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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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변호사의 편지] 우리를 슬프게 하는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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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 하나.

    겨울의 차가움에 대한 서먹함이 없어진 어느 날, ‘진’은 법원에서 ‘호’를 만났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근 8년 만에 만나는 지라 반가움에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반갑다… 어떻게 지내? 명함 좀 줘봐.”
    노무를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의 대표라는 명함을 내 민다.
    “형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나는 사내변호사로 있어. 공공기관인데, 페이는 작지만 스트레스가 적어서 지내기는 편해. 너는 어때?”
    “어려워요…”
    말의 톤이 내려가면서 표정이 어두워진다.
    “수임이 안돼서 같이 3년을 일하던 변호사와 노무사와도 결별했어요.”
    로스쿨에서는 지속적으로 변호사가 배출될 거고,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텐데 어차피 먹고 살기 어려울 바에야 정치 조직화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진’은 말을 하면서도 이 말이 ‘호’에게 위로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풍경 둘.

    ‘진’이 사무실에 들어오니 계약 갱신에 관한 내용이 사내 메일로 들어와 있다. ‘진’은 회사에 입사한 지 8년째다.
    입사 당시 인사 담당 임원은 3년째 되던 해에 정규직 전환을 하자고 제안했다. 오래 같이 근무하자고 진심으로 환영해 주었다. 그 임원이 퇴사하고 나니 정규직 전환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매년 1년짜리 계약서가, 세금 고지서처럼 주기적으로 날아온다.
    계약직이다 보니 일반 직원들과 융화가 되지 않는다. ‘진’이 먼저 말을 시키기 전에 정규직 직원들이 먼저 말을 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조직에 속해 있지만 조직에 속해 있지 않다.
    “그래도 형은 좋은 데 있는 거예요. 여기는 45살 되기 전에 나가야 해요.” 얼마 전에 만난 케이그룹의 사내 변호사로 있는 연수원 동기 ‘범’이 한 말이다.

    해마다 날아 오는 1년짜리 계약서
    일반직 처럼 행세하는 로스쿨 출신
    사내 복지혜택 적용 못 받는 계약직

    풍경 셋.

    ‘진’이 수행하는 사해행위 취소 소송의 상대방은 국내 굴지의 금융회사다. 금융 회사의 소송 대리인이 변호사가 아니라 회사의 직원이었다. 그런데 소송 진행 실력이 만만치 않다.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진’이 개인적으로 물어보니 변호사란다.
    “로스쿨 1기입니다. 소송위임장을 내지 않고 그냥 일반 직원처럼 법원으로부터 소송 대리 허가를 받아서 소송 수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변호사법 위반의 소지가 있는 건 아는데, 뭐 어쩌겠습니까? 변호사회가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

    풍경 넷.

    ‘진’은 어느 공공 기관에 근무하는 사내변호사 ‘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의 근무 형태와 급여를 근거 자료로 해서 현재 근무하는 회사에게 급여 인상의 요구를 하고 싶었다. ‘제’가 말했다.
    “여기는 모든 면에서 열악합니다. 사내 복지도 적용받지 못하고 있고, 급여도 캡이 설정되어 있어서 일반 직원들보다 훨씬 적은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솔직히 자존심 상해서 나가고 싶은데, 밖의 사정이 너무 안 좋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풍경 다섯.

    어느 계약직 사내 변호사는 공영방송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하고,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해서 1심에서 승소했다. 그와 같이 근무하던 변호사 ‘유’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말했다.
    “그야말로 계약직이죠. 급여도 적지만 일체의 사내 복지 제도를 적용 못 받아요. 사내 복지 제도의 적용을 요구했더니 복지 제도는 정규직만 받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카스트 제도는 인도에만 있는 게 아니더군요. 21세기 대한민국에는 계약직이라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계급이 있습니다.”

     

    ◊ 이 글은 2014년 5월 1일자 법률신문 13면 <사내변호사의 편지>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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