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정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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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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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이 되면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와 현충일이 다가온다. 그런데, 정부의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27619호)’에서 정한 현충일(顯忠日)은 우리가 알고 있는 ‘6.25. 전쟁 동안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날’이 아니라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호국정신과 위훈을 기리는’ 행사라고 기록하고 있어서 적지 않은 혼돈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인 지난 5월 4일 미국 버지니아 주 콴티코시에 있는 미 해병대 박물관에서는 ‘미 해병대의 3대 전투이자 한국전쟁의 3대 전투’로 기록되고 있는 ‘장진호(長津湖 전투’를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이 있었다고 보도되었다. 한국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장진호전투는 천하무적 미 해병대의 비참한 패전사인데, 2013년 미 해병대 참전용사들이 모금을 계기로 한국의 국가보훈처를 비롯하여 한국 국민들의 정성을 모은 기념비 제막식에는 조셉 던포드(Joseph Dunford) 미 합참의장을 비롯하여 미 각군 참모총장, 그리고 장진호전투 참전용사이자 기념비건립을 주도했던 스티븐 옴스테드(Steven Olmstead) 장군, 리처드 캐리(Richard Carey) 장군 등 참전용사와 교민 등이 많이 참석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한 1.4 후퇴 혹은 흥남철수 등으로 알려진 ‘장진호전투’는 2014년 12월에 개봉되어 관객 1500만 명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잠시 비쳤듯이 흥남 철수의 곁가지로 묘사되고 있는 정도이지만, 사실 1950. 11. 26.부터 12. 11.까지 17일 동안 미 제1해병사단 1만 5천명이 중공군 7개 사단 12만 명의 포위되어 해병 1만5천 명 중 4천5백 명이 전사하고 7천5백여 명이 부상을 당한 끝에 마침내 적의 포위망을 뚫고 함흥으로 퇴각한 패전의 과정이다.

    미 해병대박물관에서 제막된 8각형의 기념비에는 각 면마다 장진호전투가 벌어졌던 함경남도 장진군 고토리, 하가우리 등 지역별로 이어진 전투장면을 기록하고, 눈보라가 그치고 밝은 별이 뜬 날을 골라서 미 해병대가 포위망을 뚫고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고토리의 별’을 기념비의 맨 위에 조각해 놓았다고 한다. 당시 미군은 한국어 작전지도가 없어서 일본어 지도를 사용하여 장진(長津)의 일본어 독음인 ‘Chosin(ちょうしん)’이라고 하여 ‘초신 전투’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날 기념비에는 ‘Jangjin(Chosin)이라 하여 장진호와 일본식 표기를 병기했다고 한다. 미국은 장진호전투에서 미 해병 1사단이 10배에 달하는 12만의 중공군 남하를 지연시켰으며, 중공군 사살 25,000명, 부상 12,500명에 전과를 이루며 흥남 철수에 성공한 전투였다고 자위하고 있지만, 사실은 미군의 전사상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존자가 몇 명 되지 않는다 하여 ‘The Chosin Few’라고도 말한다. 당시 뉴스위크지에서도 The Chosin Few를 ‘진주만 피습 이후 최악의 패전’이라고 혹평했다.

    1950년 10월 19일, 유엔군이 적도(敵都) 평양을 수복하자 북한은 개마고원이 있는 함경남도 장진군 강계(江界)를 임시수도로 삼고, 중공군 50만 명이 참전하였으나 맥아더 장군은 중공군의 개입을 과소평가하고 북진을 명령하여 10월 26일 서부는 청천강 북부와 압록강의 초산(楚山)에 이르고, 중부는 장진호, 동부는 압록강의 혜산진까지 진격하여 남북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여겨졌다. 이때 동부전선을 담당한 미 제10군단 알몬드(Edward M. Almond)소장은 해발 1000m 산악지대인 개마고원의 강계를 점령하기 위하여 장진호 일대에 국군 제1군단을 우측, 미 제7사단을 중앙, 미 제1해병사단을 좌측으로 배치했으나, 중공군은 11월 27일 미 제10군단 정면에 제9병단 12만 명을 투입하여 미군을 포위했다. 장진호 전투에서 미 7연대는 장진호 서쪽, 5연대는 하갈우리 북방, 1연대는 후방을 담당하는 형태로 배치했지만, 한국군 2군단이 중공군에 의해서 붕괴될 위기에 처했고, 미 2보병사단도 공격을 받고 하루 동안에 4,000 여명의 장병과 사단 포병장비 대부분을 잃었다.

    미군이 장진호전투에서 패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낮에도 영하 20도이고, 밤에는 영하 32도까지 떨어지는 혹독한 추위로 장병들의 주 무기인 중기관총은 항상 부동액을 채워야 했고, 경기관총은 불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목표물이 있건 없건 주기적으로 사격을 해야 했으며, 차량도 일정한 간격으로 가동을 시켜주지 않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땅바닥은 꽁꽁 얼어서 참호를 파거나 축성을 할 수 없었는데, 더욱 큰 어려움은 전투나 작업으로 흘린 땀에 발과 발싸개 사이에 얼음막이 생겨서 양말을 갈아 신지 않으면 대부분 동상에 걸렸다고 한다. 또, 부상자를 위한 링거나 모르핀도 모두 얼어버려서 사용할 수 없었으며, 전투식량도 먹을 수 없어서 언 상태로 먹은 탓에 병사들은 대부분 심한 장염과 설사에 시달렸고, 계속되는 전투로 침낭에서 잠을 자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더더욱 중공군의 포위망 때문에 물자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자, 공중에서 투하되는 보급품도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모두 깨져서 탄약도 겨우 25% 정도만 사용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종군기자였던 데이비드 핼버스탬(Halberstam)이 2007년에 출간한 ‘가장 추웠던 겨울, 미국과 한국전쟁(The Coldest Winter; America and Korean War)’에서 당시 장진호 부근에는 기록적인 영하 41도의 추위로 탱크와 기관총, 대포 등 미군이 우위를 차지하는 장비들의 윤활유가 얼어붙어서 미군은 흥남까지 약120㎞에 이르는 이른바 ‘흥남으로 철수작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고, 중국정부에서도 장진호전투에서 미군이 패배한 중요한 이유는 북풍이 몰고 온 영하 30도 이하의 강추위로 장진호에서 흥남에 이르는 120㎞ 퇴각로에는 동사한 미군들의 시체가 가득해서 ‘죽음의 도로’로 불리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미군은 유담리에서 장진호 남쪽인 하갈우리까지 약22km 적의 공격을 저지하면서 후퇴하는 시간이 무려 77시간이 걸려서 평균 1km 전진에 2시간 40분~3시간 30분이 걸렸으며, 부상자 약1500명 중 들것에 실린 중환자 600명은 한명도 남기지 않고 전원 후송하고, 155mm야포 9문과 골짜기에 굴러 떨어진 지프차 몇 대를 제외하고 모든 장비를 철수시켰다고 했다.

    그 후 흥남에 도착한 미군 12만 명은 12월 14일부터 24일까지 열흘 동안 193척의 군함으로 해상탈출을 했는데, 이때 연합군은 안전한 해상철수를 위하여 흥남 항에 교두보를 만들고, 300여 척의 함정을 흥남 앞바다에 집결시키는 한편 흥남항 주변에 육·해·공 입체 화망(火網)을 만들어서 병사들의 승선을 엄호했다. 한편, 같은 날인 12월 4일 국군도 평양에서 철수했다.

    미군의 퇴각후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이 원자폭탄을 쓸 수 있게 허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결국 확전을 피하려고 맥아더 장군을 해임하고 휴전협상을 택했다. 이것은 북한의 김정은이 핵무기를 장난감처럼 수시로 발사하며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는데도 미국은 강력하게 응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장전호전투에서의 비참한 패전 트라우마 때문이거나 생화학무기 개발을 구실로 석유매장량이 막대한 후세인의 이라크를 침공하듯 기습작전에 나서지 못하는 핵무기 공포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편, 우리정부는 현충일을 6.25때 희생자만의 명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건국이래 호국영령들을 위하여 고려시대부터 음력 6월 6일 망종(芒種) 때 조정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뼈를 집으로 가져가 제사하고 매장하도록 한 기록에 의해서 6월 6일로 정했다고 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차라리 설이나 추석처럼 음력절기에 맞춰서 설과 추석을 공휴일로 정하듯 음력절기상 망종일을 현충일로 정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지만, 지금 혈연에 집착하는 진보세력에게 북한공산당의 잔악상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면 이날 ‘돌대가리장군(石頭 將軍)’이라고 하는 송 모 사단장이 지휘하는 우리 군이 적에 포위되어 전멸 되다시피 하고, 사단기를 3개나 빼앗긴 치욕의 날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수치가 아니라 살아있는 반공교육이 될 것이다. ‘병사들에게 이기고 지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一勝一敗 兵家之常事)’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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