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윤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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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제국 (22) 최강의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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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강로펌의 사무실 분위기는 요즈음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장미은행과 장미은행 임원들에 대한 손해배상 집단 소송을 제기할 때만 해도 최강로펌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금융분야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는 듯 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지금 장미은행사건은 진행도 지지부진하고 아직 이렇다 할 결정적인 증거도 확보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장미은행의 이미지는 계속 떨어져 주가는 소제기전보다 30%가량이나 폭락한 상태여서 장미은행이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자 이런 상황에서 아메리카 은행이 영 ․ 미계 금융기관과 콘소시움을 구성해 설립한 퍼시픽 ․ 파이낸스가 장미은행을 인수 ․ 합병할 것이라는 소문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장미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퍼시픽 ․ 파이낸스 컴퍼니가 어떤 기업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상세히 보도되지 않았고 다만 장미은행을 인수하기 위해 새로 설립한 홍콩 국적의 회사라고 하였다.

     

    그런데 최강로펌의 분위기가 묘하게 된 것은 장미은행 사건을 맡게 되면서부터 최강로펌의 재정상태가 서서히 악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장미은행 사건은 거의 수수료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연대와 함께 소송을 수행하는 것으로 처음부터 사무실 수입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최강로펌의 주요 클라이언트였던 미국계의 마이어증권과 투자자문회사, 유럽계의 브론슨 제약과 크린트전자, 일본계의 자동차회사 등 굵직한 클라이언트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고문 법률사무소를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이었다.

     

    최강 로펌은 지난달 50여명의 변호사와 150여명에 대한 직원들의 보수를 일부사채가 포함된 금융권 융자를 통해 겨우 해결했다.

     

    이제는 최강로펌의 변호사와 직원들도 드러내놓고 말은 안하지만 사무실의 재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최강로펌이 정말 부도나는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알게 모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사실 몇 달 전에 중형로펌 하나가 재정난 때문에 해체된 사실도 있어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최강로펌의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한 것이 바로 미국계 다비드 앤 솔로몬 로펌과의 합병설이었다. 어떤 변호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기도 하고 로펌내부 사정에 정통하다는 중견 변호사는 다비드 앤 솔로몬에서 상당히 구체적이고 호의적인 합병조건을 제시하여 최강로펌의 시니어 파트너들이 이 제안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비드 앤 솔로몬과의 합병소문은 최강로펌의 분위기를 묘하게 바꿔놓았다. 침체되어 있던 로펌 분위기 속에서도 합병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과 합병에 대해 말도 안 된다며 극구 반대하는 사람들로 양분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최강로펌은 겉으로는 일견 조용하고 침체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변호사들은 변호사대로, 직원들은 직원대로 합병 가능성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부지런히 저울질해 보는 일로 분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변호사님, 다비드 앤 솔로몬에서 정식 합병제의를 한 것이 사실입니까?”

     

    모처럼 점심을 함께 하려고 서초동 한정식 집에 자리 잡은 김일세는 대선배이면서 최강로펌의 파트너인 이상석변호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상석변호사는 최강로펌의 파트너 중에서도 최강 마피아라고 불리는 4인방 중의 한사람이기 때문에 로펌 경영에 깊숙이 관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일세가 이상석에게 특별한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최강로펌에 합류한 것이 조금 늦은 편이어서 실질적인 지분은 그리 높지 않다는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글쎄, 아직 공식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닌 모양이고, 다만 최 박사의 코넬대학 동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의사를 타진해 온 것은 사실인 모양이여.”

     

    이상석은 누가 듣기라고 하는 듯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래도 이미 사무실 내에서는 합병제의의 구체적인 내용까지도 떠돌 만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언제까지 쉬쉬할 수는 없잖습니까? 차라리 전체 변호사 회의를 열어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김일세는 이상석의 미지근한 대답이 영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 적극적으로 나갔다.

     

    “물론 어느 정도 상황이 진척되면 당연히 그런 절차를 밟아야하겄지. 하지만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닌 것 같고, 최 박사도 구체적 방침을 정하지는 못한 것 같어.”

     

    최강 로펌의 실질적인 오너라고 할 수 있는 최동수를 이상석은 최 박사라고 불렀다. 최강로펌의 변호사와 직원들 중에서도 최동수를 최 박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최동수는 몇 년 전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지 변호사보다는 최 박사로 불려지는 것을 은근히 좋아했다.

     

    “다른 선배분들의 의견은 어떤가요?”

     

    김일세를 따라 같이 온 이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다들 반반인 것 같어. 우선 나부터가 그렇고. 뭐 결국 모든게 주님의 뜻대로 되겄지.”

     

    이상석의 전매 특허가 나왔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난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말끝에 ‘주님의 뜻대로 되겄지’라는 문구를 후렴구처럼 붙이는 버릇이 있었다.

     

    이상석은 자신이 반반이라고 말했지만 로펌 내부에서는 합병에 찬성하는 쪽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 우리 로펌의 형편이 어려운데 다비드 앤 솔로몬과의 합병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요? 더구나 다비드 앤 솔로몬은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대형 로펌이라 합병조건만 잘 네고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 게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일세는 최근의 로펌분위기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합병이든 뭐든 빨리 어떤 결말이 나서 좀 더 활기찬 분위기에서 신나게 일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요즈음과 같은 세계화시대에 토종로펌이니 애국심이니 하면서 로펌의 국적을 가리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는 다비드 앤 솔로몬이 미국에서 손꼽히는 대형로펌이라는게 좀 걸려요. 아무래도 합병이 이루어지면 아무리 합병조건을 유리하게 협상한다고 해도 결국 실질적으로는 우리가 흡수되기 쉬울 것 같아요.”

     

    이수연이 마음에 품고 있던 걱정을 처음으로 표현했다. 사실 이 문제는 누구나 속으로 우려하고 있었지만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었다.

    “그런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도 명색이 국내에서 상위권에 드는 로펌인데 합병조건에 대해서만 제대로 해놓으면 그렇게 걱정할 것만도 아니지 않습니까?”

     

    한동안 잠자코 있던 조경민 변호사가 의견을 말했다. 그는 최강이 특허분야를 보강하기 위해 영입한 특허전문이었다. 그때 여종업원 둘이 큰 쟁반에 음식을 들고 들어와 진열하기 시작하자 이변호사 일행의 목소리가 갑자기 끊어졌다.

     

    상을 들고 온 여종업원들이 부지런히 밥그릇 뚜껑을 벗기고 각종 전을 각 접시에 담고 생선도 뼈를 발라 먹기 좋도록 식사를 거들었다. 이수연은 종업원들이 왜 굳이 이런 서비스까지 하는지 이해가 안 되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3-4인 상은 그리 크지 않아 아무나 손만 뻗으면 각종 반찬을 집을 수 있을 정도였다. 생선뼈를 바르는 것도 초등학생이 아닌데 꼭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한참동안 식사준비를 해주던 종업원들이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다들 너무 걱정들 말고 식사합시다. 우리 같이 몸으로 벌어먹는 사람들이야 밥이라도 잘 먹어야 하지 않겄어? 다 주님의 뜻대로 되겄지.”

     

    몸으로 벌어먹고 산다는 말에 이수연과 조경민은 피식 웃는다. 몸으로 벌어먹고 산다는 말은 변호사들에게 결코 빈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행은 서둘러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음식을 먹으면서 그들은 다비드 앤 솔로몬과의 합병이 자신의 거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하는 듯 다들 한동안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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