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정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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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령지회와 사지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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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여서 일찍부터 여럿이 모여 살았다. 공동체 사회에서는 룰이 만들어지고 룰의 범위에서 서로의 안전과 행복 그리고 평화를 느낄 수 있지만, 세상이 점점 급변하다보니 우리 주변에는 이성이 마비되어 룰이 파괴되는 현상을 자주 보게 된다. 아직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른바 ‘드루킹 사건’은 직전 정부의 세상을 뒤흔든 국정권 댓글 조작사건의 교훈이 채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빚어진 일이고, 또 모 항공사 오너 가족의 ‘물 컵 투척’도 불과 3년 반 전 언니가 저지른 ‘땅콩 회항’사건의 여파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반복된 갑질 사건들로서 우리사회가 총체적으로 기억상실증에 빠진 것인지, ‘내로남불’이라는 양심불량이 만연된 것인지 모르겠다.

    여기에서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진심으로 모시려 했던 사마천의 사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마천은 사기 자객열전(刺客列傳)에서 지백의 부하 예양의 입을 빌어 ‘선비는 자기를 알아준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士知己死)’고 기록하고,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고사에서 장왕의 부하사랑을 설명했다. 먼저, 진의 6경 중 한씨(韓氏)·위씨(魏氏)·조씨(趙氏)가 결탁하여 제일의 실력자 지백(智伯)을 죽인 후부터 춘추시대가 지나고 전국시대가 시작되는데, 조의 양자(襄子)는 지백을 얼마나 증오하였는지 그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서 자기의 요강으로 사용했다고도 한다. 잔인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지백은 생전에 범씨와 중행씨 밑에서 일했던 예양(豫讓)을 크게 우대했다. 지백이 죽자 예양은 복수를 다짐하고 수차 양자에게 복수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붙잡혔다. 그때마다 양자는 예양을 풀어주었는데, 마침내 세 번째의 복수에서도 실패하여 붙잡히게 되자 양자는 “너는 그 전에는 범씨와 중행씨 밑에서도 일했는데, 지백은 네가 섬기던 그들을 죽였는데도 너는 지백에게 충성하려고 하는 까닭은 무엇이냐?”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양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두 사람은 나를 그저 사람으로만 대해주었지만, 지백은 나를 진정한 사람으로 대해 주었기 때문이요.”라고 대답한다. 양자는 “나도 너를 용서해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하니, 예양은 “그대는 나를 죽이지 않고 몇 차례 용서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어진 것이 천하에 알려져 있으니, 그대의 의복이라도 내게 주어서 목을 베게 해준다면 복수의 마음이 청산될 것 같소.“하고 말했다. 양자가 부하에게 자기 옷을 가져오도록 한 뒤 흔쾌히 예양에게 주자, 예양은 칼을 뽑아서 양자의 옷을 세 번 가른 뒤 그 칼로 배를 갈라 자결했다. 예양의 의리 못지않은 양자의 비범함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얼굴을 가꾼다(혹은 정조를 바친다고도 함, 女爲悅己者容 士爲知己者死)”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는데, 사지기사가 오로지 복수를 하려는 목적에 국한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아심을 갖게 하지만,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고사에서도 다시 언급되는 것을 보면 딱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절영지회란 즉, 갓끈(纓)을 끊고(絶) 노는 잔치(會)라는 초(楚)의 장왕에 얽힌 고사로서 장왕이 싸움에서 승리한 후 장수들에게 여흥을 베풀었다. 정자 위에서 불을 밝히고 한창 연회가 진행되는 도중에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불이 모두 꺼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생겼다. 그런데, 그 틈을 타서 누군가가 왕의 옆에서 시중들고 있는 시녀의 입술을 범하자 그 시녀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왕이시여! 어서 불을 밝히소서. 어느 놈이 제 입술을 덮쳐서 제가 그 놈의 갓끈을 잡아떼어서 갖고 있으니, 불을 밝혀서 갓끈이 떨어진 놈을 찾으면 범인이 밝혀질 것입니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장왕은 “여봐라, 아직 불을 켜지 마라. 여기 모인 모든 장수들은 모두 갓끈을 떼어버리고 나서 불을 켠 뒤 술을 계속 마시자”고 명령했다. 장왕 곁에서 자신이 정절을 강조하려던 시녀의 생각은 고스란히 빗나가고 만 것이다. 상황이 바뀌어 다시 몇 해가 흘러 승승장구하던 초가 진(秦)에 쫓겨서 장왕의 목숨이 경각에 달릴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때 어디선가 갑자기 장수 한 사람이 나타나서 “왕이시여! 이곳은 제가 막겠사오니, 어서 제 옷으로 갈아입고 달아나소서!”하고 말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을 위기가 되면 살려고 달아나는 것이 보통인 상황이어서 장왕이 깜짝 놀라 “너는 누구인데, 네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를 구하려 하느냐?”하고 물으니, 그 장수 왈 “저는 장웅(蔣雄)입니다. 저는 몇 년 전 왕께서 연회를 베풀었을 때 왕이 시녀에게 입을 맞추다가 갓끈을 떼이고 그 날 죽을 목숨이었지만, 왕께서 모두 갓끈을 떼고 불을 켜라고 명령하셔서 살아난 사람입니다. 그때 죽을 목숨을 지금까지 부지한 것뿐이오니 어서 피하소서”라 하였다.

    이때에도 사위지기자사라는 고사가 등장하며, 윗사람이 절영지회의 아량을 베풀면 아랫사람은 사지기사로 보답한다는 것이니,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될 것인가? 동백은 다른 꽃처럼 한닢 두 닢 떨어지지 않고 꽃이 시들기 전에 송이채 뚝 떨어져서 여인이 목숨은 바칠지언정 정조를 버리지 않겠다고 하는 ‘여인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한다. 부정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무사의 목을 단칼에 잘라 죽이는 것을 동백꽃잎이 뚝 떨어지는 것에 빗대어 춘수락(椿首落)이라고 하고, 부하는 주군의 비리를 폭로하기보다 목숨을 끊는 것이 보편화되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는 인간사회의 말세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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