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하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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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관 고위직이 중간 경유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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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의 지나친 법관 사랑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국가인권위원장이다. 이제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의 자리는 행정부 고위직으로 가는 경유지가 되어 버렸다. 최근 들어 국민권익위원장과 감사원장에 이어 3번째다. 방송통신위원장까지 더하면 ‘현직’ 고위 법관이 행정부 관료로 발탁되는 인사 패턴이 굳어지고 있다. 시작은 이명박 정부다. 임기가 보장된 현직 대법관이 임기 도중 감사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청와대가 인사권으로 사법부의 독립과 삼권분립을 훼손하기 시작했고 사법부 스스로도 독립성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물론 감사원, 방송통신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모두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이 필요한 기구이므로 독립성으로 무장된 법관이 자리를 맡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에 잘 부합하는 인사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행정부가 사법부를 대하는 비민주적·위계적 인식과 사법부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다.

    이로써 ‘사법의 정치화’가 우려할 만한 수준에 놓이게 되었다. 임명권자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이나 비전에 봉사할 수 있는 사법부 인물을 행정부의 요직에 임명하고, 이에 ‘현직’ 고위 법관들이 주저 없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현실은 임명권자가 정책이나 정치적 의지의 실현수단으로 사법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는 사법부의 위상과 독립성에 대한 임명권자의 중대한 침해이자 사법부 구성원 스스로 독립성을 훼손하고 헌법정신을 경시한 심각한 문제다. 사법부 최고기관으로서의 권위와 그 헌법상의 지위를 내던지고 이런 직위를 받아들이는 대법관이나 고위직 법관도 비난 받아 마땅하다.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하는 정치권력에 동조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공공정책의 결정과 실행이 사법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그런 의심을 받는다. 이런 인사패턴이 지속된다면 임명권자의 눈치를 살펴 정치권에 친화적 판결을 선고하거나 사법행정을 펼칠 유혹에 빠져들 수 있다. 법관이 법원을 자신 경력의 최종 종착지가 아니라 보다 나은 직위를 위한 중간 경유지로 생각한다면 경제권력이나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고위 법관의 고위 행정 관료로의 전직은 정부 부처관련 소송에서 전관예우의 우려를 낳게 한다. 이는 결국 사법부의 신뢰가 허물어지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런 사례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아무리 법관들이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한 판결을 내렸다고 해도 공정하게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법에 대한 불신은 사라지지 않게 된다. 이쯤에서 국민 중심의 사법과 사법신뢰의 회복을 위해 애쓰시는 대법원장께 입장을 묻고 싶다. 법관 개개인의 독립성 보장이라는 이유로, 법관 개인의 결정이라는 이유로, 아니면 사법부의 인사 숨통이 트인다는 이유로 그냥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다.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사법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하여 한마디 멘션(mention)을 날려야 한다. “그만 좀 빼가라”고.

     

     

    ◊ 이 글은 2015년 8월 3일자 법률신문 14면 <서초포럼>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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