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정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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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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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3일 신임 국토부장관은 취임일성으로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이며, 돈을 위해 서민들과 실수요자들이 집을 갖지 못하도록 주택시장을 어지럽히는 일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 된다며 부동산투기를 막고,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의 도입 필요성을 언급했다.

    어떻게 투기를 막겠다는 것인지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장관이 취임일성으로 부동산투기를 언급한 것은 그만큼 부동산문제가 우리경제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돌아보면 지난 10여 년 동안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장관의 개인적인 소신에 따라서 도대체 몇 번이나 바뀌었으며, 과연 얼마만큼이나 효험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신임 장관 역시 앞서간 선임 장관들의 전철을 답습하는 출발점에 선 것이 아닌가 싶다. 정부의 일관성 없는 부동산정책이 오히려 아파트 건설사는 물론 주택소유자나 주택구입을 기다리는 실수요자 모두에게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정책으로 비쳐져서 주택 선택의 기회를 늦춤으로서 부동산 경기회복을 더디게 하는 원인이 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DTI를 완화하여 은행대출로 아파트를 매입하라며 경기부양을 노리던 정부의 정책이 정권이 바뀌자 다시 DTI 규제에 나선 것은 곧 정부가 선량한 시민들에게 빚을 내어 집을 사라고 부추긴 뒤 도산자로 만든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인간생활에서 가장 기본요소인 의식주(衣食住)에서 전통적인 농업 국가였던 우리는 벼슬길에 오른 선비가 아니라면 일제 총독부가 간도 개발에 나서 농민 강제 이주와 징용 등 타의에 의해서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는 태어난 고향에서 사방 삼십 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다가 죽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수많은 피난민들이 월남하면서 본의 아닌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었는데, 피난민들은 전쟁이 끝나면 금방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염원에서 휴전선 부근이나 서울, 대전, 부산 등 당시 교통의 중심이던 철도역에서 고단한 삶을 영위해나갔다. 판잣집으로 대표되는 피난민 생활을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피난민들은 점점 통일의 기운이 멀어지자 ‘뭐니 뭐니 해도 집 없는 설움이 제일’이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런 우리의 삶은 5.16 이후 전국 곳곳에 수많은 공장이 세워지면서 농촌의 젊은이들이 도시로 몰려들고, 직장 혹은 공부를 하러 고향을 떠난 새로운 형태의 민족이동으로 이농현상과 함께 도시의 주택부족 현상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도시화 현상은 전통적인 대가족제도가 해체되어 핵가족화가 되고, 또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더 크고 좋은 집으로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주거이동은 보다 빈번해졌다. 게다가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주택을 소유(所有)보다 거주공간(居住空間)으로 여기는 세대가 크게 늘어나 주택 품귀현상은 곧 주택건설 붐을 가져왔다. 특히 1972년 이래 서구의 주거형태인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지리적 위치가 좋거나 대형 건설사가 분양하는 아파트를 한 채만 분양받으면 금세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씩 웃돈이 붙을 정도로 큰 인기였다. 주택을 주거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재테크 수단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보편화되면서 헌집을 매수했다가 약간 손질한 뒤에 되팔아 넘기면서 단기간에 고소득을 얻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정부는 이를 부동산투기로 규정하여 1974년 12월 세법을 고쳐서 양도소득의 과세에 나서는 한편, 아파트청약자격 규제며, 분양가 상한제를 고시하는 등 부동산의 공급과 수요과정에서 과세 제도를 톡톡히 활용했으나 전국적으로 만연된 부동산 열기를 막지 못했다. 따라서 적어도 이때까지 투기가 아닌 재테크를 위한 주민등록 위장전입자나 다운계약서 등은 탈법이나 위법이 아니어서 고위공직자의 인사청문절차에서 결격사유에서 제외하는 법적 장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로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와 노숙자가 늘어나면서 천정부지로 치솟던 부동산 투기열풍도 수그러들면서 2002년 6월을 기준으로 통계상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다. 그러나 자가 보유율은 49.7%(행정자치부 통계자료)에 그쳐서 2가구 중 1가구는 여전히 무주택자로 나타났고, 주택난은 보다 복잡하게 심화되었다.  물론 다주택보유자 중에는 이전의 호황기를 의식한 투기꾼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소득수준의 향상과 산업화 현상으로 농촌에 사는 부모가 도시에서 공부하는 혹은 취업한 자녀를 위하여 그리고 직장관계로 부득이 가족이 별거 아닌 별거로서 다주택보유자가 늘어나고 있는 이들을 싸잡아서 투기꾼으로 매도하는 것은 너무 편면적인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부모가 도시의 자녀들에게 사준 집을 반드시 임차해야만 하는지, 아니면 증여세로 과세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부부나 자녀가 맞벌이로 떨어져 살면서 두 주택을 가진 것을 중과세해야 하는 것이 과연 사회정의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서민주택을 많이 공급했다면 집 없는 서민들의 틈새를 노리는 다주택보유자들의 투기는 끼어들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으나 건설업만큼 전방연관효과(Forward Linkage Effect)가 큰 업종이 없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 이후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아파트 건설사들이 잇달아 부도를 내자 건설관련 산업들과 고용시장도 잇달아 크게 위축되어서 ‘마이너스 전방연관효과’를 만들면서 일터를 잃은 직장인들의 부채가 늘어나고,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정책에 은행대출로 집을 장만하였다가 융자금을 갚지 못하는 하우스푸어(House Poor)들의 1400조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가계부채는 앞으로 주택은커녕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더라도 소비 진작을 할 수 없는 깊은 수렁 속에 빠졌다.

    이처럼 복합적인 주택문제를 오로지 투기(投機)로만 보고 규제하려는 정부의 정책은 발상의 전환으로 무엇보다도 실수요자들은 아직도 아파트가격이 바닥을 치지 않은 것으로 관망하는 기대심리를 명확히 깨뜨리는 조치와 주택을 소유가 아닌 거주공간이며 주택을 자산(資産)으로 삼아 다량 보유하여 임대하는 경우가 많다는 인식을 직시하고 그에 따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저금리정책으로 한국만의 특징이던 전세제도는 이미 사라져서 전세에서 전세로 이동한 가구는 2010년 34.4%에서 2016년 36.9%에 그친 반면 전세에서 반전세 혹은 월세로 이동한 경우는 2010년 9.1%에서 2016년에는 49%로 늘어나고 있는데도 여전히 월세가 아까워서 목돈이 되더라도 전세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 전세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점점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집 없는 서민을 위한다고 다주택보유자를 적대시하여 임대기간을 늘이고 임대료상한제로 규제하려는 발상을 버리고, 주택은 투기가 아니라 하나의 상품(商品)이라는 관점에서 정부는 예전에 주택공사에서 소규모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듯 공공주택을 많이 공급하고, 민간업체는 다양한 형태와 가격의 민영주택을 짓도록 분양가상한제 폐지와 주택처분이 용이하도록 양도소득세 중과를 폐지해야 한다. 나아가 잠실 벌판에 8평~13평 규모의 서민아파트를 대량으로 짓던 때 25.7평은 분명 고대광실(?)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중대형 아파트로 규제하는 정책을 고친다면 건설시장이 활성화되고 고용시장도 살아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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