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정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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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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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천년 동안 우리조상들은 뜨거운 태양보다 은은한 빛을 발산하면서 점점 일그러졌다가 다시 환하게 변하는 달을 바라보며 시간과 운명 그리고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그래서 정월 초하루인 설을 비롯하여 정월대보름 그리고 섣달의 납향(臘享)까지 삶의 즐거움인 명절도 음력을 기준으로 했는데, 조선시대에 이르러 설날, 한식, 단오와 추석이 4대 명절로 자리 잡았다가 지금은 설날과 추석만이 민족 최대의 명절로 꼽히고 있다. 우리는 한말 을미사변을 거친 1896년부터 태양력을 쓰기 시작했으니,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음력 세계에서 살아온 것이다. 음력 팔월보름날이란 축제를 기록한 최초의 문헌은 삼국사기 신라 유리왕 9년조의 기록인데, 우리의 풍습은 일찍부터 중국에 전해져서 수서(隋書)동이전 신라조나 구당서(舊唐書) 동이전 신라조에도 기록되어 있다. 추석은 한가위, 가배(嘉俳), 가위, 가윗날 또는 중추절이라고도 하며, 한가위의 ‘한’은 ‘크다’는 뜻이고, 가위는 가을의 가운데라는 뜻이니, 결국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인 셈이다. 달이 가장 밝고 큰 보름 날 중 농사일을 시작할 때인 ‘정월 대보름’과 무더운 삼복더위에 땀을 흘리며 지은 햇곡식이 영글고 시원한 가을바람과 함께 큼지막한 보름달이 떠오르는 팔월에 자손들이 한데 모여서 햇곡식을 올리며 조상에 감사하고, 천지신명에게 감사하는 ‘팔월대보름’을 가장 큰 보름으로 쳤다.

    그러나 해방 후 쓰나미처럼 밀려온 서양문물에 밀려서 해가 갈수록 전통명절은 퇴색해지고 우리 것은 천대시 되었다. 또 산업화되어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명절이 되어도 친지는커녕 한 가족조차 오붓하게 모이지 못하기 일쑤였다. 추석이 되면 고개를 넘고 꼬불거리는 농로 길을 걸어서 고향에 들어서면 정들었던 초가지붕 뒤로 솟은 굴뚝 사이로 퍼져 오르는 연기도 반갑고, 낯선 이방인을 보고 먼 산을 바라보며 짖어대던 이웃집 삽살개 소리도 반가웠지만, 이제 고향마을은 시멘트로 포장된 골목과 구색 맞지 않는 슬래브 집들로 뒤범벅 되고 말았다. 또, 풍성하게 익어가는 들판이며, 토실토실한 알밤, 붉게 익은 홍시도 이젠 백화점과 슈퍼마켓에서 사시사철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올린 제삿상을 받으러 오는 조상님들조차 길을 잃고 집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우스개소리까지 만들어졌다.

    예전에는 설이나 추석은 고작 하루만 휴일이어서 명절 전날 고향으로 가려는 귀성객들로 서울역과 버스터미널은 밤새 전쟁터를 방불케 했고, 이튿날이면 또다시 쫓기듯이 직장으로 가정으로 돌아섰지만, 이제는 고속도로, 기차, 그리고 항공기로 불편은 많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1980년대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국민들의 지지를 확보하려고 설과 추석을 사흘 연휴로 한 것도 그만큼 귀성과 귀경길을 완화시켜주었지만, 사흘을 쉬도록 한 조치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국민의 욕구에 명절 연휴가 공휴일과 겹치게 되면 다음날까지 휴일로 하는 대체휴일제가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만큼 세월이 변하면서 삶의 질이 넉넉해진 것이리라. 대체휴일제는 공휴일과 겹쳐서 즐기지 못하는 실제 날짜수를 확보해준다는 것이지만, 이것이 인간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일까?

    그리고 산업사회에서 생산과 국가경쟁력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물론, 휴식은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지만, 부쩍 커져버린 삶의 질이 오로지 늘어난 시간만이 아니라 그 시간을 즐길 경제적 여유도 커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하여 아직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땀을 더 흘려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1980년까지의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소득의 증가를 향수(鄕愁)처럼 기대하고 있지만, IMF 외환위기를 맞은 이래 소득은 향상되지 않은 채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백수로 놀더라도 3D 업종(Difficult, Dirty, Dangerous)에는 일하지 않으려는 허영에 찬 사람들이 즐비한 현실에서는 시기상조가 아닌가 싶다. 올해는 침체된 소비를 증대시킨다며 10월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서 장장 열흘의 황금연휴가 되었지만, 이 기간 동안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만 무려 195만 명이라고 하니, 정부가 의도한 국내소비 증가가 아니라 그만큼 국부는 해외로 유출되고 국내소비는 감소될 것이 아닌가? 반면에 기업들은 똑같은 날에 작업을 시키면서도 유급휴일이라고 급료를 주어야 하고, 또 휴일에 근무한다고 특근수당을 주어야 하는 이중부담에서 산업경쟁력이 나아질 수는 없을 것이다. 못난 위정자들은 이렇게 돈 들이지 않고 립서비스로 편안한 인기정책만 펴고 있으니, 어찌 탓하지 않으리.

    오랫동안 달을 벗삼으며 살아온 우리 조상님들은 아름다운 해님과 달님이야기를 남겨주었는데, 오랜 옛날 어느 산골마을에서 홀어머니와 오빠, 누이동생 세 식구가 살다가 어느 날 떡을 팔고 돌아오는 엄마를 잡아먹고 두남매까지 잡아먹으려는 호랑이를 피해서 두남매는 우물 옆의 감나무 위로 올라갔다. 하느님의 배려로 하늘나라로 올라간 남매는 하느님 앞에 서자 하느님은 오빠에게 해가 되고, 여동생은 달이 되라고 했지만, 동생은 어두운 밤이 무섭다고 해서 오빠가 달이 되고 여동생은 해가 되어서 달이 된 오빠가 우리를 밝혀 준다는 것이다.

    이런 ‘해와 달 이야기’는 서양에도 있는데,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는 형제인 포세이돈· 하데스 등과 함께 아버지 크로노스를 추방하고, 자신은 하늘, 포세이돈은 바다, 하데스는 지하세계를 차지했다. 그런데, 모든 신의 우두머리 제우스는 유명한 바람둥이여서 숱한 여신들과 인간인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었다. 누이 헤라를 아내로 삼고 둘 사이에서 전쟁의 신 아레스· 에일레이티아· 헤베·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낳은 것은 둘째치고, 메티스에게서 아테네를, 테미스에게서 호라이들과 모이라들, 에우리노메에게서 카리스들, 데메테르에게서 페르세포네를, 레토에게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디오네에게서 아프로디테 등을 낳았다. 그리고 신이 아닌 인간인 여성인 디오니소스에게서도 아르카스·미노스·아르고스·페르세우스·헬레네·다르다노스·헤라클레스·헤르메스 등을 낳았다. 그런데, 제우스의 헤라의 눈을 피해서 애인 레토와 사이에서 낳은 아폴론(Apollon)과 아르미테스(Artemis) 쌍둥이를 낳게 되자, 제우스는 아기들을 테미스 여신에게 기르도록 맡겼다. 그리고 아폴론에게는 금모자와 하프, 그리고 백조가 끄는 수레를 주었는데, 아폴론은 빛의 신으로서 ‘포이보스’라고 불렸고, 때로는 태양의 신이라고도 했다. 아폴론은 그리스인·로마인에게 지성과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한편, 쌍둥이 여동생인 아르미테스는 다이애나라고 하며 달의 여신이 되었는데, 그녀는 사냥을 좋아해서 활로 무장하고,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사슴사냥을 했다. 그녀는 어머니 레토를 모욕한 니오베의 7명이나 되는 아들과 7명의 딸들을 모두 활을 쏘아 죽이고 복수했고, 또 어머니 레토를 범하려고 하던 티티오스도 쏘아 죽이고, 거인 사냥꾼 오리온도 전갈의 독으로 죽였다. 그리고, 목욕하는 자신의 알몸을 드려다 본 악타이온은 사슴으로 변하게 해서 사냥개가 찢어죽게 했다.

    두둥실 보름달이 떠오를 추석 대보름 날, 하느님이 노했는지 하늘에는 검은 구름만 가득하다. 달의 여신 다이애나도, 달님이 된 우리의 오빠 얼굴도 보지 못하고 조상님들도 찾아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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