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하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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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의 촉수(觸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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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호 신임 국가정보원장은 취임사에 ‘늘 깨어있는 국가안보의 예리한 촉수’라는 표현을 썼다. 국정원 역할을 매우 적절하게 상징화한 단어다. 동물적 감각의 촉수를 사회 구석구석에 뻗쳐 국가안위를 위협하는 위험정보를 수집할 책무를 강조하기 위한 언어사용일 것이다. 촉수라는 단어는 보통 사람이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한 세계를 그려내거나 상상력을 발휘하는 시인이나 예술가의 예리한 감각을 칭찬할 때 쓴다. 평가자나 관찰자에게 필요한 것도 예리한 촉수다. 미궁의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형사에게도 있어야 할 능력이다. 통상 긍정적인 의미가 많을 테지만 부정적 의미로도 사용한다. 나치와 같은 비밀경찰이나 일제 강점기의 왜경이 가진 촉수는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대상에 서서히 접근할 때 쓰는 음흉스런 수단이다.

    취임사의 ‘예리한 촉수’가 긍정적으로 와 닿지 않고 부정적인 의미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국정원의 과거 때문이다. 아직도 털어버리지 못한 오욕의 역사와 여전히 진행 중인 정권의 시녀라는 오명 때문이다. 말로는 안보전문 국가정보기관이라지만 여전히 권력기관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정치권과 민간인에 대한 사찰과 공작의 구태가 개선되지 않은 채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개입의 고질병이 불치병이 된 것처럼 치유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멀게는 군사정권에서 국가안보가 아니라 대통령의 정권안위를 위해 촉수를 뻗쳐 온갖 정보를 수집 활용했기 때문이고, 가깝게는 원세훈 국정원장 시절의 온갖 정치개입과 공작, 간첩조작의 전과 때문이다.

    국정원의 손길이 모세혈관처럼 뻗어 있음이 다시 드러났다. 그들이 갖고 있는 촉수가 국민이 잠들어 있을 때도 늘 깨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요소에만 뻗친 것이 아니라 통제와 감시의 눈으로 변장했음이 밝혀졌다. 국정원이 법관 임용 과정에 개입해 지원자들의 정치적 성향이나 가치관 등을 파악해 왔다고 한다. 사이버 여론조작으로 대선에 개입한 사건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 다시 구습이 드리워진 국정원의 민낯을 보게 된 것이다. 국정원 직원들이 경력법관 지원자들을 찾아가 국가관을 비롯해 노사관계나 사회 현안, 세월호 사고에 대한 의견까지 묻는 등 사실상 양심과 사상검증에 가까운 면접을 했다고 한다. 물론 대법원 비밀보호규칙에 따라 법원행정처장이 법관 임용 예정자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성실성 및 신뢰성’을 알아보기 위해 국정원장에게 신원조사를 의뢰하였으므로 문제의 발단은 사법부에 있다. 그러나 누구의 부탁을 받았건 누구라도 국정원의 촉수에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무섭고 두려워진다. 국정원의 신원조사는 국가정보원법의 하위 법령(대통령령)인 보안업무규정에 근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행정기관이 헌법이나 법률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게, 기본권을 침해하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치는 하위 법령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위헌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의 내용처럼 국회에 의한 행정입법의 통제절차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 이 글은 2015년 6월 8일자 법률신문 14면 <서초포럼>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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