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유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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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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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휴 歸休

    모든 비극은 죽음으로써 종막이 되고……
    ― G.G. 바이런

    경복궁 동쪽 돌담을 왼쪽으로 끼고 삼청로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국립현대미술관, 삼청파출소를 지나자 왼쪽으로 팔판동이 나왔고 계속 더 올라가자 삼청동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가 나왔다.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느리게도 빠르게도 걷는다. 나는 언덕길을 올라서 숲 속으로 들어갔다. 가벼운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숲은 여전히 아름답다. 나무들이 울창했고 무성하게 자라난 보드라운 풀들이 너울거렸고 봄의 꽃들이 피어있다. 벌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녔으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들은 덤불 숲 속에서 아름답게 노래했다.
    그곳에는 옛날 옛날 옛적에는 깊은 샘이 있었고 송사리가 사는 맑은 개울이 흘렀다. 그리고 작은 신비한 나비들이 많이 날아 다녔다. 큰주홍부전나비와 독수리팔랑나비, 도시처녀나비, 시골처녀나비, 남방남색공작나비 등이 날아 다녔다.
    숲을 온통 파란색으로 색칠하였으니 여름은 위대하였다.
    한여름에는 밤하늘에서 깜박거리는 불빛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때 세 살 터울의 형은 움직이는 불빛을 보고 밤 도깨비가 날아다닌다고 하였다.
    빛을 내며 날아다니는 곤충. 반딧불이 또는 개똥벌레.
    반딧불이는 어떤 가수가 불렀던 ‘개똥벌레’라는 노래 때문인지 깨끗한 곳에서만 살 수 있는데도 개똥에 사는 더러운 벌레라는 오해를 받았다. 애벌레 상태로 겨울을 난 반딧불이는 여름을 앞두고 성충으로 변신한다. 배에 형광색 발광기를 켜고 이르면 늦은 5월부터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다. 반딧불이의 빛은 구애의 빛이다. 암수가 불빛을 주고받으며 제 짝을 찾아 나선다.
    그 숲은 가을이 되면 산수유와 단풍나무가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자연의 색은 성숙해진다. 빨간색은 붉게, 노란색은 샛노랗게, 보라색은 가짓빛으로 자신의 색을 찾아 영글었다.
    그리고 꾀꼬리 대신 꿩과 까투리와 산비둘기와 산새들이 모여들어 재잘거렸고, 원형으로 돌출된 커다란 육각형 겹눈을 흘깃거리며 전진, 정지, 후진, 뒤집기 등 자유자재로 비행 기술을 구사하는 고추잠자리들은 짝을 찾아 헤매 다녔다.
    아침 일찍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면 계곡은 짙은 안개에 덮여 있었다. 가을이 되어 일교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밤사이 계곡이 차갑게 식어서 안개가 낀 것이다. 그러나 낮 동안 햇살이 비치면서 지상의 온도가 올라가면 안개는 서서히 흩어졌다. 자욱한 안개가 너무나 그립다. 그 계곡에는 흰 꽃잎에 노란색 수술이 겹으로 피면서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 야생 수선화가 질펀하게 깔려 있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었다.
    아카시아 꽃향기를 맡으며 가파르게 경사진 숲 속 길을 올라가자 숨이 차올라 목이 막혔고 얼굴이 창백해지며 차가워진 몸이 몹시 떨렸다. 그 순간 과거로 이어진 문이 열리면서 어린 시절을 추억했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기억의 잎사귀들이 살랑거리면서 슬픈 음악을 연주한다.
    나는 어린 시절 가회동 꼭대기에 살았다. 그 동네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것이다. 그때 동네 입구에 있는 구멍가게에서는 채소와 두부도 팔았고, 생선 가게와 정육점, 연탄 배달집, 세탁소, 방앗간, 대중목욕탕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과 맞닿을 듯한 높고 가파른 축대와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조선시대부터 형성된 두 사람이 지나가려면 어깨를 비켜야 할 정도로 좁은 골목길이 그대로 남아서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미로처럼 이어졌다. 대낮이면 아이들 고함 소리로 가득 찼다가 저녁때쯤이면 이 집 저 집에서 새어나오는 밥 짓는 냄새와 된장찌개 냄새로 채워졌다.
    그래서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겼던 것이다.
    그 시절에는 그곳에서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러갔다.
    하지만 지금은 현대식으로 새로 지은 건물에 편의점과 피자집, 이탈리아 식당, 식빵 전문점, 프랜차이즈 카페, SK텔레콤 대리점 등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전통 한옥을 현대적으로 개축해서 모던한 세련미를 살린 부티크, 갤러리, 게스트하우스, 자수나 옻칠, 민화, 한지, 한복 등 전통 장인들이 운영하는 공방들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어쩌다 입구에 남아있는 일제 때쯤 지은 오래된 단층 한옥집은 3~4층 다세대 주택들에 둘러싸여 마치 외로운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날이면 어김없이 아버지는 동네의 술친구 서너 명과 함께 옛집에 둘러앉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단골손님이었다. 손때가 묻어 끈적이는 나무탁자를 사이에 두고 중년의 주인과 손님들은 오랜 친구처럼 얘기를 나누었다. 주인은 핏물이 고인 생선과 돼지고기, 남쪽에서 올라온 꼬막으로 안주를 만들었다. 그들은 막걸리 아니면 독한 소주를 마셨다. 아버지는 거나하면 옛날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나에게 고기 몇 점을 입에 넣어 주었다. 나는 겨울밤이면 몇 점의 고기를 얻어먹고 싶어서 아버지를 마중한다는 핑계로 그 포장마차에 갔었다.
    북촌 한옥 마을의 비탈진 골목길.
    외국 관광객 수십 명이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이곳저곳 사진을 찍고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왁자지껄했다. 골목길 양쪽에 있는 빛바랜 기와지붕과 벽돌담, 격자무늬의 녹슨 창살을 단 한옥들의 대문에는 ‘Silence please’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그 문장 아래는 중국어, 일본어로 같은 뜻의 말이 적혀 있다. 그러니까 골목 곳곳에 정숙을 요청하는 안내판과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이다.
    관광지가 된 가회동 주택가의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종로 구청에서 현수막까지 만들어 내 걸었을까.
    골목길에서 만난 북촌 주민이 말했다.
    “매일 외국 관광객 수십 명이 한꺼번에 몰려와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니며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입니다. 사람 사는 게 아니지요.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대문을 열어놓고 관광객들에게 집도 구경시켜주고 화장실도 이용하게 해줬죠. 그러나 일행 하나가 들어오면 줄지어 들어오는 통에 결국 문을 닫아 놓고 살지요. 그랬더니 이제는 아침마다 대문 앞에 버려진 쓰레기 치우는 일이 큰일이랍니다.”

    고향을 잃어 버렸다.

    우리가 아직 젊었을 때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던 명동.
    내가 연극에 미쳐 빠져 있을 때 저녁이면 그 친구와 함께 매일처럼 들렸다. 그 시절 우리들의 호주머니는 늘 가벼웠다. 하지만 나에게는 지울 수 없는 많은 시간과 아스라한 기억이 남아있다. 그냥 그곳에서 그 시절을 보냈던 사람의 기억이다.
    명동에는 그 옛날 은성주점과 돌체다방과 쉘부르와 코스모스 백화점과 엘칸토, 떼아뜨르 추 등 소극장들과 음악다방들이 있었다. 그 이전에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과 헝가리 랩소디를 틀어 주었던 음악다방인 ‘봉선화 다방’과 시인과 작가, 화가 등 예술가들이 모여 들었던 ‘아카데미 다방’이 있었지만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다만 명동의 상징으로 신성불가침의 성지였던 주황색 벽돌의 엷은 붉은 빛이 여전히 감도는 명동성당은 아직도 그 낮은 언덕에 남아있다.
    지금은 온통 외국인 관광객이 거리를 메우고 있고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저가 화장품 가게, 중저가 해외의류 브랜드와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들만 즐비하다. 맛 골목으로 유명했던 먹자골목은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중국 대사관 뒤쪽 이른바 카페 골목도 사라지고 없다. 옛날에는 그 골목에 카페와 구둣가게, 보세옷집들이 모여 있었는데 지금은 몽땅 화장품 가게가 되었다.
    무색무취의 무국적 거리로 변해버렸으니 이제 명동은 잃어버린 땅, 빼앗긴 땅이 되었다.
    거리는 일본어 간판과 중국어 간판이 숲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 옛날과는 완전히 다른 골목 표정을 띠고 있다.
    긴 그림자를 오만하게 드리우며 하늘을 가리고 있는 새로 지은 고층 건물들은 무미건조하고 더욱 차갑고 냉소적으로만 느껴진다.
    명동의 중심에는 명동예술극장이 있다. 맞은편에는 유네스코 회관이 있는데 유네스코의 옆구리 좁은 길 역시 유커들이 넘쳐났고 그들을 상대로 한 많은 좌판들과 호객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시골 장터처럼 시끌벅적하다.
    우리가가 명동을 한참 드나들던 시절이 언제였든가? 예술가들이 은성주점, 돌체다방, 동방살롱 등을 배경으로 드나들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고, 1970년대 중반부터 오비스캐빈, 쉘부르 등에서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치던 젊은 가수들이 새롭게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시절도 다 지나간 다음이었다.
    그 당시에는 브랜드 옷가게와 구두 가게, 먹고 마시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그때 외환은행 본점 건물 뒤쪽 좁은 골목에는 유리 칸막이 안에서 디제이가 하루 종일 팝송을, 가끔은 남미 음악이나 재즈를 틀어주는 경양식집들이 한집 건너 몰려 있었다. 언제나 담배연기가 자욱했고 가끔은 그렇고 그런 가수들이 출연해서 라이브 연주를 하였다. 그곳에서 함박스테이크 아니면 돈가스를 먹었고 오비 병맥주를 마셨다.
    그 친구는 술에 취하면 센티멘탈해져서 늘 노래를 불렀다.
    명동 샹송으로 알려진 ‘세월이 가면’을 불렀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그리고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불렀다. 부르는 게 아니라 쉰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하지만 그 노래를 불렀던 박인희 가수는 언젠가 L.A.로 떠난 뒤였다. 소문대로 가수 박인희는 31살에 요절한 천재 시인 박인환의 동생이었을까.

    지하철 2호선과 4호선과 5호선이 교차하는 동대문 역사문화 공원역 5번 출구를 나오자 ‘샤프카’라는 러시아식 방한모를 쓴 러시아인들이 자주 보였다. 길 건너편에 몇 억 광년이나 떨어진 머나먼 별나라에서 외계인이 타고 내려온 UFO처럼 생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보인다. 골목 간판에 쓰여진 문자들이 몹시 낯설었다.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주로 쓰는 키릴 문자였다.
    여기는 ‘서울의 실크로드’라고 불리우는 을지로5가 광희동 중앙아시아 거리이다.
    나는 그 시절 동대문 야구장에서 야구 경기가 끝난 뒤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자주 광희동에서 쌍림동 방면으로 이어지는 술집 골목을 찾았다. 그때 나에게 야구장은 성지였다. 세속 종교의 지붕이 없는 성당이었다. 그렇게 추억이 어린 야구장이 오래 전에 사라진 것은 참으로 잔인한 일이다. 여전히 귀청을 찢는 함성 소리가 아련한데 말이다.
    그런데 그 일대가 외국인 거리로 변하게 된 건 한국과 러시아의 국교가 이루어진 1990년부터라고 한다. 동대문 의류시장을 찾은 보따리 상인들이 이곳에 몰려있던 숙박업소에 며칠씩 묵게 되면서 부터였다.
    러시아 의류상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단다.
    “동대문의 한국 의류는 값이 너무 싸면서도 디자인과 품질이 뛰어나 러시아에서 인기가 많지요. 그래서 한 번 오면 몽땅 사가지요. 이익이 많이 남거든요.”
    그 이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다른 나라 소상인들도 자연스럽게 이곳에 터를 잡았다.
    나는 13년 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광희동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우즈베키스탄 식당 ‘사마리칸트’에 들렸다. 가게에 들어서자 벽에는 우즈벡 전통의상인 ‘치아판’이 걸려있고 현지 음악을 들려주기 때문에 마치 중앙아시아로 여행을 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우즈벡 전통 볶음밥인 ‘플러프’와 훈제 양꼬치 ‘샤실릭’, 전통 빵을 시켜 먹었다.
    광희동 거리 중심부에 있는 뉴금호타운은 ‘몽골타워’로 불리고 있었다. 그 10층 건물에는 몽골인이 운영하는 식당, 몽골식 전통 찻집, 그리고 여행사, 중고 휴대폰 판매점 등이 입주해 있기 때문이다. 3층에 있는 ‘잘루스’에선 우유에 녹차, 소금 등을 넣어 만든 몽골식 전통차인 수태차를 맛볼 수 있다. 타향살이에 지친 몽골인들은 이곳에 모여 고향 음식을 먹으며 향수에 젖어 고향 이야기를 나눈단다. 고비 사막과 유목민 생활,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살을 에는 지독한 추위, 몽골 게르, 쌍봉낙타와 낙타 젖, 독수리와 회색 늑대, 풍장 그리고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필요한 생활 정보를 나눈다. 사랑방 같은 곳이다.
    세운상가가 있는 종로4가의 예지동.
    예지동은 입정동과는 세운상가를 사이에 두고 대각선상에 있고 배오개 길을 건너면 광장시장이 나온다.
    나는 예지동 시계골목을 찾았다. 구불구불하고 좁은 뒷골목에 들어서자 시곗바늘을 한참 뒤로 돌린 듯 옛 풍경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낡은 시계 점포에 진열된 옛날 시계들과 색이 바랜 간판들이 보인다. 그 짧고 좁은 거리엔 수많은 시계, 귀금속 가게, 솜씨가 귀신같은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카메라 수리점이 밀집해 있다.
    이 골목은 1960년대 무렵 청계천의 상인들이 이쪽으로 옮겨오면서 형성됐다. 거친 목재로 만든 사과궤짝 위에 싸구려 시계를 고무줄에 묶어 진열해 놓고 팔던 게 시초였다. 그러면서 귀금속 가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1980년대까지는 혼수 마련을 위해 꼭 들려야 하는 장소가 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계 기능이 포함된 삐삐와 휴대폰의 등장은 이 골목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그리고 명품 예물의 상권이 고급 백화점으로 이동하면서 그런 손님들의 발길마저 끊겼다. 하지만 재개발의 광풍은 아직 여기까지 몰아치진 않았다.
    그 옛날 그 자리엔 60년 경력의 주인 아저씨가 여전히 2평 남짓한 가게에서 반세기가 넘게 정확한 시계처럼 반복된 삶을 살고 있었다. 세밀한 시계 수리공의 작업. 그 아저씨는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허리는 굽고 얼굴에는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누구도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몹시 피곤해보였다. 내가 인사를 하면 누구인지 기억이나 할까? 나는 그 시계 가게를 외면한 채 도망치듯 그냥 지나쳤다.
    그러나 오래된 그 골목에는 옛날 전통 맛집들이 몇 개는 그대로 남아있다. 나는 그날 밤 옛날에 가끔 들렸던 빈대떡 파는 술집을 찾아갔다. 10여 분을 기다린 뒤에야 겨우 빈자리가 났다. 혼자 앉아서 막걸리를 시켰다. 그리고 웬 낯선 중년의 남자와 합석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막걸리와 소주를 섞어서 한참을 마셨다. 그리고 그가 이끄는 대로 2차를 갔는데 일본식 선술집이었다. 테이블 서너 개가 고작인 작은 술집이었는데 미지근하게 데운 일본 청주인 사케를 마셨다.
    그가 말했다.
    “이 동네는 신문에 기사가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동네가 유명하면 절대 안 된다니까. 절대로 안 되지. 그렇고 말고.
    이 좋은 동네에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면 예전에 느꼈던 편안함과 호젓함은 온데간데없게 되겠지요.
    그러면 옛날 집들은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서 떠나야 하고 그 자리에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들어온단 말이지요.”

    나는 지하철 2호선 을지로 입구역에서부터 외환은행 본점 건물을 지나고 남대문 세무서를 지나서 고층빌딩이 화려하게 빛나는 을지로2가 대로변을 따라 동대문 방향으로 걸었다. 을지로3가역을 지나면서부터 어느새 높은 빌딩들이 모습을 감추고 낡은 저층 건물들이 나타났다. 거기서부터는 을지로3가와 을지로4가 지역이다.
    세운상가와 청계상가, 대림상가가 그 사이에 끼어 있다.
    갑작스러운 풍경 변화에 시간의 흐름이 뚝 끊긴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래된 거리의 낡은 풍경 사이로 수십 년간 거리를 지켜온 작은 가게들이 보인다. 변한 것 같지만 변하지 않은 풍경들. 그러나 풍경은 건물만으로는 그려지지 않는다. 풍경에는 건물과 장소를 이어주는 길과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을지로3가에서 을지로4가에 이르는 큰 길가에는 벽지와 바닥재 가게를 비롯해 배관공사 자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 방수시공 업체, 알루미늄 샤시 가게, 세면대와 양변기를 취급하는 도기 타일 전문점, 부동산 중개소, 다방, 세무사 사무실, 직업 소개소까지 빼곡히 들어서 있고, 전기재료와 조명기구를 파는 가게들은 대낮인데도 여전히 훤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뒤쪽 골목으로 더 들어가면 철물점, 자재상, 인쇄공장, 화공약품을 파는 가게들,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공동 화장실이 나온다.
    좁은 골목에 봉고트럭과 리어카로 물품을 실어 나르는 인부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수표동에서 큰 길을 건너 오른쪽으로 골목길을 좀 더 걸어 들어가면 작은 철공소와 모터 가게, 주물 가게, 정밀기계 가공업체, 금형 가공업체가 밀집해있는 입정동과 산림동의 공장지대가 나온다. 너무 오래된 공장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낡은 건물과 건물, 처마와 처마가 거의 붙어있고 곱창처럼 복잡하게 얽힌 골목길을 형성하고 있다. 절삭기의 원통형 톱날이 금속을 자르면서 나오는 요란한 굉음과 쇳가루가 뿜어져 나오면서 튀는 불꽃과 매캐한 쇳가루 냄새, 기름 냄새가 가득하다.
    이것은 신기한 풍경이라기보다는 고단한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매일 이곳으로 출근하는 어떻게든 살아가겠다는 꿈을 가진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는 그저 고달픈 일터이고 직장일 뿐이다.
    저녁이 되면 공장들은 일제히 셔터를 내려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없을 것 같은 좁은 골목 전체가 깜깜해진다. 골목 구석에 남아있는 오래된 식당들만 불을 밝힌다.
    아버지도 조촐한 밥상과 술 한 잔이 그리워 퇴근길이면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때 이곳에 있는 작은 철공소에서 젊은 견습생 한 사람만 데리고 수직 밀링머신으로 공작물을 자르거나 깎는 작업을 했었다.
    나는 그 시절 아버지의 철공소에서 가늘고 긴 철판을 잘라서 깎고 며칠 동안 숫돌에 갈아서 칼날 부분을 예리하게 만들고, 손잡이 부분은 얇은 가죽으로 감싸서 검은 테이프로 겹겹이 감았던 단도를 만들어서 보관했다.
    전혀 변하지 않은 그 옛날 골목길을 보았을 때 정겨웠다. 흐르는 눈물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 곳 역시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설치 작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사진 작가, 전시 기획자 등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전시장이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운상가 쪽은 어떤 형태이든 조만간 재개발이 될 모양이다.

    옥탑방.
    서울에서 방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곳. 자신만의 마당을 즐길 수 있는 곳. 옥탑방은 시야가 트여 조망이 좋고 임대료가 저렴했다. 그때는 2층 평평한 옥상에 옥탑방이 있었고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면 옥탑방의 문이 보였다. 집 안에 들어서면 5평 남짓한 아기자기한 공간이 나타났고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문 밖 마당엔 구석에 굴뚝이 솟아있고 빨랫줄에는 이불과 옷가지가 널려 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좁은 공간을 활용해야 했다. 옥탑방 곳곳에 수납공간을 만들고 가구 배치도 새롭게 바꾸었다. 그러나 화장실에는 여전히 곰팡이가 가득했다.
    도시의 풍경 속으로 겨울의 짧은 해가 저물고 있었다. 더욱 컴컴해진 어둠 속으로 건물들이 차츰 사라지고 별들이 깜박이며 검은 하늘을 수놓았다.
    옛날 그 집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지금은 대학로 번화한 뒷골목에서 낙산 공원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4,5층 높이의 원룸 빌딩들이 좁은 간격으로 숲을 이룬 채 들어서 있다.
    내가 그때 무슨 일 때문인지 머리는 박박 깎였고 먹방에 갇혔다. 먹방이란 글자 그대로 먹물을 뿌린 듯 사방이 새카만 독거실을 말한다. 겨우 0.8평으로 밥그릇이 들어오는 식구통만 열려 있는 폐쇄된 방이었는데 이른바 징벌방이었다. 적막감이 감도는 방에 들어간 순간부터 사방을 둘러싼 검은 시멘트벽은 한기를 내뿜는다. 하루 온종일 식구통만 바라보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식구통만 늘 열려 있어 어두컴컴한 작은 상자 안으로 네모난 하얀 외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먹방에서 감금된 상태로 오랫동안 외부와 단절되어 있으면 현실감각이 사라진다. 마침내 무감각해지고 자아는 무의식의 심연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는 완전히 사라지고 가까운 미래마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오로지 지나간 시간과 과거만이 남아있다. 과거 외에 확실한 것은 없었다.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의 고통을 잊으려 했다. 먹방 생활을 견디려면 과거에, 추억에 의지해야만 한다.
    옛날에 품었던 희망, 그 시절의 꿈, 옛 사랑, 오래전 이야기, 지난날의 이야기는 아름다웠던가? 슬펐던가? 내가 과거를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대학로 뒤쪽 낙산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에 있는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단독주택의 옥상을 생각했었다.
    그 산 꼭대기에 오르면 왼쪽으로 삼선동과 한성대학교 캠퍼스가, 오른쪽으로 창신동 꼭대기의 다닥다닥 붙어있는 판잣집들이 내려다 보였다. 그리고 아득하게 펼쳐진 파란 하늘을 마음껏 우러러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를, 즐거웠던 한 시절을, 그날 밤 칼이 번쩍이며 피가 낭자했던 그 끔찍했던 순간을 기억했다.
    나는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에서부터 시작해서 생각나는 대로 거리와 골목과 지역으로 추억을 찾아 떠돌았다.
    짧게 지나가는 이 찬란한 계절이 아쉬워서 또는 한없이 복잡한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또는 건강한 몸으로 추스르기 위해서 길을 나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뚜렷한 목적지가 있을 리 없다. 천천히, 멈추지 않고 여기저기로 발길을 옮긴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 너무너무 낯설다.
    새로워지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우리 삶의 터전인 이 세상이 너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일까.
    적자생존이나 자연선택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변화에 적응하면 살아남아 번성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 이것은 인간이나 동물은 물론이고 모든 생물체에게 적용되는 것일까. 심지어 사상 또는 이념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도 이 원칙은 적용되는 것일까.
    교도소의 높고 차가운 시멘트벽은 나와 바깥 세계를, 시간의 벽은 나의 삶과 느리게 지나가는 무기수의 시간 사이를 완벽하게 갈라놓았다.
    나에게 변화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는 그 변화가 두려웠고 무서웠다. 나의 시간을 끝장내는 것은 결국 죽음뿐일 것이다.

    동대문역을 내려서 새로 명명된 율곡로를 따라 대학로에 들어섰다. 서울사대 부설 초등학교와 서울사대 부설 여자중학교, 방송통신대학, 서울대 의과대학, 동숭교회 건물은 옛날 그대로 여전히 남아있다.
    천천히 걸어서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쯤에 다다르자 호객꾼이 연극, 뮤지컬 리스트가 빼곡하게 적힌 책받침을 들고는 옷깃을 붙잡는다. 고등학생이거나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앳된 얼굴이고 간혹 껄렁댄다.
    앳된 얼굴이 말했다.
    “이 연극 무지 재밌다니까요. 아저씨, 배꼽 빠져요.”
    며칠째 동숭동 일대를 천천히 걸어서 뺑뺑 돌고 있다. 동숭동은 이제 익숙하면서도 몹시 낯설었다. 무작정 걸었다. 상실감에 힘겨웠고 가슴이 먹먹하였다. 낯선 얼굴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기쁨과 웃음, 걱정과 슬픔을 함께 느껴보고 싶다.
    나는 뭔가 말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밤이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설핏 선잠이 들면 악몽을 꾸고 잠에서 깨어났다.
    사형 집행관이 내 목에 밧줄을 걸었다. 밧줄이 조여 오면서 뭉툭한 촉감이 피부에 느껴지고 전율처럼 심장과 내장으로 내려왔다.
    집행관이 말했다. ‘연극쟁이였다고 하니까 잘 알고 있겠지. 인생은 한바탕 연극이라고. 너의 연극은 이제 막을 내린 거야. 법률의 규정에 따라 형을 집행한다.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옛날 나의 일터였던 소극장이 있는 건물을 찾았다. 언제부터인가 건물을 새로 단장해서 소극장이 있던 지하에는 젊은이들이 다니는 술집이 생겼고 1층에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들어서있다. 커피숍의 창가에 앉아 그 연출가를 만나기로 했다. 그 시절부터 오래 친구였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친구의 환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불멸의 영혼은 결코 대학로를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친구와 지금부터 깊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등장 인물

    남자 – 56세
    친구 – 57세
    다만 친구는 대학로를 배회하는 영혼이다.

    무대

    명동이나 강남역 부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 풍경.
    최신 팝 음악이나 재즈의 선율이 낮게 흐른다.
    커피숍에서는 한국어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중국어와 영어가 뒤섞인 가운데 간간이 일본어 정도만 귀에 들어온다. 화장실 안내판도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 국어로 되어있다.
    건물 밖 골목에는 외국 디자이너 브랜드의 쇼핑백을 들거나 ‘바켄’이나 ‘이코복스’같은 유명 커피전문점의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든 세련된 차림의 외국인 여성들이 눈에 띈다.
    창밖은 하늘이 개어 가는지 궂어 지는지 분간이 안 가는데 엷은 회색 구름이 가느다란 봄비를 뿌리고 있다.

    창 쪽 4인용 탁자에 아메리카노 종이 커피 잔 두 개가 놓여있다.
    두 사람은 마주보고 비스듬히 앉아있다.

    남자 (카페 안을 둘러보고 나서 밖을 내다보며) 많이 변했군!
    목소리 (사이) 안 변하면 이상하지. 세월이 그렇게 흘렀으니. 자넨 흰 머리가 많이…… 그러나 얼굴은 크게 변한 것 같지 않군. 옛날 그대로야. 세월이 비켜간 거라고.
    남자 난들 별 수 있겠어. (사이) 그런데 걔들이 누구지? 지하철 입구에서 공연 순위가 인쇄된 책받침 같은 걸 주더라고…… 웃기는 소리도 하고……
    목소리 속칭 ‘삐끼’라고 불리는 호객꾼한테 걸렸구만. 걔들은 연극, 뮤지컬 리스트가 빼곡한 책받침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깃을 붙잡는다네. 걔들이 대학로 물 흐린다고 원성이 자자하지.
    남자 (미심쩍게) 그게 무슨 말인가? 옛날에는 그런 거 없었는데.
    목소리 자네도 알 것 아닌가. 이 바닥은 좁지 않은가. 뻔하지.
    남자 뭐라고?
    목소리 그러니까 걔들을 업고 있는 공연 기획사들이 있는 거지. 뒤에 강력한 조폭들이 바치고 있다는 등, 점조직이라는 등 확인할 수 없는 소문들이 무성하지.
    남자 그렇다면!!!! 나도 알아야 하니까???? 자세히 좀……
    목소리 (은근히 멸시감을 드러내지만 목소리에는 분노와 상실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도, 삐끼라고 하면 무척 싫어한다네. 자존심은 있다는 거지. 자기들끼리는 ‘전단팀’이라고 하더라고. 제작사마다 기획팀이니 마케팅팀이니 있지 않는가.
    (사이) 그러니까 그런 업무처럼 공연 소개하는 전단지 만들고 돌리는 일을 한다는 거지. 홍보팀 직원인 셈이야. 단지 그 일을 회사 내에서 하지 않고 거리로 나와 한다는 거지.
    가장 왕성하게 전단팀을 운영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네. 돈에 환장한 친구들이지…… 걔들은 안면몰수하고 있는 거야……
    남자 그러면??? 삐끼들의 조직이란 게???
    목소리 어떤 제작사에 소속되면 완전히 피라미드식 구조라네. 실장 한 명에 팀장 서너 명, 각 팀장 아래에 10명 내외의 알바가 있지. 공휴일이나 주말엔 고등학생 알바가 많지. 전단팀은 비수기 때는 20명 내외, 연말이나 방학 등 성수기 때는 50명 정도가 된다고 보면 되겠지.
    그러나 연말과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대목엔 팀별로 100명까지도 풀린다네.
    남자 (기가 막혀서) 그렇다면 말이지……? 돈은 어떻게 나누지?
    목소리 당연히 교통비라든가 기본급은 없다네. 손님을 물어오는 데로…… 다시 말하면 피켓을 많이 파는 만큼 돈을 버는 구조라네. 그래서 열심히 뛰는 자들은 돈을 꽤 벌 수 있을 것이네.
    남자 구체적으로 말해보게나.
    목소리 그렇지. 자넨 관심이 많겠지. 자세히 말해주겠네.
    전단팀의 총 판매액 중 30~50퍼센트가 그들 몫으로 떨어진다네. 다시 말하면 티켓 한 장당 실장 10퍼센트, 팀장 10퍼센트, 알바에게 10~30퍼센트 할당된다네. 그게 이 바닥에서는 반 공식처럼 되어있지.
    그러면 알바는 100만 원 남짓, 실장과 팀장은 200만~300만 원을 벌수도 있다는 거야.
    남자 그렇다면…… 걔들 수입이 얼마나 될까!!??
    목소리 그렇고말고. (사이) 걔들 수입은 웬만한 배우보다 훨씬 낫지. 현장까지 직접 뛰는 특급 실장과 팀장은 월 500만 원도 찍는다고 소문이 나있지.
    남자 그렇게 삐끼가 많으니 구역을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데?? 조폭들도 자기들 구역이 있지 않은가.
    목소리 자기들끼리 구역을 둘러싼 몸싸움과 신경전이 치열하다네. 가장 인기 있는 구역은 지하철역 입구인데 그곳은 공평하게 다 함께 들어가고…… 나머지 지역은 서로 나누어서 독점 방식으로 한다네. 그러니까 골목길도 구간별로 주인이 정해져 있는 거지.
    남자 삐끼들 때문에 부작용이 많을 것 아닌가?
    목소리 삐끼가 순위까지 조작한다네. 당연히 원성이 높았지. 지금은 모바일 시대 아닌가.
    남자 ??????
    목소리 네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그래…… 옛날과는 완전히 다르지. 그때가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군. 어느새 세월이 그렇게 흘렀지 않은가.
    남자 (창밖을 망연히 내다보며) 그렇지…… 어쩔 수 없었지…… 나는 캄캄한 벽 속에 갇혀 있었으니까. 그 콘크리트 벽은 높고 두텁다네. 밤이면 감시탑의 서치라이트 불빛이 시간에 맞춰…… 허공에서 어른거리다 사라진다네.
    (사이) 그리고…… 그 벽은 만질 때마다 거칠고 날카로운 감촉이 손바닥에 느껴진다네.
    목소리 하루 종일 밤낮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남자 그러게 말이네…….
    목소리 걔들은 예매사이트 순위 화면을 찍어내서 그 중간쯤에 자기들 공연을 가짜로 집어넣어 인쇄하고 그걸 코팅해서 책받침을 만들어 뿌린다네.
    그걸 보여주며 손님을 꼬드기는 거지.
    남자 설마?? 그렇게까지 썩었겠나??
    목소리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걸세.

    그때 커피를 마시던 외국인 (일본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밖으로 나간다.

    침묵

    남자 (마시다 만 차가운 커피를 마저 홀짝 거리며) 아까, 그 자식들 뒤에 조폭이 있다고 했는가?
    목소리 옛날에는 틀림없이 그놈들 뒤에 든든한 조폭이 있었다네. 지금은 조폭도 기업형이 대세야. 그러니 동네 조무래기라면 몰라도 그쪽에선 파이가 너무 적으니까 구미가 당기지 않겠지.
    남자 ??????
    목소리 요즘은 경기가 정말 안 좋다네. 그래서 최근엔 저가 연극이 수두룩하지. 이쪽 영업이란 게 전쟁이나 다름없다네. 그러니 전쟁터에서 무슨 반칙 운운할 수 있겠는가.
    남자 많이 변했어!! 상상도 할 수 없이!!
    목소리 걔들도 할 말은 있을 거야. 연극계가 흥행이 안 되니까 무슨 핑계거리가 필요했을 거고 그걸 삐끼 탓으로 돌리는 거라고 툴툴거리고 있지.
    그렇게…… 앞에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하면서도 뒤로는 표를 팔아달라고 부탁한단 말이지.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예매 순위를 올리려고 사재기하는 것도 비일비재하다네.
    남자 단속이 있을 것 아닌가?
    목소리 그렇지만 말이지…… 구청이나 경찰서에서도 뻔히 눈치 채고 있지만 손을 놓고 있어.
    남자 그런데 말이지…… 연극계 선배들은 무얼 하고 있는 거야? (사이) 그때는 연극판에도 위계와 서열이 있었지 않은가? 동국대파도 있었고 중앙대파도 있었고 드라마 센터파도 있었지.
    우린 셋 중 어느 하나에도 속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목소리 그런 건 사라진지 오래야……
    남자 즈그들끼리…… 이러쿵저러쿵……
    목소리 연극인들이야 앞에서는 삐끼문화가 변질되었다느니,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 (사이) 걔들이 단지 공연을 알리고 관객을 모집하는 수준을 넘어서 순위 조작이나 허위 정보의 제공,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다른 공연에 실질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고 다들 인식하고 있지. (사이) 그건 명백한 영업 방해라고……
    남자 썩어빠진 경찰은 뭘 하고 있는 거야!! 단속을 해야지!!
    목소리 경찰 욕할 것도 없다네. 호객 행위는 기껏해야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는 경범죄에 불과해. 누가 그걸 무서워하겠나?
    남자 아까 저가 연극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목소리 일단 저가 연극은 제작비가 싸다네. 거 있지 않은가? TV에 나오는 막장 드라마처럼 권선징악 구조가 명확하지. (사이) 그러니까 개연성과 현실성이 없는 거야. (사이) 처절하게 궁상맞지 않으면 관객을 끌어 모을 수가 없어.
    남자 신파조는 언제나 있었던 거 아닌가……
    목소리 그렇긴 하네만…… 대게…… 그런 연극엔 남녀 두 명씩 4명이 출연한다네. 연극은 매우 엉성하지만 싸구려 배우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하지.
    그리고 소셜커머스에서 천 원짜리 폭탄 세일로 티켓을 판매하지.
    남자 허허!! 기가 막히구만!! 그래가지고 과연 남는 게 있을까??
    목소리 누적 판매량이 높아야만 소셜커머스 상단에 노출된다네. 그러니까 울며 겨자먹기지만 딴 방법이 없는 거지. (사이) 평일에는 객석에 열 명도 안 차는 경우가 흔해 빠졌는데 차라리 천 원에 덤핑이라도 하는 게 낫다고 보는 거지.
    남자 !!!???
    목소리 겉으로 보면 지금 대학로 연극의 공식 가격은 대략 삼 만 원 선이라고 할 수 있다네. 그러나 삼만 원을 다 내고 보면 호갱 중의 호갱이라고 하지.
    정가에서 통상 70퍼센트를 할인해서 만 원도 비싸다는 게 정설처럼 되어있어. 그러니까 팔천 원 안팎으로 실제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거지.
    다시 말하면…… 소셜커머스가 득세하면서 만 원 마지노선은 몇 년 전에 이미 붕괴되었다네.
    남자 그렇게까지 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목소리 그렇고말고…… 가격 하락의 일차적 원인은 공급 과잉이라네. 지금은 만 원이면 대학로 모든 연극을 다 볼 수 있게 되었다네.
    남자 그때…… 그 시절에도…… 뒷골목 연극이라고 하는 저가 연극이 제법 있었지. 스토리나 무대는 조잡하지만 코미디와 싼 가격으로 관객을 끌어 모은 거지. 그런데 지금은 너무 심한 것 같구만.
    목소리 그러니까 비주류로 간주되던 저가 연극이 대세를 이루게 된 건 2013년부터라네. (사이) 전용관이 있고 어느 정도 완성도도 있고 빠른 회전율로 무장한 창작극 몇 개가 잇따라 히트하면서 아류작이 양산됐다네…… 아휴!! 말도 말게!! 자연히 가격 전쟁도 치열해졌지……
    남자 전쟁이?? 치열해졌다고??
    목소리 얼마 전에 대학로 연극 제작자들이 한 데 모여서 제 살 깎기 그만하고 최소한 가격을 만 이천 원은 지키자고 약속했지만 한 달도 못 가서 깨져버렸다네……
    이제는 대학로에 상도의고 뭐고 없어…… 그게 현실이지.
    남자 그렇게 해서는…… 뭐가 어떻게 되겠나?
    목소리 그렇지…… 그렇고말고. 직격탄을 맞은 건 바로 출연 배우라네. 저가 연극엔 보통 배우 4명이 나오는데 회당 출연료는 평균 이만 원에서 오만 원 안팎이지……
    그게 최근에는 만 오천 원까지 낮아졌다네……
    그러니까 출연자들은 연극 출연이 아니라 행사 뛴다고 자조하고 있다네……
    남자 (창밖을 망연히 내다보며) 그 지경이 되었단 말이지?
    목소리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 그래도 오디션 공고를 내면 보통 20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는 거야. 그만큼 연기자 지망생들이 줄을 잇고 있는 거지……
    걔들은 이쪽 현실을 전혀 몰라…… 그래서 열정페이를 감수하는 거지……
    남자 대학로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목소리 하여간에 그 옛날 실험 정신이 넘쳐나서 창작 산실이라고 했던 대학로는 이미 사라져버렸다네.

    일행인 한 떼의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시끄러워진다.
    무대 암전.
    그들은 이제 거리로 나와 벤치에 앉아있다.
    비는 그쳤다. 차가운 바람이 불면서 남자는 옷깃을 여민다.

    남자 오늘 밤은 달이 뜰 텐데……
    목소리 구름이 낀 게 다행이라네. 달빛은 영혼을 설레게 하니까 말일세.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어두운 욕망을 끌어내서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빠지게 하거든. (사이) 자네 기억하나? 그날 밤도 달이 떴었지. 달이 자네를 미치게 한 거라니까.
    남자 그만두자고…… 술이 그립군…… 우린 꽤 많이 마셨지……
    목소리 그렇다네…… 토하면서…… 죽도록 마셔댔지……
    남자 (회색빛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자고. 됐다고…… 됐어. (사이) 자네 얘기 좀 해야겠군. 자네는 연습이 시작되면 반쯤은 미쳐버렸지. (사이) 그리고…… 연습 시작하면서 젊은 사람이 웬 자기 자랑이 그렇게 심했는지……!
    목소리 그래도 그 시절이 너무 그립지. 그때 함께 일했던 배우들이 그립구만…… 너무 그립다고……
    남자 담벼락 안에서 얼마나 그리운지…… 가끔 눈물을 쏟았다네……
    목소리 그들도 중년이 되자 뒤로 물러났지. 우린 함께 늙어간 거야. 걔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배우인줄 알고 연출가 말을 죽어라고 안 들었는데……
    남자 배우로서 자존심이 있었던 거지……
    목소리 걔들 연기는 너무 가식적이고 자기도취에 빠져있었는데…… 그래도 신들린 듯한 몰입과 절절한 감정 표현으로 객석을 빨아 들였던 거야……
    남자 요즘은 어때??
    목소리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네. 20,30대 배우들이 주류인 연극계에서는 중년 배우가 설 자리가 거의 없지. (사이) 작품에서 할머니나 중년 어머니 역도 젊은 배우들이 다 해버리니까. 정작 중년 배우가 설 자리가 없는 거지. (사이)
    그래서인지…… 연극에서 대사가 고작 몇 개 밖에 안 되는 단역 자리라도 맡겨만 주면 감지덕지 하는 거야.
    남자 그건…… 걔들 탓도 있어. 중년 배우들이 왕따 당하는 이유는 간단하다고…… 젊은 연출가들이 중년 배우들은 컨트롤이 안 되니까 안 부르는 거 아니겠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거야. (사이) 배우들이 이력이 날만큼 났으니까 너 왜 연출을 그렇게 하냐며 대들지 않겠어……? 그리고 막판에 늘 뒤집고 말이야……
    목소리 그랬던가?
    남자 그래도…… 자네는 확실한 프로니까 연극의 방향성과 논리가 정확했지. 그래서 고집 센 배우들도 자네한테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어.
    목소리 그래…… 그들도 매우 외로울 거야. 어쩌겠어.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할 줄이야…… (사이) 연출가와 배우 사이에는 늘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있는 거라네. 어쩔 수 없지. (사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면 통속극은 지겨워졌을 걸세…… 가끔 논리도 줄거리도 없는 지리멸렬한 부조리극이나 실험극을 해볼 생각이었네만……
    남자 그래?? 자네의 화려한 꿈이었겠지……
    목소리 나도 알고 있었다네. 이 고약한 연극이 왜 무대에 서야 하는지 무척 고민을 했다네. (사이) 실험극은 시대적인 고통을 안고 가야 하니까 말이야. 끊임없이 시대와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지. (사이) 실험극은 그냥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야겠지. 실험 정신이 요구되니까 몹시 불편한 거야.
    남자 (희미하게 웃는다)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했지…… 아마 실패했던 적이 더 많았겠지.
    관객들이 몰려들고 객석을 꽉 채우면 얼마나 흐뭇했던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웃기고…… 울리면…… 보람도 있었고……
    목소리 그렇고말고…… 옛날에는 그런 시절이 있었지.

    침묵

    남자 (구름 낀 먼 하늘을 바라보고 나서 다시 땅바닥을 바라보며) 자네만큼은 날 이해하겠지? 자네마저도……
    목소리 물론이고 말고…… 자네를 이해하지. (적당한 말을 찾는다.) 음모와 배신이 있었다네. 그리고 강렬한 욕구와 갈망이 있었던 거지. (사이) 자넨 성질이 불같았으니까 참을 수 없었을 거야. 그놈의 성질하곤…… 그 얘를 오디션에서 내가 뽑았지 않은가? 대성할 것처럼 보였거든. 정말 성공했지. 그러니까 마음이 변한거야.
    남자 (꿈꾸듯이) 인간은 변하니까…… 더욱이 여자의 마음이란…… 사랑 때문이었다고 변명하고 싶지는 않네…… 신파조 대사 같으니까……
    목소리 그때 자넨 연극이라고 착각했던 거야. 뼛속까지 연극쟁이였으니…… (사이) 무대 위에서 칼을 휘두른다고 생각했겠지…… 비열한 인간들에게 응징을 한다고…… (사이) 그 칼말이야…… 자네가 직접 벼렸던 거…… 다용도였지. 무대 장치를 하면서도 늘상 사용했으니까. 그 연극에서도 소도구로 이용된 거야.
    (사이) 그리고 말이지…… 내가 자네 재판할 때마다 법원에 갔었지 않은가…… 재판관은 자신의 희생자인 피고인을 정말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피고인의 영혼만이라도 구원하겠다는 생각으로 진지하게 심문을 했던 것이 아닐까? 영원한 저주의 지옥으로 가는 길목에서 구원하겠다고 말이네. (사이) 그러나 그 재판관이 위선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네.
    남자 그건 순간적이었어. 미칠 것만 같았으니까. (사이) 그러나 수십 번 수백 번 후회했다네. (사이) 그때 참았어야 했다고…… 오직 믿음만이 구원을 준다네.
    목소리 믿음만이? 자넨 무신론자 아니면 불가지론자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개종을……
    남자 날…… 배교자인지 변절자인지…… 비난하는 건 아닐테지. (사이) 안에 있으면……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다네…… 너무 외롭지 않은가……
    목소리 그러니까…… 예수쟁이가 되었단 말이지……자네가……
    남자 그렇게 되었다네…… 그러나 나는 신앙심이 너무 부족하다네…… (사이) 나는 후회는 했지만…… 여지껏 회개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하나님이 사면해 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네. 나는 살인자였지 않은가. 내 손은 피로 더럽혀졌단 말이네.
    목소리 자넨 자신을 납득시키려고 애쓸 필요는 없을 걸세…… 칼날이 번쩍이는 그 순간에 당연히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겠지……
    남자 어쩔 수 없었다네.
    목소리 신을 이해하기가 점점 힘들어지지. (사이) 때늦은 후회를 해서 무슨 소용인가? 그때 자넨 참고 참아야 했어. (사이) 얼마나 됐지? 도대체 셈이 되지 않는군. 그런데 석방되기는 한 건가? 그래, 어쩔 셈이야? 세상은 이렇게 변했는데 말이야.
    남자 20년이나 되었다네.
    목소리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 눈 깜짝할 사이라고? (사이) 식구통으로 들어오는 지독히 맛없는 식사라든가, 퀴퀴한 냄새가 풀풀 나는 푸른 죄수복, 소독약을 아무리 뿌려도 어쩔 수 없는 구린내 나는 뺑끼통, 죄수들이 불만에 차서 구시렁거리는 소리, 제복을 입고 거들먹거리는 간수들의 오만하거나 지루하고 무료해서 금방이라도 하품을 할 것 같은 표정, 소름이 돋는 육중한 철문이 철거덕 열리고 닫히는 소리까지 이제 익숙해졌지. 작업도 열심히 했다네. (사이) 그러나 칠흑 같은 밤이 되면 갇혀있는 처지가 더욱 뼈저리게 느껴졌다네. (사이) 정적은 그렇게 무섭다네. 그렇지, 그곳에선 정적이야말로 최고로 무서운 형벌이지. 그 정적이 무서워서 마침내 미쳐버렸다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 연극이 끝나고 불이 꺼진 텅 빈 무대 같았다네. 내 머리 속까지 텅 비어버렸지. 그리고 폭발해 버린 거야. 밤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벽과 철문을 발로 차며 한없이 난동을 부렸지. 그래서 더 무서운 정적이 기다리는 징벌방으로 가게 되었지. 징벌방에선 계구 때문에 옴싹달싹 할 수 없다네. 혁대 같은 거친 가죽으로 꽉 조아버리거든. 그 중에서도 안면 계구가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네. 입을 틀어막고 얼굴을 죄어버리니까 미칠 노릇이지. (사이) 그러나 끝났다네, 끝났어. 조만간 가석방이 될 거라네.
    (생각에 잠긴다.) 그러나 내가 갈 데가 어디가 있겠어. 결국 연극판이지. 그러니까 대학로로 다시 돌아온단 말일세.
    목소리 대학로로 돌아오겠다고?
    남자 내가 어딜 가겠어? (사이) 컴컴하고 텅 빈 무대에 올라가면 그게 내 세상이었거든. 아무도 없는 무대가 가장 연극적이었지. 칠흑 같이 캄캄한 무대에 비춰 들어오는 한 줄기 광선을 내내 그리워했다네.
    목소리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 거야? (사이) 어느새 20년이 훌쩍 지나갔거든.
    남자 어차피 시간이 많이 흘렀어. 다들 까마득하게 잊어버렸겠지. (사이) 그리고…… 어차피 나는 사람들이 안 보는 뒤쪽에서 일할 거니까……
    목소리 ??????
    남자 (힘없이) 그런데 그 희망이 사라져 버렸다네…… 자네가 없는데…… 자네야말로 참고…… 참고…… 기다려야 했어. 내가 곧 돌아 올텐데……
    목소리 그런가?
    남자 (눈물이 글썽해서) 네 얼굴 좀 보여주면 안 될까? 마지막일텐데……
    목소리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그 이그러진 얼굴이 오죽하겠나?
    남자 죽도록 자네가 그리웠어.
    목소리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여기가 두렵다네. 어쩐지 점점 낯설어……
    남자 ……
    목소리 저주하고…… 저주한다네…… 이놈의 연극판을……
    남자 오오오! 우리의 주님! 하나님 아버지시여!
    그 두려운 날에 영원한 죽음에서 우리를 구하여 주소서! 하늘과 땅이 움직일 그날…… 주님께서 유황불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그날…… 우리가 두려워 떨며 심판이 우리에게 떨어질 그날…… 하늘과 땅이 움직일 그날…… 분노와 재앙과 고난의 그날…… 끔찍한 비통의 그날…… 하나님께서 불로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그날…… 우리는 다가오는 분노의 날을 기다립니다.

    무대 조명이 깜빡인다. 그의 얼굴이 어둡게 일그러졌다.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말한다. 그리고 곧 망각의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막이 내린다.

    막이 내려왔을 때 막 사이로 살펴보니 극장은 텅 비어 있었고 불빛은 꺼져가고 있었다. 극장은 갑자기 공포의 먹방으로 변했다. 나는 움찔했고 몸을 떨었다. 그때 지나가는 고양이가 울음소리를 냈고, 문득 깨어났다.
    나지막하게 노래를 불렀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나는 얼마 남지 않은 가석방되는 날의 순간을 상상했다.
    얼마나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던가. 외부로 통하는 감방의 육중한 철재 문이 열릴 것이다.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질 것이다. 그러면 낯익은 콘크리트 담벼락, 망루, 쇠창살, 자물쇠, 운동장, 작업실, 죄수들, 교도관, 불안과 초조, 정적 등과 마침내 이별을 하게 될 것이다. 잘 있거라! 잘 있으라고! 안녕! 안녕! 안녕!
    그러나 가석방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돌이켜보면…… 길고 긴 고난의 여행 길이었다.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자각하게 해주는 여행. 그 여행은 곧 나를 아는 길이었을까? 그러면 무엇을 찾아서 떠난 여행이었을까? 혹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또는 나의 신을 발견하기 위한 길이 아니었을까? 나는 성공했을까? 실패했을까?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침묵 속에서 콘크리트 벽과 망루에 둘러싸인 암흑의 숲을 헤매었을 뿐이다.

    그 연출가는 대학 시절부터 대학로에서 연극을 한답시고 먹고 마시며 놀았는데 그가 대학로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곳에 연극판이 있었고 젊음과 설익은 순수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연극을 하면서 돈을 벌지 못하였거나 아주 조금 벌었다. 그런데 벌써 50줄에 들어선 것이다. 이제 마냥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인데도 그는 여전히 젊었다. 그가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연극을 하고 있으니 재미있었던 것이다. 대학로에서 손바닥만 한 연극계에서도 이런저런 일 때문에 사분오열하고 뒤에서는 흉도 보고 뒷말도 많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게 험담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늘 유쾌하고 명랑했다.
    나는 대학 입시에 떨어진 후 일찍 대학을 포기했다. 몇 년 동안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수표동과 입정동, 예지동을 기웃거렸다. 해병대를 제대하고 나서 무작정 대학로 연극판으로 진출했다. 배우를 하겠다고 열심히 연습을 했지만 배우로서 대성할 가망성은 전혀 없었다. 아무리 해도 무대 연기가 요구하는 신체적인 기교나 발성법이 영 서툴러서 상투적이거나 기계적으로 동작과 대사를 처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이 맡은 배역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출연작은 모두 해야 10편을 넘지 않고 그것도 무대에서 단역에 불과했다.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얻어맞고 쫓겨나거나 죽어서 나가는 역이었던 것이다. 또는 문상객 1번 배역을 맡으면, 상주에게 슬픈 표정으로 말없이 조문 인사를 하고 퇴장하는 게 전부였다.
    어쩔 수 없이 연출로 방향을 틀었지만 연극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인지 공연 대본을 선정하는 문제에서부터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데 한계를 드러내서 그마저도 안 되겠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연기도 안 되고 연출도 안 됐지만 그런데도 죽어라고 연극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여길 떠날 수밖에 없다고 반쯤은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그때 그 연출가를 만났다. (지금 그의 이름을 밝힐 수가 없다. 그의 명예 때문이 아니라 어쩐지 목구멍이 막혀서 이름을 입 밖으로 내보낼 수가 없다. 그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듯 미어진다.)
    그는 작품을 해석, 재해석했고, 인물에 맞는 배우를 선택했으며 자신만의 연출 스타일을 창조하는 세련된 미장센의 달인이었다. 그 당시 연극계에서는 그렇게 인정받고 있었다.
    그 연출가가 말했었다.
    “연극은 우리네 인생과 가장 가까운 예술인 거야. 그러니까 어떤 예술도 연극만큼이나 인간에 대해서 더 생생하게 표현할 수 없는 거야. 연극에는 살아 숨 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지. 너나 나나 연극을 떠날 수 없어. 떠나는 날이 죽는 날이야.
    성공이란 게 무언지 알아?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거야. 그렇다면 성공하는 거지. 자네는 연극계를 떠날 수는 없어. 그러니까 기획을 해보라고. 프로듀서라는게 무대 뒤에 있는 존재이지만 그러나 프로듀서는 총사령관이야…….
    연극에서 가장 먼저 꿈을 꾸는 사람이지…… .
    그리고 그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면 여러 사람들을 모아 설득하고 설명하고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그래서 프로듀서에겐 리더십이 가장 필요한데 자네한테는 그게 있는 거지. 해병대 출신이면서…… 우리는 죽으나 사나 함께 가자고……”
    그렇게 해서 둘은 인연을 맺었고 콤비가 되었다. 내가 프로듀서를 하고 그 연출가는 감독이 되었던 것이다. 그 연출가가 대본을 던져 놓으면 내가 도맡아서 예산을 짜고 자금을 조달하였으며, 그가 오디션에서 고르고 고른 배우들과 출연 계약을 체결하여 리허설을 준비했고, 무대 장치, 조명, 음향, 의상, 분장, 무대 소품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마케팅과 홍보와 광고를 담당 하였으며 포스터, 티켓, 전단지, 팜플렛을 제작해서 배포하였다.
    그 연출가는 연출가로서 고뇌하며 최선을 다하여 오로지 작품에만 매달릴 수 있었으니, 그러므로 우리는 업무 분담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수십 편의 연극을 함께 만들어 대학로에서 공연하였으니 흥행에서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젊은 우리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1997년 그 사건으로 구속되어 대학로를 떠나자 그 연출가가 모든 일을 혼자서 힘겹게 떠맡게 되었다. 연극의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그 연출가가 대표로 있는 극단은 방송통신대학 뒤쪽에 있는 허름한 빌딩의 지하 연습실을 극장으로 개조해서 오랫동안 사용하다가 임대료가 일 년이 넘게 밀리자 결국 쫓겨나게 되었다. 그는 계속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전셋집을 두 칸짜리 월셋집으로 그 월셋집을 다시 한 칸짜리 월셋집으로 옮겼다. 대학로 극단의 터줏대감의 처지가 그러하였다.
    무엇보다도 그 연출가는 연극계에, 대학로에 환멸을 느꼈다.
    어느 날 갑자기 숨졌다. 그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였다. 서울대 병원 영안실 빈소는 사흘 내내 연극인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고 그는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남았다.

    “잠깐만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직원들이 출동해서 확인했습니다. 죽었습니다. 죽었단 말입니다.” 진주교도소의 보안 과장이 기자들에게 말했다. “상황이 정리되어 밖으로 나갔던 직원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는 중입니다. 본부에 먼저 정식 보고를 해야 해서 정신이 없습니다. 현재 시신은 광양읍의 한 병원에 임시로 안치되어 있습니다. 김영만의 형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중이지요. 우리는 형의 말을 듣고 처리해야만 합니다.”
    전남 광양시 봉강면 백운 저수지에서 일자봉으로 올라가는 산 중턱에서 김영만의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교도소에 날아들었다. 그때 교도소는 믿었던 김영만이 귀휴에서 돌아오지 않자 발칵 뒤집혔다. 살인을 저지른 무기수가 탈옥을 했으니 그가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진주교도소는 비상 상태였고 기자들이 벌써부터 몰려들었다.
    귀휴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재소자가 출소하기 직전 일정한 사유에 따라 잠시 휴가를 얻어 교도소 밖으로 나오는 제도이다. ‘형의집행및수용자의처우에관한법률(구 행형법)’제77조에 의하면 6개월 이상 복역한 수형자로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고 교정 성적이 우수한 경우 1년 중 20일 내에서 귀휴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징역 21년 이상을 선고받은 유기수 또는 무기수는 7년을 복역해야 한다. 교도소 내 귀휴심사위원회가 귀휴 여부를 결정한다.
    교만한 눈빛이 형형한 대형 공연 기획사의 대표이자 자칭 유명 연출가, 서울연극연합회 회장이었던 남자와 또렷한 이목구비에 눈빛이 빛나는 아름다운 그의 아내는 연극과 영화, TV드라마를 오가며 연기하는 유명 여배우.
    그해 겨울은 일찍 찾아왔다. 초겨울 깊은 밤. 창문 밖으로 어스름한 달빛이 밤의 유령처럼 어른거렸다. 그날 밤 대학로에 있는 극단 사무실에서 김영만은 필터를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서 잘라냈다. 그리고 혀로 담배를 핥고 나서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퍼진다. 잠시 후 손잡이가 검은 테이프로 감겨져 있는 예리한 칼로 두 사람을 무자비하게 찔러 살해하였다.
    그 여배우와는 그 옥탑방에서 3년 간 동거했었다.
    그는 1심에서는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서울고등법원에서 그 살인의 불가피한 동기가 참작되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그는 20년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교화 프로그램을 충실히 이행했고 직업능력 개발훈련을 받아 몇 가지 자격증을 땄고 다시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등 모범적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귀휴 허가를 받은 것이다.
    당초 김영만의 귀휴 일정은 일주일이었다. 5월 1일 오전 10시에 나가 7일 오후 5시까지 복귀하는 조건이었다. 재소자가 귀휴를 나가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루 4통의 전화로 동선 보고를 해야 한다. 김영만은 교화위원인 신부님의 설득으로 천주교에 귀의해서 종교생활에 전념했고 같은 방 수감자들 사이에서도 모범수로 통했다. 담당 교도관들의 평가도 매우 좋았다. 그런 점들이 평가를 받아 귀휴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허가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예정일에 당연히 복귀하기로 되어있던 김영만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귀휴 첫날인 1일 저녁 늦게 그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앞에 있는 형님 집으로 향했다. 그 다음날부터는 계속 종로구 일대에서 머물렀다. 그의 아버지는 그 사건 이후 화병이 나서 술로 지새다가 죽었고 몇 년 전에는 어머니마저 죽었기 때문에 형님만이 유일한 혈육이었다. 복귀 예정일인 7일 김영만은 오전 9시경에 충신동의 모텔을 나간 뒤 연락이 완전 두절됐다.
    그는 7일 오전 9시경 동대문에서 택시를 타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로 이동했고 고속버스를 타고 광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봉강면 우산리에 있는 보문사에 들려 탁자와 이불만 있는 작은 손님방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그리고 등산을 간다면서 사찰을 나와 산으로 올라간 뒤 자취를 감췄다. 그가 돌아오지 않자 젊은 스님이 다음 날 광양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하였다.
    술패랭이꽃, 제비꽃, 고사리와 부추꽃, 도라지꽃이 피어있는 호젓한 산길 풀 섶에 진달래꽃이 무리지어 만발해 있었다. 산속은 해가 일찍 저물었다. 황혼녘에 빨강과 주홍빛으로 물든 구름이 산등성이에 내려 앉아 있었다.
    그날 오후 늦게 김영만의 시신을 찾았다. 자신의 검정색 청바지로 아카시아 나무에 목을 맨 채 숨져 있었다. 목이 조이면서 고통스러웠던지 심하게 몸부림을 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발견 당시 김영만은 파란색 티셔츠와 하얀 속옷 하의만 입고 있었다.
    시체는 형님이 동의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부검을 마쳤다. 그리고 광양읍에 있는 공설화장장에서 화장되었다.
    사찰 방에서 김영만의 스냅백 모자와 파란색 티셔츠, 깨알 같은 메모가 적힌 노트, 완성되거나 미완성된 수십 편의 연극, 드라마의 대본, 시나리오 뭉치, 성경책, 색이 바랜 아주 옛날 연극 포스터들, 현금 90만 원이 든 가방을 발견했고 그의 지갑에서 귀휴허가증을 찾아냈다.
    김영만은 형님에게 편지를 남겼다.

    형님, 죄송합니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 곁으로 먼저 갑니다.
    제가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조용히 갑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그리고 한 때는 펜팔 친구였다가 그가 청혼을 하여 혼인신고를 마친 연인에게도 보내는 편지가 있었다.
    김영만의 면회 기록을 분석한 결과 광양에 있는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영치금을 넣어주고 면회도 자주 왔으며 그때 그 단체에서 충실한 신도이고 미혼이었던 그 여자를 소개해준 것이었다. 그들은 그가 진주교도소로 이감되어 오기 전 순천교도소에 있을 때부터 아주 오랫동안 수백 통의 열렬한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같은 사람을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받아주고 더욱이 결혼까지 해주었습니다. 저에게 결혼은 큰 의미가 있지요. 가석방을 받는데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귀휴를 나와서 차마 만날 순 없었습니다. 염치가 없었거든요.
    저의 유일한 희망은 연극이었고 대학로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몰라보게 변했듯이 대학로는 변했고 타락했습니다. 절대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저는 그 변화에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겠지요.
    그리고 저의 둘도 없는 친구였고 위안이었고 희망이었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귀한 영혼은 그곳에 틀림없이 남아있었고 그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제가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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