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윤배경
  • 변호사
  • 법무법인 율현
연락처 : 02-569-5333
이메일 : bkyoon@yoolhyun.com
홈페이지 : http://www.yoolhyun.com
주소 : 서울 강남구 역삼동 708-8 세방빌딩 신관 15층
소개 :

이 포스트는 0명이 in+했습니다.

    목록이 없습니다.

    ‘미생(未生)’과 변호사

    0

    드라마 ‘미생’의 열풍이 거세다. 공중파 방송이 아닌, 케이블 방송국이 방영하는 드라마가 전대미문의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바둑판의 미생마가 살아 남아 상대방의 중원을 정복하고 있는 셈이다. 멜로물도, 수사극도 아닌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단순하다. 직장인에 의한, 직장인을 위한, 직장인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연기하는 배우들이 일반 직장인은 아니다. 하지만 등장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이 내린 캐스팅’이란 찬사를 받고 있다. 장그래 역의 임시완, 오상식 역의 이성민 등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은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난 존재들이다. 이들의 ‘리얼 셀러리맨 캐릭터’에 시청자들은 몰입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에도 업무의 일선에서 활약하는 인물들을 그린 드라마가 적지는 않았으나 극히 제한된 직업군에 치우쳐 있었다. 의사, 경찰,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을 등장시킨 것에 그쳤다. 게다가 ‘사랑’ 이나 ‘성공’이란 대주제의 보조자에 불과했다. 특히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로맨틱 드라마는 시간 많은 재벌 2세들의 독무대였다. 자연히 극단적인 사건을 설정하거나 막장 인물이 나타나지 않으면 시청자의 이목을 끌어 모을 수 없었다. 드라마에 단골처럼 노출되는 작업장 역시 구태의연했다. 구멍가게, 빵집, 미장원 아니면 커피숍 등이 전부였다. 대체로 조연급 연기자들이 수다를 떠는 장소로 애용되었다. 생존 경쟁을 위한 치열함이 배어 나올 리 만무했다.

    반면 드라마 ‘미생’은 국가의 GNP와 가정의 가처분 소득을 책임치고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우리의 직장과 일 자체를 무대 한 복판으로 끌어왔다. 그 곳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고 가족의 삶을 책임진 가장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투영시켰다. 상사에게 깨지고, 후배에게 치인다. 거래처는 걸핏하면 어깃장을 놓는다. 동료 사이의 경쟁과 질투, 그리고 우정. 퇴근 후 술이라도 한잔 하지 않을 수 없는 직장인의 정당성을 보여준다. 산업 일꾼은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자신이 매일 겪는 일이 속살 헤집듯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항상 ‘왜 나만 이렇게 사나’ 싶다가도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당하는 설움과 좌절이 그대로 전해질 때, 동변상련과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는 것이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이런 감정이입을 직장인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금요일과 주말 저녁, 본방을 사수하고자 귀가한 남편과 TV 앞에 앉은 아내, 그리고 자녀들이 집 밖에서 겪어야 하는 가장의 고충을 간접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내는 회식이랍시고 휘청거리고 밤 늦게 돌아온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녀들은 주말에 잠만 자는 아빠를 동정하게 되었다. 직장인과 그 가족들에게 힐링(healing)을 선사한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을’들이 동감한다는 점이다. 거래처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접대에 목숨 건 중고기업의 사장님들의 애환을, 기업의 신입사원, 여성직장인, 그리고 계약직 등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가감 없이 그렸다.

    어느새 영원한 ‘을’의 처지로 전락한 변호사들도 ‘미생’을 통하여 자신의 처지를 통찰할 것이다. 청년변호사들은 오죽하겠는가. 엄청난 스펙을 갖춘 젊은 변호사들마저도 연착륙이 불가능하다. 여성 변호사들은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한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은 6개월 짜리 계약직 인턴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한다. 작금의 법조시장은 ‘대책 없는 희망과 무책임한 위로 한 마디도 못 건네는’ 여백 없는 바둑판이다. 수 많은 미생마가 양산되는 좁디 좁은 바둑판이다. 접대를 마치고 빈 지갑으로 귀가한 오상식의 동선과 겹쳐진다. “니네들이 술 맛을 알어!?”

     

     

    ◊ 이 글은 2014년 12월 18일자 법률신문 14면 <서초포럼>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