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권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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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님 바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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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하시는 분도 많겠지만, 고등학교 시절 보았던 문제집 중 ‘Reader’s Bank’라는 것이 있었다. 짧은 단문이 실린 영어책이었는데, 기억에 남는 글은 이런 것이다. ‘새내기 변호사가 사무실을 연 첫날 아침 누가 찾아왔다. 이 변호사는 찾아온 사람을 세워둔 채 전화기를 들고 한참 중요한 통화를 하는 척 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어떻게 오셨는지 묻자, 찾아온 사람은 전화 연결하러 온 전화국 직원이라고 대답한다.’

    통화를 하거나 회의에서 만날 때 고객의 첫마디 인사가 “변호사님 바쁘시죠?”인 경우가 많다. 요즘의 나는 대체로 웃으며 “별로 안 바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또 대체로 “아이고 겸손의 말씀은…” 이런다. 속으로 가끔은, ‘정말 안 바쁘다니까요!’ 정색하고 싶을 때도 있으나 무슨 득이 있을까 싶어 넘어간다.

    예전에는 나도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바쁘냐고 물어보는 고객에게 정말 바쁘다고 대답한 적도 있다. 고객이 바쁜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그리 물어보는 게 아니라는 것도 모르던 시절이다. 대박난 식당 앞에 일부러 줄을 서면서도 자기 차례가 되면 음식 빨리 안 나온다고 불평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그 글로 영어공부까지 했건만, 전화국 직원 앞에서 유령 통화를 하던 미국 변호사와 별로 다른 점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할 일 없이 노는 날은 드물다. 뭔가 통화도 많이 했고, 이메일도 여러 통 오갔으며, 이런저런 일로 사무실을 비우는 경우도 많다. 그렇긴 해도 ‘정말 바쁜가?’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면, 오늘 정말 바빴다고 대답할 수 있는 날은 흔치 않은 것 같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임하는 사건이 줄어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변호사는 자기가 시간을 통제하기 어렵다. 내일 아침 10시에 고객이 회의를 요청하면 그 전까지 사무실에 나와야 한다. 그 회의가 끝나고 일이 없어도 오후 3시에 온다는 다른 고객을 위해 사무실을 지켜야 한다. 타인이 내 시간을 선점하고 나머지 조각난 시간만 남는다. 그러니 그 사이 자투리 시간은 흘려 보내면서 앞으로 남은 일만 생각하여, 바쁘다는 말부터 달고 산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 생각하니 어지간하면 바쁘다는 말을 안 하려 한다. 사실 아무리 바빠도 술도 마시고 잠도 자고 아이도 낳았듯,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면 어떻게 버틸 수는 있는 것이다. 이 글 또한 잠시 쉬기로 하고 자투리 시간에 쓴다.

     

    ◇이 글은 2015년 3월 19일자 법률신문 15면 <법조프리즘>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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