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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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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향 故鄕

    고향은 / 노고지리 초록빛 꿈을 꾸는 / 하늘을 가졌다.
    풀풀 날리는 아지랑이를 호흡하며 / 신냉이도 자라고 / 할미꽃 진달래 송이송이 자라고
    태고적 어느 신화의 여신이 속삭였다는 / 사랑의 밀봉의 울 안처럼 왱왱 풍성하다.
    언덕을 지내고 시내를 건너고 / 봄은 노래 맞춰 / 고향으로 간다.
    고향은 / 아직도 내 마음에 / 너그럽다.

    ― 김수영

    나는 오랜만에, 근 10여 년 만에,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아마, 그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이었으니까 할머니 제사 때문에) 송정리 고향집에 내려갔다. 내가 막 지나온 10년간의 세월을 새삼 돌이켜보면 내 삶은 지리멸렬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느리지만 의미있는 변화가 있었으니 그 긴 터널을 겨우 빠져나왔고 결혼도 했으며 직장도 잡았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이제는 한 시름 놓았다.
    내가 고향에 내려오면 언제나 꿈과 몽상에 젖어 그리워했지만 그러나 이미 가슴 속에서 희미하게 지워져가는 남쪽 바다를 다시 만나게 된다.
    한반도 남단 고흥반도의 끝.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소록도 부근 바닷가가 고향이다.
    바다는 위안이고 심연의 상처이다.
    멀리서 어떤 목소리가…… 바다 쪽에서…… 울부짖었다.
    돌아오라고! 돌아……! 고향으로……!
    네 고향은 바로 바다인 거야.
    초겨울 바다에 돌풍과 같은 강한 바람이 불었고 파도는 하얀 이를 드러낸 채 으르렁거렸다. 작은 어선이 통통거리며 거친 파도를 헤치고 풍남항 부두로 귀환하고 있었다.
    나는 해안선을 따라 만의 동쪽 끝 동백나무 숲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오랜 세월 바닷물에 씻겨 반들반들해진 바닷가 자갈들을 밟으며 걸었다. 하늘은 푸르고 아름다웠다. 오후의 따스한 햇빛이 구름을 뚫고 황금색 사선처럼 수평선 위로 쏟아졌다. 한나절 동안 나는 들뜬 채로 바닷가를 서성이면서 진정한 정신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깊고 푸른 바다의 염분 냄새를 흠뻑 들여마셨다.

    …… 달에게 그 가슴을 드러내 놓은 바다여!
    …… 밀려와라, 그대 깊고 검푸른 바다여!

    나는 아주 슬프지도 않았지만 아주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그때 바다가 내게 무슨 말을 했었던가, 바다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무슨 말인가를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은퇴하고 이곳에 내려와서 바다만 바라보며 살 수 있을까. 언제나 늘 파도 소리를 가까이서 듣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았던가. 파도는 수평선에서부터 아주 멀리서 밀려와 가까이서 철썩거렸다. 파도 소리가 너무 다정했고 그 소리는 깊이 파묻혀있던 어린 시절 과거로부터 되살아나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이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적이었다.
    나는 공연히 인적없는 해변에서 파도에 쓸려가는 젖은 금빛 모래를 한 움큼 쥐고 허공으로 뿌렸다.
    나는 건너편 이름도 없는 무인도인 작은 섬을 바라다보았다. 그 외로운 섬. 내가 어렸을 적에는 두 가구가 염소를 키우며 살았었다. 까마득한 옛날 일이다. 그러나 그 섬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혹독한 것이었으리라. 나는 그들의 고립되고 힘든 삶을 상상했다. 내가 그때 어리석게도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바다와 함께 오순도순 사는 단순한 삶 속에서 행복했을 수도 있다.
    나는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불가해하고 희미한 장면들을 이것저것 떠올렸다. 그렇지만 내가 유치한 감상에 젖어있었던 건 아니다. 그때 무슨 심각한 또는 애잔한 생각을 했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내가 부질없이 눈물을, 자기 연민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할 것이다. 내 눈에서 그것은 아주 옛날에 말라버렸지 않았던가.
    나는 생각했다.
    전쟁의 상처가 무어 대단하다고. 그게 언제적 일인데. 이제는 삶에 대한 강한 의혹으로 그 지긋지긋한 어둠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무엇이 그토록 불안하고 두려운 것인가. 도대체 뭐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가. 이제는 철이 들만큼 들 나이가 되었는데 이 세상을 향한 냉소주의도 버릴 때가 되었다.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면 끊임없이 변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희망의 출구가 보이고 있다. 지금 당장 자신감과 함께 당당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쩌면 자기 자신한테도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만큼 뻔뻔함까지.
    다시 돌이켜보면 나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희생자가 아니었고 가해자가 된 적도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또는 나 자신에게 도덕적 이중성을 해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이중인격자라는 비난을 받아도 감수하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순진하게 자기 방어적이어서는 안된다. 나를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위선적이거나 위험한 변신까지도 할 수 있다. 왜 불가능하겠는가.
    나는 아주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오면 언제나 그랬다. 나는 고향에 내려오기 전 며칠 동안 무기력해지면서 발열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 끈질긴 강박관념이 유령처럼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다시 자신과 싸워야 했다. 그렇지만 이건 의식이 더욱더 성숙해지는 과정일 뿐이고 내가 구제불능으로 타락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존경하는 선배님의 끈질긴 권유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육십 대 중반쯤 가벼운 뇌졸중을 앓은 이후로는 아주 느리게 말했다. 그래도 좋아하는 술을 끊지는 않았지만. 그는 몇 번이고, 아마 수십 번씩이나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 신께 믿음으로 의지하면 신이 믿음에 응답하리라고 말하면서 교회에 나오라고 하였다.
    나는 이제 보통 사람의 일상적인 삶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안주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할 것이다.
    단순성. 반복. 익숙함.
    나를 오랫동안 짓누르고 있던 바윗덩어리 같은 무엇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에는 여수에서 수산 전문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와 미역과 김을 양식하면서 미역 공장을 하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오랜만에 만나 집에서 담근 독한 과실주를 마시며 통음했다. 그는 옛날부터 워낙에 술이 센 탓에 그날 밤에도 술을 마신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의 뜨거운 햇빛과 거친 바닷바람에 검게 탄 얼굴은 세월의 그늘에 덮여 있었지만 여전히 안온했다. 그는 항상 부끄러워하고 겸손했다. 그는 미역 공장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고 성공했다. 그렇게 멀리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그리운 추억담에 빠졌다. 몹시 가난했던 그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새삼스럽게 회상하면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우리를 감쌌다.
    우리는 지쳐서 서로 엉킨 채 잠이 들었다.
    그날 밤은 깊고 깊은 밤이었다. 마법을 부린 듯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는 창백한 초승달이 바다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은 화창하고 상쾌한 날씨였다. 나는 고흥읍 내로 나가 버스를 타고 녹동항까지 갔고 나룻배를 타고 소록도로 건너갔다. 소록도 중앙공원의 잘 가꾸어진 소나무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내가 소록도에 갔을 당시 김재수 하사의 부모님들은 진작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다. 소록도에서 나환자들이 죽으면 화장장에서 화장을 했고 그 재는 말령당 납골당에 안치되거나 때로는 소록도 바다에 뿌렸다.
    김 하사가 말한 담쟁이들이 마구 늘어지고 휘감기며 타고 올라갔던 작은 초가집은 이미 허물어져 폐허만 남았다. 그 집터에는 누가 세웠는지 모르겠지만 먹으로 쓴 글자들이 도저히 판독할 수 없을 만큼 비바람에 모두 지워진 나무 비석만 외로이 서 있었다.

    그날 밤 우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고향에는 아주 오랜만에 내려온 거지.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하나도 안 변했을 거야. 바다가 어떻게 변할 수 있겠어. 너는 많이 변한 것 같지만…….
    그렇지 뭐. 애들은 많이 컸겠구나.
    큰놈은 벌써 휴학하고 군대에 갔어. 넌? 왜? 알리지도 않고 결혼했지? 나중에 알고 좀 섭섭했지.
    노총각이 어쩌다가 뒤늦게 결혼했으니까……. 누구에게 알리기가 그랬어. 그때서야…… 자리를 잡으니까 조용히 결혼하게 된 거지. 한때는 결코 결혼을 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거든.그런데 결혼하고 나니까 생활이 안정되더라고.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고 하던데?
    그렇지. 시간강사는 그게 보따리 장사야. 신분이 보장되지 않고…… 수입도 형편없지. 그래서 사립 고등학교로 간 거야. 거기서 국어 선생을 하고 있지.
    학생 가르치는 일이 보람 있을 것 같은데…… 바다와 힘겹게 싸우는 일보다는 말이야.
    그게 그렇지 뭐…… 난 네가 부럽지. 매일 바다와 함께 사니까 말이야.
    바다는 변덕이 심하다고. 한창 일할 나이인데도 …… 바다와 너무 부대끼니까 지쳤다는 느낌이 들지.
    남이 들고 있는 떡이 더 커보인다고 했는데…… 그런건가?
    난 어차피 여기에서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지.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왔으니까. 하지만 자식들은 대도시로 진죽 떠났으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이제 고향에는 노인들만 남아 있지.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만…… 아버지는 지금은 동네 과부 아주머니가 잘 돌봐주시니까 건강하시지만 언젠가 돌아가신 후에는…… 너라도 남아 있으니까 고향인거지.
    네 부친은 오랫동안 혼자 사셨지. 뵌 지가 오래되었네.
    절대 재혼을 하지 않겠다고 …… 하셨지 않은가.
    새삼스럽게 귀소본능이란 말을 들먹일 것까지는 없겠지, 진부하니까. 그래도 언제가는 내려와서 바닷가에서 살고 싶지. 세월은 빠르니까…… 은퇴하고 말이야. 어쩐 일인지 도시에 살다보면 생활에 너무 지쳐서 바다를 잊을 수가 없다네.
    너무 낭만적이라고 해야겠지. 네가 여기서 사막의 은둔자처럼 살 수 있겠어? 네 마음이 자꾸 변할 거라고. 사람의 마음은 믿을 수가 없는 거야. 여긴 살다보면 너무 답답하다고. 밤이 되면 사람이라곤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너무 적막하지. 너무 쓸쓸하니까 귀신도 나타나지 않는 거야.
    여기는 너의 마지막 안식처가 될 수 없을걸. 나는 오히려 여기를 떠나고 싶어진다. 결국 못 내려오겠지. 네 마누라가 이런 시골에 내려올까?
    그건 그렇다네. 질겁을 할거니까 말도 못 꺼내겠지.
    그러면 정년 퇴직하고 마누라가 죽은 후에나 내려올 수 있겠군.
    무슨 소리야. 여자가 더 오래살지 않은가.

    그리고 오랫동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 끝에 이병주의 소식을 들었다.
    네가 월남 갔다 왔다는 걸…… 언젠가 누구한테서 들었던 거 같은데?
    그랬었지. 내가 그곳에 갔다는 게…… 그렇지 뭐. 난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었지.
    그래? 너도 알고 있겠지?
    누구?
    이병주 말이야. 걔는 어렵게 3사관학교 나와서 육군 장교가 됐었거든. 마지막 끝물에 월남에 갔다가 지뢰가 터져서 한쪽 다리…… 오른쪽 다리일 거야…… 무릎 위쪽까지 잘라냈지. 그렇게 됐다고 그러더라고.
    제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거야. 어디라도 갈 데가 없었겠지.
    그래도 무슨 무공훈장을 받았다고 하면서 그 훈장을 자랑하려고 가슴에 달고 다니기도 했지. 그게 아주 높은 훈장이라고 하더구먼. 그리고 연금을 받으니까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지.
    처음에는 오른쪽 다리에는 의족을 끼고 목발을 짚으며 잘 걸어 다녔어. 몸을 앞으로 내밀고 목발을 짚어서 몸을 이동하는데 다시 그렇게 반복하는 거지. 그래서 휠체어를 타지는 않았어.
    그때 소리소문없이 결혼도 했는데 얼마 후 여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어. 그때부터 성불구라는 소문이 떠돈 거야. 부부간의 속사정을 누가 알 수 있겠어. 여자 쪽에서 먼저 ‘나는 성불구자는 살 수 없다’고 선언하고 도시로 떠나버렸기 때문에 그 소문이 퍼진거라고 하더군.
    그러더니 온전했던 왼쪽 다리 부상이 다시 도졌다면서 휠체어를 타기 시작했지. 그 과정이 좀 이상하긴 했어. 매일 술로 지새니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어. 나도 가끔 함께 술을 마셨지. 여기로 찾아왔었거든.
    그는 늘 입버릇처럼 ‘사람 죽이는 일은 쉬운 게 아냐,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라고 말했었지. 한동안 술도 끊고 괜찮았는데…… 휠체어가 뒤로 밀리면서 바다로 빠져 죽었어. 그게 사고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었지.
    이병주는 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했었지만) 시절 술도가집 큰아들로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자였고 유복했다. 얼굴에 언청이 수술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었지만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다. 그랬으니 단연 골목대장으로 위세가 대단했었다. 나는 어린시절 내심 그를 무척 부러워했고 시샘했었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그의 소식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오래전에 읽었던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줄거리를 떠올리면서 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성불구자가 된 주인공 제이크의 모진 운명을 생각했다. 그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몸부림쳤다. 하지만 브렛은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드러내고 제이크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 욕망을 희생하거나 억압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하염없이 방황했으나 그들에게 재생이나 구원은 없었다.
    나는 이병주의 육체적 상처뿐만 아니라 영혼의 상처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다. 월남전 참전용사인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누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많이 울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차라리 월남에서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거라고 곱씹었을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강한 성적 욕망을 느꼈겠지만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 거지 뭐. 월남전 이야기는 이제 지겹다.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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