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이명웅
  • 변호사
  • 이명웅 법률사무소
  • 행정법, 헌법재판
연락처 : 02)585-0022, 010 2467 3529
이메일 : constitutionlee@gmail.com
홈페이지 :
주소 : 서울 서초구 명달로 104 801호
소개 : 안녕하십니까. 헌법의 기본취지를 늘 생각해보고자 하는 변호사입니다. 많은 지도 편달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포스트는 0명이 in+했습니다.

    목록이 없습니다.

    사익과 공익의 관계 – 변호사의 역할

    0

    제가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연구관(부장연구관)으로 18년 6월, 미국유학 4년 후 새로 변호사업무를 하게 되면서 ‘변호사의 역할’에 대하여 고려해 보게 되었습니다. 다음 내용을 같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법원,법정,재판,서울중앙지법,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서울고법 (1)

    우리 변호사법은 매우 이상적인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즉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제2조)으로서,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제1조 제1항)는 것입니다. 이 규정들의 의미를 한번 되집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 기본적인 의문은, 변호사가 개인과 기업의 사익을 대변하는 경우 그러한 공공성은 어떻게 담보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어려운 질문이지만, 만약 “공공성”을 ‘공익’과 연관된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 문제는 한편으로 ‘사익과 공익의 관계’에 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익과 공익은 충돌하는가, 아니면 조화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단순한 정답은 아마 ‘둘 다’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사익을 추구하며, 때로는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이) 이를 극단적으로 합니다. 이를 그냥 두면 홉스나 로크가 경계했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될 것입니다. 인간은 홀로 자립하여 사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우리는 정치적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도우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국가는 가장 큰 정치적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공동체의 이상적인 목적은 결국 ‘공익’(common good)의 추구일 것입니다(Aristotle). 이 경우 공익은 사익들의 총합에서 ‘부당한(지나친) 사익들’(가칭)을 뺀 것이 될 것입니다. 흔히 사익과 공익은 충돌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사실 사익과 공익은 많은 부분 일치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익은 개인들에게 서로 이로운 사익들의 총합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부당한’ 사익인지는 그 경계를 정하기 어렵겠지요. 하지만 헌법과 많은 법률은 결국 ‘지나친 사익’을 규제하고 조정하기 위한 공동체의 결정입니다. 예를 들어, 평등원칙은 자의적 차별없는 자유의 공평한 향유를 추구하며, 과잉금지 내지 비례의 원칙은 지나친 사익을 공익의 이름으로 조정하는 법기술일 것입니다.

    변호사의 공공성과 관련하여, 필자는 Adam Smith의 경제원리를 되새기고 싶습니다. ‘국부론’에서 그는 개인의 자유로운 사익추구가 국가의 부로 연결된다고 보았지만, 사익의 추구는 독점규제(공정거래)를 통해 “반드시” 통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흔히 후자의 관점이 잘 조명되지 않지만, 앞서 본 사익과 공익의 관계를 고려하면, 그에게 이들은 동전의 양면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개인과 기업의 사익의 보장은 공익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부분이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나친’ 혹은 ‘부당한’ 사익의 추구, 남의 자유와 권리를 무시한 사익 추구는 금지되어야 합니다. 결국 공동체의 법이 이의 기준을 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필자는, 남이 마땅히 가져야 할 최소한의 것까지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는 것을  부정하였던 John Locke의 자연법 정신을 상기하고 싶군요.

    결론적으로, 변호사는 사익의 추구를 통하여 공익(공공성)을 도모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의 “기본적 인권”은,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라는 것이지만, 동시에 무엇보다도 모든 사익의 자유로운 추구를 전제하는 것입니다. 사익 없는 공익은 무의미하며,  공익을 상실한 사익의 추구는 공동체를 와해시킬 것입니다. 국가의 역할은 사익을 공익으로 조화시키는 것이겠지요. 만약 (세월호 사건에서처럼) 국가가 사익의 극대화에 압도되어버린다면 정치적 공동체의 존재 목적이 침몰하게 될 것입니다.

    부가하여, 변호사법이 정한 “사회정의”는 공익을 위한 필수 수단입니다. 이는 Aristotle의 본질적 인식이지요. 나아가 제1조 제2항이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할 변호사의 의무를 규정한 것은 때로는 변호사가 ‘사익의 대변자’에 그칠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대리인’으로 기능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대한변협 신문 2014. 8. 18.자에도 기고되었습니다.)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