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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시계 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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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시계 수집가

    죄는 말하고 살인은 울부짖는다.

    한성기업은 안산시 정왕동에 본사와 공장이 있다. 이 회사는 자동차 생산에 들어가는 피스턴, S/P라이너 등 내연기관 부품과 선박의 중속엔진용 실린더라이너를 생산해서 국내 굴지의 대형 자동차 회사와 선박회사에 납품한다. 임 부장은 이 회사에서 선철이나 고철 등 원재료를 구입하는 구매부 부장이다.
    구매부는 회사에서 핵심 부서였다. 매년 수백억 원에 달하는 기자재와 원재료를 외부에 발주, 수입, 매매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원대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업을 원만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딱 한 사람, 협조자가 필요했다. 그녀는 회계 팀에서 구매한 원료의 수량과 가격을 정산해서 컴퓨터에 올리는 여자 직원이었다.
    그녀는 스물일곱 살이고 결혼은 했으나 아직 아이는 없고 남편은 무위도식하며 지내는 술주정꾼에다 백수건달이었다. 그녀는 업무수행 평가는 중간 정도였지만 얌전했고 사교성은 있었지만 속을 터놓고 지내는 직원은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는 꼼꼼하게 조사했다.
    임 부장은 그 무렵 그녀에게 은근히 접근하였다. 그녀는 임시직 여직원의 입장에서 회장님의 육촌 동생으로 막강한 지위에 있는 부장님의 접근이 싫을 리가 없었다.
    그가 말했다.
    “우리 회사에 온 지가?”
    “삼년이 다 되었습니다.”
    “회사 생활은 할 만 한가? 어때?”
    “저는 항상 불안하지요. 아직도 임시직이니까요.”
    “그렇단 말이지. 내가 정규직으로 올려줄 수 있지. 그러면 급여가 배로 올라갈 거야.”
    그녀의 뺨에는 생기가 돌았으며 약간 벌어진 입에서 깨끗하고 하얀 이빨이 드러났다.
    “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생활이 빠듯했거든요.”
    “지금 하고 있는 업무가 회계 장부를 정리하는 거지?”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전문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했거든요.”
    “내가 큰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어.”
    “부장님 말씀만 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런데…… 궁금하거든요.”
    “아직은 아니야. 구상 단계니까. 그러나 절대적으로 비밀이 필요하지. 우리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지.”
    그 후 그들은 퇴근 후 오이도 쪽이나 대부도 바닷가 횟집에서 자주 만났고 결국 깊은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임 부장은 은근슬쩍 암시를 했다. ‘나는 혼자야, 혼자라고. 알고 있겠지? 난 몇 년 전에 이혼했거든.’ 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육 개월쯤 지나서 충분히 기회가 성숙되자 드디어 사업에 착수했다.
    “이제부터 시작하게 될 거야.”
    “제가 뭘……?”
    “간단하다고…… 아주 간단……”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말씀해 주셔야지요.”
    “간단하다니까……”
    “……”
    그는 교활한 눈으로 재빠르게 여자의 얼굴을 훑어보며 천천히 말했다.
    “그냥 장부상 중국 쪽에서 들어오는 수량을…… 또는 국내 거래처에서 들어오는 수량을 실제보다 조금씩 늘려가라고…… 그리고 말이야…… 단가를 실제보다 높이는 거야…… 내가 그때마다 지시를 할 테니까 그대로 하면 되는 거야……”
    “괜찮을까요? 전 벌써부터 떨리는데요.”
    “날 믿으라구. 내가 누구야. 회장님의 동생인 건 알고 있겠지.”
    “그렇지요.”
    “그러니까, 이건 회장님이 극비리에 지시한 거야.”
    “정말요?”
    “그렇다니까, 그렇고말고. 회사를 운영하자면 비자금이 필요한 거야, 비자금 말이야. 그거 없으면 회사는 망하는 거라고. 세무서나 경찰서, 시청에 무슨 돈으로 갖다 바칠 거야? 그런 돈은 공식적으로 회계 처리가 안 되거든. 그래서 회장님이 내게 특별히 지시한 거거든. 우리 회사에서 회장님이 믿고 맡길 사람이 누가 있을까.”
    구매부는 국내외에 거래처가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회계조작에 의해 돈을 빼돌리고 싶은 유혹이 없을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이나 눈앞의 이익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유혹은 그 사람을 시험한다.
    그는 지난 1994년 2월부터 1999년 2월까지 5년간 무려 2170 차례나 허위 서류를 꾸며서 원재료의 구매 수량과 구매 액을 실제보다 부풀린 뒤 그 차액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회사 돈 75억 원가량을 횡령하였다.

    그의 아파트에는 그의 취향에 따라 항상 오디오 명품, 각종 귀금속 및 명품시계, 비상시를 대비한 상당한 현금이 숨겨져 있었다.
    세상의 온갖 시름을 잊고 오로지 소리의 향연에만 푹 빠져들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울트라 하이엔드 오디오들 —앰프는 테너 오디오 리넬, 스피커는 네덜란드 브랜드 카르마, 소스는 버메스터 —직선형 원뿔 스피커로 유명한 오스왈드 밀 오디오 세트, 스타인웨이 링돌프 스피커, 독일제 울트라손 헤드폰.
    그는 범죄행각이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 날마다 극도로 신경을 곤두 세웠으니 그 피로한 신경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최고 품질의 음악을 들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가 어떤 음악을 좋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특이한 것은 그가 명품시계를 좋아해서 가지고 있는 명품시계가 수십 개로 시가로 환산하면 15억여 원 상당이었다.
    무형의 시간을 담아내는 작은 물건. 여자가 명품 핸드백으로 과시한다면 남자는 소매 속에서 살짝 드러나는 손목 시계로 품격을 드러낸다.
    그는 언제부터인지 초정밀기계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 명품 시계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있었다. 기술과 미학의 만남. 기계식 시계의 은밀한 움직임. 태엽과 휠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개방형 시계로 건축적 구조가 돋보이는 스켈레톤 무브먼트 워치.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최고의 정확성과 기술력을 자랑하는 정교한 메커닉 시계를 마주할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꼈다. 감겼던 태엽이 초당 수백 번씩 회전하며 풀리면서 만들어내는, 착착착착 끊어질듯 끊어지지 않는 규칙적인 미세한 소리에 매료되었다. 그건 멜로디가 침묵 속에 숨겨진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곡선과 심플한 라인은 신비롭기까지 하였다.
    그가 가지고 있는 시계 중에서도 시계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구현한 가장 눈에 띄는 몇 개 브랜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파텍 필립의 칼리버 89
    시계 산업의 중심지인 스위스 제네바에서 하이엔드 시계의 최정상으로 군림하고 있는 파텍 필립. 1839년 창립 이래 최상의 기술력과 희소성, 전통과 혁신을 기반으로 시계를 예술로 승화시켜서 시계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들이 1989년 창립 150주년을 기념해서 33개 컴플리케이션이 탑재된 칼리버89를 출시했다. 진정한 기술력이 집약된 마스터피스로 불리는 이 작품은 1728개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계로서는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회중시계로 알려져 있다.
    바쉐론 콘스탄틴 말테 뚜르비용 엑셀런스 플래틴 컬렉션
    260여 년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 그가 보유한 것 중 가장 값비싼 시계이다. 육각형 시계 케이스가 백금 소재이고 블랙 악어가죽 스트랩을 둘렀다. 더욱이 30개 한정판이다. 시중 가격은 약 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므로 바쉐론 콘스탄틴은 파텍 필립, 오데마 피게, 브레게, 예거 르쿨트르 등 세계 5대 시계 브랜드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힌다. 그러므로 그 당시 그가 살고 있던 35평 아파트의 시세가 2억 원가량 이었으니 아파트보다 훨씬 비싼 시계였던 것이다.
    바쉐론 콘스탄틴 패트리모니 트래디셔널 월드타임
    원통형 시계 중앙에는 마치 지구본처럼 지도가 그려져 있고 세계 37개국 시간을 동시에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들 간 미세한 시차까지도 중력오차 보정 장치에 의해 완벽하게 확인할 수 있다. 보석상들의 말에 의하면 이 제품 역시 보통 최저 가격이 6000만 원대에 거래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일 년에 10개 내외가 팔린다고 한다.
    롤렉스 서브마리너 옐로 골드 116618B
    세계적 시계 메이커인 스위스 롤렉스가 만든 제품. 서브마리너는 잠수시간을 알 수 있는 눈금이 새겨진 회전 베젤과 300m 방수 기능을 갖춘 다이버 시계이다. 수십 년 동안 발전을 거듭해서 일반 스틸보다 더욱 견고하고 내부식성이 강한 904L 스틸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으로 개선됐다. 롤렉스 서브마리너는 색상이 그린, 블루 다이얼에 금빛 골드 브레이슬릿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 청판 금통으로 불리는 옐로 골드가 있는데 이 옐로 골드는 롤렉스 서브마리너 중에서도 최고급 모델이다. 그러므로 시중에서 다른 서브마리너 모델보다 2배가량 비싼 5000만 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예거 르쿨트르 듀오미터 퀀템 루너
    세계 5대 명품 브랜드에 꼽히는 예거르쿨트르의 시계이다. 그 화려한 명성답게 듀오미터 퀀템 루너는 시중에서 5000만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역시 일 년에 10개 내외가 팔리고 있다.
    위블로 빅뱅 에어로뱅 골드
    고무 스트랩과 골드가 결합해 있어서 실용적이면서 고급스러움을 잃지 않는 럭셔리 스포츠 시계이다. 이러한 럭셔리 스포츠 워치는 위블로의 독특한 영역이다. 위블로 빅뱅 에어로뱅 골드는 현재 시중에서 5000만 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그 이외에 값비싼 시계로는 프랑스 리차드 밀, 스위스 최고급 시계 브랜드인 오데마 피게, IWC, 오메가, 까르티에, 브레게, 보메 메르시에, 에르메스, 론진, 불가리, 피아제, 로저 드뷔, 브라이틀링, 태그호이어, 제니스, 몽블랑 등등 시계들이 있었다.

    그녀가 완전히 바보가 아닌 이상 4년 쯤 지나면서부터 그 큰 사업이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임 부장의 개인 사업임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러나 발을 빼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리고 그들은 땔 레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임 부장은 그녀에게도 명품 백과 명품 시계 등을 시시 때때로 선물했고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명품을 손에 쥐자 들뜬 나머지 과시하고 싶어서 명품 백을 들고 값비싼 시계를 차고 다녔다.
    그러나 그녀도 눈치는 있어서 친구나 아는 사람들에게는 남대문 시장에서 산 짝퉁이라고 둘러댔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백수건달 남편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가 비꼬듯이 추궁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의 질문을 회피하고 그의 매서운 눈초리와 몸짓에 반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예전에, 그러니까 결혼하기 전 일이지만 절도범으로 감방을 다녀온 전과가 있었고 그 시절 장물아비들과 접촉하면서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감별하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남편은 그녀를 다그쳤고 입을 열지 않자 무지막지하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임 부장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범위에서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백수건달이 임 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잠깐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부도 바닷가 횟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다음에 바닷가 갈대밭을 지나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백수건달이 말했다.
    “우리가 처음 만나지. 그렇지 않은가?”
    “그런 것 같네. 웬 반말? 내가 누구인지나 알고 있어?”
    “마누라가 다 이야기 했다고. 그 사업이 잘 돼가고 있는 모양이지. 반말한다고! 곧 심한 욕설도 듣게 되겠지.”
    “무슨 소리야? 오해하지 말라고.”
    “뭐, 오해라고?”
    “오해가 아니면?”
    “그게?”
    “뭘 알고 있는데?”
    “다 알고 있지. 마누라 년이 죄다 털어 놨다고. 그년이 공범 아니겠어? 그래서 조만간 회사에 찾아갈 예정이야. 회장도 만나고. 알겠어! 회사로 가서 만나야 될 사람들을 만날 거라고.”
    “뭔가 잘못 짚은 것 같은데……”
    “개수작 떨지 말고……”
    “다시 말하지만 오해라고…… 오해라고. 그건 정상적인 업무처리였고 돈은 전부 회사 구좌에 입금처리 되었으니까.”
    “그렇게 자신만만하면 회사에서 보자고. 모든 회계장부를 까발리면 될 거 아냐?”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돈이 몹시 궁하겠지. 그렇다면 술값 정도는 도와줄 수 있지. 어때?”
    “그렇지. 이제야 본론이 나오는구먼. 그러나 술값 정도로 막을 수는 없지. 나는 지금도 대부도에서 언제든지 술은 공짜로 마실 수 있거든. 큰 게 필요하단 말이야. 큰 게……나는 내 몫을 정당하게 달라는 거야.
    그게 공평한 거라구. 그러니까, 혼자 먹지 말라는 거지. 그러다가 배가 터져서 죽는다고.”
    “그게 공평한 걸까?”
    남편이란 작자는 술에 취해서 계속 역겨운 트림을 하였다. 임 부장은 식당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은근슬쩍 눈치를 보면서 똑같이 술을 마시는 것을 자제하였다. 술에 취해서 일을 그르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는 한껏 비위를 맞춰주며 마구 술을 들이키게 하였던 것이다.
    백수건달은 연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반쯤 피우다 말고 발로 비벼 끄고 다시 새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당신은 내가 불면 감방에서 10년 넘게 살아야 되겠지. 내가 전과가 좀 있으니까 그쪽 사정은 잘 알고 있지. 그 정도면 말이야, 아무리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를 사도 10년 밑으로 내려올 수는 없다고. 감방에서 10년이라…… 견딜 수 있을 것 같애? 어림없지.”
    “술주정꾼 자식이…… 백수건달 주제에 누굴 협박하는 거야! 씨발새끼!”
    “주제파악 하라고. 주제를.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란다고, 어디서 큰 소리야.”
    “그래?”
    그는 20센티미터의 예리한 칼을 안주머니에 숨기고 있었고 그 남편이 술에 많이 취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이 번쩍번쩍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몹시 긴장하고 있었고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남편의 멱살을 단단히 잡고 몇 번이고 뒤흔들어서 휘청거릴 때 칼의 손잡이로 그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있는 몸뚱이를 뒤엎어서 조직폭력배처럼 양쪽 허벅지를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이십 여 차례 찌르고 또 찔렀다. 그것은 마치 꿈속에서의 일 같았다. 남편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계속 신음을 하고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고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3시간 동안 버티다 몸 안에 있는 피를 반쯤 출혈을 한 후에야 실혈사 失血死 로 사망하였다.
    임 부장은 신음하는 남자를 지켜보면서 중얼거렸다.
    “개자식! 술에 절어서 힘도 없는 자식이 까불기는. 네 놈이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음미하고 싶었지. 카르마 스피커에서 나는 음악소리를 듣는 것처럼. 음악과 리듬은 영혼의 은밀한 장소에 파고들거든.
    너는 인생을 무위도식했으니까 죗값을 치른 거라고. 그거야말로 공평한 거지.”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
    옅은 어둠 속에서 시야에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닷가 마을의 불빛이 아주 저 멀리서 아스라이 깜빡거리고 있다. 제멋대로 자라난 갈대밭은 모래와 흙과 마른 나뭇잎이 엉켜서 어수선했다. 사람들의 인적이 끊긴 샛길은 고르지 않고 해안 쪽으로 경사를 이루며 내려갔다. 파헤쳐진 흙더미에서 축축한 냉기가 올라왔다.
    임 부장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는 무어라고 (?)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냉소적이고 섬뜩한 악마의 욕망을 드러내는, 욕설에 가까운 짧은 말을 계속 내뱉고 있다. 그는 온힘을 다해서 미리 풀 섶에 숨겨두었던 삽과 곡괭이로 깊이깊이 파 들어갔다. 그리고 시체를 묻었다.
    “휴, 정말 힘드네. 나쁜 자식! 오랫동안 찾을 수 없을 거야. 아주 깊숙이 묻어버렸으니까.”
    바닷새들이 어둠 속에서 둥지를 찾아 해안가로 날아들고 있었다.
    임재민 부장이 누구인가. 그는 남편이 알고 있는 이상 그로부터 끊임없이 협박에 시달릴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후한을 없애지 않으면 모든 것이 탄로나 결국 파국이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즉시 삼십육계가 필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곧 이사로 승진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구매부 업무를 후임자에게 넘겨주어야 하는데 그때는 모든 게 밝혀지게 될 터였다.
    문제는 김미경을 데리고 가야 하는지 여부였다. 그러나 여자를 남겨 두면 모든 게 즉시 탄로 나기 때문에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여자를 남겨둘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가기로 한 것이다. 그녀에게 애정은 없었다. 언젠가는 어떻게 해서든지 처치해버리든가 돈 몇 푼 쥐어주고 내버려야 할 여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임재민은 그 무렵 밤마다 거의 잠을 이루지 못 했다. 구토 증세가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머리와 온몸이 욱신욱신 쑤셨다. 그는 진통제를 한 움큼씩 먹고 나서야 새벽쯤 지쳐서 잠들었다.
    그들이 해외로 밀항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했다. 밀항은 궁평항에서 낚싯배를 가장한 어선을 타고 서해안 먼 바다로 나가면 중국 칭다오에서 출발한 30톤짜리 어선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데리고 가기로 한 것이다. 그때 늙은 낚싯배 주인에게 5천만 원을 건넸다. 200마력의 디젤 엔진을 단 5톤 플라스틱 재질의 어선이었다.
    그날 디젤 엔진은 순조롭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선은 통통거리며 항구를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속도를 높였다. 배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하얀 물마루가 줄기차게 밀려왔고 파도가 뱃전에 부딪쳤다. 곧바로 먼 바다로 나아갔다. 회색 구름 사이로 태양이 찬란하게 빛났다. 여자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초췌한 얼굴이다. 지난 밤에는 뜬 눈으로 꼬박 밤을 새웠다. 그녀는 멀어져가는 궁평항을 되돌아보았다.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모든 게 두려웠다. 그녀는 남자 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오후 늦게부터 바람이 불면서 파도가 높았고 그들은 심하게 뱃멀미를 해서 뱃속에 들어있는 건 죄다 토해내야 했다. 그런데 중국 배는 예정보다 8시간이나 늦게 도착해서 그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그 어선은 중국 쪽 거래처가 이미 손을 써 놓은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다음 날 오후 늦게 칭다오의 한적한 어촌 부두에 내렸다. 오랫동안, 10년이 넘는 동안 거래관계 때문에 알게 되어 임 부장과는 친형제처럼 지내게 된 중국 고철상이 주선해서 중국 남쪽 광저우 근처 베이장 강 유역에 있는 사오관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사오관에는 한국인이 별로 없었다. 그 도시는 그 고철상의 고향이었다. 그가 주택 등을 알선해 주었고 장기 체류에 필요한 정교하게 위조된 여권과 기타 일체의 서류를 만들어주는 등 모든 편의를 돌보아 주었다.
    남자는 제일 먼저 대도시인 광저우로 가서 원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대적으로 얼굴 성형을 했다. 그들은 몇 년간은 가지고 간 돈으로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하게 살았다.
    그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그는 중국에 수십 번 이상 출장을 갔었고 자주 여행을 하였다. 표준 중국어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서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광대한 영토에 5천년의 유서 깊은 문화와 역사가 깃들어 있는 중국 방방 곳곳을 여행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는 중국과 동종 동류여서 중국의 원형과 거의 식별할 수 없다. 중국은 동아시아 문명의 원류가 아닌가.
    그는 그때 중국인과 중국 음식, 중국 문화를 비웃으면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관습과 관행, 전통, 인습, 사고방식, 삶의 존재 양상 ― 과도한 혈연주의, 물질만능주의, 무조건적인 복종의 미덕. 짝퉁 천국인 나라. 루쉰이 「아Q정전」에서 지적했던 철저한 방관자적 기질, 스스로를 높이고 과장하는 자고자대 自高自大의 버릇. 목소리가 크고 도박을 좋아하고 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
    여행은 비행기나 기차, 장거리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되었다. 광저우가 제일 먼저였고 언제나 출발지 역할을 하였다.
    광저우는 광동성의 남해 연안에 위치하여 홍콩과 마카오와 인접해있고 동남아를 마주보면서 중국 남쪽의 관문으로서 수륙교통의 요충지이다. 구이린은 안개 낀 이강을 천천히 휘돌아가면서 신선이 된 것 같은 무아지경에 빠진다. 구이린은 아주 옛날부터 관광지로 유명했다. 장가계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색채를 띠고 있어서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곳이다. 창사는 후난성의 성도이자 중국 제일의 곡창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700만 인구를 자랑하는 거대 도시로 성의 정치, 경제, 교통의 중심지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모택동이 태어나서 자라고 학습을 한 곳이다. 항저우는 중국의 파라다이스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다. 서호, 안개비, 용정차의 향기 속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강남의 부드러움을 잘 보여준다. 중국의 산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산이 황산이다. 황산은 안휘성 남부 황산시에 있지만 항저우와 매우 가깝다. 중국 10대 관광지 중 하나로 꼽히며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상하이는 역사와 현대가 공존한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중국 경제, 무역, 금융의 중심도시이다. 매우 개방적이고 자부심이 많은 상하이 시민들이 살고 있다. 임시정부 청사, 루쉰공원 속 윤봉길 의사 의거지와 기념관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장강이 바다와 만나는 와이탄의 야경이란! 칭다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속 유럽풍의 항구도시다. 부드러운 맛의 독일식 칭다오 맥주로 유명한 곳이다. 칭다오가 있는 산동성 내에는 오악의 으뜸인 태산, 공자의 고향 곡부, 맹모삼천지교의 고향 추성, 소설 「수호지」의 양산박, 강태공의 사당, 장보고의 사당인 적산법화원, 진시황의 신하 서복이 불로초를 찾아 여행을 떠난 출발지인 량야대 등 역사적인 볼거리가 가득하다. 세계에서 거주하기에 가장 적합한 도시로 선정된 중국 산동성에 위치한 웨이하이는 아름다운 자연풍경, 검푸른 바다,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보유한 깨끗하고 깔끔한 도시이다. 옌타이는 산둥 반도에서 다렌을 마주보고 있는 항구도시이다. 깨끗하고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로 산과 바다가 잘 조화되어 있다. 톈진은 천자가 이곳의 항구로 들어왔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항구도시다. 수도 베이징과 바다를 이어주는 관문도시이고 중국 최대의 공업도시다.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 대외교류의 중심지이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역사, 문화의 도시이다. 베이징의 약칭은 경 京 이다. 베이징에서는 천안문광장, 고궁, 천단, 명십삼릉, 만리장성, 용경협, 이화원 등 가볼 곳이 너무나 많다. 다렌은 북방명주 또는 낭만의 도시라고 불리는 아름답고 깨끗한 항구도시이다. 20세기 초 50여 년간 러시아와 일본의 통치를 받았으니 도시 여기저기에서 이들 국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센양은 동북지방의 최대 도시이다. 후금의 태조 누루하치가 수도를 세웠으며 청 왕조가 베이징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수도로 번성했던 곳이다. 창춘은 길림성의 성도이고 동북3성의 중심지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이다. 일본이 만주국을 건설하였을 당시의 수도였기 때문에 지금도 창춘 시내 곳곳에는 일본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하얼빈은 동북아 중심에 있으며 유라시아 첫 연결로의 입구에 있는 교통의 요지다. 유라시아 대륙 횡단로의 명주라고 불리며 중국 동북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지 않은가. 그때 야수와 같은 심정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대지를 뒤흔드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옌지는 우리말과 한글 소통이 가능한 도시다. 중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이 살고 있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이다. 대성중학교와 윤동주 생가가 있다. 백두산을 관광하려면 옌지를 거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충칭은 북경, 상해, 천진, 광주에 이어 다섯 번째로 큰 도시로서 중국 서남 지역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한때 장개석의 국민당 정권은 일본군의 대공세에 밀려 전시 수도인 남경과 무한을 잃게 되자 깊숙한 후방인 충칭에 임시 수도를 세웠다. 대한민국의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가 있는 곳이다. 청두는 20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도시이다.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가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고 촉나라를 세웠다. 그래서 도처에 삼국지, 두보와 관련된 사적이 있다. 시안은 중국의 5천 년의 역사를 보려면 시안을 여행하고 5백 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을 여행하고, 미래를 보려면 상하이를 여행하라고 그랬다. 시안의 옛 이름은 장안이다. 여기에서 ‘장안의 화제’라는 말이 유래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시안은 중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이다. 주, 진, 한, 수, 당 등 13개 왕조의 수도였다. 난징은 중국 4대 고도 중 하나이다. 유서 깊은 문화와 역사의 도시이다. 양자강 하류 삼각주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강남 경제의 중심이 되었던 곳으로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나라를 세운 곳이다. 선전은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이자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중국 최초로 특별 경제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등소평이 처음으로 현대 자본주의를 도입한 도시이기도 하다. 도심지에는 야자수와 다양한 종류의 열대나무들이 예쁘게 줄지어 서있다.
    그리고 쇼핑의 천국이라 불리는 매우 매력적인 도시 홍콩과 마카오가 있다. 그들은 홍콩과 마카오에 제 집 드나들 듯이 자주 들렸다. 며칠씩 머물며 쇼핑을 하고 돌아왔던 것이다.
    위 여행들이 끝난 후, 나중에 그들은 머나먼 중국 서쪽의 타클라마칸 사막과 우루무치, 투루판에도 갔고 티베트 고원과 라싸에도 갔다. 그리고 브라마푸트라 강을 따라 장취에서 수취안허까지 도보 여행을 하였고 네팔과 카트만두, 부탄까지 갔다 왔다.
    그 넓은 중국을 돌고 돌면서 그 자신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중국의 구석구석에는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아주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살아온 흔적이 뚜렷하니까. 그렇게 여행을 하면서 2여 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그 동안 아무리 주마간산 격으로 돌아다닌다고 해도 광대한 중국 땅 여기저기를 다 돌아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계획된 여행이 모두 끝나자 무료한 시간이 찾아왔다. 평온이 극도에 달하면 권태를 낳고 권태는 다름 아닌 지극한 고통에 이르게 된다. 그가 중국에 와서 하고자 하는 게 있었을까? 원대한 계획이라도? 뭘? 아무리 궁리를 해 봐도 마땅한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릴 없이 시간을 죽여야 한다. 뿌리칠 수 없이 달려드는 불감증과 무기력 증세. 그는 되뇌인다.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다시 말하면 지금, 여기서, 할 일이 없다고! 아무것도 없다고! 하긴 뭘 한다고!”
    중국에서 뿌리를 내리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돈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붕 떠 있었으니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곳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한국과 그가 오랫동안 살았던 그 짜증나는 도시에 무슨 미련이 남아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되돌아갈 수도 없었고…… 나는 살인자이고 나를 굳게 믿어주던 사람들을 배신한 배신자니까.
    우리는 아주 감쪽같이 사라졌었지.
    남자는 그 무렵 너무 무료했고 동시에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느꼈다. 만성적인 소화불량에 시달렸고 또 다시 밤이면 심한 불면증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수면제를 복용해야만 했다. 여자와는 티격태격하며 자주 말다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때는 매일 인사불성이 되도록 독한 술을 너무 많이 마셨고, 순전히 그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댔다. 다음 순서는 도박이었다. 그는 뻔질나게 마카오에 드나들기 시작했고 어떤 때는 며칠씩이나 또는 몇 주일, 몇 달간 머물기도 했다.

    한국의 조폭들이 마카오 등 해외에서 정킷방을 운영하고 그곳으로 초대받은 고객들이 수백억대의 도박판을 벌였다. 그런데 조폭의 두목들이 직접 카지노를 운영하는 게 아니었다. 마카오 쪽에 호텔 카지노 룸을 빌려 VIP들을 초청하는데 그 방들이 바로 정킷방이다.
    정킷(junket)이라는 용어는 원래 미국에서 공무원들이 공금으로 유람 삼아 다니는 시찰을 뜻했다. 그러나 마카오에서는 원정 도박 고객을 알선한다는 의미로 통했다. 정킷방은 개인이나 단체가 카지노 측에 일정액을 지불하고 VIP룸을 임차해 운영한다. 국내 조폭들은 일단 1년 단위로 70억~150억 원의 보증금을 내고 마카오, 홍콩 등지에 카지노 VIP룸을 임차해서 정킷방을 마련하는데 이곳에서 하루 수십억 원대의 판돈이 오가는 도박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마카오 쪽은 범서방파 계열의 광주 송정리파가 주름잡고 있고 필리핀은 청주 파라다이스파와 광주 학동파가 그렇게 하고 있다.
    이들은 조직을 동원해서 국내 모집책에게 항공료, 숙박비, 판돈 모두 대준다고 하면서 주로 돈 많은 부동산업자, 중소기업의 사장, 주식투자가들, 유명 연예인, 프로야구 스타 선수들을 데려오도록 지시한다.
    정킷방에서는 주로 카지노 게임의 왕이라 불리는 바카라 도박을 벌인다. 고객과 고객, 고객과 딜러가 승부를 겨룬다. 바카라는 뱅커와 플레이어의 어느 한쪽을 택해 9이하의 높은 점수로 승부하는 카드 게임이다. 불과 30초가 되지 않아 승부가 끝난다. 빠르면 한 판이 단 5초 만에 결판이 나기도 한다. 판이 돌아가면서 무한대의 풀 베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킷방 안에선 한 번에 3억 원씩 베팅할 수 있기 때문에 순식간에 10억 원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회전율이 빠르고 중독성이 강한 도박이기 때문에 한 번 발을 붙이면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한다.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일확천금이 어른거리는 마법의 세계였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원초적 불안과 함께 뇌신경을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전율이 있었다.
    조폭들은 정킷방에서 고객이 쓰는 게임비의 1~5퍼센트를 롤링수익(수수료)으로 받고 여기에 고객들이 잃은 돈의 40~50퍼센트를 루징 수익으로 챙긴다. 또한 해외 원정 정킷방 도박은 환치기가 되지 않으면 도박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폭들은 환치기 수수료까지 챙기게 된다.
    임재민은 정킷방에서 도박에 빠졌다. 그에게 최면을 걸어서 가장 황홀하게 하는 곳. 가슴을 죄어오는 긴장감과 순간적인 결단이 뒤따르는 곳. 매 순간 눈앞에 환희와 환멸의 숫자들이 펼쳐지면서 이익과 손실, 행운과 불행, 천국과 지옥이 엇갈린다.
    그러나 그는 안산시 선부동 한 오피스텔에 있는 사설 환전소에서 환전해서 가지고 간 돈과 중국 거래처에 미리 송금해 놓았던 돈 등 대부분을 탕진하였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제 별 볼일 없는 그는 정킷방에서 쫓겨났다. 그는 남은 몇 푼의 돈으로 슬롯머신의 버튼을 눌렀다. 그는 며칠째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하였고 눈은 흐릿해서 초점이 없었다. 그는 어깨에 가벼운 리넨 천을 두르고 반쯤 누운 자세로 손에 쥔 지폐를 악마의 입에 수시로 집어넣는다.
    그는 집도 팔았고 결국 그렇게 목숨처럼 아끼던 명품 시계와 귀금속까지 헐값에 팔아 넘겼다. 결국 알거지가 되기 직전까지 몰린 것이다. 그래서 가짜 여권을 만들어서 필리핀으로 건너간 것이다.

    그들은 필리핀으로 왔지만 생활이 막막했다. 한국인 관광객이 몰려드는 마닐라 북쪽 앙헬레스에서 남자는 한국인이 하는 주유소에서, 여자는 유흥업소가 즐비한 워킹스트리트의 옷 수선 가게에서 일했지만 도대체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남자와 여자는 이제 틈이 벌어져 있었고 그들 사이는 원만치 못했다. 어쨌든 출발부터 모든 것이 어긋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대화가 오래 계속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임재민은 한국 남자 관광객들이 골프와 도박, 성매매를 위해서 그곳으로 몰려들기 때문에 몇 년 동안 관광 가이드로 일했다. 그러면서 돈 많은 관광객을 유인해서 광주 학동파가 운영하는 카지노의 정킷방으로 데리고 갔고 그쪽으로부터 뽀찌를 받아 챙겼다. 사실 이 뽀찌 수입이야 말로 짭짤해서 그는 상당한 돈을 모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경험을 쌓은 후 세부로 옮겨서 직접 조그마한 관광회사를 차렸고 그러면서 생활은 더욱 안정되어 갔다.
    요즘 들어 그의 몸은 살이 찌고 머리는 숱이 빠지기 시작했다.
    사건은 어느 해 12월에 발생했다. 술에 취한 남자는 새벽 5시 쯤 귀가했다. 집에는 여자와 어린 아들과 민다나오 섬 출신의 가정부가 있었다. 남자는 곤히 자고 있던 여자를 억지로 깨워서 거친 대화를 나눴다.
    “네 년이 죽도록 밉지…… 참고 살았지만……”
    “갑자기……”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이구만.”
    “무슨 말을……”
    “더러운 년 같으니라고…… 실토하지 않으니까……”
    “……”
    “내가……”
    “……”
    그는 점점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말했다. 그의 눈은 격렬한 분노와 질투 때문에 이글거리고 있다.
    “나는 어떤 이유로 불가능하지. 그 때문에 이혼했던 거고. 저 아들 놈은 누구 자식이지? 대략 짐작은 가지만……”
    “이제 와서…… 우리 그렇게 알고 동의한 것이 아닌가요? 나는 자식이 필요했다구요. 자식마저 없으면 어떻게 이 지겨운 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겠어요.”
    “이제 와서라고…… 이제는 참을 수 없지. 갈수록 참을 수가…… 동의는 무슨……”
    “당신은 참으로 뻔뻔하지요. 그런 주제에…… 그걸 말 안 했구먼, 참고 참았지. 살인마야, 살인마라고. 나야말로 여태까지 참는 데까지 참았다고.”
    “이제 본심이 나오는군. 널 위해서 한 거라고…… 그게 너 때문이었다고…… 무슨 할 말이 있어? 네가 살인을 사주한 거지, 아니면 암시를 했거나.”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었지요. 그 남자는 자주 집을 비우기 때문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구요. 나는 나중에서야 어렴풋이 알았다구요…… 당신이 힌트를 주었으니까.”
    “막 나가고 있구만. 내가 중국으로 건너갈 때 널 데리고 가는 게 아니었어. 참 많이 망설였다고. 그땐 상황이 어쩔 수 없었지.
    네가 예뻐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니까. 필리핀으로 올 때도 버리고 오는 건데. 중국에서 굶어죽건 말건……”
    “거꾸로 이야기하고 있군요, 나야말로 어쩔 수 없었지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마약과 술에 절어 죽게 된 걸 구해주었더니…… 당신은 정말 잔인한 인간이지요. 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렇게 괴롭혔으니…… 오래전부터 신경쇠약으로…… 어쩔 수 없다고요…… 이제는 갈라서자고요. 막판에 왔으니까.”
    “이혼하자는 말이지? 그런데 너무 늦었어. 이제는 없어지라고. 내 인생에 방해만 되니까. 난 귀국해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도망 다니는 것도 지겹지, 지겨워……”
    임재민은 냉정해지기 시작했고 술기운은 완전히 달아났다. 그의 눈빛이 번쩍번쩍 빛나기 시작했다. 결단의 시기가 온 거였다. 타오르는 분노와 증오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그의 내면 심연에는 지금 헤아릴 수 없는 기괴한 악이 들끓고 있었다.
    이혼! 이혼 좋아하네! 그래! 이게 이혼이야! 내가 끝내주지! 시간이 없다고! 정말 아쉽군! 바로 처단하는 거야! 거침없이 찔러야 하는 거지! 여유 있게 단말마의 고통과 경련을 느끼게 해줄 시간은 없으니까……!
    그리고 아주 멀리 떠나야 한다. 필리핀은 수천 개의 섬들과 바다로 둘러싸인 넓고 넓은 나라 아닌가. 만약 여의치 않으면 그 후에는 동남아로 갈 것이다. 나는 어디로 정처없이 떠도는 것인가? 아니면 도망가는 것인가? 삼십육계 주위상책 三十六計 走爲上策 이라고 할 것이다.
    도시의 북쪽을 가로지르는 연산 燕山 과 연산에서 기원한 연 燕 나라가 있었던 까닭에 연경 燕京 이라 하고, 또는 유주 幽州 , 원나라 때는 대도 大都, 경성 京城, 경사 京師 라고 했던 베이징 北京. 베이징의 창안제 거리의 서쪽 끝 구역에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가 사는 ‘중난하이’가 있고 그 부근에 지도부 사람들을 주로 상대하는 최고급 시계점이 있었다. 나는 그때 ( 내가 오래 전에 중국에 출장 갔을 때를 말한다.) 최고급 시계점에 진열된 명품시계들을 넋을 잃고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내 인생의 비극적 운명은 결정되어 버렸다. 그것들에 완전히 매혹된 그 순간에 이미 결정되었다. 그것들을 갖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마음속에서 예정했던 대로 진행했다. 부엌에 있던 예리한 칼을 들고 나와 휘두르며 여기저기 수십 차례 마구 찔렀다. 김미경은 쓰러졌다.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가슴을 덮쳤고 피가 흥건히 고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지난 밤 더 길고 더욱 고통스러웠던 악몽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통증이 잦아들면서 그녀는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여자와 아이는 현장에서 숨졌고 그는 안방 비밀 금고에 보관 중이던 몇 개의 명품시계와 귀금속, 현금을 챙겨서 서둘러 집을 떠났다.
    벌써 날이 밝아왔다. 붉은 색과 황금색으로 물든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이 떠올랐다.
    가정부가 남자를 경찰에 신고했다. 그는 집에서 한참 떨어진 한 허름한 모텔에 잠시 몸을 숨겼으나 출동한 필리핀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세부 라푸라푸교도소에 수감됐고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교도소는 낡은 건물과 시설들로 인해 지저분하고 음습했다. 녹이 슨 격자 무늬 쇠창살은 흔들면 떨어져 나갔고 칠이 벗겨진 시멘트벽은 갈라져서 외부에 노출된 배관은 썩어서 그 기능을 하지 못 했다. 그래도 죄수들을 감시하는 몇 개의 망루와 교도소 외곽을 둘러싼 낮은 콘크리트 담장과 담장 위 녹슨 철조망은 그 곳이 교도소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는 필리핀 교도소에서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었다. 교도소 안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마약을 하는 일은 보통이었다.
    헤드는 키가 작고 마른 체구이기는 하지만 구릿빛 얼굴에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지고 있다. 양쪽 팔뚝에는 용이 혀를 날름거리는 타투가, 가슴팍에는 암수 호랑이 두 마리가 뒤엉켜서 으르렁거리는 타투가, 등에는 독사들이 머리를 쳐들고 우글거리는 타투가 예술적으로 새겨져 있다.
    그의 진짜 이름은 아무도 몰랐고 그냥 두목이라는 뜻에서 헤드 head 라고 불렸다. 마약 밀매 조직의 중간 두목이었으니 제동 장치가 있는 정교한 접는 칼을 공공연히 몸에 지니고 있었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권총까지 반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처럼 그의 부하 두 세 명이 감옥 밖에서 그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그는 그 두목의 비호를 받았다. 그리고 그가 수시로 건네주는 초록색 코카 잎을 씹을 수 있었다. 그걸 오래 씹으면 혀와 입술, 목구멍이 얼얼해진다. 온몸이 나른하게 풀리면서 가벼워지고 조금도 피로를 느끼지 않게 된다.
    그는 심지어 두목으로부터 젊은 필리핀 여성을 소개받아 교도소에서 정기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여성이 면회 오면 같은 방에 있는 다른 동료들이 30분 간 자리를 비켜줘 둘만의 공간을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끔 토요일에 교도소 밖으로 외박 나갔다가 월요일에 돌아올 수도 있었다.
    교도관들은 자주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뇌물이 난무했다. 그들은 온통 부패할 대로 부패해 있어서 뇌물을 주면 안 돼는 일이 없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경찰이 돈을 안 받으면 검찰이 받고, 검찰이 안 받으면 판사가 돈을 받고 풀어 준다. 안 받으면 결국 나만 손해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래서 어디에서든지 돈을 듬뿍 쥐어주기만 하면 안 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필리핀 사법제도는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많이 달랐다. 필리핀에서는 긴급체포해서 48시간 조사토록 하는 제도가 없고 현행범으로 체포하거나 명확한 물적 증거를 갖고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으면 유력한 용의자라도 신병 확보가 어렵다. 판사 수가 부족하고 구속 요건도 까다로워 구속영장 발부까지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흔하다. 또한 재판 기간이 법률에 따로 정해진 게 없어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몇 년 만에 첫 재판이 열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법원은 경찰과 검찰의 수사기록을 모두 무시하고 오직 법정에서만 진실을 가리는 철저한 공판중심주의에 의해 재판을 진행한다.
    임재민의 1심 재판은 3년이 넘게 걸렸다. 그는 여자와 아이를 살해한 사실을 부인했고 세부 법원은 공소기각으로 그를 석방했다. 필리핀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재판에 필요한 형식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할 경우 공소기각 처분이 나오는데, 이 사건 핵심 증인이자 목격자였던 가정부가 민다나오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 법원과 연락이 두절됐기 때문이었다.
    민다나오 섬은 필리핀 남부의 큰 섬이고 이슬람 반군의 거점이기 때문에 반군이 시도 때도 없이 이곳저곳에서 출몰하여 여러 지역에 정부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한다.

    (자신의 말에 의하면) 명문대 법대 출신의 자칭 법률전문가는 임재민이 세부에서 같은 관광업자로 알게 된 남자였다.
    그는 법대를 졸업하고 10여 년간 고시공부를 했고 계속 떨어지자 결국 포기하고 무위도식하는 백수건달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치고 생활이 곤궁하자 무슨 탈출구가 있을까 해서 필리핀으로 건너왔던 것이다.
    그는 술만 마시면 맨날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주절주절 이야기했다. 자신은 재수가 옴 붙어서 떨어진 거라고. 실력도 형편없는 동창들이 그저 운이 좋아서 합격해가지고 판 검사가 되었다고. 다시 말하지만 고시는 채점에 너무 문제점이 많은 거야. 모두들 시치미를 떼고 있다고. 합격자들은 이미 합격이라는 기득권을 얻었기 때문에 그들의 영광에 먹칠을 하고 고시의 권위에 금이 갈 새라 쉬쉬하고 있어. 그런데 채점 위원인 교수들이 강의시간에 솔직히 고백하는 거야. 우리가 몇 년을 고생해서 그 결과가 표출된 답안지를 채점하는데 글쎄 몇 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거지. 제대로 읽지도 않고 그저 한 번 쫙 훑을 뿐이라는 거지. 몇 천 장이나 되는 답안지를 어떻게 꼼꼼히 읽을 수 있겠냐는 거지. 그래서 재수 좋은 놈의 답안지는 어쩌다 채점위원의 눈에 쏙 들어가서 합격점을 받고 운이 없는 놈은 아무리 잘 까발려놔도 소용없어. 재수가 진짜 더럽게 없는 놈은 영락없이 과락이라고. 채점위원이 사모님하고 언짢은 일로 사소한 말다툼이라도 한 날이면 그날 채점을 당한 답안지는 영락없이 몇 점을 손해 본다는 거지. 내 말이 틀린 게 아니야. 내가 떨어졌다는 게 그걸 증명하는 거야.
    그는 정말 국내 법률에 무지 해박했다. 그는 한국 형사소송법상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고, 또한 헌법상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필리핀에서 이미 재판을 받은 사람은 다시 처벌 받을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래서 임재민은 그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됐다고 생각했고 한편 그가 가르쳐 준 일사부재리라는 지고지순한 위대한 원칙을 굳게 믿었다.
    임재민은 1999년 3월 초순경, 아직 바닷가 날씨는 추웠는데 여자의 남편을 대부도 해안가 갈대밭에 묻었다. 그러나 시신은 2년 뒤에 발견되었고, 경찰 수사도 비로소 시작됐다. 원래 그 자리는 개펄이었던 곳을 막아 생긴 땅인데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을 개발하기 위해 불도저로 갈대밭을 밀어내던 과정에 불도저 기사가 땅 속에서 하얀 물체를 발견하였는데 그게 사람의 뼈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일단 뼈의 크기와 모양을 보고 희생자를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남성으로 추정했고 키는 165센티미터에서 175센티미터 정도로 추정했다. 사망시점은 대략 2년 전 전후였다. 그리고 희생자의 DNA를 추출해서 통보했다. 그래서 강력계 형사들은 그 DNA를 근거로 2년 전 실종신고를 한 가족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그 가족들의 DNA와 일치 여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죽은 남자의 신원이 밝혀진 것이다.
    안산경찰서의 강력계 형사들은 희생자의 신원이 밝혀짐에 따라 그와 결혼했던 여자의 행방을 좇았고 그 무렵 행방불명이 된 여자와 남자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이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16년이 이미 흘렀으므로 이 사건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만료됐다. 이젠 범인이 붙잡혀도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로 처벌할 수 없게 된 것이다. 2007년에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25년으로 연장되었고 다시 2015년 8월 공소시효 자체가 폐지됐으나 이 사건 당시에는 살인죄 시효가 15년이었기 때문이고 그 기간이 만료된 것이다.

    그런데 임재민은 정확히 16년 1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2015년 4월이었다. 한국 총영사관을 찾아온 그는 한국에서 밀항해 온 불법체류자이니 고국으로 보내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총영사관 담당자는 일단 그를 필리핀 공안 당국에 넘겼다. 필리핀 공안은 간단한 조사를 통해서 남자를 단순 불법체류자로 인정했고 강제추방을 위해 구류처분을 내렸다. 물론 그 당시 공안조사에서 그는 두 건의 살인사건과 관련한 내용은 일체 말하지 않았다.
    인간의 본능인 귀소성 때문이 아니었다. 떳떳하고 당당한 귀향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너무 너무 지쳐있었다. 그는 오직 안전한 귀국을 원했다. 그러나 죽어도 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인천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인천 공항에서 밀항단속법 위반 혐의로 임재민을 체포해서 구속했다. 그 법은 ‘밀항이란 관계기관에서 발행한 여권, 선원수첩, 그밖에 출국에 필요한 유효한 증명 없이 대한민국 외의 지역으로 도항하거나 국경을 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또한 밀항을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그의 과거 행적을 면밀하게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16년 전 행방불명이 될 당시 같은 회사에 다녔던 여자도 함께 행방불명된 사실과 여자의 남편이 피살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단서로 담당 형사는 16년 전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과 피해자 가족,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그가 다녔던 안산시 정왕동에 있는 회사 관계자를 찾아다니며 정밀하게 재조사를 시작했다.
    그 회사에서 30년 째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김정행 전무이사는 말했다.
    그게 1999년 3월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그 일 때문에 고생 꽤나 했었지요. 회사에 난리가 난 것입니다. 그때 여자는 남자보다 일주일 전쯤에 임신했다고 하면서 회사에 사표를 냈습니다. 우리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지요. 의심할 여지가 없었거든요.
    그러고 나서 임부장이 회사에 나오지 않은 채 우편으로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깜짝 놀랐지요. 회장님의 육촌 동생이고 회장님의 신임이 대단했거든요. 회장님은 모든 중요한 업무를 주로 그와 상의해서 결정했지요. 그런데 사직서에서 지금 건강이 좋지 않아서 당분간 쉬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골로 내려간다고 했습니다.
    임재민이 누구입니까. 시골 읍내에 있는 상고를 나와서 상대에 들어간 수재였지요. 상대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 들어갔는데 회장님이 회사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해서 간신히 설득하여 데리고 왔지요. 그때 회사가 막 클 때라서 유능한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만약 그 사건이 없었다면 회사에서 승승장구해서 진즉 대표이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임재민은 40세 초반에 불과했는데 이사로 승진할 예정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회사는 연 매출이 1조 원이 넘습니다.
    그 후 후임 구매부 부장이 관련 서류와 회계 장부를 점검하였는데 서류가 감쪽같이 전부 폐기되어 있었습니다. 컴퓨터를 복원하려고 했지만 전문가들도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한 달 여에 걸쳐 일일이 수작업을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대조해 보았더니 장부를 조작해서 거액의 돈을 가지고 사라진 것이지요. 그리고 그 여자는 임 부장의 공범이었는데 우리는 그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일이 있었고 금융위기의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우리 회사는 거의 망할 뻔 했습니다. 겨우 다시 살아난 것이죠.
    한 달쯤 지나서 모든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을 때 회사 전 직원을 동원해서 임 부장을 찾아 나섰지요. 그가 살던 아파트는 은행에 근저당이 최고 금액으로 설정되어 있었고 방들은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습니다. 원목가구 옷장에는 양복과 등산복, 속옷, 넥타이들이 무질서하게 잔뜩 쌓여있고 아파트 입구에는 구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도대체 구두가…… 도망갈 때 그 많은 구두가 필요했던 것일까요. 그리고 예금구좌는 폐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실과 방에는 천 권도 넘을 책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지요. 급히 도망가면서 정신이 없었던 것이지요. 주로 시집과 소설책이었고 역사나 철학, 여행 관련 책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책을 너무 많이 읽고 나서 머리가 약간 이상하게 돌아가지 않았나 생각했지요. 그리고 클래식과 팝송, 재즈, 남미음악, 샹송 등 LP판과 CD가 수백 장이 널려 있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음악을 좋아했는지 그때 처음 알았지요. 회사에서는 음악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음악은 뒤틀린 인간의 정신을 치료해주는 약이라고 했는데요, 그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니었지요.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알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열 길 물 속은 알 수 있어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것이지요. 그는 외모나 언행을 보면 진짜 지성인처럼 보였습니다. 돌이켜보면…… 그에 대해서는 어떤 선입견도 있을 수 없었지요.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후 보니까 아주 교활한 인간이었습니다.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악랄하게 해먹었지요. 그렇다고 그가 사람을 죽인 악마까지는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어떻게…… 그때 경찰이 와서 여자의 남편이 죽었다고 말했지만…… 설마……
    제가 그때 그의 시골집과 연고지는 전부 찾아다녔습니다. 심지어 단골 술집까지 뒤지고 다녔지요. 그러나 오리무중이었습니다.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지요. 그러나 여태껏 해외로 밀항한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거나 무인도에 있는 줄로만 생각했지요. 여전히 수수께끼 투성이었지요.
    여자의 집은 안산시 대부동에 있었습니다. 초라한 13평짜리 연립주택이었는데 그나마 전세였습니다. 도망갈 무렵 집주인에게 사정사정해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은 후 사라졌습니다. 물론 집주인은 여자가 사정이 딱하다고 사정하니까 기간이 남았지만 보증금을 돌려주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여자가 어디로 갔는지는 자신은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재조사 과정과 과거 수사기록에서 관련 사실을 알아낸 경찰은 남자를 신문했고 그는 순순히 살인 관련 일체를 자백 하였다.
    그는 1999년 3월에 있었던 사건에서 당당하게 살인혐의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여자와는 필리핀에 가서 헤어졌기 때문에 자신도 그 후 그녀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고 밀항 시점에 대해서도 모른다고 시치미를 뗐다.
    그러니까 공소기간 내에 사업 관계상 필리핀에 왔다 갔다 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에 근거지가 있었고 따라서 공소시효가 완료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범인이 출국하면 공소시효가 정지되지만, 이 남자처럼 밀항을 했다면 출국 여부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아 공소시효가 그대로 흘러갈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입증할 책임은 검찰에 있다. 그러나 검찰은 무슨 근거에서인지 아직 공소시효가 살아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검찰은 16년 동안 그가 국내에 머무른 흔적이 없고 마지막 발견 장소가 필리핀이었던 점 등 입증 자료를 통해 피의자가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는 형사소송법 제253조 3항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1999년 3월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국내에 거주한 사실이 없고 국내에서 금융거래를 한 적도 단 한 차례 없었다. 그가 근무하던 회사나 거래처, 친인척 등 아무리 수소문 해봐도 국내에서 그를 봤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이고 전기, 가스, 상수도 요금이나 신문대금을 납부한 사실도 없었다. 경찰은 만약 그가 1999년부터 2015년까지 국내에 거주했다면 단 한 사람의 목격자나 증거물이라도 제시할 수 있을 텐데 그는 그런 자료를 전혀 내놓지 못했다.

    본국 경찰의 지시를 받고 불법체류 경위를 조사하던 필리핀 현지의 코리안 데스크 경찰들은 그가 필리핀에서 자신의 부인과 아들을 살해한 살인사건 피의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검찰청으로 직접 그 사실을 통보했다. 코리안 데스크는 현지에서 조사한 결과 그는 필리핀 법원에서 이미 무죄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이 경우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해서 두 번 처벌할 수 없는데다가 만약 한국에서 재수사를 받는다 해도 증거가 부족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보고하였다.
    세부 주재 한국 경찰은 민다나오 섬 남쪽 끝에 있는 헤네랄산토스까지 조사차 갔다 왔고 필리핀 당국에 관련 각종 수사기록을 요청했다. 임재민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 자료는 모두 세부 경찰서가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리핀 당국의 협조가 절실했던 것이다. 그런데 필리핀 당국은 과거 수사기록과 관련 증거물을 일부만 보관하고 있었다. 임재민이 우리말로 쓴 범행을 부인하는 진술서와 가정부의 경찰 진술서는 있었지만 부검의 소견서와 범행에 이용됐던 흉기는 세부 법원 증거물 창고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검사는 지난밤을 꼬박 새운 것처럼 매우 피곤해보였다. 하지만 임재민은 구치소가 제공한 푸른 수의를 입고 있었지만 너무 긴장하지도 않고 매우 신중해 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필리핀에서 이미 충분히 경험한 바가 있거든. 필리핀이나 여기나 그게 그거라고. 틀림없다고. 그리고 충분히 준비했으니까, 준비를.
    검사가 심문을 하였다.
    “왜? 그렇게 순순히 자백하시는 거죠? 너무 솔직해서 놀랄 일인데…… 뭘 믿는 구석이 있는 겁니까? 너무 순진한 건가? 스스로 자백했기 때문에 그걸 근거로 경찰은 몇 가지 증거까지 확보했지요.
    아니면 반성하고 회개했기 때문인가요? 오랜만에 고국에 온 소감이…… 많이 변했지요.”
    “반성은 무슨…… 전 반성이니 회개 같은 것은 모릅니다. 그럴려면 왜 저질러요. 빨리 끝냅시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걸 가지고……”
    “빨리 끝내자고? 그렇단 말이지요. 그런데……?”
    “전, 이미 끝난 일을 가지고 귀찮게 구는 것을 이해하지……”
    “이미 끝났다고……?”
    그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검사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래서 자신의 절박함을 숨긴 채 검사의 속내를 떠본다는 생각으로 자신 있게 말했다.
    “그렇지요. 제가 왜 서둘러 귀국했겠습니까? 저도 웬만큼 알아보고서 귀국했단 말입니다. 그것도 아주 해박한 법률 지식을 가진 법률전문가한테…… 밀항단속법은 인정해야겠지요. 그것 뿐 이지요.”
    “법률전문가라고? 선무당 사람 잡는 거 몰라요?”
    “그 사람 진짜라구요.”
    “그럼, 그렇다고 치자고요. 그런데……”
    “1999년 3월의 일은 제가 솔직히 자백했어요. 그러나 작년에…… 그러니까 2014년 3월에 공소시효가 끝난 것 아닙니까.”
    검사가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다니까요. 그러나 헛물켜지 마시라고요. 16년 전 사건이란 말이지요. 용케도 시효가 완성되기는 했지요. 지금 국회에서 ‘태완이 법’이라고 해서 살인범의 공소시효를 완전히 폐지하는 법안이 한창 논의 중인데 아직 통과가 안 되었거든요.
    그러나 피의자는 빠져나올 수 없어요. 형사소송법 제254조 제3항은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고 규정하고 있거든요. 그 전문가 양반이 이 규정을 깜빡한 모양이네요.”
    “아니지요, 아니란 말입니다. 그 친구는 해박해요, 해박하단 말입니다. 제가 필리핀에 간 것은 도피하려고…… 그러니까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간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잠시 동안 먹고 살기 위해서 사업차 간 것이지요. 그래서 세부에서 여행사를 한 것이지요. 더 빨리 귀국할 수 없었던 것은 어떤 말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필리핀에 살면서도 한국에 자주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저의 생활 근거지가 여기니까요.”
    “그렇다면 그 자세한 경위를 말할 수 있나요?”
    “말씀드릴 수가……”
    검사의 목소리가 부글거리는 게 지금 속이 끓고 있다. 검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러고 나서 필리핀에서 보내온 기록 중에서 노란 포스트잇이 붙은 쪽을 새삼스럽게 들쳐보았다.
    “뭐가?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는 건가요? 그건 피의자의 자유이니까 맘대로 하세요. 여기 보라고! 꽤…… 쓸 만한 게 있지. 물론 충분하지는……”
    “…… 충분할 리가 없겠지요.”
    “충분하지 않다고?”
    “그렇지요. 그건 법정에 가서 판사에게만 말할 수 있지요.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필리핀이 좋다는 것이지요. 저는 필리핀의 사법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필리핀의 사법제도라고? 그럼 할 수 없군요. 그렇게 해 보시지요. 그런데 이건 알고 계셔야 할 겁니다. 우리가 구체적인 밀항 시점을 제시하지는 못 하더라도…… 물론 1999년 3월경에 밀항했겠지만 그 늙은 어부는 이미 죽고 없더라고요…… 그런데 1999년부터 피의자가 한국에 없었다는 점을 충분히 입증하면 그걸로 우리 임무는 끝나는 것이지요. 그 다음부터는 피의자가 구체적으로 한국에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어요?”
    임재민은 다소 동요한 듯 보였다.
    “그건 변호사가 해야 할 일이지요.”
    “변호사인들……”
    “변호사가 많은 돈을 받았다면 그것쯤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함께 도망간 여자는? 어떻게 되었지? 김미경 말이야? 경찰에서는 필리핀에서 헤어졌다고 했는데……”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그 후론 전혀 모르지요.”
    “그럴까?”
    “아무튼 저와는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뻔뻔하긴…… 유분수가 있어야지…… 아주 교활하다고 해야겠네요. 자기도취…… 자기기만…… 세상이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 갈 만큼 어수룩하지는 않지요. 지금이라도 속 시원히 자백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짜증나게 하지 말고……
    그나저나 배심원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경악을 할까요? 필리핀에서 여자와 어린 자식을 죽였더구만. 그렇단 말이지. 그래도 말이지, 인간이라면 아들까지 죽인 것은 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가요? 제가 교활하다고요?”
    “그렇지요…… 검사를 끝까지 농락할 셈인가요?”
    “아니지요. 믿어주세요……”
    “아들까지……”
    “어쨌거나 그 아들은 제 자식이 아니지요. 그 여자가 어느 남자와의 사이에서……”
    “그래도 그렇지…… 악마가 따로 없지?”
    “아니에요, 아니……. 귀찮았어요. 그 앨 데리고 오는 것 말입니다. 저도 고국에 돌아와서 모든 걸 다 훌훌 털어버리고 가뿐하게 새 출발을 하고 싶었거든요……”
    “가뿐하게……?”
    “그렇지요. 가뿐하게 새 출발을 해야지요.”
    “그렇게 쉽게 새 출발이 될까?”
    “뭐가 문제인가요. 다 끝났다고 보는데…… 필리핀에서 이미 재판을 받았고 그 재판은 확정된 것 아닙니까? 그리고 이를 입증할 증거도 마땅치 않을 텐데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거지. 우선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피의자한테는 소용이 없어…… 알겠어…… 이미 대법원 판례에 나와 있단 말이지. 1983년 판례의 취지는 이런 거야. 피고인이 외국에서 이미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 경우에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적용할 수 없다는 거야.”
    “그렇단 말이죠? 그렇게 오래된 판례가 지금도 타당할까요? 지구촌 시대에도 말입니다. 어디에서든지 이미 처벌을 받았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말입니다. 판례는 언제든지 변경이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충분히 일리가 있는 겁니다. 왜, 아니겠어요. 정말 해박하십니다. 판례는 언제든지 변경이 가능하지요. 그러나 함부로 변경되는 게 아니지요.”
    “저는 필리핀에서 이미 3년 넘게 살았단 말입니다.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닌가요? 정말 억울합니다.”
    “지금 억울하다고 하셨나? 어련하시겠어.”
    “그러나 증거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저는 모두 부인할 것이니까요.”
    “그것도…… 그렇지요. 정말 큰일이군요. 그런데 사람을 둘씩이나 죽였다면 무슨 동기가? 또는 어떤 분노의 감정이?”
    “동기 같은 것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필리핀 쪽은 모든 게 허술하니까요. 증거가 제대로 보관되어 있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아무리 뒤져도 증거가 나타날 수가 없지요.”
    “그런데 그 가정부 말입니다. 피의자는 가정부 이름이라고 할까, 얼굴은 기억하고 있겠지요?”
    “그야 물론입니다. 티앙카 말이군요. 약 2년간이나 함께 살았는데요…… 그러나 민다나오에 돌아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무도 모르지요. 필리핀 법원이 몇 번씩이나 소환장을 보냈지만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요…… 필리핀에 있는 코리안 데스크가 이번 사건으로 아주 수고를 많이 했어요…… 그녀의 고향인 헤네랄산토스 교외 밀림 속에 있는 마을까지 찾아가서 조사를 했으니…… 알고 봤더니 그 티앙카는 국제결혼을 해가지고 우리나라에 살고 있었어요. 며칠 전에 조사를 했지요.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잔인했다고 하더군요. 자신은 그걸 목격하고 나서 정신적 후유증 때문에 오랫동안 졸피뎀이라는 수면제를 먹어야만 잠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날 새벽에 가정부는 피의자가 눈에 핏발이 선 채 악마가 되어 마구 칼을 휘두를 때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직감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허겁지겁 도망을 쳤답니다. 큰 실수를 한 거예요. 그때 가정부까지…… 지금 몹시 후회되겠네요……”
    “국제결혼을 했다고요……? 그럴 리가?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능청 그만 떠시지요. 제가 그렇게 한가하지 않거든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금 화성에서 잘 살고 있어요. 임신 중이지요. 남편과 함께 왔었는데…… 남편이 나이는 들었지만 아주 좋은 사람이더라고. 법정에서 오랜만에 해후 하시겠네요.”
    “……”

    임재민은 2건의 살인사건에 관해 조사를 받았고 검찰은 살인죄와 사체유기, 밀항단속법 위반으로 그를 구속 기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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