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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되고 싶었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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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되고 싶었던 남자

    시인이란 무엇인가.

    그 마음은 남 모르는 고뇌에 괴로움을 당하면서

    그 탄식과 비명이 아름다운 음악으로 바뀌게 하는 입술을 가진 불행한 인간이다.

    김정현 병장.

    실종자 (혹은 탈영병).

    월남어 교육대 출신. 그는 파병 초기 보병 중대에서 몇 개월간 전투에 참가한 후 뒤늦게 대학에서 불문과를 다녔다는 학력 때문에 선발되었다. 그는 교육을 마친 후 연대 민사과에 배속되어 대민 지원 활동에 동원되었다.

    나와는 월남 파병 동기였고 나이는 겨우 한 살 위였다.

    우리는 보충 교대병력으로 도착해서 보병 부대에서 필요한 교육훈련을 함께 받았다. 먼저 M16 소총의 분해, 결합과 사격법을 실제 사격을 하면서 교육받았고, M79 유탄발사기, 신형 RKT 사격법, (푸른 스모그라 불렸던) 신호탄, 수류탄, 크레모아 등 각종 화기들의 사용법을, 베트콩의 전술과 특징, 베트콩의 요란 사격에 속지 않는 법, 지뢰와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는 장소의 탐지와 조치, 매복 정찰 요령 등등을 배웠다.

    교관인 귀국 말년 중사가 말했다.

    “이 전쟁은 이유가 없어. 이유가 있다고 해도 이유가 옳든 그르든 상관할 것 없어. 우리는 1년만 견디면 되니까.

    다른 놈이 나를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죽여야 되는 거야.

    미군은 황색 인종을 멸시하니까 베트남을 인디언 땅이라고 하지. 그러니까 우리는 황색 인종끼리 싸우는 거야.

    미국이 왜 우리를 끌어들였겠어. 월남전이 백인과 황인종의 전쟁으로 인식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황인종인 한국군이 필요했던 거지. 그걸 알고 있으라고.

    여기는 고정된 전선이 없어.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할 수 없다고. 군복도 입지 않고 검정색 파자마 차림으로 돌아다닌다.

    언제나 다니던 길을 다시 가면 안 된다. 통행이 잦은 곳에는 반드시 부비트랩을 설치하지. 길가에 문이 열린 폐가가 있으면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마라. 거기에도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지. 다시 강조한다. 열린 문을 조심하라.

    그놈들은 별거 아냐. 적은 그들이 아니야. 여긴 소련제 탱크도 없고 미그기도 없어. 지뢰와 부비트랩만이 사방에 널려 있다. 부비트랩이라는 말만 들어도 피 냄새가 난다. 몸서리쳐지지.

    매복할 때건 정찰할 때건 밤중에 담배 피우지 말고 모기약 바르면 안 된다. 저격병이 쥐도 새도 모르게 지켜보고 있다.

    마지막이다.

    거머리를 조심해야 한다. 거머리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매복을 나갈 때는 거머리가 들러붙지 못하게 바지 끝을 단단히 붙잡아 매고 그 위에 정글화를 다시 단단히 조여야 한다.

    절대로 죽지 마라. 그건 개죽음이다. 무사히 귀국해야 한다.”

    우리는 저녁이 되면 자주 연대 PX에서 만났다. 내가 대대본부에서 근무하면서부터 같은 영내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어김없이 형님, 그것도 큰형님 행세를 하였고 나는 어느새 이를 받아들이고 완전히 긍정하였다. 나는 흉내조차 낼 수 없게 멋있게,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것처럼 휘파람을 불 수 있고, 이중 인격적이면서 성숙한 인간이었으니까. 그러므로 그의 내면에는 양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감정들이 뒤섞어서 공존하고 있다.

    그새 몰라보게 어른이 되어 있었다.

    어쨌거나 우린 친했고 서로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가 맨날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심문 (또는 고문)하는 고정 메뉴가 있었다. 그는 대단한 고참인 것처럼 한껏 거들먹거리며 과장해서 위악적으로 말했다.

    “넌 순진하긴 한데 쪼다라고 할 수 있어. 아직도 완전한 쪼다. 순진한 게 좋은 게 아니야. 그건 병신 머저리라는 말의 완곡어법에 불과한 거지. 넌 담배도 못 피우지…… 술도 못 마시지…… 내가 말하는 술은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시는 말술을 말하는거야. 붕붕도 못하지. 노름도 못하지.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냐 말이야? 그것들이야말로 인간 성체의 징표인데 말이지.

    저승의 문앞까지 갔다 왔으면서…… 인생은 아무것도 아냐.

    케 세라 세라!

    너 혹시 독실한 예수쟁이 아니야?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목사 아니면 전도사 집안인 거지? 황금 십자가와 묵주는 어디에 숨겨놓은 거야? 네놈이 월남까지 왔으면 기념으로 붕붕쯤은 해야 될 거 아냐. 딱지를 떼란 말이야.

    너 같은 놈만 있다면 말이야, 수진 마을에서 젊고 예쁜 여자 2,000명이 날이면 날마다 목을 빼고 남잘 기다리고 있는데…… 그러면 걔들은 도대체 뭘 먹고 살겠어. 물만 마시고 사느냐 말이야. 너는 도대체 말이야, 인간의 본성인 연민의식이 없는 거야. 난 전투 수당을 몽땅 수진에 갖다 바쳤어.”

    “날 너무 무시하지 말라고. 나라고…… 어쩌겠어. 나는 더 이상 순수하지 않다니까.”

    “뭐라고?”

    “귀대하기 전날 나트랑 시내에 갔었다니까. 허탈감만 느꼈지.”

    “그까짓 거 가지고. 네가 애송이인 것은 틀림없어. 또 뭐가 있는데? 말해 보라고.”

    “나도 전투에 여러 번 참가했다니까. 정찰과 매복 작전에도 나갔고. 죽을 고비도 몇 번 있었지.

    베트콩이 총을 내게 겨눈 채 오랫동안 바라보더니 발사하지 않고 숲 속으로 그대로 사라지더라고. 나는 그때 머리가 하얘지면서 정신을 놓아버렸지. 내가 그렇게 불쌍하게 보였던 거지.”

    “여자와 사랑 문제는 전투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야. 전혀…… 진짜 사랑 말이야. 그러니까 너는 아직…….

    내가 좋아하는 아폴리네르의 시를 다시 들려주어야만 하겠지. 이게 마지막일 거야. 시인은 화가 마리 로랑생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사랑했거든.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우리 사랑을 나는 다시 되새겨야만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슬픔 뒤에 왔었지

    …… 사랑은 가버린다 흐르는 이 물처럼

    사랑은 가버린다

    이처럼 삶은 느린 것이며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왜?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하는 거야?”

    “나도 모르겠어. 그런 생각이 든다고.

    그러니까…… 내 말은…… 섹스를 하려면 제대로 하란 말이야. 장난치지 말고. 로마인들은 ‘동물은 교미 후에 슬프다’고 했어.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고.

    내가 공짜로 시켜줄게. 제발 좀 따라만 와주라. 진짜배기 아라비아산 낙타 눈깔도 줄게. 그게 말이야, 신비한 요물이거든. 여자가 환장을 하는 거지. 남자도 덩달아 환장을 하고 말이지. 그쯤 해야 섹스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게 되겠지.

    이 형님의 당면한 소원이 뭐겠어. 네놈 물건이 퉁퉁 부어 가지고 농이 질질 흐르는 꼴을 보는 게 나의 소원이지. 가끔 대가가 따른단 말이야. 인생의 단맛 쓴맛을 비로소 맛보게 되는 거지.

    알겠어? 입에서 아직도 젖비린내 나는 놈아, 그걸 고상하게 말하면 구상유취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말이지, 그래야만, 네가 비로소 인간이, 사내가 되는 거야. 너에겐 지금 하나의 과정이 필요한 거야. 인간 성체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 넌 알에서 하루빨리 부화해야 하는 거야.”

    나는 늘 똑같이 반응했다.

    “또…… 쓸데없는 소릴……. 나는 이미 부화했다니까.

    그게 뭐 어렵다고. 5불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꽁까이, 붕붕, 오케이 하면 될 거 아냐.”

    “그래, 그렇게 하라니까. 넌 보나마나 조루일 거야. 그걸 완화시키는 약은 아직 없으니까…….”

    그날 저녁, 어스름 빛 속에서 나무들을 말끔하게 베어낸 개활지와 늪지대를 지나 조림된 고무나무 밭과 검고 칙칙한 열대의 숲이 멀리 보였다. 그러나 강에서부터 기어오른 짙은 회색 물안개가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입에서 여전히 술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다. 김 병장이 마리화나를 피워 물며 말했다.

    “이건 정신적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진통제이거든. 온몸이 노곤해지고 황홀해지지. 이 맛을 모를 거야. 알 턱이 없지. 작전에 나가기 전에 한 대 맛있게 피우면 고통을 이길 수 있으니까.

    며칠 전 수진에 갔다 왔지. 근 한 달 동안이나 못 만났거든.”

    “뻔할 뻔자지, 보고 싶었던 거지. 그게 아니고 하고 싶었던 거지. 그래, 그렇게 좋아? 그 여자 이제 지겹지도 않아?”

    “그 앤 그런 여자가 아닌 거야. 단순한 배설구는 아니었지. 내 여자이지. 영혼만은 순결하지. 난 랑린의 순수하고 달콤한 냄새를 맡고 들이마시지. 그 앨 보면 오히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작은 물고기가 내 혈관 여기저기를, 심장에서 모세혈관까지 헤엄치고 다니는 기분이 들지.

    하지만 그 앤 가끔 눈물을 보일 때가 있는 거야. 메콩 강을 그리워하는 거지. 자신은 그 강의 일부라고……. 그 앤 내가 사준 은팔찌를 항상 차고 다녔던 거야. 그 앤 내 아이를 갖고 싶어 해.”

    “얼씨구, 열녀 춘향이가 따로 없네. 아예 결혼해서 한국으로 모시고 가지 그래.”

    “야, 임마, 난 이래 봬도 뼈대 있는 종갓집의 장손이야. 그 낡고 고루한 집안에서 용납하겠어. 야단법석, 난리가 나겠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가 다급하게 랑린을 찾자 마담년이 뚱했어. 여기에 없다는 거야. 내가 신경질 부리고 눈을 부라려도 그 여자는 비웃었지. 자기는 모른다고 딱 잡아떼는 거야. 그러면서 그 앤 결코 돌아오지 않을 거라구, 죽은 셈 치라는 거야.

    다른 애들이, 새로 온 여자애들이 있으니 마음대로 고르라는 거였어. 마담 밑에는 모두 열 명의 아가씨가 있다는 거지. 그 여자는 철저히 장삿속인 거야. 다른 집에 단골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지. 포주들은 어디서나 돈밖에 모른다니까.

    내가 1년 동안이나 다른 애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일편단심 그 애만 만난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야. 그래서 눈이 뒤집혀 가지고 단도를 빼들어서 마담의 목을 겨누었지. 그때는 정말 목을 따 버릴 작정이었어.

    그제서야 마담이 털어놨어. 랑린이 고향으로 이미 떠났다는 거야. 몬순 계절이 되면 메콩 강 델타는 엄청나게 범람한다는 거지. 그 전에 서둘러서 메콩 강 하류에 있는 빈롱으로 출발하였다는 거야. 고향에는 늙은 홀어머니가 계시지. 아버지도, 두 오빠도 전쟁 중에 죽었거든…….”

    그가 낯설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단도를 빼들고 목을 겨누었다는 말은 빼라고. 믿지 않을 테니까. 왜 나한테까지 뻥을 치는 거야? 형은 그럴 수 있는 잔인한 인간이 아니야. 파리 한 마리도 못 잡으면서.”

    “넌…… 날 오해하고 있는 거야. 날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야. 절대로 아니지.”

    나는 어떤 아득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어쩔 셈인데?”

    “나에겐 랑린밖에 없는 거야. 나도 떠날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멀리 떠난다는 거지. 그 앨 찾아서. 이게 사랑인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람브레터를 타는 거지. 아니면 지붕에 승객을 태우는 장거리 버스를 교대로 타고서 무작정 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거야. 월남 지도를 구했거든. 빈롱까지 가는 거지.

    월남 사람처럼 옷을 입고 그들처럼 행세를 할 거야. 내 월남어가 어느 정도는 통하겠지.

    메콩 강이 꿈결처럼 흘러 흘러들어서 마침내 태평양 바다와 만나는 곳이지. 여기서부터 천릿길이 될 거야. 나는 원래 방랑자적 기질이 있으니까……. 이런 여행쯤이야. 돈이 좀 필요하지. 네가 가지고 있는 걸 전부 내놔야 할 거야.”

    “지금, 제정신이냐! 제정신이냐구? 대관절 사랑이 뭔데! 그렇게도 사랑 때문에 단맛, 쓴맛을 봤으면서……. 지금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거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상황을 정리해 보려고 애를 썼다.

    그의 얼굴에 숨겨진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여윈 얼굴에 피로한 눈빛과 냉소적인 미소가 어려 있다. 그가 다시 마리화나를 피워 물었다.

    내가 먼저 말했다.

    “귀국해서 학교를 마치고 나면 시인이 되고 학교 교사가 된다는 꿈은 어떻게 되는 거야. 곧 귀국이고…… 귀국하면 바로 제대하는데 말이야……. 얼마나 순탄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데…….

    콤플렉스 때문에 여태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나는 4수 중에 입대 통지를 받았다고. 제대하면 말이야, 대학을 포기하든가 아니면 다시 4수를 해야 한다고요.”

    “그랬던가?”

    “다시 말하지만 형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비이성적인 감정에 휘둘리고 있는 거라니까. 이건 운명이 걸린 중대한 문제야. 실수하고 있다고.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될 거야.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정신 차리라니까. 정신을…….

    이건 생사가 걸린 문제……. 빈롱은 고사하고……. 천릿길이라며. 가는 도중 붙잡혀서 총살을 당할 거라고. 포로가 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거나. 자살 행위라니까. 월남 사람들 베트콩과 한통속인 거 알고 있잖아. 그들을 끝까지 속여넘길 수는 없어. 한국군을 보기만 해도 몸서리치니까 즉시 신고할걸.”

    나는 평소에 쓰지 않았던 거칠고 상스러운 욕설들이 마구 튀어나오려는 순간 심호흡을 하였다. 나도 모르게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솟고 아무리 짜증 나는 순간이라고 해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형한테 욕설까지 퍼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던 것이다.

    “그만 해둬.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상관없어. 이 단계에서 내 결심은 절대로 바뀔 수가 없어. 부대는 잠시 난리가 날 거야.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그건 잠깐뿐일 거야. 작전 중 행방불명이나 사고사로 처리하겠지. 전쟁터에서 병사가 탈영하면 부대장의 경력에 엄청 흠이 되는 거지. 진급에도 악영향을 끼칠 거고.

    그러니까 헌병대나 보안대에 신고는 못 할 거야. 쉬쉬할 거라구. 수배령도 내리지 않을 거구. 그렇게 하면 탄로 나니까. 월남에서 허위 보고는 식은 죽 떠먹기지.”

    “형, 알고 있기나 해. 내가 연장 근무를 신청했어. 인사계는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했어. 조용히 기다리라고 하더구먼. 공정가격이 있는 모양이야. 난 상관없어.

    형도 그렇게…… 연장이나 해보라구. 내가 연대 인사계를 소개해줄 테니까. 그러고 나서 다시 생각해봐…….”

    “그렇겠지. 여기는 썩을 대로 썩었으니까…….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겠니. 너나 나나 빨리 귀국하고 싶지 않은 거야.

    네 마음은 내가 잘 알지. 그렇게 하라구. 이건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순전히……. 내가 이대로 귀국할 수는 없다는 걸 넌 이해해야 한다. 어쩔 수가 없다니까.”

    나는 갑자기 당황하였다. 뭔가 일이 꼬여서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상황이 분명해지고 있었으므로 그 심각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헤아릴 수 없는 짧은 침묵이 그 순간을 짓눌렀다. 갑자기 뱃속이 울렁거린다. 연민과 분노와 당혹감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터질 듯했다. 나는 냉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만 나도 모르는 새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절망적으로 말했다.

    “형은 그럴 수 없어! 형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야!”

    그의 얼굴 표정에 비장한 것이 서려 있다. 어떤 헤아릴 길 없는 깊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를 뚫어져라 쏘아보았다. 나는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잘 들어라. 어느 날 내가 감쪽같이 사라지면 그렇게 알라구. 넌, 날 말릴 수 없어. 너마저 그러면 M16으로 내 머리통을 갈겨 버릴 거니까. 악랄한 내 주인에게 총을 쏴버리는 거지.

    나는 전투만 시작되면 얼어붙어 버려서 총을 한 방도 쏠 수 없었지. 방아쇠를 당기는 팔에 마비 증세가 오는 거야. 그때마다 내 얼굴은 땀과 흙으로 뒤범벅이 되었고, 오줌을 지렸고, 몽땅 토해버렸어. 그러나 날 겨냥하고 쏠 수는 있어. 그건 가능한 일이지.

    우린 오늘 밤이 마지막이야. 우리 서로 쿨하자고. 울지 마라. 넌 아직도 눈물이 남아 있니. 넌 알고 있을 거야. 내가 고국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정말 싫지. 쓰라린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곳이지. 입대하기 전 일은 지겹고, 역겹지. 그건 악몽이었어.

    전쟁터에서 그 분노를 폭발해버리면 치유가 되는 줄로 알았지만……. 그때 일들은 기억상실증에 걸렸어야 하는데…….”

    “이제는 잊어버릴 때가 된 것 아니야. 휘파람 소리에 날려서……. 그게 아무리 과장되게 말해도 결국 풋사랑인 거지. 형은 날 쪼다 취급하고 자신을 도사처럼 굴면서 왜 그래?”

    “남의 일이라고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겠지.”

    “형이 가버리면 그 멋진 휘파람 소리라든가…… 이제는 너무 들어서 질리기는 하지만 그 시들 말이야, 어떻게 되는 거야? 어디서 들을 수 있겠어. 형은 모르겠지만 그게 나에게는 커다란 위안이었거든.”

    그가 창백하게 굳었던 얼굴이 풀어지면서 느닷없이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천천히 음미하듯이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도망가는 게 아닌 거야. 내 길을 찾아가는 거지. 자기 자리를……. 여기에 처박혀 넉맘 냄새를 실컷 맡으며 살고 싶은 거야. 이 난리 통에 가능할지 모르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이별의 시를 들려주어야 하겠구나. 그동안 네가 유일한 청중이었어. 나는 단 한 사람만 필요했거든.

    그 시인은 평생 동안 콤플렉스를 안고서 불우한 삶을 살았는데 젊은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했지.

    내 언젠가 히스나무 이 가녀린 가지를 꺾어 두었지

    가을도 가버렸으나 잊지는 말아라

    우리는 이 땅에서 다시 보지 못할 거야

    시간의 이 향기 히스나무의 이 가녀린 가지

    그래 내 너를 기다리니 잊지는 말아라”

    그가 천천히 속삭인다. 그 억양이 가볍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그녀를 감싸 안아서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대학 불문과를 3년간 다녔고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들은 거의 전부 완벽하게 암송할 수 있는 남자. 젊은 날의 통과의례에 불과한 첫사랑의 상처 때문에 죽고 싶도록 고통을 느꼈고 그래서 일찍 군에 입대했고 또다시 월남전에 자원했던 남자. 가난한 시인이 되고 시골 벽지에서 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던 남자. 문학적 재능이 있는지는 몰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너무나 융통성이 없었던 남자. 아무리 자신이 타락한 인간처럼 위악적으로 과장되게 이야기해도 그걸 믿을 필요는 없는 남자. 그러나 인간을 향해 총을 쏠 수는 없었으나 자신의 머리에는 감히 총을 쏠 수 있다고 자신했던 휴머니스트.

    메콩 강의 강폭이 한없이 넓어지고 강물이 유장하게 흐르는 메콩 강 삼각주의 빈롱에서 천리길을 거슬러 올라가, 거대한 미군 군수기지가 있던 캄란 만 입구의 집창촌인 수진 마을까지 흘러들어온 영혼이 맑은 여자.

    그는 여자의 갈색 피부를 쓰다듬고 그녀의 불타는 듯한 눈과 얼굴 위로 자신의 얼굴을 덮는다. 그는 그녀의 눈 깊은 곳에서 빛을, 구원의 빛을, 어떤 계시를 발견한다. 그녀를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가능하다고, 그는 그렇게 다짐한다. 그는 이제 지껄이지 않는다. 희망과 욕망, 탐닉이 묘하게 섞여 있는 격정적인 몸부림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그는 그 순간 아무것도 생각해서는 안 되리라. 여기 밀림에서는 의식은 가물가물해지며 몽롱할 뿐이다. 꿈도 꿀 수 없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고통도 벌써 희미해져 버렸다. 그때는 죽음을 갈망했었는데. 모든 추억이 사라져버렸다. (민들레가 피어있는 논둑길. 따뜻한 봄날의 햇빛. 흰 구름. 냇가. 소녀. 사랑. 입술. 이별. 불면하는 밤들. 침묵. 망망대해. 무인도. 미완성인 한 묶음의 원고들.)

    오직 군화와 철모, M16 소총, 수류탄.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생각한다. 나는 소진되어 버렸는가? 도피자인가? 이미 사라져 버렸는가?

    밤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 곡사포의 포탄 터지는 소리가 밤의 유령이 토해내는 괴성처럼 아득히 들려왔다.

    그때의 생생한 장면, 대화 내용, 내 가슴 속에 각인된 김 병장의 비장한 얼굴을, 그의 의지를, 욕망을, 내가 느껴야 했던 그 무력감을 어찌 오랫동안 잊을 수 있었겠는가. 날카로운 가시 면류관을 쓴 채 피를 뚝뚝 흘리는 김 병장의 모습이 그 후 한 세대 동안이나 자주 꿈속에 나타났다. 그런 게 아니라 나타났다고 생각하였다. 김 병장을, 그를 끝내 붙잡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나의 강박관념이었으니까. 나는 한때 그 강박관념을 몰아내기 위해, 망각을 위해, 알코올 의존자가 되어 살아야 했다. 매일 알코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김 병장은 내가 술을 제대로 못 마신다고 엄중하게 단죄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술이 얼큰하게 취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술고래인 김재수 하사가 먼저 생각났다. 나는 김 하사의 알코올 의존증 같은 술 마시는 습관에 혐오감을 느꼈지만 어느 새 따라하기 시작했다.

    만취해서 인사불성이 되고 머릿속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면. 필름이 완전히 끊겨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길에서 왝왝 토하는 일 외에는 항상 말짱했다. 도대체 취해지지가 않았다. 술은 나를 유치한 감상에 젖게 만들어서 결국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술이라면 진저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계속 마셨지만 말이다.

    빈롱. 수목이 빽빽하게 우거진 밀림의 가장자리 얕은 언덕에 있는 랑린의 집 (마을에서도 조금 떨어져서 그 오두막은 홀로 서 있다.)에서 멀리 메콩 강 삼각주와 유장하게 흐르는 누런 강물이 내려다보였다. 밤이 깊어 가면서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내가 말했다.

    “김 병장은 어디에 갔지? 밖에? 들판에? 난 김 병장을 만나러 왔지. 아주 멀리서 말이야. 죽고 싶도록 보고 싶었거든.”

    그녀가 말했다. (그 목소리가 감정이 배어 있지 않은 기계음처럼 들렸다.)

    “그는 죽었어요. 틀림없이 죽었단 말이에요. 모르겠어요? 여기에 오지 않았어요. 아마, 민병대 또는 베트콩한테……. 아니에요, 아니. 그는 안 죽었어요. 내 가슴 속에서 살아 있지요.”

    내가 말했다. “그럴 리가.” 그녀가 깔깔거리며 말했다. “그만 잊으세요. 잊어……. 나는 지금 외롭고 힘들어요. 죽을 맛이에요.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 주세요. 제발.”

    그 순간 깨달았다. 그녀와 나, 살아있는 사람들은 이제 그에 대해 아무런 미련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엄연히 살아있고 그녀와 나는 각자의 삶이 있다. 그리고 문득 이미 오래전부터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그를 잊기 위해서, 그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심전심으로 암암리에 공모자가 되었다. 그녀는 이제 울지 않는다. 침묵이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그녀의 까만 머리, 까만 눈, 잘록한 허리가 은근히 유혹적이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 얼굴을 만지게 해주세요. 나를 꼭 껴안아 주세요.” 그리고 그 짧은 순간 나는 갑자기 그녀를 억세게 끌어안고 나의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나의 혀를, 빨간 혀를 그녀의 입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고 키스를 하였다. 나는 짚으로 된 푹신푹신한 침대에 그녀를 눕혔다.

    그녀가 노래를 했다.

    메콩 강은 알고 있다네 강물은 깊어라 슬픔도 깊어라 강은 시시로 변하네 아침에 푸르던 그것이 저녁이면 핏빛으로 물드네

    강 쪽에서 거대한 잿빛 구름이 몰려오고 잠깐 동안 천둥 번개를 동반한 지독한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나는 새벽의 희붐한 여명이 창문으로 밀려들 때쯤 밤늦게까지 뒤척이다 겨우 눈을 붙인 잠에서 깨어났다. 계속 뒤숭숭한 꿈만 꿨다. 너무 오랫동안 김 병장을 잊고 지냈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고 랑린은 살아있고 잘 있는지 그녀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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