상과 반공 이데올로기 두 가지만 가지면 국민 계몽이 얼마든지 가능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1992년 당시 경제성장과 동구 및 구소련의 붕괴 때문에 주로 성해방과 개인적 쾌락추구의 자유를 위주로 하는 반유교적 자유주의 윤리가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었고, 마르크시즘이나 반공 이데올로기에 국민 모두가 시큰둥해하던 때였다.
    그래서 기득권 지도층에서는 좌파든 우파든 새로운 국민훈육용 카드로 ‘민족적 국수주의’와 ‘도덕주의’를 내세울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서 ‘반공적 매카시즘’이 ‘도덕적 테러리즘’으로 전환되고 있었던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염재만씨 사건과 내 사건이 그 전개 양상에서 커다란 차이점을 보이는 것이고, 염재만씨 사건 이후 20여 년 만에 죽어 있던 법조문이 벌떡 일어나 ‘외설소설 사건’을 크게 터뜨리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한국에서는 작가를 기소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판금을 시킬 수 있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문화부에서는 행정명령 하나로 간단히 책의 판매금지를 시행할 수 있다. ‘간행물윤리위원회’는 그런 목적을 위해 설립된 정부기관인데, 보수적 인사들이 대부분 심의위원 직을 맡고 있다.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는 문화부에 ‘제재’를 건의하고 문화부는 이를 대체로 받아들이는 수순이다.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직접 저자와 출판사 대표를 고발할 수도 있는데, 내 경우는 그런 경우가 아니라 검찰의 결정에 의한 사건이었다. 사회 여론이 ‘표현의 자유’ 쪽으로 흘러가고 있어서 그랬는지, ‘즐거운 사라’가 출간된 지 한 달 후인 1992년 9월 말에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제재를 건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부는 내가 구속될 때까지 판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판금 결정은 구속이 집행된 직후 검찰의 요청에 의해 황급하게 이루어졌고, ‘즐거운 사라’는 인쇄원판까지 압수되었다.
    왜 갑자기 유례없는 전격 구속이 일사천리로 집행됐는지, 그 정치적 배경에 관해서 매스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주로 제시된 이유는 ‘대통령 선거를 위한 전시용 깜짝쇼 (공권력의 무서움을 보이고 동시에 당시 여당의 공약인 도덕정치 강화를 상징하는)’와 ‘건영 특혜사건 은폐용 깜짝쇼’ 두 가지였는데, ‘건영 특혜사건’이란 재벌 회사인 건영그룹이 정부의 특혜를 받아 부정한 이득을 취했다고 여론의 의혹을 받은 사건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이유 말고 단순한 이유, 즉 ‘마광수가 교수의 신성한 직분을 망각하고 전통윤리와 미풍양속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책을 계속 냈기 때문에 드디어 공권력이 나선 것’이라는 이유가 일부 보수 언론과 보수적 지식인들 측에서는 아주 당연한 이유처럼 강조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마광수도 지나쳤지만 검찰도 너무했다’는 식의 양비론으로 이사건을 얼렁뚱땅 얼버무리려고 애썼다.
    나는 그 소설이 문학이 아니라 음란물이라는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나의 문학세계는 총체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내가 추구하는 성담론은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문학적 체계와 철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나의 성애론은 모든 금기와 압제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에 근거한 것이다.

    여담
    작가 마광수는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의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즐거운 사라’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이번에 다시 제2의 탄생을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을 탈고한 것은 1990년 6월이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1년 뒤인 1991년 7월 가서야 서울문화사 판으로 비로소 선을 보이게 되었다. 그런데 나로서는 꽤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간행물윤리위원회의 판매금지 조치에 의해 나온 지 한 달만에 출판사측이 자진 절판을 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그때로선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어찌 보면 내게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소설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손질하여 깁고 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결말 부분을 바꾸고 전체적인 분위기와 문장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손질을 가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진짜 결정본 ‘즐거운 사라’를 이제 독자 여러분들게 새로 선보이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에 내는 ‘즐거운 사라’는 내가 쓴 책들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출판과정에서의 우여곡절 말고도, 아무래도 내가 남자인지라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녀의 내면세계를 묘사해 내기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출판을 맡아준 청하출판사측에 감사하며, 나뿐만 아니라 부디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즐거운 사라’ 아니 ‘즐겁게 방황하는 사라’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진짜 결정본 ‘즐거운 사라’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는커녕 그의 인생역정에서 운명을 비극적으로 바꿔 놓았다. 그는 전격 구속되고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온갖 수난을 겪었고 결국 남은 평생동안 그를 괴롭힐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지 않은가. 그는 그 우울증 때문에 결국 자살까지 하였다.
    누가 내일의 운명을 정확히 알겠는가? 기원전 3세기 그리스 시인 칼라마쿠스는 아주 옛날에 벌써 그렇게 말했었다.

    * * *
    1990년대에는 그 소설이 불경한 음란문학이라며 지탄받았지만 현재는 그가 말한 대로 지극히 단순한 성적 욕망의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중파에서 섹드립을 치는 지금과 비교해보면 그 시절은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지고 아주 아주 우스운 일로 여겨진다.
    그러니까 10년이 지난 2002년이나 사반세기가 지난 2018년과 앞으로 이어갈 현재를 기준으로 본다면, ‘즐거운 사라’에서 묘사되는 삶의 태도는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영역에서 등장해도 거의 문제가 안 될 정도로 성적인 개방이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건 자체 (공소장과 판결문을 포함해서)는 완전히 비웃음거리가 되다 못해 아예 잊혀지고 말았다.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마광수 본인은 생전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얼마나 깊은 원한이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었을 것인가. 그가 그당시 받은 육체적 정신적 충격과 그 이후 진행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자살을 사회적 타살로 보는 견해가 타당한 것이다.
    어쨋거나, 이 사건은 1990년대 초반 당시 한국의 문화적 자유주의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마광수 본인 역시 ‘10년 정도 지나면 어처구니 없던 해프닝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그 말대로 위키러들이나 누가 보기에도 웃기는 옛날 해프닝이 되었다. 시대적 추이를 예리하게 통찰한 마광수의 예언은 틀림없이 적중했다.

    이광수가 친일 매국노로 비난받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그가 쓴 「무정」은 교육을 통해 민족을 계몽시키려는 의지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봉건적 구습을 넘어서는 당대 지식인의 자유연애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소설은 무엇하러 쓰느냐. 그런 것도 조선에 도움이 되느냐’, ‘웬 연애 이야기를 써서 청년들을 부패케 하느냐’, ‘조선 고래의 도덕률을 파괴한다’, ‘이광수란 어미아비 없이 자란 상놈의 자식’이라는 등등 별별 인신공격을 받았지만, 그 소설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현대 문학사에서 이정표가 되는 최초의 본격적인 소설로 인정받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8년, 헌법상 보호되지 않는 언론 · 출판과 그 판단 기준에 관하여, ‘언론 · 출판의 영역에서 국가는 단순히 어떤 표현이 가치없거나 유해하다는 주장만으로 그 표현에 대한 규제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그 표현의 해악을 시정하는 1차적 기능은 시민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사상의 경쟁 메커니즘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립되는 다양한 의견과 사상의 경쟁 메커니즘에 의하더라도 그 표현의 해악이 처음부터 해소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거나 또는 다른 사상이나 표현을 기다려 해소되기에는 너무나 심대한 해악을 지닌 표현은 언론 · 출판의 자유에 의한 보장을 받을 수 없고 국가에 의한 내용 규제가 광범위하게 허용된다’고 하였고,
    음란 표현과 저속 표현의 차이에 관해서는, ‘음란이란 인간 존엄 내지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 표현으로서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 뿐 전체적으로 보아 하등의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으로서, 사회의 건전한 성도덕을 크게 해칠 뿐만 아니라 사상의 경쟁 메커니즘에 의해서도 그 해악이 해소되기 어려워 언론 · 출판의 자유에 의한 보장을 받지 않는 반면, 저속은 이러한 정도에 이르지 않는 성 표현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헌법적인 보호 영역 안에 있다’라고 하였다. (헌재결 1998. 4. 30. 95헌가16)
    그러나 위 헌재 결정은 음란물을 표현의 자유 보호 대상에서 제외한 유명한 오판 사건으로 법조계와 학계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4년 후 헌재는 입장을 확 바꿔 음란물도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대상이라고 했고 (헌재결 2002. 4. 25. 2001헌가27), 2009년에는 전원재판부가 명시적으로 판례를 변경하면서, ‘음란 표현은 헌법 제21조가 규정하는 언론 · 출판의 자유의 보호 영역 내에 있다고 볼 것이므로 종전에 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취지로 판시한 우리 재판소의 의견은 변경한다’고 하였다. (헌재결 2009. 5. 28. 2006헌바109, 2007헌바49, 2007헌바57, 2007헌바83, 2007헌바129)

    미국의 경우에는 영화 ‘래리 플린트’에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포르노 잡지 ‘허슬러’에는 동화 ‘오즈의 마법사’ 주인공 도로시가 양철나무꾼에게 오럴섹스를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래서 발행인 허슬러는 음란물 배포죄로 기소되고 오하이오주 1심 법원에서 징역 25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2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1988년 허슬러는 다시 연방대법원 법정에 섰다. 허슬러는 1983년 제리 폴웰 목사의 가짜 인터뷰를 실었는데 ‘나의 첫 경험은 문란한 어머니와 화장실에서 한 근친상간’이라는 내용이었다.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정신적 가해로 폴웰이 고소한 것이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전원일치로, ‘수정헌법 제1조는 자유로운 사상 표현을 존중한다.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이며 진리 탐구를 위한 초석이자 건강한 사회의 밑거름이다. 좋은 의견이든 나쁜 의견이든 모두 들어보기 위해 수정헌법 제1조가 존재한다.’고 판시하면서 플린트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다.

    * * *
    그런데, 지금 활동 중인 검찰의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는 왜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을 주목하지 않는지 의아스럽다.
    전술한 것처럼 이 사건을 둘러싸고 몇 가지 의혹이 그 당시 이미 제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음란물 제조죄라는 죄를 범한 하찮은 잡범이 국사범처럼 특별히 독방에 수감되었었는가? 지금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같은 거물들만 독방에 수감되고 있지 않는가. 무슨 음모가 있었길래 그가 독방에 갇히게 된 것인가. 그 사건은 (마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외설을 이유로 작가를 전격 구속한 한국 최초, 세계 최초의 사건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적어도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보기에는 재고할 여지가 전혀 없는 너무 가볍고 하찮은 사건에 불과했던 것일까? 작가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들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는 자신이 쓴 책 속 여러 군데에서 천재라고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과시했다. 그의 90편이 넘는 수많은 저작물을 면밀히 조사해보면 그저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위선으로 가득찬 이 완고한 사회에 맞서 금기 사항에 과감히 도전한 것은 대단히 용기있는 일이다. (나 같은 겁쟁이는 도저히 엄두도 못낼 일인 것이다.)
    그의 도저한 신념과 의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용감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다시 말하면 훌륭한 시인이고, 소설가이고, 윤동주 연구의 권위자인 국문과 교수이고, 문학 평론가이다. 그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있는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그의 불행한 인생역정과 죽음은 그 필화 사건에 단초가 있다. 그 사건 때문에 사회적으로 철저히 매도되고 기피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필화 사건 이후 그는 해임과 복직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교수 재임용 과정에서 그를 지지하는 교수가 거의 없었으니. 죽음과도 같은 상실감이 그의 머리와 가슴속으로 침입해 들어와 그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대작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전대미문의 어처구니없는 필화 사건은 ― 상부의 지시에 따라 구속 기소가 결정되었는지, 그렇다면 누가 그런 지시를 하였는지, 아니면 수사 검사가 자신의 판단에 따라 그렇게 하였는지, 그 당시 마 교수는 수강생이 천 여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 교수였는데 그런 그가 도망갈 염려가 있었는지, 이미 책은 출간되어 판매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있었는지, 그래서 구속 요건을 충족했다고 볼 수 있었는지, 조자룡 헌 칼 쓰듯이 검찰권을 남용한 것이 아니었는지, 법원이 유죄의 근거로 삼은 지극히 추상적인 음란성 개념을 이 사건에 적용한 데 있어서 과연 판사는 확신을 가졌었는지, 판사가 말한 ‘유죄선고를 받아도 비판을 받고 무죄선고를 받아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렇게 확신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유죄를 선고할 수 있었는가,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의심스럽다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황금률은 왜 실종되었는가, 판사는 무죄를 선고하는 데 검찰의 눈치를 봐야 해서 커다란 심적 부담감을 느꼈던 것일까, 그건 판사의 책임을 방기한 무책임의 극치 아닌가, 그렇게 사법적 적폐가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사법부의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난 사법농단에 까지 이르게 된 거 아닌가 등등 ― 그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쟁점과 진상이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야한 소설 썼다고 ……
    구속기소……
    집행유예……
    항소기각……
    상고기각……

    * * *
    나는 돌이켜 생각한다.
    작가는 61일 동안 추운 독방에 갇혀서 무슨 상상을 했던가.
    그는 결국 승리했을까? 승리라고…… 그가 언제 패배를 인정하기는 했던가. 만약 승리라면 승리 같지도 않은 승리를 획득하였지만 그나마 만신창이가 된 뒤에 뒤늦게 찾아온 승리가 아니었던가.
    그때 법이라는 날카로운 칼을 든 사람들이 함부로 휘두르는 그 칼 때문에 얼마나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었던가.
    두 사람 모두 한창 중년의 나이라 할 수 있는 40세가 되었을 때 처음 만났다. 그것도 아주 낯선 장소인, 숨 막힐 듯이 답답한 좁은 회색 공간에서 말이다. 자기도취증에 빠진 나르시시스트인 작가와 막강한 권력을 쥔 잘 나가는 엘리트 검사 간 음란성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 그러나 승부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동등하지 않은 두 적대자의 대결이었으니.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너무나 유치해서 소꿉장난하는 어린애들 말싸움 같은 거였다.
    그 후 (우리가 대충 알고있다 싶이) 그들의 인생행로는 극적으로 엇갈린다. 그들의 인생에서 막간의 에피소드로 남을 수 있을까. 한쪽은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다.
    작가는 작년에 (2017년 9월 5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그는 일생 동안 세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었다. 셋이라는 숫자는 동화에서도 자주 나오는 마법의 숫자이다. 첫 번째는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구속 기소되어 유죄판결이 선고되고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기각되자 그 무렵 절망한 나머지 자살을 시도했고, 두 번째는 2002년 연세대 국문과 동료 교수들의 집단 따돌림에 의해 ‘교수 재임용 탈락’의 위기를 겪으면서 심한 외상성 우울증에 걸려 자살 시도를 했고, 마지막으로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방범창에 스카프로 목을 매 자살했다.
    그의 인생에서 그의 정신과 육체를 야금야금 갉아먹은 우울증을 고려하면 자살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자살이란 무엇인가. 자살 이외에 고백의 피난처는 없다. 그러므로 자살은 곧 고백이다.
    그날은 늦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오늘은 무지 덥구나. 비가 언제 내렸던가? 그래도 언젠가 여름은 끝날 거야.”
    그는 몇 가닥 남은 하얀 머리카락이 뒤쪽에서 엉켜 있는 반쯤 벗어진 머리를 늦여름의 강렬한 햇빛에 노출시킨 채로 다 타들어가는 담배를 검지 손가락과 엄지 손가락 사이에 끼고 담배연기를 코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가 맨날 지나다녔던 골목길로 눈길을 돌렸다. 모든 것이 어렴풋하고 풀어 헤쳐져 있었다. 그때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성스러운 여체는 목살은 축 늘어지고 자궁은 쪼그라 들었다.
    시시각각 두려움이 자신을 사로잡는 것을 느꼈다. 두려움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분노를 삭힐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로서 산다는 것은 나의 삶을 실현하는 것인데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삶의 정수들이 속절없이 빠져 나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권태는 악몽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 무력감에 빠져서 아무 쓸모도 없는 것들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나 자신을 허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날 가만히 내버려 두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은 날 추호도 동정하지 않을 꺼야. 내가 쓴 쓰레기 같은 글들을 가지고 공연히 비난을 퍼붓겠지. 내가 죽은 후에도 말이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나는 현실을 이해하기엔 유머가 너무 부족했다는 것이다. 아니면 당신들이 날 이해하기엔 유머가 턱없이 부족했거나. 나는 나일뿐이고 당신들은 당신들이다. 나의 유머, 당신들만의 유머 또는 우리들의 풍부한 유머가 필요한데. 그들이 날 법정으로 끌어내서 인민 재판을 할 거라고. 단지 내게 모욕을 주려고. 얼굴에 침을 뱉겠지. 위선자들! 난쟁이들! 모두 다 악취가 풍긴다. 나는 정말 지쳤다. 그러나 그건 소용없는 일이야. 나는 이렇게 자유롭게 떠나니까. 그렇지만 부끄럽긴하다. 나는 잔혹한 종말을 기대했었다. 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거야.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마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마라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마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마라
    그는 늙고 나약했다. 갑자기 지겨움을 느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지겨움, 인간들에 대한 지겨움 등등.
    그는 심장이 점점 더 크게, 점점 더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그는 베란다의 금속 지지대가 튼튼한지 점검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아주 빨리 그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산 자와 죽은 자.
    산자는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는데 그의 죽음을 알고 있기는 할까? 알고 있다면 그 죽음에 대해 어떤 만감이 교차할 것인가. 인생은 허무하다고 느끼고 있을까. 그저 까마득한 옛날 일이니까 이미 망각의 심연 속으로 사라져버려서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는 피해망상과 동시에 과대망상을 앓았다.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전격 구속과 기소는 그의 잘 나가는 인생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그에게 더욱 심한 우울증과 함께 피해망상을 앓게 하였고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피해망상은 조건반사적으로 과대망상을 앓게 하였다.
    그러한 시련을 겪은 이후에도 성에 대한 편집증적 망상, 성담론 또는 실제 삶에서(우리에게는 아주 이상하지만 그에게는 아주 정상적인) 성도착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이것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에게는 정신적이건 미학적이건 간에 오로지 숭배 대상은 성 또는 관능적인 어떤 것이었다. 성적인 면이 제거되면 어떤 사상도 성립할 수 없다고 믿었다. 순수한 의식 역시 위선에 불과하고 결국 육체와 성에 귀결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쓰고 있는 허위의식이라는 가면에 의해 고통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의 문학적 토대는 그것들 뿐이다. 그는 성도착에 집착하는 것처럼 문학적으로도 도착에 집착했다. 그에게는 눈을 크게 뜨고 낯선 영역을 찾아서 탐색할 여지는 전혀 없었던 걸까?
    그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무엇을 바라고 있었던가. 행간에 독자들과 숨바꼭질하기 위해서 무엇을 숨겨놓은 적이 있었던가. 도대체 독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던가. 독자와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던 걸까. 일부 독자들은 포르노그래피같은 작품에서 뱃속까지 토해내는 구역질을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가.
    그는 왜 진정한 소설가가 될 수 없었을까? 왜 전업작가가 될 수 없었을까? 학교로부터, 친한 선후배 사이인 동료 교수들로부터 인간을 모독하는 그런 푸대접을 받으면서까지 교수직에 연연했던 것일까. 생계 문제가 걸려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출세라고 생각했고 신분 상승을 위한 자격증이라고 여겼던 것일까. 그렇다면 여기서 탁월한 지성인으로서, 작가로서, 인간적으로 그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다시 말하면…… 그가 받은 모든 모욕과 멸시는 그 알량한 교수직 때문이었지 않은가. 그렇게 교수직에 연연한 것을 보면― 왜 그렇게 자부심이 강한 그가 배알도 없이 해직당한 학교로 다시 복직하고, 교수 재임용에 학과 교수들이 그렇게 결사 반대했는데도, 그래서 병까지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이 학교로 돌아간 것을 보면 ― 그 역시 자신이 그렇게 경멸했던 지적 허영심과 권위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중으로 위선자임에 틀림없다.
    [ 나는 여기서 똑같이 유미주의자 이거나 탐미주의자이고 나르시시스트인 오스카 와일드를 생각한다. 그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공통점이 너무 많다. 그들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결국 무신론자이고 극단적인 비관주의 또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렇지만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난 절대 옥스퍼드의 고리타분한 교수가 되지는 않을 거야. 나는 시인, 작가, 극작가가 될 거야. 어떤 식으로든 유명해질 거라고. 만약 유명해질 수 없다면 악명이라도 떨치고 말 거야.(I won’t be a dried-up Oxford don, anyhow. I’ll be a poet, a writer, a dramatist. Somehow or other, I’ll be famous, and if not famous, notorious.)”]
    그는 교수직을 내팽개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렇게 좋아하는 섹스 이야기만 실컷하면서 그런 소설을 평생 쓸 수도 있었는데. 그래서 베스트셀러를 써서 돈도 많이 벌고 대중적 인기를 한몸에 받을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 소설은 그의 인생이 그랬던 것처럼 일종의 가벼운 유희에 불과했다. 소설가로서 목숨을 걸 만큼 치열한 직업의식은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죽어도 ‘나잇값’은 안하겠다는, 그래서 마음만은 언제나 ‘야한 상태’로 있겠다고 했으니까…….)
    그걸 운명이나 숙명이라고 운운할 순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손쉽게 자업자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모든 빛에는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인생에서 상승과 몰락을 겪어본 자만이 진정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가면서 자유분방하고 자의식이 강하고 이상주의자인데다 놀랄 정도로 개방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삶에 지치고 겁먹었다. 그의 글에는 노골적인 냉소주의를 넘어서서 결국 인간을 비하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는 온갖 성행위를 무자비하게 노출시켜서 표현한다. 무절제하며 지겹도록 지루하게 반복한다. 하지만 블랙 유머를 쓰면서 훌륭한 유머 감각이 없고, 그러면서 겸손하지 못했고 자기 억제를 하지 못했다.
    그가 천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방대한 저서에서 발견되는 날카로운 지성과 번뜩이는 재치, 아포리즘, 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철학적 사색을 고려하면 천재적인 것은 틀림없다.
    그는 우리 문학사에 흔치않은 독특한 족적을 남겼다. 지금쯤 어떤 형태이건 그가 현대문학에서 어떤 위치를 점했는지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책임하게도 애써 그를 외면해 왔다. 왜 그가 그렇게 푸대접을 받아야 했단 말인가.
    인간이란 남이, 그것도 자기 자신과 같은 수준의 사람이 겪고 있는 불행이나 괴로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기쁨을 느끼는 법이니까, 우리는 그래서 사디스틱한 쾌감을 느꼈던 것일까.
    우리는 그를 시기 질투했다.
    작가 이문열의 비난을 살펴보라. 그들은 세 살 차이이니까 동년배나 다름없다. 문학박사이고 연세대 국문과 교수이며 그때는 벌써 잘 나가는 인기 작가였으니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 물어 뜯는 대상으로는 딱 알맞았을 것이다.
    그건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지극히 유치한 비방에 불과했다. 나는 그게 시기와 질투심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중 누가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우리는 구태의연해서 성담론에 관한 위선을 까발리지도 못하면서, 과감하게 쓸 용기가 없어서 고루한 관습에 얽매여 지루한 글을 쓰면서, 그를 외면하고, 폄하하고, 비방하고, 험담하고, 쑥덕거리고, 이상한 괴물로 취급하지 않았던가. 그로 말미암아 그는 뿌리가 뽑힌, 친구가 없는, 사랑이 없는, 마침내 인간다운 삶조차 없는 궁지로 내몰리게 되었다. 그는 끔찍한 상처를 입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심전심으로 공모한 공범자라고 할 수 있다.

    만약에 말인데, 그가 죽지 않았다면 불멸의 명성을 가져다줄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그는 ‘언젠가는 나와 시와 생활과 종교와 사상이 함께 결합된 날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 시인은 어떤 초월적이고 근원적인 우주의 진리를 전달해야 하고, 또 미래를 향한 투철한 예언자적 사명을 갖고 있어야 한다’ ‘…… 최근 우리 문학은 시나 소설이나 극도로 왜소화되고 기교적 유미주의로 떨어지고 말았다’ ‘…… 작가나 시인들은 좀 더 문학에 있어서 심층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으니까.
    그는 우울증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글을 썼다. 그는 마음속 울화와 욕구를 마음껏 설사시키기 위하여 또한 자기 정화를 위하여 글을 쓰지 않으면 금단현상을 일으킨다.

    나는 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끝내고 나서 엄청난 허탈감에 빠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종의 산후우울증을 앓는 것이다.

    다시 돌이켜 보면……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0년 간은 그의 인생에서 최악의 시기였다. 긴급 구속과 긴 재판, 유죄 판결의 확정, 그 무렵 처음 자살을 기도했고, 학교로부터 직위해제, 퇴직과 복직, 교수 재임용 탈락 소동과 그 과정에서 배신을 당했고, 그로 말미암아 외상성 우울증에 걸려 치료 때문에 2년 6개월 간 학교 휴직, 또 다시 자살을 기도하는 등 비극적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던 것이다.
    그 시절, 그는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불안과 고독, 좌절과 반항, 허무를 뼈저리게 맛봐야 했다. 그리고 뼛속 깊은 절망을 체험해야 했다. 그때, 마광수 같은 나르시시스트이고 허무주의자라면 그 절망을 딛고 일어설 순 없었을까. 회의하면서 방황할 수 없었을까. 자포자기하면서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할 수 없었을까. 그래서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서 고통을 달관하고 체념하며 진정한 희망을 향해 나갈 수 없었을까.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했더라면.
    그러고 나서 글쟁이로 오로지 시나 에세이, 걸작 소설 쓰기에 전념하는 것이다. (내 짧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는 평생 동안 탐미주의를 추구했다. 그러면서 ‘야한 여자’ 예찬론과 감각적 성담론이라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있었다. 더 이상 젊지도 않은데 언제까지 섹스 스토리에만 몰두할 것인가.
    그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으니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문체를, 지루하게 반복되는 리듬을, 성담론이라는 한정된 주제를 하루 속히 탈피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대개는 인간적인 성숙과 사회 경험의 축적과 인생의 유전을 겪으면서 변화하게 되어 있으니까.
    어느덧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어 육체는 노쇠하고 심리적 상태는 불안정해서 불면하는 밤을 보내는데 말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되돌아보면서 숨이 막혔을 것이다. 정말 위기라고 느꼈을 것이다. 더 이상의 무의미한 반복은 안 된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지금처럼 작품을 쓰는 일은 더 이상 안 된다고 한계를 깨달았을 것이다. 인간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 꿰뚫어 보고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을 소설로 형상화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힐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타자를 의식하고 인간의 실존에 관한 또 다른 목소리를 가져야만 위대한 작가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심오한 철학적 사색은 스케일이 큰 무겁고 깊은 난해한 소설을 쓰도록 그를 밀어붙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스케일이 큰 그럴듯한 소위 대중소설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성격과 인생관, 문학에 대한 사유를 고찰해보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번개가 치는 듯한 어떤 깨달음의 순간이 오지않는다면 자의식이 너무 강한 그에게 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쉽게도 나의 헛된 망상에 불과한 것이다.)

    누군가 오스카 와일드에 대해 말했었다.
    영광의 좌대에서 추락해 진창에 빠진 오스카 와일드가 완전히 노선을 바꿨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세상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일도 없다. 그런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그 자신이다.

    톨스토이가 말했다.
    여성이 임신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즉 생리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성행위는 합리적 정당화가 불가능하며, 단순히 육욕적 쾌락의 한 형태라네. 이것이야말로 매우 수치스럽고도 부끄러운 쾌락이라는 데는 모든 인간의 양심이 동의할 터인데,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불명예스럽고 부자연스러운 성적 변태이기 때문이라네.

    영국 작가 존 클레런드는 그의 소설 ‘패니 힐 Fanny hill’ 에서 성행위며 인체의 성 관련 부위를 표현하기 위해 완곡 표현과 미사여구를 총동원했다. 하지만 외설죄로 구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여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는 ‘장미꽃 입술의 서곡’ ‘달콤한 좌석’ ‘사랑의 부드러운 실험실’ ‘갈라진 곳’ ‘수풀로 에워싸인 바닥 구멍’ ‘가운데 주름’ ‘사랑의 보물’ ‘쾌락에 목마른 도랑’ ‘살에 난 상처’ ‘기타 등등’ 같은 것들이 있었다.
    남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는 ‘쾌락의 무기’ ‘쾌락의 추축’ ‘사랑의 진정한 화살’ ‘전권 도구’ ‘물렁뼈’ ‘살덩어리 솔’ ‘살아 있는 상아’ ‘자물쇠 따개’ ‘하얀 막대기’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진실,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진실’ ‘영문학사에서 가장 에로틱한 소설’ ‘18세기 에로티시즘 문학의 고전’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악명 높고 가장 많이 읽힌 포르노그래피 소설’ 등의 평가를 받고 있는 솔직 담백한 외설물 가운데 하나인지, 아니면 18세기의 고전인지를 두고 현재도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교보문고에서 전문을 완역하여 전자책으로 새롭게 펴냈다.)

    그는 리넨 튜닉의 끈을 풀고, 옷을 아래로 벗긴 다음, 그녀의 백금색 가슴의 흰 광채를 바라보았다. 그는 가슴을 만졌고, 자기 삶이 녹아버리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 그가 말했다. 당신은 왜 이걸 제게서 숨기셨습니까? 보십시오! 그가 말했다. 이건 기도를 뛰어넘습니다. (여기서 그는 예수를 말하고 그녀는 여사제를 말한다. 출처는 D.H. 로런스의 ‘달아난 수탉 The escaped cock’ 이다.)

    항소심 재판장은 판결 선고 당시 ‘이 판결이 불과 10년 후에는 비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판사로서 현재의 법 감정에 따라 판결할 수 밖에 없다.’ 라고 말 했다고 하는데, 지금 그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법 감정은 (무미건조하고 고루한) 판사가 아니라 그 당시 대다수 국민의 법 감정이 기준이 되었어야 한다.
    그들은 왜 예술과 외설을 구분 지으려고 했을까? 뭐가 외설이란 말인가. 성적 흥분을 일으키면 외설이라고. 그렇다면 외설이 왜 나쁜 것인가. 왜 죄가 되는 건가. 성은 인간의 본성이고 원초적 생명력인데 말이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따져본 적이 있었던가. 그들은 문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음란성의 개념에도 무지할 뿐이다. 골치 아프게 그런 걸 알 필요가 있을까. 오직 관료주의적 타성과 관행에 의지해서 늘 해오던 대로 재판을 할 뿐이다.
    판사들은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할 만큼 용기는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구속시킬 만한 배짱도 없었다. 하지만 엄청난 선심을 베풀 듯이 말했다. 그래서 판결문에 ‘……나아가 피고인들은 그 동안의 적지 않은 구금기간을 통하여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위와 같은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 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그건 집행유예를 선고할 때마다 하는 의례적인 것으로 흔해 빠진 클리셰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들이 구금기간을 통해서 반성했다고?! 그들은 전 재판과정을 통해 한번도 반성한 일이 없었다. 오직 분개했을 뿐이다. 반성은커녕 이를 갈면서 판사들의 법 개념의 일방적 해석과 문학에 대한 파렴치한 무지에 대해 분개했던 것이다.
    그 후에도 마 교수는 여전히 위와 같은 행위를 반복했을 뿐이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불타는 관능적 감각은……
    문학적 영감은……

    마광수 교수의 말 말 말
    그의 아포리즘 혹은 음담패설은 철학적이고 문학적이고 과학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헛소리는 아니다. 그가 쓴, 듣기엔 그럴듯하지만 실천하기엔 상당히 부담스러운 마광수식 아포리즘을 나열한 책인 ‘마광수의 뇌구조’와 ‘마광쉬즘’에서 임의적으로 발췌하였다.
    아랍 속담에 ‘네가 쓴 글은 너를 가장 많이 닮아있다.’ 고 했는데. 우리는 여기서 그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되는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 이전에 상징적 동물이다. 상징은 우리를 유추의 세계로 이끌어가고, 상징적 유추는 우리에게 종교적 망상을 심어주었다. 인간 이외의 동물들에게 종교 따위는 없다.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당장 이런 물음이 튀어나온다. “그럼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나?” 불가지론이란 그런 소박한 물음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불가지론자다.

    나는 종교형태로서의 기독교가 내세우고 있는 교리보다 예수라는 한 젊은 종교개혁자가 주장했던 계시적 철학으로서의 사랑에 보다 소중한 가치를 매기고 싶다. 인류 역사상 이른바 성인으로 추앙받는 인물들 가운데 인류의 평화와 복지를 위한 최선의 처방으로 사랑을 제시한 인물은 예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신적 쾌락이 일종의 악에 속한다고 보는 이유는 그 정신적 쾌락의 정점에 종교가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언제나 종교적 도그마 때문에 고통받았다.

    신은 죽었다가 아니라 신은 아예 없었다. 신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마조히즘적 환상이다.

    왜 기도가 솔직해야 하는가. 신이 솔직하길 원해서가 아니라 기도가 갖는 자기 최면 효과 때문이다. 즉 자기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은 정곡을 꿰는 속담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정직한 욕망의 씨를 심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한 운명을 창조해 낼 수 있다.

    이성에서 오는 즐거움이 맑은 유리처럼 투명한 것이라면, 감성에서 오는 즐거움은 반투명의 유리처럼 환상적인 것이다. 올바른 이성은 각성을 주고 독창적 감성은 황홀을 준다.

    나는 자유가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믿는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 아니고, 자유가 우리를 진리케 한다.

    탐욕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권력욕이고 가장 선한 것은 성욕이다.

    언제나 ‘지금’ …… 내일을 걱정 말고 오직 ‘현재의 실존’만을 생각하라……. 실존은 유물론의 동의어이다.

    내세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 이번 생이나 잘 살라

    관습적 사고만큼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관습적 사고의 반대는 개방적 사고 또는 유연성 있는 사고다. 나는 지금까지 유연성이란 말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왔다. 우유부단한 것이 확고한 신념보다 낫다.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는 않는다.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려면, 부모의 학벌이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자식에게 아무것도 훈계하지 말아야 한다. 더러운 개천에서 미꾸라지가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고, 소독된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자식을 키울때는 지극히 야하고 지극히 무식하게 키워야 한다.

    친구에게 우정을 쏟아 그에게 한없이 은혜를 베풀면, 그 친구는 반드시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왜냐하면 은혜를 입는 동안 계속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심리적 특질은 은근과 끈기가 아니라 촌티와 심통이다. 촌티는 자유의 가치를 불신할 때 생기고 심통은 질투심을 못 참아내는 성벽에서 생긴다.

    매 순간의 욕구에 충실하고 장래를 기대하며 스스로를 억압하지 말라

    인연이란 없다. 그것은 그저 우연의 동의어 일뿐이다.

    감정의 사치로부터 예술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삶의 윤택함이 이루어진다. 인류 문명은 ‘사치 욕구’ 때문에 발전하였다.

    예술적 표현은 작가의 독창적 사색이 미약할수록 난해해지는 경향이 있다.

    도덕적 일탈을 통한 관능적 배설과 카타르시스만이 인간을 폭력에서 구원한다.

    문학이 진정한 예술로 거듭나는 길은 문학에서 정치적, 사상적, 종교적, 역사적 요소들을 다 빼버리는 데 있다. 그러면 문학이 한낱 교양서나 인문학적 해설서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 나는 한국 작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런 예술지상주의적 문학을 지향하는 작가다. 나는 교양주의 문학을 배척한다.

    그러므로 문학가는, 예술가는, 항상 권력에 도전해야 한다. 권력에의 의지는 문학적 (또는 예술적) 개성을 위축시킨다. 시류를 좇아가기에 바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예사조라는 말은 맞지 않다. 그 시대의 주류만이 문예사조사에 편입되기 때문이다. 고독한 천재는 작품도 괴팍하고 성격도 괴팍하다. 그러므로 그런 이들은 주류에 끼지 못한다. 사회적 처신도 잘 못한다. 그러므로 천재는 늘 외롭다.

    수필처럼 폭이 넓은 문학 장르도 없다. 수필을 일단 에세이의 개념으로 파악할 때, 논문도 수필이고 비평도 수필이며, 신변잡기 또한 수필이다. 나아가 자전적 소설이나 회고록 역시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필이 갖고 있는 문학적 품격과 위상은 평가절하되고 있다.

    나는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데미안’을 읽다가 중도에서 포기하는 일을 되풀이하였다. 짧은 분량의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데미안’은 너무나 관념적인 넋두리의 되풀이였다. ‘데미안’을 읽고 감동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톨스토이는 민중을 위해서 일한다고 그렇게 강조했으면서도, 정작 그의 3대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에서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것은 귀족들이다.

    나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사서 읽다가 문장도 일본어식이고 내용도 지루해서 욕이 나왔다. 그래서 두 권 읽다가 그만두었다. 돈이 정말 아까웠다.

    단테의 ‘신곡’을 보면 석가모니조차도 지옥에 있는 걸로 나와 있다. “예수를 통해야만 천국에 이를 수 있다”라는 교리 때문이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예수보다 50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가 어찌 예수를 알 수 있었겠는가? 기막힌 코미디요, 웃기는 발상이다.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이 났을 때 소설가 이문열은 그 소설을 읽고 구역질이 났다고 중앙일보에 기고했다. 그리고 서울대 손봉호 교수는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늘어났다”는 소리까지 동아일보에 썼다. 서강대 이태동 교수는 법원에 제출한 자신의 감정서를 통해, “사라가 끝까지 반성을 안 한다”고 분개조로 말했다.
    아아, 한국 지식인들의 못 말리는 촌스러움이여!

    일본의 한국문학 전공학자들은 ‘즐거운 사라’를 한국 근대문학사상 여자가 성의 주체가 된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마 ‘즐거운 사라’가 아니라 ‘즐거운 철수’였으면 작가는 안 잡혀갔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남자의 성적 문란함에 대해서는 지극히 관대하기 때문이다.

    ‘즐거운 사라’는 일본에서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가장 많이 팔려 베스트셀러가 된 유일한 한국 소설이다. 하지만 나는 전과자고 그 책은 아직도 판금 신세다. 이러다간 내가 친일파가 될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문학가들은 요절하지 않으면 변절한다.

    내가 쓴 글은 옛날로 갈수록, 다시 말해서 지금보다 젊었을 때 쓴 글로 갈수록 문장이 어렵고 현학적이다. 그런데 식자들은 요즘의 내 문장이 예전 문장보다 가볍고 경박해졌다고 평한다. 나는 쉽게 읽히는 글이 얼마나 쓰기 어려운 것인가를 나이가 들수록 실감하고 있는데…….

    어려운 글은 심오한 글이 아니라 못 쓴 글이다.

    씨발놈들이 소설이랑 현실을 구분을 못하는 거지

    진짜 좋은 글은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다. 쉽게 쓰는 게 어렵다.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조사(助詞)와 씨름 하는 것이다.

    모든 문학의 재미는 퇴폐와 감상의 조화로부터 나온다.

    예술과 외설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도대체 외설이란 것 자체가 없다. 롤랑 바르트의 말마따나 ‘내가 보면 예술, 남이 보면 외설’인지도 모른다. 또한, 당대엔 핍박받고 멸시받았던 문제작(명작)들은 거의가 외설이었다.

    쓰발 야해지자! 마광수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신통방통하게도 다들 옷을 후지게 입고 화장도 어색하게 한다. 얼굴도 대개 못생겼다.

    나는 계속 야한 정신을 주장해왔다. 야한 정신이란, 정신보다는 육체에, 과거보다는 미래에, 국수주의보다는 세계적인 보편성에, 집단보다는 개인에, 질서보다는 자유에, 관념보다는 감성에, 명분보다는 실리에, 획일적 교조주의보다는 자유분방한 다원주의에 가치를 두는 세계관을 말한다.

    나한테 문학은 그냥 카타르시스야. 나도 좋고 독자도 좋자 이거지. 나도 대리 배설하고 너희도 대리 배설해라 이거야. 교훈? 그런 거 없어. 문학은 오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인문학을 공부하다 보니까. 소설이고 뭐고 사랑 빼면 시체야. 근데 사랑이 뭐야. 따지고 보면 성욕이야.

    뒤통수 치는 건 좌파놈들이 더 잘해. 가식적이기도 하고. 진보적 세상 만든다면서, 그놈의 가부장적 권위는 말도 못할 정도로 심각해. 미친 놈들

    친일파의 자손들은 다 출세하였고,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은 다 굶어 죽었다.

    박정희에 대한 추모 열기는 박근혜에 대한 지지 열기로 계승된다. 이것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권력의 대물림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다. 정치적 마조히즘이라고 볼 수 있다.

    저주받을진저! 그놈의 패거리주의! 한국에서는 패거리에 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몰개성을 추앙하는 기이한 집단주의 ……. 바보 같은 녀석들이라도 한데 뭉치면 힘을 발휘하는 나라 …….

    엄청난 골초다. 평생 동안 담배나 여자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담배를 고르겠다.

    누가 불러주질 않아 그냥 집에서 지낸다.
    우울하다.
    서운하다.
    여성의 긴 손톱, 긴 생머리, 하이힐에 페티시즘을 느낀다.
    심지어 긴 발톱에까지 페티시즘을 느낀다.

    내가 얼굴만 사랑하는 요즘 여배우 ― 송혜교.
    내가 몸매만 사랑하는 요즘 여배우 ― 전지현.
    얼굴과 몸매를 다 같이 사랑하는 여배우 ― 없다.

    기형도 시인이 말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마광수가 말했다. “섹스를 잃고서 사랑이 죽네”

    “아, 배고파!”라고 말하면 욕을 얻어먹지 않지만, “아, 섹스고파!”라고 말하면 욕을 얻어먹는다.

    너는 내 정신으로 들어왔지만, 나는 너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그게 싫다면 내 앞에서 썩 꺼져버려라!

    정력보다는 정렬!

    정신적 사랑은 일시적으로 씹다 버리는 껌과 같은 것이다.

    사랑에는 불륜이 없고, 섹스에는 도덕이 없다.

    순결 교육보다 피임 교육이 더 중요하다.

    사랑해서 섹스하는 게 아니라 섹스해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환상이고 섹스는 현실이다.

    남녀 간의 최고로 좋은 궁합은 진짜 사디스트와 진짜 마조히스트가 만나는 것이다.

    관음증과 한 짝을 이루는 것이 노출증이다. 마치 사디즘이 마조히즘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듯이, 관음증적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남에게 노출시킬 때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일지의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이나 김혜나의 소설 ‘제리’는 굉장히 야하다. 그런데 검열에 안 걸린 이유는 거기에선 삽입성교만 다루기 때문이다. 즉 노말한 것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삽입성교는 상투적인 것이라서 재미가 없는 성애라고 생각하여 이른바 변태성욕만을 다루기 때문에 늘 검열에 걸린다.

    내가 성에 대해서 쓴 글을 입에 거품 물고 욕하는 사람들이 미셸 푸코 등 서구의 성 철학자들이 쓴 것이라면 낙서조차 신주 모시듯 떠 받느는 꼴을 많이 보았다. 그들에게 있어 ‘채털리 부인’이나 ‘엠마누엘 부인’의 성희는 멋진 자유분방함의 표현이고, ‘순이’나 ‘사라’의 성희는 그저 퇴폐적인 방탕일 뿐이다.

    천재들은 모두 다 변태 성욕에 집착한다. 천재들은 별미를 원하는 까다로운 식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성애이다.
    성애의 핵심은 혀에 있다.
    핥기, 빨기, 비벼대기, 뱅글뱅글 돌리기 등
    또한 사랑은 터치이다.

    변태는 없다. 변태는 권태에서 나오고, 변태 없이는 새로운 창조가 나올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권태는 변태를 낳고 변태는 창조를 낳는다.

    ‘즐거운 사라’의 사라는 1992년에 혼전 순결의 자진 파괴, 동성애, 카섹스, 오럴섹스, 비디오섹스, 교수와의 정사, 트리플 섹스 등의 이유로 걸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싱겁디 싱거운 것들이다.

    나는 섹스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핥고 빤다.

    여자가 내 정액을 너저분한 것으로 취급하여 입으로 삼키는 일을 주저하면 나는 참을 수가 없다.

    여인들이여, 아이스크림이나 오이 또는 가지로 펠라티오 연습을 하라. 입술은 쓰지 않고 혀만 쓰는 게 좋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다가 헤어지게 될 때 ‘성격 차이’나 ‘성적 차이’ 같은 간사스런 이유를 갖다 붙이지 말라. 모든 이별의 원인은 오직 하나, 즉 ‘권태’다.

    섹스는 돈이 가장 적게 드는 ‘국민 체육’이다.

    섹스 없이는 먹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모두 동식물이 번식을 위해 섹스를 하여 생산해놓은 씨앗, 열매, 고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식욕 이전에 성욕이고 성에 고프지 않을 때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손톱이 무지 긴 여자한테 맥을 못 춥니다.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화장과 현란한 피어싱, 긴 손톱, 긴 생머리, 염색, 뾰족 구두 등…….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속’이 야해야 한다는 것이죠. 또 잘 핥고 잘 빨아야 해요.

    나는 전처가 겉이 아주 야해서 죽자 사자 쫓아다니다가 결국 결혼했는데, 3년 살아보니 속은 너무 안 야해서 이혼하게 되었다. 죽기 전에 겉과 속이 다 야한 여자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

    밤에는 포르노 보고, 낮에는 금욕주의적인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고……. 한국 사회의 못 말리는 이중성.

    ‘즐거운 사라’에 나오는 국문과 교수 ‘한지섭’은 저의 분신이죠. 실제로 홍대 교수 시절, 사라 같은 미술대 여학생과 진한 연애를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자들과 연애를 가장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 이후론 사건 후유증 때문에 쭉 굶었지요.

    쾌락은 어떤 쾌락이든지 질리게 되어 있어. 그러나! 섹스만은 안 질린다. 인생도 뭐든 질려. 심지어 밥도 먹다 보면 질려. 하지만 섹스 자체는 절대 안 질려. 물론 한 여자 한 남자하고만 하면 질리겠지. 당연한 거 아냐? 사랑을 해도 권태가 있잖아. 권태와 변태. 권태로워지면 변태로워지고, 변태로워지면 창조가 나온다. 그게 내 명제야.

    손으로 비비고 문지르며 나이프로 긁어댈 수도 있는 캔버스 작업은 내게 진짜로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해주었다. 그림이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 우선 나 스스로 카타르시스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붓을 휘둘러대었는데, 그러다 보니 캔버스 작업은 대부분 즉흥성에 의존한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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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광수 교수
    마광수 교수는 1951년 경기도 수원시에서 유복자로 태어나기 몇 달 전, 1.4 후퇴 중 종군 사진작가였던 아버지가 한국전쟁 중에 갑자기 사망해 홀어머니 슬하에서 이부 누나와 함께 자랐다.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국문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석 입학해서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녔으며, 학부과정을 올 A로 졸업했다.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추천으로 26세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홍익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당시 28세)를 거쳐 1983년부터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당시 32세)로 재직하다 2016년 8월 정년 퇴임했다.
    2017년 9월 5일 오후 1시 51분쯤,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연립주택에서 숨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집에서 유서를 발견했고 자살로 추정했다.
    그는 작가로서는 굴곡이 많았지만 문학 연구가로서는 커다란 업적을 남겼으니 바로 윤동주의 재발견이다. 윤동주하면 떠오르는 정서인 ‘부끄러움’ 도 마광수 교수가 그를 연구하면서 발굴해 낸 것이다.

    김진태 전 검찰총장
    김진태 전 검찰총장은 1992년 그 당시 서울지방검찰청 특수2부에서 마광수 교수를 담당한 수사검사 겸 공판 관여 검사였다.
    1952년 경상남도 사천 출생.
    제14기 사법연수원 수료
    2013년 12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제40대 검찰총장을 지냈다.

    안경환 교수
    안경환 교수는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선정한 감정인이었다. 당시 안경환 교수와 서강대 이태동 교수는 ‘즐거운 사라’는 문학작품이 아닌 음란물이라며 마광수 교수에 대한 검찰의 기소 의견을 지지했다.
    1948년 경상남도 밀양 출생.
    서울대 법학과 졸업
    미국 펜실베니아대 법학 석사
    미국 산타클라라대 로스쿨 J.D.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장
    한국헌법학회장
    제4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2013년부터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민용태 교수
    민용태 교수는 항소심에서 피고인측 증인으로 나와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했다.
    1943년 전라남도 화순 출생.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대학교 박사
    1968년 창작과비평에 시 ‘밤으로의 작업’으로 등단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서어서문학과 명예교수
    스페인 한림원 종신회원

    장석주 시인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 당시 발행인으로 함께 옥고를 치렀던 장석주 시인은 2017년 9월 15일 ‘여성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마광수 교수와 얽힌 여러 이야기를 했다. 이 인터뷰 기사는 같은 해 10월호에 게재되었다.

    1992년 10월 29일 새벽에 검찰청 직원 서너 명이 집 앞에 와서 갑자기 연행됐어요. 그날 종일 조사 받고 아마 저녁 8시쯤에 법원 영장이 떨어져서 서울구치소에 함께 들어간 걸로 기억해요. 설마 했어요. 이걸로 사람을 구속시킬까. ‘즐거운 사라’는 출판된 책이니까 증거인멸도 할 수 없고, 우린 얼굴이 다 알려진 사람들인데 일사천리로 구속까지 진행된 거죠. 처음엔 암담하고 당황스러웠고 속수무책인 상태였어요. 이후 변호인이 선임됐지만 보석 신청도 계속 기각됐고요. 재판이 진행됐어요. 두 달이 빨리 지나갔죠. 12월 30일에 1심 선고 받고 집행유예로 나왔어요. 저는 그 사건으로 인해 출판사를 정리하게 됐고, 가정도 풍비박산이 났어요. 내 인생에 가장 큰 변곡점이 된 사건이었죠. 내 안에 분노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구속까지는 예상을 못 했죠. 저는 표현의 자유와 외설이란 법적 규제가 정면으로 충돌했을 때 우리 사회의 품이 그렇게 좁진 않을 거라고 낙관적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상당히 엄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거죠. 검찰 권력이 얼마나 막강해요. 개인이 권력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모든 걸 감당해야 했고, 거기서 생겨나는 피해와 손실은 온전히 제 몫이었죠.

    1980년대 당시 한국 사회는 좌파 이념이 휩쓸던 때였어요.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서 편향된 사회가 되는 것을 우려했죠. 지식생태계가 건강해지려면 반대쪽에도 좀 균형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요. 그런 면에서 마 교수가 가진 문학적 혹은 이념적 · 사상적 위치가 대단히 독특했어요. 마광수 같은 사람도 우리 사회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마 교수 작업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회를 주는 것이었어요. 지식생태계가 균형에 필요하다는 것이 당시 제 생각이었어요. 검찰에서는 내가 마 교수를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했던 게 아니냐고 했지만요.

    운동권이 득세하던 시기였고,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지 않는 것은 시대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었죠. 그러나 저는 그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마 교수는 성 담론 해방을 거의 혼자 주창하고 나왔어요. 그것을 시로 소설로 창작해서 계속 보여줬고요. 우리 사회는 밤과 낮이 같지 않은 위선적 사회였어요. 낮은 근엄한 도덕주의자가 지배하지만, 밤은 성적으로 타락한 사회였죠. 마 교수는 그런 이중성을 폭로하고, 성 담론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 면에서 어쩌면 더 자극적으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작품을 썼던 거죠.

    마 교수는 독창적인 천재였죠. 사물이나 현상을 보는 방식이 보통사람과 굉장히 달랐어요. 특히 윤동주나 시나 이상의 시를 해석한 걸 보면 독창적인 시각이 두드러져요. 재능도 많은 사람이었어요. 가끔 함께 노래방에 가면 노래도 굉장히 잘했거든요. 자유롭고 유쾌하고 잘 노는 사람이었어요. 멋쟁이였어요.

    사회적 타살이란 말은 앙토냉 아르토라는 프랑스 작가가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을 두고 한 말이에요. 고흐는 자살했지만 사실은 사회적 타살이란 거죠. 고흐의 자살이나 21세기 마 교수의 자살은 똑같아요. 자살 형식을 빌렸지만 이것은 한 사회가 그 예술가에 대한 냉대와 몰이해로 공모해서 죽인 거예요.

    참고 자료
    나는 메타픽션을 의식하면서 한 편의 논픽션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은 역사소설 또는 실화소설이기 때문에 냉엄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역사소설을 쓸 때의 작가의 한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참고 자료를 읽고 조사했지만 충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마광수 교수를 만나서 조사하고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았지만.
    내가 1차 자료에 근거하지 않고 또한 당사자를 직접 만나서 취재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잘못 이해해서 또는 역사적 상황과 인물들, 사건, 배경에 대한 내 상상력이 지나쳤거나 부족했다면 그건 순전히 내 과오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참고한 자료는, 마광수 저, ‘즐거운 사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돌아온 사라’ ‘마광쉬즘’ ‘마광수의 뇌구조’ ‘나의 이력서’ ‘사라를 위한 변명’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읽기’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법률신문사 발행 ‘법조50년 야사’, 범우사 발행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실록’ 제6권, ‘마광수 교수 필화사건 백서’, 존 클레런드 저 / 정성호 옮김 ‘패니 힐’, 게리 덱스터 지음 / 박중서 옮김 ‘왜 시계태엽 바나나가 아니라 시계태엽 오렌지일까?’ 기타 나무위키 또는 네이버 인터넷 자료 등 이다.
    다만 ‘즐거운 사라’ 사건의 공소장, 1심 판결문, 변호인들의 항소이유서, 마광수 교수 본인의 항소이유보충서, 한승헌 변호사의 상고이유서 등등 중요하면서 상세한 것은 한승헌 변호사의 전게서 457면부터 539면 까지 및 ‘마광수 교수 필화사건 백서’를 참조해야 할 것이다.
    원본 ‘즐거운 사라’는 그 사건 재판에서 음란물로 확정되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공개적으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공소장과 판결문에서만 문제가 된 음란물 부분을 찾아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부분을 생략하지 않고 전부를 실었다. 판례가 제시한 음란물의 개념, 문학에서 성표현의 한계, 예술과 외설의 변별에 관해서 학술적 가치가 있는 논문을 쓰려고 한다면 반드시 공소장과 판결문을 참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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