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이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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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 구치소 문을 나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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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를 하면서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들려주는 일화가 있다. 그 날도 오늘처럼 화창한 봄날이었다. 차량5부제 때문에 서울구치소를 걸어 내려오면서 길옆을 바라보니 개나리랑 봄꽃들이 활짝 피어오르고 있었다. 따뜻한 봄볕과 화사한 봄꽃의 어우러짐이 그야말로 봄날의 평온함 그 자체였다.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구치소입구에서 택시를 타고 지하철 인덕원역까지 가서 막 지하철에 탑승하였는데 전화가 왔다. 절친한 변호사 친구의 전화였다. 몇 번을 전화했는데 받지를 않았다면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습관적으로 “응, 구치소에서 막 나오는 길이야”라고 대답하였다. 그 순간 지하철 객차 안에 잠시 호흡이 멈추는 듯한 적막감과 함께 나에게 집중되는 야릇한 시선을 느꼈다. 당시만 해도 변호사가 지하철로 구치소를 다녀온다는 것이 시민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으니 구치소에서 막 나왔다면 범죄로 구속되었다가 석방된 사람을 연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구치소에서 막 나온 사람과 같은 지하철을 탄 승객들의 두려움과 어색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아무리 담장 안에 따뜻한 봄 햇살이 비추어지고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도 자유가 제한되는 구치소란 공간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답답한 곳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공간에서 매일 생활해야하는 교도관들의 수고와 헌신이 존경스럽다. 변호사회에서는 법원이나 검찰과 달리 구치소와는 정기적인 간담회가 없다. 구치소는 법무부 산하기관이라고 하지만, 변호사들이 직접적으로 활동하는 공간으로서 상호간에 긴밀한 업무협조가 필요한 기관이다. 변호사회는 소속 회원들의 주요한 활동 공간 중 하나인 구치소와도 정기적인 간담회를 개최해서 회원들의 불편함을 해소해 주고 구치소 측의 업무 협조요청에도 적극적으로 응대해 줄 필요가 있다. 10년 정도 서울남부구치소 교정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것인데, 변호사들도 구치소와 교도관들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구치소와 교도관들도 변호사들의 업무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의외로 많이 있다. 개별적인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변호사회와 교정본부 사이에 정기적인 간담회를 통해 상호간에 신뢰가 생기고 긴밀한 업무협조가 이루어진다면, 지금처럼 구치소를 출입하면서 변호사의 가방이 검색대를 통과하는 불신은 없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이제는 지하철을 이용해서 구치소를 다녀오는 변호사들이 많아졌는데,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라도 우선 인덕원역에서 서울구치소까지 회원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왕복셔틀택시를 시범적으로 운영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접견을 위해 핸드폰과 노트북까지 전부 맡기고 들어가서 본의 아니게 외부와 단절되어야 하는 변호사들을 위해 구치소 내 접견대기실에 몇 대의 컴퓨터를 설치해서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경우 긴급하게 이메일과 같이 인터넷이 필요한 업무를 볼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이런 바람들이 봄바람에 흩어지는 벚꽃처럼 잠시 활짝 피었다가 사라지지 않고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봄날의 소망을 구치소 문을 나서면서 가져본다.

     

    ◇이 글은 2015년 3월 26일자 법률신문 14면 <서초포럼>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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