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권순철
  • 변호사
  • 법무법인 지평
연락처 : 02-6200-1852
이메일 : sckwon@jipyong.com
홈페이지 : http://www.jipyong.com
주소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60 KT&G 서대문타워 10층
소개 : M&A / 기업일반·국제거래 / 도산·구조조정 / 노사관계 / 자원·에너지·환경

이 포스트는 0명이 in+했습니다.

    목록이 없습니다.

    권순철님의 포스트

    [ 더보기 ]

    면기난부(免飢難富)

    0

    믿기 어렵겠지만 필자도 고등학생 때까지는 공부를 잘 하였다. 문과 1등은 법대를 가는 분위기였다. 가서 뭘 배우는지, 나중에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들어갔다. 전교 1등의 ‘가오’만 생각했다.

    사법시험에 겨우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민사변호사실무 교재를 폈더니 대뜸 첫 머리에 ‘변호사업은 면기난부(免飢難富·굶는 것은 면할 수 있으나 부자가 되기는 어렵다는 뜻)’라고 적혀 있었다. 제대로 속았구나 싶었다. 스스로 빠진 착오이니 취소할 수도 없고 난감하였다.

    변호사를 시작하였으나 별로 재미가 없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몰라 선배한테 많이도 혼났다. 하는 고생에 비해서는 월급이 많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조금씩 연차가 쌓이니 야단을 맞거나 망신을 당하는 횟수는 줄었는데, 어느덧 사건을 수임해와야 하는 압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을 따오기도 힘들고, 따온 일을 하기도 힘들고. 이래저래 ‘가오 상하는’ 직업이다 싶었다.

    4년 전인 것 같다. 돈 많이 번다고 소문난 의사선생님과 저녁을 먹었다. 그는 이과 1등으로 별 생각 없이 의대를 간 경우였다. 돈 많이 벌어 좋겠다 속으로 부러워하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변호사님이 참 부럽다고 하였다.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이냐 되물었더니, 변호사는 남의 인생을 속속들이 보게 되지 않느냐, 그러면서 얻는 경험이 얼마나 다양할 것이냐, 자기는 하루 종일 아픈 사람만 그것도 특정한 신체부위만 보고 있으니 답답할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원래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웃어 넘겼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모든 사람은 자유와 재산에 대한 욕망을 품고 산다. 그 욕망이 실현되지 않을 때 문명사회에서 기댈 수 있는 마지막이 법이다.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채로운 욕망과 거기에 얽힌 희로애락이 법조인 앞에서 펼쳐진다. 맡은 일만 놓고 보면 결국 인생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이만하면 ‘가오 사는’ 일을 하는 것이 맞다.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물론 거기다 돈까지 많이 벌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으나, 난부는 확정이고 면기는 위태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보다 열심이신 동료 법조인들께, 연재를 마치며 영화대사로나마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 이 글은 2015년 8월 20일자 법률신문 15면 <법조프리즘>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