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백강진
  • 판사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연락처 : 02-530-1114
이메일 : kkjin@scourt.go.kr
홈페이지 :
주소 : 서울 서초구 우면로 100
소개 :

이 포스트는 0명이 in+했습니다.

    목록이 없습니다.

    백강진님의 포스트

    [ 더보기 ]

    균형의 시대

    0

    세월호 참사 이후 나타난 여러 담론 중 눈에 띄는 부분은 관료조직에 대한 과감한 개혁 시도와 엄벌주의 경향의 강화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근대 이후 계속 고민하여 온 해묵은 과제라고 할 수도 있다.

    올해는 갑오개혁, 동학농민전쟁이 있었던 1894년으로부터 2갑자(120년)가 되는 해이다. 1894년에는 군국기무처의 의안과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안, 홍범 14조 등을 통하여 사회 전반에 걸친 제도개혁안이 제시되었다. 수백 년간 내려오던 과거제를 폐지한 후 근대적 관료제를 도입하였고, 각급 재판소를 설치하는 등으로 근대 재판제도를 수립하는 한편 지나치게 가혹하고 인명을 경시하는 측면이 있었던 참형을 폐지하고 징역형을 새롭게 도입하였다.

    그러나 일본을 모델로 하여 급격하게 도입된 제도는 쉽게 뿌리내리지 못하였다. 도면회 교수의 최근 저서(한국근대형사재판제도사)에 따르면, 당시 재판절차는 유명무실하여 군수·관찰사의 탐학은 계속되었고 뇌물 등에 영향을 받은 불공정한 판결이 수시로 내려졌다고 한다. 지방관에 대한 고소·고발이 폭증하였지만 대부분 무혐의 처리되거나 오히려 고소한 사람이 무고죄로 처벌받았다. 결국, 러일전쟁을 전후해서는 백성이 일본 영사관에 주로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는 사례가 빈번하였고 일진회까지도 재판제도 개혁요구를 통하여 국민의 지지를 얻고자 하였다. 이러한 취약점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재판제도의 개선을 급선무로 내세움으로써 경찰권과 사법권을 침탈하는 좋은 빌미가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전통 법 제도는 개인의 원(寃)을 푸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하였다. 즉 백성의 원통함이나 억울함을 위정자가 바로잡음으로써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120년 전에 과감하게 도입된 근대 제도는 그러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였고, 현재까지도 그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이 집합 열정(Collective effervescence)이 개인을 공동체로 결속시키는 과정에 주목한 바 있다. 이러한 종교적인 집합 열정은 혁명기나 근대 민족국가 형성기에는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었으나, 현대에 오면서 점차 관료제를 비롯한 공적 조직에 의해 합리화되고 제도화되었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공적 조직이 그러한 집합 열정의 제도화를 제대로 이루어 내었는지 역시 의문이다.

    어떤 제도든 그 사회와 문화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무작정 도입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100년이 넘도록 ‘근대적’ 제도가 정착되지 않고 있는 원인도 탐구하지 않은 채 ‘발본색원’을 기치로 내건 개혁안이 난무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우려가 앞선다.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극단적 파국과 번영으로 점철된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명명하였다. 21세기에 우리나라가 파국이 아닌 ‘균형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시중(時中)의 지혜가 절실한 때이다.

     

    ◊ 이 글은 2014년 5월 29일자 법률신문 14면 <서초포럼>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