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정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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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관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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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9일 치러진 대통령선거는 여러 모로 우리에게 새로운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다. 정상적인 선거였다면 당선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하여 임기 시작 전에 정부의 상황분석과 함께 내각 등 고위공직자 등을 구성할 여유가 있었겠지만, 마치 직전 대통령이 임명한 내각이 포진하고 있는 적진(?)에 단기필마로 뛰어든 상황이 된 것이다. 앞으로 이런 사례에 대비한 입법적 조치를 마련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하루바삐 내각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를 임명하여 통치이념을 구현시켜야 할 상황인데도 일부 후보자의 인사 청문에서부터 제동이 걸리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상황을 정도(正道)에서 해결하지 않고 밀실거래로 임명을 강행할 경우에는 새 정부 역시 대통령 자신이 그토록 비난하던 역대 정권과 하등 다를 바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공약으로 내세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5가지 비리와 관련자는 고위 공직자로 임명하지 않겠다는 약속과도 정면 배치된다. 또, 묘수를 찾는다고 차일피일 한다면 자칫 집권초기의 허니문 기간을 낭비하여 국정운영의 동력을 상실하는 원인이 될 것이어서 하루속히 안목을 바꿔서 용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우리 헌법은 제헌당시 정치적 실력자인 이승만의 의중에 따라서 내각제에서 대통령제 바뀌었으나, 대통령제는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야기된 4.19혁명으로 무너졌다. 그 뒤를 이은 민주당 정권은 이전 정권의 대통령제를 비판하는 여론에 편승해서 내각책임제로 개헌했지만, 1년을 지탱하지 못한 채 5.16. 군사쿠데타로 무너졌다. 그 후 군복만 벗고 민간인(?)이 된 정치군인들이 계속한 3공화국 헌법도 대통령제였는데, 이후 반세기 이상 대통령제를 유지해오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이 많다. 새 대통령 역시 임기 중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지만, 사실 권력구조를 비롯해서 어느 것 하나 밑그림이 그려진 것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민주정치를 시작한 영국이나 프랑스 등은 물론 미국의 대통령제 어느 것도 어느 제도가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제도는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제도를 운영하는 인물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헌법 제69조는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할 것을 규정하고 있으나, 역대 대통령들은 항상 헌법을 위반하고 독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대통령은 수많은 공직자를 임명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갖는데, 실무자급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직과 달리 정치적 결단과 정무적 판단을 하게 되는 고위공직은 곧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분담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동안 국민들은 역대 대통령 후보들 자신부터 흠결투성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제시한 공약만 믿고 혹은 직전 정권의 실패한 정치에 대한 반발 심리에서 반대세력의 후보를 선택하곤 했는데, 정부의 조각과정에서 보여준 결과도 마찬가지라는 데서 오는 좌절감은 매우 크다. 더구나 새 대통령은 순수한 재야정치인이 아니라 이미 15년 전 정권을 장악했던 진보적 정당의 대통령을 보필하던 비서실장으로서 정치의 현실과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고, 더욱이 후보였을 때 자신의 결백 내지 이전 정권과 다른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조각(組閣)과정에서부터 위장전입이란 암초에 부닥치고 있다. 그나마 각료 후보자의 인사 청문은 그 전부가 아니라 겨우 국무총리 등 6명에 불과한데도 국무총리와 외교부장관 그리고 공직거래위원장 등 3명이 주민등록 위장전입으로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나 국회동의가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권인수위가 없어서 넘겨받은 자료가 없었으며, 지난해 10월부터 벌어진 표류상태의 국정을 시급히 정상으로 돌려야 할 긴급한 상황에서 하루속히 내각 인선을 마무리하여 국정 공백을 메우고 개혁 과제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점 등을 감안하더라도 통치이념을 구현하는 목표(goals)만큼 그 목표를 추구해나가는 과정(process) 역시 소중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목표가 소중하다고 해서 과정을 소홀이 할 수는 없다. 2000년에 처음 도입된 인사청문회 제도는 본래 임명될 공직에 대한 수행능력과 자질에 대한 검증 절차이지만, 현실은 매번 야당의 인신공격과 신상털기식 정치공세의 장으로 변질되어 청문회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국력을 낭비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인사청문회의 기준과 잣대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집권여당을 비롯한 대통령 측에서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인사를 고백하면서도 청문회 통과를 애걸하는 한편, 위장전입 역시 의도성·반복성 등을 따져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세부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적폐 청산, 특권과 반칙 없는 사회를 표방하고 출범한 새 정부에 어느 때보다 높은 도덕성을 갖춘 능력 있는 인사의 발탁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의 실망은 물론 이런 구차한 변명은 정도(正道)가 아니며, 구시대 정권의 고위실력자가 내뱉은 ‘남이 하면 불륜 자신이 하면 로맨스’라고 하는 행태의 반복일 뿐이다. 다만. 진보·보수를 떠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인사들의 준법정신과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 민낯을 또 한 번 목격하게 된 데 대해 참담함마저 느끼면서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역사가 오늘을 살아가는 지침이 되기 때문이다. 형인 태자 건성이 책사 위징(魏徵)의 건의를 받고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고 먼저 이들을 죽이고(玄武門의 亂) 실권을 장악한 왕자 이세민의 나이는 겨우 20살이었는데, 그 후 2대 황제가 된 태종은 24년간 제위하면서 돌궐을 비롯한 주변의 이민족을 제압하여 번한(蕃漢)의 두 사회를 통치하는 세계제국을 이루었으며, 사후에 그의 연호인 정관(貞觀)에서 취한 정관의 치(貞觀의 治)라는 태평성세를 이룬 황제로 평가 받고 있다. 그렇지만, 당태종의 위대함은 이민족의 정복으로 이룬 세계제국이 아니라, 수양제의 실정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장손무기(長孫無忌)· 방현령(房玄齡) 등 신하들의 건의를 폭 넓게 받아들여서 평생을 독재하지 않았으며, 특히 형 건성을 보좌하면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위징을 신하로 삼고 사심 없는 그의 비판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안으로는 방현령·두여회(杜如晦) 같은 명재상들로부터 의견을 듣되, 어느 한 쪽에 의존(偏信)하지 않고 두루 청취하여(兼聽) 국내의 정치안정과 경제회복에 힘을 쏟았으며, 밖으로는 이정(李靖) ·이적(李勣)등 명장의 보필을 받아 국위를 떨쳤다. 무능하고 독선적인 직전 대통령의 직무정지 이전부터 침체된 국가경제를 위해서 가속페달을 밟아야 할 새 정부가 의연하지 못한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임명동의를 구걸하거나 시도하는 것은 앞으로 정권 내내 발목을 잡히는 요인이 된다는 사실과 목표추구 못지않게 그 과정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칫 새 정부가 누리는 골든타임을 놓쳐서 국정 개혁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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