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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완벽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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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완벽한 순간

    분노의 심연을 바라볼 때 심연이 당신을 바라보지 않도록 주의하라.
    ― 프리드리히 니체

    폭력인지, 살인 미수인지, 그 사건은 그 행사가 시작된 직후 순식간에 발생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회장님은 무방비로 당한 것이다. 어떤 민간단체가 주최하는 초청 강연회는 오전 7시 30분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최 측은 회장님이 10분 정도 늦을 예정이라고 방송을 했고 참석자들은 배포된 자료를 훑어보면서 담소를 나누고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연 제목은 ‘우리 문화의 융성과 민족의 미래’였다. 잠시 후 회장님이 입장하여 긴 통로를 지나 메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가 도착하여 여기저기 고개를 돌려서 눈인사를 나누고 나서 착석한 후 환영의 박수와 함께 조찬이 시작됐다.
    최대한 회장님은 유명한 탤런트 겸 배우였고 주로 근엄한 아버지 역을 맡았기 때문에 ‘국민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는 3선의 국회의원으로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고, 현재는 한국연기자연합회 회장, 한국방송탤런트회 회장, 한류콘텐츠진흥회 회장, 전국어버이회 회장, 한국노인연합회 명예회장 등 회장 명함만 10여 개가 넘었다. 70세가 넘었지만 여전히 정정해서 영화나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했고 대외적인 활동 역시 왕성했다.
    그러나 평화로운 조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최 회장이 연단 바로 앞 테이블에 앉은 직후 조찬장 맨 끝 12번 테이블에 앉아있던 범인이 갑자기 일어나 최 회장에게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빠르게 다가갔다. 감색 계열 개량 한복 상의와 역시 감색 계열 하의를 입은 범인은 30센티미터 길이의 과도를 숨긴 채 그대로 최 회장을 덮쳤다. 그때 최 회장은 범인이 옆으로 다가오자 자신에게 인사를 하려는 줄 알고 악수를 하려는 자세로 일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피를 흘리며 바로 얼굴을 부여잡고 고목이 넘어지듯 쓰러졌다. 그때 그의 머리에 얹혀있던 가발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약간 남은 흰머리는 회색이 되어 뒤통수에 매달려 붙어있고 정수리에서 머리 앞쪽은 완전히 주름진 대머리였다.
    김중현이 대담하게 도발하는 눈빛으로 최 회장에게 뛰어 나갈 때 순식간의 일이라 막아서는 사람은 없었다. 회장님은 피범벅이 된 얼굴로 쓰러진 채 가쁜 숨을 토해내며 연신 기침을 했고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대머리에 빛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가 조소하는 듯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며 뭐라고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외쳤다. “개… …. 쓰… …. 뭐! 아… …. 위… …. 출세주의자.”
    그때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해군 장교 출신의 한 참석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테이블에서 물 컵을 들어 그의 얼굴에 뿌리고 번개처럼 손목을 내리쳐 칼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몇 사람이 합세해서 그를 옆으로 밀쳐서 균형을 무너뜨렸다. 그가 테이블에 머리를 부딪치고 바닥에 나동그라지면서 완전히 제압당했다. 급작스러운 상황에서 60대로 보이는 뚱뚱한 여성 참석자가 본능적인 새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고, 어떤 남자는 중얼거렸다. “이런 멋있는 자리에 참석하였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니까, 오길 정말 잘했어, 잘했다고, 회장님 머리가 생판 가발이었다고, 대머리가 번쩍거렸다고, 범인은 운동권의 스타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더라고, 모자를 쓰고 있어서 아쉽게도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니까, 마누라한테 신나게 이야기 해 줘야지. 얼마나 재미있어 할까.”
    한 남성 참석자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급한 목소리로 경찰에 신고를 하여 십여 분쯤이 지나자 경찰 다섯 명이 도착했다.
    참석자들은 웅성거리며 완전히 낯선 표정으로 변한 회장님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최 회장은 그가 휘두른 흉기에 얼굴과 손 등을 심하게 찔려서 피를 많이 흘렸고 특히 오른쪽 뺨에 큰 상처를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상처를 입은 오른쪽 뺨에는 신경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서 상처 깊이에 따라 후유증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았다. 다시 말하면 뺨에는 5가지 신경이 지나가고 있어 이 신경이 끊어졌을 경우 안면마비가 올 수 있는 것이다. 또 귀에서 입안으로 연결되는 침샘관도 뺨에 있어서 침이 새어 나오거나 고일 수 있어 오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서울구치소 변호사 접견실
    모자를 쓰지 않은 그의 얼굴 모습을 본 게 언제였던가. 신문에도 텔레비전에도 항상 헌팅캡을 쓴 모습만 나왔다. 그는 잠자리에 들 때를 빼면 언제나 모자를 벗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새삼스럽게 살펴보니 넓고 둥근 이마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완전히 빛나는 대머리였고 완전히 빛바랜 검정색과 흰색과 회색이 뒤섞인 몇 가닥 머리카락만 뒤통수에 매달려있다. 완전히 낯설고 불가해한 얼굴이었다.
    그의 얼굴이 붉게 타오르며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게 느껴진다. 그 진동은 가슴팍에서 시작해서 내장을 거쳐 바깥으로 퍼지면서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탁하고 낯설고 불쾌했다.
    “이게 얼마만인가…… 변호사님께서 직접 면회를 오다니…… 전혀 기대하지 않은 뜻밖의 일이라서…… 웃어야 할지 감격해서 울어야 할지…… 네가 웬일이야…… 변호사로 선임하지도 않았는데……”
    “너무 흥분하지 말라구. 진정하라니까. 네가 구속됐는데 당연히 와야 하는 거 아니야. 당연히……”
    “글쎄…… 오래간만이네…… 십 년이 훨씬 넘었으니까…… 우리가 친구인 건…… 그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네가 알고 있을까? 나를 조롱하려고 온 거야? 아니면 내가 미쳤는지 확인하려고?”
    “그렇지, 그렇고말고. 우린 오랜 친구이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까지 동기동창인데 말이야. 무슨 오해가 있다면 풀어야겠지. 우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았으니까.”
    “검찰이 살인죄로 기소했다고. 마음대로 하라지……”
    “글쎄 말이다. 검찰이 너무 나가지. 그런데 변호사가 그걸 벗길 수 있을까? 담당 재판장도 워낙 보수적이라고 하니까…… 간단치는 않을 걸. 다시 말하면 변호사는 검사와 판사를 상대로 거친 싸움을 해야 될 거라고……”
    그가 날 노려보았다.
    “어쨌거나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야. 그러나 난 널 의심할 수밖에…… 넌 나의 동기가 궁금할 거야. 강박적 사고 때문이거나 폭력이나 붉은 피에 매료되는 성향 때문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그걸 확인하러 온 게 틀림없어.
    네가 맨날 주장하지 않았어? 인간의 행위에는 반드시 동기가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인간들의 관계, 인과관계를 들먹였지. 물론 법률가로서 당연한 발상이라고 인정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인간은 알 수 없는 거야. 네가 어떻게 알겠어? 동기가 어디에 있지? 원인이 어디에 있어? 원인이 결과가 될 수 있고 결과가 원인이 될 수도 있어. 세상 모든 일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거지. 그래서 인간은……”
    “너무 앞지르지 말게나. 신문을 자세히 읽었거든. 그냥 궁금했던 거야. 우리의 영웅이……”
    “네가 날 비꼬는 거야! 영웅이라고! 네가 날 그렇게 평가한 적이 있었던가? 내심 마음껏 비꼬았겠지. 뒤늦게 겨우 합격하고 나서부터 말이야. 그까짓 변호사 주제에…… 그러니까 너는 줄곧 내 꽁무니에 붙어 있었어!”
    “그렇지. 인정할 수밖에 없지. 나는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동창생의 그늘에 가려 있었던 거지. 삼수까지 했으니…… 그것도 후기로 대학에 들어갔지 않은가…… 그놈의 시험도…… 지긋지긋하지. 그러니까 넌 운동권의 중심 인물이었고 나는 항상 지리멸렬했었지.
    그런데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이람. 우리 내일 모레면 60이라고. 누가 우리 이야기를 들으면 한심한 인간들이라고 혀를 찰 거야. 그만두자고. 그만……”
    “그래, 그만두자. 그건 알아두라고. 나는 멜랑콜리하거나 불안하지도 않고 벼랑 끝 심리상태에 몰려 있지도 않아. 그리고 분노조절 장애이거나 과잉행동 장애는 아니야. 어떤 경우에도 정신적 문제는 없어. 나의 행동은 아주 근본적인 거야. 존재론적이란 말이지.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걸 인정하지 않지. 인간의 심연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어? 하지만 나는 분노의 밑바닥을 내려다볼 용기가 있지. 나는 내 분노를 존중하지.
    그러나 그 분노는 여자와 성적 환상과는 관계가 없는 거야. 그랬더라면 나는 여자들을 강간하고 연쇄 살인을 했겠지.”
    “너는 항상 심오했지. 다소 엉뚱하고 철학적이었고……”
    “네 말은 지금 고깝게 들리지. 우리 이쯤에서 그만두자고. 그리고 부탁인데 다시는 오지 마. 다른 변호사를……
    나는 나이 들면서 이념이나 주의 같은 것은 시궁창에 내다 버렸지. 지금 생각해 보면 지독히도 쓸데없는 공론이었을 뿐이야. 낡았고 소용없는 거야. 나는 이제 혁명가는 아니야. 무슨……
    나를 전율하게 만드는 비일상적인 어떤 모험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던 걸까. 모든 사람들의 놀란 눈길이 쏟아지는 바로 그 완벽한 순간 그 행동을 하도록 바라는 욕구가 있었던 걸까. 줄곧 간절하게 원했었고 비록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더라도 지금도 원하는 순간이었던 거지.
    도스토옙스키는 평생 동안 주기적으로 간질 발작에 시달렸다고 했지. 간질 발작이 시작되면서 의식이 완전히 소멸하기 직전 절정의 순간을 인간 세계의 모든 비밀을 꿰뚫을 수 있는 순간이라고 했어. 그게 절대적인 황홀경의 체험 또는 죽음의 체험, 파국의 체험이고 순간의 미학이었던 거지.
    그걸 기억하라고. 오랫동안 기다렸던 순간. 완벽한…… 아름다운 순간이었지. 칼날이 그의 뺨을 찌르는 순간 말이야. 그리고 손끝으로 붉은 피를 만질 때의 황홀함이란…… 그건 나의 정신 속에서 빛나는 한 줄기 섬광이었다고. 그때 사람들의 놀란 시선이 나에게로 쏟아졌지. 나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쓰러지는 순간에도 웃을 수밖에 없었어.
    개뿔…… 개새끼…… 쓰레기인 거지…… 가발까지 쓴 주제에…… 그러니까 위선자가…… 뭐 아버지……? 지가 무슨 국민 아버지라고……”
    “우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거야……
    그렇지, 그렇다네. 다시 오지 않을게. 잘 있으라고.”
    그는 여전히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또 다시 위축됐다. 우리가 오랜 친구 사이인가? 그를 도대체 이해하지도 못 하는데 말이다. 나는 그의 불가해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나는 괜히 왔다고, 후회했다.

    그의 정신적 상처는 무엇인가? 그는 상처는 없다고 극구 부인하지 않았던가. 그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서 모험을 하고 싶었던가? 그의 번민, 어두운 욕망, 내면에 꿈틀거리고 있는 무의식 속 갈등과 모순. 내가 정신분석학자도 아닌데 이러한 질문에 내가 무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아주 어린 시절 사람들 앞에만 서면 일종의 불안감과 공포감 때문에 얼굴을 못 들고 말을 잘 못 하는 증상이 있기는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이 트라우마는 오랫동안,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까지 지속되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옛날 일이지만,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돈 계산이 깐깐하고 몹시 엄격했던 아버지 슬하에서 크다 보니 마음 펼 날이 없었다고 했다. 심지어는 아버지 생각만 해도 몸이 벌벌 떨릴 지경이었다. 이렇게 위축된 증상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또 다른 트라우마는 어머니의 짙은 그늘이었다. 그는 마마보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끝마다 자신의 어머니를 끌어들였다. 친구들끼리 유쾌하게 농담을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서 어머니가 이 말을 전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하고 쓸데없이 걱정했던 것이다. 친구들이 그 말을 어머니에게 전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어머니에 대한 근심 걱정이 지나치다는 나의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하였지만 또 다시 그러한 자신의 모습이 어머니에게 어떻게 비칠까를 근심 걱정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장남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집착이 자신의 위축된 자아와 충돌했던 것일까?
    나는 젊은 시절 한 때 대학로 뒷골목 허름한 건물 지하실에 있는 우리 소리 연구회에 당피리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가 운영자로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종류의 피리도 제대로 불지 못했다. 그렇다고 피리나 우리 소리에 관해 뛰어난 이론가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연구회는 진보적인 운동권에서는 제법 유명해서 그쪽 사람들이 아지트처럼 모여들었다. 어쨌거나 피리 강습이 끝난 뒤 종종 뒤풀이 자리가 있었고 그는 두주불사하며 말술을 마셨고 그래도 멀쩡한 정신으로 동석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침을 튀겨가며 벌어진 열띤 논쟁의 주제는 항상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불만과 저주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계급갈등에 관한 것이거나 혹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소시민들의 속물근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고향을 떠났으므로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났고 최고의 명문 법대에 합격했으니 그때부터 술을 많이 마셨고 용감해졌고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으며 말이 많아졌다. 그러나 말은 감정이 앞섰기 때문에 논리라는 것이 없었다. 차라리 종횡무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가 남다른 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뛰어난 열정이었다. 그러나 온갖 것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였고 뒷수습은 잘 하지 못했다.
    그가 법대 출신이지만 고시 공부를 한 적은 없었다. 줄곧 운동권의 스타였으니 고시 공부를 하는 나를 계속 비아냥거렸다. 고시 합격해서 독재자들의 앞잡이가 되려고 한다며 비난했던 것이다.
    그러나 10년쯤 지나자 그 연구회는 결국 문을 닫았는데 그것은 심각한 재정난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가 운영했던 이념서적이나 사회과학 책들을 출판하는 출판사도 문을 닫았다. 그가 날 찾아온 이유도 회사의 청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적 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본래 운영이나 경영 같은 것에는 전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와는 그 후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것이다. 언젠가 그가 다시 사무실로 불쑥 찾아온 적이 있었다. 여전히 감색 개량 한복을 입었고 회색 수염을 길게 기르고 검정색 헌팅캡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옷으로 가린 오른손에 차마 눈뜨고 보기 곤란한 심한 화상이 있는 걸 순간적으로 보았지만 그 이유를 물어볼 수는 없었다. 다만 그가 언젠가 무슨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 못하면 영원히 묻히고 만다면서 정부 청사 앞에서 진상조사를 요구하면서 몸에다 기름을 붓고 분신을 시도했단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 후유증이 아닌가 여겼을 뿐이다.
    그가 그때 말했었다.
    “나는 끊임없이 따돌림을 당했다고.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어. 나는 미쳐 날뛰는 분노를 누를 수가 없는 거야. 나는 영웅처럼 큰일을 하고 싶은데…… 좌절감이 느껴지고…… 울분도 느끼지…… 그러니까 높은 사람이라고 거들먹거리는 작자들 말이야…… 장관하고 국회의원하고 국영 기업체의 사장하고…… 그것들은 벼락 출세를 했다고. 형편없는 주제에 그것들이 까부니까…….
    내가 오물로 가득 찬 더러운 뱃속과 내장과 똥구멍까지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거든. 얼간이들이고 위선자들이지. 그래서 더러운 놈들이라고. 우리 소리를 거쳐 갔으니까. 정권이 바뀌니까 그걸 발판삼아서 출세한 거지. 그런데 나는 뭐지?”

    공판기일에, 검찰은 피고인이 이전부터 폭력을 준비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하였다. 그는 최 회장의 개인 블로그에 들어가서 관련된 자료를 검색하였다는 것이다. 최 회장의 키를 몰랐던 피고인이 최 회장의 전신 사진을 통해 키와 몸무게를 검색한 것이라고 하였다. 또 범행 전날에는 형법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였는데 이것은 범행 이후 처벌을 받게 될 조항을 찾아보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검찰은, 피고인이 사건 당일 집에서 30센티미터 길이 과도를 상의 우측 주머니에 넣고 나와서 행사장에 입장해 잠시 앉아 있다가 최 회장을 보자마자 범행에 착수한 점, 팔을 머리 위까지 치켜들어 과도의 날을 하늘 방향이 아니라 지면 방향으로 거꾸로 쥔 채 5회 이상 내려치듯 휘두른 점, 최 회장의 왼팔이 관통될 정도로 세게 내려친 점, 최 회장 얼굴에 길이 15센티미터, 깊이 5센티미터의 상해를 입힌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고인에게 최 회장을 살해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살인미수죄로 기소한 것이다.
    변호를 맡은 진보 단체 소속 변호사는 이것은 순식간에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분노를 이기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사는 피고인이 오랫동안 문화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이전에도 행사장에서 여러 번 소동을 피운 바 있고 이번 피습행위도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행위예술적인 퍼포먼스라고 주장했다.
    검사는 마지막으로 구형하면서 말했다.
    “피고인은 살인의 고의로 피해자를 찔렀습니다. 전에도 여러 번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행동들이 있었는데 그때 엄벌에 처하지 아니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더 이상 관용을 베풀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공판 내내 단 한 번도 후회하거나 반성의 기미가 없었습니다. 자기도취가 심하지요. 그러므로 살인죄를 적용해서 무기징역에 처해주시기 바랍니다.”
    피고인은 말했다.
    “제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보람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지독한 위선자를 찔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인의 고의는 없었습니다. 그를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지요. 온 세상이 나의 빛나는 행위를 주목하면 그걸로 목적이 달성되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붉은 피가 솟구칠 필요가 있었지요. 피는 목마름의 본질이니까요.”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1형사부는 그에게 살인미수죄를 적용하여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재판장은 형을 선고하면서 말했다.
    “피고인은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단순히 위협만 가할 의도였기 때문에 비교적 약한 손목 힘으로 피해자의 얼굴을 그은 것뿐이라고 주장했고 특히 자신은 오른손에 가벼운 신경마비 장애가 있어 칼날의 끝이 아래로 향하게 칼을 쥘 수 없기 때문에 내리찍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상처가 아래로 내려 갈수록 깊어지는 것을 감안했을 때 위에서 내리찍은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상처가 깊어서 안면 신경을 건들었고 남은 인생을 안면마비라는 심각한 후유증을 겪을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제 화려한 배우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지요.
    그리고 피해자가 탄원서를 보내 왔습니다. 자신의 머리는 하도 자연스러워서 사람들이 여태 가발인 줄을 몰랐었는데 이번에 가발이 벗겨지고 보기 흉한 대머리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면서 명예가 크게 훼손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국민 아버지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었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으니 엄벌에 처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검사는 피고인이 자기도취가 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판결에 불만이 있으면 7일 이내에 항소할 수 있습니다.”

    그날,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법정을 나왔다. 점점 피로해지고 무력감을 느꼈다. 15년이라니. 네가 친구라고? 평생을 자기도취에 사는 개새끼! 차라리 그 예리하게 벼린 칼날로 자신의 심장을 찔렀어야 했는데…… 그러면 검붉은 피가 엄청 쏟아졌을 텐데.
    그거야 말로 자기도취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고 나서 가장 완벽한 순간을 음미했어야……

    늦가을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어서 금방이라도 억센 비가 쏟아질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재판 내내 방청객으로 그 법정에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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