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윤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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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제국 (26)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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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연아,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네가 너무 나이브한 것 같아. 우린 더 이상 법학도도 아니고 사법연수생도 아니야. 우린 우리의 전문지식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프로라고. 우리가 우리 몸값을 높게 쳐주는 직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박두현은 칠레가 자랑하는 명품이라는 ‘알마비바’를 한 모금 마시며 열을 올렸다. ‘알마비바’는 ‘넘치는 열정’이라는 의미라던가.

     

    “김 선배, 김 선배의 말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에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이건 단순히 국내 로펌끼리의 합병이나 인수하고는 다르다고 봐요. 외국계 로펌하고 합병하는 건 로펌의 국적이 달라지는 거니까 직장이 우리나라 회사에서 외국 회사로 바뀌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봐요.”

     

    김일세와는 달리 이수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냉정함이 김일세를 더욱 열 받게 만들고 있었다.

     

    “이봐 수연이, 정말 답답하네. 지금 어느 때인데 우리 회사, 외국 회사 따지는 거야. 직장이 외국계 회사면 어때? 연봉 많이 주고 근무환경 좋으면 좋은 직장이지. 외국 회사라고 도둑질하거나 무슨 불법적인 업무를 하는 게 아니잖아. 외국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 연봉 많이 받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애국하는 거 아냐? 도대체 뭐가 문제인거야.”

     

    김일세는 와인을 물처럼 꿀꺽꿀꺽 마셔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한잔을 따랐다.

     

    “김 선배, 조금만 냉정하게 상황을 생각해 봐요. 현재 우리 로펌은 재정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어요. 그런데 상대방은 이런 우리의 약점을 이용해서 우리 로펌을 거저먹으려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연봉을 올려 준다는 것은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요. 더구나 아직 확증은 없지만 우리 로펌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원인이 상대방 로펌과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상대방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외국 로펌이 아니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로펌일지도 몰라요. 전 그런 로펌에는 가기 싫어요.”

     

    이수연도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김일세의 말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봐, 이 변호사. 우리 로펌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건 클라이언트와 문제가 있어서 그런거고 상대방 로펌이 관련되어 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억지를 부릴 수가 있어? 그리고 재정적으로 어려운 로펌을 합병하면서 기존 연봉의 최소한 1.5배를 보장해 주겠다는데 어째서 그게 그저 삼키려는 거냐구? 그건 상대방이 우리 로펌의 가치를 그만큼 인정해 준다는 뜻이잖아? 그리고 경영지분도 반반으로 하겠다는데 우리가 손해 볼 게 뭐 있어? 안 그래? 우리가 뭐 바보야?”

     

    김일세도 생각을 바꾸었는지 수연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 변호사라고 불렀다. 목소리도 아까보다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수연을 설득하려면 납득할 만한 논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김 선배, 아무리 경영지분을 반반으로 하더라도, 지금 김 선배가 말한 대로 합병하고 나서 현재 연봉의 1.5배를 준다고 한 것은 다비드 앤 솔로몬 이예요. 세상은 결국 돈줄을 쥐고 있는 자가 주인 행세를 하게 마련이죠. 우리가 지금 연봉의 1.5배 이상을 받고 합병하게 되면 지분이 반반이건 그 이상이건 관계없이 우리 운명을 상대방에게 맡기는 셈이에요. 김 선배는 그렇게 생각지 않으세요?”

     

    “이 변호사. 이 변호사 말도 틀린 것은 아니야. 하지만 이런 점도 있지. 우리 최강은 어차피 한국 내에서도 일류는 아니었어. 아마 죽었다 깨어도 김앤송이나 이앤파트너를 따라 잡지는 못할 꺼야. 더구나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그대로 공중분해 되고 말지도 몰라. 하지만 다비드 앤 솔로몬하고 합병하면 얘기는 달라져. 다비드 앤 솔로몬은 이 변호사도 알다시피 세계적인 로펌이야. 세계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고. 그 뿐이야? 여러 분야에서 축적된 노하우가 있다고. 그리고 어차피 우리나라에서 프랙티스를 하고 우리 법을 다루는데 우리가 꿀릴게 뭐가 있어? 잘만 하면 바로 김앤송을 뛰어넘는 초일류 로펌이 될 수 있다고. 그러면 그 거들먹거리는 정변과 송변에게도 한 방 먹일 수 있다고.”

     

    김일세가 말하는 정변과 송변은 정기수와 송한나로서 김일세의 연수원 동기로 뛰어난 연수원 성적으로 일찌감치 김앤송과 이앤파트너에 스카웃된 변호사들이었다. 이수연은 김일세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김일세가 아직도 정기수와 송한나에 대해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우습기도 했다.

     

    “이변은 내가 송변과 정변 얘기를 하니까 내가 열등감이라도 갖고 있을까봐 비웃는 거야? 좋아. 비웃고 싶으면 비웃어.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지 않아. 인생은 마라톤이고 끝임 없는 경쟁의 연속이야.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는 두고 봐야지. 난 누가 뭐래도 내 전문분야에서 최고가 될 거야. 다비드 앤 솔로몬과의 합병은 정말 더 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이제 세계는 국경이 없어. 더구나 비즈니스에 국적과 국경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이변, 그러지 말고 다시 잘 생각해보고 나와 함께 가자. 우리 서로 서로에게 특별하고 필요한 존재하는 것은 이미 확인했잖아. 안 그래?”

     

    김일세의 목소리는 사정조로 바뀌었다.

     

    “김 선배, 저도 사실 너무 혼란스럽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예요. 다만 다비드 앤 솔로몬과의 합병은 왠지 모르게 내키지가 않아요. 꼭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수연아,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가 없고 대세는 결정되었어. 난 이미 나의 거취를 결정했는데 수연이가 계속 내 뜻을 따라주지 않으면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에 대한 수연이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내 뜻을 따라 줘야되는거 아냐?”

     

    이수연은 김일세의 간절한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자신이 김일세를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왜 김일세와 함께 흔쾌히 미래를 향해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일까? 이수연은 지금까지의 자신이 본래의 자기의 모습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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