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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리부 代理父 혹은 代理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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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리부 代理父 혹은 代理夫

    변호사 접견실.
    “변호사님이 누구신가요? 전 변호사를 선임한 일이 없는데요.”
    “그렇지요. 국선변호사입니다. 국가에서 친절하게도 공짜로 변호사를 선임해 주는 거죠.”
    “이곳에 들어오니까 뭐라고 그러더라, 재판을 잘 받으려면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하더군요. 감방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도 맞는 말입니다. 틀린 말이기도 하고요. 사선이 선임되면 곧바로 물러나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변호사를 사려고 하면 엄청난 금액을 부른다고 하는데 저에게는 돈이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별 수 있습니까. 계속 맡아 주십시오. 저로선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니까 2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네요. 피고인은 지금 살인죄와 사체유기로 기소되었습니다. 아직 수사기록을 보지 못했지요. 사건의 내용을 어느 정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진술서를 만들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한 번 읽어봐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지요. 제법 양이 많군요. 제가 수사 기록도 다 읽어야 하고…… 이걸 다 읽고 나서 다음 주에 다시 접견을 오겠습니다. 그때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지요.”

    피고인이 말했다.
    “그날 우리 두 사람은 제부도에서 만나 저녁식사와 함께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꽤 많이 마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적게 마시고 그쪽은 많이 마셨습니다. 처음부터 약간 흥분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바닷가로 내려갔습니다. 그가 먼저 그렇게 말했지요. 바람 좀 쏘이자고.
    그 운명의 날…… 오후 늦게 퇴근 시간에 맞춰 저는 안산역 공중전화 부스에서 사장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는 40대 중반으로 안산시 정왕동에 페인트 회사에 납품하는 화학원료를 생산하는 공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장님, 안산까지 왔다가 우연히 오이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사장님 괜찮으시다면 퇴근길에 술이나 한잔 사주십시오.’
    사장님은 처음 제 전화를 받자마자 긴장하고 경계심을 품었었지요. 그게 그의 목소리에 묻어났습니다.
    사장님이 말했습니다.
    ‘글쎄…… 우리가 꼭 만나야만 하나? 그런가? 서로 모르는 척 해야 되는 거 아냐? 지금 이 시점에서 당신을 만날 이유는 없지만 일부러 들렸다는데 할 수 없지.
    우리 한잔 하자고. 제부도 쪽으로 오라고. 그쪽에 좋은 횟집이 있으니까.’
    저는 사장님이 술에 취하면 이런저런 말을 하게 해서 진실을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분위기를 봐 가며 술을 적극적으로 권했습니다. 술이 약간 거나해지자 제가 눈치를 살피고 있었고 그가 그때 밖으로 나가자고 했습니다.
    바닷바람이 매섭게 불었지요. 해안가 갈대밭에서 무성한 갈대가 서로 부딪치며 울음소리를 냈습니다.
    ‘사모님도 그렇고…… 따님도 건강하게 잘 계시지요?’
    ‘네가 남의 집 일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지? 네가 아버지 행세를 하고 싶은 거야?’
    ‘아닙니다. 그저 궁금했을 뿐입니다. 저는 계약서에 있는 대로 충실하게 계약을 이행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자 그가 내 말을 가로챘습니다.
    ‘네 놈이 그걸 어떻게 알아낼 수 있었겠어? 네가 내 마누라와 내통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렇다니까. 쓰레기 같은 자식! 넌 쓰레기야! 그러니까 여태 변변한 직업도 없이 굴러먹고 다니는 거지.’
    나는 그런 심한 모욕에도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화는 점점 거칠어지고 결국 심한 몸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먼저 심한 욕설을 내뱉고 제 뺨을 서너 차례 때렸습니다.
    ‘너는 가정파괴범이고 간통을 한 자란 말이야. 네 놈이 내 마누라를 범한 거라고. 네 놈의 정액이 그 년의 몸속으로 들어갔으니까. 마침내 창녀가 되어버린 거라고. 알겠어?
    내 딸이 아니라 네 놈 딸이란 말이야. 나는 그 년이 너무 밉단 말이야. 죽이고 싶도록 밉단 말이야. 완전히 네 놈을 빼다 박았거든. 다 죽여 버릴 거야.’
    ‘사장님,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진정…… 진정하십시오.’
    ‘진정 좋아하시네! 이제 보니까 네 놈은 가정파괴범이야!’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작자는 죽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게 되고 우리 딸이 그 자의 손에 목이 졸려 죽게 될 거예요. 우리는 밤마다 무지막지하게 얻어맞아요. 그 남자가 주먹과 발로 나와 딸의 머리와 옆구리 등을 때리고 그것도 모자라 골프채를 마구 휘둘러요.
    한 번은 딸이 너무 맞아서 파란 멍이 들었기 때문에 학교에 보낼 수 없었어요. 그래서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지속적인 폭행으로 말미암아 몸속 혈관이 터져 외상성 쇼크사에 이를 뻔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때 의사들이 간신히 살려냈습니다.
    그 딸이 어떻게 얻은 딸인데요. 우리 모녀의 형편이 그렇다고요.’
    그 여자는 어렸을 때는 가족들에게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자랐고 지금은 부유했으며 아름다웠고 부드럽고 풍만한 젖가슴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가정생활은 평탄치 않아서 남편으로부터 심하게 정신적 또는 육체적 학대를 받는 불쌍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술에 취하면 자주 눈물을 쏟았지요.
    저는 제 아이를 지키려면 그를 죽여야만 했습니다. 돌을 움켜쥐고 그의 머리통과 얼굴을 내리쳤지요. 피가 튀었습니다. 그가 마침내 쓰러졌고 피가 흥건히 흘러서 모래 속으로 스며들어갔습니다.
    저는 밤새 갈대밭을 파서 시체를 깊숙이 묻었고 차가운 바닷물에 피가 묻은 손과 얼굴, 온몸을 씻었습니다.”

    김명철은 온라인에 대리부 지원자로서 자기소개서를 올렸다. 포털 사이트의 카페, 커뮤니티보다는 개인 블로그를 개설해 지원한 것이다. 대리부 또는 정자제공 같은 특정 키워드를 입력하면 그 블로그에 올려둔 게시물이 검색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카페와 커뮤니티는 관리자들이 있어 즉시 대리부 지원자의 글이 삭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로그를 통하여 광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기소개서를 마치 입사지원서를 연상시킬 만큼 상세하게 기재하였다. 자신의 신체조건, 집안 내력 등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키 181cm, 몸무게 72kg.
    혈액형 O형.
    곱슬머리 아님, 광대뼈 나오지 않았음, 대머리 유전없음.
    서울에서 외고와 사립 명문대 졸업. 아버지와 누나, 형님 모두 명문대 출신.
    해병대에서 병역필.
    비흡연.
    수정이 될 때까지 무한정 제공 가능.
    제 성격은 붙임성이 좋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음식을 가리지도 않습니다.
    요금은 300만 원을 제시합니다. 계약금으로 30%을 먼저 받고 성공하면 나머지를 후불로 받음.
    아이에게 우성인자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남자의 조건을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돈이 좀 들더라도 후회하지 않게 현명한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요금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면 추후 협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누나와 형님, 아버지는 남쪽 바닷가에 있는 시골 농촌사람들이어서 명문대는커녕……. 그는 방위 출신으로 해병대에서 복무하지도 않았다.……

    일주일 쯤 지나서 인터넷을 통하여 의뢰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래서 우선 메일을 통하여 구체적인 상담을 하게 된 것이다. 의뢰인은 전신 사진과 얼굴 사진을 먼저 요구하였고, 그런 후에 서초동 남부터미널 근처 카페에서 직접 부부와 만나게 된 것이다. 부부는 대학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요구했는데 그는 당연히 위조한 서류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의뢰인이 지정해준 대학병원에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건강검진 결과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그제서야 계약을 맺게 된 것이다.
    계약서의 주요 조항은, ‘임신이 될 때까지 무한정 정자를 제공한다. 비밀을 철저히 지킨다. 임신 후에는 절대 연락하지 않는다. 계약금으로 150만 원을 우선 지급하고 임신이 되면 25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등이었다.
    그런 후 부부가 지정한 병원의 비뇨기과에서 정자를 채취한 후 제공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1여 년 동안 여자의 배란기에 맞춰서 정자를 10차례 이상 제공했음에도 인공수정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다.
    “인공수정은 필요 없어요. 자연수정으로 하자고요. 차가운 플라스틱 튜브는 지겹단 말이야. 그게 내 몸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몸서리를 치지. 뜨거운 게 좋아.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거라구. 성공하면 제가 천만 원 이상을 드릴 수 있어요.”
    그 여자는 그때까지 보거나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아니라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공상적인 존재 또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두운 뒷골목에서 남자를 유혹하는 매춘부처럼 그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그의 내면에서는 그 여자를 육체적으로 소유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를 포옹하고 애무를 하고 싶다. 그러나 이것은 간음이고 간음은 살인죄보다 더 무서운 죄악이 아닐까. 그렇게 타락할 수 있는가. 왜,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가. 그런 거야. 그렇지. 죄의식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억누를 수는 없는 거지.
    그 후 그들은 서초동 남부터미널 건너편 뒷골목에 있는 모텔에서 근 몇 년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났던 것이다. 그리고 가끔 고급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포도주를 마셨다. 그러니까 여자가 임신하고 나서도 몇 달은 더 만났던 것이다. 그의 20대 젊은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녀와의 섹스는 황홀했고 중독적이었다. 그는 한동안 그녀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점점 섹스에 빠져들면서도 그 무엇에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결국 돈과 사물로 환원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끝날 때마다 공식처럼 20만 원을 주었던 것이다.
    마침내 여자는 임신이 되었다. 입덧이 있었고 월경이 건너뛰었다. 소변검사와 혈액검사 등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10개월 후 딸을 출산했다. 그는 몇 년 동안 그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사실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로부터 다시 전화가 온 것이다.
    “우리 딸 한 번 보고 싶지 않아요? 지금 3살인데 어린이집에 잘 다니고 있어요.”
    그는 그 전화를 받고 나서 그 어린이집에 들려 창문 너머로 아이를 찾았다. 금방 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와 너무 많이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눈물이 나왔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국 140곳에 정자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출산을 원하는 불임부부들을 위해 정자를 제공받아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병원은 기증자가 정자를 직접 제공한 경우보다는 불임부부가 직접 가져온 경우가 훨씬 많았다.
    정부 당국자가 설명했다.
    정확한 수치는 집계해보지 않았지만 매년 정자 기증은 줄어들고 있지만 불임부부가 직접 가져오는 정자의 숫자는 줄기는커녕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자은행이 유명무실하지요. 대폭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자매매는 생명윤리법이 금지하면서 처벌까지 하고 있는데 그렇게 대리부를 찾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정부는 일정한 경우 인공수정 3회, 체외수정 6회까지 시술비를 지원까지 해주는데 말이다.
    뭐니 뭐니 해도 대리부의 신상파악이 가능하다는 점이 불임부부가 불법 정자매매에 눈을 돌리는 가장 큰 이유이다. 정자은행을 통해 정자를 공여 받을 경우 혈액형을 제외한 기증자의 정보는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정자 제공자가…… 외모가 비정상적으로 이상하거나 키가 작고 돼지처럼 뚱뚱하다면…… 대머리이거나 곱슬머리라면…… 또는 정신이상자이거나 심각한 유전병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김명철은 몇 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업 준비생이었고 임상시험에 참가하고 있는 피실험자였다. 그러나 그것은 통상적인 개념의 아르바이트는 아니다. 피를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팔뚝에 카데터를 꽂고 한 번에 5ml 정도 피를 뽑았고 하루 종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총 160ml 가량 피를 뽑았다.
    그는 근근이 아르바이트를 하다 월세나 생활비 등을 위해 목돈이 필요할 경우 대형 제약회사에서 하는 임상시험에 참가했던 것이다. 우선 임상시험 아르바이트는 임상시험과 생물학적 동등성시험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임상시험은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증명할 목적으로 효과와 이상 반응을 조사하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이다. 생동성시험은 국내에서 이미 시판중인 약과 동일한 성분으로 제조된 약을 대상으로 그 효과가 통계적으로 동등한지 여부를 입증할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보통 임상시험에는 암 환자 등 실제 환자들이 참여하고 생동성시험에는 아르바이트생들이 가장 많이 참여한다.
    그는 무슨 법에 의해 정자매매가 불법이란 사실, 그로 말미암아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생동성시험은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심한 발열과 구토, 복부 팽만감, 설사, 두통과 어지럼증, 피부발진과 가려움 등이 수반되었다. 그래서 제약회사가 내민 참가 동의서에는 부작용들이 잔뜩 나열되어 있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는 문구까지 들어있는데 그는 이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나에게 인생의 이상과 꿈이 있었던가? 언제나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았던가. 찬란한 미래도, 삶의 성찰도, 하느님의 구원도 없었다. 그래서 겨우 결심을 하였다. 그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평생을 하찮은 말단 공무원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게 꿈이라면 꿈이었다. 그러니까 밀린 월세를 내기 위해서 피를 빼서 팔아야 하는 구차스러운 신세인데 무엇인들 못하랴.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되는 정자매매를 지원했던 것이다.

    국선 변호사가 말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하고 이틀이 지나서 그 부인이 관할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했지만 아무도 퇴근 후 행적을 몰랐습니다.
    그날 보니까 사장은 자동차를 회사에 놔두고 퇴근했고 스마트폰도 책상 위에 그대로 두었더라구요. 핸드폰에서 단서가 될 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고…….
    가정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 무렵 회사는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표이사의 행적이 한 달 이상 묘연해지자 갖가지 뜬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이 회사에 매일 출근하면서 대표이사 행세를 했지요. 일부 핵심 직원들을 내보내고 친정 쪽 사람들을 데리고 왔더군요.”
    “저는 모르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피고인은 왜 2여 년이 지나서 갑자기 자수를 결심했나요? 아마 사건은 영구 미제 사건이 될 뻔 했거든요. 경찰은 몇 개월이 지나자 수사 진행에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경찰은 대표이사가 회사 업무 때문에 정신적으로 지친 나머지 일시 잠적한 것으로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갑자기 자수할 만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반성하고 후회했기 때문에 자수한 게 아닙니다. 양심의 명령은 없었습니다. 제게 무슨 양심이 남아 있겠습니까.
    그때 그 여자한테서 또 다시 연락이 왔었지요. 첫 번째는 서초동 교대역 부근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딸을 데리고 나왔더라고요. 아주 건강했고, 많이 컸고, 얼마나 예쁘던지. 제가 그만 눈물을 흘릴 뻔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딸이 있었기 때문에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요.
    두 번째로 단 둘이 만났을 때 여자는 노골적으로 말했습니다.
    ‘그 남자는 죽은 게 확실하지. 틀림없이 죽었다고.’
    저는 깜짝 놀랐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가요?’
    ‘웬, 능청이야! 다 알면서! 그 사람을 누가 죽였을까! 인간에게는 놀라운 텔레파시가 있는 거야!’
    ‘무슨 말씀인가요?’
    ‘그렇다고 치자고. 그런 게 피차간에 좋은 거지. 이제 걸리적거릴 것은 없어. 사건은 묻혀버렸고 끝났단 말이지. 회사는 내가 완전히 장악했지. 그러니까 말이지 돈 걱정할 일은 없다는 거야.
    이제부터 우리 딸의 정식 아빠가 되라고. 그리고 훼방꾼이 없으니까 마음껏 즐기자고. 정자 없는 남자가 남자라고 할 수 있나. 그게 순리인 거야. 안 그런가. 내가 간절히 바라던 바 이거든……’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게 살인죄의 교사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옛날에 그 부인이 하소연했던 것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법적 관점에서 보면 아무리 따져 보아도…… 그 부인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이건 살인의 교사이건 어떤 것도 인정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법이란 게 기독교 윤리와는 다른 것이지요. 정신적인 죄라고 할 수 있는 단순한 욕망과 생각까지 처벌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저는 그 여자를 공범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단독 범행이지요. 경찰에서 그 여자와 딸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상관없으니까요. 변호사님께는 모든 걸 털어놓고 싶어서 진술서에 자세히 썼습니다만…… 변호사님도 그 부분은 비밀을 지켜주십시오.
    그저 사회에서 알게 된 지인인데 돈을 빌리려고 만났다가 참을 수 없는 모욕을 하기에 술김에 저질렀다고 했지요.”
    “자수할 때 말이지요? 그 당시 둘 다 술에 몹시 취한 상태에서 상대방이 먼저 때렸고…… 그래서 미친 듯이 화가 나서 방어적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고 했으면 상해치사죄를 주장할 수 있을 텐데요.
    살인죄와 상해치사죄는 죄질이나 양형에서 엄청 차이가 있지요.”
    “저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살인의 고의를 인정했습니다. 죽일 생각으로 돌로 친 것이니까요. 살인죄를 인정하겠습니다. 다만 자수한 것만 참작하게 해주세요.”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변론은 간단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피고인의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군요.”
    “저는 그 여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제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옭죄고 있는 구속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지요. 제가 노예가 아니었던가요? 돈의 노예, 섹스의 노예, 운명의 노예였던 거죠. 그래서 벗어나고자 자수를 한 것입니다.
    저는 자수하기 전날 제부도 바닷가에 갔었지요. 새들이 어두운 저녁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깨달은 것이지요. 그때 육체적 구속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날…… 그는…… 술이 거나해지자 본심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여자가 말한 사실을 확인하고 흥분하고 분개했었지요. ……살의가 불현듯 일어났습니다.
    그는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기 때문에 처치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지요.
    그러나 자수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지요.”
    “……”
    변호사는 무거운 서류가방을 들고 서울 구치소의 정문을 통과했고 무거운 철문이 철거덕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는 늦가을의 텅 빈 오후 하늘을 올려다본다. 황혼의 빛깔은 불타는 분홍, 장밋빛 분홍에서 회색 분홍으로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그런 거야. 인간은 누구든지 운명의 노예가 될 수는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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