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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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상 이혼에 있어서 유책주의(有責主義)와 파탄주의(破綻主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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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상 이혼에 있어서 유책주의(有責主義)와 파탄주의(破綻主義)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대법원이 최근 ‘잘못을 저지른 배우자(유책배우자)’가 청구한 이혼사건에서 이혼의 허용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관련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였다는 뉴스다. 아울러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판례변경을 하는 경우에도 열리는 것이므로 그동안 대법원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았던 기존의 태도를 이번 기회에 변경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점쳐보는 뉴스도 보인다. 여기서 이혼에 대한 우리 민법과 판례의 태도는 어떠했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지 검토해 보기로 한다.

    이혼(divorce, 離婚)은 혼인관계에 있는 남녀가 살아 있는 동안 그 관계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우리 민법에서는 이혼의 방식으로 협의이혼(協議離婚)과 재판상이혼(裁判上離婚)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협의이혼은 이혼하려는 의사의 합치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그 원인은 묻지 않는다. 다만 민법에서는 일정한 절차상의 요건을 정하고 있을 뿐이다(민법 제834조 이하). 이에 반하여 재판상 이혼은 부부 중 어느 한 쪽의 청구로 인하여 법원이 강제적으로 이혼을 결정하는 것으로 법에서 정한 이혼원인을 전제로 한다. 우리 민법 제840조에서는 재판상 이혼원인으로 6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그 내용으로는 ‘①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②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③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④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⑤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⑥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가 그것이다.

    재판상 이혼사유 중 1호부터 5호까지는 구체적인 이혼사유를 규정한 것으로 혼인관계의 파탄에 주된 원인이 있는 배우자(有責配偶者)에 대하여 재판을 통해서 이혼을 청구하도록 한 것이며, 유책배우자가 상대 배우자에 대하여 이혼청구를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구체적인 이혼사유가 있는 경우 법원은 반드시 이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절대적 이혼원인이라 할 수 있다. 6호의 경우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이혼사유를 정한 것으로 구체적인 이혼원인이 없더라도 법원의 판단에 의해서 이혼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여기서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란 “부부간의 애정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할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그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대법원 2002. 3. 29. 선고 2002므74 판결). 또한 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혼인계속의사의 유무, 파탄의 원인에 관한 당사자의 책임 유무, 혼인생활의 기간, 자녀의 유무, 당사자의 연령, 이혼 후의 생활보장, 기타 혼인관계의 제반사정을 두루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므2130 판결 참조).

    그렇다면 혼인관계가 파탄되어 더 이상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라면 그 원인을 묻지 않고 이혼을 허용하여야 하는가? 재판상 이혼원인 중 6호에 의해서 이러한 해석(破綻主義)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 학설과 판례는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有責主義)를 따르고 있다. 그 이유로는 ①경제적 능력을 가진 남편이 그렇지 않는 처를 유기하는 등의 방법으로 혼인관계를 파탄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일 경우에는 경제적 약자인 처가 희생당할 수 있고, ②혼인을 파탄시킨 배우자가 스스로 이혼청구를 하는 경우에도 이혼을 허용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를 든다. 이런 기조에서 우리 대법원은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하여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그 파탄을 사유로 하여 이혼을 청구할 수 없고, 다만 상대방도 그 파탄 이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한데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아니하고 있을 뿐이라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대법원 2004. 9. 24. 선고 2004므1033 판결). 결국 혼인관계가 파탄되어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하지 아니하는 주된 이유는 가능한 가정의 해체를 막아 미성년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남성에 의한 여성의 축출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다가 근래에 이르러서는 조심스럽게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도 일부 받아들임으로써 유책주의를 완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즉 “혼인 파탄에 배우자 양쪽의 책임이 경합하고, 배우자 일방이 혼인관계가 계속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형식적인 혼인관계의 유지는 다른 일방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줄 것이며, 이혼청구를 한 유책배우자의 잘못이 이혼청구를 배척할 정도로 중대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도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므 2130 판결 참조). 또한 법률상 부부인 갑과 을이 별거하면서 갑이 병과 사실혼관계를 형성하였고, 그 후 갑과 을의 별거상태가 약 46년간 지속되어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해소되고 각자 독립적인 생활관계가 고착화되기에 이르자 갑이 을을 상대로 이혼을 청구한 사안에서, “갑과 을의 혼인은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공동생활 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었고, 그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될 것이며, 혼인제도가 추구하는 목적과 민법의 지도이념인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혼인관계의 파탄에 대한 갑의 유책성이 반드시 갑의 이혼청구를 배척하지 않으면 아니 될 정도로 여전히 남아 있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갑과 을의 혼인에는 민법 제840조 제6호에 정한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라는 이혼원인이 존재한다”(대법원 2010. 6. 24. 선고 2010므1256 판결)고 보았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 내려진 대법원 판례에서는 여전히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는 허용하지 않는 입장(대법원 2010. 12. 9. 선고 2009므844 판결)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판례의 기본적인 태도는 원칙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않고, 다만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유책배우자 또는 미성년의 자녀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경우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경우에 이혼을 허용하는 것일까? 이혼의 원인에 대한 과거의 입법례는 주로 유책주의에 입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907년 스위스 민법에서 ‘혼인관계가 지속되기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파탄이 생긴 때’를 이혼의 원인으로 인정한 이후 대부분의 나라에서 파탄주의를 따르고 있고, 일본의 경우에도 1987년 최고재판소의 판례 변경을 통해서 파탄주의를 받아들였다. 그 주된 이유는 혼인생활은 각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서 결정되어져야 하는 것이지 법률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혼인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 속성에 반한다는 점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보았던 바와 같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하지 아니하는 주된 이유는 가능한 한 가정의 해체를 막아 미성년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남성에 의한 여성의 축출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유책주의를 따르는 경우 상대 배우자의 잘잘못을 주장·입증하여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지나치게 공격하게 되고, 이로 인해 부부사이에 깊은 감정의 골이 남게 되어, 이혼 이후 자녀의 양육이라는 공동의 의무를 다하기 어려워져 오히려 미성년 자녀의 보호에 역행하게 된다는 점 때문에 여러 입법례에서는, 배우자 일방에 잘못이 있느냐의 여부를 떠나서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되어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에 이르렀다면 이혼을 허용하는 파탄주의를 따르고 있다. 다만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배우자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상대방에게 가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이혼을 허용하지 않도록 이른바 가혹조항을 둠으로써 파탄주의로 인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있다.

    파탄주의의 이론적 근거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다(광주고등법원 2009. 6. 5. 선고 2008르242 판결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음). ①유책주의를 따를 경우에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은 상대 배우자의 지나친 요구를 따르면서 이혼할 수 있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 한 이혼이 불가능함으로써 경제력에 따른 차별이 생긴다는 점, ②혼인관계의 파탄은 대부분 배우자 양쪽에 조금씩이라도 책임이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일방에 모든 책임을 물어 이혼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 ③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혼인생활의 유지 여부가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국가가 강제적으로 혼인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는 점, ④부부가 서로에게 잘못을 미루면서 이혼의 원인을 찾아 원망과 불신의 감정이 쌓이게 되는 것 보다는 자녀의 양육문제나 면접교섭권의 행사 등에 있어서 공동양육이라는 공동목표에 중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 ⑤유책배우자임을 이유로 이혼을 허락하지 않더라도 정상적인 혼인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오히려 국가가 사실상의 이혼상태를 방치하는 상태에 이를 수도 있으며, ⑥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면 새로운 가족질서를 형성해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소모적인 상태가 계속되도록 방치함으로써 고통의 깊이를 더하게 된다는 점, ⑦형식상의 혼인관계가 유지된다 하더라도 서로 극한의 감정대립 속에서 자녀들까지도 극심한 고통을 함께 하도록 한다는 점 등이다.

    다만 유책주의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려는 역할을 하였다면 최근에는 5, 60대 중년 남성들이 경제적 능력이 없어진 이후 파탄주의로 인해 가정에서 쫒겨날 우려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따라서 파탄주의를 따르더라도 일정한 범위내에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 독일처럼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허용하더라도 이혼으로 인해서 상대방에게 심히 가혹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가혹조항’을 두는 것이 하나의 예이다. 즉, 배우자 일방이 중병에 걸려 만일 이혼을 허용한다면 그 병세가 심각하게 악화될 염려가 있는 경우, 또는 이혼으로 인하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미성년 자녀의 가정적·교육적·정신적·경제적 상황이 본질적으로 악화되어 그 자녀의 행복이 심각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이다. 또한 배우자의 일방이 이혼을 목적으로 의도적인 파탄의 상태를 만들어 가족을 유기한 후 이혼청구를 하는 경우에도 이혼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파탄의 상태가 일정기간(예를들면 3년, 5년 등) 계속되는 것을 요건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는 것도 고려할만 하다.

    혼인생활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서 결정되어져야 한다. 국가가 법으로 혼인생활을 강제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파괴하고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가능한 지양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혼인관계가 파탄되어 사실상의 이혼상태가 오랫동안 유지된 경우에는 유책배우자에게도 이혼청구를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다만 파탄주의가 악의적인 유기 등으로 배우자 일방을 가정에서 축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미성년자녀의 건강한 교육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일정한 제한을 두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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