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정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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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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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2박 3일 동안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 정상회담은 가족과 친지들이 모인 추석에 좋은 화제가 될 것 같다. 평양 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은 이전의 DJ나 노무현 대통령의 방문 때와 비교하면, 김정은 부부의 공항 마중, 카퍼레이드, 평양시민 앞에서의 연설, 백두산 천지 방문 등 수준 높은 대접을 받은 것만은 사실이다. 좀 더 정확히는 청년실업 격증과 최저임금제로 영세자영업자의 몰락을 초래하여 추락하기만 하던 지지율이 오르고, 트럼프와 정상회담,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대통령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화려했던 의전과 행사, 퍼포먼스와 별개로 핵심 사항인 비핵화 문제에서는 별 진전이 없다. 무엇보다도 동족상잔의 6.25, 그 이후에도 수많은 국지전 도발과 간첩 남파로 적화통일을 노리고, 적화통일을 노린 핵폭탄 개발로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협하는 공적이 되어 유엔의 제제결의와 미국으로부터 대북규제를 받고 있는 상황인데도, 대통령은 우리 국민과 세계에 위험을 초래한 북한에게 단 한 번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또 그 도발에 대한 진지한 사과나 반성도 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두 정상이 포옹하는 모습을 공감할 수 없다. 당장 우리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경의선 철도복원 공사며,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관광 등 미국의 대북규제에 저촉되어 제재를 받고 있으면서도 대통령은 ‘비핵화 문제는 미․북 간의 문제’라는 안이한 인식아래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방미에서 있을 한미정상회담에서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는 자국민들에게 보여줄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서 남북정상회담을 깎아내릴지, 아니면 자기 구상대로 진전되는 프로세스의 일부라고 받아들일지 판가름 나겠지만, 분명한 것은 한미공조가 삐걱거린다면 남북은 미․일 등 서방으로부터 주시의 대상이 되어 버릴 것이다. 또, 우스갯소리로 공처가와 애처가의 공통점은 아내를 사랑한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남편의 진심에서 나온 것인지 아내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것인지에 있다고 하는데, 우리의 대북 구애가 북한을 애처가로 사랑하는 것인지 공처가로서 사랑하는지도 지켜보게 될 것이다. 남북통일이 지상과제인 우리는 두 정상이 웃으며 포옹하는 그 순간에도 155마일 휴전선에서 우리의 자식들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철책선을 지키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사실 혈맹이니 우방이니 하는 국가 간의 관계도 국익(national interest)에 따라서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1950년 1월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한반도를 방위선에서 제외한다는 발언 하나로 6.25를 초래했다는 것이 정설이고, 소련 해체 후 새로이 G2로 발돋움하는 중국이 미국과 세계 질서를 재편성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일제강점기 때 유일하게 상해임시정부를 지지하고 후원해준 자유중국과 단교하고 중공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타이완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 미국의 요청으로 베트남전에 참가하여 수많은 장병이 희생되었지만, 결국 통일된 베트남으로부터 한동안 미제의 앞잡이로 비난받고 한․베트남 관계가 불편하기도 했었다. 이렇듯 국가 간의 외교는 국익에 따라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는 냉정한 관계인데, 한미공조를 깨뜨리고 확고하게 남북이 자주통일을 하겠다는 것인지 한미공조아래 북핵을 폐기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아직까지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북한을 일방적으로 원조하거나 추종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교훈은 중국 대륙의 송과 거란(요)의 관계에서 잘 알 수 있다.

    당(618~907) 멸망 후 70여 년 동안 5대 혼란기를 겪던 대륙은 960년 조광윤이 통일하여 송을 건국했으나, 조광윤은 전쟁의 참화를 막기 위해서 문치주의를 편 결과 나라는 점차 문약(文弱)해졌다. 이때 강성해진 거란의 성종(981~1031)은 송을 침략하면서 후진(後晉)의 석경당으로부터 할양받은 연운(燕雲) 16주의 반환을 요구하자 송의 3대 황제 진종은 1005년 1월 북방의 요지인 영토를 할양하는 대신 ‘송과 요는 형제의 의를 맺었다. 거란은 송의 내륙으로 침입한 전연군(澶淵郡; 허난 성 복양현 서쪽)에서 맺은 ‘요는 송을 형으로 섬기고, 송은 매년 비단 20만 필, 은 10만 냥을 요에 보낸다’는 내용의 ‘전연의 맹(盟)’ 또는 ‘전주의 맹’이라는 조약을 맺었는데, 송은 명목상 형이라는 체면 유지 대가로 1126년 멸망할 때까지 약100년간 매년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하는 조공관계로 국력이 쇠퇴했다. 조공으로 불안한 평화체제를 유지하던 송은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이이제이정책으로 금과 연합하여 거란을 멸망시켰지만, 1126년 몽골에 의하여 휘종(徽宗)과 흠종(欽宗) 두 황제가 잡혀가는 ’정강의 변‘으로 멸망하게 된다. 흠종의 동생 강왕이 남쪽으로 도망쳐 1127년 난징에서 고종이 되어 송나라를 재흥하니 남송이라 했다.

    주권국가가 자주 국방력이 없이 화해나 양보는 곧 송처럼 상대방의 위세에 밀려서 굴종상태로 전락하며, 또 우방으로부터 외면 받은 타이완 정부의 예에서 잘 알 수 있다. 평양을 방문하면서 우리의 얼굴인 태극기를 내걸지도 못하고, 또 과거에 대한 사과나 반성도 받지 못한 화해는 자칫 상대방으로 하여금 전쟁에 대한 오판을 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정부는 국민들이 형이라는 명분 아래 금전으로 평화를 구걸(?)하던 송의 말로와 대북지원이라는 조공 아닌 조공이 오버랩 되는 불안을 지우게 해줄 필요가 있다. 화해는 진솔한 과거사 반성에서 시작되고, 양보는 상대방의 반성을 믿는 토대위에서 가능한데, 비핵화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진행된 남북관계가 과연 국론통일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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