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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내 기지촌 ‘위안부’의 국가배상청구의 소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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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타이틀_사본

    ▲ 원본사진 출처_https://www.flickr.com/photos/mlazarevski/

     

    2014년 6월 25일, 한국 내 기지촌에서 미군 ‘위안부’로 살았던 여성 122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습니다. 원고들을 지원하는 현장 단체와 연대단체들-새움터, 기지촌여성인권연대(평택햇살사회복지회, 의정부 두레방, 에코젠더 부설 여성인권센터 쉬고), 그리고 공동대리인단을 구성한 민변 여성인권위원회가 오랜 시간 이 소송을 준비했습니다. 소송의 내용을 개괄적으로 살펴봅니다(이하는 공동대리인단이 법원에 제출한 소장의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원고들이 피고 대한민국의 불법행위책임을 묻는 이유를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는 한국 내 미군 기지촌을 적극적으로 형성‧유지‧관리하고 원고들에게 미군 상대 성매매를 권유‧조장‧방조했습니다. 이로써 피고는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 국제법규에 위반하여 원고들의 기본권 보호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원고들의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거주‧이전의 자유, 건강권 내지 보건권, 모성보호를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를 하였습니다. 원고들은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기지촌 위안부로 종사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도 장기간 우리 사회로부터 기지촌 위안부라는 낙인에 의한 배제와 차별을 겪어오며 사회로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가족과 지인에게조차 기지촌 위안부로서의 과거를 말하지 못한 채 현재까지도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 소송에서 원고들은 원고들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로 최소한 1인당 1천만 원을 피고에게 청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기지촌 형성과 관리의 역사는 한국전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전시에 군 위안소를 설치한 이래로, 위안소‧미군시설을 직접 설치하거나(기지촌의 전신), ‘특정 윤락 지역’을 지정하고(기지촌의 형성), ‘기지촌 정화대책’ (기지촌의 정비와 발전) 등 다양한 방법으로 미군기지 주변 지역의 성매매를 권유하고 조장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대한민국 정부의 행위는 그 당시 효력을 가진 국내법과 국제법에 모두 위반된다는 점입니다. 1947. 11. 14. ‘공창제등폐지령’이 공포된 이후 대한민국에서 성매매가 법적으로 허용된 시기는 없습니다. 1961. 11. 9. ‘윤락행위등방지법’이 제정된 이래로 성매매와 성매매를 권유‧유인‧강요‧조장‧장소 제공하는 행위는 모두 금지되어 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이 가입한 ‘인신매매 금지 및 타인의 성매매에 의한 착취 금지에 관한 협약’은 성매매 알선, 성매매 여성 착취행위를 방조하거나 고의적으로 관여하고 성매매업소를 소유하거나 경영하는 운영자금을 제공하는 행위, 타인의 성매매를 목적으로 가옥이나 장소 또는 그 일부를 대차 또는 제공하는 행위를 모두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고는 국내법과 위 국제협약에 정면으로 위반하여 이른바 ‘포주’들의 범죄행위를 방조하거나 고의적으로 관여했습니다. 더구나 성매매 방지의 책무가 있는 피고 정부가 국가 예산으로 기지촌을 정비하고 관리하면서 기지촌에서의 성매매를 허용하고 조장함으로써 헌법에 따른 국민의 기본권 의무를 불이행했습니다.

     

    피고가 구체적으로 기지촌을 관리하고 원고들의 성매매를 조장한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미친선협의회, 지역재건부녀회, 특수관광협의회 등 협의체를 구성하여 성매매를 관리하고 강제적인 성병 관리와 성병 관리소 수용을 통해 성매매를 권유하고 조장하였으며, 원고들에게 미군 성매매가 애국이라는 애국교육을 실시하거나 자매회에 강제가입시킴으로써 원고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했습니다. 피고는 인신매매 등 각종 범죄피해로 기지촌에 유입된 원고들에 대해 보호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미군이나 성매매알선업자에 의한 범죄피해를 묵인했습니다. 또한, 성 구매자인 미군을 위하여 원고들에게 성병 검진을 강제하고, 성병을 예방하고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원고들에게 강제적으로 약물을 투여하고 ‘낙검자 수용소’에 실질적으로 감금했습니다.

     

    기지촌
    ▲ 평택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주제로 한 연극<일곱집매> 관련 책자.
    사진 출처_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totoro0550/100190024481

     

    이에 따른 원고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원고들이 가장 큰 피해로 주장하는 것 중의 하나는 피고의 강제적인 성병 검진과 치료로 인하여 원고들의 신체가 철저히 통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생명의 위험이 발생하거나 건강이 침해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성병 검진에서 탈락한 원고들은 낙검자수용소에서 강제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이때 원고들에게 성병 치료 약물로 사용된 페니실린의 과다 투약이나 쇼크사고가 빈번했습니다.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여 의사들이 투약을 꺼리게 되자, 보건사회부는 페니실린 투약으로 인한 쇼크사고를 수사하는 검찰에 응급조치를 하면 면책될 수 있도록 협조공문을 발송하고 관할 보건소장에게는 페니실린 사용을 기피하지 말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원고들에게 생명이나 신체의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했음에도 위험한 치료 방식을 강제로 계속 쓴 것입니다. 한편 원고들은 기지촌 위안부 종사과정에서 ‘포주’ 등 성매매알선업자에게 착취당하고, 기지촌 유입 직후뿐만 아니라 상시로 성폭력, 구타, 약물 강제투여, 강제 낙태를 겪어야 했으며, 전국의 기지촌 지역을 선불금과 함께 수차례 인신매매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과정에서 원고들이 경찰이나 공무원들에게 구조나 도움을 요청해도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이 행하였으나 어떠한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던 기지촌에서의 불법에 대해서 한 원고는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이 소송을 통해서 피고 대한민국이 원고들의 물음에 대해 성실하게 답변하고 그 책임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정부는 나와 내 동료를 모른 척하시나요? 우리는 달러를 버는 기계였습니다. 이 기지촌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양공주라는 꼬리표로 모든 생활을 했습니다. 정부는 왜 우리를 모른 척하나요? 일본군 위안부는 도와주면서. 동료들 중에는 연세 많은 분들도 많습니다. 한 분씩 돌아가시고 있습니다. 내 어릴 적 꿈은 국회의원이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달러 벌어 경제 살리기를 했습니다. 자살한 사람, 자살에 실패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지금도 가슴을 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인생을 바친 기지촌에서 갈 곳이 없습니다. 친구들은 등 돌리고 미군 위안부라고 무시당한 세월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윤방법(윤락행위등방지법)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그냥 살았습니다. 미군 위안부를 진작 도와주지 못한 정부는 이제라도 책임져야 합니다. 왜 몰라라 했는지 생각해 보세요. 너무 한스러운 삶이 화가 납니다.”

    (2014년 6월 25일 국가배상청구소송 기자회견, 원고 중 1인의 발언)

     

    ◊ 이 글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블로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http://withgonggam.tistory.com/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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