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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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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복

    다라트 지역의 깊은 정글.

    숲에서 회색 안개가 소리없이 피어 올라왔다. 태양의 열기는 수그러들었다.

    우리 소대는 멀리 우회해서 하늘에서 내려온 고엽제 때문에 누렇게 말라버린 황폐한 개활지를 지나왔다. 개활지에서는 모든 게 다 보였다. 침묵뿐인 풍경들이. 건너편 수면이 청록색 얼룩들로 덮인 호수가 보이고,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강의 지류가 보이고, 우리가 건너야 할 늪지대, 울창한 숲이 우거진 산등성이, 아주 먼 곳에 있는 다라트 지역의 산봉우리들까지.

    그러고 나서 방향을 서북쪽으로 바꿔서 개활지와 숲 사이에서 경계선 역할을 하는 정강이까지 빠지는 음침한 늪지대 수렁을 헤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겨우겨우 전진했다.

    물은 따뜻했다. 나는 약간 깊은 구덩이에 빠질 뻔했지만 곧 균형을 잡았다. 그 순간 깊은 수렁에 발을 디뎌 꼼짝할 수 없이 빠져버린다면, 그래서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올 수 없고 물이 입과 코를 막아버린다면, 그걸로 끝장이 날 거라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우리는 오후 늦게 작은 마을이 연이어 늘어선 지역을 이미 통과했다. 기관총과 M134 미니건으로 무장한 미군 헬리콥터들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마을 위로 날아서 사라졌다.

    며칠 전에 작전지역에 미군 폭격기의 융단 폭격이 있었지만 고성능 폭탄을 아무리 엄청나게 쏟아부어도 그건 말짱 헛일이다. 그놈들은 그때 깊은 갱도에 편안하게 쉬고 있었을 테니까. 덥고 습한 울창한 숲의 터줏대감인 반달가슴곰과 노란뺨 긴팔원숭이들만 혼비백산하여 울부짖다 멸종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항상 지나가기 편한 지름길인 오솔길을 우회하였다. 베트콩은 틀림없이 부패한 월남군으로부터 입수한 진짜 미제 지뢰 또는 불발탄 곡사포탄으로 직접 조립한 지뢰를 설치한다.

    우리는 총격전에서는 언제든지 반격할 기회가 있었다. 더욱이 우리의 화기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니까. 그러므로 매복 공격을 받았을 때 첫 번째 집중사격에 당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반격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러나 지뢰에 걸리면 쾅 터지는 폭발과 함께 끝난다.

    파월 장병들은 원칙적으로 복무기간이 1년이었다. 그러나 전사자는 대부분 월남에 온 지 석 달만에 전투 중 사망한다. 풋내기 시절에. 나는 이 기간을 무사히 넘겨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전면적인 충돌이 일어나서 몇백 명씩 죽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그때그때 한 번에 한 명씩 죽어나갔다. 우리는 죽으면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베트콩의 예상 침투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목표 지점에 모래와 진흙으로 급조한 임시 참호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M16 소총의 조종간을 연발에 맞춰놓았다. 등줄기에서는 벌써 식은땀이 빗줄기처럼 줄줄 흐른다.

    우리는 잔뜩 긴장한 채로 하염없이 기다린다. 밤새 긴 기다림의 시간. 우리는 지금 매복한 사냥꾼이다. 제물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는 순간을 기다린다.

    병장이 수통에 챙겨온 술을 돌려가며 나눠 마셨다. 한 모금의 독한 술이 찌르르하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병장이 속삭이는 어조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높게 쏘지 말란 말이야. 초짜들은 하늘을 향해 쏜다니까. 마구 쏘지 말고. 소총 가늠자를 많이 내려야 된다고. 몸도 낮추고.

    소대장은 어린애야. 원래 촌놈이었어. 그가 시키는 대로 하면 안 돼. 쉿! 오늘밤은 어쩐지 불길해. 진지 위치가 영 아니거든. 위쪽에서 공격하기 좋게 너무 낮은 곳에 있다고. 그냥 무사히 지나갈 수도 있겠지.

    교회 다녀? 하느님께 미리 기도하라고.”

    그때 소위는 저 멀리서 권총 혁대 위에 양손을 걸친 채 무전병과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어젯밤 나는 소대장의 지시로 미제 M1911A1 권총을 분해해서 기름칠한 헝겊으로 정성스레 닦은 다음 다시 조립했고 탄창에 8발의 탄환을 장전했었다.

    잠시 몬순의 지독한 비가 한동안 쏟아지며 숲 속에서 소란이 일어났지만 비가 그치자 곧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새들과 벌들, 나비들은 날갯짓을 멈췄고, 붉은 개미, 곤충들도 몸짓을 멈췄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소리만 들린다. 하늘에서 별들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그러나 황량한 그날 밤은 섬뜩하리만치 적막했다.

    숨막히는 정적이 흐른다. 나는 갑자기 허벅지가 뜨겁고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오줌을 지렸다.

    나는 그때 짧은 턱수염을 기르고 눈이 충혈된 그가 검은 파자마를 입고 이마에는 검은 띠를 동여맨 채 나를 정조준하며 달려드는 환상에 시달렸다. 제발 오지 마. 왜, 나를 향해 달려드는 거야? 나를 죽이려고?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나를. 나는 무사히 돌아가야만 해.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거든. 그러니 오늘 밤은 그냥 넘어가자고. 나는 무사히 귀국할 거야.

    별들이 이울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시름 놓았다. 모두들 긴장이 풀어지면서 몸을 비틀고 하품을 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새벽 네 시였고 공기는 시원해졌다.

    어느 순간 팽팽한 긴장감이 공기 중에 감돌고 우리의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등골이 서늘해지며 몸속의 모든 신경이 곤두선다. 손과 발은 땅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무슨 불가사의한 전조가 있었던 것일까. 곧바로 머리 위로 베트콩의 박격포탄이 터지고 AK47 소총의 근접 사격이 쏟아졌고, 방망이 수류탄이 터졌다. 우리는 함정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기습을 당했다.

    뒤늦게 예광탄이 줄지어 날아오고 포탄의 폭음 소리가 귀청을 찢었다. 젊은 소위가 외쳤다. 사격하라! 사격! 집중 사격!

    나는 심장이 마구 뛰었고 엉겁결에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주저하지 않고 쏘고, 쏘고, 또 쏘고. 탄창에 있던 총알이 다 소모되도록 쏘았다. 잠시 사격을 멈췄을 때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준 사격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숲을 향해 총을 갈긴 것이다.

    뜨거운 피가 튀었다. 비명. 아우성. 씨발, 씹새끼들. 시체들.

    죽음의 냄새가 가득히 퍼졌다.

    그때, 무전기가 울렸다. 부산! 부산! 빨리 나와라! 여기는 대구! 작전 종료! 종료! 철수하라. 반복한다. 철수……! 반복……!

    베트콩은 재빨리 검은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숲은 다시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망연자실하였다. 정지된 화면 같고 시간이 얼어붙어 버린 것 같기도 하였다.

    아침이 오고 날이 밝았다.

    소대원 중에서 많은 병사들이 부상당하고 죽었다.

    신참 박 일병은 오른쪽 으깨진 정강이가 무릎에 덜렁거리며 간신히 붙어 있었고 검붉은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철모 하나가 버려진 조개껍질처럼 바닥에 떨어져 있다. 그 곁에 귀국을 보름 남겨둔 소위가 한 손으로 피와 내장이 쏟아져 내리는 자기 배를 틀어쥐고 있었다. 위생병이 지혈을 시키기 위해 압박붕대를 감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지금 손쓸 틈도 없이 죽어가고 있다. 누구인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수통을 열어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물을 소대장의 입술에 부어준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울었다. 울고, 울었다.

    병장은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넋이 나간 채 우두커니 서 있다.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제발, 죽지만 마라…… 죽지 말라고.

    우리는 그날 부대로 귀환한 후 혼수상태에 빠진 것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 세상에는 직접 몸으로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전쟁이 바로 그렇다. 전쟁이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도, 예측도 할 수 없는 처절한 몸부림이고 죽음의 고통인 것이다.

    낯선 장면 혹은 낯선 풍경.

    이건 전쟁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러서 새삼 돌이켜본다고 하더라도 그걸 어떻게 경험이니 체험이니 하는 상투어로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전우의 죽음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죽은 자들은 누워 있고 나는 그들 가운데 서 있었다. 나는 살아남았다. 솔직히 말한다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 때문에 심한 죄의식을 느꼈다.

    나는 그 전쟁의 참여자였나 아니면 목격자에 불과했을까. 증언자로서 자격이 있을까. 그들의 육성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사람이란 날이 갈수록 더욱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늙고 죽는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듯 잊어버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는 그때를 여전히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으니 그 후 오랫동안 정서적 과잉 긴장감, 불안과 두려움, 무력감, 과도한 민감성, 공포, 편집 성향 같은 증세 때문에 격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너무 과민해서 쉽게 잠들 수 없었고 심한 불면증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

    (전쟁의 참상을 겪고 나서 그 후유증으로 정신적으로 망가지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그런 증상은 귀국한 후 상당한 시일이 지나서 나타났다. 하지만 내가 심각한 정신질환의 일종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전형적인 증상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주 오래된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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