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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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여행(베이징, 울란바토르, 이르쿠츠크, 바이칼호, 알혼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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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여행(베이징, 울란바토르, 이르쿠츠크, 바이칼호, 알혼섬)

    http://blog.naver.com/jblawyer/220428105614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베이징, 몽골 울란바토르, 그리고 우리 민족의 시원인 러시아 이르쿠츠크 바이칼호까지 8박 9일의 대륙여행을 다녀왔다. 어느 사단법인에서 3차로 진행하는 대륙탐험에 동참한 것이다. 2015. 7. 13. 월요일 아침 8시30분 인천공항에서 일행들이 모여 비행기로 베이징에 도착한 후,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을 둘러본 후 호텔에서 1박, 다음날 칭화대와 베이징대를 산책하였다. 베이징에서 울란바토르까지 29시간의 기차여행, 울란바토르에 도착해서 자이승전망대, 몽골의 마지막 황제 어의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인 이태준 기념관, 테를지 국립공원에 들러 게르에서 1박, 별자리 여행과 승마체험으로 초원을 경험하고, 겨울궁전과 징키즈칸 광장을 돌아봤다. 울란바토르에서 러시아 이르쿠츠크까지 25시간 기차로 이동한 후 호텔에 여장을 풀고, 앙가라강변의 석양을 구경하면서 이르쿠츠크 호텔에서 1박, 다음날 다시 앙가라 강에서 일출을 맞이했지만 어제의 일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아침 8시 체크인을 마치고 바이칼호를 따라 알혼섬에서 알탕까지 해가며 우리 민족의 시원을 느껴보았다. 이동시간이 길어 중간에 중국과 러시아 역사, 볼셰비키혁명 전개과정, 징키즈칸의 원제국 건설과 북원으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몽골이 독립하는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째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삼성동 공항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약속시간인 8시 30분이 다되어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28명의 일행중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 간단히 인사를 하면서 분위기를 파악한다. 여행사 측으로부터 여권과 도시락 등을 건네받아서 곧바로 발권을 하고 짐을 부친다. 시간이 많이 남아 공항 검역소장으로 근무중인 후배를 만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눈 다음 비행기에 탑승한다. 사무실 일로 인터넷을 사용할 일이 많아서 일일 만원씩 내는 데이터 무제한사용에 가입하는 것과 달러와 러시아 루블화를 조금씩 바꾸는 것도 필수사항이었다.

     

    11시에 인천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비행기는 12시 10분(북경시간)에 도착하고, 곧바로 버스를 이용하여 천안문광장으로 이동한 다음 자금성을 구경하는 것으로 첫 일정을 시작한다. 서울에 비해서 무더운 날씨 때문에 선그라스를 끼고 선크림을 바른 후 구경에 나선다. 벌써 몇번째 들른 천안문과 자금성 구경이다. 천안문광장(Tiananmen Square, 天安门广场)은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는 천안문이 있고, 천안문과 그 앞으로 펼쳐진 광장은 금수교(金水桥)라 불리는 다섯 개의 흰 대리석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동서의 길이가 500m, 남북은 880m, 총 면적 44만m2로 세계 최대의 광장이다. 높이 33.4m의 천안문은 원래 1417년에 명 영락제에 의해 건설되었던 승천문(承天门)이 그 전신으로, 청대에 불탄 것을 1651년에 재건해 천안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광범위한 넓이 때문에 100만 명의 인원도 거뜬히 수용할 정도이며 대규모 군중시위, 집회, 행렬, 경축행사 등의 장소로 빈번히 활용되었다. 1919년의 5 · 4운동, 1949년의 중화인민공화국 선포, 문화대혁명, 두 차례의 천안문 사태(周恩來 총리가 사망 후인 1976. 1., 그리고 1989. 6. 4.에 있었던 대규모 민중시위) 등 굵직한 사건들이 벌어진 중국근현대사의 상징적 장소이다.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포한 천안문의 누각 위에서 드넓은 천안문 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어 뒤로 펼쳐진 광장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들이 많은 곳이다.

     

    천안문 광장을 지나면 나오는(오문 午門에서 시작됨) 자금성(紫禁城, Forbidden City)은 자주색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성이란 의미다. 중국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었던 궁궐, 자금성은 오랫동안 백성들이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궁궐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황제, 황후, 고위 관리와 궁녀, 내시, 시종, 외국 사절단 정도가 전부였다. 오늘날 자금성을 ‘고궁박물원’이라고 부르고,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명나라 제3대 황제 영락제는 황제가 된 지 4년째인 1406년, 수도를 남쪽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기면서 거대한 궁궐을 짓도록 했다. 약 100만 명의 사람들이 14년에 걸쳐 건설한 끝에 완성된 자금성은 지금까지의 어떤 궁궐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전체 면적 72만㎡, 건축 면적만도 15만㎡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로 길이 960m, 폭 750m인 직사각형의 공간에 수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고, 800채의 건물에 방의 개수도 8886개 이른다(소문에는 9999개라 함).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자금성은 질서 정연한 대칭 구조로 되어 있고, 기능에 따라 크게 외조와 내정으로 나뉜다. 외조는 황제가 공식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곳이고, 내정은 황제와 황후, 빈과 상궁들이 사용했던 사적인 공간이다.

     

    오문(午門)의 중앙에 있는 문은 황제만이 이용할 수 있는 문으로 황제 외에는 황후가 시집 올 때 한번, 보화전(保和殿)에서 황제의 집전으로 치러지는 전시의 1, 2, 3등 합격자들이 퇴장할 때 한번만 사용이 가능하였다. 동쪽의 문은 관료가, 서쪽의 문은 왕들과 제후들이 사용하던 문으로 황제 이외에는 가마나 말에 올라 오문을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걸어서 들어와야만 하였다. 외조는 황제의 공식 집무실인 태화전(太和殿)과 방문객을 만나거나 신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중화전(中和殿), 황제의 책을 보관하는 도서관이자 연회장이었던 보화전(保​和殿)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조의 중심은 자금성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태화전으로 황제가 중요한 나랏일을 결정하고 공식적인 행사를 치르던 장소이지요. 황제의 즉위식, 탄생 축하 행사, 결혼식, 국가의 칙령 발표, 외국 사신 접대 및 조공 등 나라의 중요한 행사가 주로 이곳에서 열렸으며, 군대가 전쟁터에 나갈 때 행사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황제와 황후, 빈과 상궁 들이 사용하던 내정은 건청궁(乾清宫) 교태전(交泰殿), 곤녕궁(坤宁宫)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정은 이 3개의 건물들 주변에 대칭으로 많은 건물이 세워져 있어, 공적인 공간인 외조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내정의 중심 건물은 건청궁으로 명나라에 이어 청나라 초기까지 황제의 침실이자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던 곳이고, 청나라 옹정 황제가 양심전(养心殿)이란 곳에 새로운 침실을 마련하고 태화전에 이어 보조 직무실로 사용하기 전까지는 오직 황제와 황후만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옹정 황제 이후부터 건청궁은 황제의 서재이자 고위 관리들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고, 때론 외국 왕실의 손님을 맞는 곳이자 연회장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내부의 모습이 태화전과 비슷한데, 역시 금박 병풍과 옥좌를 비롯하여 천장과 기둥, 여러 가지 물건들이 모두 화려하다. 건청궁 옥좌 뒤에는 ‘정대광명(正大光明)’이란 커다란 액자가 걸려 있는데, 이 액자는 초기 청나라 황제였던 순치 황제가 직접 쓴 거라고 한다. 또 건물 입구에 걸려 있는 ‘건청궁(乾淸宮)’이란 현판도 순치 황제가 직접 쓴 것으로 한자와 만주어가 함께 쓰여 있어, 황실의 주인이 만주족이라는 것을 알리는 표시란다.

    자금성에 들러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 건물하나 하나를 구경하는데 많은 사람들과 뜨거운 햇볕 때문에 집중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혼자 뒤에 따라가면서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흡수한다. 그동안 몇 번을 다녔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와봤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일행들이 서두른 탓에 1시간을 조금 넘게 구경을 하면서 걸어 나오니 자금성의 간판이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으로 표기되어 있다.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불린다. 건너편에는 조그마한 산이 보이는데 경산(景山)이다. 경산은 진산(镇山)、만세산(万岁山), 매산(煤山)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자금성 해자와 근처 인공 연못들을 만들면서 퍼낸 흙을 쌓아 만든 45.7m 높이의 인공산으로 조성되었다. 베이징이 명나라의 수도가 아니었을 때 다른 황궁들은 모두 산 아래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후 명나라는 베이징으로 천도하였으나, 적당한 산이 없었고, 그래서 산을 하나 만들게 된 것이 경산이다. 때문에 풍수산(风水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숭정(崇祯) 17년 이자성의 군대가 베이징으로 쳐들어오자, 명나라 마지막 황제(숭정황제)는 신무문으로 나와 경산 동쪽 비탈 홰나무(槐树) 밑에서 자살하였다. 앞서 언급한 해자(垓子)는 동물이나 외부인, 특히 외적으로부터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성(城)의 주위를 파 경계로 삼은 구덩이를 말한다. 방어의 효과를 더욱 높이기 위해 해자에 물을 채워 넣어 못으로 만든 경우가 많았다. 자금성 해자의 너비는 52m이며 깊이는 6m에 이른다. 해자에는 동서남북으로 해자를 가로지르는 4개의 다리가 있다.

     

    자금성 관관을 마친 후 서커스(조양극장과 천지극장의 서커스가 유명하다는데 제대로 모르고 구경을 했다. 어린 소녀들이 혹사당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기예가 출중했다)를 구경하고 숙소인 MARRIOTT호텔 근처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여전히 입맛에 맞지 않는다. 중국이나 동남아권 나라에 갈 때마다 음식이 맞지 않아서 고역이다. 해외여행을 잘 하려면 무엇이든 잘 먹는 것도 하나의 복이다. 중국맥주에 소주를 시켜서 몇 잔의 폭탄주로 치장을 하고 숙소에 들어온다. 숙소에 들어와서 짐을 푼 후 호텔 1층에서 몇 사람이 모여 간단히 맥주를 마신다. 일행은 아니었지만 금감원 중국 대표와 한화 임원이 함께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일 아침 일찍 베이징대를 다녀오기로 하고 자리를 마감한다.

     

    <둘째날>

    몇 명이 다른 일행들보다 일찍 일어나 5시30분 호텔로비에서 만나 칭화대와 베이징대로 향한다. 몇 년 전 세미나 발표를 하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베이징대와 칭화대다. 정법대와 연변과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몇 개의 건물을 돌아보면서 중국 대학들이 예상외로 오래되었고(신해혁명 직후인 1912년에 세워졌다는), 체계적으로 교육을 시킨다는 느낌을 가져본다. 이른 아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거나 견학을 하는 단체들도 보였다. 돌아오는 길은 출근시간 때문에 조금 지체되어 1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호텔에 돌아와 아침식사를 마친 후 체크아웃을 하고 근처에 있는 베이징역까지 걸어간다. 더운 날씨에 한참을 기다려 11시 22분에 출발하는 열차에 오른다. 침대칸으로 되어 있는, 시설이 상당히 낙후된 열차다. 앞으로 장장 29시간(베이징에서 울란바토르까지 1,553km)을 생활해야 하는 공간이다. 네명이 한 칸을 차지하고, 트렁크를 비롯한 잡다한 짐들을 꾸역꾸역 밀어 넣은 후 최대한 편한 복장으로 자리를 잡는다. 처음에는 베이징 근교를 지나던 열차가 서서히 도심을 벗어나고, 초원지대에 들어선다. 일행들과 어울려서 술잔을 기울이기도, 식당칸에 모여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중국의 역사 등에 대하여도 대화를 나눈다. 모두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서 유익한 대화가 이어진다. 미리 준비한 발열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한 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중국의 국경도시 Erlian이 가까워지면서 몽골로의 입국을 준비한다. 또한 중국의 열차는 협궤(狹軌, 표준궤, 1천435㎜)임에 비하여 몽골과 러시아는 광궤(廣軌, 1천520㎜)여서(러시아와 몽골은 외적의 침입이 잦아 군수물자의 운송을 방해하기 위하여 광궤를 사용한 것이라 함) 열차 바퀴를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린단다. 그래서 열차에서 내려 2시간가량을 대합실 같은 곳에서 대기해야 한다. 늦은 시간에 졸음은 쏟아지고, 공간은 여유롭지 못해서 고역이다. 맨바닥에 누워서 잠을 청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셋째날>

    동이 트면서 몽골대륙의 광활함이 차창 밖으로 그대로 드러난다. 이미 고비사막의 끝자락에서 초원지대로 들어서고 있었다. 베이징에서 출발한 열차가 몽골종단철도(TMGR, Trans-Mongolian Railway)와 연결되어 울란바토르를 향해서 달리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메마른 땅에 잡초 등이 드문드문 자라는 모습이다가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가축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다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광야위로 지평선만 보이다가 가축들이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몽골은 인구 300만에 가축은 6,000만 마리에 이른다니 사람보다는 가축들이 지배하는 땅인 듯하다. 몇 시간을 달려도 제대로 형성된 도시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척박한 땅이어서 생활하기에 부적당하고, 그래서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처럼 땅이 부족한 경우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촌락이 형성되었을 텐데.. 그리고 마침내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Ulanbator)에 도착한다.

     

    울란바토르 도착 후 곧바로 몽골전승 기념탑인 자이승전망대와 이태준 기념관으로 향한다. 먼저 이태준 기념관이다. 이태준은 몽골 마지막 황제의 어의로 활동한 의사이자 독립운동가라고 한다. 그러다가 러시아 군인들에 의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이에 몽골정부가 부지를 기증해서 그를 기리는 기념관을 만들게 되었단다. 자이승전망대는 몽골과 러시아가 독일과 일본을 물리친 전쟁승리를 기념하면서 러시아에서 만들어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모습이 러시아 사람들의 형상이다. 울란바토르 시내가 한눈에 모두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힘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 곳을 구경한 후 오늘 숙박하게 될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들어간다.

     

    테를지 국립공원은 몽골 최대의 휴양지로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과 기암괴석으로 유명하다. 다만 우리나라 산들과는 다르고 기암괴석도 아기자기 하다. 또한 끝없이 펼쳐진 초원은 몽골이 왜 유목생활을 하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이동하면서 한편에 서있는 샤먼이 제사를 지내는 형형색색의 천으로 둘러싸인 돌무더기와 나뭇가지 앞에서 나름의 엄숙한 기도를 해본다. 그리고 오늘의 숙소인 게르에 도착한다. 화장실과 세면장, 그리고 식당은 현대식 건물로, 숙소는 게르로 되어 있고, 한 동의 게르에 3명이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게르 안에는 3개의 침대, 그리고 가운데 난로가 자리하고 있다. 숙소 뒤쪽에 나지막한 바위들이 있어서 올라가보니 경이로운 장관이 펼쳐진다. 멀리 또 다른 게리들,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암룬들, 그리고 드넓은 초원과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가축들의 모습이다. 저녁은 숙소에서 제공한 양고기(허르헉) 파티다. 조금 냄새가 나지만 나름 최상의 식사대접인 것 같다. 비위가 약해서 많이 먹지는 못하고 몇 잔의 술과 함께 허기를 달랜다. 식사 후에는 조금 여유롭게 걷는 시간을 갖다가 노래와 마두금 등의 악기공연이 시작된다. 그리고 별자리에 대한 전문가의 설명이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최상의 별자리 여행이 있었을 터인데 조금씩 내리는 비로 별자리 구경을 포기하면서 잠자리에 든다.

     

    <네째날>

    새벽에 잠깐 일어났더니 비가 내리지 않고 별이 초롱초롱 떠있다. 몽골의 초원은 다른 불빛이 없기 때문에 별들이 더 밝게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 시골에서도 마찬가지다. 조금 있으려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그래서 다시 잠자리에 든다. 아침 일찍 주변을 트레킹하려 했으나 비때문에 방에서 뒤척거리다가 아침 식사를 마친다. 비때문에 어제 저녁의 별자리여행, 그리고 오늘 아침의 주변 암릉들의 트레킹이 불가능한 아쉬움이 있었다. 식사후에는 유목민 가정의 방문과 승마체험이 있었으나 역시 비때문에 조금 말을 타다가 내려와야 했다. 버스로 이동해서 거북바위 등의 암릉구경, 그리고 근처의 라마교 사원까지 걸어서 구경을 하면서 둘러보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점심은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는 선진호텔에서 짐을 풀고 해결하였고, 식사후 간단히 사우나를 하였으나 시설이 미비하여 적은 돈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아까운 지경이었다. 호텔에서 조금 쉬다가 극장(몽골전통공연장 투멍이흐)으로 이동하여 몽골의 전통공연을 구경하였다. 몽골 전통의 춤과 노래, 그리고 연주로 이루어진 공연은 나름대로 다이내믹하면서도 애잔함이 느껴진다. 몽골의 전통 음악인 흐미(Khoomii)는 자연에서 나오는 산과 강, 바람, 동물 등의 소리를 표현한 것으로 저음과 고음이 한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나는 마법의 소리이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 몽골을 대표하는 현악기 마두금(馬頭琴)은 Morin Khurr로 불리며 악기의 윗부분이 말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어 마두금이라 불린다. 마두금은 해금과 비슷하게, 소리를 내는 현이 2개이며, 이 두 현을 활로 문질러 소리를 낸다. 공연관람을 끝내고 식당으로 이동하여 몽골식 샤브샤브로 소고기, 양고기 등을 맛본다. 원래 샤브샤브는 몽골인들의 유목생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휴식시간을 가지면서 하루의 일과를 정리한다.

     

    <다섯째날>

    몽골에서 마지막날이다. 복드칸 겨울궁전(Winter Palace of Bogd Khan)은 몽골의 8대 생불이면서 마지막 왕이었던 복드칸이 20년 동안 살았다고 한다. 톨강 강둑에 있던 여름궁전은 러시아가 파괴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겨울궁전만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사진을 찍으려면 따로 돈을 내야 해서 제대로 된 사진이 없다. 그 후 몽골에서 유명한 캐시미어 판매점에 들러 물건들을 구경도 하고 사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몽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양이 있는데 소욤보라고 한다. 아래에서 간단히 소개한다.

     

    *소욤보 문양​

    소욤보는 몽골인의 문자인 소욤보 문자로 구성되어 있는 특별한 문양이다. 소욤보는 몽골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몽골의 국기와 국장 그리고 공식 문서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소욤보를 구성하고 있는 문양을 위에서부터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불은 일반적으로 영원한 성장, 풍요로움, 성공의 상징이며, 세 개의 혀는 과거, 현재, 미래를 뜻한다. 태양과 달은 아버지의 하늘(텡그리)에 대한 숭배사상의 상징이다. 두 개의 삼각형은 화살이나 창의 뾰족한 끝 부분을 암시하고 있으며, 삼각형이 아래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안과 밖의 적을 무찌른다는 것을 뜻한다. 세로로 된 두 개의 직사각형은 원형보다 안정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직사각형은 몽골 국민의 정직함과 정의를 뜻하며,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모두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태극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완전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시절에는 두 마리의 물고기를 뜻한다고 해석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경계심이 물고기가 눈을 감지 않는다는 데서 유래된다고 설명되었다. 가로로 된 두 개의 직사각형은 요새의 벽으로 해석되며, 이는 단결과 힘, 그리고 “둘의 우정은 돌로 된 벽보다도 강하다.” 라는 몽골 속담을 뜻한다(위키백과).

     

    그리고 울란바토로의 중심광장인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옮긴다. 지금은 징키즈칸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주위에 몽골의 주요 시설들이 들어서 있고, 거대한 원나라 제국의 지도자들 좌상이 자리하고 있다. 몽골에 들른 많은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오는 것인지 헤아릴 수 없는 인파다. 수흐바타르는 몽골인들이 칭기즈칸 다음으로 존경하는 인물이다. 몽골을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독립시킨 혁명가이다.

     

    광장에서 빠져나와 근처 식당으로 이동해 점심식사를 해결한다. 정갈한 음식들이었지만 양고기 냄새 등으로 간신히 허기를 면할 정도만 먹는다. 그 후 역사박물관에 들렀다. 몽골의 탄생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유목민인 탓인지 화려한 문화는 없고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도록 담백하게 정돈되어 있다. 근처 백화점에 들러서 몇 가지의 물건들을 준비하도록 시간을 주는데 난 징키즈칸 보드카 2병을 구입하였다. 별로 비싼 술이 없어서 프랑스제 보드카보다 조금 비싼 몽골 돈으로 208,000 투그릭을 지급한다. 역사박물관의 관람으로 몽골에서의 일정은 끝나고 울란바토르 역으로 향한다. 오후 4시 25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서다. 한국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일행들이 탑승한 열차에 함께 오른다.

     

    또다시 기나긴 열차여행이다.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한 열차는 다르칸(DARKHAN)과 국경도시 수헤바타르(SUKHBAATAR)를 거쳐서 시베리아횡단철도(TSR)에 합류해서 이르쿠츠크까지 가게 된다. 열차에 탑승하였지만 자리 문제로 어수선하다. 계획된 대로 자리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우선 티켓에 표시된 좌석에 앉았다가 바꿀 생각이었지만 쉽지 않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느라 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에서 시간이 흐른다. 기차 내에서 보드카를 몇 잔씩 들이킨 탓에 취기가 오르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러시아 입국수속을 위해서 주위 사람들이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눈을 뜨게 된다. 수속이 끝나고 또다시 잠이 들었다가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된 발열식 황태해장국으로 속을 푼다. 차창 밖으로는 이미 시베리아 평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여섯째날>

    드디어 시베리아 평원이다. 시베리아횡단철도(Trans Siberian Railroad, TSR)는 1891년에 시작해 1916년에 완공된 것으로 총 길이가 약 9,400k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로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연결된다. 밖으로는 거대한 초원이 펼쳐져 있다. 몽골초원에 비하여 민가가 자주 나타나고 농작물이 재배되고 있다는 것이 차이인 것 같다. 또한 곳곳에 초원을 누비는 가축들의 무리들도 나타난다. 그리고 자그마한 자작나무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다. 차창 밖으로 바이칼호가 눈에 들어온다. 달리고 달려도 끝이 없어 보이는 청정한 바이칼호의 모습이다. 열차가 창문을 활짝 열 수 없어서 그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베리아 평원을 호기롭게 달리던 열차는 오후 3시 40분을 조금 넘겨 이르쿠츠크(Irkutsk)에 도착한다. 곧바로 데카브리스트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시베리아로 유형을 온 발콘스키 백작의 집을 구경한다. 발콘스키 백작은 톨스토이의 친척으로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 안드레이 발콘스키의 실제 모델이라고 한다. 1825년 12월 러시아 최초로 근대적 혁명을 주도한 젊은 귀족 장교들은 나폴레옹 전쟁 시대에 서유럽의 자유사상을 접한 후 서유럽에 비해서 후진적인 러시아의 발전을 위해서는 농노제를 폐지해야 한다면서 난을 일으켰다. 러시아어로 12월을 데카브리라고 하는 데서 유래하여 데카브리스트난(12월 당원)이라고 부른다. 발콘스키의 집은 고풍스러운 저택으로 당시 데카브리스트들의 유형생활과 관련된 생활도구, 초상화와 편지, 유럽에서 들여온 피아노 등의 고가품, 그리고 일상의 생활들을 엿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발콘스키의 부인 마리아와 관련된 많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리아는 푸시킨과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집안의 반대로 20살이 많은 발코스키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란다. 그리고 귀족으로서의 모든 지위를 포기하고 유형을 떠난 남편 발콘스키를 따라서 시베리아까지 오게 된 것이다. 발콘스키 이외에도 투르베츠코이 공작의 집도 그대로 보존하면서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는데 거기까지 가보지는 못하였다. 발콘스키의 집을 나와 즈나멘스키 수도원과 그 앞에 세워져 있는 알렉산드르 콜챠크의 동상을 구경하였다. 콜챠크는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을 하였으며, 1917년 3월 혁명 당시에는 흑해함대의 사령관이었다. 위대한 장군은 혁명에 반대하면서 저항하다가 이르쿠츠크에서 체포되어 동상이 서있는 근처에서 처형되었다고 한다.

     

    수도원 등의 관란이 끝난 후 근처에 있는 평양식당에 들러 저녁을 해결한다. 김치찌개, 족발, 평양냉면 등 이름은 익숙한데 맛은 다르다. 특히 족발은 너무 기름지고, 평양냉면은 입에 맞지 않는 양념으로 고역이다. 식사 후에는 일행들의 요청으로 북한노래를 약식으로 공연한다. 역시 노래가 구성지고 활기차다. 식사를 끝내고 앙가라호텔에 여장을 푼다. 저녁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는데 작년에 왔다는 일행 중의 한명이 앙가라강변을 산책한다고 해서 따라 나선다. 앙가라 강변의 석양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아름답고 황홀한 노을을 제공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운동을 하기도 하며, 낚시질을 하는 사람도 있고, 데이트하는 선남선녀로 들어차 있다. 앙가라 강의 규모가 방대해서 한강과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인터넷으로 찾아본다. 앙가라(Angara)강은 러시아 시베리아 중부지방을 흐르는 강이다. 길이 1,825km, 유역면적 105만 6,000㎢이다(참고로 한강은 간선유로연장 481.7km. 법정하천연장 405.5km. 유역면적은 2만 6018㎢, 북한지역 포함 3만 4473㎢이다). 바이칼호에서 발원하는 유일한 강으로, 이르쿠츠크와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의 경계를 북서쪽으로 흘러내려, 예니세이강과 합류한다. 강폭은 상류부의 이르쿠츠크 부근에서 약 700m로 수량이 풍부하고, 계절에 따른 변화가 적다. 또한 이르쿠츠크 하류에서 협곡을 만들고, 다시 중앙시베리아 대지를 지나는 부분에서는 급류를 이룬다. 앙가라강변의 산책후 호텔로 돌아와 조금 쉬다가 잠자리에 든다.

     

    <일곱째날>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앙가라 강변을 찾는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고 동틀 준비를 하고 있다. 어제에 비하여 산책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경찰들만 몇 번씩 오고간다. 가끔 낚시하는 사람들, 배를 타고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오히려 많다. 서서히 일출이 시작되지만 강 건너편에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른편 건물더미에서 해가 나타난다. 별다른 감흥이 없다. 강변을 산책하다가 시내로 들어선다. 옛날 유배지 시절부터 있었을 법한 건물들이 나타나고 깨끗하게 닦인 도로와 새로운 건물들 사이에 이질스럽게 느껴진다. 호텔에 들어와 조금 쉬었다가 아침을 해결하고 짐을 꾸린다. 오늘 다시 바이칼호수의 알혼섬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르쿠츠크에서 버스로 샤흐르따(알혼섬으로 들어가는 선착장이 있는 마을)까지 5시간을 이동해야 한다. 교외를 벗어나자 버스 밖으로 초원지대가 나타나고 끝없이 펼쳐진 초록위에 가축들만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가끔씩 산림지대도 나타나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혀 쓸모없는 땅 시베리아의 모습은 아니다. 곳곳에 우리네 농촌마을 처럼 조금마한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고, 대부분이 감자를 심어 놓은 모습이다. 계절상으로 우리는 이미 감자를 수확하였는데… 휴게실에 두 번 들른 후(러시아에서 휴게소 화장실은 15루블을 지급해야 하는 유료다) 선착장 마을에 도착한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러시아의 역사에 대하여 몇 개의 비디오를 통해서 공부를 하였다. 고시공부를 한때 러시아를 포함한 세계역사를 공부해서 상당한 지식이 있는 탓인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일목요연하게 러시아 역사가 정리된다.

     

    선착장에 도착해서 알혼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바지선인 빠롬을 타야 한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기다랗다 늘어선 차량들도 바지선에 탑승한 후 알혼섬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먼저 차를 싣고나서 사람들을 태운다. 선착장에서 출발한 후 10분가량 지나서 알혼섬에 도착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바이칼 호수를 탐험하게 되는 것이다. 바이칼호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북쪽 시베리아의 중심부에 위치한 기다랗게 초승달 모양을 닮은 호수로 러시아 브리야트 공화국과 이르쿠츠크 주에 걸쳐 있다. 길이 636km, 최대너비 79km, 호숫가의 길이가 2,200km에 3만1,500 평방킬로미터의 광활한 면적을 가진 유라시아 대륙에서 3번째(세계에서 7번째)로 큰 호수이다. 수심이 1,742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로 저수량 2만 2000 킬로리터의 민물을 담고 있는 지구상에 가장 큰 담수호다. 세계 담수호의 20%, 러시아 담수호의 80%를 바이칼호가 담고 있다고 한다. 바이칼 호는 주변 시베리아 지역의 약 330개의 크고 작은 하천에서 흘러든 물들을 한데 모아 앙가라 강을 통해 예니세이 강으로 흘려보낸다. 바이칼호 안에는 27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자리하고 있고, 그 중에 가장 큰 섬이 신비의 섬이고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 알혼섬이다. 브리야트 원주민 말로 ‘나무가 드문 섬’이란다. 섬의 남북 길이가 71.7km이고 최대 폭이 15km에 이른다. 바이칼호는 워낙 광범위해서 어디에서든 구경할 수 있다. 그러나 바이칼호를 제대로 느끼려면 알혼섬으로 들어가서 구석구석 둘러보는 것이 바이칼의 맨살을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다.

     

    알혼섬 선착장에서 이곳 유일의 교통수단인 특수 승합차<우지크, 우와지>를 이용하여 비포장도로를 약 40분 정도 달려서 <후지르>마을에 도착한다. 후지르 마을은 알혼섬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중심 마을로 이곳을 찾아오는 길손들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알혼섬 전체의 인구인 1500여명의 대부분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후지르 마을에는 통나무 숙소인 <뚜르바자>를 지어 놓고 관광객에게 제공한다. 우리 일행도 거대한 뚜르바자에 둥지를 튼다. 점심식사 후 다시 우와지를 타고 2시간가량의 알혼섬 투어에 나선다. 정확히는 알혼섬 투어가 아니라 바이칼의 투어다. 곳곳에 펼쳐진 바이칼의 절경을 바라볼 수 있다. 넘실거리는 호반위로 펼쳐진 바이칼은 하늘과 맞닿아 있거나, 아니면 끝없는 지평선으로 산맥들과 연결되어 있다. 승합차가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하여 바이칼호에 발을 담그고 얼굴을 씻는다. 깨끗하고 그다지 차갑지 않은 온도가 온몸을 감싸고돈다.

     

    알혼섬 북단 끝은 하보이 곶이다. 그곳까지 거의 2시간가량을 승합차로 이동하면서 바이칼호를 구경하게 된다. 알혼섬은 호중도(호수안에 있는 섬) 중에서 세번째 크기라고 한다. 알혼섬에서 승합차로 이동하다보면 곳곳에서 절벽을 만나게 된다. 천길 낭떠러지의 절벽 앞에는 바이칼호가 시원하게 위용을 드러낸다. 비포장의 울퉁불퉁한 도로를 한참 달리다가 사랑바위 앞에서 멈춰 선다. 하트모양의 바위가 여자의 상징을 드러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왼편에 오르면 아들을 낳고, 오른편에 오르면 딸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물론 주위는 온통 낭떠러지다. 사랑바위 앞에서 브리야트족 사람을 만났는데 정말 우리와 똑같이 생겼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과 한 장의 사진을 남긴다. 사랑바위까지 걸어가면서 많은 기억들을 남기고 되돌아와서 하보이 곶으로 향한다. 하보이 곶은 송곳니를 닮아서 원주민 말로 하보이라는 말이 붙었다고 한다. 북단 끝에는 샤먼들이 제사를 지내는 가지각색의 천으로 치장된 나무가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승합차의 운전사들이 저녁식사(바이칼호에서 잡힌다는 오물이라는 생선 등으로)를 준비하는 동안 알혼섬 북단 끝 하보이 바위까지 갔다가 주위를 트레킹 한다. 그리고 준비된 저녁식사를 하게 되는데 생각보다는 시원찮다. 그래도 주위 경치를 위안삼아 간단하게나마 저녁을 해결한다.

     

    저녁식사 후 하보이 곶을 출발하여 숙소인 후지르 마을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진 탓인지 아름다운 노을이 손짓을 한다. 차라리 좀 쉬었다가 노을이 어느 정도 진 다음에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붉은 노을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어둠이 내려앉을 때 쯤 숙소에 도착한다. 아쉬운 마음에 호숫가로 달려가 보지만 이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조금 있다가 일행 모두가 모여 장작불로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몇 잔의 술을 기울인다. 오랜만에 장작불 앞에 앉아 보는 것 같다. 몇 명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다가 시간이 늦어져 잠자리에 든다.

     

    <여덟째날>

    사실상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 8시에 알혼섬을 떠나기로 했던 계획이 일행들의 요청으로 오전에는 알혼섬에서 그대로 머무르고 점심 후 이동하기로 한다. 아침 일찍 바이칼호로 달려 나가 일출을 구경한다. 앙가라 강에서와 마찬가지로 바이칼호 위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조금은 실망하면서 산책을 하는데 조금은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조금 기다렸다가 몇 명의 일행들과 함께 알혼섬의 랜드마크인 <불르한 곶>으로 향한다. 알혼 섬의 제1경으로 호안 절벽의 기암괴석이 아름답게 호수에 솟아오른 <불르한 바위>는 ‘샤먼의 바위’라고 불리며 알혼섬 신들의 발원지로서 바이칼 샤머니즘의 성소로 신성시 하며, 바위 절벽과 호안 곳곳에 울긋불긋 여러 색의 천들이 걸려있어 신비스러운 분위기에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선녀와 나무꾼 비슷한 전설이 있다. 호이도르라는 나무꾼 청년이 있었다. 그가 알혼섬을 돌아다니는데 백조 3마리가 바이칼 호수에 내려와 아가씨로 변하더니 옷을 벗고 목욕을 하더란다. 호이도르는 하나의 옷을 감추었고,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아가씨가 호이도르와 결혼해서 11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브리야트 족의 선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행 한명과 불르한 바위 위에까지 올라가 준비한 황태해장국으로 정성을 들인 다음 옆으로 내려가 알탕을 한다. 깨끗한 바이칼 호수에 알탕까지 하는 영광을 누린 것이다. 그리고 숙소로 되돌아와 아침을 간단히 해결한다.

     

    아침식사 후에 조금 쉬고 있는데 일부 일행들이 부르한 바위를 간다 해서 다시 따라나선다. 아침 일찍 갈때는 바람이 없어서 조금 땀을 많이 흘렸는데 이번에는 시원한 바람때문에 상쾌하다. 다시 부르한 바위에 올라서 너머에 있는 곳까지 내려가 알탕을 할까 하는데 건너편에 배들이 다니고 있어서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다시 되돌아와 구석진 곳을 찾아 시원하게 다시한번 알탕을 한 다음 급경사의 바위 위를 오른다. 되돌아와서 점심을 한 후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승합차로 선착장에 도착한 후 바지선을 타고 알혼섬을 떠난다. 버스를 타고 5시간가량 달려서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오는 길에 전통시장을 들렀지만 나에게는 별로 살만한 것이 없다. 주위 사람들은 호박이 싸다면서 구입하기도 한다. 그리고나서 숲속에 마련되어 있는 핀란드식 사우나를 하는 반야 사우나에 들러서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사우나를 조금 즐긴다. 자작나무로 돌을 데워서 돌 위에 물을 부으면 수증기가 나와 사우나가 되는 방식이란다. 사우나 후에는 바로 앞에 있는 앙가라 강에서 몸을 식힌 후 다시 사우나를 반복하는 형식이다. 밤 12시가 넘어 사우나가 끝나고 이르쿠츠크 공항으로 가서 절차를 마친 후 대한항공으로 인천공항을 향한다.

     

    3시간 30분가량의 여행 후 7시를 넘겨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절차를 밟고 짐을 찾다보니 집에 도착한 시간이 10시가 훨씬 넘는다. 간단하게 샤워를 한 다음 그렇게 기다렸던 콩나물국밥으로 입맛을 달랜 후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8박9일의 여행을 정리한다. 장시간의 열차여행,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장기여행이었지만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유쾌하고 유익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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