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정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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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와 대통령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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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시 젊은 피를 꿈틀거리게 하는 4.19가 찾아온다.

    1960년 4월 19일 전개된 4.19 학생의거는 한 달쯤 전인 3월 15일에 치러진 정․부통령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이 장기집권을 획책하고 저지른 상상도 하지 못할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였다. 당시 선거의 총체적인 책임자인 최인규 내무부장관은 공정한 선거관리를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당인 자유당 정․부통령후보의 당선을 위해서 일일이 말과 글로 언급할 필요도 없는 부정선거를 획책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4할 사전투표’,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투표, 완장부대 활용, 야당참관인 축출 등의 방법으로서 자유당후보의 득표율을 85%까지 올리려고 노력했다. 가장 비열하고 야비한 것은 민주주의의 꽃인 국민의 직접선거인 투표 장소에서 감시자가 다른 선거인이 투표하는 것을 뻔히 볼 수 있도록 구멍을 통해서 선거인은 기표한 내용을 확인받은 뒤 투표함에 넣는 이른바 3인조, 5인조 투표라는 행태였다.

    불행히도 강력한 야당 대통령후보 조병옥이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갔으나 죽음으로서 여당은 경쟁후보가 사라져 대통령 당선이 확정적이었는데도, 정부와 여당은 현직 부통령인 민주당의 장면 후보를 물리치고 자유당후보 이기붕을 당선시키려는 음모를 버리지 않았다. 게다가 민주당은 유력한 대통령후보의 죽음으로 허탈감에 빠져 정부와 여당의 부정선거 지령을 폭로하면서 국민에게 선거 불참을 호소했는데, 이것은 선거포기로서 오히려 자유당 정권에게는 부정선거를 하도록 멍석을 깔아준 것이 지나지 않았다.

    야당이 포기한 상태에서 치러진 선거 결과 총투표자 1,000여만 명 중 이승만 960여만 명으로 88.7%, 이기붕은 830여만 명으로 79% 득표로 당선됐다. 하지만, 투표와 개표과정에서의 공공연한 부정행위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선거 당일인 3월 15일 저녁 마산에서 부정선거 규탄 시위로 시작되었는데, 이날 경찰은 평화적인 시위를 저지하며 80여 명을 체포했다. 그런데, 당일 실종되었던 16세의 고등학교 1학년 김주열 군의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바다에 수장시킨 사체가 떠오르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학생․ 시민은 물론 이성적인 판단을 함으로서 최후에 행동을 보여준다고 하는 ‘지식인의 이반(離反)’이라고 할 대학교수들까지 거리로 뛰쳐나오자, 마침내 왕조시대의 임금처럼 귀를 막고 지내던 대통령은 경무대에서 하야 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지금의 총리격인 내각수반의 묵인 하에 김포비행장에서 하와이로 망명의 길을 떠났는데, 그 후 이승만은 수차 귀국을 희망했지만, 군사정부의 반대로 한국 땅을 밟지 못한 채 하와이에서 죽었다.

    자유당 정권의 몰락 후 어부지리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시민혁명으로 얻은 권력이어서 항상 시위대의 요구에 끌려 다니는 형국을 빚었고, 그런 시위와 데모는 밤낮 그칠 줄 몰랐다. 결국 민주당 정권은 1년도 지나지 않은 1961년 5월 군부 쿠데타로 무너졌는데, 박정희 장군은 군복만을 갈아입은 채 민정 복귀(?)하여 정권을 장악하다가 1979년 10.26 김재규에게 시해될 때까지 장장 19년 동안 현대판 제왕처럼 군림했다. 10.26 이후 ‘서울의 봄’을 기대했던 시민들의 기대와 달리 신군부 세력은 12.12. 사태로 군권을 장악하고 마침내 ‘신군부정권’이 출현함으로서 민주주의 실현이 요원한 상황에서 위대한 시민들은 1987년 6.10 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쟁취하여 문민정부가 출범하게 되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만 쟁취하면 자유와 평화, 복지가 거저 찾아올 것으로 믿었던 환상이 깨지고, IMF 외환위기라는 건국이래 최초로 국가부도의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이런 암울한 상황이 10년째 이어지던 2012년 12월 뉴욕타임즈를 비롯하여 로이터, 블롬버그, AFP, ABS 등 대다수의 외신들이 ‘독재자의 딸(Dictator’s daughter)’이라며 비난한 시월유신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것은 비록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당하면서도 숙명처럼 살았던 배고픔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유신정부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집권하면서부터 불통과 오만으로 일관하더니 서서히 드러난 무능과 비선실세에 의한 정권농단으로 결국 임기 4년 만에 탄핵되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야당과 일부 언론의 보도이기 때문에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집권기간 내내 모든 국사는 부하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외국 방문을 하거나 집무실이 아닌 저택에서 왕조시대의 여왕이나 공주처럼 지냈다고 한다. 차라리 그러기만 했으면 싶지만, 비선실세와 권력을 사유화하고 사익을 추구했다는 이유로 파면되고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은 그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비극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역사는 되풀이 되어 전개되기 때문에 지나간 역사에서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기 위한 것이지만, 역대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치고 노후를 즐기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우리 국민의 어리석은 선택 때문인지 아니면, 선택해준 국민을 배신한 정치지도자들의 탈피하지 못한 제왕적 사고방식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또다시 새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과정을 지켜보면 잠룡들이 아니라 이무기도 되지 못하는 위인들이 난장판을 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 행복과 안전을 위한 공약 제시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혹은 자신이 속한 정파의 정권쟁취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 같은데, 또다시 4.19 같은 국민적 불운(?)을 겪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만 간절하다.

    역사는 스펭글러(Oswald Spengler: 1880~1936)가 ‘서구의 몰락(Der Untergang des Abendlandes)’에서 말한 것처럼 일련의 주기를 거쳐 반복되다가 점차 쇠망하는 것이 아니라 토인비(Arold Toynbee: 1889~1975)의 ‘역사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말한 것처럼 창조적인 소수에 의해서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이라면, 기로에 서있는 지금 우리는 눈앞의 교언영색에 홀리지 않고 오로지 국가의 먼 미래를 내다보며 현명한 선택을 기대해본다. 오로지 등불 앞에 날뛰는 하루살이처럼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권력자는 시민들의 동의 아래에서만 부여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라는 대명제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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