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윤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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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제국 (23) 펀드매니저 한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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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배금호 변호사 방이 어느 쪽 입니까?”

     

    직원들이 대부분 퇴근한 사무실에 회사원으로 보이는 양복차림의 남자가 강동현에게 말을 걸었다. 강동현은 팩스로 받을 서류가 있어 팩스기 옆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시죠?”

     

    퇴근시간 이후에 배금호를 찾아 온 것으로 보아 업무상 온 것은 아닌 것 같아 강동현은 신분을 확인했다. 로펌 사무실이 외부인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송관계 서류나 의뢰인이 가져온 중요한 자료나 증거물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퇴근시간 이후의 출입을 무제한 허용할 수는 없었다.

     

    “아, 예. 배금호 변호사의 친구 한동철이라고 합니다.”

     

    “그러세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강동현은 한동철을 사무실 안쪽 창가에 있는 배금호의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배 변호사, 친구 분이 오셨네.”

     

    배금호는 강동현이 직접 한동철을 안내해 오자 황송한 듯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강동현에게 자리를 권했다. 강동현은 신경 쓰지 말라며 배금호의 방을 나와 팩스로 온 서류를 챙겨 가지고 자기 방으로 들어 왔다.

     

    최근 선임한 강도상해사건의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면서 배심재판을 원하고 있어 그 공판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배심재판은 아직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가 별로 많지 않아 변론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배심원 선정이 제일 문제였다. 외국 영화를 보면 배심원들의 성향을 미리 파악해 피고인 쪽에 불리하게 보이는 배심원들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배심원 선정만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도 있던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가 못했다. 변호사 혼자 배심원 선정부터 증인신문, 배심원 앞에서의 변론 등 모든 일을 다 할 수밖에 없었다.

     

    강동현은 그나마 같이 일을 도와주는 형사팀의 젊은 변호사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이 때 강 변호사 방을 가볍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 변호사님, 지금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

     

    “아, 배 변호사. 식사는 했어요? 들어오세요.”

     

    “강 변호사님, 아까 보셨던 한동철이라는 친구가 증권회사에 근무하는데 장미은행에 대해 묘한 소리를 합니다. 혹시 강 변호사님도 한 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배금호의 증권회사와 장미은행이라는 말에 강동현의 귀가 번쩍 뜨였다. 그렇지 않아도 최강이 장미은행 사건을 맡은 이후로 클라이언트들의 클레임 제기와 고문계약 해지로 사무실의 재정이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그래요? 그러시죠. 한번 들어봅시다.”

     

    잠시 후 배금호는 한동철을 데리고 왔다.

     

    “반갑습니다. 아깐 제대로 인사도 못했네요. 식사는 하셨습니까?”

     

    “예. 제가 이 친구한테 빚진게 있어서 한 턱 냈습니다.”

     

    사무실에서 짜다고 소문난 배금호도 친구한테는 후한 모양이었다.

     

    “그래요? 배 변호사가 친구 덕에 주식으로 재미 좀 본 모양이죠?”

     

    “아닙니다, 변호사님. 그 반대입니다. 이 친구 말 듣고 장미은행 주식을 좀 샀다가 하마터면 쪽박 찰 뻔 했습니다.”

     

    “아, 그러면 오히려 저녁을 얻어먹어야지요. 왜 빚졌다는 거지요?”

     

    “예. 그게 사정이 좀 복잡합니다. 야, 한 팀장. 한 팀장이 강 변호사님께 설명 드려 봐.”

     

    배금호는 한동철에게 설명해 보라고 재촉했다.

     

    “예.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장미은행은 변호사님도 아시다시피 시중은행 중에서 실적이 좋은 우량은행이었습니다. 작년 순익도 1조원이 넘었고요. 그래서 배 변호사에게 장미은행 주식을 사 보라고 권했고, 제가 관리하는 펀드에도 장미은행 주식을 상당 부분 편입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5개월 전에, 그러니까 최강로펌이 장미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1개월 전쯤입니다. 갑자기 장미은행에 관한 이상한 루머가 돌아서 시초가부터 장미은행 주가가 폭락했다가 그날 오후에 루머가 사실무근임이 밝혀져 원상복구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루머요? 그게 뭐죠?”

     

    강동현은 한동철의 설명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한동철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루머란 게 바로 최강로펌이 장미은행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그 이유입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렇다면 증권가에서는 벌써 그때부터 그런 루머가 돌았다는 건가요? 그런데 그 루머의 출처는 어디인지 확인해 봤습니까?”

     

    “아니요. 확인 못해 봤습니다. 그날 오후에 사실무근이라고 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증권업계에서는 그런 루머가 워낙 많아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루머가 사실로 밝혀지고 소송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요? 그럼 배 변호사도 그렇고 한 팀장도 장미은행 때문에 손해 많이 봤겠네요?”

     

    강동현은 최강로펌이 장미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 때문에 장미은행 주가가 폭락하여 한동철에게 죄지은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 손해 본 것 없습니다. 한 팀장은 오히려 장미은행 때문에 돈 좀 벌었습니다.”

     

    배금호는 자랑스러운 듯 한 팀장을 보며 말했다.

     

    “돈을 벌어요? 장미은행 주가가 폭락했는데도 돈을 벌었어요? 어떻게요?”

     

    강동현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되물었다.

    “아, 예. 별로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배 변호사에게는 그 후 장미은행 주가가 다시 조금 올랐을 때 미련 갖지 말고 무조건 처분하고, 앞으로는 간접 투자로 돌리라고 권했는데 배 변호사는 제 말을 그대로 따라 손해 없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도 보유했던 장미은행 주식을 처분하고 포지션을 오히려 풋으로 변경했거든요.”

     

    “풋 포지션요? 그렇다면 장미은행 주가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차익이 커지는 포지션 말인가요?”

     

    강동현도 주식이나 선물 ․ 옵션거래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 그렇죠. 변호사님도 정확하게 잘 알고 계시는군요. 풋포지션을 쭉 유지하다가 최근 모두 청산했습니다.”

     

    “이 친구가 관리하는 펀드가 수익률 32%로 회사에서 1등을 했답니다. 대단한 친구입니다.”

     

    배금호는 아까보다 더 신이 난 듯 한 팀장을 추켜세웠다.

     

    “그렇군요. 나도 돈 있으면 한 팀장 펀드에 가입해야 되겠는데요. 하하하.”

     

    “에이. 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한동철은 멋쩍은 듯 두 손을 비비며 웃었다.

     

    “그런데 한 팀장님, 당시 장미은행에 관한 루머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는데 왜 배 변호사에게 무조건 처분하라고 하고 한 팀장의 포지션도 풋으로 바꾼 겁니까? 그때 무슨 정보가 있었나요?”

     

    강동현은 아까부터 가지고 있던 의문에 대해 한동철에게 물었다.

     

    “아니요. 저라고 해서 특별한 정보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 감과 펀드매니저로서의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대형우량주에 대한 루머는 단순한 루머가 아니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미은행에 대한 최초의 루머는 그 출처도 불명확하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그 소스가 어디든 분명히 어떤 근거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래서 제 감대로 한 번 배팅을 해 본건데 의외로 아주 정확하게 적중했던 거죠.”

     

    강동현은 한동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한 팀장님, 그러면 한 팀장님은 처음 그런 루머의 출처는 어디이고, 누가 왜 그런 루머를 흘리고, 또 사실무근이라고 했는지 짐작 가는데 가 있습니까?”

     

    “글쎄요. 저도 그게 정말 의문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날 최초로 루머가 돈 것은 외국계 증권사로부터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루머의 소스는 외국이나 외국계 기업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추측으로는 그 내용을 잘 아는 쪽에서 미리 근거 없는 루머인 것처럼 한번 슬쩍 흘려보고, 국내 시장의 반응을 떠 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동철의 논리 정연한 추측에 강동현은 생각에 잠겼다. 강동현은 한동철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았다. 배 변호사의 친구로 나이는 얼마 안 되지만 펀드매니저로서 상당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만약 한동철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장미은행의 주가는 오래전부터 누군가가 목적을 가지고 조작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어쩌면 그 조작극에 최강로펌도 말려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강동현은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앞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강동현이 갑자기 눈을 빛내며 한동철에게 말했다.

     

    “한 팀장님, 우리 배 변호사의 친구라니까 정말 믿음직합니다. 혹시 가능하다면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부탁이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배 변호사도 있고 하니까 한번 해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게 아니고, 아까 그 장미은행에 관한 루머의 출처가 어딘지 한 번 알아 봐 주세요. 물론 이미 오래 전 일이라 추적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증권계에 계셔서 우리보단 정보가 빠르겠지요. 그리고 가능하면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알아봐 주세요.”

     

    “아, 네. 변호사님 말씀대로 오래 전 일이라 루머의 출처를 확인하는 건 쉽지 않을겁니다. 알겠습니다. 한번 최선을 다해 해보겠습니다.”

     

    “그래요. 정말 고맙습니다. 한 팀장님, 어렵겠지만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참! 그리고 아까 배 변호사가 한 팀장님한테 빚진게 있다고 했는데 그게 뭐지요? 혹시 그것도 장미은행 건하고 관련 있는 건가요?”

     

    강동현은 조금 전 배금호가 사정이 복잡하다고 한 말이 생각나 배금호에게 물었다.

     

    “아. 네. 그게 좀….”

     

    강동현의 물음에 배금호는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왜요? 제가 알면 안 되는 이야기인가요?”

     

    “아닙니다. 사실은 제가 배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겁니다.”

     

    배금호가 우물쭈물하자 한동철이 대신 나섰다.

     

    “무리한 요구라니요? 점점 흥미 있어지는데요?”

     

    강동현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빨리 이실직고 하라는 듯 눈짓을 보냈다.

     

    “사실은 장미은행 사건을 최강에서 맡고 배변도 관여하게 됐으니 누구보다 그 내용을 배변도 잘 알 텐데, 배변이 장미은행건에 대해서는 일체 이야기하지 않아 나중에 제가 그 사실을 알고 배변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섭섭한 소리를 좀 했습니다. 배변은 변호사로서의 직무윤리상 그럴 수는 없었다고 하지만 장미은행 주식 때문에 속을 태우고 있던 저로서는 정말 많이 섭섭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충분히 이해하고 배변의 처신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한 팀장 정말 미안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비싼 밥도 샀으니 이젠 그만 잊어주라.”

     

    배변은 옆에 앉은 한동철의 어깨를 껴안는 시늉을 했다. 한동철이 배변에게 정말 많이 서운해 했던 모양이었다.

     

    “하하하. 그랬었군요. 그건 한 팀장님이 이해해 주셔야겠어요.”

     

    “네. 그럼요.”

     

    “그리고 한 팀장님 아까 그건 꼭 좀 부탁드립니다.”

     

    강동현은 배금호가 보기에 평소보다 많이 오버한다 싶을 정도로 한동철에게 간곡하게 부탁하며 한동철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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