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정범
  • 변호사
  • 법무법인 민우
  • 민사법, 상사법, 행정법, 조세법
연락처 : 02-595-6161
이메일 : jblawyer@naver.com
홈페이지 : http://blog.naver.com/jblawyer
주소 : 서울 서초구 서초동 1716-7 승보빌딩 3층
소개 :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대/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입니다. 최상의 방법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변호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포스트는 0명이 in+했습니다.

    목록이 없습니다.

    0

    정치공학적 영장발부와 구속적부심

     법원이 뜨겁다. 구속영장의 발부 여부와 구속적부심의 인용 결정을 두고 검찰과 대립하는 문제만이 아니다. 최근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구속영장의 심사 결과와 구속적부심을 지켜보는 정치권과 시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더욱이 신광렬 부장판사의 적부심 인용사례는 그동안의 관례에 비춰보면 의외의 결과여서 더욱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에 충분하다. 급기야 김명수 대법원장은 고(故) 이일규 전 대법원장 10주기 추념식에서 “요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 결과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는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의 이념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매우 걱정되는 행태”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대법원장 입장에서는 당연한 발언이겠지만 일반 국민들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들을 필요도 있다. 인천지방법원에 근무하는 김동진 부장판사는 “나는 신임 대법원장님이 해당 이슈에 대하여 침묵했어야 한다고 본다”면서 “내가 법관으로서의 생활이 19년 째인데, 구속적부심에서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SNS에 글을 올린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영장실질심사와 구속적부심이 정치공학적 차원에서 결정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무엇이 문제인지 한번 살펴보자.

    법원과 검찰의 갈등, 일부 국민들의 법원에 대한 비난을 넘어서 법원 내부에서 논쟁이 불붙는 양상이다. 검찰이 불만을 갖는 이유는 분명하다. 거의 유사한 사례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경우에는 영장이 발부되고, 다른 경우에는 영장이 기각되어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특정 사건을 두고 법원과 검찰이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그러한 차이점을 인정해야 한다. 유사한 사건인지의 여부도 명확하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의 영장발부 여부에 따라 검찰이 일희일비하거나, 비난을 거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법원의 영장발부는 판사의 일방적인 재량에 맡겨져서도 안된다. 분명하게 객관적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그러한 기준은 검찰과 일반 국민도 공유해야 한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야 심판한다(헌법 제103조)는 법관의 독립과 3권분립의 원칙에 따른 사법부의 독립은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법관이 재판을 하고 뒤로 숨는 피난처가 돼서도 안된다. 법관의 독립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소수자의 보호와 형평성의 원칙이다.

    판사의 판결은 객관성과 형평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법관의 양심에 따른 판결이라고 할 때 그 양심은 주관적인 양심이 아니다. 객관적인 법조적 양심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주관적인 세계관이나 정치관, 그리고 종교관에 따라서 판결해서는 안된다. 객관성이라는 것은 건전한 상식을 갖는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또한 같은 사안이라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 권력자라는 이유로, 경제적인 능력자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이거나 자신과 친분관계있다는 이유 등으로 달리 평가해서도 안된다. 이런 객관성이나 형평성에 위반하는 판결이 이루어진 경우 언제든지 검증받아야 한다. 그 검증은 항소심을 통해서 검증받을 수도 있고 언론이나 일반 여론에 따라서도 평가받을 수 있다. 객관성이나 형평성에 반하는 판결을 하고서도 법관의 독립이나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이유로 침묵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판결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일관성이라는 것은 판사 개인의 일관성은 물론 같은 사안에 대하여 판사들이 평균적으로 생각하고 내려온 판결과 크게 달라서는 안된다. 판사 개인마다 조금씩 다른  성향이 있다.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에 법을 해석하는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 기준은 모든 사건에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 사건마다 다른 기준에 따라서 판결을 한다면 그 혼란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재판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고 예측가능성이 전혀 없게 되는 것이다. 법적인 불안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아울러서 법원에는 판결의 경향이라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법관들이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통례를 말한다. 판사들이 법을 해석하는 일반적인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일정한 방향이 만들어진다. 영장실질심사에 따라 영장을 발부하거나 구속적부심을 통해서 구속여부를 결정하는 객관적인 성향을 말한다.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사정의 변경이 없는 한 구속적부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변호사들은 구속적부심을 요구하는 피의자나 그 가족들을 설득해서 구속적부심을 신청하지 않도록 설득했었다. 법원의 일반적인 성향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국정농단 사건을 두고 법원의 기준이 흔들리는 듯하다. 우선적으로 정치권력자나 재벌기업가들에게는 반론할 기회를 더 충분히 준다. 일반 국민들의 경우에는 시간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들에게는 그러한 제한도 없다. 더욱이 보다 심사숙고해서 영장발부 여부를 결정한다. 거기에다 발부 기준도 비슷한 사례인 것 같은데 영장발부 여부가 갈린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영장발부를 기각하는 사례가 자주 있다 보니 여권 측 인사인 전병헌 전 수석에게도 영장을 기각해서 오히려 형평성을 맞추려 하는 느낌이다. 국민들이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다. 최근 구속적부심을 두고는 그동안의 기준에 전혀 맞지 않는 결론을 내놓는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피해자와의 합의 등 사정변경이 없는 경우 적부심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그런데 김관진 전 장관에 대해서는 쉽게 적부심을 인용하고, 그에 맞춰 여야의 성향에 따라서 일정 비율로 적부심 결과를 내놓는다. 가히 정치공학적 결론이라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법원과 판사는 신뢰를 먹고산다. 그 신뢰성은 법으로 담보되지 않으며 그렇게 담보할 수도 없다. 법원과 법관의 노력으로 비로소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판결의 객관성과 일관성, 그리고 형평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어떤 경우에도 신뢰성은 확보될 수 없다. 판결은 당연히 국민들의 평가를 받아야 하고 여론에 의해서 비판받기도 해야 한다. 그러면서 판사가 객관적인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가다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법부의 독립이나 법관의 독립은 피난처가 아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서 뒤에 숨을 일이 아니다. 국민적 의혹이나 비판이 있을 경우에는 자신이 그러한 판결을 내린 이유를 객관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이유로 침묵으로 일관해서도 안된다. 물론 판결 하나하나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객관적이고 일관되며 형평성에 반하지 않다는 점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법관의 독립을 헌법에서 규정하는 것은 크나큰 권리임를 부여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판결하라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최근 영장발부나 구속적부심 판결에 대해 국민적 비판이 가해지는 것과 관련해서 사법부의 독립을 이유로 비난을 잠재우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법부의 독립은 판사의 법조적 양심에 따른 객관적 판결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이 무조건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법원 내부에서 터져 나온 김동진 부장판사의 발언도 경청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단지 어느 튀는 판사가 경망스럽게 대법원장의 발언을 폄하하고 있다고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상당수의 판사들이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법원 내부에서의 비판과 논쟁이 사법부의 독립과 건강성 회복을 위해서 보다 바람직하고, 그러한 논쟁이 끊임 없이 이어져야 한다. 법원 수뇌부를 비판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일선에 있는 판사들의 목소리를 억지로 막으려 드는 것이야말로 사법부와 국민의 괴리가 커지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사법부의 신뢰를  상실하는 것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김 대법원장은 고(故) 이일규 전 대법원장 10주기 추념식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외쳤지만, 오히려 이일규 전 대법원장은 군사독재가 이어지던  시절에도 기본권 보장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정신을 발현하기 위해서 다수 견해를 꾸짖으면서 반대의 목소리를 냈던 판사의 전형이었다. 여기 그 대목을 소개한다(대법원 1985. 5. 28. 선고 81도1045 전원합의체 판결). 구 계엄법 제23조 제2항이 비상계엄후에도 군법회의재판권을 일정기간 연기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 헌법에 위반되느냐는 여부가 문제된 사안이다. 이에 대하여 이일규 대법관의 소수의견은 다음과 같다.

    “우리 헌법은 국민의 자유, 재산 등에 관한 갖가지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고 그것을 제한함에 있어서도 제35조에서 기준을 정하면서까지 법률로서 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 그런데 기본권의 하나인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에 있어서는 제26조 제1항에서 그 원칙을 정하고 제2항에서 예외적으로 그에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법회의재판을 받지 아니한다고 보장하고 있다. 이 점을 형식문언으로 보면 국민은 원칙적으로 법률에 정한 일반법원의 재판을 받는 것이나 예외적으로 군법회의의 재판을 받게끔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헌법의 체제로 보아 다른 기본권에 대하여는 그 제한을 법률에 위임 또는 유보하는데에 비하여 이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하여는 헌법자체에서 제한하는 경우를 한정하고 있는 점을 볼 때 재판을 받을 권리는 법률로서도 제한할 수 없고 따라서 헌법 스스로가 설정하고 있는 경우 외에는 법률로서도 군법회의 재판권을 확대할 수 없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경우에 군법회의재판을 받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비상계엄이 해제된 이상 원칙에 돌아가서 군법회의의 재판을 받지 아니하게 됨은 말할나위도 없다고 할 것이니 구 계엄법 제23조 제2항이 비상계엄이 해제되어도 1개월 이내에 한하여 군법회의 재판권을 연장할 수 있다는 규정은 위 헌법규정에 위반된다 함은 명명백백하다. 다수설은 위 계엄법규정을 합헌이라고 여러 이유를 들고 있으나 그 요점은 계엄사무의 처리 다시말하여 군법회의 계속사건의 마무리를 위하여 비상계엄이 해제된 후에도 기왕에 제한된 재판받을 권리를 1월 정도 연장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될리 없다는 데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어떤 의미에선 잔무처리를 위하여 그런 경과적 규정이 편리하겠지마는 여기에는 헌법이 특별히 보장하려는 국민의 기본권의 무게를 군법회의 계속사건 처리의 편의와 같은 선에서 저울질하려는 안이한 생각이 그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나로서는 다수설이 헌법 제9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 헌법정신에 눈을 뜨지 못하여 헌법적 감각이 무딘 점을 통탄할 따름이다.”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