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윤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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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제국 (24)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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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 오후 9시경 최강로펌의 회의실, 당직 직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이미 퇴근하고 사무실에는 간간이 전화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울릴 뿐이었다. 회의실의 중앙 소파에 최동수가 앉아 있고, 우측으로 이상석과 강동현, 좌측으로 손경찬과 민용하가 앉아 있었다. 이른바 최강마피아라고 불리는 4인방이 모두 모였고 거기에 재정과 행정 책임자인 강동현이 배석한 자리였다.

     

    회의실에 모인 면면만 보더라도 오늘 회의 주제가 범상치 않음을 짐작케 했다. 하지만 탁자 위에는 찻잔만이 놓여 있을 뿐 여느 때의 회의처럼 두툼한 서류나 증거물 같은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숨 막힐 것 같은 침묵을 깬 것은 역시 좌장격인 최동수였다.

     

    “여러분이 이미 다 아시는 것처럼 지금 사무실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주요 클라이언트들의 클레임제기가 30%를 넘었고,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클레임 제기 후 두세 달 후에 고문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이런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고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누군가 우리 최강로펌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음모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하게도 현재까지는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또 무슨 목적으로 우리를 궁지에 모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잘 알고 계시다시피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재정난으로 우리 로펌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강 변호사님, 현재 우리 로펌의 재정상태가 정확하게 어느 정도이지요?”

     

    최동수는 괴로운 표정으로 강동현을 바라보았다.

     

    “네, 지난달에만 10억 원 정도의 적자가 났습니다. 내부 유보금과 금융권 차입으로 어렵게 넘어가긴 했지만 문제는 앞으로의 전망이 더 어둡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상태로 계속 재정상태가 악화된다면 3-4개월을 버티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강동현의 목소리 역시 비장하게 들렸다.

     

    “그럼 분야별로 상황을 한 번 점검해 보겠습니다. 민용하 변호사님, 그동안 진행하던 M&A와 합작투자건 중에서 3-4개월 내에 종결되고 수익을 낼만한 건수가 있겠습니까?”

     

    “에, 또…그러니까. 그게 그렇습니다. M&A나 조인트 벤처 같은 업무는 단기간에 승부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진행 중인 것은 여러 건이 있지만 일상적인 수수료 외에 큰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봐야지요.”

     

    민용하는 자기한테는 아예 기대도 하지 말라는 듯 잘라 말했다.

     

    “이 변호사님은 어떻습니까? 부동산분야와 상속사건 중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종결될만한 것이 없겠습니까?”

     

    “예, 최 박사님도 아시다시피 상속사건이야 원체 진행이 느려 터졌잖아요. 그 쪽엔 기대할 것이 없고, 이번 수유리 재개발 조합건은 감정기관에서 토지보상가격을 중앙토지수용위원회 감정가격보다 얼마나 더 많이 감정해주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여요. 한 10프로만 올려줘도 돈 좀 될 것 같은데. 원체 덩치가 크니까 10프로만 해도 한 3-4억은 너끈히 떨어질 것 같은데….”

     

    “감정가격은 언제쯤 나올 것 같습니까?”

     

    “꽤 오래 전에 감정의뢰가 있었으니까. 얼추 다 된 모양이여. 감정가격만 제출되면 결심하고 바로 선고만 하면 되니까.”

     

    “전망은 어떻습니까?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요즈음은 중토위 감정가격 보다 보상감정가격이 짜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던데.”

     

    손경찬 변호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상석의 낙관적인 전망을 경계했다.

     

    “예, 그런 경우도 있지요. 감정가격이야 공인감정사가 하니까 백프로 장담할 수가 없지요. 그래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해 봐야지요. 모든게 주님의 뜻대로 되겄지만.”

     

    최동수는 이상석의 변함없는 신심과 매사에 낙관적인 자세가 부러웠다. 모든게 주님의 뜻이니 어린 양들이 뭐 때문에 걱정하겠는가. 최동수의 얼굴에 잠깐이지만 가벼운 웃음이 스쳐갔다.

     

    “손 변호사님, 조세나 공정거래 분야는 어떻습니까? 지난 번 개성그룹 부가세 반환건과 과징금부과 취소건은 액수가 제법 크던데요?”

     

    “그렇습니다. 개성그룹건은 소송물가액이 수백억대니까 돈 좀 될 겁니다. 승소 가능성도 꽤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인데 조세소송이나 행정소송 역시 단칼에 끝장내는 사건이 아니고 증거관계가 복잡해서 질질 끌기 마련입니다. 암튼 서너 달 안에 쇼부 보기는 어렵다고 봐야지요.”

     

    손경찬은 연배가 최동수보다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아직도 쇼부 같은 일본말을 자주 썼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손 변호사님 꼭 좀 승소하셔서 우리 최강의 명성도 드높이고 성공보수도 많이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강 변호사님 IP(지적재산권)나 형사사건 중에는 대박이 날만한 사건 없습니까?”

     

    최동수의 대박이라는 말에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아까보다는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던 것이다. 사실 이제 사무실의 어려움을 모두 알았으니 더 이상 얼굴을 찌푸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법조계 경력만 해도 모두 30년 전후되는 사람들이니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을 터이다. 막말로 사무실이 공중분해 된다 해도 겁먹을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IP나 형사사건은 당사자들에게는 개인이나 회사의 운영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지만 선임료 측면에서 볼 때에는 재벌그룹총수 사건이 아닌 한 대부분 자잘한 사건들입니다. 3-4개월 내에 사무실 재정에 크게 도움이 될 만한 건수는 현재 없습니다.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강동현은 자신이 최강의 4인방에 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팀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미안해했다.

     

    “강 변호사님, 미안해하실 건 없습니다. 사무실의 궂은일을 도맡아 해 주시는 것만 해도 최강으로서는 큰 힘이 됩니다. 자, 그건 그렇고 제가 맡고 있는 금융부분도 일상적인 업무 외에 당장 큰 수익을 낼만한 사건이 없습니다. 현재 백두그룹에서 발행할 예정으로 있는 유로본드 건을 최강이 수주하기 위해 준비 중에 있습니다. 결국 여러분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우리 최강이 단기적으로는 위기임이 분명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자! 여러분 앞으로 3-4개월이 고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힘을 합해 동원 가능한 모든 역량을 가동해서 새로운 클라이언트들을 개발합시다. 좀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필요하면 사돈의 팔촌의 인맥 뿐 아니라 지연, 학연도 모두 동원해 봅시다. 그리고 강 변호사님은 로펌의 광고 전략을 다시 한 번 검토해서 비용을 더 들여서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방안을 강구해 주세요. 최강이 이대로 주저 않을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래도 안 된다면 금융기관 대출뿐만 아니라 저의 사재를 털어서라도 사무실의 재정난을 극복하도록 하겠습니다.”

    최동수의 표정에는 비장함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눈도 예전처럼 다시 빛나고 있었다. 이제 바닥까지 추락했으니 두려울 것이 없는 듯 했다.

     

    “최 박사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안 합니까. 모든게 다 주님의 뜻 로니까 우리야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면 되는거 아니겄어요?”

     

    “그렇지요. 그리고 최 변호사, 사재를 턴다고 했는데 그건 좀 무리한거 아닌가. 우리도 영 부담스럽고, 이 변호사 말대로 순리대로 풀어갑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날 구멍이 있다는데, 안 그렇소? 여러분?”

     

    손경찬도 이상석의 말에 동조하며 최동수를 위로하며 힘을 보탰다. 최동수는 파트너들의 위로에 적잖이 위안을 느꼈다.

     

    “아, 그리고 여러분도 들었겠지만 그 전부터 말이 있었는데 이번에 정식으로 다비드 앤 솔로몬에서 합병제의를 해 왔습니다. 그것도 상당히 구체적으로 조건을 제시해 가면서 말입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습니까?”

     

    “에, 또. 그러니까 그 문제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니까. 우리끼리 쉬쉬하고 말 수는 없겄지요. 내 생각은 전체 변호사들과 임직원의 장래에도 큰 영향이 있으니까 적어도 전체회의에 상정해서 난상토론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싶어.”

     

    민용하가 기다렸다는 듯이 제일 먼저 난상토론을 제의했다

     

    “그래, 그기 좋겠다. 모두 오픈하고 전체 변호사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겠네. 이 변호사 생각은 어떻소?”

     

    손경찬도 민용하의 제의에 적극 동조하며 이상석의 의견을 물었다.

     

    “저야 뭐. 두 분 의견이 그렇다면 따라야지요.”

     

    최동수는 아무도 합병제의는 말도 안 되는거니 무시하자고 하는 사람이 없어 내심 섭섭하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하긴 합병얘기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니 그냥 무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어려운 얘기임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최동수의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예, 다들 같은 의견이시니 전체회의에 부쳐 의견을 들어 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강 변호사님, 빠른 시일 내에 날짜를 한 번 잡아서 모두에게 공람을 돌리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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