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윤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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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제국 (25) 난상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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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강 4인방의 회합이 있은 지 꼭 일주일이 지난 금요일 저녁 오후7시 최강로펌의 변호사들은 아무도 퇴근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반 이상은 이미 퇴근했을 시간이고 직원들도 야근 직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퇴근했을 시간이었다. 오늘은 최강로펌의 모든 변호사들은 아무도 퇴근하지 않았고 직원들은 야근직원도 없이 모두 퇴근했다.

     

    변호사들은 회의실이 아닌 직원들이 근무하는 넓은 홀에 모두 앉아 있었다. 그들 앞에는 저녁으로 주문한 도시락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변호사들은 몇 사람씩 무리를 지어 직원들의 자리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뭔가 은밀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조용히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표정들이 그리 밝지 않은 것으로 보아 뭔가 심각한 일을 앞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변호사들이 식사를 끝내고 커피도 한잔씩 마셨을 무렵 최동수 사무실에서 같이 식사를 마친 최동수, 이상석, 손경찬, 민용하가 홀로 나왔다.

     

    최강로펌을 움직이는 4인방이 한꺼번에 로펌의 전체 변호사 앞에 모습을 나타냈던 것이다. 그들의 표정 또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들이 홀의 앞쪽에 앉을 때까지 무서우리만큼 고요한 침묵이 흘렸다.

     

    “여러분, 저녁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김 변호사는 원래 도시락을 싫어하는데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도시락 먹느라 고역이었겠네.”

     

    최동수는 무거운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앞에 앉은 김일세에게 웃음을 띠며 말을 건넸다.

     

    “아닙니다. 오늘은 맛있게 먹었습니다.”

    김일세는 50여명의 변호사 중 최동수가 자신에게 제일 먼저 말을 건넨 것에 으쓱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여러분, 이제 식사도 끝냈으니 시간을 아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 로펌의 진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우선 대부분 알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금까지의 상황을 한번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강 변호사님, 지금까지의 상황을 한번 요약해 주시지요.”

     

    “예, 알겠습니다.”

     

    앞쪽에 김일세, 배금호, 이수연과 같이 앉아 있던 강동현이 일어서서 앞으로 나왔다. 강동현은 미리 준비한 자료를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여러분께 요약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약 3개월 전인 금년 9월 초경에 처음으로 다비드 앤 솔로몬에서 우리 로펌과 합병할 의사가 있음을 전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로펌에서는 전혀 그럴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다비드 앤 솔로몬의 제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 후인 지난 10월 초경 다비드 앤 솔로몬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또 다시 합병의사가 있음을 강도 높게 전해 왔습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점은 이때를 전후해서 우리 로펌의 클라이언트들이 우리 수수료청구서(Bill)에 대해 클레임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로펌의 재정상태가 조금씩 악화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어찌 보면 다비드 앤 솔로몬의 합병제의와 클라이언트의 클레임 제기는 무슨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물론 아무런 증거는 없습니다.

     

    다비드 앤 솔로몬의 합병제의는 아주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사무실 운영의 지분을 50:50으로 하고 사무실 운영도 양쪽에서 선출한 5명씩의 이사로 구성된 10명의 이사회에서 결정하되 의장은 양쪽에서 1년씩 번갈아 맡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변호사들에게 더욱 솔깃한 것은 합병에 동참하는 로펌 변호사들의 연봉을 최소한 현재 연봉의 150%를 보장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후 다비드 앤 솔로몬의 합병의사는 강도를 더해갔고 최근에는 올 연말까지 확답을 주지 않으면 최강과의 합병은 포기하고 다른 로펌과의 합병을 고려하겠다고 까지 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우리 로펌에서도 마냥 거부만 할 수가 없어 합병에 대해 신중히 검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시니어 파트너를 중심으로 태스크 포스팀을 만들어 지금까지 수차 회의를 거듭했지만 아직 의견을 모으지는 못했습니다. 좀 더 상황을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처음에는 합병에 대해 부정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지만 지금은 많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분위기가 바뀐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로펌의 재정 악화입니다. 현재 로펌의 재정 상태를 알고 계시는 분도 있겠지만 아주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 클라이언트들의 클레임 제기는 날로 늘어가고 있고 최근에는 고문계약해지도 이미 30건이 넘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지난달에는 로펌의 수지가 10억 원 정도의 적자였습니다.”

     

    순간 좌중에서는 탄식과 술렁거림이 한차례 지나갔다. 사무실 재정상태가 나빠졌다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적자라고는 다들 생각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직 보기에 따라서는 적자 폭이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현재의 추세로는 단기간에 사무실 수지를 반전시키기는 어려울 상태입니다. 이제 다비드 앤 솔로몬이 제시한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들이 정말로 그 시한이 지나면 우리 로펌과의 합병을 포기하고 다른 로펌과의 합병을 시도할지, 아니면 단지 우리를 압박하기 위한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다만 우리 로펌으로서도 이 문제를 더 이상 오래 끌기는 부담이 크고 뭔가 결단을 내려야할 것 같습니다. 이상입니다.”

    강 변호사 역시 무거운 마음으로 상황설명을 마치고 자리로 들어갔다.

     

    “강 변호사님, 수고하셨습니다. 강 변호사님이 여러분에게 설명해드린 대로 현 상황은 우리에게 뭔가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최강로펌은 어느 개인 또는 몇몇 사람의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의 것입니다. 우리 로펌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잡아가야 하는지 여러분들의 기탄없는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경력이나 나이, 소관분야 등 모든 격식을 버리고 솔직하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다시 한동안 좌중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누구나 하고 싶은 얘기는 많았지만 먼저 얘기를 꺼내기는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여러분 모두 할 말이 많을 텐데 쉽게 말을 못 꺼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제가 먼저 의견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좌중을 한번 쓱 둘러본 최동수가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기저기서 “예” “그러시지요.”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변호사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하기도 했다.

     

    “여러분이 이미 알고 계시는 것처럼 저는 처음부터 합병제의에 대해 반대했고 지금도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최강로펌은 저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저는 우리 로펌을 사랑하고 아낍니다. 저는 법률시장이 개방될 것을 염두에 두고 오래전부터 이에 대비해 시장개방이 되더라도 독자 생존할 수 있도록 우리 로펌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력해 왔습니다. 사실 지금까지는 정말 놀라울 만큼 잘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와 함께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지요. 이제 우리 로펌은 중견로펌으로서 그 규모나 실력 면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비드 앤 솔로몬의 합병제의로 우리 로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클라이언트의 클레임 제기도 합병제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재 로펌의 재정상태의 악화로 상황이 매우 안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하면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사무실 적자는 제가 사재를 털어서라도 보전할 생각이고, 이러한 제 생각은 파트너 회의에서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다고 하여 우리의 자존심을 버리고 외국로펌과 합병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의 합병은 합병이 아니라 사실상 흡수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동수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비장하기까지 했다. 사실상 최강로펌의 터줏대감이니 어쩌면 당연하리라.

     

    “제 얘기가 너무 길어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민 변호사님이 말씀해 보시지요. 저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최동수는 바톤을 옆에 앉아 있는 민용하에게 넘겼다. 민용하는 좁은 어깨를 들썩이며 안경을 벗고 홀 안을 한번 둘러보고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 말문을 열었다.

     

    “에, 또, 그럽시다. 내가 먼저 총대를 매지요. 우리 최 변호사님의 말씀이 구구절절이 옳다는 건 나도 압니다. 첨엔 나도 합병얘기가 나왔을 때 콧방귀도 안 꼈었죠. 웃기지 말라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저들의 합병제의를 심사숙고해보니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은 아니더란 겁니다. 우선 우리 로펌이 중견로펌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국내에서 최고 일류로펌은 아니죠. 그렇다고 시간이 흐른다고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지요. 더구나 지금처럼 사무실 재정이 점점 악화된다면 새로운 인력을 보충하기는 고사하고 중견로펌의 자리도 유지하지 못하고 2류, 3류 로펌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최 변호사는 사재를 털어서라도 로펌의 적자를 메우겠다고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란 건 여러분도 잘 알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은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나도 명색이 로펌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렇게는 못합니다.

     

    자, 그러면 다비드 앤 솔로몬의 합병조건을 한 번 봅시다. 지분이 50:50이고 구성원들의 연봉을 최소한 현재의 150% 이상으로 올려주겠다고 합니다. 물론 직원들도 모두 승계한다고 하지요. 이 정도의 조건이면 우리에게 손해날 것은 없다고 봐요. 여기서 특히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단순한 이러한 조건보다는 다비드 앤 솔로몬이 세계적인 로펌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로펌이니까 이런 로펌하고 우리가 합병한다면 그들의 전문적인 업무상의 노하우를 많이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리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면 국내에서 최강로펌은 머지않아 김앤송이나 이앤파트너 못지않은 최고 일류가 될 수 있지요.

     

    어떻습니까! 여러분, 이만하면 정말 우리에겐 좋은 기회 아닙니까! 최강로펌이 흔들리는 지금이 바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소? 만약 저들의 말대로 우리가 끝내 합병제의를 거절하면 저들은 분명 다른 로펌과 합병을 시도하겠지요. 그때 가서 후회해봐야 이미 차는 떠나고 없는 겁니다. 지금은 글로벌시대라 이겁니다. 우리의 마인드도 이젠 글로벌 마인드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고 번영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잘 생각해 보십시오.”

     

    최동수의 목소리와는 달리 민용하의 목소리는 비장함보다는 합병에 대한 기대가 담겨져 그는 지금의 최강로펌의 상황을 결코 비극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음이 분명했다.

     

    “네, 민 변호사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자 얘기의 물꼬를 텄으니 누구든지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최동수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고 표정은 어두웠다.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언제나 조용하고 말 수가 적은 것으로 소문난 손병찬 변호사였다. 그는 법원에서 고등부장까지 지낸 경력의 소유자였다.

     

    “최 변호사님이나 민 변호사님의 말씀 모두 다 일리가 있고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다비드 앤 솔로몬의 합병제의에 대해 우리가 역 제의를 하면 어떨까요? 예컨대 합병제의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 하지만 지금 합병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가 걸려있어 간단치 않고 시일도 촉박하므로 우선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어 업무에 대해 상호 공조체제를 구축하자고 말입니다. 그렇게 한 2-3년을 해보다가 서로 합병할 만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가서 합병을 논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손병찬의 말에 상당수의 변호사들이 공감하는 듯 여기저기서 “예”, “좋은 생각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동안 극도로 긴장되어 있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강 변호사가 다시 일어섰다.

     

    “네, 손 변호사님의 말씀은 저도 참 합리적인 의견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저도 여러 가지 생각 끝에 저들의 의도를 알아보려고 그쪽의 변호사를 통해 그런 제의를 흘려보았습니다만 저들의 의사는 확고했습니다. 전략적 제휴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빠른 시일 내에 완전한 합병이 아니면 합병을 포기하겠다고 합니다.”

     

    쐐기를 박는 듯 한 강동현의 말에 좌중의 분위기는 다시 얼어붙는 듯 했다.

     

    “저는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젊은 변호사들에게 언제나 자상하게 대해 준다고 해서 큰 형님으로 불리는 이상석 변호사였다.

     

    “사실 우리는 다비드 앤 솔로몬이 세계적 로펌이란 것만 알지 어떤 로펌인지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잖아요? 미국 내에서의 평판이 어떤지, 최고 파트너들이 존경받는 인물들인지, 경영방침은 어떤 것인지 말이여. 그래서 우리가 대표단을 미국으로 보내든지, 아니면 여러 경로를 통해서 다비드 앤 솔로몬의 정체를 집중 해부해 보고 우리가 상종할 만한 로펌이라면 합병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도 괜찮지 않나하는 생각입니다.”

     

    결국 이상석의 의견도 조건을 달긴 했지만 합병에 반대하지는 않은 것이었다. 결국 최강 4인방 중 합병에 대해 반대의사를 명확히 한 것은 최동수 뿐이었다.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특허팀장인 조경민이었다.

     

    “우리가 다비드 앤 솔로몬과 합병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지금 세계시장은 이미 단일화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간밤에 뉴욕증시가 폭락하면 바로 그 충격이 우리 증시에 미칩니다.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면 세계의 자본이 그에 따라 움직이고 우리나라 금융시장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이런 상황인데 우리가 독자적인 생존, 애국심, 자존심 이런 이유 때문에 외국로펌과의 합병을 못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까요? 우리가 세계적인 기업이라고 자칭하는 삼성전자가 사실은 그 지분의 반가량이 이미 외국인에게 넘어갔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알지 않습니까? 법률시장은 이미 개방되었는데 로펌의 국적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만약 다비드 앤 솔로몬이 미국의 로펌이 아니라 영국이나 중국의 로펌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조경민은 세계시장이 이미 단일화 되었는데 토종 로펌을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라고 강조했다. 특허와 상표 등이 전문분야인 그로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다시 좌중이 조금씩 술렁거렸다. 분위기로 보아 합병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것이 대세인 듯 했다.

     

    “저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평소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김일세였다.

     

    “선배님들의 의견을 잘 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각도에서 이번 합병문제를 생각해 봤습니다. 사실 변호사를 오래 했거나 연배가 상당히 되신 분들에게는 합병 건에 대해 명분이 큰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 같은 젊은 변호사들에게는 정말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세계적인 로펌과의 합병은 젊은 변호사들에게 더 없이 좋은 기회일 뿐만 아니라 당장의 생활안정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한다면 우리 후배들에게도 새로운 희망과 기회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일세는 평소의 생각대로 젊은 변호사들을 대변한다는 심정으로 말했다.

     

    “저는 꼭 그렇게만 생각지는 않습니다.”

     

    김일세의 옆에 앉아있던 박두현이었다.

     

    “최 변호사님 말씀대로 우리는 이미 세계적인 로펌들과 업무제유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다시피 우리 로펌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외국 변호사만 해도 십여 명이 있습니다. 굳이 외국 로펌하고 합병해야 될 이유는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처럼 사무실 사정이 어려울 때 합병하는 것은 합병이 아니라 흡수당하는 것입니다. 이건 처음부터 우리의 자존심을 꺽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말로는 지분을 반반으로 하겠다고 하지만 돈줄을 그들이 쥐고 있는데 정말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들은 세계적인 로펌이고 이런 로펌합병에 관해서도 이미 오랫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로펌입니다. 만약 그들과 합병한다면 오래지 않아 최강 로펌은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입니다.”

     

    박두현은 논리정연하게 합병반대 의사를 밝혔다.

     

    “박 변호사님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중간쯤에 앉아있던 송판국이 일어섰다. 그가 일어서자 다들 송판국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대표님이나 다른 변호사님들은 상당히 젊잖게 말씀하시는데 난 화가나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증거가 없다고 하지만 클라이언트들이 클래임을 제기하고, 고문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분명 다비드 앤 솔로몬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겁니다. 우리하고 합병하고 싶으면 정식으로 합병제의하고 신사적으로 나올 것이지 뒷구멍으로 클라이언트들을 조종해서 우릴 함정에 빠뜨린 뒤 합병을 하겠다니, 이런 쌍놈의 새끼들이 어디 있습니까? 이건 고도로 계산된 범죄행위 아닙니까? 난 지금 합병에 대해 이야기할게 아니라 이따위 짓거리를 하는 로펌에 대해서는 대한변호사협회에 정식으로 진정하고 검찰에도 수사의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송판국은 작정한 듯이 다비드 앤 솔로몬을 파렴치한 로펌으로 몰아붙였다. 사실 다들 마음속으로는 그런 생각들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었다. 송판국의 거침없는 일갈에 다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저도 송 변호사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뒤쪽에 앉아있던 심해정이 어색한 침묵을 깨고 한마디 했다.

     

    “저도 송 변호사님 말씀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김 변호사님의 말씀처럼 젊은 변호사들에게 세계적인 로펌에서 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로펌도 기업입니다. 처음에는 합병한 로펌이 젊은 변호사들을 모두 받아들이겠지만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정리하는 것이 저들의 생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외국로펌과의 합병은 젊은 변호사들에게 기회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일세의 앞쪽에 앉은 이수연이었다. 자신의 발언에 토를 다는듯한 이수연의 말에 김일세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수차례 설득했지만 이수연은 끝내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었다.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다시 작은 웅성거림이 있었다. 특히 영어에 자신 없는 변호사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러분들의 좋은 의견들 잘 들었습니다. 저는 외국로펌과의 합병에 관해서는 우리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고객들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강로펌의 고문인 이진규 변호사였다. 그는 대법원 판사까지 지낸 원로 변호사였다. 칠순이 넘었지만 업무에 대한 정열은 젊은이 못지않았다. 이진규가 나서자 웅성거리던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우리고객들은 우리로펌을 신뢰하고 오랫동안 우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우리에게 사건을 의뢰한 고객들이 많습니다. 특히 우리와 고문관계를 맺어온 100여개의 크고 작은 기업들은 우리와의 신뢰관계가 두텁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그 기업의 업무상 기밀이나 노하우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또 그에 관한 자료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다비드 앤 솔로몬과 합병하기로 한다면 그러한 기업들의 보안을 요하는 많은 자료들이 모두 다비드 앤 솔로몬에게 노출되고 말겠지요. 외국로펌과의 합병을 논의 할 때에는 이 문제도 반드시 신중히 처리하여 우리 고객들이 피해를 보는 일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역시 이진규 변호사는 원로답게 고객들의 이익까지 세밀하게 살피고 있었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이진규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분이 좋은 의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최강로펌의 구성원이기 전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문가로서 모두 최고의 인재들입니다. 결국 각자의 소신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겠지만 좀 더 신중히 생각을 정리해 주시고 다음에 다시 날짜를 잡아 의견을 수렴해보고, 그래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투표를 하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든 최종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벌써 11시가 넘었군요.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좋은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최동수는 담담한 심정으로 토론을 끝냈다. 결론이야 어찌 되었든 한 가지 짐은 벗은 느낌이었다. 결국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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