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하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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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천에서 용? 희망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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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 계층 이동 사다리가 사라져 간다.” 폐지될 사법시험을 부활시켜 보려는 자들이 즐겨 쓰는 구호다. 법률안을 발의해 사시제도를 살리려는 국회의원들은 안타깝게도 과거 자신의 경험 틀 속에 갇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시험 칠 때는 그랬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만 졸업했어도 절에 들어가 도 닦듯 공부하면 합격이 가능한 시험이었다. 그리고 그 길로 미꾸라지가 용이 된 것처럼 신분이 수직 상승했다. 변호사 자격이 돈과 출세의 발판이었다. 법조인 양성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꾼 상고 출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다. 고졸자도 희망을 가지고 신화를 쓸 수 있는 시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이제 사법시험은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그것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시도해 볼 수 없는 시험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 년을 더 신림동 고시촌에서 학원에 돈도 바치고 생활비도 들여야 가능한 시험이다. 최근 10년 간 고졸 출신으로 사시에 합격한 사람은 7900여 명 중 5명뿐이라는 통계를 보면 더 이상 사법시험이 개천에서 용 나는 시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낡은 경험에 갇혀 허울뿐인 구호를 외치는 자들은 도림천이 흐르는 신림동 고시촌의 상권을 부활시킬 수는 있겠지만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운 청년층에게 희망 고문을 가하는 것이다.
    고졸자 뿐만 아니라 대졸자에게도 기적 같은 시험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법시험은 응시자 대비 평균 합격률이 2.94%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지난 50년간 100에 97은 용으로 오르지 못한 좌절과 패배감을 맛봐야 했다. 바로 고시낭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이무기의 설움을 안은 채 사회낙오자로 살아야 했다. 희망의 사다리는 환상에 불과했다. 열에 한 명도 안 되는 극소수 합격자에게는 희망의 사다리였는지 모르지만 대다수 불합격한 고시낭인에게는 절망의 늪이었다. 한 발 한 발 디디고 올라 희망을 볼 수 있는 사다리가 아니라 내디딜 때마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절망의 늪이 된 것이다.
    사시존치를 주장하는 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기회는 누구에게나 균등해야 한다. 그러나 사법시험을 부활시켜 기회를 줄 것이 아니라 누구나 대학을 갈 수 있는, 진학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계층을 없애야 하는 것이 기회균등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대학에 갈 수 없는 계층이 있다면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사법시험 합격으로 용이 되고 특권층이나 엘리트가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변호사의 자격을 취득한 것이 출세와 신분 상승을 보장해서도 안 된다.

    진정 ‘취약계층에게 희망사다리’를 놓아’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원한다면 사시제도 부활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경제적·신체적·사회적 취약계층이 로스쿨에 입학하여 전액장학금과 생활비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서민의 자녀들도 경제적 부담 없이 공부하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제도와 여건을 마련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2015년 7월 6일자 법률신문 14면 <서초포럼>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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