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하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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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의 전가보도(傳家寶刀), 알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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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이 가보(家寶)처럼 들먹이는 권리는 국민의 알 권리다. 유리하거나 불리하거나, 아니 불리할 때 더욱 힘을 발휘한다. 범죄 용의자의 얼굴사진을 내보내면서도 국민의 알 권리, 자신들의 성향에 맞지 않는 판결을 한 판사의 과거 이력을 보도하면서도 국민의 알 권리, 아직 수사단계에 있는 사건의 피의자나 피해자의 사생활을 노출시킬 때도 국민의 알 권리다. 국가기밀을 드러내는 보도를 하면서도 문제되면 국민의 알 권리를 꺼내든다. 공인의 지극히 사적인 개인사를 들춰내 명예를 훼손하면서도 알 권리로 방어한다. 국민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입방아거리를 보도하면서도 독자를 들먹인다. 국민을 시시콜콜한 것까지 알고 싶어 안달이난 독자로 치부하면서.

    알 권리, 언론이 금과옥조로 여겨야 할 국민의 기본권이다.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국민의 알 권리 수호이기 때문이다. 칼과 지갑(power of purse and sword), 그 어느 권력에도 치우치지 않고 독립해서 정확하고 공정하게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다. 국민이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공적 정보를 국민을 대신해 수집하고 이를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임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언론은 주어진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제대로 기능하고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알 권리의 주체인 국민을 위해서 대변자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언론이 국민의 대변인이 아니라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떠맡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부의 발표만 받아 적어 틀어주는 녹음기, 정부가 건네주는 정보를 전달하는 심부름꾼을 자처한 것은 아닌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미명 하에 편파적이고 왜곡된 사실을 전달하거나 축소해서 보도하는 것은 아닌가. 정작 국민이 알고 싶은 공적인 사안에 종종 눈을 감는 것은 아닌지.

    언론의 힘은 커져만 가는데 언론자유 지수는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 매체 수는 증가하지만 공론(公論)의 장이라는 언론의 기능은 오히려 쇠퇴하고 있는 것 같다. 언론을 제4부라 한다.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무기로 입법·행정·사법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막강한 힘을 가졌다는 의미다.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권력은 분립된 3권이 서로 감시하고 견제한다고 하지만 불충분하거나 철저하지 못할 때가 많다. 집권 여당이 다수당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사법에 의한 입법·행정 권력의 견제도 한계가 있다. 그럴 때 나서서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언론이다.

    국민은 언론이 대통령의 공약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 4대강 사업과 같은 대형 국책 사업의 타당성은 있는 것인지, 왜 담뱃 값을 올리려 하는지, 대형 참사 때 청와대의 대통령 보고와 대응은 적절했는지, 왜 인명구조 작업이 제때에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는지 등등 알고 싶고 또 알아야 할 공적 정보를 파헤쳐 전달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요즈음 칼과 지갑 앞에서 국민의 알 권리라는 전가의 보도는 점점 무뎌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 이 글은 2014년 9월 18일자 법률신문 14면 <서초포럼>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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