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임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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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과 포럼 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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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크게 문제되었던 비행기회항사건과 관련하여 당사자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는 여성승무원(이하 ‘원고’)이 항공회사 및 관계자 개인을 상대로 미국 퀸즈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기사를 읽어보니, 미국법원이 인정하는 손해배상액이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점, 국내에서 소송을 하였을 때 국내에서 쏟아질 관심이 부담이 된다는 점때문에 미국법원에 소를 제기하였다는 것이다. 두번 째 이유는 그럴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건은 미국에서 재판을 한다해도 국민적 관심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본인은 원고의 이번 소제기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저 보도된 바에 따라 그 제한된 정보에만 기초하여 이 글을 적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읽어야 한다.
미국재판실무가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우리나라에서 재판을 하는 경우에 비하여 비교가 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배상액이 인정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원고가 더 큰 배상액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미국에서 재판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원고의 개인적 사정은 잘 모르겠으나, 우리나라 보통 사람이 미국에까지 가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의 변호사비용이 한국의 그것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본인은 생각보다 많은 국제사건에 관여하고 있는 관계로 가끔 우연히 미국변호사들의 보수에 대해 알게 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확인된 금액은 우리나라의 변호사들이 유사사건에서 받는 보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이 보도를 읽고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미국의 유명잡지 ‘뉴스위크’는 1991. 11. 11.자판에서, 정장차림의 이화여대생 사진을 게재하면서 ‘돈의 노예’라고 표현하였다. 해당자인 3명의 여대생이 뉴스위크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1993년 1심 판결에서 1인당 3천만원의 배상이 명해졌다. 이 사건은 항소되어 1인당 2천만원으로 감액되었다. 여담이지만, 당시 1심 판결을 선고한 법관이 박시환 전(前)대법관이다.

이 사건은 초상권침해에 관해 매우 유명한 사건인데, 예전에 어떤 강연에서 들어보니, 만일 미국에서 재판이 벌어졌다면 원고들은 아마도 수 백만 달러의 배상을 받았을 것이라 하였다. 뉴스위크사 입장에서는 실은 엄청나게 좋은 결과였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이 죽은 사건도 아닌데 1인당 손해배상액 3천만원은 우리 재판실무로는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다. 지금 다시 신청해도 그 이상 나올까 현직 변호사로서 솔직히 자신이 없다. 우리 재판실무상으로는 1993년 당시로서는 정말 큰 배상액이 인정된 사건이었으나, 미국에서 재판을 하는 경우에 비해서는, 정말 작은 금액만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1991년 내지는 그 즈음 우리들의 인식수준으로는 미국에 가서 재판을 한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2015년 현재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였다면 본인은 변호사로서 어떤 조언을 할까? 객관적으로 상담의뢰자를 위한 조언을 한다면, 미국에 가서 재판을 하라고 권할 것이다. 미국에 가면 위 사건보다 훨씬 더 작은 사건에서 착수금이나 타임차지에 따른 보수를 아예 받지 않고 사건을 맡는 변호사들 천지이다. 아마 위와 같은 사건이라면, 기회만 주어진다면 수 백 수 천 명의 변호사들이 줄을 설 것이다. 이십 수 년 전에 비해 정보가 훨씬 더 공개된 지금 시점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사건의 내용이 적절하기만 하다면, 미국에서 재판하는 것이 생각같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을 해보게 된다.
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를 해보신 사람이라면 ‘포럼 쇼핑(forum shopping)’이라는 말을 알 터인데, 사전적으로는 ‘원고가 소송을 제기하는데 있어서 다수의 국가 또는 주(州)(법역)의 재판소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재판소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21세기 정치학대사전,http://terms.naver.com/entry.nhn… ). 위 용어는 대개 그 부작용을 설명하는 경우에 사용되기는 하지만, 사전적인 의미만 놓고 보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제도상 허용되는 것이라면 원고로서는 포럼 쇼핑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위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법역’이 다른 복수의 제소가능법원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자기에게 유리한 법원을 선택한다는 행위는 동일 법역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그것을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서울중앙지법과 부산지법 어느 곳에도 소장을 제출할 수 있다고 할 경우, 원고가 자신의 편의에 따라 어느 한 곳을 선택하였다고 하여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느 법원에 동일한 사건을 처리하는 재판부가 여러 개 있고 원고가 선호하는 재판부가 있다고 할 경우, 원고가 그 재판부의 재판을 받기 위하여 소장을 낸 다음, 그 재판부에 배당되지 않으면 소를 취하하고 다시 소장을 내기를 되풀이한다면,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여간 원고가 한국의 법원이 아니라 ‘불법행위지’인 퀸즈지방법원을 선택한 것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존재의 연관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며, 아울러 원고의 이러한 선택은 위에서 본 사전적 의미의 포럼 쇼핑에 해당된다고 본다. 여기서의 포럼 쇼핑은 꼭 부정적인 것이라 할 수 없다. 요컨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존재가 포럼 쇼핑을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아직은 이런 종류의 포럼 쇼핑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착수금이나 타임차지 없이 사건을 맡아주겠다는 미국변호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규모의 배상액이 예상되지 않으면 미국에서 재판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소송을 미국으로 끌어가는 힘으로 작용하는 점은 매우 명백하게 느껴진다. 이 글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당부에 대해 거론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장기적으로 볼때, 아니 어쩌면 그렇게 멀지 않은 장래에, 동일한 원인에 따른 미국에서의 소송제기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해볼 수 있고, 이러한 점이 우리나라에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 이 글의 주장이다. 국제법률업무를 많이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 글의 주장이 아직은 좀 지나친 논의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비록 이 자리에서 충분히 논증하기는 어려우나, 우리의 환경이 생각보다 급격히 국제화되어가고 있고, 따라서 위에서 설명한 주장도 충분히 근거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여론으로, 만일 미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금액을 훨씬 더 초과하는 배상이 명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만일 한국에서 집행을 하여야 한다면 집행판결을 얻는 과정에서 감액이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만 재산이 있는 사람이나 회사라면 미국에서의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단, 이때도, 즉, 집행판결과정을 통하여 감액이 되더라도, 그 금액조차도 우리나라에서 재판을 한 경우에 비해 훨씬 더 큰 금액일 가능성은 존재한다.
한편, 미국에 집행의 대상이 될만한 재산이 있는 경우에는 꼼짝없이 모두 지급하여야 한다. 위 사건의 피고 중 개인은 잘 모르겠는데, 항공회사는 피할 길이 없다. 미국내에 재산이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해당 항공사는 하루에 두 편 비행기가 JFK공항에 착륙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행을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은 미국법원의 결정에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예를 들어 미국 파산법원은 그들의 결정의 효력이 범세계적으로 미친다고 보고 있는데, 사실 제3국에서 그 결정의 효력을 존중할 것인가는 그 나라의 공권력이 결정할 문제이며, 당연히 실효를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 미국법원이 제3국에서 직접 권한을 행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의 경우, 제3국에서라도 그 기업이 미국법원이 결정에 따르지 않을 경우, 미국에서 바로 징치를 당하게 되기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도 이제는 외국, 특히 미국의 사법제도와 법원의 실무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국제사법실무의 변화가 나라별 법원 사이에서도 실질적인 경쟁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에 대해서도 포럼 쇼핑이라는 관점에서 새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 이 글이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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