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권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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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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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방하고 늦게 간 군대에서 높은 분 당번병을 한 적이 있다. 토요일 오전 근무가 있던 시절, 내 중요업무 중 하나는 퇴근시각에 맞추어 정확하게 차량대기를 시키는 것이었다. 높은 분부터 계급 순서대로 퇴근이니 모시는 분 차례가 되었을 때 조금도 지체함이 있어선 아니 된다. 또 모시는 분이 퇴근하면 그 밑 참모들에게도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 이유는 대개 토요일 오후 ‘운동’ 약속이 있어서였다.

    오래 전 고소대리 사건을 맡아 담당 경찰관과 자주 연락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가끔 ‘시골 와 있다’고 대답하고 통화가 끊기는 경우가 있었다. 일할 때 사투리를 쓰는 걸로 보아, 처음에는 고향에 자주 내려가는 효자 경찰관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를 했더니 또 시골이라 하는데, 옆에서 경쾌한 ‘깡’ 소리가 들렸다. 골프 지진아지만 그게 티샷 소리라는 것쯤은 금방 눈치챘다. 혹시 ‘투캅스’ 생각나지 않으시는지?

    모든 운동에 소질이 없으나 특히나 골프는 더하다. 사람 만들어 보겠다 하다가 포기한 티칭프로도 여러 분이다. 나름 키도 크고 팔도 길어 골프에 타고난 신체조건이라 칭송해주다 한번 같이 나가고 다시 연락 없는 사람도 있다. 몇 년 전 14번 홀 산기슭을 헤메고 있는데 캐디가 “사장님, 볼 다 떨어졌어요!”라고 소리친 때가 사실상 마지막 필드 경험이다. 로스트볼 한 무더기를 다 잃어버렸지만, 그 망신을 당한 곳이 몇 번 홀이었는지는 절대 잊지 못한다.

    대체로 뭔가 드러내기가 마땅치 않을 때 다른 단어가 쓰인다. 아이들 선생님한테 드리는 건 ‘촌지’거나 ‘봉투’다. 명절이라고 공무원한테 ‘떡값’을 준다. 수고하셨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뇌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뇌물이라고 쓰지 못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별지 도면 가. 나. 다. 라. 그리고 가.의 각 점을 순차로 이은 선내 면적’(이른바 꼭지점)을 다루는 훈련을 받은 법조인으로서, 정확한 명칭이 있는데도 다른 은어가 쓰이는 경우는 불편하다. 그 은어를 쓰는 것에 암묵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지고 용인이 되는 사회 분위기도 싫다. 법률가의 소임 중에는 그런 음습함을 없애는 일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운동이라 하지 말고, 시골 간다고 하지 말라. 골프에도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허하라. 그 때가 오면 필자도 다시 골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니, 그 때까지는 필자의 운동신경 대신 음습한 사회 분위기를 탓하며 게을리 있을 생각이다.

     

    ◇ 이 글은 2015년 4월 16일자 법률신문 15면 <법조프리즘>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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