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임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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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목숨값은 왜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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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래 기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람이 죽어 배상을 할 때도 사람에 따라 배상액이 다르다. 이러한 점은 부당한것이 아닌가 의문을 제기하시는 분들도 상당한 듯하다. 이에 대해 본인의 소견을 적어본다.

    * 아래 도표의 일실수익과 위자료가 바뀌었다. 위자료가 정액으로 1억원으로 책정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점이 부당하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는 생각일 터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에 따라 목숨값이 다르다는 말은 정의롭지 못하게 들리기도 한다. 이 글의 제목은 위에 단 것 외에도 ‘사람 목숨값이 달리 책정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같은 나라 안에서도 일어나지만, 국제적인 사고의 경우, 구미인들은 많은 배상을 받는데, 다른 지역 사람들은 그에 비해 훨씬 더 적게 배상을 받는 경우를 보고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하여간 아래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재 우리나라 재판실무는 위자료, 즉, 정신적 손해배상의 국면에서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없고, 재산상의 손해, 즉, 일실수익에 관해서 차등을 두고 있다.
    그런데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 사이에서 비교를 해보면 차등을 두는 것이 부당해보일 수 있으나, 실제 그 피해를 배상받아야 할 유족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부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일 재산상 손해인정액도 동일하여야 한다면, 빌 게이츠가 사망하더라도 아무런 직업도 수입도 없는 사람이 사망한 경우와 동일한 금액만 인정하여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이러한 결론도 부당하지 않을까?
    한편, 사망으로 인한 배상액을 균일하게 정액으로 한다면, 일실수익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수치 하나만 정해놓으면 된다. 그 실질에 있어서는 위자료만을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만일 그렇게 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아마 그 금액의 인정을 두고 사회적으로 큰 갈등이 빚어질 것이다. 만일 증액하자는 쪽이 승리를 거두어 파격적으로 증액을 하면 사회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의 특성상 길게 쓰기 어려워 논증이 다소 빈약하기는 하지만, 일체 동일액으로 인정하자는 것은 아무래도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우리가 속한 사회가 손해액에 대해 적절하게 차등을 둠으로써 균형을 잡을 수밖에 없다고 결정을 한 셈이며, 그 분배기준 중에서는 그래도 일실수익에 기초하여 분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설명에 전제하여야 할 점이 있다. 첫째는, 손해배상의 법리는 현실에 기초하기는 하지만, 현실을 완벽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일실수입에서 생활비로 1/3을 공제하는데, 현대 한국사회에서 생활비로 수입의 1/3 또는 그 이하를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만일 정말로 실제 저축할 수 있는 돈만 손해로 인정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산상의 손해가 제로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매우 부당하다. 따라서 손해배상의 법리는 다소 추상적인 논리도구라는 점을 이해하여야 한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부당할지 몰라도,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이론도구로 정립되어온 것이다.
    둘째, 따라서 구체적인 경우에는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상당히 있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비판을 받는 비양심적인 사람에게도 위 법리는 평등하게 적용된다. 위 법리는 추상적으로만 적용될 뿐, 실제로 배상이 이루어지게 도와주지는 않는다. 재판에서 이겨도 가해자가 보험도 들지 않고 재산이 없어 아무 것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차등제도는 사회를 운영하기 위한 여러 함의가 담겨 있다. 어떤 분의 말대로, 왜 계급에 따라 국립묘지의 묘역 크기가 달라야 하는가.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기는 하나, 그 논리를 극대화하여 적용하면, 누가 죽더라도 묘지는 동일한 크기와 형태로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현실적으로 그런 사회가 될 수도 없겠으나, 만일 그렇게 된다고 하면, 국가에 더 큰 공을 세운 사람을 어떻게 표창할 수 있겠는가? 다소 불합리한 면이 있더라도, 차라리 그런 식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으로 하여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더 보장받으려고 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일실수입에 따라 재산상 손해에 차등을 두는 것도 결국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사회의 유지를 위하여 그렇게 하는 편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가 수입을 얻는 사실을 인정해주고 그에 적절한 대접을 해주는 메카니즘의 일부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목숨값과는 좀 다르지만,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문제를 예로 들어볼 수 있다. 즉, 부동산감정을 해보면, 그 감정대상물의 가치에 비례하여 감정비용을 책정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의문을 품는 견해도 있다. 즉, 100평 짜리 땅이나 1000평 짜리 땅이나 어차피 감정사는 현장을 방문하고 주위를 조사하고 판단하고 보고서를 쓰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왜 비용에 차등을 두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유언공정증서를 작성하는 경우에도, 공증인이 하는 일은 거의 차이가 없는데(재산이 많으면 목록이 길어지고 내용이 조금 더 길어질 수는 있다.), 왜 비용은 대상재산에 비례하여 책정하는가?

    이 점도 논리필연적으로 어떻게 해야한다라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그 비용을 배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며 정의관념에 맞는가 하는 문제이다. 사회 전체가 1년에 부담하는 감정비용이 100이라 하고, 감정은 단 두 건, A씨는 100평 짜리 감정을 하고 B씨는 1000평 짜리 감정을 한다고 가정할 때, 감정인이 하는 일은 차이가 없으므로 각각 50씩 부담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두 물건의 가치에 비례하여, 그 가치가 면적에 비례한다고 하면, A씨는 9를 B씨는 90을 부담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문제이다.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통상은 큰 물건을 갖는 사람이 비용부담능력이 더 크고 그 감정으로 인하여 얻는 이익이 클 것이므로, 그 가액에 비례하여 비용을 분배하는 것이 더 옳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사회 전체가 1년에 부담하여야 할 총 감정비용이 100이라는 것이 옳으냐 하는 문제는 별개로 있고, 그 점은 개인 차원에서 따지기 어려우므로 별도의 통제시스템으로 관리하는 것이 바로 현재의 시스템인 것이다.
    짧은 글로 제기된 문제에 대해 적절한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일견 보아 부당하다고 보이는 제도라도 그 제도가 오래도록 유지되어 왔다면 무언가 그 생명력을 보장해온 순기능이 있는 것이라 보는 것이 옳다. 본인의 주장에도 헛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견이 있다면 개진해주시면 고맙겠다.

    [머니투데이 세종=김민우 기자] [[세월호 배상 및 보상 위원회]단원고 교사 7.6억…도망친 선박직 15명 배상 제외]세월호 희생자 및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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