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하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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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춰 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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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보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때가 많다. ‘그 때 왜 그랬을까’라는 후회가 들 때 정말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과거가 지금보다 좋았다고 느끼면 더욱 그렇다. 학습이 멈춰 자신에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인식과 행동이 나도 모르게 과거에 머무르길 원한다. 배움이 계속되지 않아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면 몸은 현재 위치하지만 생각은 과거 그 때에 멈춰 설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미래를 얘기하면서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은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과거는 이미 경험한 것으로서 확실하니까 덜 불안하다. 지나온 길을 다시 걸어가는 것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보다 시간도 덜 들고 위험부담이 적으니까 그렇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으므로 과거가 참 중요하다. 수없이 지나간 시간이 바로 오늘이다. 그래서 자주 자신의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급변하는 시대에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아, 옛날이여’를 외치거나 ‘그 때가 좋았지’를 되새기면 퇴보할 뿐이다. 과거는 그저 흘러 지나간 시간이 아니고, 감상에 젖을 추억이 서려있는 시간도 아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비춰볼 수 있는 시간들이다. 되돌아본다는 것은 과거를 되돌아봄으로써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비춰볼 수 있기 위함이다. 과거의 거울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을 통해 보다 나은 현실을 만들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과거에 묻혀 과거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곤란하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인 현실 속에서 과거만 반추하면 과거의 시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를 살면서 자주 기시감(旣視感·데자뷰)을 경험한다. 시간이 과거 어느 시점에 멈춰 선 느낌을 자주 갖는다. 민주주의, 권력분립, 인권, 대통령의 인사스타일, 수출·대기업 위주 성장전략 등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지표들이다. 거리에 유인물이 뿌려지는 모습은 민주화 이전을 떠올리게 한다. 민주주의 핵심 기본권인 비판적 표현과 풍자 예술에 재갈을 물리는 것도 공안시대를 연상케 한다. 권력분립원칙을 잊은 채 정부는 당정협의를 빌미로 여당과 한 몸으로 움직이길 원한다. 온갖 정보를 주무르던 국정원장을 비서실장으로, 권력의 상징인 검찰을 과도하게 청와대 안에 들여다 놓은 것도 유신을 떠오르게 한다. “지나간 과거의 모든 것들은 털어버리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창출해 나가길 염원한다. 새로운 미래와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 다 같이 힘을 모아 주시길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씀이다. 국민에게는 미래지향을 주문하면서 스스로는 과거 회귀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미래를 얘기하면서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를 과감히 떨쳐버려야 미래를 얻을 수 있다던 당선인 첫 일성(一聲)을 잊은 듯하다.

     

    ◊ 이 글은 2015년 3월 9일자 법률신문 14면 <서초포럼>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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