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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찍새와 뽀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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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찍새와 뽀찌

    2호선 지하철 서초역 2번 출구에 있는 12층 건물의 9층에 이유경 변호사 사무실이 있었다. 서로 만나기로 사전에 약속이 돼있었던 것이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변호사님은 유명하시니까.”
    “무슨……”
    “변호사님은 서울 중앙에서 형사부장하다 나오신 거네요. 일 년쯤 전에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전관예우를 잘 받으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만…… 여부가 있겠습니까. 지금 한창…… 듬뿍 받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지금 형사23부 부장님하고는 법대 동기시고 연수원 동기시고 가족들끼리도 친하다고 들었습니다. 변호사님이 영월 지원장 할 때 그 분은 원주 지원장을 하였다면서요.”
    “그렇고말고요. 우린 가족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전화로 대충 말씀드렸습니다만 긴히 상의할 일이 있습니다.”
    “마음 푹 놓으시고…… 허심탄회하게 말씀 하시지요”
    “죄송하지만 담배 한 대만 피우겠습니다. 아! 재떨이 같은 게 보이지 않는군요. 그만 두겠습니다. 참, 변호사님은 공군에서 군법무관 제대하실 때 그때부터 담배를 끊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거물 브로커는 검은색 양복에 붉은 넥타이를 맺다. 네모진 얼굴 표정이 의젓하고 아주 의기양양하다. 지금 살살 눈웃음을 지으며 교활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지금 프리랜서로 뛰고 있습니다만 몇몇 큰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 소속이 필요하지요. 검찰 쪽에 괜스레 책잡히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쪽에도 굵은 선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절 건드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만……
    무슨 말씀인가 하면 저를 이 사무실의 사무장으로 해주십시오. 그런데 사무장이라고 하면 이제는 구닥다리 냄새가 나지요. 그래서 말인데요, 사무국장이라고 해 주시고 변호사회에 정식으로 사무직원 등록도 해주십시오.”
    “글세, 필요하다면 그렇게라도 해야겠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며칠 전에 특수부에서 기소했는데 마침 23부에 배당이 되었습니다. 아주 아주 큰 건이지요. 이 사건은 말 그대로 고구마 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고 작은 민 형사 사건이 줄줄이 걸려있거든요. 이번에 한 몫 잡아야지요. 절호의 기회 아닙니까.
    그래서 말인데요, 이 기회에 아파트도 넓히고 사무실도 아주 넓은 대로 옮기세요. 저기 걸려있는 저런 수채화 그림은 싸구려 모조품 같네요. 저런 건 저라도 그릴 수 있지요. 이참에 값나가는 진짜를 몇 장 걸으세요. 그러면 수준 높은 고객들이 알아볼 겁니다. 그리고 미국에 유학 가있는 애들한테도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게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그룹이라고 하셨나요?”
    “그렇지요. 그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합법적인 주식회사가 몇 개 모여서 수익성이 좋은 사업을 이것저것 하고 있으니까요.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솔직히 말해서 구미가 당기네요.”
    “그렇겠지요. 요즘 좋은 사건이 씨가 말랐는데 이런 대형 사건은 좀처럼 보기 드물겁니다.”
    “너무 궁금하군요. 도대체……”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전 잔챙이가 아닙니다. 제가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기는 뭐 합니다 만은 서초동에서 몇 안 되는 거물 중에 거물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예…… 그렇지요. 저도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큰 결심을 하고 단독 개업을 하였는데 영 신통치가 않습니다. 지금 있는 사무장들은 전부 무능하지요. 사건을 가져오지를 못 한다니까요. 기껏 가져온다 해도 잔챙이들만……”
    “톡 까놓고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쪽 바닥에서 찍새들의 뽀찌는 30%입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지요. 그것만 보장해주십시오.”
    “글세, 그게 공정가격이라니 전들 어쩌겠어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조금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자세한 것은 기록을 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어떤 기업에서 실적이 전혀 없는 유령 기업 두 곳을 거저먹기로 인수하였는데, 서울에 있는 세무서에서만 20년이 넘게 근무한 전문가 중에 전문가인 세무사를 시켜서 연간 매출액이 각기 150억 원인 것처럼 재무제표를 꾸몄고, 그걸 여러 금융기관에 감쪽같이 중복 제출해서 모두 110억 넘게 대출을 받아냈지요.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규제가 완화되면서 관할 세무서가 발급한 확인서가 아니라 세무사가 써준 확인서가 있으면 대출이 가능하도록 되어있거든요. 그런데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그게 얼마 전에 들통이 난 것이지요.
    어느 성실한 은행원이 아무도 모르게 회사 공장을 현지 조사차 방문했다가 공장이 기계 설비 하나 없이 텅 비어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지요. 그래서 검찰에 사기죄로 고소를 했습니다. 지금 그 세무사가 구속되어 있지요.”
    “좋습니다, 좋아요. 그렇다면 좀 알아봅시다. 피해를 변상하고 합의는 하였나요?”
    “변호사님도 순진한 말씀만 하십니다. 110억 원을 어떻게 변상하고 합의할 수 있겠습니까. 그 돈은 진즉 모두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겠지요. 그러니 합의는 불가능하지요. 그리고 금융기관은 공공기관이여서 쉽게 합의가 안 되지요. 만약 개인이라면 제법 똑똑한 애들을 동원할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조건으로……”
    찍새가 아주 느긋한 표정으로 거들먹거렸다.
    “제가 크게 불렀지요. 제 말이라면……. 우선 착수금으로 2억을 드릴 겁니다. 그리고 보석이 되면 성공보수금으로 2억이고 최종적으로 집행유예로 석방된다면 5억을 드릴 겁니다. 그것도 전부 현금으로 지불할 것이지요. 변호사님 세금 줄이게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만족하십니까?”
    “꽤, 구미가 당기는군요. 모처럼 사건다운 사건이지요. 보석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김 부장한테 가서 싹싹 비벼야지요. 개업하고 나서 한 번도 부탁한 적이 없었거든요. 김 부장이 개업식에 왔었는데 사건만 가져오라고 하면서 눈을 찡긋했지요.
    그리고 특수부장도 절친한 고등학교 후배이지요. 아시다시피 법조계는 다 그렇게 끼리끼리 연결되어 있어요. 보석을 신청하면 그 친구한테 부탁해서 까다롭게 굴지 말라고 하는 거죠. 다시 말하면 ‘적의처리 하시기 바람’ 이라고 해 주는 거죠.
    최종적으로 구형을 할 때 10년 구형할 것을 7년쯤으로 낮추는 것이죠. 검사의 구형이라는 게 판사를 압박하는 측면이 있거든요.”
    “금상첨화입니다. 역시나……믿겠습니다. 이 사건만 잘 해결되면 다른 사건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투자 사기사건과 유사 수신사건도 수사가 진행 중에 있는데다 그것들이 민사소송과도 연결이 되어 있거든요.”
    “무죄의 가능성도 있는지 검토해 보아야지요. 이건 기록을 꼼꼼히 검토해 봐야 하긴 합니다만…… 무슨 말이냐 하면 제 경험에 의하면 봐줄 거라면 차라리 화끈하게 무죄를 해 주는 게 낫거든요.
    집행유예보다는 뒷말이 더 없지요. 판사가 무죄라는데……”
    변호사는 그날 늦게 퇴근하면서 혼자 지하 카페에서 빈 속에 술을 마셨다. 너무 정신적으로 피로했고 뭔가 씁쓸하고 역겨웠던 것이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그런 말을 하다니……. 벌써 진짜 변호사가 다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집에 일찍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맥주와 위스키를 되는대로 마구 섞어서 토할 때까지 마셨던 것이다.

    지하철 2호선 역삼역 부근 한국은행 별관 뒤쪽 이면 도로에 있는 5층 건물의 5층 사무실.
    2000년대 들어와서 이 비밀 그룹은 비대한 전국구 조직을 포기했다. 실속도 없이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갔고 조직원 관리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강남 지역을 거점으로 한 중소 규모 형태로 조직을 날씬하게 만들고 공갈과 위협에 의한 갈취형 방식에 더하여 기업형 방식을 혼합하였다.
    이 그룹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유흥업소와 성 매매 관리와 운영 수입이 30%, 오락실과 게임장이 25%, 사채업과 채권 추심업이 25%, 도박장과 사설 경매장이 10%, 경비용역이 10% 등이다.
    위험을 분산하고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해서 조직을 분산시킨 것이다. 각 조직은 외부적으로 주식회사 형태를 취해서 바지 사장인 대표이사가 있고 상무라는 책임자가 있어서 실질적으로 관리하였다. 김 전무가 제2인자로서 총괄 관리했고, 두목이, 모두 왕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최종적으로는 정점에서 막강한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런데 바깥 경기가 불경기이다 보니 역시 이쪽도 불황을 심하게 겪고 있었고, 업친 데 덥친다고 경찰 단속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강남 일대 유흥업소는 죽을 맛이었다. 고급 공무원들이나 기업체 간부들이 몸을 사리니 룸쌀롱 영업이 반 토막이 났고 덩달아서 성 매매업도 안 되었다. 애들이 100명이 있는 싸롱에서 2차 나가는 애들이 20명도 안 되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매출이 전년도 대비 반 토막 이상으로 감소했고, 그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영업 이익이 많이 나는 오락실이나 게임장도 단속이 워낙 심해서 비밀영업을 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고리의 사채업도 경쟁이 나날이 심해지고 경기가 나쁘니까 주 고객인 시장 상인들이 돈을 안 쓰고, 거기에다 제2금융권이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서 낮은 이자로 설쳐대니까 도대체 영업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조직에서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 할 수밖에 없었는데 주요 진출 사업은 기업의 인수합병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전통적인 주먹들이 아니라 학력이 높고 키가 크며 용모가 단정한 깔끔한 조직원을 뽑아야 했고, 큰 싸움이 필요 할 경우에는 지방 조직에 아웃소싱을 주었다.

    5월의 나른한 오후. 변호인 접견실에서 교도관이 변호사 이름과 수용자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두 사람은 플라스틱 유리로 칸막이가 된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 마주 앉았다. 가운데 복도를 두고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접견실에서는 이미 다른 수용자들과 변호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수군거리고 있다.
    “이세연 세무사이시죠? 오랫동안 세무서에서 근무하셨더군요. 그것도 막강한 부서인 서울청 조사국에서만 몇 년씩이나 근무하셨고.”
    “그렇습니다만…… 지금은 신세가 처량하지요.
    그나저나 변호사님 기다리다 눈이 다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자주 좀 와 주십쇼. 정말 변호사님이 기다려지지요. 며칠 전 아내가 면회와서 그쪽에서 좋은 변호사를 샀다고 말해주더군요.”
    그는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웠으나 위 아래로 짧은 턱은 말끔하게 면도를 하였다. 연한 하늘색 수의를 입고 있는 몸에서 감방에서 나는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풍겨왔다. 변호사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글쎄 말입니다. 제가 워낙 바빠서. 개업한 지가 일 년밖에 안되지 않았습니까. 전관예우 때문인지 사건이 너무 몰리고 있지요.”
    “그렇다면 세금도 절약할 겸 해서 새끼 변호사를 고용하세요. 요즘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싸게 고용할 수 있다고 하던데요.
    얼굴이 예쁜 여자 변호사를 고용해서 집사 변호사로 활용하세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여자가 좋지요. 여자 분 냄새 맡은 지가 꽤 오래 됐군요. 여자의 향기처럼 달콤한 게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요. 그 대표이사는 아직도 잡히지 않은 모양이죠. 아마도…… 은행 지점장 출신이긴 합니다만 바지가 아닌가……. 여태 안 잡힌걸 보면 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배후는 전혀 모릅니다. 그나저나 공모에서 빠져나올 수가…… 내가 먹은 게 훨씬 적었지요. 그런데 나만 구속되었지요. 정말 억울합니다.”
    “글쎄요. 기록에도 바지인지 여부는 안 나오지요. 그쪽에서 귀신처럼 처리해 가지고 금융계좌 추적은 불가능 했던 모양입니다.
    먼저 용건부터 말씀드려야겠지요. 보석을 신청할 작정입니다. 합의도 안 되고, 사기 금액이 워낙 커서 쉽게 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만, 그러나 가서 한번 비벼봐야지요. 하지만 집행유예만큼은 어느 정도 기대해도 좋습니다.
    내가 부탁한 첫 사건인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빼주겠지요. 판결문은 적당히 얼버무리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뭐 초범이고 충분히 반성하고 있다고 하면 되는 것이지요.”
    “정말이지 고맙습니다. 변호사님만 믿겠습니다. 제가 누굴 믿겠습니까. 변호사님은 하늘이지요. 그리고 말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
    “그런데 성공보수금은 틀림없겠지요. 그걸 확실하게 보장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제가 힘이나서 뛸 것 아닙니까.”
    “변호사님……. 우리 변호사님……. 그건 전혀 염려하지 마십시오. 틀림없다니까요. 그쪽 회사에서도 실무자들이 철썩 같이 약속을 했습니다. 만약 의심하신다면 이 자리에서 혈서라도 쓰겠습니다.”
    “내가 그 부장판사하고는 미리 골프도 쳐야하고, 그러나 그건 핑계에 불과한 것이고 골프 끝나고 저녁식사 자리에서 술 한잔하고 두둑한 봉투도 건네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인간적으로 답례는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아주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부탁이 있지요. 어려운 게 아니지요. 집사 변호사가 오거든 이 사건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는 겁니다. 수임 조건이라던가 이런거는…… 그러니까 말동무가 되어서 바깥에서 세상 돌아가는 일반적이 이야기만 하는 것이지요.”
    “잘 알겠습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해야지요. 제가 그렇게 눈치 없게 보이십니까.”
    “아까 말씀하시다 만 것 있지요? 어서 말씀하세요.”
    “범털이라고 들어보셨겠지요. 아주 돈 많은 거물들 말입니다. 저희 방에는 망하긴 했어도 재벌 회장을 비롯한 범털들이 여럿 있지요. 모두가 사기죄나 배임 횡령죄로 들어와 있거든요. 그리고 다른 방에는 그 인간들도 잔뜩 들어와 있지요. 마약 사범 말입니다. 그 마약쟁이들 돈이 많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수용자가 아름아름으로 변호사를 알아서 접견을 요청하고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지면 선임을 했었는데 지금은 거꾸로 변호사들이 직접 발로 뛴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변호사가 재력 있는 수감자를 스스로 접견 신청을 하는거죠. 소위 말하는 ‘피의자 쇼핑’이니 ‘접견 쇼핑’이니 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지요. 그걸 역으로 본다면 수용자들이 ‘변호사 쇼핑’을 하는 셈이지요.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요. 그건 전관예우를 받는 막 개업한 변호사들이 주로 그렇게 하지요.
    그들은 돈 없고 연줄도 없는 평범한 개털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지요. 괜히 귀찮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만 하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선임이 잘 되지 않습니다. 제가 쭉 지켜봤지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거지요. 소문이 자자해야 합니다. 누가 그 변호사가 괜찮다, 잘한다, 전관예우를 받고 있다고 부추겨 주어야만 선임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변호사님이 잘만 해주시면 제가 그 역할을 충실히 하겠습니다. 우리 변호사가 유능하다고 동네방네 나팔을 부는 거지요. 진격의 나팔을 분단 말입니다.”
    “그것도 그렇군요. 제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어떻게 은혜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변호사와 아직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뭔가 자꾸 화제를 만들어서 변호사를 붙잡고 싶어 한다. 그러나 변호사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그만 일어섰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온갖 꽃이 만발하고 따스한 햇빛은 닿는 곳 어디에서나 눈부시게 빛났다. 강물에 부딪히면 하얗게 흩어지며 다이아몬드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늦은 오후의 빛이 서울구치소의 회색 담벼락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변호사는 어쩐 일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서류 가방이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갑자기 가슴이 조이며 배에서 기분 나쁜 통증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며칠 전에도, 바로 그날 처음으로 그걸 느꼈었다.
    혹시 암이 아닐까. 그것은 가장 두려운 상상이었다. 신경과민인가. 그래도 병원엔 안 갈 거야. 안 가, 안 간다구, 절대로 안 가. 의사는 별 것 아니라고 하면서 마음을 편히 가지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하겠지. 뻔하다구, 뻔해. 그는 고개를 세게 흔들어서 그 기분 나쁜 상상을 털어내려고 애썼다. 이 나이에 벌써…… 자신에게는 그런 불길한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내 인생은 그 동안 너무너무 순탄했었거든. 공부를 너무 잘하니까 법대에 갔고 4학년 때 덜컥 사법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결혼을 했고, 공군 법무관으로 제대했고, 판사가 되어 부장 판사로 퇴직했으니…… 화려한 혹은 평탄한 인생코스를 걸어왔지 않는가 말이야.

    “이번 공판기일에 결심할 것 같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금융계좌 추적을 위해 모든 은행에 사실조회를 하였지만 몇 달 동안 시간만 잡아 먹었지 아무런 소득이 없었어요. 실무자라고 하는 자들도 딱 시치미를 떼더라구요. 자기들은 대표가 직접 처리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검찰에서도 그렇게 진술했고요.
    검찰에서 버틸만큼 버텨야 하는건데 너무 쉽게 자백을 해버렸어요. 금융계좌 추적도 안 되는데 말입니다. 그 자백 때문에 돈 받은 물증을 찾아낸 것이지요.”
    “그게 어렵더라구요. 첫날 검사가 지나가는 말처럼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둥 어쩌구 저쩌구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 쪽 회사에서는 청와대 민정수석과 연결이 되고 그 수석이 검찰의 인사권을 좌지우지 하니까 검찰 고위층을 내리 누를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조금도 염려하지 말라고……
    그래도 안 되면 기소가 된 다음 전관예우를 받는 적임자를 변호사로 선발할 거라고 했지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니 그대로 따를 수밖에요……”
    “그래도 그렇지……? 수사 초기에 회사와 대표이사의 집을 압수 수색했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어요. 뒷북만 친 것입니다. 그런데 자백을 받아내려고 그걸 숨겼지요. 그리고 나서 다 찾은 것처럼 겁을 준 것이지요.”
    “어렵더라구요, 어려웠어요. 평생 잊지 못할 불쾌한 경험이지요. 저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요.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말입니다. 하지만 워낙 겁을 주고 윽박지르고 하니까……. 제가 조금이라도 더듬거리면 서류를 바닥에 내던지고 그것도 모자라서 주먹으로 가슴을 쥐어박고 볼펜으로 얼굴 이곳저곳을 마구 찔러댔지요.
    양심의 가책 때문은 아니였어요. 무슨, 빌어먹을 양심 입니까! 스트레스와 압력이 엄청났지요. 그리고 회유가…… 자백을 빨리하면 최대한 선처해 준다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무력감이 마구 들고 자포자기가 되더라구요.”
    “그 버릇 어디 가겠습니까. 옛날에는 더 심했지요. 자백할 때까지 무지막지하게 때렸거든요. 그런데 배후가 있었던 것 아닌가요. 그런 의심이 문득 들지요. 수백 개의 대포통장을 이용해서 뺑뺑 돌리다가 현금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니 추적이 안 되는 것이지요. 그 많은 대포통장을 모으려면 대표 혼자서는 불가능했겠지요.”
    “지금도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그러나 캄캄하지요. 저는 그쪽이 원하는 대로 서류 작업만 해주었고, 받은 돈도 전체 금액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었어요. 저는 대표이사하고만 상대했어요. 그가 바지가 아닌가 의심할 수 있습니다만…… 그래도 국책은행의 지점장 출신이거든요. 설마…… 금융기관 상대는 그가 처리했지요.
    은행에서 28년을 근무한 지점장 출신이니까 금융거래 추적을 교묘하게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이 좁은 나라에서 아직 잡히지 않을 것을 보면 이상하긴 하지요. 검찰에서 들었습니다만 그 사람은 뒤늦게 이혼하고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배후가 있다면 깜쪽같이 처리한 것이 아닐까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합리적으로 추측한다면 낌새가 이상하자 즉시 해외로 빠져나갔을 것입니다. 밀항을 해서라도 말입니다. 이게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그에게는 돈이 있었으니까요. 아니면 배후 세력이 깜쪽같이 죽여서 묻어버렸거나,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는데 아직 그 시체를 찾지 못했거나, 여태 어디에서 숨어있는 거겠지요.
    결정적인 물증 없이 단순한 심증만으로는 섣불리 말할 순 없겠지요. 그나저나 그러한 범위 내에서 열심히 변론을 하겠습니다.”
    벌써 가을이었다. 피고인은 점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변호사 역시 지치기는 마찬가지였고 그는 요즈음 정체모를 불안과 초조감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검사가 얼마나 구형할까요……? 그 검사는 재판 내내 정말 무성의했었지요.”
    “공판 검사는 본래 그렇지요. 그런데 구형이……”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회장님은 검은 색 가죽 소파에 깊숙이 앉은 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회장님이 회색 줄무늬 고양이의 턱 밑을 간지럽혔고, 늙은 고양이가 그르렁 거리다 슬그머니 책상 밑으로 사라졌다. 회장님은 위스키를 맥주 컵에 가득 채워서 단숨에 들이키고 나서 마침내 일어나더니 방을 왔다 갔다 했는데 지독한 팔자걸음 이였다. 보일 듯 말 듯한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머리카락이 전혀 없는 완전한 대머리여서 딱히 나이를 짐작키 어려워 보였다.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평소와 다름없이 느릿느릿한 음성으로 말한다.
    “자세히 설명 좀 해 보라구. 내가 모든 걸 똑똑한 김 전무한테 일임했는데 말이야.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 가는거야. 그 브로커와 변호사가 장담을 했다면서…… 돈은 쓸 만큼 쓰고서 말이야.”
    “회장님 면목이 없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요.”
    “당신은 우리 조직에서 유일하게 법대 출신 아니냔 말이야.”
    “그래도 고시에는 몇 번이나 떨어졌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좌우간 어떻게 된 거야.”
    “개업한지 일 년밖에 되지 않은 전관예우를 톡톡히 받고 있는 변호사이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변호사가 보석을 다소 어정쩡하게 장담하긴 했습니다만…… 언감생심이었지요. 보석을 신청하기는 했는데 뻔히 안 될 줄 알면서도 우리에게 보여주기 용이었지요.
    그 인간이 집행유예만은 장담하기에 철썩 같이 믿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검찰에서는 뭔가…… 특경제로 12년을 구형했는데 법원은 10년을 때려버렸지요.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차라리 국선 변호사로 할 걸 그랬습니다.”
    “아무리 폭력조직이라고 해도 인간의 의리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우리가 자금 사정이 어려울 때 그 세무사가 도와준 셈이니까. 우리에게는 그를 도와 줄 인간적 의무가 있는 거야.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말이지.
    우리는 꼬리 자르기 식으로 무사히 빠져나왔고. 그 바지는 행방불명이 된 거야. 김 전무가 솜씨 좋게 처리한 거지.
    물론 그 세무사도 자기 몫을 챙겼고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 조직의 엄호를 받긴 했지만…… 김 전무 말만 믿고 누굴 시켜서 가족에게 석방을 장담했는데…… 체면을 완전히 구겼구만.
    우리 식구들이 감쪽같이 그 친구 옥바라지에 소홀함이 없었어.
    그런데 서초동 사람들이 배신자인거야, 아니면 위선자이거나. 요즘은 도대체 믿을 사람이 없다니까?”
    “서초동에는 온통 구린내가 나지요. 우리 쪽에서는 회사의 실무자인 척 하면서 그 변호사가 요구한 대로 모두 해줬고 한껏 비위를 맞춰주었는데요. 제가 이번 일은 크게 실수 한 것 같습니다. 전관예우를 너무 믿었던 거지요.”
    “일을 하다보면 실수인 줄을 명백히 알게 되는 실수도 있고, 실수인 줄 모르는 그런 실수도 하게 되는 거야. 이번 일은 그런 실수라고 할 수 있겠어.”
    “옳으신 말씀입니다만…… 앞이 캄캄하지요. 이런 식이면 항소심에 가서도……”
    “그런데 그 거물 브로커는 잘 계신가? 수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이 핑계 저 핑계로 뜯어가지 않았는가 말이야. 이번에는 변호사는 변호사고 자신이 직접 고등학교 선배인 법원장한테 별도로 부탁한다고 했다면서. 그래서 따로 줬지 않느냐 말이야. 그러니까 그 친군 뭐라고 하던가?”
    “지금 만날 수가 없지요. 외국에 나갔다는 말도 있구요.”
    “거물이라며…… 거물. 어떻게 아는 사이야?”
    “몇 년 전 일입니다만…… 그때 사소한 일이어서 회장님께는 보고하지 않고 제가 단독으로 처리했지요. 제 식구들 중 하나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광주에서 조무래기 폭력배 생활을 하던 얘가 있었지요. 배짱 좋고 주먹을 잘 썼는데 그 애가 쓸 만해서 스카우트했지요. 징병 신체검사에서 현역 입영 대상인 1급 판정을 받게 되어있었습니다. 너무 건강하니까요. 그래서 팔에만 새겼던 무시무시한 문신을 온 몸에 새기고 현역 대신 공익근무 판정을 받아냈지요.
    그걸 병무청이 적발해서 병역 면탈 혐의로 구속 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브로커가 직접 전화 한 통화로 해결 해 주었습니다. 그 대신 그가 찍어준 대상을 칼로 무릎 뼈를 찍어 병신을 만들었지요.
    정말로 서초동에선 1000명이 넘는 브로커 가운데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알아주는 거물로 소문이 났었습니다. 그 쪽 업계는 워낙 폐쇄적이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소문만 떠들썩하지요.
    한마디로 마당발이라는 것이지요. 어느 정도냐 하면 이 정권 실세와 핫라인이 개통되어 있어서 청와대 수석에게도 전화를 해서 반말을 찍찍하고 법원이나 검찰의 고위직과는 호형호제하면서 주말마다 골프치고 식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공기관의 건설사업의 발주에도 경쟁 업체를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을 시켜서 완전히 주저앉히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소문이 자자하게 났지요.
    휘하에는 경찰과 검찰, 법원 출신의 새끼 브로커들을 여러 명 데리고 있는데 필요할 경우에는 자신이 직접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수십 명의 거물 변호사를 맞춤형으로 연결해서 처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주연이고 변호사들은 하수인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런 거물이라서 벤츠도 아니고 롤스로이나 벤틀리를 번갈아 타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만하라구, 알겠다구. 그래서 그 교활한 쥐새끼는 지금 어디에 있는거야.”
    “요즈음 검찰에서 브로커 단속을 심하게 하다 보니까 잠수를 탄 것이지요. 중국으로 갔다는 이야기도 있고, 필리핀에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런데 샅샅이 조사해 보니까 아무도 그의 고향이 어딘지, 지금 어디에 사는 지, 결혼을 했는지조차 모르더라구요. 사기 공갈, 횡령, 폭력, 변호사법 위반 등 전과가 수두룩하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거야. 그 자는 잡히는 대로 따끔하게 손보기로 하자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기고만장 했겠지. 그러니까 말이야, 그 찍새를 못 잡으면 변호사라도 족쳐야지.
    결국 말이야…… 돈은 변호사한테로 흘러들어간 거 아니겠어. 받은 돈 전부 게워내게 하라구. 할 수 있겠어. 아니라면 다른 애들을 보낼게. 필요하다면 병가를 내고 쉬던가. 이번 일로 마음고생이 심했겠지.”
    “제가 저지른 일이니까 제가 끝까지 책임을 지겠습니다.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렇게 하게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처음부터 다짜고짜 난폭한 짓을 하면 안 되겠지. 변호사는 닳고 닳은 사기꾼은 아니지 않는가. 그 변호사가 잔머리 굴리지 않고 허튼 소리 하지 않으면 그대로 놔두라고. 알겠지. 그러면 나가보게.”

    “야, 이새끼들아! 너희 변호사 어디있어! 그 사기꾼 말이야! 빨리 나오라고해!”
    “왜, 이러십니까. 이러시면 안 되지요. 주거침입죄로 경찰을 부를 수 있습니다.”
    “경찰 좋아하시네! 어디 한 번 불러보시지! 불러보라고! 불러보라니까! 이새끼야! ”
    “애들아! 좀 조용히! 가만히 좀 있으라구. 서두르지 말라니까.”
    “아! 예! 형님! 잘 알겠습니다.”
    그 때 변호사가 창백한 얼굴을 하고 변호사실 문을 열고 나왔다. 안에서 그 소란을 다 들었던 것이다.
    “하여간에 오셨으니까 제 방으로 들어오시지요.”
    거무스름한 얼굴의 김 전무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조용히 이야기 해야지요.”
    변호사가 말했다.
    “정말 면목 없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결과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전관예우 운운하면서 장담 하길래 철썩 같이 믿었는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군요.”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할까요……. 그건 지난 일이고 마무리가 필요하지요. 정산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받으신 걸 전부 돌려주신다면…… 우린 깨끗이 잊어버리겠습니다. 항소심도 준비해야 하니까요.”
    “그건 좀 심하신 것 같습니다. 변명이 아니라 저도 할 만큼은 했거든요. 저만해도 10번을 넘게 접견을 갔고 임시로 고용한 여자 변호사가 거의 매일 접견을 가서 집사 변호사 노릇을 했구요. 그리고 마지막 공판기일에서 성실하게 변론을 잘 했지요.
    피고인은 자세한 내용은 모르고 회사에서 해 달라는 대로 서류작성을 해줬을 뿐이고 세무사로서 소액의 수수료를 받은 게 전부라고 했지요. 평소 기장 대리를 해주는 거래처이기 때문에 요청을 거절하기 곤란하다고 했지요.
    아마 판사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 말을 믿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 말을 하면서 미심쩍어 법대를 슬쩍 쳐다보았는데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이고 있더군요.
    판사들은 결백한 사람은 그가 미치지 않는 한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을 자백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자백을 아주 좋아합니다. 검찰에서 이미 다 자백을 해 버렸는데 뒤늦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걸 뒤엎을 만한 게…… 배후에 누가 있다는 강한 의심이 들긴 했습니다만 아무리 금융계좌를 추적해 봐도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마땅한 증인도 없었구요. 배후가 누군지 모르지만 철저히 숨어 버렸더라구요.
    그러니 검찰은 대표이사는 기소중지 처리하고선 불쌍한 세무사 쪽으로 몰아간 다음 손을 턴 것이지요.
    그래서 정상을 참작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피고인은 초범이고 지금 많이 반성하고 있으며 집에는 팔순 노모를 비롯해서 가족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니 가족들의 품으로도 하루빨리 돌아가게 해달라고 했단 말입니다. 더 이상은 할 말이 없더군요.”
    “우리도 그게 궁금하지요. 우리가 알기로는 배후는 없어요, 없다구요. 쓸데없는 추측은 하는 게 아니지요. 그 지점장이 혼자 다 해먹고 날아가 버린 거겠지요.
    그런데, 그런 건 국선 변호사도 하는 변론 아닌가요. 진짜 변론을 했어야지요.”
    “그렇지요. 진짜를 해야지요. 그놈의 부장판사도 몇 번이나 만났고 전화한 것은 열 번도 넘었습니다. 제가 죽을 지경이라고 사정사정 했지요.”
    “그러니까 판사가 뭐라고 하던가요.”
    “그야 뭐, 매번 잘 알았다고 했지요.”
    “잘 알았다는 게 10년이란 거죠. 우리 직원이 선고한 날 법원에 갔어요. 그런데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일어서라고 지시하더니 거만하게 내려다보면서 초범이긴 하지만 죄질이 극히 불량하고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해서 10년을……. 피고인은 그 순간 집행유예를 기대하고 있다가 눈앞이 캄캄해서 비틀거리고…….”
    “저도 배신감을 느끼지요. 그러니까 말이지요. 제 생각에는 반만 받으시는 게……”
    “참으로 뻔뻔하군요. 결과가 어떻게 됐는데. 차라리 국선 변호사를 선임했으면 좋을 뻔 했지요. 우리도 참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전부 아니면 안 되지요.”
    “그건 좀 너무한 게 아닌가요.”
    김 전무의 얼굴이 경멸 하는듯한 표정으로 변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외쳤다.
    “얘들아! 단단히 준비해라! 이 새끼가 영!”
    그들은 건장했고 적당히 뚱뚱했다. 웃옷을 모두 홀라당 벗었다. 근육질 몸에 새겨진 청룡들의 입은 활활 타고 있는 불을 뱉어내고 무시무시한 독사들이 서로 엉킨 채 우글거리며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우악스럽게 벌어진 입들이 느슨한 비웃음을 띄며 근질근질하던 차에 너 잘 걸렸다는 표정들이었다.
    “씨발 새끼! 씨발! 콱 던져버릴거야!”
    왜소한 체구의 변호사는 부들부들 떨며 반짝반짝 빛나는 흰색 리놀륨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다.
    김 전무가 딱딱하게 굳은 채로 차갑게 쏘아보다가 싸늘하게 말했다. 변호사는 그 순간 다시 뱃속에서 기분 나쁜 통증이 올라왔다.
    “우리가 약간 조사를 해봤지. 이 건으로 부가세는 고작 200만원만 신고 했더군. 그러니까 탈세를 했단 말이야. 그건 뿐일까, 명백히 변호사법 위반이고, 사기죄까지 가능하다고 하더라고.”
    “어떻게…… 그렇게까지…….”
    “우리도 엄연히 고문변호사가 있고 경찰이나 검찰에 선이 있으니까 다 알아본 거지. 틀림없이 구속감이라고 하더라고. 관련해서 대법원 판례도 있다고 하니까. 그러면 끝장이지. 변호사 생명이 끝장이란 말이지.”
    “좋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제가 받은 2억 전부를 돌려드려야지요. 그러면 되겠지요.”
    “뭐라구? 정말 안 되겠군. 혼이 좀 나봐야”
    “그게, 말씀하신 조건 아닌가요?”
    “그때…… 그러니까 벌써 6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네. 벌써 가을이 다 지나가 버렸으니. 당신 사무장한테 착수금조로 5억을 주었다니까.”
    “그럴리가요. 분명히 2억을 받기로 했는데요. 그리고 그는 이 사건을 소개만 했지 우리 직원도 아니지요.”
    “이제는 오리발까지. 변호사도 직업윤리라는 게 있을 게 아니야. 여기 명함을 보라구. 더럽게 구네. 여기 사무국장이라고 되어 있네. 그리고 명함 뒤에다 5억원 영수했다고 자필로 썼다구.
    그때 우리는 요구한 대로 현찰을 준비해서 가방에 넣어 건넸단 말씀이야. 그리고 그걸 우리 애들이 폰으로 찍어 놓았다구. 혹시나 해서.”
    “명함은 모르는 일입니다. 돈은 분명히 2억만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전 그것만 돌려줄 수 있지요.”
    김 전무는 이제 자제력을 잃었고 노골적으로 나왔다. 오랫동안 조폭세계에서 중간 두목으로 제2인자로 올라오면서 써온 험악한 말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네놈이 정말 찌질한 변호사로군. 개새끼 같으니라구. 그래도 판사일 때는 정의의 사도인 양 법대에서 한껏 떵떵거렸겠지. 더러운 위선자 같으니라고. 내가 폭력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판사 새끼가 엄청나게 훈계를 하더라고, 풀어주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씨발 새끼 지랄하네’ 하고 욕을 했는데 하마터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 했지. 네 놈도 보아하니 지랄께나 했을 거 아냐.
    다시 말하면 사무장이 자기가 모시는 변호사를 얼마나 우습게 보았으면 그렇게 했겠어. 사무장이 먼저 3억을 꿀꺽 삼키고 나머지만 갔다 준거네. 배달 사고인지 사기인지 알 수가 없구만.
    우리 같은 깡패들도 그런 비열한 짓은 안하지. 우리에게도 윤리의식은 있거든. 어쨌거나 그건 우리가 알 바 아니지. 그 사무장은 네 놈 직원이니까.
    “……”
    “지금 당장 돈을 내 놓으라구. 뒈지기 전에. 저기 큼직한 검은 금고가 있군 그래. 저 속에는 현찰이 잔뜩 들어있겠지. 그까짓 5억쯤이야. 아니면 은행 대여금고에 숨겨놨나?”
    변호사의 입술이 걷잡을 수 없이 파르르 떨렸다.
    “그 금고는…… 텅…… 비어있어요. 제가 개업할 때…… 친구들이…… 괜히 개업 기념으로 선물한 것이지요.”
    “좋아. 지금 아니면 언제까지 줄꺼야.”
    “제가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겨우겨우 사무실을 유지하고 있는데……. 말미를 좀 주시면 아파트를 담보로 융자를 받겠습니다.”
    “융자 좋아하네. 네 놈이 개업할 때 이미 입빠이 융자를 받았던데. 누가 융자를 해준데. 차라리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지 그래.”
    “……”
    창문을 통해서 들어온 오후의 햇살이 엷은 햇볕을 띄며 티크 원목 가구들 위로 비스듬히 걸쳐있다. 도시의 소음들이 들려온다.
    변호사는 피로가 엄습했고, 온갖 망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변호사는 배신감에 온 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 자업자득이야. 그렇지, 그렇다고. 그때 앉아있는 소파가 갑자기 땅속으로 푹 꺼져버렸다. 동시에 흰색 벽돌이 검게 변했고 숨이 턱턱 막혔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며 추락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는 목이 막혀서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형수의 목에 올가미가 걸릴 때 이런 느낌이 들까. 그는 그럴수록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갑자기 기도문이 막혀버렸다.
    “예수님…… 우리 예수님…… 어쩌면 좋아요.”

    괴여만리장성 壞汝萬里長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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