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백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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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적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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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티모시 브룩 교수는 저서 ‘능지처참(Death by a Thousand Cuts)’에서, 1904년 청 왕조가 공개한 사형수에 대한 ‘능지처사(凌遲處死)’ 방식에 의한 사형 집행 장면이 프랑스인들에 의해 촬영된 후 그 사진이 유럽에 유포되어 ‘동양적’ 전제주의의 반(半)야만성과 잔혹성을 드러내는 이미지로 사용됨으로써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 합리화에 기여하였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가 저서 ‘에로스의 눈물’에서 이 참혹한 사진을 일종의 사디즘 이미지로까지 오독(誤讀)하는 데 대해서도 개탄한다.

    그러나 중국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유럽의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은 이미 중국의 사법제도가 오랜 옛날부터 범죄의 경중에 따라 형법을 등급화한 이상적인 형태로서 극형은 매우 제한적으로 시행되었다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프랑수아 케네와 같은 학자는 권력자인 고관들도 평등하게 처벌을 받는다는 점에서 유럽이 중국의 사법제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 첫머리에서 인용한 1757년 루이 15세 살해미수범 ‘다미엥’의 처형 장면에서는 판결에서 지시한 처형방법이 너무나 잔인하였던 까닭에 능숙한 사형집행인조차 오랜 시간 애를 먹는 끔직한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한때 서양에서 유행했던 ‘오리엔탈리즘’에 따른 동양에 대한 왜곡된 시각은 점차 과거의 유물이 되어 가는 듯하고, 정재서 교수가 말하였던 ‘동양적인 것의 슬픔’ 또한 우리 스스로 많이 극복하였다고 희망적으로 생각해 본다. 하지만 우리의 사법제도가 이러한 측면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생각할 거리가 남아 있다.

    우리 사법제도는 대륙법계와 영미법계의 제도를 적절히 혼합한 형태로 출범한 후 꾸준히 개선을 거듭하여 옴으로써 어느 정도 고유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사법의 역할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에 비해서는 아직 미흡한 부분도 적지 않은 것 같고, 이러한 문제점의 배경에는 우리의 사법제도가 다른 나라에 의해 통째로 이식되었고 그것이 아직 완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사정이 있다. 우리만이 공유하고 있는 사법의 가치가 무엇이고 그것을 주어진 제도 내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자로서 이탈리아계 유대인인 프리모 레비가 쓴 책 ‘이것이 인간인가’를 보면, 인간이라는 보편적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드는 한편 인간이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맞아 국적에 따라 각자 다른 방식으로 대처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흥미를 느끼게 된다.

    필자는 다음 달부터 아시아에 설치된 유일한 국제재판소인 ECCC에서 아시아 출신 유엔 국제재판관으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국제적 기준에 따라야 하는 재판의 과정에서도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판사가 보여 줄 수 있는 고유의 가치가 무엇일지를 계속 고민해 나가는 여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지난 2년간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이 글은 2015년 6월 29일자 법률신문 14면 <서초포럼>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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