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권용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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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영장담당 판사가 전국 검사들에게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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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십니까? 저는 모 법원에서 영장 업무를 일부 담당하고 있는 현직 판사입니다. 불필요하게 주목받는 것을 피하고자 더 이상 구체적으로 신원을 밝히지 않는 무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이례적인 글을 쓰는 것은 검사님들의 전화통화에 관해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검찰의 영장청구가 기각된 후에 기각결정을 한 판사에게 그와 관련해서 걸려오는 전화 말입니다. 파악하기로는 저나 제 주변뿐 아니라 다른 법원에서도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겪어온 일인 듯합니다.

    물론 모든 검사님들이 그런 통화를 시도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전화를 거는 검사님도 아무 고민 없이 가볍게, 아니면 해당 판사에게 모종의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에서 그러실 리는 없습니다. 기각결정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거나 이후의 보완책이 막막할 경우에, 기각의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또는 무엇을 보완해야 영장을 발부받고 수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궁금해 하고 답답해하다가 많은 주저 끝에 어렵게 거시는 전화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철저한 수사로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자 하는 검사님들의 열정과 성실함이 자리하고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드물게나마 꾸준히 반복되는 일이고 이제 말씀드릴 바와 같이 상당히 부정적인 효과를 내는 일인 이상 일각의 우발적 사건으로만 치부하고 마냥 눈감아드리기는 어렵다고 여겨집니다. 누구도 섣불리 튀는 행동을 하려 하지 않는 법원의 분위기 때문에 이제껏 방치된 면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래도 누군가는 말해야 할 것 같아 주제넘지만 나서게 됐습니다.
    아시다시피 발부되는 순간, 영장이라는 문서는 수사기관의 막강한 무기가 되어 피의자나 주변인을 공격하는 데 쓰입니다. 법의 이름으로 대상자는 잡혀 가두어지고 행적을 낱낱이 공개당하며 생활이나 영업에 긴요한 물건들을 빼앗깁니다. 실질심사를 거치는 구속영장의 경우가 아니라면 발부의 정당성에 관해 한번 다투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대상자에게는 무척이나 가혹한 노릇입니다.

    때문에 영장기록을 마주하는 판사는 매번 마음속에서 조심스레 저울을 듭니다. 저울의 한 쪽에는 공공의 이익을 놓습니다. 불법과 부정을 밝혀내고 척결하려는 공권력의 의지, 정의를 바로세우고 질서를 회복할 사회의 당위가 거기에 있습니다. 저울의 다른 한 쪽에는 개인의 권리를 놓습니다. 아직 유죄로 확정되지 않은 혐의를 근거로 침해당할 시민의 자유, 비밀, 그리고 재산이 놓입니다. 판사는 법률·판례 및 실무에서 통용되는 기준에 맞추어 저울의 균형점을 섬세하게 조정하고, 사건마다 저울에 달아서 열심히 눈금을 들여다봅니다. 청구가 법정요건을 갖추고 있음을 전제로 저울이 공공의 이익 쪽으로 기울 때, 비로소 판사는 무겁게 도장을 들어 영장에 찍습니다.

    역시 잘 아시겠지만 이것은 판사가 내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키는 대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법률로부터, 법률을 만든 국민으로부터 명받은 대로 따르는 일입니다. 저희는 그렇게 일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고, 그렇게 일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항상 그렇게 일해야만 합니다. 만약 그렇게 일할 수 없다면 적극적으로 이유를 찾아 배제해야 하고, 여의치 않다면 법복을 벗기라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판사입니다.

    판사는 때로 영장 발부의 여러 기준들이 다 충족되지 못했다고 판단해 영장을 기각하기도 합니다. 검찰의 시각과 법원의 시각이 늘 일치할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그래도 검찰에서는 법률적 판단과 소신에 기초하여 기대를 품고 하신 청구인지라, 기각하는 판사의 마음 한편에는 일말의 미안함이나 불편함이 섞이게 마련입니다. 영장을 발부할 때 대상자에게 미안하거나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청구한 검사님으로부터 갑자기 전화를 받는 겁니다. 용건은 제각각이라 보통은 판단의 구체적 내용이나 근거 등에 대해 질문을 하십니다만 때로 차후의 수사방향에 관해 의견을 구하기도 하시고, 드물게는 노골적으로 항의를 하시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쪽이건 전화를 받은 판사들은 무척 당혹스럽습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격언의 취지를 따라 공식적으로 판단을 밝히는 것 외에는 침묵하는 데 익숙한 판사들에게, 가끔 자신의 판단이 부정적인 여론에 부닥쳐 힘들지언정 그 누구로부터도 판단에 대한 추가설명을 대놓고 요구받는 적이 없는 판사들에게, 개별사건에서의 판단과 관련해서 그것도 외부에서 직접 걸려온 전화는 상황과 용건을 불문하고 이른바 불의타에 해당합니다. 추궁을 받는 듯 불쾌하기도 합니다. 혐의유무가 치열하게 다투어지는 사건에서 피의자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한 직후에 고소인이나 그 대리인으로부터 전화를 받는 검사님의 기분에 비유하면 무리일까요?

    하지만 전화를 받는 순간의 당혹감·불쾌감 때문에 공개서한까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전화를 받은 기억이 남아서 이후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판사가 다시 같은 사건에서, 또는 같은 검사님이 담당하시는 다른 사건에서 영장 발부여부를 판단할 때 당혹스럽고 불쾌했던 일이 떠올라 기각으로 향하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멈칫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영장 발부와 관련하여 어떤 식으로든 판사에게 접촉을 시도한 예가 없는 영장의 대상자와 달리 반대편 일방인 검찰에서만 영장 기각과 관련해서 이렇게 따로 접촉을 시도한다면, 이는 의도와 무관하게 결국 판사 마음속의 저울을 건드리는 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물론 기각의 취지나 근거가 불분명한 경우, 또는 판사가 지식·경험이 부족하거나 부당한 선입견을 가진 나머지 부당하게 기각을 하는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그럴진대 기각결정에 대한 불복수단도 마땅히 없는 현실에서 판사에게 질문마저 할 수 없다면 검찰이 결정의 실질적 이유를 확인하거나 법원의 독단·전횡을 견제할 방법이 전혀 없지 않느냐 하는 우려도 하실 법합니다.

    하지만 그런 우려가 판사의 저울을 건드리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전화통화가 확인이나 견제를 위한 적법하고 적절한 수단일까요? 법률상 검찰은 영장 기각결정에 불복할 수 없는 대신 같은 영장을 무제한 재청구할 수 있고, 법원은 재청구된 영장의 발부 여부를 기각결정을 한 판사와 경력이 동등하거나 그보다 더 많은 다른 판사에게 맡기고 있으며, 심지어 약 10회에 이르는 재청구에까지 대비해서 미리 사무분담을 정해두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해하신 기각사유를 보완하여 재청구를 하지 않고 이미 기각결정을 한 판사와 비공식적 접촉을 하셔야 할 필연적 이유가 뭘까요? ‘이런 영장이 기각되면 우리는 어떻게 수사를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라 쓰고 항의라고 읽어야 할 듯합니다)이 수사기관 아닌 판사에게 합당할까요?

    비록 영장에 대한 결정이 법률상 판결은 아닙니다만 엄연히 법원의 재판에 속합니다. 그 파급력이 본안판결의 그것에 비해 작다고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즉 영장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언동은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언동-예컨대 무죄판결 이후의 전화통화 등-과 마찬가지로 극히 삼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원의 재판이 신성불가침이라서가 아니라, 그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가 이룬 기본적 합의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판사들이 그러하듯 저도 매 판단의 내용과 근거를 충실히 밝혀 검사님들을 비롯한 관계인들에게 의문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자, 판단기준을 객관화하고 일반의 상식에 부합하는 것으로 만들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그래도 미치지 못하는 부족한 판사를 공론으로 따끔하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부디 소임을 다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고 법질서를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힘껏 박수 치겠습니다. 올바른 검찰, 강한 검찰로 자랑스럽게 서시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그러니 부탁합니다. 집어 들던 수화기를 내려놓으시고, 판사들이 자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모두 건승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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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고문은 법률신문 2014년 7월14일 법률신문 13면에 실린 것을 옮겨 온 것입니다.  필자의 개인적 사정에 따른 요청으로 부득이하게 익명으로 게재됐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이 사안은 판사와 검사 간에 종종 마찰을 빚는 대상이 되었지만 그 누구도 공식적으로 표면화시키기를 꺼려했던 사안이었던 만큼,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판단돼 익명 게재를 수용했습니다. 그러나 법률신문은 필자가 현직 판사로 재직하고 있는 사실을 명확히 확인, 가공인물이 아님을 밝힙니다. 아울러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침과 관련이 없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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